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모강습단 서해 출동은 왜 취소되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연기가 아니라 취소다

2010년 10월 25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방부 청사에서 국방부 대변인실 실장 데이브 레이펀(Dave Lapan) 대령이 기자들에게 7함대 항모강습단이 2010년 10월 말 서해에서 실시하려던 해상훈련을 미국과 남측이 일정에 합의하지 못해 연기하였다고 하면서, “이번 훈련은 북측에 전언(傳言)하기 위해 예정된 것인데, 중국은 공해에서 실시되는 이런 종류의 훈련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실 실장이 그런 사실을 기자들에게 밝히기 하루 전인 10월 24일 <연합뉴스>는 남측 정부 고위소식통의 말을 인용보도하였다. 그 고위소식통은 “이 달 말로 검토됐던 연합 항모강습단 훈련이 당분간 없을 것이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참가하는 훈련은 연내에 실시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난 9월 27일부터 이 달 1일까지 서해 상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했기 때문에 이번 달에 다시 대규모 훈련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상 제약이 있다. 당분간 동서해상에서의 연합훈련은 실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 인용한 두 가지 보도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주목하는 것은, 미국 군부가 ‘연합훈련’이라는 이름으로, 7함대 항모강습단을 동원하여 서해에서 강행하려던 북침작전연습이 연기된 것이 아니라 취소되었다는 점이다. 한국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7월 28일 보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군의 원래 계획은 2010년 연말까지 매달 한 차례 이상 10여 차례 북침작전연습을 강행하려는 것이었다. 항모강습단이 서해에 출동하는 북침작전연습은 애초에 2010년 9월 5일부터 7일까지 실시하기로 예정된 바 있었는데, 태풍 ‘말로’호가 북상한다는 핑계로 한 차례 연기하였고, 추석 연휴를 마친 뒤 9월 말에 실시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왔다가 10월 말로 또 연기하였는데, 이번에 아예 취소하고 말았다. “당분간 동서해상에서 연합훈련이 실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남측 정부 고위소식통의 말은, 연기가 아니라 취소되었음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국방부 대변인실 실장은 기자들에게 미국군이 항모강습단 출동일정을 한국군과 합의하지 못해서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을 연기한 것처럼 둘러댔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왜냐하면 항모강습단 출동일정은 미국군 합참본부와 태평양사령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에 한국군 합참본부에게 통보해 주는 것이지, 한국군 합참본부와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은, 미국군 합참본부와 태평양사령부가 서해 훈련에 항모강습단을 참가시킨다는 방침을 남측 정부에게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음을 보도한 <아사히신붕> 2010년 8월 8일부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군 합참본부와 태평양사령부가 마치 한국군 합참본부와 상의해서 그 일정을 결정하는 것인 양 기자들에게 말한 미국 국방부 대변인실 실장의 발언은 거짓말이다.

2010년 8월 5일 미국 국방부 제프 모렐(Geoff Morrell) 대변인은 정례언론설명회에서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서해에서 훈련할 것”이고, 항공모함이 참가하는 서해 훈련은 “앞으로 몇 달 동안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한 <연합뉴스> 2010년 8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2010년 8월 9일 미국군 장병들과의 대화에서 마이클 멀린(Michael G. Mullen) 미국군 합참의장은 중국이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에 대해 반발하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는 (중국이) 확장해 놓은 영해에 대한 어떤 견해에도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처럼 공해를 항상 지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지난해 10월에도 항공모함이 서해에서 작전하였고, 또 다시 거기에서 작전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것은 미국군 합참본부가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계획을 이미 2010년 8월 이전에 확정해 두었음을 말해 준다.

미국군 합참본부와 태평양사령부가 이처럼 8월 이전에 확정해 두었던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계획을 취소하고, 미국 국방부 대변인실 실장이 기자들 앞에서 그 취소사유를 어설프게 둘러댄 것을 보면, 그들이 언론에게 차마 밝히지 못할 취소사유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언론에 밝히지 못한 취소사유는 무엇일까?

퇴세를 만회해 보려는 미국군의 반격

친미성향 언론매체들이 쏟아내는 엉터리 보도만 읽으면, 인민군이 미국군과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인민군이 미국군과 맞서는 대결상황은, 북측의 표현을 빌리면, 반제군사전선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자기의 우세한 무력을 동원하여 미국군의 기를 꺾어놓으려는 인민군의 치열한 기싸움이 그 전선에서 벌어진다. 기싸움에서 지는 쪽은 전쟁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시기가 닥쳐와도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전투다운 전투를 해보지도 못하고 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기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전쟁 승리의 지름길이다.

2009년에 벌어진 첨단무력을 동원한 기싸움에서 인민군은 ‘은하 2호’를 발사하고,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여 승세를 굳혔고, 인민군의 끝장공세에 밀려 연전연패한 미국군은 어떻게 해서든지 퇴세를 만회해 보려고 별렀다. 미국군 합참의장의 태도에서 퇴세를 만회해 보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조선일보> 2010년 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은 2009년 10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제31차 한미군사위원회(MCM) 회의에서 이상의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북측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자”고 ‘제안’하였고, 그 뒤에도 미국군 고위관계자들이 잇따라 공식, 비공식 경로로 남측 국방부와 합참본부에게 북측 급변사태에 대비한 연합훈련을 실시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제안’은, 미국군 합참본부와 태평양사령부가 퇴세를 만회하기 위한 대규모 북침작전연습을 이미 2009년 10월 말부터 추진하였음을 말해 준다. 그 작전기획안에 들어있는 핵심내용이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이다.

퇴세를 만회해 보려는 미국군의 반격은 2010년 3월 9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키 리졸브(Key Resolve)’라는 북침작전연습으로 시작되었다. 7함대 소속 제5항모강습단이 일본 요코스카(橫須賀)에서 비상대기한 가운데, 3함대 소속 제11항모강습단이 동중국해에서 동해로 돌진하여 선제타격전 연습을 벌이고, 3함대 소속 제9항모강습단은 북태평양에서 동중국해로 돌진하여 ‘대만방어전’ 연습을 벌이고, 7함대 소속 제7원정강습단이 사세보(佐世保)와 오키나와(沖繩)에서 경상북도 포항으로 출동하여 상륙공격전 연습을 벌인 것이다.

미국군 합참본부와 태평양사령부는 천안함 사태를 빌미로 삼아 또 다시 대규모 북침작전연습을 강행하였다. 2010년 7월 25일부터 28일까지 ‘불굴의 의지(Invincible Spirit)’라고 부르는 북침작전연습을 동해에서 강행한 것이다. 당시 동해 해상에는 항모강습단이 출동하였고, 한반도 상공으로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Raptor)가 출격하였다.

미국군 합참본부와 태평양사령부는 ‘불굴의 의지’가 끝난 때로부터 19일이 지난 2010년 8월 16일부터 26일까지 ‘을지 프리덤 가디언(Ulchi Freedom Guardian)’이라고 부르는 북침작전연습을 또 다시 강행하였다. 그 북침작전연습에서 중요한 부분은, 미국 공군이 2010년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 동안 실시한 ‘센터늘 포커스(Sentinel Focus) 10B’라고 부르는 북침공중작전연습이다. 이처럼 3월 ‘키 리졸브’→7월 ‘불굴의 의지’→8월 ‘을지 프리덤 가디언’으로 이어진 미국군의 대규모 반격공세는 자못 격렬하였다.

계속된 기싸움, 또 다시 연패한 미국군

인민군은 미국군의 대규모 반격공세에 어떤 전술로 대응하였을까? 미국군이 ‘불굴의 의지’라는 북침작전연습을 벌이고 있을 때, 인민군 진영에서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미국군이 북침작전연습을 실시할 때마다 인민군 총참모부가 내린 전군 특별경계태세 발령에 따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였던 인민군은, 미국군이 2010년 7월 25일부터 ‘불굴의 의지’를 강행하는 데도 가만히 있었다. <연합뉴스> 2010년 7월 22일 보도는 “전방지역과 동해 상에서 북한군의 특이한 동향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는 한국군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이처럼 인민군의 대응작전을 우려한 미국군에게 기괴한 느낌마저 안겨준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위급 군지휘관들을 대동하고 교예공연과 음악공연을 연속적으로 관람하였다. 이것은 인민군이 미국군의 북침작전연습을 한낱 ‘불장난 소동’ 정도로 깔아뭉개였음을 말해 준 것이다.

미국군이 ‘을지 프리덤 가디언’ 속에 은폐한, ‘센터늘 포커스 10B’라고 부르는 북침공중작전연습을 벌였을 때는 또 어떠했을까? 인민군은 2010년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위성항법체계 교란장치를 서해 연안에서 가동하여 여러 시간 동안 전파교신을 차단하였다. ‘북방한계선(NLL)’에 인접한 작은 섬 말도에서부터 충청남도 태안군 해안에 있는 안흥을 거쳐 전라남도 흑산군도에 속한 홍도에 이르기까지 348km를 잇는 서해 연안 전역에서 전파교신이 간헐적으로 중단되는 바람에 ‘센터늘 포커스 10B’는 완전히 망쳐버렸다.

인민군의 대응전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민군은 201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대규모 열병행진에서 세계 최강으로 평가할 만한 ‘주체식 요격미사일 종합체’를 처음 공개함으로써, 미국군의 각종 전투기, 폭격기, 정찰기, 무인기,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을 모조리 요격할 수 있는, 러시아군의 S-400에 필적하는 막강한 방공력을 과시하였다.

인민군이 그처럼 막강한 위성항법체계 교란장치와 요격미사일 종합체를 작전배치한 것은, 미국군의 전략거점을 기습공격할 강력한 ‘창’인 미사일전력과 더불어, 미국군의 공습을 공중격파할 강력한 ‘방패’로 무장하였음을 말해 준다. 인민군의 2009년 끝장공세에 밀린 퇴세를 만회해 보려고 2010년에 반격에 나섰던 미국군은 인민군의 ‘창’과 ‘방패’ 앞에서 기가 꺾이고 말았다. 기싸움에서 또 패한 것이다.

인민군과의 기싸움에서 패한 미국군의 모습은, 그들이 2010년 10월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실시한, ‘맥스 썬더(Max Thunder)’라고 부르는 항공전역훈련에서 드러났다. 친미성향 언론매체들은 ‘맥스 썬더’에서 미국군과 한국군이 공중전과 전술폭격을 맹렬히 연습하였다는 식으로 과장보도하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연 딴판이다. 미국군은 2008년 6월 16일부터 20일까지 실시한 ‘맥스 썬더’에 미국 공군 소속 전투기, 폭격기, 전략폭격기, 공중조기경보관제기, 공중급유기 등 60여 대를 총동원하였던 것에 비해, 올해 10월에 실시한 ‘맥스 썬더’에는 미국 공군 F-16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20여 대만 동원되었고, 그나마 20여 대 가운데는 가상적기 역할을 전담하는 미국 공군 제354비행전투단 제18대대 소속 전투기들이 다수 포함되었으므로 실제로 미국군이 공중전 연습과 전술폭격 연습에 동원한 전투기는 몇 대 되지 않았다. 또한 2008년 ‘맥스 썬더’에서는 전라북도 군산 공군기지를 출격기지로 사용하였던 것에 비해, 올해 10월 ‘맥스 썬더’에서는 전라남도 광주 공군기지를 출격기지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올해 ‘맥스 썬더’의 작전연습규모가 크게 줄었고, 작전연습공간도 남쪽으로 약 100km 밀려났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민군과의 기싸움에서 연전연패한 미국군은,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계획을 결국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부주석이 언급한 ‘정론’

미국 국방부 대변인실 실장이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계획을 취소하였음을 언론에 전하였던 2010년 10월 25일은 60년 전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이 미국군과 맞붙은 첫 전투에서 이긴 날이다. <신화통신>이 그 날 평양발로 보도한 기사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보도사진이 한 장 실렸다. 그 보도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궈보슝(郭伯雄) 상장(上將)을 비롯한 고위군사대표단 성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당시 궈보슝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 참전 60주년’을 맞아 평양을 방문하는 중이었다. 그 사진에는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인민군 총참모장인 리영호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도 보인다.

같은 날인 2010년 10월 25일 중국 <신화통신> 인터넷 영문판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들과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반갑게 악수하는 보도사진을 실었다. 그 노인들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전쟁 참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중국인민지원군 출신 노병들이다. 기념행사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쉬차이허우(徐才厚) 상장을 비롯하여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도 참석하였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 위임에 의하여 연설하였다. 연설에서 그는 “60년 전 항미원조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서 싸운 위대하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하면서, “중국과 조선의 인민과 군대가 단결한 전투력으로 위대한 승리를, 세계 평화와 인류의 진보를 추구하는 길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0년 10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60년 전에 일어난 전쟁은 제국주의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것이었다”고 하면서 “중국 인민은 시종 중조 양국 인민과 군대가 흘린 피로써 맺어진 위대한 우정을 잊어본 적이 없으며, 조선 정부와 인민의 관심 또한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 10월 25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전쟁 참전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은 연설에서 “항미원조전쟁은 정의를 수호하고 패권주의에 대항한 영웅적 위업”이었다고 말했다. 2000년 10월 25일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의 연설과 2010년 10월 25일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연설은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첫째,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미국을 패권주의로 규정한 것에 비해,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미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6.25 전쟁을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하였다.

둘째,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조선전선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의 공적’을 칭송하는 데 강조점을 둔 것에 비해,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중국인민지원군의 공적’을 칭송하면서 ‘중국과 조선의 혈맹관계’를 확인하는 데 강조점을 두었다. 이것은 중국의 대북관계와 대미관계가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졌음을 말해 준다.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연설에서 미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6.25 전쟁을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한 것은 자칫 미국과 외교갈등을 빚을 수도 있는 발언이다. 그 발언이 실수발언이 아니라는 점은, 2010년 10월 28일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발언을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지적한 것에서 확인되었다. 북중관계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그 흐름을 짚어보면, 마자오쉬 대변인이 언급한 중국 정부의 ‘정론’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6.25 전쟁 이후 북중관계를 악화시킨 것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에서 진행된 ‘문화대혁명’의 파장이었다.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린 1978년 12월 중국에서 ‘개혁파’가 집권하여 사상해방, 체제개혁, 문호개방을 추진하자, 북측과 중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북중 동맹관계는 명목만 유지하게 되었다. 1992년 8월 24일 중국이 남측과 수교하자 북중관계는 더 멀어졌고, 북측과 중국은 더 이상 ‘혈맹’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정상적인 국가관계’라고 하였다. 북측이 1990년대 중반부터 ‘고난의 행군’이라는 시련기를 거치고 있었을 때도 중국은 소극적 지원에 머물렀다. 북측과 미국이 ‘핵문제’를 놓고 정면대결을 벌이던 1993년부터 2000년대 말까지 10여 년 동안에도 중국은 북측과 미국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던 중국이 미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북측과의 ‘혈맹’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실로 획기적인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대북관계에서 그처럼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중국 국가부주석의 연설내용에 대한 확대해석이 아니라, 최근에 와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긴밀해진 북중관계의 전반적 동향을 반영한 분석이다. 이를테면, 중국공산당은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저우융캉(周永康)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단장으로 하고, 쑨정차이(孫政才) 지린(吉林)성 서기, 천시(陳希) 랴오닝(遙寧)성 부서기, 두위신(杜宇新) 헤이룽장(黑龍江)성 부서기 등으로 구성된 축하사절단을 2010년 10월 9일 북측에 보냈고, 조선로동당은 2010년 10월 19일 역사상 처음으로 북측의 시당, 도당 책임비서 11명 전원으로 구성된 조선로동당 친선대표단을 중국에 보냈다. 또한 그보다 앞서 2010년 8월 25일부터 9월 2일까지 중국인민해방군 선양(瀋陽)군부 사령관 장요우샤(張又俠) 중장을 단장으로 한 선양군부 대표단이 북측을 방문하였고, 2010년 10월 14일부터 19일까지 변인선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조선인민군 친선방문단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새로운 형태의 반제동맹이 등장하다

주목하는 것은, 북중관계에서 그러한 획기적 전환이 왜 일어났는가 하는 원인이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두 가지 주된 원인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중국의 인방인 북측이 단독으로 미국과 맞서 싸울 강력한 ‘창’과 ‘방패’로 무장한 핵보유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을 중국은 알고 있다. 그런 북측과 동맹을 맺는 것은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북측과 중국이 6.25 전쟁 시기에 맺은 동맹은, 중국 정부의 ‘정론’에 나오는 어법대로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조선을 지원한” 동맹이었지만,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오늘 두 나라가 동맹을 맺은 것은, 중국이 북측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핵보유 군사강국으로 등장한 북측의 지원을 받는 것이다. 북중 동맹이 1966년 이후 44년 만에 복원되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변화된 정세에 맞게 새로운 형태로 맺어졌다고 표현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동방의 두 핵보유 군사강국이 맺은 동맹은, 미국군 항모강습단의 서해 출동을 저지시키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둘째, 중국과 미국은 2009년 10월부터 군사부문에서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미국군 합참본부와 태평양사령부가 2009년 10월 10일 7함대 항모강습단을 역사상 처음으로 서해에 출동시켰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중국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중국이 항모강습단 서해 출동에서 충격을 받은 까닭은 이렇다.

항모강습단 출동은 대규모 정찰작전을 동반한다. 항공모함은 몸집이 너무 커서 적국의 공격목표가 되기 쉬우므로, 적진을 향해 출동할 때 위성, 공중, 해상, 수중에서 적진을 정밀감시하는 4차원 정찰작전이 필수적이다.

인민군은 지난 60년 동안 동해에 출몰하는 항모강습단의 4차원 정찰작전에 맞서기 위해 미국군 위성정찰을 따돌리는 치밀한 대응전술과 미국군 공중정찰을 격퇴하는 공격전술을 개발하였지만, 중국인민해방군은 미국군 공중정찰에 맞선 대응전술을 운용해 왔으나 인민군처럼 치밀하고 격렬한 대응전술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를테면, 2001년 4월 1일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 남동쪽 104km 상공에 접근한 미국 해군 항공정찰대 소속 장거리 정찰기(EP-3 Orion)와 중국 해군 항공병단사령부 소속 전투기(F-8)가 조종실수로 공중출동하여, 중국 전투기는 바다에 추락하고 미국군 정찰기는 하이난다오 링수이(陵水) 공군기지에 불시착하였는데, 이 사건은 중국이 미국군 공중정찰에 얼마나 허술하게 대처했는지를 보여 준 것이다. 만일 미국군 정찰기가 동해에 나타나면, 인민군 전투기가 즉각 대응출격하여 그 정찰기를 강제착륙시키거나 격추한다. 그런데 오키나와 카데나(嘉手納) 공군기지를 이륙한 미국군 정찰기는 약 2,000km 떨어진 하이난다오 동남쪽 상공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7함대 항모강습단이 서해에 출동하면서 4차원 정찰작전을 벌이면, 중국인민해방군 기동상황이 그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10년 여름 미국군 항모강습단의 서해 출동계획이 언론에 보도되자, 북측보다 중국이 더 강하게 반발하면서 실탄사격훈련과 해상합동훈련을 강행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항공모함 탑재기의 작전반경이 740km이고 탑재기가 발사하는 공대지 미사일 사거리가 130km이므로, 중국은 본토에서 약 1,000km 밖에 일본 큐슈(九州)-대만-베트남으로 이어지는 제1도련선(島鍊線)을 그어놓았고, 중국인민해방군이 항공모함을 격침하겠다고 벼르며 개발사업 막바지에 박차를 가하는 극초음속 지대함 미사일 DF-21D의 사거리가 2,000km 이상이므로, 중국은 본토에서 약 2,000km 밖에 일본 중부 앞바다-필리핀해로 이어지는 제2도련선을 그어놓았다. 최근 중국은 미국 태평양사령부 전력을 제1도련선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해군력 강화에 부쩍 힘쓰고 있다. 중국이 되찾으려는 자국 영토 대만이 그 제1도련선 안쪽에 있기 때문이고, 또한 일본과 심각한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자국 영토 댜오위다오(釣魚島)가 그 선 안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법의 침입자’가 나타나 중국의 도련선을 무너뜨리려는 공격준비태세를 취하였다. 미국은 중국의 제2도련선 외곽에 인접한 괌(Guam)에서 140억 달러가 들어가는 방대한 군사전략기지를 건설하는 중이다. 미국 공군은 이미 2009년에 최신형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3개 비행대대(36대)를 괌에 배치하였고, 2010년 9월 초에는 항속거리가 16,000km나 되는 최첨단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Global Hawk)를 괌에 배치하였다. 중국인민해방군이 미국군의 그런 공격준비태세에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런 정황을 보면, 도련선에 배치된 중국인민해방군과 서태평양에 배치된 미국군이 장차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미국의 서태평양 배치 군사력과 충돌할 것에 대비하기 위해 북측과 반제동맹을 맺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이 북측과 반제동맹을 맺은 것은 북측-중국 대 미국-일본-남측이 대치하는 동아시아 냉전구도를 형성한 것이 아니다. 북측과 중국의 시각에서 보면, 반제동맹은 미국의 공세를 막아내는 방어전선이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질서를 타격하는 공격전선이다. 북중 반제동맹이 대미 공격전선으로 되는 까닭은, 중국과 미국이 도련선에서 벌이는 군사대결보다 북측과 미국이 군사분계선에서 벌이는 군사대결이 훨씬 더 첨예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맞서 사생결단의 대결을 벌이는 북측이 북중 반제동맹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인민군의 반제군사전선이 북중 반제동맹의 대미공세를 주도하고 있음을 말해준 사례는 아래와 같다.

북중 반제동맹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2010년 10월 26일 워싱턴에 머물던 중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연설에 관한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워싱턴에 있는 ‘코리아전쟁 참전 기념비’를 급히 찾아가 ‘남침설’을 주장하면서 미국군의 대북침공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목청을 높였다. 즉각 서울로 돌아간 그는 10월 29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임당리 가칠봉 해발 1,242m 정상에 있는 한국군 초소를 방문하였다. 가칠봉 초소는 인민군 초소로부터 68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최전방 초소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시간 뒤인 오후 5시 26분께 인민군은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 있는 한국군 초소를 향해 14.5mm 기관총 두 발을 조준사격하였다. 기관총탄 두 발은 한국군 초소 하단부에 명중하였다. 인민군이 조준사격을 가한 마현리 초소는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방문한 가칠봉 초소에서 동쪽으로 약 43km 떨어진 곳에 있다. 비록 인민군이 관련정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려 몇 시간 시차가 났지만, 인민군의 조준사격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초소방문을 겨냥한 위협사격이었음이 명백하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초소방문을 직접 위협할 만큼 인민군의 반제군사전선이 공세적이라면, 항모강습단을 서해에 출동시키려다가 인민군의 강력한 대응전술에 연패하는 바람에 미국 해군 235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출동일정을 취소할 만큼 미국군의 북침작전연습은 수세적이다. 인민군의 반제군사전선이 주도하는 북중 반제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급변시킬 요인으로 등장하였다. (2010년 11월 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