언론에 나지 않은 포격전 내막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백령도의 포성과 ‘잃어버린 4분’

언론보도에서 슬그머니 넘겨버리는 바람에 독자들이 알지 못하는 세 가지 사실을 들춰낼 필요가 있다.

첫째, 해병대는 포사격훈련을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동시에 강행하였다. 2010년 11월 23일 <한겨레>는 “23일 오전 10시 15분, 백령도와 연평도 주둔 해병대는 포사격훈련을 시작했다. (줄임) 합참 관계자는 ‘해병대가 사격한 포탄은 백령도 서쪽 및 연평도 남쪽인 우리 영해에 떨어졌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호국훈련 일환으로 진행된 우리 군의 포사격은 우리측 지역에서 이뤄졌다. 백령도 서쪽 및 연평도 남쪽 우리측 지역으로 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3일)

해병대 연평부대가 각종 포탄 약 3,000발을 쏘았으니, 백령도에 주둔하는 해병대 6여단도 각종 포탄 약 3,000발을 쏘았을 것이고, 따라서 11월 23일의 포사격훈련은 각종 포탄 6,000여 발을 마구 쏘아대는 대규모 포사격훈련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북측이 자기 관할수역으로 규정한 해상을 향해 한국군 해병대가 두 군데에서 4시간이 넘도록 각종 포탄 6,000여 발을 쏘는데도, 만일 인민군 서해전선지구사령부가 경고통지문이나 남측에 보내고 물리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군 해병대는 이 다음에 있을 포사격훈련에서 12,000발을 쏠 것이다. 인민군이 군사적으로 대응하였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당일 인민군 포병부대는 연평도만이 아니라 백령도를 향해서도 포격태세를 갖추었다. 2010년 11월 23일 남측 정부 소식통은 “백령도 인근의 해안포 기지에서도 포진지를 개방하는 등 이상징후가 포착되어 북한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비태세를 강화하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3일) 인민군 포병부대가 백령도를 포격하지 않은 것은, 2010년 11월 24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초인간적인 자제력을 발휘”한 것이다.

둘째,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오후에 북한의 연평도 사격과 관련해 장성급 회담 남측 대표인 류제승 소장(국방부 정책기획관) 명의로 사격중지를 촉구하는 전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1월 23일) 한국군 합참본부가 인민군에게 포격중지를 촉구하는 전통문을 보낸 시각은 언제였을까?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포격중지를 촉구하는 전통문을 보낸 시각은 당일 오후 3시 50분이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3일) 그런데 작전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그 보도기사에서 3시 25분 상황과 3시 40분 상황 사이에 3시 50분 상황이 끼어있는 것을 보니, 3시 30분을 3시 50분으로 잘못 쓰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인민군에게 포격중지를 긴급히 촉구한 것은, 교전의사를 포기하였다는 뜻이다. 한국군은 인민군의 집중포격에 대항할 수 없었으므로, 포격중지를 긴급히 촉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군은 인민군에게 포격중지를 긴급히 촉구할 만큼 참패를 당한 것이다.

셋째, 포격전이 개시된 시각이 잘못 알려졌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오후 2시 34분에 인민군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개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렇게 발표한 근거는, 연평부대 7중대가 K-9 자주포 사격훈련을 마친 오후 2시 30분으로부터 4분 뒤에 자기들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상부에 보고하였기 때문이다. 인민군 포병부대가 쏜 122mm 로켓탄이 연평부대 7중대 포대를 강타한 시각은 오후 2시 34분이지만, 인민군 포병부대가 맨 처음 연평부대 7중대 포대부터 포격한 것은 아니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발표한 포격전 개시시각을 뒤집는 정보는 옹진군 연평면사무소가 작성한 ‘북한 해안포 연평면 투하 관련 보고서’에 들어있다. 거기에는 “14:30분 북 공격으로 주민대피 발령(대피소별 면직원 1명씩 배치)”라고 쓰여 있는데,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는 “포탄이 떨어지는 등 실전상황을 방불케 해 정확한 시간을 추정할 수 없지만 오후 2시 30분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0년 11월 24일)

연평면사무소가 자기들이 내린 주민대피령 발령시각을 잘못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 주민대피령을 내린 시각은 오후 2시 30분이 분명한데, 주민대피령을 인민군 포병부대의 포격개시시각에 꼭 맞춰 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포격이 개시된 뒤에 재빠르게 움직였어도 약 30초 뒤에 주민대피령을 내렸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다. 위의 보도에 나온 것처럼, 연평면사무소 관계자가 오후 2시 30분 이전에 포격전이 개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것은 그러한 사정을 말해 준다.

연평면사무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가 발표한 시각보다 적어도 4분 일찍 포격전이 개시된 것이다. 1-2분 시차라면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들이 착오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4분 시차가 났으니 착오로 보기 힘들다. 따라서 한국군 합참본부가 인민군 포병부대의 포격개시시각을 4분 뒤로 늦춰 발표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왜 그렇게 하였을까? 아래에서 논하겠지만, 촌각을 다투는 전투상황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전황보고를 뒤늦게 하고 작전명령을 끝내 내리지 못한 것이야말로 한국군의 직접적인 패인이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참패에 대한 자기들의 책임을 되도록 경감해 보려고 개전시각을 4분 늦춰 발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먹통현상은 왜 일어났을까?

한국군은 야전훈련 때마다 기동영상장비를 실은 군용트럭을 훈련현장에 배치해 놓고 훈련장면을 상부에 영상으로 전송한다. 그렇게 하여야 지휘부가 훈련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혹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신속한 지시를 내릴 수 있다. <한국일보> 2010년 11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11월 23일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진행된 대규모 포사격훈련에서도 그렇게 하였다. 이런 정황을 보면, 한국군 연평부대는 무려 4시간 이상 계속한 자기들의 포사격훈련을 한국군 합참본부가 기동영상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중에 기습포격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왜 보고와 명령을 제때에 하지 못했을까?

의문을 풀어낼 단서는, 위에 나온 연평면사무소 보고서에 들어있다. 보고서에는 “14:24분 CCTV 나감”이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포격이 개시되기 6분 전인 오후 2시 24분에 영상감시장비(CCTV)가 갑자기 꺼졌음을 뜻한다.

연평도에 설치된 영상감시장비는 두 종류다. 하나는 연평경찰서가 설치한 방범용 영상감시장비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최전방에 설치한 경계용 영상감시장비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2006년 6월부터 최전방에 영상감시장비를 설치하였다. 연평경찰서가 설치한 방범용 영상감시장비는 유선으로 영상을 전송하는 통상장비이고, 한국군 합참본부가 설치한 경계용 영상감시장비는 무선으로 영상으로 전송하는 첨단장비다.

그런데 경계용 영상감시장비가 오후 2시 24분에 갑자기 꺼졌다. 영상감시장비만 꺼진 것이 아니라, 연평부대 포사격훈련 장면을 촬영, 전송하기 위해 훈련현장에 배치한 기동영상장비도 꺼졌다. (한국일보 2010년 11월 28일) 그것만이 아니라, 2010년 초 연평도와 백령도에 각각 한 대씩 배치한 대포병 탐지레이더(AN/TPQ-37)도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레이더는 (23일) 오전 9시부터 빔(beam)을 방사하며 정상 작동했지만, 기록을 보니 1차 포격 당시 원점식별이 안 돼 있었다.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2010년 11월 26일) 이것은 대포병 탐지레이더의 전파방사기능만 작동하고 대상식별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북한의 1차 포격 때는 대포병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지만 2차 포격 때는 대포병레이더가 작동해 개머리 진지에서 방사포가 날아오고 있음을 탐지했다”고 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5일) 그러나 1차 포격 때 고장 났던 대포병 탐지레이더가 2차 포격이 시작되자 갑자기 정상 작동하였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포격전에서 연평부대의 대포병 탐지레이더는 아무 것도 탐지하지 못한 무용지물이었다. (한겨레 2010년 11월 26일)

그것만이 아니라, 연평부대 K-9 자주포에 장착된 자동화 사격통제장치도 먹통이 되었다. 화재열기로 연평부대 자주포의 전자회로가 마비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방호능력을 갖춘 자주포가 직격탄을 맞은 것도 아닌데 화재열기로 자동화 사격통제장치가 고장 났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자동화 사격통제장치가 먹통이 되었음을 알 턱이 없는 이명박 대통령은 “분당 6발씩 쏜다던 K-9이 왜 1분에 한 발씩밖에 못 쏘느냐?”고 하면서 몹시 안타까워하였는데, 그 질문을 받은 청와대 관계자는 “이론상 처음 3분간은 1분에 6발, 그 이후엔 포신이 뜨거워져 1분에 두 발을 쏠 수 있지만 실제 운용상 한 발밖에 못 쏜다”고 답변하였다. (조선일보 2010년 11월 26일) 그러나 그것은 자동화 사격통제장치가 먹통이 되었음을 숨긴 답변이었다.

왜 연평도 곳곳에서 먹통현상이 한꺼번에 일어났을까? 그 까닭은 인민군이 포격전과 전자전을 동시에 전개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 포병부대가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개시하기 직전, 인민군 전자전 부대가 강력한 방해전파를 연평도로 쏘았던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군 관계자는 인민군이 연평도를 향해 전자기파(EMP) 무기를 썼다고 말했는데(동아일보 2010년 12월 3일), 전자기파 무기는 전자기파 폭탄(electromagnetic pulse bomb)을 뜻하는 것이므로, 방해전파를 쏘았다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연평부대의 K-9 4번포는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으로 자동화 사격통제장치가 먹통이 된 순간에 때마침 격발하였다가 포탄이 포신 안에서 발사되지 않아 포신파열사고를 냈다.

인민군 전자전 부대가 방해전파를 쏘아 연평도의 무선통신망을 차단하였으니, 연평부대 지휘통제실과 방공레이더기지도 먹통이 되었고, 청와대 경내 지하에 있는 위기관리센터와 한국군 2함대사령부에 설치된 해군전술지휘체계(KNTDS)에서는 물론, 한국군 합참본부 지휘통제실, 경기도 성남 청계산에 있는 미국군 전구지휘소(Theater Command Post)인 전술공중해상지상작전센터(TANGO)에 설치된 전술지휘자동화체계에서도 연평도에서 실시간 전송되던 영상전송이 갑자기 중단되었을 것이다.

2010년 11월 30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은 포격전이 있었던 11월 23일 오후에도 국회 예결위에 출석하고 있었는데, “정확한 시간은 기억 못하지만 당시 예결위 답변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보고)쪽지를 받았다. 예하부대에서 급히 상황을 확인한 뒤 보고하다 보니 30분이 걸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30일) 그가 쪽지를 받은 시각은 당일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이 이처럼 포격전이 개시된 오후 2시 30분으로부터 30분이 지나 뒤늦게 전황보고를 받은 까닭은 인민군 전자전 부대가 쏘는 방해전파로 연평도의 무선통신망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인민군 전자전 부대가 방해전파를 쏘면, 전자장비를 내장한 각종 첨단무기들과 각종 무선통신망이 한꺼번에 마비되어 한국군은 전투불능상태에 빠지게 된다. 전자장비를 내장한 무기들 가운데는 수동조작으로 전환하는 무기가 더러 있으나, 전자전 공격을 받은 한국군 연평부대는 자주포의 자동화 사격통제장치를 수동조작으로 전환하려고 허둥지둥하다가 로켓탄 집중포격을 받았다. 자동화 사격통제장치는 수동조작으로 전환하기라도 하지만, 전자전 공격으로 마비된 레이더와 무선통신망은 다른 것으로 교체하지 못한다.

인민군 포병부대는 왜 포탄을 바다로 쏘았을까?

연평도 주민은 “조금씩 거리가 빗나가기는 했지만, 미리 주요건물의 위치를 (북에) 알려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북한군의) 정확한 타격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경찰 관계자는 “간첩이 연평도 내부정보를 북한에 제공해 북한이 연평도 마을 주요시설을 정밀포격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0년 11월 29일) 그러나 그들은 인공위성이 한반도 전역을 촬영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

인민군 포병부대가 적진에 정찰병을 보내 육안측정으로 사격좌표를 작성하는 것은 전사(戰史)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민군 포병부대는 위성사진을 컴퓨터로 정밀분석하여 방향, 거리, 고도를 세밀하게 측정한 3차원 작전도를 완성하였으므로, 포격전에서 그 작전도에 따라 정밀포격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군 합참본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인민군 포병부대가 쏜 포탄 가운데 꽤 여러 발이 연평도 앞바다에 떨어졌다고 한다. 정밀포격을 하였다더니, 어찌된 일일까?

당일 오후 2시 58분에 긴급송고한 <연합뉴스> 제1보는 “연평도 해상에 북 발사 추정 포탄 떨어져”라는 짤막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 보도는 인민군이 연평도 앞바다로 포를 쏘았음을 말해 준다. 왜 바다로 쏘았을까?

2010년 11월 26일 <중앙일보>는 인민군 포병부대가 “공격 초기 20-30발의 포탄을 해상에 떨어뜨린 점은 ‘0점 조준’의 성격이 짙다”고 분석하였다. 영점 사격이란 조준사격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준비사격이다. 당시 연평도 일대에는 초속 4.4m의 강한 북풍이 불었으므로(한국일보 2010년 11월 30일), 인민군 포병부대는 포격을 개시하기 전 영점 사격으로 명중률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인민군 포병부대는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영점 사격까지 실시할 만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포격전을 벌였다. 방해전파를 쏘아 한국군의 ‘눈과 귀’를 멀게 하였으니 그처럼 여유만만하였던 것이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포병부대가 쏜 포탄 가운데 90여 발이 바다에 떨어졌다. 영점 사격으로 30여 발을 바다에 쏘았는데, 나머지 60여 발은 왜 바다에 떨어진 것일까?

인민군 포병부대의 타격목표 가운데 하나는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남쪽 5km 해상에 떠있는 222 해상전진기지다. 그 기지는 가로 58m, 세로 18.5m의 함재정(barge)을 해상기지로 개조하여 고속정 군수지원과 북측 어선 나포작전을 위해 전진배치한 것이다. 해상전진기지에는 병력 200여 명이 승선근무를 하고 있으며(SBS 스페셜 2009년 7월 19일), 170t급 참수리 고속정 두 척이 상시배치되었다. (문화일보 2007년 6월 26일) 인민군 포병부대가 쏜 포탄 60여 발이 날아간 곳이 바로 거기다.

해상전진기지가 격침되었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으니, 인민군 포병부대가 쏜 포탄은 그 기지에 명중하지 않고 바다에 떨어진 것이다. 비행 중에 바람의 영향을 받는 포탄으로 바다에 떠 다니는 이동표적을 맞추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만일 인민군 포병부대가 쏜 포탄이 해상전진기지를 직격하였다면, 한국군 사상자는 엄청나게 늘어났을 것이다.

해병대 연평부대가 쏜 80발은 어디에 떨어졌을까?

해병대 연평부대가 K-9 자주포로 북측을 향해 쏘았던 80발은 어디에 떨어졌을까? 연평부대는 1차 대응사격에서 무도로 50발을 쏘았고, 2차 대응사격에서는 개머리 해안으로 30발을 쏘았다.

2010년 12월 2일 오후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위성사진 두 장을 보여주면서 무도에 있는 해안포 중대본부 부근에 포탄 15발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0년 12월 2일) 나머지 35발은 바다에 떨어진 것이다. 미국 위성영상정보회사 지오아이(Geoeye)가 2010년 11월 25일 상업위성으로 무도를 촬영하여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제공한 위성사진에는 무도 북서쪽에 떨어진 1차 대응사격 포탄 15발 중에 14발이 엉뚱한 곳에 떨어졌고, 한 발만 막사 부근에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포격전이 벌어진 긴박한 상황에서 그 막사 안에 인민군 병사가 있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위성사진에는 무도 해안선을 따라 연결된 교통호는 보이지만, 방사포나 곡사포를 쏘는 야전포좌는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모든 포가 갱도포좌에 들어가 있음을 말해 준다.

2010년 12월 2일 오전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예결심사소위원회에서 개머리 해안의 탄착흔적이 보이는 위성사진을 공개하였다. 위성사진에 보이는 2차 대응포격 탄착흔적은 모두 20발이다. 나머지 10발은 바다에 떨어진 것이다. 미국 위성영상정보회사 디지틀 글로브(Digital Globe)가 2010년 11월 26일에 찍은 위성사진에 보이는 탄착흔적은, 개머리 해안에 떨어진 포탄 20발 가운데 14발의 탄착흔적이 6개 야전포좌 부근에 남아있는데, 한 개도 맞추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논에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개머리 해안에 떨어진 포탄 20발 가운데 나중에 탄착흔적이 추가로 확인된 나머지 6발은 야전포좌에서 더 먼 곳에 떨어졌다.

종합하면, 연평부대가 쏜 포탄 80발 가운데 33발은 엉뚱한 곳에 떨어졌고, 한 발만 막사 부근에 떨어진 것이다. 바다에 떨어진 포탄 45발은 인민군 함정을 겨냥해 쏜 것이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던 포탄이 강한 북풍에 밀려 육지에 이르지 못하고 바다에 추락한 것이다.

미국 위성영상정보회사 ‘지오아이’가 11월 25일에 촬영하여 <자유아시아방송>에 12월 1일 제공한 위성사진을 보면, 개머리 해안 일대의 수많은 건물들 가운데 파괴된 건물은 없다. 그런데도 남측 언론과 일본 언론은 북측 사상자가 더 많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위성사진이 보여준 놀라운 사실은, 교통호와 군용도로가 개머리 해안을 따라 조밀하게 연결되었고, 방사포나 곡사포를 쏘는 직사각형 야전포좌 88개, 방공포를 쏘는 원형 야전포좌 56개, 위장망을 씌운 지대공미사일 발사대 18개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개머리 해안 일대의 144개 야전포좌에 각종 포를 배치하고 연평도를 집중포격하면 섬 전체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

작전명령 기다린 한국군 합참의장

1999년 6월 15일 연평도 앞바다에서 서해교전이 벌어졌을 때, 한국군이 1995년 8월 미국에서 수입하여 2함대사령부와 합참본부 지휘통제실에 설치한 해군전술지휘체계가 작동하고 있었고, 그 덕택에 한국군 합참본부는 실시간 전황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2함대사령부의 해군전술지휘체계는 해군기지들, 해군 전함들, 해병대기지들, 해군작전사령부를 연결하고, 오산의 공군방공통제소(MCRC)는 공군기지들, 각종 작전기들, 방공레이더기지들, 공군사령부를 연결한다. 또한 해군전술지휘체계와 공군방공통제체계는 한국군 합참본부 지휘통제실, 청와대 경내의 위기관리센터, 서울 용산의 주한미군사령부 지휘통제실, 성남 청계산의 전구지휘소와 연결되었으므로, 실시간으로 전투정보를 보고하고 작전명령을 내리는 최첨단 군사정보통신체계가 가동되는 것이다. 미국군이 자랑하는 연락망중심전(Network-Centric Warfare)은 해군전술지휘체계와 공군방공통제체계에서 거미줄처럼 퍼져나간 전자통신망을 통해 수행된다.

그런데 미국군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천문학적인 자금과 최첨단 기술을 총동원하여 2003년에 완공한, 세계연합정보교환체계(CENTRIXS)라고 부르는 연락망중심전 수행체계가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으로 한 순간에 마비될 수 있다는 사실이 11.23 포격전으로 입증되었다. 연락망중심전 수행체계가 마비되는 충격적인 현실에 직면한 순간, 주한미국군사령부, 태평양사령부, 미국군 합참본부는 망연자실하였을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 지휘통제실 내부동향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망연자실한 그들의 모습이 외부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당시 한국군 합참본부 지휘통제실 내부동향은 엿볼 수 있다. <한국일보> 2010년 11월 27일 보도에 나타난 당시 한국군 합참본부 지휘통제실 내부동향은 아래와 같다.

포격전 중에 해병대 연평부대장(대령)은 한민구 합참의장에게 전황을 보고하고 대응포격 여부를 물었다. 그런데 한민구 합참의장은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한국일보 2010년 11월 28일) 한반도의 작전상황을 판단하고 한국군에게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은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이므로, 한민구 합참의장은 전황이 아무리 위급해도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연평부대장에게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통상적인 지시(한국일보 2010년 11월 28일) 이외에 작전명령을 내릴 권한이 한민구 합참의장에게 없는 것이다. 자기 병사들이 집중포격을 받는 데도 합참의장이 작전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미국군사령관의 작전명령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 지구 위에서 더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참담한 현실이 청와대와 한국 군부가 맹종하는 한미동맹의 현주소다.

2차 포격 때도 1차 포격과 마찬가지로 한민구 합참의장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명령을 아직 기다리는 중이었고, 그래서 연평부대장이 재량권을 발휘해 2차 대응사격을 하였다. 한민구 합참의장은 인민군 포병부대가 2차 포격을 가하자 “사정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20발 정도만 쏘라고 지시했다.” (한국일보 2010년 11월 27일) 합참의장은 20발 정도만 쏘라고 지시했으나, 연평부대장은 지시를 따르지 않고 30발을 쏘라고 중대원들에게 명령하였다. 합참의장이 작전명령권을 갖지 못했으니, 대령급 부대장이 내키는 대로 10발을 더 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포격전이 끝날 때까지 한민구 합참의장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명령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고,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끝내 작전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작전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을 받고 갈팡질팡하다가 작전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사실상 패배를 자인한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폭살위협을 가한 인민군

11.23 포격전 직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갈팡질팡하는 꼴은 이러하였다.

첫째, 2010년 11월 23일 포격전 직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11월 24일 오전에 예정된 외신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하였다. (Stars & Stripes 2010년 11월 23일)

둘째, 2010년 11월 24일 주한미국군사령관은 한미연합군 전투준비태세인 ‘데프콘(Defense Readiness Condition)’을 격상하지 않고 ‘진돗개 하나’를 서해 5도 지역에만 발령하라고 한국군 합참본부에게 지시하였다. ‘진돗개 하나’는 전군 비상태세가 아니라 특정지역의 대간첩작전에 발령하는 1급 경계태세다. 또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자기 휘하의 28,000명 미국군 병사들에게 전투준비태세를 명령하지 않고 이전과 다름없는 평시상태를 유지하게 하였다. (<합동통신(AP)> 2010년 11월 24일) 이것은 미국군 지휘부가 교전의사를 포기하였음을 말해 준다.

셋째, 2010년 11월 24일 주한미국군사령관은 공손한 어조로 “정당한 이유가 없는 공격을 중지하고, 정전협정 규정을 충실히 준수해 주기를 북측에게 요청한다”고 말하고, 주한유엔군사령부 명의로 작성한 긴급통지문을 북측에 보내 판문점에서 “정보교환을 시작하고 현 상황을 완화하기 위하여” 북미 장성급 회담을 개최하자고 북측에 제안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부 2010년 11월 24일 보도자료) 적의 공격을 받은 야전사령관이 교전의사를 포기한 채 공격중지를 요청하면서 긴급회담을 제안한 것은, 사실상 패배를 자인한 것이다.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는 주한미국군사령부에 보낸 답신 형식의 통지문에서 “미국은 조성된 사태의 진상을 오도하며 남을 걸고 드는 체질적인 못된 악습을 버려야 한다”고 꾸짖었다. (조선중앙통신 2010년 11월 25일) 이 꾸짖음은 북미 장성급 회담 제안을 거절한다는 뜻이다.

넷째, 2010년 11월 26일 주한미국군사령관은 UH-60 블랙호크(Black Hawk) 전투헬기를 타고 연평도로 날아가 낮 12시 10분 연평부대 연병장에 내렸다. 열패감에 빠진 한국군을 격려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방 시찰을 감행한 것이다. 11월 25일 주한미국군 관계자는, 이튿날 오전 11시에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헬기로 연평도를 방문하고 오후 2시30분에서 3시 사이에 복귀할 것이라는 시찰일정을 남측 언론에 예고하였으므로(연합뉴스 2010년 11월 25일), 인민군 지휘부도 그의 연평도 시찰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연평도에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인민군 지휘부는 그가 탄 헬기가 연평도에 내릴 때부터 연평도를 떠날 때까지 그를 위협하였다. KBS가 당일 오후 4시와 5시에 남측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방영한 <뉴스특보>는 “낮 12시부터 희미한 폭음이 간헐적으로 시작돼 3시쯤에 상당수가 들을 수 있는 폭음이 잇달아 났으나 방사포를 쏜 포성이 아닌 폭음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폭발연기가 섬 상공을 가로지르며 퍼지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까지 내보냈다. 한국군 관계자는 “북한 내륙 개머리 지역에서 6차례 포성이 들렸다. 북한이 모두 20여 발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으나(연합뉴스 2010년 11월 26일), 20여 발을 쏘았다고 하면서 포성이 여섯 차례 들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인민군은 여섯 차례 폭발음을 낸 것이다. 인민군이 연속 폭발음을 낸 것은, 연평도에 나타난 주한미국군사령관을 겨냥한 폭살위협이었다. 그는 연평도 피격현장에서 “우리 유엔군사령부는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며, 더 이상의 공격을 중지할 것을 북측에 요청한다”고 말했는데(합동통신 2010년 11월 25일),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포격전을 조사하겠다는 말은 폭발음에 놀라 내뱉은 헛소리였고, 북측에게 포격중지를 요청한 것은 하루 전에 북측에 보낸 긴급통지문을 되뇌인 것이었다.

연평도 시찰 중 폭살위협을 받은 뒤 서울 용산의 미국군사령부로 돌아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한국군 합참본부에 세 가지 긴급지시를 내렸다. 연평도에서 11월 28일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실시하려던 상륙전 훈련을 취소하라고 지시하였고, 충청남도 만리포에서 실시하려던 상륙전 훈련도 취소하라고 지시하였고, 11월 30일 오전 연평도에서 실시하려던 포사격훈련도 취소하라고 지시하였다. ‘정통한 국방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통일뉴스> 2010년 12월 1일 보도는, 연평도에서 실시하려던 포사격훈련이 “미국의 반대에 의해 취소됐다”고 표현하였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 합참본부에게 취소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항모강습단은 왜 서해에 나타났을까?

주한미국군사령부는 2010년 11월 24일 보도자료에서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가 이끄는 7함대 항모강습단(ACSG)이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해에서 ‘해군준비태세훈련(Naval Readiness Exercise)’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7함대사령부 대변인 앤터니 팰보(Anthony Falvo)는 조지 워싱턴호가 미사일 순양함 카우펜스호(USS Cowpens)와 샤일로호(USS Shiloh), 미사일 구축함 스테덤호(USS Stethem)와 핏처럴드호(USS Fitgerald)와 래슨호(USS Lassen)를 이끌고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해군기지를 떠나 서해로 긴급출동하였다고 밝혔다.

원래 미국 해군 항모강습단은 2003년에 정해진 함대대응계획(Fleet Response Plan)에 따라 출동하는데, 긴급한 정황에서 미국 대통령은 항모강습단의 비상출항(emergency surge)을 명령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23일 밤(한반도 시각은 11월 24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항모강습단을 서해에 출동시키겠다고 말했다. <교토통신> 2010년 11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호 출항시각은 11월 24일 오전 7시 30분이었다.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을 통보하자마자 긴급히 출동하였음을 말해 준다.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은 미국이 북측을 군사적으로 압박한 것처럼 보였으나, 내막을 엿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포격전에서 한국군이 당한 뜻밖의 참패를 수습하기 위해 안절부절하지 못하던 미국군 지휘부는 항모강습작전을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는데, 출동명령이 내린 후 서해로 항진하면서 나흘 동안 항모강습작전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항모강습단은 오바마 대통령의 긴급출동명령에 따라 서해로 떠났으나 항모강습작전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으므로, 평소에 해오던 통상훈련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항모강습단은 항모강습작전을 연습한 것이 아니라 통상훈련을 반복한 것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떠나 서해로 항진하던 조지 워싱턴호 승조원 5,680명은 때마침 미국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Thangksgiving Day)을 맞아 미국의 전통음식인 칠면조 특식을 즐기고 있었다. (Stars & Stripes 2010년 11월 29일) 서해로 항진하던 조지 워싱턴호에 출전 분위기는 없었고 유람선 분위기만 출렁거렸다.

둘째, 7함대 대변인 제프 데이비스(Jeff Davis)는 “훈련은 나흘 동안 진행될 것이나 실탄사격훈련은 계획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합동통신 2010년 11월 29일) 2010년 11월 29일 조지 워싱턴호 함장 댄 클로이드(Dan Cloyd) 해군 준장은 중립국감시위원회(NNSC) 위원 네 사람을 조지 워싱턴호 함상에 초청해 놓고, 그들 앞에서 “이번 작전에서는 실탄사격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또다시 강조하였다. (Stars & Stripes 2010년 11월 30일) 다만 전투기들은 실탄이 아니라 훈련탄을 쏘는 사격훈련을 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30일) 항모강습작전의 핵심은 실탄사격훈련인데, 항모강습단을 서해에 출동시켜 놓고 실탄사격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이례적으로 거듭 밝힌 까닭은, 북측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셋째, 댄 클로이드 함장은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군부인사를 조지 워싱턴호에 승선시켜 해상훈련 전 과정을 참관하게 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30일) 북측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려는 항모강습작전을 연습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해오던 통상훈련을 반복하였기에 다른 나라 군부인사들에게 훈련현장을 공개할 수 있었다.

넷째, 2010년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주한미국대사관은 남측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에게 여행주의보(travel alert)를 발령하였으나, 포격전 직후에는 그것마저 발령하지 않았다. 미8군사령부 대변인 제프 부코우스키(Jeff Buczkowski)는 주한미국군사령관과 미8군사령관이 “위험은 없으며, 현 상황은 정상적이고,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하였다고 밝혔다. (Stars & Stripes 2010년 11월 30일) 이것은 미국이 항모강습단을 서해에 출동시켜놓고서도 북측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평시보다 더 높아지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항모강습작전 연습을 할 수 없게 되는 바람에, 포사격은커녕 총 한 방도 쏘지 않는 항모강습단이 서해에 나타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포격전에서 뜻밖의 참패를 당한 청와대와 한국 군부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한미동맹을 과시할 필요를 느꼈다. 다시 말해서, 항모강습단은 북측을 압박하려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서해에 출동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와 한국 군부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서해를 방문한 것이다.

항모강습단의 서해 방문이 그런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미국군 지휘부는 방문해상을 선택하는 것에서 안전을 우선하였다. 미국군 지휘부는 혹시 인민군이 기습적인 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하지나 않을까 우려한 나머지 서해를 방문한 것이다. 항모강습단이 동해보다 서해가 자기들에게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까닭은, 번잡한 항로와 해로가 뒤엉킨 서해에서 인민군이 미사일 발사훈련을 예고 없이 실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연평도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서해 항로는 하루 평균 288편의 민간 항공기가 오가는 번잡한 항공교통로이며, 비좁은 서해의 해로에도 수많은 민간선박들이 오간다. 그에 비해 동해 상공에 있는 태평양 항로와 캄차카 항로는 남측 항공사들이 하루 평균 여섯 편의 민간항공기만 운항하고, 동해 해로도 서해 해로에 비해 민간선박 운항률이 낮다.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 남부 먼 바다에 머문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항모강습단 서해 방문이 청와대와 한국 군부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임을 파악한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11월 23일에는 포격전 관련 긴급보도를 발표하였으면서도 항모강습단 출동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시해 버렸다. 항모강습단의 서해 방문이 시작된 2010년 11월 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 있는 모란봉 극장에서 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을 관람하였다.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 차수,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 부위원장, 그리고 수많은 정치국 위원들과 후보위원들, 당과 군대의 책임간부들이 공연을 함께 관람하였다. 항모강습단이 방문한 서해에는 기습한파 설한풍이 몰아쳤고, 현대식 설비로 개건된 모란봉 극장에는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연주한 관현악곡 ‘승리의 길’이 울려 퍼졌다. (2010년 12월 6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