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 포격전 정밀분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주한미국군사령관의 7월 28일 지시

서해 분쟁수역에서 한국군과 인민군이 포격전을 주고받은 것이 명백한데도, 한국군 당국은 인민군의 일방적인 ‘포격도발’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였다. 만일 연평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가 인민군을 적대하는 아무런 군사행동도 취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인민군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하였다면, 인민군의 일방적인 ‘포격도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연 딴판이었다. 한국군 당국은 인민군의 포격만 크게 부각시키면서 진실을 왜곡하였다. 서해 분쟁수역에서 일어난 11.23 포격전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아래와 같은 실상이 드러난다.

2010년 11월 24일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북한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제목의 자료가 있다. <미디어스>가 2010년 11월 24일에 보도한 그 자료에 나와 있는 ‘작전경과’라는 소제목으로 작성된 대목에는 2010년 11월 23일 오전 10시 15분부터 오후 2시 34분까지 “我 서북도서 부대가 해상사격훈련 실시 중 敵 포사격으로 중지. 우리 영해에서의 정례적 사격훈련 일환(K-9 고폭탄 등 11종 3,657발)”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이 문장은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가 당일 오전 10시 15분부터 오후 2시 34분까지 4시간 19분 동안 각종 포탄을 약 3,000발이나 쏘았음을 말해 준다. 훈련종료시각으로부터 11분 전에 포격전이 개시되었으므로, 3,657발 중 약 3,000발을 쏘았다고 볼 수 있으니, 명백하게도 대규모 실탄사격훈련이었다.

그런데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북한이 문제 삼은 오늘 연평도 일대에서 진행된 우리 군의 훈련은 호국훈련이 아니라 단순히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사격훈련이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3일)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 발언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진위를 파악하지도 않고 그대로 보도하였다.

그러나 일촉즉발의 무력충돌위기가 감도는 분쟁수역 한 복판에서 무려 4시간 19분 동안이나 각종 포탄 약 3,000발을 쏜 대규모 실탄사격훈련이 ‘호국훈련’과 무관하다는 말은 거짓말로 들린다. 정확하게 말하면, ‘2010 호국훈련’은 11월 22일부터 남측 전역에서 실시되고 있었고, 분쟁수역인 연평도에서 11월 23일에 실시된 대규모 실탄사격훈련이 그 훈련에 포함되었음은 명백하다. 한국군 관계자는 “우리 측의 호국훈련은 예고된 것으로 사격훈련도 서해 남쪽 방향으로 실시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3일)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호국훈련’의 실상부터 파악해야 서해 분쟁수역에서 일어난 11.23 포격전의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호국훈련’을 지휘한다는 사실이다. 한국군 당국이 전혀 언급하지 않고, 남측 언론매체들도 전혀 보도하지 않는 이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면 아래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전부터 실시되어 오던 ‘호국훈련’은 원래 군단급 수준 기동훈련이었는데, 미국 군부가 2008년부터 그 훈련을 3군 합동기동훈련으로 크게 증강하였다. 한국군 소식통이 전한 바에 따르면, 2008년 7월 28일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국군 해병대 사령부를 방문하여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연대급 미 해병부대를 차출, 11월초 한국군이 실시하는 호군훈련에 참가토록 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한국에 상륙작전을 위한 사단급 해병병력이 있다는 것을 북한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는 샤프 사령관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프 사령관은 미국 해병대 1개 연대와 한국 해병대 2대 연대 병력이 참가하는 사단급 규모의 상륙훈련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8년 9월 15일) 이것은 2008년부터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한미연합군 10,000명(사단급) 병력을 동원하는 대규모 상륙강습전 연습을 중심으로 ‘호국훈련’이 크게 증강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한국군 당국은 미국군 해병대가 ‘호국훈련’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당시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다고 한다. 북측을 침공하기 위한 상륙강습전 연습을 사단급 규모로 증강하는 것이 인민군을 너무 자극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군 지휘부가 군사적 결정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고, 한국군은 그들의 지시에 따라야 하였으므로, 상륙강습전 연습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지시한대로 증강, 강행되었다.

‘2009 호국훈련’은 2009년 11월 4일 미국군 해병대와 한국군 해병대 제1사단 2연대 상륙단이 육해공군의 입체적인 지원을 받는 가운데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 해안과 송라면 화진리 해안에서 진행되었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지휘한 대규모 상륙강습전 연습은 해상돌격전과 공중돌격전을 배합한 것이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군 해병대는 상륙강습전 병력 600명, 17,425t급 상륙지원함 덴버호(USS Denver), 16,601t급 상륙지원함 하퍼스 페리호(USS Harpers Ferry), 상륙정, 수륙양용장갑차(ACU), 대형 수송헬기(CH-53E Sea Stallion)를 동원하였고, 한국군 해병대는 상륙강습전 병력 3,500명, 4,300t급 상륙강습함 고준봉함을 비롯한 전함 16척, 기동헬기 및 공격헬기 25대, 수륙양용 돌격장갑차(KAVV) 36대, 전차 6대를 동원하였다. 한미연합해병대는 목표해안으로 해상돌격하여 기습상륙하면서 동시에 기동헬기를 내륙지역으로 전개하는 공중돌격을 감행하였다.

더욱 증강된 ‘2010 호국훈련’

‘2010 호국훈련’은 ‘2009 호국훈련’보다 더 증강되었다. ‘2010 호국훈련’은 2010년 11월 22일부터 8박9일 동안 벌어지는 3군 합동기동훈련이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호국훈련은 합동성 중심의 전구 및 작전사급 작전수행 능력을 제고하고 합동 전투발전 소요를 도출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국방일보 2010년 11월 17일) ‘2010 호국훈련’에는 한국군 병력 70,000여 명, 전차와 장갑차를 비롯한 궤도차량 600여 대, 헬기 90여 대, 함정 60여 척, 군용기 500여 대가 동원되었다. ‘2010 호국훈련’은 “경기도 여주와 이천, 남한강 일대에서 육군의 군단급 쌍방훈련과 서해에서의 함대기동훈련, 한미공군의 연합편대군훈련, 서해안에서의 연합해병상륙훈련을 실시”하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노컷뉴스 2010년 11월 16일) ‘2010 호국훈련’ 일정 중에서 미국군과 한국군 해병대 병력 10,000명이 동원된 상륙강습전 연습은 2010년 11월 27일과 28일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 주변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오마이뉴스 2010년 11월 23일)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상북도 포항시 부근에서 실시하였던 대규모 상륙강습전 연습을 올해부터 충청남도 태안군 만리포 주변에서 실시한 것은 북측을 더욱 자극한 것이다.

“미군도 상륙훈련에 미 해병대 31MEU(상륙기동부대)가, 공군훈련에는 미 7공군이 참가한다”는 <국방일보> 2010년 11월 17일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7공군은 주한미공군을 뜻하는데, 미국군 해병대 31MEU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본 오키나와(冲繩)에 주둔하는 미국군 제31해병원정단(32nd Marine Expeditionary Unit)을 뜻한다. 일본 큐슈(九州) 나가사키(長崎)현 사세보(佐世保)항을 출항기지로 하는 40,000t급 상륙강습함 에쎅스호(USS Essex)가 제31해병원정단의 기함(旗艦)이다. 이 상륙강습함은 해병대 병력 1,800명과 상륙전 헬기 36대를 싣고 시속 44km로 항해한다. 이 상륙강습함에는 시속 74km로 달리는 60t급 공기부양상륙정(Landing Craft Air Cushion)도 실을 수 있다. 2004년 8월 2,000명 병력으로 편성된 제31해병원정단은 상륙강습함들인 에쎅스호, 하퍼스 페리호, 주노호(USS Juneau)를 타고 오키나와를 출발하여 이라크 전선에 투입된 적이 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2010 호국훈련’의 핵심이 미국군 해병대가 한국군 해병대를 참가시킨 가운데 실시하는 증강된 상륙강습전 연습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2010년 11월 23일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가 서해 분쟁수역에서 강행한 대규모 실탄사격훈련은, 미국군 해병대 원정강습단과 주한미공군이 동원된 가운데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직접 지휘한 대규모 실전급 북침작전연습의 일환이었음이 분명하다. 미국군 해병대 원정강습단과 한국군 해병대가 황해남도 해안을 침공하기 위한 상륙강습전을 강행하려면, 그보다 먼저 공격목표지점에 대규모 해상포격을 가해야 하는데, 당일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는 그러한 상륙강습전 포격훈련을 강행하였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연평도 일대는 남북이 각기 자기 관할수역이라고 주장하면서 무력대치상태를 유지하는 일촉즉발의 분쟁수역이다. 그런데 한국군 해병대가 그 분쟁수역 한 복판에서 4시간 19분 동안 각종 포탄 약 3,000발을 쏘면서 황해남도 해안을 침공하기 위한 상륙강습전 포격훈련을 강행한 것이다. 인민군이 그러한 상황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반격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만일 인민군이 서해 분쟁수역에서 4시간 19분 동안 각종 포탄 3,000여 발을 쏘면서 인천을 침공하기 위한 상륙강습전 포격훈련을 강행하였다면, 한국군이 인민군에게 통지문이나 보내놓고 수수방관하였을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0년 11월 26일 오후, 연평도에서 어선을 타고 인천으로 피신한, 연평도에 거주하는 80대 노인은 “이번에 (사격)훈련만 안 했어도 이렇게 안 됐어. 훈련을 해도 좀 동떨어져서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취재기자에게 말했다. (민중의 소리 2010년 11월 27일) 11.23 포격전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곡을 찌른 연평도 촌로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북침작전연습 중에 일어난 포격전

2010년 11월 23일 오전 8시 20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역에 있는 서해지구 한국군 통신운영단은 인민군 전선서부지구사령부가 긴급히 전송한 팩스문건 한 장을 받았다. 그 팩스문건은 한국군이 북측 관할수역으로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통지문이었다. 그러나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지휘하는 상륙강습전 포격훈련을 한국군 합참본부가 마음대로 취소할 권한은 없다. 그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였으나, 인민군 전선서부지구사령부가 보낸 통지문을 무시하고 포격훈련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의 상륙강습전 포격훈련은 오후 2시 25분에 끝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포격훈련이 끝나기 11분 전인 오후 2시 34분 인민군 포병부대는 자기들을 공격목표로 상정하고 상륙강습전 포격훈련을 강행하는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를 향해 포격을 개시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 발표에 따르면, 인민군 포병부대는 오후 2시 34분부터 2시 46분까지 1차 포격에서 150여 발을 쏘았고, 오후 3시 12분부터 3시 29분까지 2차 포격에서 20여 발을 쏘았다. 인민군의 포격전 수행능력이 실제로 북측 외부에 알려진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들의 포격전술에 대해 아래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민군 포병부대는 12분 동안 계속된 1차 포격에서 150여 발을 쏘았다. 1차 포격에서는 분당 평균 12.5발을 쏜 것이다. 또한 인민군 포병부대는 17분 동안 계속된 2차 포격에서 20여 발을 쏘았다. 2차 포격에서는 분당 평균 1.8발을 쏜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1차 포격은 집중사격이었고, 2차 포격은 조준사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인민군 포병부대에 배치된 무기들 가운데 집중사격에 쓰는 무기는 방사포(한국군은 다련장로켓포라고 부름)이고, 조준사격에 쓰는 무기는 곡사포이므로, 그들은 1차 포격에서는 방사포와 곡사포를 쏘았고, 2차 포격에서는 곡사포만 쏘았음을 알 수 있다.

연평도 최북단을 마주보고 있는 곳은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반도다. 인민군 포병전력이 그 지역에 집중 배치되었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개머리반도에 주둔하는 인민군 포병부대는 1개 대대(5개 중대)이며, 20-40문의 각종 포가 배치되었다고 한다. 연평도 최북단에서 개머리반도까지 직선거리는 13km밖에 되지 않는다. 좀 과장된 표현으로는, 돌을 던지면 가닿을 수 있을 만큼 매우 가까운 거리다. 연평도 최북단에 배치된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와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반도에 배치된 인민군 포병부대 사이의 직선거리는 15km다.

인민군이 운용하는 각종 해안포는 해안동굴포대의 차폐문을 열어 놓은 뒤, 포대 바닥에 깔려있는 5m 길이의 궤도 위에서 전방으로 이동하여 분당 6-10발을 쏘고, 다시 동굴포대 안쪽으로 들어간다. 인민군이 운용하는 각종 해안포들 가운데 사거리가 13km가 되는 76.2mm 평사포는 분당 8발을 쏠 수 있고, 사거리가 34km가 되는 130mm 곡사포와 사거리가 54km가 되는 170mm 곡사포는 각각 분당 6-7발을 쏠 수 있다.

인민군 해안동굴포대에 배치된 76.2mm 평사포의 사거리는 13km밖에 되지 않고, 당시 한국군 전함이 연평도와 개머리반도 사이의 좁은 바다에 항해하지 않았으므로, 11.23 포격전에서 인민군 해안포 대대는 76.2mm 평사포를 쏠 필요가 없었다.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와 대치하고 있는 인민군 해안포 대대가 지척에 있는 연평도를 포격하려면, 사거리가 54km나 되는 170mm 곡사포까지 쏠 필요는 없고, 사거리가 34km가 되는 130mm 곡사포를 쏘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인민군 포병부대가 11.23 포격전에 동원한 곡사포는 사거리가 34km인 130mm 곡사포였음을 알 수 있다.

인민군은 11.23 포격전에 130mm 곡사포와 함께 사거리가 24km인 122mm 방사포도 동원하였다. 122mm 방사포는 201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인민군 열병행진에 참가한 4축8륜 차량에 탑재된 무기다. 122mm 방사포는 40련장 발사관에 장착된 로켓탄 40발을 한꺼번에 집중사격할 수 있다. 122mm 로켓탄은 길이 2.87m, 무게 66.3kg, 탄두무게 27kg이다.

남측 언론매체는 인민군이 포격전을 개시하기 직전 개머리반도에 방사포 발사차량 18대를 전진배치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한겨레 2010년 11월 25일), 122mm 방사포 발사차량 18대에 장착된 로켓탄은 모두 720발이나 된다. 그러나 인민군은 1차 포격에서 150여 발만 쏘았고, 그 가운데는 로켓탄과 곡사포탄이 섞여있었으므로, 인민군이 쏜 로켓탄은 발사차량 3대에 실려 있던 120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은 1차 포격에서 122mm 로켓탄 120발을 해병대 연평부대 기지를 향해 쏘았음을 알 수 있다.

122mm 방사포는 사거리가 20.4k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방사포로는 연평도 남부까지 포격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인민군 포병부대는 연평도 북부를 122mm 방사포와 130mm 곡사포로 포격하고, 사거리가 34km인 130mm 곡사포로 연평도 남부를 포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평부대 7중대 병사들의 체험담

당시 포격상황은 언론에 보도된 연평부대 7중대 병사들의 생생한 체험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연평부대 7중대는 K-9 자주포 4문을 동원하여 4.8km 떨어진 서서남방 해상으로 자주포 1문당 60발씩 모두 240발을 쏘는 실탄사격훈련을 하는 중이었는데, 마지막 4번포를 쏘던 중 불발탄이 포신에 끼면서 포신이 파열되는 사고가 생겼다. 포신파열사고로 잠시 포격을 중단한 사이에 갑자기 인민군 포병부대가 쏜 로켓탄 4발이 “휘잉하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7중대를 강타한 로켓탄은 모두 20여 발이었다. (프레시안 2010년 11월 24일) “포에 파편이 튀는 소리가 비 오듯 들렸고 포 안에까지 돌덩이가 튀었다.” 로켓탄 한 발은 1번포 포대를 직격하였고, 다른 한 발은 3번포 포대 외벽을 때렸는데, 1번포와 3번포 뒤에 모아둔 잔여장약에 불이 붙었다.

인민군 포병부대가 쏜 로켓탄 120발 가운데 20발은 해병대 연평부대 뒤편 언덕기슭에서 상륙강습전 포격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던 7중대를 강타했고, 나머지 100발은 해병대 연평부대 곳곳을 강타했다. 한국군 해병대 관계자는 “첫 발은 병사들이 생활하는 내무반에 떨어졌고 해병대 연평부대 주둔지 내 사무실과 창고를 비롯해 훈련장 등이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3일) 탄약고 주변에도 포탄이 떨어졌고(오마이뉴스 2010년 11월 23일), 연평발전소와 군부대 연료창고가 있는 곳에도 포탄이 떨어졌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3일) 해병대관사 신축공사장에도 포탄이 떨어져 그곳에서 일하던 민간인 두 명이 사망하였다. 연평도 주민 송영옥 씨는 11월 23일 오후 <한겨레> 기자와 전화로 통화하면서 “군부대도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높이 5m, 두께 1.5m 정도의 k-9 자주포 포대 콘크리이트 방호시설물이 직격탄을 맞아 외벽에 지름 2m, 깊이 30cm가 되는 큰 구멍이 뚫렸다. 포격훈련 중이던 7중대 병사들이 “급히 진지 내 대피호로 몸을 숨기던 중 엄청난 화염이 등 뒤를 덮쳤다.” 해병대 병사 2명이 사망했고, 5명이 중상을 입었고, 10명이 경상을 입었다. 이처럼 막대한 피해를 본 연평부대는 피격 이후 사흘 동안 언론취재를 전면 통제하면서 파괴된 잔해를 치우는 수밖에 없었다.

해병대 연평부대 7중대가 운용하는 K-9 자주포 6대 가운데, 3번포는 간신히 불을 껐지만, 바로 옆에 직격탄을 맞은 1번포는 불을 끄지 못하였다. 1번포와 3번포의 전자회로가 마비되어 자동사격통제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 4번포는 불발탄에 의한 포신 파열로 포격전 직전에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고, 1번포는 근접피격으로 발생한 화재로 작동불능상태에 빠져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연평부대 7중대 포대 주변이 집중포격을 받아 불바다가 되었으므로, 7중대 병사들은 모두 대피호 안으로 긴급히 피신하여 목숨을 건지는 수밖에 없었다.

연평부대 7중대는 인민군이 1차 포격에서 150여 발을 쏘고 오후 2시 46분에 잠시 포격을 중지하자 그 틈에 대피호에서 나와 오후 2시 47분부터 59분까지 12분 동안, 2번포, 5번포, 6번포로 1차 대응포격을 개시하였다. 작동이 가능한 K-9 자주포 3문으로 50발을 쏜 것이다.

K-6 자주포는 사거리가 40km가 되고, 표적을 확인한 뒤 30초 안에 포격을 개시할 수 있고, 분당 6발을 쏠 수 있다. 자주포 3문이 포격을 준비하는 데 1분이 걸렸다고 하면, 11분 동안 66발을 쏘았어야 정상인데 50발밖에 쏘지 못했다.

1차 포격에서 인민군 포병부대는 개머리반도에 전진배치한 방사포 발사차량에서 로켓탄 120발과 해안동굴포대에서 곡사포탄 30발을 쏘았는데, 연평부대 7중대의 자주포 3문은 인민군 방사포 발사차량이 있는 개머리반도로 50발을 쏜 것이 아니라, 연평도와 개머리반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 무도로만 50발을 모두 쏘았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자동사격통제장치가 가동되는 2번포, 5번포, 6번포의 사격좌표가 무도를 향해 미리 입력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보도하였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당시 연평부대 현장지휘관은 포격전 작전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았고, 피격으로 당황한 가운데 즉흥적으로 응사하였기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포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민군 포병부대의 특이한 포격전술

인민군 포병부대는 1차 포격전에서 중구경 방사포나 대구경 방사포를 쏘지 않고 122mm 소구경 방사포만 쏘았다. 인민군이 작전배치한 방사포는 122mm 소구경 방사포, 240mm 중구경 방사포, 333mm 및 355mm 대구경 방사포다. 인민군 포병부대는 각종 방사포들 가운데서 이처럼 소구경 방사포를 골라서 쏜 것만이 아니라, 사거리 60km가 되는 170mm 자행포(남측에서는 자주포라 부름)도 쏘지 않았다. 그것만이 아니라, 인민군은 추가배치한 122mm 방사포 발사차량 18대에서 720발을 집중사격할 수 있었는데도 발사차량 3대에서 120발만 쏘았다.

만일 인민군 포병부대가 중구경 방사포나 대구경 방사포를 쏘았다면,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는 회복하기 힘든 치명적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또한 만일 인민군 포병부대가 170mm 자행포를 쏘았더라면, 해병대 연평부대는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또한 만일 인민군 포병부대가 방사포 720발을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를 향해 모두 쏘았다면, 그 부대가 주둔하는 기지는 초토화되고, 부대원들은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인민군 4군단 26사단 49포병연대 3대대 참모장으로 있다가 1997년 9월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남한 당시 인민군 군관 차성주 소좌가 전한 바에 따르면, 서해지구에 배치된 인민군 4군단 예하 포병전력은 “섬의 특정지역을 강타하는 것이 아니라 섬 전체를 하나의 목표물로 정해 포탄으로 뒤덮어 버리는” 가공할 파괴력을 가졌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0년 4월 12일)

이러한 정황을 보면, 11.23 포격전에서 인민군의 포병전력이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 11.23 포격전에서 인민군 포병부대가 연평도 전체를 포탄으로 뒤덮어 버릴 포병전력을 동원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한 무기를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한 까닭은, 북측이 자기 관할수역으로 여기는 분쟁수역을 향해 한국군이 포격훈련을 강행한 것에 대한 무력응징이었지, 한미연합군과 전면전을 벌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민군 포병부대의 특이한 포격전술은 포병전력을 제한적으로 운용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1차 포격에서 122mm 방사포 120발만 쏘지 않고, 130mm 곡사포 30발도 쏘았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 122mm 방사포는 정밀조준을 하지 않고 집중사격을 하는 무기인데 비해, 130mm 곡사포는 조준사격을 하는 무기다. 인민군이 130mm 곡사포로 조준사격을 하였던 까닭은, 주택가 곳곳에 있는 해병대 관련시설을 공격할 때 조준사격을 해야 주택가 오폭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포격전 직후 촬영된 피격현장사진을 보면, 연평도 북부에 있는 연평부대 기지와 그 주변에서는 로켓탄 잔해들이 발견되었고, 연평도 남부에 있는 주택가에서는 곡사포탄 잔해들이 발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5일 현장사진)

연평부대 탄약고는 연평보건소 근처에 있는데, 인민군이 그 탄약고를 겨냥하여 쏜 130mm 곡사포는 탄약고에서 벗어나 연평보건소를 맞췄다. 10여 년 전까지 한국군 보안대가 사용했으나 지금은 상점(연평마트)이 들어있는 건물도 인민군이 쏜 130mm 곡사포로 파괴되었다. 인민군은 그 건물이 아직도 한국군 보안대가 사용하는 줄로 알았기 때문에 그곳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위성항법장치(GPS)로 유도되는 정밀유도폭탄으로 쏜 것이 아니라, 곡사포를 쏘았는데도 이처럼 목표물을 타격한 것을 보면, 인민군 포병부대가 연마한 포격술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0년 11월 24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함께 군용헬기를 타고 연평도를 찾은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은 “군부대와 민간지역의 거리가 8백 미터밖에 안 돼 군을 타깃으로 삼아도 민간지역도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현장에 가보니 그런 상황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비교적 적었던 것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주택 20채, 창고 2채가 피폭으로 파괴되었거나 화재로 소실되었고, 민간인 3명은 폭발음에 고막이 손상되고, 얼굴에 열상을 입거나 산불연기를 들이마셔 중독된 정도의 경미한 부상만 입었다. (노컷뉴스 2010년 11월 24일)

현장을 방문한 민주당 대변인은 연평도 거주민 부상자가 거의 없는 것을 ‘기적’이라 여겼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인민군 포병부대의 치밀한 작전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 포병부대는 민간인 인명피해를 피하기 위해 1차 포격 당시 북부지역 연평부대를 먼저 방사포로 집중사격한 뒤, 남부지역 주택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해병대 관련시설을 향해 곡사포로 조준사격을 하였기 때문에, 연평도 거주민들이 대피호로 피신할 수 있었다. 11.23 포격전 직후인 오후 3시 30분에 찍은 위성사진을 분석한 한국해양연구원 안유환 박사는 “연평도를 크게 3등분했을 때 북쪽에서 3분의 1지점에서 처음 연기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중의 소리 2010년 11월 24일) 이것은 인민군이 연평도 북부에 있는 해병대 연평부대를 먼저 방사포로 포격한 뒤에 잠시 시차를 두고, 주택가가 있는 연평도 남부의 해병대 관련시설을 곡사포로 포격하였음을 말해 준다. 초단위로 움직이는 포격전에서 그처럼 상당한 포격시차를 둔 까닭은, 민간인들에게 대피할 시간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인민군 포병부대는 왜 26분 동안 포격을 멈추었을까?

인민군 포병부대가 1차 포격을 멈춘 오후 2시 46분으로부터 1분이 지난 2시 47분에 한국군 연평부대는 자주포 3문을 동원하여 2시 59분까지 50여 발을 북측으로 쏘았다. 자동사격통제장치가 고장 난 3번포를 수동식으로 전환한 시각은 오후 3시 6분이었다. 3시 12분부터 재개된 2차 대응사격에서는 자동사격장치가 작동되는 자주포 3문과 수동사격으로 전환한 자주포 1문이 30발을 쏘았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6시 30분 이홍기 합참본부 작전본부장은 국방부 청사에서 언론설명회를 갖고 “우리가 도발원점에 대한 집중사격을 가했으므로 북측에도 상당한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중의 소리 2010년 11월 23일) 그가 말한 ‘도발원점’은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남측 언론매체들은 연평부대가 자주포를 동원하여 무도에 있는 해안포 진지와 개머리반도에 있는 포병기지를 타격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무도에 있는 해안포 진지는 해안동굴포대를 배치한 지하요새이므로, 한국군 해병대 연평부대가 그곳을 향해 자주포 50여 발을 쏘았어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인민군 해안포 진지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성사진 판독이나 원격관찰로 확인되었다. 이를테면, 2010년 11월 24일 한국해양연구원이 11.23 포격전 직전인 오후 2시 30분과 포격전 직후인 오후 3시 30분에 각각 찍은 위성사진 두 장을 공개하였는데, 포격전 직후 개머리반도 상공은 평시와 다르지 않았으나 연평도 상공은 연기로 뒤덮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민중의 소리 2010년 11월 24일) 2010년 11월 26일 오전 남측 텔레비전방송 KBS 취재기자는 연평도 최북단에서 망원경을 이용해 무도에 있는 해안포 진지를 살펴보았는데, “북측 해안포는 포신을 연평도 쪽으로 계속 열려 있었고, 포신 상태도 멀쩡한 상태였다. 동굴 곳곳에 배치된 북측 포신도 똑같이 멀쩡했다. 특히 해안포 근처로 북한군이 한가롭게 돌아다니거나 떼를 지어 어디론가 천천히 향하는 등 긴박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하였다. 또한 남측 텔레비전방송 YTN 취재기자도 망원경을 이용해 무도에 있는 해안포 진지를 살펴보았더니 “산등성이 곳곳이 불에 탄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었으나, “북측 해안포의 직접적인 피해상황은 잡히지 않았다”고 하였다. (뷰스앤뉴스 2010년 11월 26일) 이러한 보도내용을 종합해 보면, 11.23 포격전에서 해병대 연평부대만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인민군 포병부대는 1차 포격을 마친 오후 2시 46분으로부터 26분이 지난 오후 3시 12분에 2차 포격을 개시하였다. 촌각을 다투는 포격전에서 인민군 포병부대는 왜 26분 동안이나 포격을 멈추었을까? 그것은 개머리반도에 전진배치한 122mm 방사포를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한국군의 대응포격을 피해야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22mm 방사포 발사차량은 최고 시속 75km로 달릴 수 있으므로, 발사현장을 수습하고 10분만 이동해도 포격원점으로부터 10km 정도 회피기동을 할 수 있다. 그 발사차량들은 회피기동을 한 뒤에 로켓포 40발씩 다시 장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1차 대응포격에서 무도에 있는 해안포 진지를 포격하였던 해병대 연평부대는 2차 대응포격에서는 개머리반도를 포격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가 전한 바에 따르면, 해병대 연평부대는 2차 대응포격에서 개머리반도에 K-9 자주포 30발을 쏘았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25일)

그러나 연평부대의 2차 대응포격은 개머리반도에 전진배치된 인민군 방사포 발사차량들이 이미 회피기동을 하여 아무 것도 없는 빈터를 포격원점으로 오인하고 포격한 것이다. 2010년 11월 28일 <조선중앙통신사>가 발표한 논평은 “사건 당시 적측의 포탄들은 우리의 포진지에서 멀리 떨어진 민가 주변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날아와 떨어졌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연평부대의 2차 대응포격이 빈터를 포격원점으로 오인하고 포격하였음을 말해 준다.

위의 포격전 실상을 살펴보면, 한국군과 인민군의 전력격차가 너무 크게 보인다. 한국군은 인민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처럼 한국군과 인민군의 전력격차가 크게 벌어질수록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군 지휘부는 주한미국군과 7함대 항모강습단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2010년 11월 29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