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은 왜 넉 달만에 다시 열렸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0년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 동북지방을 비공식 순방하고, 후 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동북지방 순방에 관해 말이 되지 않는 억측을 기사로 써내어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놀라운 시선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정상회담 개최를 바라보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5월 3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방문하고 넉 달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하였다는 사실에 뭇사람들의 놀라운 시선이 집중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넉 달만에 다시 만나 정상회담을 진행한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수도 베이징에서 833km나 떨어진 지린(吉林)성 창춘(長春)까지 달려갔다는 사실에 뭇사람들의 놀라운 시선이 집중되었다. 중국 국가주석이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만나기 위해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도시에 달려간 것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2010년 7월 29일 창춘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이처럼 북측과 중국의 현대사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특별하였다.

이번 정상회담이 그처럼 특별한 정상회담이었다는 사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나 중대한 문제를 상의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상의한 중대한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 어떤 의제가 올랐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주는 의미는 크다.

뭇사람들이 더욱 놀란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직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하던 날, 중국 동북지방 순방길에 올랐다는 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미국 전직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중국 국가주석의 창춘 행차에 연관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시간 배열에 나타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동북지방 순방을 통해 미국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전하였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문가들조차 상상하기 힘들 만큼 절묘한 대외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미국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하였다. 중국 동북지방 순방이라는 대외활동을 통해 미국에게 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의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변을 찾으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정상회담 의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에서 나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하였지만, 창춘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요청하여 열린 것이다. 넉 달 전 베이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였던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는 넉 달만에 다시 상의해야 할 중대한 의제가 없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상의한 중대한 의제는 전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남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북측의 후계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한 마디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북측에서 수령의 후계자를 추대하는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 국가원수를 교체하는 문제와 차원이 다르다. 북측의 후계문제는 북측에서 말하는 ‘조선혁명의 운명’을 좌우할 최고의 정치문제이자 최상의 역사적 과업이다. 대업 중의 대업인 후계문제를 후계자를 공식 추대하기 전에 다른 나라와 상의하는 것은 북측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다. 이른바 후계문제 상의설은,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는 저열한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중 경제협력방침을 상의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중국이 동북지방에서 북측 항구를 빌려 동해로 진출하는 이른바 차항출해(借港出海)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북측이 두만강 하류지역과 라진선봉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것이 맞물려 있는 조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동북지방을 순방하였으니 그렇게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9년 10월 4일부터 6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만나 대중 경제협력방침을 이미 합의하였고, 2010년 5월 5일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그 방침을 재확인한 바 있다. <신화통신> 2010년 5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합의한 신압록강대교 건설은 양국 우호협력의 새로운 상징입니다. 호혜공영의 원칙 아래 조선은 중국 기업의 대북 투자를 환영하고, 양국 간 실무협력 수준을 제고하기를 희망합니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북측과 중국은 2010년 7월 29일 평양에서 경제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현재 두 나라의 경제협력사업은 착실히 추진되는 중이다.

북측과 중국의 경제협력방침이 이미 확정되었을 뿐 아니라 관련 협정까지 체결되었으므로, 앞으로 해결할 과제는 경제협력 추진과정에서 제기되는 실무문제들이다. 경제협력 추진과정에서 제기되는 각종 실무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나라는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춘 정상회담에서 제기한 의제는 경제협력문제가 아니었고, 후계문제는 더욱 아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춘 정상회담에서 제기한 중대한 의제가 무엇인지 알아보려면, 아래와 같은 정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이 넉 달만에 다시 열린 것은 넉 달 전에 열렸던 정상회담에서 정한 합의사항을 더욱 심화발전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춘 정상회담의 의제는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상호협력방침 가운데 들어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인민일보> 2010년 5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다섯 가지 건의를 제출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건의에 “완전한 찬동을 표시했다”고 한다.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합의한 다섯 가지 상호협력방침은, 고위층 왕래 유지, 전략적 소통 강화, 경제무역협력 심화, 인문교류 확대, 국제 및 지역 문제에서의 협력 강화다.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양국 지도자들이 상호방문과 특사파견, 구두 친서 전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합의하였음을 상기하면, 넉 달만에 다시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주목하는 것은,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다섯 가지 상호협력방침 가운데 전략적 소통을 강화한다는 두 번째 방침이다. 전략적 소통이란 전략문제를 상의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넉 달만에 다시 정상회담을 진행한 목적은, 명백하게도 전략문제를 상의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넉 달만에 다시 만나 상의한 전략문제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 이외에 그 어떤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왜 새로운 정치회담이 필요한 것일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방침을 이미 정해놓았다. 그의 전략적 방침은 명확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측과 국교를 수립하고,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에서 미국이 맡은 책임을 수행하는 한편, 그에 상응하여 북측 국방위원회는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기존 핵무기와 그 운반수단인 장거리 미사일을 폐기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에서 북측이 맡은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적 방침이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침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를 6자회담에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좀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물론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렸다. 그렇지만 6자회담에서 해결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가 아니라 비핵화 추진과정에서 제기되는 기술, 실무적 문제들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가 6자회담에서 해결될 수 없으므로, 6자회담보다 격이 더 높은 새로운 정치회담이 요구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정치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대통령이 만나는 북미 정상회담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다자회담만으로 실현될 수 없고, 반드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야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논거는 두 가지다.

첫째, 만일 북측이 아직 핵무기 보유국이 아니라 이란처럼 핵개발 도상국이라면 다자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겠지만, 북측은 이미 핵실험을 여러 차례 실시하여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를 물리적으로 확증하였으므로 핵개발 도상국이 아니다. 핵개발을 중지하는 비핵화가 아니라 기존 핵무기를 폐기하는 비핵화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실무적으로 처리할 핵문제가 아니라, 국제관계를 변화시킨 고도의 정치문제이므로 기술, 실무적 문제를 해결하는 다자회담에 더하여 국제정치문제를 해결하는 정상회담까지 열려야 실현되는 것이다.

둘째, 만일 한반도에 미국군이 주둔하지 않는다면, 이란처럼 다자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겠지만,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북침돌격대로 장기 주둔시키면서 수시로 핵우산을 내세운 대북 핵위협을 가해오고 있으므로 한반도 비핵화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면 미국의 대북 핵위협을 제거해야 하고, 미국의 대북 핵위협을 제거하려면 주한미국군을 철군해야 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려면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 이 길 이외에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다른 길은 없다.

17년 허송세월하고 파국에 직면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이미 오래 전에 제기하였으나,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은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면서 그 방안을 계속 외면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기한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외면할 핑계거리가 없어지자, 클린턴 대통령은 4자회담을 들고 나왔고, 부쉬 대통령은 6자회담을 들고 나왔다. 그 두 대통령은 입으로는 ‘북한 핵문제’가 시급하다고 말하면서도, 무려 17년 동안이나 허송세월만 한 것이다.

2003년 8월 27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시작된 이래, 2008년까지 다섯 해 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 실무적 문제들은 6자회담에서 모두 해결방안을 찾았다. 그로써 한반도 비핵화의 기술, 실무적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해결방안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6자회담에서 합의한 기술, 실무적 문제를 행동에 옮기기만 하면 되는 실행 단계에 이른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기술, 실무적 문제는 이처럼 6자회담에서 해결방안을 찾았으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계속 외면하는 통에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는 지난 17년 동안 논의조차 해보지 못했다. 변화를 외치는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하였을 때 그가 이끄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긍정적으로 바뀐 태도를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으나, 정권 인수과정과 출범 초기에 드러난 그들의 태도를 보면 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측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2009년 4월 14일 북측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6자회담에 다시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6자회담의 그 어떤 합의에도 더 이상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북측의 6자회담 불참 선언은 북측이 이미 시작한 초강경한 끝장공세의 일환이었다. 북측의 초강경한 끝장공세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파국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2009년 8월 4일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전직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것은, 북측의 초강경한 끝장공세로 파국에 직면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만일 2000년 11월에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면 만날 수 있었던 빌 클린턴 전직 대통령을 2009년 8월에 대통령 특사로 접견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중대제안을 전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대제안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개최 제안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그 제안을 수락하지 못하고 고심에 빠졌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하면서 시간만 보내다가, 넉 달이 지난 2009년 12월 8일에 가서야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단장으로 하는 특사방문단에게 대통령 친서를 들려보내며 응답한 것이 전부였다. 그가 전한 대통령 친서에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 제안을 수락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고, 외교적 수사만 들어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을 묶은 두 가지 난제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개최 제안을 수락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딱 잘라 거절하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위기감을 안겨준 심각한 문제가 동북아시아 정세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첫째, 일본의 정권교체로 불거진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 문제다. 2009년 8월 말 선거에서 자민당 장기집권체제를 무너뜨리고 55년만에 집권에 성공한 일본 민주당 주도의 연립정권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갈등을 빚었다. 오키나와(沖繩)에 있는 후텐마 기지는 북측을 침공하기 위해 전진배치한 미국 해병대 항공전력이 주둔하는 군사전략거점인데, 미국군에게 그처럼 중요한 거점을 일본 밖으로 이전시키려는 일본 민주당 주도의 연립정권을 상대로 벌인 싸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뜻밖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만일 천안함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싸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질 수도 있었다. 고전하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간신히 해결하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후텐마 기지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개최 제안을 수락할 리 없었다.

둘째, 미일 관계에서 일어난 후텐마 갈등은 갑자기 튀어나온 돌발적인 사태였는데,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단계적 철군를 논의조차 하지 않으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고질병이다. 만일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수락하는 경우, 그는 평양을 방문하여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를 담판으로 해결해야 한다. 담판 해결이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하고, 북측과 국교를 수립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한미국군의 단계적 철군도 문서로 공약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북측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측과 국교를 수립하는 선까지는 나아갈 용의가 있지만, 주한미국군 철군 문제는 아예 논의하는 것 자체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북침돌격대로 전진배치한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고, 아무리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한다 해도 그것은 미국이 대북 핵위협을 철회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 대북 핵위협을 철회하였음을 실증하는 유일무이한 방도는, 한반도에 배치한 북침돌격대를 한반도 밖으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야 평화협정과 국교수립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때, 그 자리에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가 담판을 통해 해결되리라고 예견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 다르지 않게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외면함으로써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논의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냈다. 미국 군부가 2010년 3월 8일부터 18일까지 키 리졸브(Key Resolve)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이전보다 훨씬 더 위험천만한 대북침공연습으로 강행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응답이었다.

2010년 4월 7일 합동조사단이 북측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폭침되었다는, 모순과 의혹으로 가득 찬 중간발표를 꺼내놓고 이른바 ‘북한 응징설’을 내돌자,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북측을 천안함 사태의 ‘범인’으로 몰아간 압박공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결정으로 전개된 것이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 압박공세가 한층 더 강화되자, 북측도 초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측은 2010년 5월 12일 <로동신문> 보도를 통해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5월 14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관리하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에 있는 측정소에서 평소보다 여덟 배가량 많은 고농도 제논(Xe-135)을 검출하였는데, 고농도 제논 검출은 북측이 핵융합반응 기술을 개발하였음을 물리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핵융합반응 기술은 고성능 핵탄두를 제조하는 첨단 핵기술을 완성하여야 획득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핵기술이다. 북측이 최고 수준의 핵기술을 보유하였음을 실물로 입증하였을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은 경악과 충격에 휩싸였으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북측의 압박공세가 그들을 강하게 타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새로운 전략구상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처럼 미국 군부에게 북침공격연습을 강행하라고 지시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사실상 거부하였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결코 접어두지 않았다.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면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길밖에 없고,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아무리 거부해도 흔들림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 방안을 관철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북측에서 간행된 자료들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단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볼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강하게 밀어붙인다고 하니, 그는 끝장을 볼 때까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밀고 나갈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실질적인 방도는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그에 상응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가 워싱턴을 교차방문하여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미 카터 전직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조성된 대치상태를 해소할 결정적인 기회로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지미 카터 전직 대통령을 대통령 특사로 파견하지 않고, 북측에 억류된 미국인 불법입국자를 사면, 석방하는 임무만을 주어 파견하였다. 대통령 특사가 아닌 내방자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접견할 리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시작되는 날에 맞춰 지미 카터 전직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하도록 날짜가 조절된 것은, 대치상태를 해소할 결정적인 기회를 저버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질타하는 북측의 대응조치였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거론하면서, 대통령 특사를 파견할 기회를 저버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행동을 지켜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완고한 태도를 바꿔놓을 새로운 전략구상을 하였을 것이다. 그의 새로운 전략구상은 어떤 것일까?

지미 카터 전직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하는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동북지방 순방길에 오른 것은, 북측이 중국과 공조하여 미국을 공략하기 위한 대미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새로운 전략구상이 실행되기 시작하였음을 뜻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동북지방을 순방하면서 항일혁명사적지를 방문한 것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민혁명군과 중국인 항일부대들이 구축하였던 1930년대 동북항일련군의 대일 연합전선을 2010년대 한반도 비핵화의 대미 연합전선으로 계승, 발전시키는 그의 전략구상이 실행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북측이 중국과 공조하여 미국을 공략하는 대미 연합전선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 연합전선에서 북측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관철하기 위한 초강경한 대미 압박공세를 펼치게 될 것이고, 중국은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적극적인 대미 외교공세를 펼치게 될 것이다. 북측과 중국의 대미 연합전선은 오바마 대통령을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로 몰아갈 것이다. 동북항일련군이 일본 관동군에 맞서 혈전을 벌였던 지린성 한복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상의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신화통신> 2010년 8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창춘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조선반도 정세 완화와 외부환경 개선을 위한 조선의 적극적인 노력을 지지한다. 중국은 관련 당사국들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비핵화의 기치를 들고 현재의 긴장 국면을 완화하기 위해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의 의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에 따라 구축된 대미 연합전선에서 중국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적극적인 외교공세를 펼친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중국의 적극적인 대미 외교공세는 3단계 방안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제기한 3단계 방안은, 북측과 미국의 양자회담→6자 예비회담→6자회담 재개를 뜻한다. 이 방안은 창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중국이 북측과 합의하고 미국에게 요구해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적극적인 대미 외교공세는 6자회담 중국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조선반도 사무 특별대표가 6자회담 참가국을 순방하면서 6자회담 재개 방안을 협의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우다웨이 특별대표는 2010년 8월 16일부터 18일 평양을,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을, 8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 도쿄를, 9월 1일부터 워싱턴을 방문하였다. 그는 모스크바도 곧 방문할 예정이다.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중국의 대미 외교공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관철하기 위한 북측의 초강경한 대미 압박공세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에 오바마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응답해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길이 열린다는 점이다.

<니혼게이자이신붕> 2010년 1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2010년 1월 21일 평양에서 이탈리아 의원단을 접견하면서 북측, 미국, 중국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측과 미국이 북측의 안전보장에 관한 양자회담을 진행하고, 미국이 대북 경제재재를 해제하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말한 북측의 안전보장에 관한 북미 양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북미 정상회담을 외교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신화통신> 2010년 8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창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견지한다는 조선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의 속뜻은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변함 없이 추진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관철하기 위한 북측의 대미 압박공세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식은 땀을 흘릴 기상천외한 고강도 압박공세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이 견디다 못해 굴복하는 날까지.

대결상황을 넘어, 정세오판을 넘어

귀로에 오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용열차가 두만강 국경을 향해 달려가던 2010년 8월 30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북 추가제재를 강행하기 위한 ‘행정명령 제13551호’에 서명하였다. 이처럼 극적으로 대비되는 장면은 북미 대결의 현주소를 가리켜준다.

그런데 이처럼 대결이 첨예한 상황에서는 자칫 정세를 오판하기 쉽다. 한반도 비핵화가 끝났다고 비관하는 비핵화 종언설이나 동북아시아에 신냉전이 도래했다고 착각하는 신냉전 도래설 따위는 현 정세를 잘못 읽은 대표적인 오판사례들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거부하고 있는 것 뿐이지, 한반도 비핵화가 종언을 고한 것이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거부로 난관에 빠졌지만, 해결하지 못할 난제가 결코 아니다. 2000년 11월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직전까지 나아간 경험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이 능히 실현될 수 있음을 현실로 입증하였다. 비핵화 종언설에서 드러난 것처럼, 난관에 처했을 때 신심을 잃고 정세를 비관하면, 능히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실행하지 못하는 자포자기밖에 얻을 게 없다.

비핵화 종언설과 마찬가지로 신냉전 도래설도 오류 중의 오류다. 최근 중미 관계가 대결 양상을 띈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양상을 신냉전의 도래라고 해석할 근거는 아무 데도 없다. 원래 동서냉전이란 체제와 이념의 적대성에서 생겨난 사회주의 진영 대 제국주의 진영의 영속적인 대립상태를 뜻하는데, 오늘에는 중국과 미국이 상호의존관계로 진입한 조건에서 이른바 G2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것이지, 체제와 이념의 적대성으로 조성된 신냉전이 도래한 것은 아니다. 탈냉전 이후 중미 관계에서 체제와 이념이 충돌하는 적대성은 사실상 소멸되고, 국익을 추구하는 두 나라 사이의 패권경쟁만 남았을 뿐이다.

중미 관계를 상수(常數)로 놓고 동북아시아 정세를 인식하면, 대국주의(大國主義) 함정에 빠진다. 동북아시아의 정세변화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중미 관계가 아니라 북미 관계이며, 북미 관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측이다. 지난 65년 동안 북미 관계에 고착된 대결상태가 동서냉전 또는 탈냉전과 인연이 없었는데, 이제와서 느닷없이 신냉전이 도래하였다니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북측은 미국의 핵열전 도발을 억지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지, 미국과 냉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신냉전 도래설은, 북미 사이에 조성된 체제와 이념의 적대성이 해소될 때까지 신냉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인데, 그런 착각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나 안겨줄 뿐, 백해무익하다.

2010년 1월 11일 북측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더 이상 자국의 리익부터 앞세우면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대담하게 근원적 문제에 손을 댈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곡을 찌른 이 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하는 진지한 충고로 들린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세를 똑바로 보고 용단을 내리느냐, 아니면 정세를 오판하고 전임 대통령들의 실패 전철을 밟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그에게 마지막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10년 9월 6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