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추진하는 자력갱생 경수로 건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녕변에 나타난 미국인

해마다 11월이면 평안북도 녕변군도 이 나라 강산의 여느 고장처럼 늦가을 정취가 흠뻑 물든다. 2010년 11월 2일 늦은 오후,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그 고장에 낯선 미국인이 나타났다. 한미경제연구소(Korea Economic Institute) 잭 프릿처드(Charles L. Pritchard) 소장이었다. 1982년 워싱턴에 설립된 한미경제연구소는 서울에 있는 정부출연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재정지원을 받는 기관인데, 프릿처드 소장은 2010년 11월 2일부터 6일까지 평안북도 녕변군에 있는 핵시설단지를 방문하였다.

남측 언론매체들이 ‘영변핵시설’이라고 부르는 통에 그 말이 정착되었지만, 녕변핵시설단지라고 해야 정확하다. 북측의 고유지명인 녕변을 ‘영변’으로 바꿔놓은 것부터 잘못되었고, 핵시설이라는 용어도 잘못된 것이다. 그곳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수많은 핵시설들이 집결된 거대한 단지(complex)이지, 시설(facility)이 아니다. 위성사진을 보면, 녕변원자력연구소, IRT-2000 연구용 원자로, 5메가와트 실험용 원자로, 50메가와트 원자력발전소 건설장, 방사화학실험소, 핵연료가공공장, 사용후 핵물질 저장소, 그 밖에도 쓰임새를 알 수 없는 큰 건물들이 드넓은 구룡강 유역에 줄줄이 들어서 있다.

북미관계 대화통로가 꽉 막힌 이 때, 북측은 왜 프릿처드 소장을 초청하였을까? 프릿처드 소장의 경력에서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 10월 23일 오전 7시 미국 정부 전용기 한 대가 평양의 국제항공관문 순안공항에 착륙하였다. 그 전용기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그를 수행한 미국 정부 관리들이 타고 있었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그 일행은 공항에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직행하여 참배한 뒤 평양시 대성구역 임흥동에 있는 국빈급 영빈관 백화원초대소에 여장을 풀었다.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은 그 날 오후 일정을 바꿔 전격적으로 백화원초대소에 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았는데, 그 역사적인 회담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으로 배석했던 사람이 프릿처드 소장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은 언론에 자주 나오지 않지만, 그 직책은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외교정책 결정을 직접 보좌하고 그의 아시아 외교활동을 조절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는다.

2001년 1월 20일 백악관의 43번째 주인이 된 조지 부쉬(George W. Bush)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 당시 국무부 차관보를 2002년 10월 3일부터 5일까지 평양에 특사로 보내, 우라늄농축 의혹을 제기하면서 클린턴 정부의 대북관계 정상화 추진과정을 파탄시켰는데, 그 때 켈리 차관보와 동행한 국무부 대북협상 담당 특사가 프릿처드 소장이었다.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이 평양방문을 추진할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으로 실무를 맡았던 프릿처드 소장은 그로부터 불과 2년 뒤에 부쉬 정부의 대북관계 파탄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그의 관직 경력은, 그가 미국의 대북관계 정상화 준비사업이 뒤집혀 대북관계가 파탄으로 빠져들던 반전의 소용돌이를 현장에서 목격한, 유일한 미국 관리였음을 말해 준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 추진되고 있었던 북미 관계정상화 준비사업을 뒤집어 버린 부쉬 정부의 대북정책에 홀로 반대의견을 제기하며 갈등을 빚던 그는 ‘네오콘’ 관리들로부터 끈질긴 사임 압력을 받은 끝에 2003년 8월 25일 결국 국무부 대북협상 담당 특사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프릿처드 소장은 비록 관직에서 물러났어도 당시 숨가쁘게 요동치던 북미관계 변화현장에서 아주 떠나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04년 1월 6일부터 10일까지 방북한 미국 전문가 대표단에 들어있었다. 당시 북측은 그 대표단을 녕변핵시설단지로 안내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봉인이 뜯겨진 채 텅 비어있는 폐연료봉 냉각수조(cooling pool)와 관련시설을 둘러보도록 하였다. 폐연료봉 8,000개를 방사화학실험소로 옮겨놓고 재처리하고 있음을 육안으로 확인한 답사현장에서, 놀랍게도 북측은 대표단에게 무기급 핵물질을 실물로 보여주었다. 대표단 성원들 앞에 나타난 핵억제력의 실물은, 붉은 색 금속상자와 목재상자 안에 이중으로 보관한 두꺼운 유리병 두 개에 담겨 있었다. 두께가 얇은 깔때기처럼 만들어진 금속성 플루토늄 200g이 담긴 밀봉 유리병과 플루토늄 옥살산 분말(plutonium oxlate powder) 150g이 담긴 밀봉 유리병은 따스한 방사선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대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간 부쉬 정부의 8년 임기가 끝나고 마침내 새 정부가 출범하였으나, 애초 기대했던 것과 어긋나게, 새 정부의 대북정책도 기존 파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대통령이 이끄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출범과 함께 몰아친 북측의 대화공세와 압박공세를 받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09년 1월 20일 출범한 오바마 정부가 그 동안 대북관계에서 얼마나 갈팡질팡해 왔는지 그 줄거리를 잠시 짚어보면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2009년 10월 10일부터 16일까지 7함대 항모강습단이 서해 격렬비열도 근해까지 북상하여 북침작전연습을 벌이며 북측을 심히 자극하더니, 2009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는 언제 그러했느냐는 듯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오바마 대통령 친서를 들고 평양을 방문하여 국면전환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10년 3월 9일부터 18일까지 강행한 ‘키 리졸브’ 북침작전연습에서 제11항모강습단, 제9항모강습단, 제5항모강습단, 제7원정강습단을 총동원하여 북측과 중국을 극도로 자극하였고, 천안함 사태가 일어난 뒤 7월에는 ‘불굴의 의지’ 북침작전연습을 강행하고, 8월에는 이른바 ‘맞춤형 대북금융제재’를 재개할 것처럼 부산을 떨면서 ‘을지 프리덤 가디언’ 북침작전연습을 강행하여 계속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처럼 북미관계가 전환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에서 북측이 잭 프릿처드 소장을 초청하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프릿처드 소장은 2009년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미국 대외관계협의회(CFR) 한반도 정책 실무단을 이끌고 방북하였는데,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뒤, 이번에는 북측이 그를 단독으로 초청하였다.

그는 무엇을 보고 무슨 말을 들었을까?

프릿처드 소장은 녕변에서 무엇을 보고 무슨 말을 들었을까? 그가 언론에 밝힌 몇 가지 정보를 읽어보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파이낸셜 뉴스> 2010년 1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프릿처드 소장은 녕변지역에 있는 새로운 초대소(guest house)에서 묵었다. 북측은 1년 만에 다시 방북한 그를 평양 북쪽 103km 떨어진 곳에 있는 녕변핵시설단지 부근에 새로 지은 초대소에 머물게 하였다. 이것은 북측이 프릿처드 소장을 초청한 목적이 녕변핵시설단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음을 말해 준다. 프릿처드 소장은 이전에 녕변핵시설단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북측은 왜 그곳을 다시 보여주려고 하였을까?

2010년 11월 10일 서울 도렴동에 있는 외교통상부 청사를 찾은 프릿처드 소장은 6자회담 남측 수석대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방북결과를 설명하고 오찬을 나누었는데, 그 자리에 배석한 외교소식통이 프릿처드 소장에게서 듣고 언론에 전해준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교소식통이 전한 말에 따르면, 프릿처드 소장은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건물 내부에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건물 외부만 둘러보았는데, 단지에서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고 하면서, 공사 중인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용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은, 골조공사가 마무리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그런데 골조공사가 마무리단계에 들어선 그 건물이 무엇을 위해 짓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왜냐하면 북측이 그를 초청한 목적이 녕변핵시설단지에서 진행되는 건축공사를 보여주기 위함이었고, 그가 방북한 목적도 그 건축공사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궁금증을 풀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프릿처드 소장이 북측으로부터 초청을 받기 직전인 2010년 10월 4일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인공위성 영상정보 회사 디지틀 글로브(Digital Globe)가 2010년 9월 29일에 상업용 인공위성으로 녕변핵시설단지를 공중촬영한 위성사진을 보도하였다.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위성사진은 두 장인데,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인 위성사진 다섯 장은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 데이빗 올브라이트(David Albright) 소장과 폴 브랜넌(Paul Brannan) 연구원이 2010년 9월 30일에 작성한 보고서 ‘북코리아는 파괴된 냉각탑 인근에서 무슨 건축공사를 하는 것일까? 감시할 만하다(What is North Korea building in the area of the destroyed cooling tower? It bears watching)’에 나와있다. 그 보고서에 들어있는 위성사진 다섯 장을 보면, 북측이 2008년 6월 북미협상 진전에 따라 폭파한 냉각탑 주변에 굴착장비를 비롯한 대형 건설장비, 기계, 화물차들이 모여있고, 냉각탑 잔해가 말끔히 치워지고, 거기서 가까운 곳에 직사각형 건물 두 채가 신축 중임을 알 수 있다. 올브라이트 소장과 브랜넌 연구원은 위의 글에서 위성사진만 보고서는 그 건축공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확장하기 위한 건축공사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한 바 있다.

녕변핵시설단지에 관한 정보에 밝은 프릿처드 소장도 당연히 위의 건축공사 관련정보를 방북 전에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외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 공사현장을 직접 가보았으면서도 무엇을 위해 건물을 짓는지 알아보지 않았다 하니,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그 건축공사에 관련된 정보를 고의로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프릿처드 소장의 발언에 쏠렸던 의심이 걷힌 때는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0년 11월 13일이었다. 그 날, 평양을 떠나 베이징에 도착한 식프릿 헥커(Sigfried S. Hecker) 소장이 <교도통신> 기자에게 전해준 말이 언론에 보도되어 의문이 풀렸다. 헥커 박사는 1986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의 핵무기 연구기관인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소장을 지냈고, 지금은 스탠퍼드 대학교 국제안보협력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Security and Cooperation) 공동소장이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 중국정치학과 존 루이스(John W. Lewis) 명예교수와 함께 2010년 11월 9일부터 13일까지 북측을 방문하였다. 이것은 북측이 프릿처드 소장의 방북일정 사흘 뒤에 그 두 사람을 연속으로 초청하였음을 말해 준다.

헥커 소장이 베이징에서 기자에게 전해준 놀라운 정보는, 발전용량이 25-30메가와트가 되는 실험용 경수로 한 기가 녕변핵시설단지에 건설되고 있다는 말을 북측 당국자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프릿처드 소장의 말과 헥커 소장의 말을 종합해 보면, 프릿처드 소장이 녕변핵시설단지에서 목격한, 골조공사가 마무리단계에 들어선 공사현장은 헥커 소장이 말한 실험용 경수로 건설 공사현장이었음이 분명하다.

북측은 프릿처드 소장에게 경수로 건설 공사현장을 보여주었으나, 헥커 소장과 루이스 교수에게는 그 공사현장을 보여주지 않고 설명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경수로 건설이 북미관계에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인지 직감한 프릿처드 소장은 경수로 건설 공사현장을 직접 보고 북측 관계자들로부터 건설공사에 관한 설명을 들었으면서도 그 민감한 정보를 언론에 알려주는 것을 꺼린 것으로 보인다.

초고속으로 추진되는 북측의 경수로 건설

북측은 실험용 경수로 건설공사를 언제부터 시작한 것일까? 경수로 건설 착공 시점에 관련하여 세 가지 정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2009년 4월 14일 유엔안보리가 북측이 4월 5일에 쏘아올린 인공위성 은하 2호 발사를 비난하는 의장 성명을 발표하자, 북측은 9시간 만에 유엔안보리 의장 성명을 배격하는 외무성 성명을 발표하였고, 녕변핵시설단지에 머물던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들과 미국의 핵기술자들을 전원 국외로 추방하였다.

둘째, 과학국제안보연구소가 공개한, 미국의 인공위성 영상정보회사 디지틀 글로브가 2009년 5월 26일에 공중촬영한 녕변핵시설단지 위성사진에서는 경수로 건설공사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셋째, 2009년 6월 13일 북측 외무성 성명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874호를 배격하는 성명에서 “자체의 경수로 건설이 결정”되었음을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들과 미국의 핵기술자들이 녕변핵시설단지에 머물던 때에는 북측이 경수로 건설공사를 시작하지 않았고, 2009년 5월 26일에 찍은 위성사진에 건설공사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았고, 6월 13일 외무성 성명이 경수로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음을 밝힌 것으로 봐서, 북측이 경수로 건설공사를 시작한 때는 2009년 7월 초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북측은 왜 경수로 건설에 착공하였을까? 이 중요한 문제를 파악하려면, 북측이 2009년에 경수로 건설에 관해 언급한 세 가지 문서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측이 2009년 4월 5일 인공위성 은하 2호를 발사하자, 유엔안보리는 4월 14일에 위성발사를 비난하는 의장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에 대응하여 북측 외무성이 즉각 발표한 배격성명은 “우리의 주체적인 핵동력공업구조를 완비하기 위하여 자체의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둘째, 2009년 6월 13일 북측 외무성 성명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874호를 배격하면서 “우라니움 농축작업에 착수한다. 자체의 경수로 건설이 결정된 데 따라 핵연료 보장을 위한 우라니움농축기술 개발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시험단계에 들어섰다”고 발표하였다. 이 성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9년 6월 초에 경수로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음을 말해 준다.

성명에 단 두 줄로 적혀있는 짧은 문장은 엄청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엄청난 정치적 의미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양자회담을 회피하기 위해 끈질기게 붙들고 있던 6자회담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수로 건설 결정으로 막을 내리고, 북미관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북측이 경수로 건설에 착공한 이후 북미관계의 변화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예측은 현재로서는 힘들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수로 건설 결정이 북미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끌어간 대전환의 기점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셋째, 2009년 9월 4일 북측은 유엔주재 상임대표부 신선호 특명전권대사의 이름으로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라니움농축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결속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결속단계에 들어섰다는 표현은 우라늄농축기술 개발을 완료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정보를 종합하면, 북측이 4월 중순에 경수로 건설을 검토하고, 6월 초에 경수로를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6월 중순에 우라늄농축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7월 초에 경수로 건설에 착공하고, 8월 말에 우라늄농축기술 개발을 완료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수로 건설을 검토한 때로부터 우라늄농축기술을 개발하기까지 불과 4개월 반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 2009년 9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콜럼비아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조엘 위트(Joel S. Witt) 선임연구원은 그 방송과의 대담에서 북측이 “이르면 5년 안에 우라늄농축사업에 상당히 진전을 이뤄 본격적인 단계에 이를 수도 있다”고 우려하면서, 북측은 “이미 상당량의 육불화우라늄(UF6) 가스를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했고, UF6가스 생산에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화학공정을 알고 있는 데다 막대한 양의 우라늄을 갖고 있는 점이 이 같은 우려를 증폭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우려 섞인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북측은 우라늄농축사업을 초고속으로 진척시켜 4개월 반만에 기술개발을 모두 끝내 버렸다. 북측이 우라늄농축기술을 개발한 것은 경수로 핵연료를 자력으로 생산,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측이 아무리 ‘속도전’에 능하다 해도, 그처럼 초고속으로 우라늄농축기술을 개발한 것은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다. 그 ‘기적’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받은 충격은 컸다. 7함대 항모강습단이 2009년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종래의 관례를 깨고 예정되지 않은 북침작전연습을 사상 처음으로 서해에서 전격 강행한 것은, 북측의 ‘기적’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격렬하게 반발한 행동이었다. 언론매체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지만, 북측은 경수로 건설을 초고속으로 추진하고, 그에 놀란 미국은 항모강습단 북침작전연습으로 격렬하게 반발하는 불꽃 튀는 북미 대결구도가 또 다시 형성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적의 비결’은 이러하였다

북측이 그처럼 초고속으로 기술개발을 진척시킨 ‘기적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에 대해 말해 주는 다섯 가지 정보가 있다.

첫째, 북측의 천연우라늄 매장량은 이제까지 탐사된 것만 해도 440만t이므로 거의 무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Nautilus Institute) 피터 헤이즈(Peter Hayes) 소장이 발표한 글 ‘북코리아의 유라늄 수출: 야단법석 떨기(North Korea's Uranium Exports: Much Ado About Something)’에 따르면, 1998년 현재 북측의 천연우라늄 연간 생산능력은 2,000t 정도인데, 같은 시기 미국의 천연우라늄 연간 생산능력이 1,810t이고, 우즈베키스탄의 천연우라늄 연간 생산능력이 1,926t이었다. 이것은 북측이 세계 최강의 천연우라늄 생산능력을 이미 1990년대에 보유하였음을 말해 준다. 먼 훗날 화석 에너지자원이 고갈될 위기가 오면, 통일된 우리나라는 천연우라늄 생산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을 석권할지 모른다.

둘째, 식프릿 헥커 소장은 2006년 11월 15일에 발표한 ‘북코리아 핵프로그램 보고서(Report on North Korean Nuclear Program)’에서 북측이 “연구용 우라늄농축 능력(research-scale uranium enrichment effort)”을 가졌다고 지적한 바 있고, 2009년 5월 12일에 발표한 글 ‘북코리아의 핵재개 위험(The Risks of North Korea’s Nuclear Restart)’에서는 북측이 “우라늄농축 연구능력(uranium enrichment research effort)”을 가졌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연합뉴스> 2010년 2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헥커 소장은 2010년 2월 13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물리학회 토론회에서 자신의 방북경험을 털어놓으면서 북측이 “수 십 년 간에 걸쳐 우라늄농축을 실험해 왔다”고 말한 바 있다. 헥커 소장이 말한 대로, 북측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우라늄농축을 연구하고 실험해 왔으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수로 건설 착공을 명령하자마자 우라늄농축 기술개발을 초고속으로 진척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우라늄농축 기술개발에서 첫 번째 관문은 육불화우라늄(UF6)을 만드는 것이다. 천연우라늄을 질산에 녹인 뒤 가열하면 우라늄과 산소가 결합한, 세칭 ‘노란 떡(yellow cake)’이라 부르는 분말(U3O8)이 생성되는데, 그 분말이 변환공정을 거치면 우라늄에 불소 원자 여섯 개가 붙어있는 화학물질로 된다. 그것이 섭씨 56.5도에서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육불화우라늄이다.

북측은 육불화우라늄 생산하는 기술을 가졌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핵연료가공공장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그 공장은 사불화우라늄(UF4)을 생산하는 곳인데, 사불화우라늄을 육불화우라늄으로 변환하는 기술은 간단하다. 이것은 북측이 이미 오래 전에 육불화우라늄 생산기술을 보유하였음을 말해준다.

넷째, 우라늄농축 기술개발에서 두 번째 관문은 가스원심분리기(gas centrifuge)를 만드는 것이다. 육불화우라늄을 원통형 가스원심분리기에 넣고 분당 40,000회 이상 고속회전하면 지구 인력보다 수만 배나 강한 원심력이 발생하여 기체 밀도가 중심부에는 희박해지고 바깥쪽으로 압착되면서 우라늄-235와 우라늄-238이 서로 분리된다. 분리추출한 우라늄-235를 3-5% 수준으로 저농축하면 경수로 핵연료가 되고, 90% 이상 고농축하면 무기급 핵물질이 된다.

가스원심분리기 제조과정에서는 정교한 설계능력과 정밀가공능력이 기술적 난제로 제기된다. 이러한 기술적 난제를 풀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는 컴퓨터수치제어(computer numerical control, CNC)라고 부르는 첨단기계공업기술에 들어있다. 2009년 8월 11일 <로동신문>에 실린 ‘첨단을 돌파하라’는 제목의 ‘정론’은 북측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존 ‘닫긴형 CNC 기술’을 뛰어넘어 ‘우리 식의 CNC 기술’을 완성하였음을 밝혔는데, 이것은 북측이 독자적으로 고성능 컴퓨터수치제어기술을 개발하였음을 말해 준다. 컴퓨터수치제어 분야에서 그처럼 고도로 발달된 기술을 보유한 북측이 가스원심분리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또한 가스원심분리기를 만들려면, 분당 40,000회 이상의 초고속 회전에 견딜 고강도 알루미늄관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과학국제안보연구소 데이빗 올브라이트 소장은 2010년 3월에 출판한 자신의 책 ‘확산 위험(Peddling Peril)’에서 북측이 2002년에 러시아에서 고강도 알루미늄관 150t을 수입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북측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고강도 알루미늄관은 미사일 부품으로도 쓸 수도 있고, 가스원심분리기 부품으로도 쓸 수 있는 데, 미국은 그 고강도 알루미늄관으로 가스원심분리기 2,700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사일과 인공위성을 자체 기술로 만들어내는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북측이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생산하지 못해 러시아에서 수입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다섯째, 2009년 9월 22일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Ali Akbar Salehi) 이란 원자력기구 대표가 차세대 가스원심분리기 10기를 개발하였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첨단기술부문에서 이란보다 훨씬 앞선 북측이 ‘우리 식 가스원심분리기’를 오래 전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측이 가스원심분리기도 만들지 못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밀한 설계가 요구되는 경수로 건설에 착공할 수는 없다.

가스원심분리기 값은 기당 약 20만 달러이고, 가스원심분리기는 크기가 작아 300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 1,000기를 설치할 수 있는데, 북측은 가스원심분리기 100기 정도를 설치한 실험공장(pilot plant)을 가동해 오다가, 가스원심분리기 3,000기 정도를 설치한 지하공장을 건설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경수로 건설공정을 그처럼 초고속으로 진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리(VOA)> 2010년 10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과학국제안보연구소 데이빗 올브라이트 소장과 폴 브래넌 연구원은 2010년 10월 8일에 발표한 보고서 ‘재고조사: 북코리아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Taking Stock: North Korea’s Uranium Enrichment Program)’에서 북측의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이 실험단계를 넘어 최소 500기에서 최대 1,000기 정도의 가스원심분리기를 확보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가스원심분리기를 설치할 공장을 건설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북측은 자력갱생 경수로를 건설할 수 있을까?

여러 종류의 원자로 가운데 경수로(light water reactor)는 다른 원자로에 비해 건설하기 쉽고, 건설경비도 적게 들고, 안전도도 높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전력생산을 위해 가장 널리 쓰인다. 항공모함이나 핵추진 잠수함에도 소형 경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경수로는 가압경수로(pressurized water reactor), 비등경수로(boiling water reactor), 초임계경수로(supercritical water reactor)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경수로 제작기술은 1950년대에 미국과 옛 소련에서 각각 개발되었다. 가압경수로 원천기술을 보유한 세계 3대 원전강국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다. 후발주자들인 일본, 독일, 중국, 남측 등은 미국의 경수로 설계기술을 도입하여 일부 성능을 개량한 경수로를 만들었다.

북측은 경수로 설계기술을 자력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경수로 설계기술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 2월 9일 북측과 러시아는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조인하였고, 그 해 7월 19일부터 20일까지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V. Putin)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옛 소련과 러시아를 통틀어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북러 공동선언이 채택되었고, 2001년 8월 4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북러 모스크바 선언이 채택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공식 방문하기 석 달 전 북측과 러시아는 중요한 합의 두 건을 채택하였는데, <조선중앙통신> 2001년 4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고위대표단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철 당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4월 27일 세르게이 이바노프(Sergei Ivanov) 러시아 국방장관과 회담을 진행하고 군사부문협력 합의서에 조인하였고, 마하일 드미트리예프(Mikhail Dmitriyev) 러시아 국방차관, 일리야 클레바노프(Ilya Mclevanov) 산업과학기술부 장관과 회담을 진행하고 군사기술협력 합의서에 조인하였다.

<러시아의 소리(VOR)> 방송 2002년 3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모스크바를 방문 중이던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일리야 클레바노프 산업과학기술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북측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문제를 러시아와의 과학기술협력사업으로 추진하자고 제의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함경남도 신포에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건설하는 경수로 건설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북측은 별도로 러시아에게 경수로 건설문제를 제안한 것이다. 이것은 북측이 미국이 제공하려는 경수로에 대해 불신하면서, 러시아의 경수로 설계기술을 참고하여 ‘우리 식 경수로’ 설계기술을 개발하려는 의사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북측은 러시아의 경수로 설계기술을 참고할 수 있었을까? 북측이 경수로 건설문제를 러시아에게 제안하였던 2002년 3월 이후, 북측과 러시아가 경수로 개발문제를 협의하였다는 정보는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설계 없는 착공은 있을 수 없으므로, 북측이 2009년 7월 초에 경수로 건설에 착공한 것은 이미 경수로 설계기술을 확보하였음을 말해 준다. 이것은 북측이 2002년 이후 경수로 설계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왔음을 뜻한다.

<조선신보> 2009년 11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주체적인 핵동력공업의 완비”를 위해 “국가적 대책의 하나”로 경수로 건설의 “준비를 다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사는 북측의 기계공업 부문 관계자들이 “우라늄농축 기술이 개발되기만 하면 경수로 설비를 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면서, “압력기의 설계와 방사능에 대한 방폐, 밀폐구역에서 설비동작의 정밀도 보장 등 경수로와 관련된 기술적 지표들에 대한 타산을 근거로 국산화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것은 북측의 기계공업기술이 경수로를 설계, 시공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

북측이 우라늄농축 기술을 확보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위에서 논한 바 있는데, 경수로 건설에 요구되는 설계기술과 시공기술까지 확보하였으니 자력갱생 경수로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녕변핵시설단지에서 자력갱생 경수로가 건설되는 기간에 북미관계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2010년 11월 15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