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세 징수론과 핵무기 탈취 시나리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광복절 경축사와 미래기획위원회 보고서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65주년 경축사에서 통일세 징수론을 꺼내놓았다. 그는 “통일은 반드시 옵니다. 그 날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주시기를 제안합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0년 8월 16일 보도에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통일세 문제는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 작성 때도 넣을지 말지 고민했던 주제다. 그땐 빠졌지만, 이번엔 이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돼 원고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의) 일부 참모가 논의가 더 필요한 주제라고 주장해 원고에 빠졌던 내용을 이 대통령이 막판에 되살”렸다고 한다.

위의 정보는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하나는, 통일세 징수론이 이전부터 청와대에서 논의되어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통일세 징수론을 공론화하였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에서 논의해온 종래의 통일세 징수론과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공론화한 신종 통일세 징수론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 통일세 징수론을 둘러싸고 각계각층이 벌이는 찬반 논란은 통일세 징수론이 이처럼 종래 징수론과 신종 징수론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설왕설래하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각계각층이 찬반 논란을 벌이고 있는 통일세 징수론은,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론화한 신종 통일세 징수론이 아니라, 청와대 관리들이 이전부터 논의해온 종래의 통일세 징수론이다. 신종 징수론은 종래 징수론을 능가하는, 더욱 극단적인 발상 위에 성립된 것이다.

우선 종래의 통일세 징수론부터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은 대통령 직속기관인 미래기획위원회다. <조선일보> 2010년 8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미래기획위원회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 이른바 통일비용을 추산한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미래기획위원회는 세 개 국책연구기관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기관들 가운데서 통일비용을 추산한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한 곳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1971년에 설립한 한국개발연구원(Korea Development Institute)이다. 미래기획위원회는 2010년 6월 11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제7차 회의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국개발연구원이 제출한 ‘미래비전 2040’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통일비용을 추산한 내용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청와대 관리들이 이전부터 논의해온 통일세는 한국개발연구원이 추산한 통일비용를 충당하기 위한 세금이다. 통일비용을 충당하려면 통일세를 징수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국개발연구원은 통일비용을 어떻게 추산하였을까? 한국개발연구원의 통일비용 추산에 관련하여 보도한 <조선일보> 2010년 8월 16일 관련기사에서 미래기획위원회 관계자는 “통일비용 추정치는 남한과 비슷한 수준의 사회 여건을 북한에 갖추고, 북한 주민들의 1인당 소득이 남한 수준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이라고 말했다. 북측 평균소득을 남측 평균소득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려면 막대한 자금이 요구되는데, 그 자금을 통일비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기사에 나온 통일비용 산정법에 따르면, “북한이 개방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하게 붕괴하는 경우 2040년까지 2조1,400억 달러(약 2,525조 원)에 이르는 통일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북한의 점진적인 개방을 거친 뒤 통일될 경우엔 급격한 붕괴 때의 7분의 1 수준인 3,220억 달러(약 379조9,600억 원)의 통일비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통일세 징수론은 이처럼 통일비용 추산에서 논거를 찾는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2040년까지 30년 동안 2조1,400억 달러를 통일세로 징수하거나 또는 3,220억 달러를 통일세로 징수해야 통일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처럼 천문학적인 세금을 어떻게 징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조세문제이고, 통일세를 왜 징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치문제다. 이 글에서 논하는 것은, 조세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다.

통일세 징수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남측 정부가 앞으로 30년 동안 통일세를 징수해야 하는 까닭은 한반도 통일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까닭은, 북측이 “개방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하게 붕괴”하거나 아니면 북측이 “점진적인 개방을 거친 뒤 통일”될 것으로 예견하기 때문이다. 간명하게 표현하면, 전자는 급변-붕괴설이고, 후자는 개방-변질설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정세오판

통일세 징수론자들의 예견은, 북측에서 이른바 급변사태라는 것이 일어나 정권이 무너지는 시나리오 또는 북측이 달러에 눈이 멀어 개방과 개혁을 수용함으로써 정권의 성격이 변질되는 시나리오다. 이처럼 그들의 눈에는 북측을 심히 자극하는 도발적인 시나리오밖에 보이지 않는다.

급변-붕괴 시나리오와 개방-변질 시나리오밖에 알지 못하는 통일세 징수론자들은, 20세기 말에 일어났던 동서독 합병이 21세기에 한반도에서도 일어날 것으로 믿고 있다. 말하자면, 동서독 합병이 남북관계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는 그들의 믿음이 통일세 징수론 공론화의 배경인 것이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염원하는 통일을 맞으려면 비용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과거 독일 통일에서 보듯 (남북통일에도) 대단한 (경제적) 부담이 들어가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고, “그런 점에서 국민이 뭘 준비해야 하는지 본격 토론을 시작해 보자는 의미”에서 대통령이 통일세를 거론하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통일세 징수론자들이 동서독 합병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독 합병을 동서독 통일이라고 주장하는 강변이 오류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멀쩡한 동독 정권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 동서독이 합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멀쩡한 동독 정권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 동서독이 합병된 것이 아니다. 동독 사회의 개방-변질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가운데 동독 정권의 급변-붕괴가 일어나 동독이 자진 해체되고, 동서독이 합병된 것이다. 동서독 합병이 동독 정권의 급변-붕괴라는 단선적 시나리오로 진행된 것처럼 잘못 알려졌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까지 약 15년에 걸쳐 개방-변질 시나리오가 복선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동독에서 일어난 급변-붕괴 시나리오는 동독 인민의회가 독일민주공화국(DDR)을 자진 해체하여 동독의 다섯 개 주로 법적 지위를 격하시킨 뒤에 서독에 자발적으로 합병된 것이다. 동서독 합병에 대해서는 2008년 9월 29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그들은 왜 자발적 합병을 택하였을까?’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동서독 합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정확히 모르면서도, 남북관계에서 그런 식의 합병이 일어나 주기를 희망한 한국개발연구원은, 정작 동서독 합병경로에 대해 헷갈리는 통에, 통일비용을 추산할 때 개방-변질 시나리오와 급변-붕괴 시나리오를 분리시켰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분리한 것보다 더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세오판이다. 그들이 희망한 대로, 만일 남북관계에서 합병사태가 일어난다면, 북측 최고인민회의가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을 해체하고 공화국의 법적 지위를 격하시켜 9개 도와 1개 특별시로 재편하는 치명적 자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아무도 상상하지 않는 그런 망발을 늘어놓는 사람은 정신이상자밖에 없을 것이다. 정세오판은 판단능력이 있으면서도, 잘못된 관점과 정보에 현혹되어 판단을 그르친 것이지만, 정신이상자가 내뱉는 헛소리는 오판이라 아니라 망발이다.

30년 합병 시나리오의 시작과 끝

내막을 들여다보면, 통일비용에 관한 발언이 정신이상자의 합병 망발과 다를 바 없는 데도, 남측 정부 안에서 통일비용에 관한 설왕설래가 계속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동서독 합병경로의 순차를 변경시킨 한반도식 합병을 꿈꾸는 상상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상상하는 한반도식 합병이란, 급변-붕괴 시나리오가 선행한 뒤에 개방-변질 시나리오가 뒤따르는 경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북측 정권이 갑자기 무너지고, 북측에 위기관리정부가 세워져 내부개혁과 대외개방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북측 체제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때로부터 북측 사회주의체제가 자본주의체제로 완전히 변질될 때까지 약 30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2040년을 합병목표 달성시점으로 설정해놓은 것이다. 이것이 통일세 징수론자들이 논하는 30년 합병 시나리오다.

30년 합병 시나리오의 골자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가 이번 광복절에 읽은 경축사에는 통일세 징수론 제안만이 아니라 30년 시나리오 골자도 담겨있다. 그 골자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평화공동체 구축→남북 간의 포괄적인 교류, 협력을 통해 북측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남북 경제통합을 준비하는 경제공동체 실현→제도의 장벽을 허문 민족공동체 실현이다. 통일부가 이것을 ‘3단계 통일 구상’이라고 표현한 것은 국민을 속이고 우롱하는 거짓말이고, 실제로는 30년 합병 시나리오를 구상한 것이다. 그 시나리오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30년 합병 시나리오에서 통일세 징수론자들이 시급히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 첫 공정은 비핵화다. 2010년 2월 25일 통일부가 내놓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 수정안에서 북측이 핵포기를 선행하면 대북 경제협력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지적한 것을 보면, 평화공동체를 구축하기 전에 비핵화를 먼저 실현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경로인 것이 확실하다. 또한 통일부는 2010년 8월 23일에 발표한 ‘8.15 경축사(통일분야) 참고자료’에서 “비핵화를 토대로 (하는) 평화공동체 발전이 최우선적 과제”라고 전제하고, “‘그랜드 바겐’을 통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실행(하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통해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정착(을) 실현”해야 한다고 해설하였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직설적인 표현을 빌리면,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데, 그 출발점은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라는 것이다.

둘째, 통일세 징수론자들이 30년 합병 시나리오의 중간과정에 등장시킨 것은 이른바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다. 평화공동체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구상에서 배제된 것은, 북측과 미국이 양자회담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 제공 공약을 폐기하고, 한미연합군의 북침공격연습을 전면 중지하고,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시키는 평화실현의 핵심과제들이다. 그의 구상이 노리는 것은 북측 핵무기만 일방적으로 제거하려는 ‘북한의 비핵화’다. 그런 점에서, 그의 구상은 합리적인 구상이 아니라 부조리한 망상이다. 또한 통일부가 발표한 ‘8.15 경축사(통일분야) 참고자료’에 따르면, 경제공동체는 “국제사회와의 협조를 통해 북한 경제 개발(을) 지원(하고), ‘비핵․개방․3000’ 프로젝트 본격 가동을 통해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의 개선 및 남북 간 경제격차를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미 파산한 ‘비핵․개방․3000’을 다시 들고 나와, 한반도 전역에 시장경제공동체를 형성하겠다니, 그런 억지주장은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

셋째,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010년 8월 24일 현대북한연구회 창립 1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통해 “평화, 경제공동체는 단계적 선후관계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상호중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가 순차적으로 형성되지 않고 상호중첩적으로 형성된다는 말은, 북측 핵무기를 제거하고 나서 북측을 개방시킬 수도 있고, 북측을 개방한 뒤에 북측 핵무기를 제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넷째, 30년 합병 시나리오의 끝은 합병의 완성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족공동체 실현을 통일의 목표로 제시하였지만, 그것은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낸 술어일 뿐이고, 그 술어 뒤에 가려진 것은 대북 합병구상이다.

그런데 북측의 급변사태는 그가 언급한 30년 합병 시나리오에 들어있지 않다. 합병경로를 언급하면서 급변사태까지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그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었는지 몰라도, 급변사태에 대한 언급을 일부러 빼놓은 것이다.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의 합병구상에서 급변사태는 어디쯤 위치하는 것일까? 그들의 논법으로 보면, 북측의 급변사태는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북측이 핵무기를 제거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가 구상한 30년 합병 시나리오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구상한 비핵화는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엄청난 분량의 핵탄두를 곳곳에 쌓아놓고 대북 선제핵타격을 노리는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고, 그에 상응하여 북측도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뜻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인민군 핵무기만 제거하면 비핵화가 실현된다는 뜻으로 왜곡된 비핵화 개념을 갖고 있다. 그의 비핵화 구상은 이치에도 맞지도 않고 현실과도 동떨어진 착각 중의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그의 비핵화 구상이 착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가 급변사태와 비핵화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연속과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비핵화는 북측의 급변사태를 통해 실현되는 비핵화다.

탈취 시나리오와 두 개의 작전계획

비핵화가 북측의 급변사태를 통해 실현될 것으로 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상은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그런 발상이야말로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가는 극히 위험천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가 북측의 급변사태를 통해 실현될 것으로 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상에 깔려있는 전제는, 북측이 자진해서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북측에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북측 정권을 교체하고 북측을 강제로 비핵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통일세 징수론이 종래의 통일세 징수론과 다른 까닭은, 그가 북측의 급변사태, 북측 정권의 교체, 북측의 비핵화를 통일세 징수론의 전제조건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북측에서 들으면 격노할 급변사태→정권 교체→일방적 비핵화에 관한 시나리오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자적인 발상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오래 전부터 검토해오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의 뇌리에 심어준 발상이다. 2010년 8월 26일 중국 언론 <글로벌 타임스(Global Times)> 사설이 지적한 대로, “워싱턴은 다양한 시나리오 사태에 조응한 계획을 세워두었고”, “비록 자기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워싱턴의 목표는 북측의 현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급변사태→정권 교체→일방적 비핵화를 담은 시나리오는,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즉각 개입하여 정권을 교체하고 핵무기를 탈취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북측의 핵무기를 탈취한다는 말은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즉시 침공하여 정권을 교체하고 핵무기를 장악, 통제한 뒤에 미국으로 핵무기를 가져가 해체한다는 뜻이다. 주목하는 것은,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경우 정권을 교체하고 핵무기를 탈취하기 위해 북측을 침공하는 것이 미국군의 작전계획이라는 점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미국의 탈냉전기 전쟁전략을 대북 침공에 집중시키게 된 정책적 계기는, 미국 전략사령부 산하 전략고문단 정책소위원회가 당시 전략사령관이었던 헨리 칠리스(Henry G. Chiles, Jr.) 해군 제독의 이름으로 1995년에 작성한 비밀문건이었다. 미국 군부가 1999년에 작성한 ‘작전계획 5029’는 그 비밀문건에 의거한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작전계획 5029’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1997년에 이른바 ‘모체(母體)약정(Umbrella Agreement)’도 체결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작전계획 5029’의 근거가 되는 ‘모체약정’을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에 체결하였는데, 그것은 대북 침공의 조건을 규정한 합의서다.

그런데 지난 몇 해 사이에 미국군은 ‘작전계획 5029’를 수정, 보완하는 작업과 ‘작전계획 5030’을 새로 작성하는 작업을 밀고 나가면서 대북 침공계획을 한층 더 보강하였다. 2008년 9월 10일 남측 정부 소식통은 <연합뉴스> 기자에게 “한미가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상당히 진척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보강과정은 이러하였다.

<신동아> 2005년 4월호 보도에 따르면, 2004년 12월 서울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진행된 주한미국군사령부 고위지휘관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들, 전직 주한미국군사령부 관계자들의 비밀회의에서는 1999년에 작성된 ‘작전계획 5029’를 수정, 보완하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8년 12월 29일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 부설 대량파괴무기(WMD) 연구소가 그 날 공개한 ‘대량파괴무기 근절을 위한 국제협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태평양사령부가 인민군 핵무기를 탈취하기 위한 ‘반확산 실무협의체’를 설치하였다고 밝혔다. 2009년 11월 23일 한국군 합참본부는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북측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이후 적용할 한미 공동작전계획의 진척상황을 비공개로 보고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2월 5일 보도에서 남측 정부 소식통은 “미국 관계자들이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실제 연합훈련의 필요성을 최근 공식, 비공식적으로 타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한 <동아일보> 2010년 2월 9일 보도에서 남측 정부 소식통은 “작계 5029는 사실상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정부 내에서는 ‘작전계획(OPLAN)’이 아닌 ‘개념계획(CONPALN)’으로 불린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한미 군당국 실무자들은 ‘작계 5029’ 초안을 토대로 연합 도상훈련을 하며 초안의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북 침공계획을 한층 더 보강한 미국 군부는 2010년 8월 16일부터 열흘 동안 미국군 30,000명과 한국군 55,000명을 동원한 대규모 침공작전연습인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을 강행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군부는 이번에 실시된 대북 침공연습에 마이클 쉬퍼(Michael Schiffer)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 앤드루 웨버(Andrew C. Weber) 국방부 핵․화학․생물학전 방어프로그램 차관보를 참관자로 파견하였고, 연습기간 중에 정부종합상황회의를 주관한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종전 후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을 제대로 해보자”며 통일부에게 침공연습에 참가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보도에서는 요구라는 표현을 썼지만, 당시 정황을 보면 요구가 아니라 지시였다. 미국군사령관이 이명박 정부의 상황회의를 직접 주관하면서 통일부에 지시를 내리는 충격적인 사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한미동맹의 참상을 드러낸 것이다.

통일부는 미국군사령관의 지시를 즉각 이행하였다. <동아일보> 2010년 8월 24일 보도에서 한국군 관계자는 “이번 UFG연습의 특징 중 하나는 군 당국의 수복지역 민사작전을 넘어 통일부가 주도하는 안정화 작전이다. 통일부는 이번 훈련에서 안정화 작전의 완결판 성격인 ‘대한민국 국민화’ 작전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이, ‘을지 프리덤 가디언’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이른바 ‘실지수복(失地收復)’을 노리는 침공연습이 분명한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8월 16일 청와대 지하별관 회의실에서 ‘을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을지연습은 평화를 위한 훈련이고 전쟁을 억지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말했다. 국민을 속이고 우롱하는 거짓말이다.

백악관과 청와대가 말하는 급변사태는 침공, 전복, 탈취다. 그들은 북측을 침공하여 정권을 전복시키고 핵무기를 탈취한다는 뜻으로 급변사태를 말하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다가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즉시 침공한다는 뜻이 아니라, 북측을 침공하여 급변사태를 일으키겠다는 뜻이라는 점이다. 미국 군부가 항모강습단, 원정강습단, 잠수함대, 장거리폭격비행단, 장거리수송단을 대북 침공연습에 총동원하는 것은, 급변사태를 일으키기 위한 침공준비에 얼마나 혈안이 되어있는지를 말해준다.

급변사태를 일으키기 위한 침공작전을 구체화한 것이 ‘작전계획 5030’이다. <연합뉴스> 2005년 6월 8일 보도에 따르면, 그 작전계획은 주한미국군사령관과 태평양사령관이 군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의 승인을 받지 않고서도 “북한의 제한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군부의 동요를 유도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저강도 침공계획이다.

미국군이 ‘작전계획 5030’에 따른 저강도 침공으로 북측에서 급변사태를 일으키면, 한미연합군이 ‘작전계획 5029’에 따른 고강도 전쟁으로 북측 정권을 무너뜨려 핵무기를 탈취하고, 평양에 위기관리정권을 세워 대리통치를 하거나 또는 북측 전역을 점령하여 군정을 실시겠다는 것이 미국 군부의 대북 침공 시나리오다. ‘작전계획 5030’에 관련해 언급할 때, 두 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작전계획 5029’와 달리, ‘작전계획 5030’은 미국군이 단독 전개하는 것이므로, 미국군 합참본부가 한국군 합참본부를 배제하고 침공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은 물론이고, 침공 시나리오를 행동에 옮길 때도 한국군 합참본부에게 사전 통보를 해주지 않는다.

둘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계획에 따르면, 북측에 위기관리정권이 들어설 것인지 아니면 미군정이 들어설 것인지는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 여부에 달려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10년 8월 27일 보도에서 한국군 관계자는 “올해 UFG 연습에서는 개전 및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에서 접경지역에 중국군과 러시아군이 개입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했다. 정부는 두 나라 군이 개입하지 않도록 외교적인 노력도 펼치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계획에 따르면, 만일 중국과 러시아가 북측의 급변사태에 너무 강하게 개입할 경우 미국은 북측에 위기관리정권을 내세울 것이고, 그 두 나라의 개입이 약할 경우에는 미국군이 직접 군정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대북 침공과 정권 교체를 강행하여 인민군 핵무기를 빼앗는 탈취 시나리오다. 따라서 그들이 생각하는 6자회담의 의의는 핵무기 탈취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데 유리한 외교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쪽에 있는 북측의 시각으로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6자회담마저 탈취 시나리오에 결부시키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광란적 책동이다.

6자회담이 탈취 시나리오로 흘러가는 것을 차단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북측은 새로운 방도를 제기하였다. 그 방도는 북측과 미국이 양자회담을 선행하고 그 양자회담에 의거하여 6자회담을 한반도 비핵화의 길로 진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탈취 시나리오에 도취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과 미국의 양자회담을 끝내 거부하였고, 그로써 6자회담도 끝장이 났다.

6자회담이 끝장나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하여 도발적이고 위험천만한 대북 침공연습을 강행하였다. 그에 덩달아, 이명박 정권은 미국군의 대북 침공연습에 장단을 맞추며 군사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더니,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북침전쟁비용을 조세화(租稅化)한 통일세 징수론을 버젓이 공론화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010년 8월 22일 통일부는 통일세 징수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통일세 추진단’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통일부 차관을 단장으로 한 ‘통일세 추진단’에는 각 부서 실장 및 국장 등 통일부 관리 10여 명이 망라되었다. 한나라당도 통일세 징수를 준비하기 위한 실무추진단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정세가 아무리 복잡해도 대안은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시각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징수론은 백악관 관리들이 구상한 급변사태 유발→정권 교체→핵무기 탈취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보완조치 가운데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주어진 분단상황의 관리를 넘어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광복절 경축사에 들어있는 통일세와 관련된 대목은 이렇게 고쳐서 읽어야 그 뜻이 분명히 전달될 것이다. “급변사태는 반드시 옵니다. 그 날을 대비해 이제 북한 정권을 교체하고 인민군 핵무기를 탈취하는 시나리오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통일세를 징수하는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주시기를 제안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대북 협상을 자기 손으로 파기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연합뉴스> 2010년 4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4월 23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전두환 전직 대통령과 오찬간담회를 하면서 “나는 임기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한 번도 안 만나도 좋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두 전직 대통령들은 “남북관계는 그렇게 규율해 가야 한다”고 공감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한반도 통일의 출발점은 항구적인 평화체제 수립이고, 한반도 통일의 완결점은 거국적인 통일정부 수립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명실상부한 평화통일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평화통일만이 나라의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정상적 생활을 보장해주는 유일무이한 길이다.

평화통일을 실현하지 못하면, 남측 국민들이 열망하는 민주주의도 경제성장도 사회통합도 문화발전도 온전한 실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어디까지나 사상누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예컨대, 이명박 정권의 출현은 김대중-노무현 집권시기에 어렵사리 이룬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후퇴시켰고, 미국발 신자유주의 침탈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최대 치적이었다는 압축적 경제성장을 파탄시켰고, 자산과 소득의 극단적인 격차는 사회통합을 파괴하였고, 미국과 일본의 이중적 문화침식이 확대되어 민족문화는 실종위기에 빠졌다. 이것은 평화통일을 실현하지 못하면 그 어느 것도 온전한 실체로 존속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복잡해진 한반도 정세는, 새삼스럽게 평화통일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떠올린다. 평화통일은 백악관과 그들을 따르는 청와대가 추구하는 급변사태 유발과 정권 교체의 시나리오를 저지, 파탄시키고, 핵무기 탈취와 전쟁 도발의 시나리오를 저지, 파탄시키는 진정한 평화체제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통일은 평화적 방도로 실현되는 통일이며, 백악관과 청와대의 평화파괴 시나리오를 전면 배격한다는 점에서 자주적 원칙에 의거하는 통일이다. 그래서 평화통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민족공동체 형성으로 되지 않고 자주적 평화통일로 되는 것이다.

평화통일 과업을 자본주의시장에서 통용되는 천박한 비용산정에 결부시킨 것은, 평화통일의 역사적 의의를 더럽히는 물신숭배자들의 모독이다. 평화통일 과업을 침공-전복-탈취 시나리오에 결부시킨 것은, 평화통일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전쟁광신자들의 폭거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서로 상대를 변질시키거나 침공하거나 합병하지 않는 조건을 합의하고, 남과 북의 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하면서 정치협상을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거국적 통일정부를 세우는 대안만이 있을 뿐이다. 그 대안을 전면 부정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선택과 기로에 서게 될 것인가? (2010년 8월 30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