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차례 위협사격에 숨겨진 이야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첫 번째 위협사격을 은폐한 한국군 합참본부

이명박 정부는 북측의 경고를 외면하고 서해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대규모 해상기동훈련을 거듭 강행하여 북측을 자극하였고, 북측은 사전에 여러 차례 경고를 거듭한 끝에 대응행동을 취했다.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실탄사격으로 위협한 것이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를 인용한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2010년 8월 9일 오후 5시 30분부터 3분 동안 백령도 앞바다를 향해, 그리고 오후 5시 52분부터 22분 동안 연평도 앞바다를 향해 해안포를 발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러한 언론보도는, 한국군의 서해 해상기동훈련이 인민군의 기습적인 해안포 발사로 실패하였음을 감추기 위해 한국군 합참본부가 축소, 왜곡한 정보를 그대로 옮긴 오보였다. 실상은 어떠했을까?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첫 사격을 한 날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발표한 8월 9일보다 하루 앞선 8월 8일이었다. <연합뉴스> 2010년 8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당국은 8월 8일 “오후 8시께에도 북측 지역에서 (울린) 10여 발의 포성을 (해안 초병이) 청취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 들어있는 중요한 정보는,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8월 8일 오후 8시경 10여 발을 쏘았다는 사실이다. 그 보도기사는 북측으로부터 포탄은 날아오지 않고 포성만 들린 것처럼 모호하게 표현하였지만,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포를 내륙으로 쏘지 않았으므로, 8월 8일 오후 8시경에 있었던 해안포 사격도 8월 9일 오후 5시에 시작된 해안포 사격과 마찬가지로 서해로 쏜 것이 분명하다.

인민군 해안포 부대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발표한 날짜보다 하루 앞서 1차 위협사격을 하였지만, 한국군 합참본부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훈련 중에 있었던 위협사격은 은폐하고, 훈련이 끝난 직후에 있었던 위협사격만 언론에 알려준 것이다.

이전 사례를 보면, 인민군은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하기 전에 항행금지 구역 및 시간대를 설정하고, 그에 관한 정보를 민간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해 외부에 공개한 뒤에, 정해진 구역을 향해 실탄을 쏘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항행금지 구역 및 시간대를 미리 설정하지 않았다. 사격훈련이 아니라 위협사격이었으므로 이전과 전혀 다르게 움직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군은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언제 사격준비태세에 들어갔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인민군 해안포 부대를 철저히 감시한다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가 허위선전이라는 점은 이번에도 드러났다.

더욱이 한국군은 서해 해상기동훈련 둘째날인 8월 6일에 인민군 해안포 사격에 맞선 대비훈련을 실시하였는데, 정작 이틀 뒤에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실제로 포사격을 하자 속수무책이었으니, 한국군의 대비훈련은 헛일인 셈이다. 한국군의 서해 해상기동훈련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대함 미사일 발사를 우려하다 허를 찔린 한국군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해상기동훈련 중인 한국군에게 위협사격을 했는데도, 한국군이 아무런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한국군 수뇌부는 해상기동훈련 실패와 무대응에 책임을 지고 호된 질책을 받아야 한다. 질책을 두려워한 그들은 8월 8일에 있었던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을 은폐하였고, 위협사격이 8월 9일에 시작된 것처럼 정보를 왜곡하는 수밖에 없었다.

2010년 8월 8일 막바지 일정에 오른 한국군 해상기동훈련이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으로 헛일이 되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인민군이 보복공세를 취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잔뜩 긴장하였던 한국군은 아연실색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8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8월 8일 오후 8시경에 1차 위협사격을 하자 “해안포 발사에 이어 북한의 지대함 미사일 발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판단한 까닭은,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1차 위협사격에서 뜻밖에 10여 발밖에 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10여 발밖에 쏘지 않은 것은, 해안포 위협사격보다 더 강력한 보복공세를 앞둔 경고행동이라고 한국군 합참본부는 판단했고, 1차 위협사격 이후에 나올 강력한 2차 보복공세는 대함 미사일 발사일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그런 판단에 따라, 한국군은 인민군 대함 미사일 발사에 대비한 비상책을 마련하느라 서둘렀지만, 8월 9일 오후 5시 한국군 해상기동훈련이 모두 끝날 때까지 인민군 미사일 부대가 대함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징후는 없었다.

서해 해상기동훈련 마지막 날, 한국군이 백령도 앞바다에서 실시한, 인민군 잠수함 침투에 대비한 기동훈련은 일정대로 오후 5시에 끝났다. 인민군 미사일 부대가 대함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한국군은 해상기동훈련을 모두 끝마치고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인민군은 한국군이 훈련일정을 모두 마치고 긴장을 풀며 방심하는 때를 기다렸다가, 훈련 종료 30분만에 기습적으로 허를 찔렀다. 인민군 대함 미사일 발사를 우려하며 신경을 곤두세운 한국군의 예상을 뒤집고, 한국군이 방심한 틈에 기습적으로 해안포 위협사격을 한 것이다. 이것이 8월 9일 오후 5시 30분부터 33분까지 있었던 2차 위협사격이다. 만일 그것이 실전상황이었다면, 해안포 사격을 받아 허를 찔린 한국군은 만회하기 어려운 치명적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2차 위협사격 표적장은 두 군데였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실시한 2차 위협사격의 표적장(target range)은 1차 위협사격 때와 마찬가지로 백령도 북쪽 해상이었다고 한다. 남측에서 간행한 지도를 보면, 미국이 북측과 합의하지 않고 제멋대로 그어놓은 ‘북방한계선(NLL)’은 백령도 동쪽에서 90도 방향으로 북상하며 그어졌고, 백령도 동북쪽에서 백령도 해안선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서쪽으로 약간 굽었다가 백령도 북쪽 바다를 지나 서해로 빠져나가는데, 인민군은 백령도 북쪽 바다에 그어진 ‘북방한계선’ 너머로 대구경 해안포 13발을 쏜 것이다.

한국군 고위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2010년 8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백령도의 경우 발사된 10여 발의 포탄 중 7발이 아군 해안 초소 앞에서 불과 3km, NLL 남쪽으로 4-5km 떨어진 해상에 떨어진 것으로 해병대 초병들이 관측”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축소해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실은 오보였다. <노컷뉴스> 2010년 8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백령도 주민들은 해안 초소 전방 1km 해상에 포탄 7-8발이 떨어져 물기둥이 솟구치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백령도 주민들이 포탄 물기둥을 목격한 지점은 사항포구 앞바다인데, 사항포구는 백령도 서북단에 있다. 다시 말하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백령도 사항포구 앞바다를 향해 쏜 포탄이 한국군 해안 초소 전방 1km까지 날아와 떨어지면서 물기둥이 솟구쳤고, 해안 초병들과 백령도 주민들이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적진에서 날아온 포탄이 1km 전방에 떨어지는 것을 그 부근에서 목격하였다는 말은, 적의 포격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다가 피격 당했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만일 그것이 실전상황이었다면, 해안 초병들은 흰 물기둥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피격당한 한국군 전함들이 뿜어낸 검은 연기기둥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2010년 8월 13일 <평화방송>과 진행한 대담에서 자기가 파악한 정보라고 하면서 한국군 합참본부가 언론에 공개한 정보와 다른 정보를 공개하였다. 그가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는 백령도 아래에 있는 대청도 앞바다를 향해 해안포를 쏜 것이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쏜 포탄이 백령도 북쪽 해상에 떨어졌다 하고, 박선영 대변인은 대청도 앞바다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어느 쪽이 사실일까? 인민군 해안포 부대는 2차 위협사격에서 백령도 앞바다와 대청도 앞바다를 향해 각각 해안포를 쏜 것으로 보인다.

3차 위협사격 표적장은 어디였을까?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는 2차 위협사격 직후인 오후 5시 52분부터 6시 14분까지 또 다시 위협사격을 하였다. <연합뉴스> 2010년 8월 10일 보도에 인용된 정부 소식통의 말에 따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오후 5시 52분부터 6시 14분까지 쏜 포탄은 모두 104발이었다. 이것이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3차 위협사격이다.

그런데 박선영 대변인이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인민군은 연평도 북쪽 해상만이 아니라 우도 앞바다를 향해서도 해안포를 쏘았다고 한다. 서해 다섯 섬 가운데 가장 동남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인천에서 가까운 우도에는 민간인이 살지 않고 해병대 중대 병력만 주둔하고 있다. 우도는 북측 함박도에서 8km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발표한 내용과 박선영 대변인이 공개한 정보를 살펴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3차 위협사격은 연평도 앞바다와 우도 앞바다를 향해 동시에 쏜 것이 확실하다. 3차 위협사격 표적장은 연평도 앞바다와 우도 앞바다였다.

정부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8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는 3차 위협사격에서 포탄 104발을 5분 동안에 “일제타격식(TOT)으로” 쏘았다고 한다. 다른 보도에서는 120여 발을 쏘았다고 하였다. 정부 소식통들에게는 남측에 불리한 정보를 축소하여 언론에 흘려주는 관행이 있으므로, 120여 발을 쏘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정보로 보인다.

그가 말한 일제타격식이란 동시탄착 포사격(time-on-target barrage)을 뜻한다. 동시탄착 포사격이란, 군사기지처럼 고정된 큰 타격목표를 향해 포탄을 퍼붓는 일제사격(salvo)이 아니라 전함처럼 이동하는 작은 타격목표를 조준하여 쏘는 정밀타격이다. 여러 곳에 배치한 각종 포를 약간의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발사하여 포탄비행시간을 절묘하게 조절함으로써 여러 발 포탄을 동시에 동일표적에 명중시키는 것이다. 120여 발을 5분 동안에 동시탄착 포사격 방식으로 집중발사하여 명중시키는 것은 고도의 포격술을 연마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연평도 앞바다와 우도 앞바다를 향해 해안포를 쏜 3차 위협사격만 동시탄착 포사격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민군 해안포 부대는 언제나 동시탄착 포사격 방식으로 쏜다. 바다 위에는 군사기지 같은 큰 타격목표가 없고, 전함 같은 작은 타격목표만 떠다니므로 그런 고난도 포격술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북 침공작전을 연습하는 미국군 7함대 전함이나 한국군 전함을 동시탄착 포사격으로 격침하기 위한 인민군의 실탄사격훈련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동시탄착 포사격을 연마한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이번에도 그 방식으로 위협사격을 한 것이다.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위협사격에 동원한 해안포는 122mm 해안포(사거리 24km), 130mm 해안포(사거리 27km), 152mm 곡사포(사거리 27km), 170mm 자행포(사거리 60km, 남측에서는 자주포라 불림) 등이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2007년경 인민군은 사거리가 짧은 76mm 해안포와 100mm 해안포를 사거리가 긴 122mm 해안포와 130mm 해안포로 교체하였다고 한다.

이전에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사격할 때는, 각종 해안포에 더하여 240mm 방사포(사거리 65km)까지 동원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이번에 공개한 정보만 봐서는, 인민군이 이번 위협사격에 240mm 방사포를 동원하였는지 알기 힘들다.

야간사격이 더 위협적이었다

박선영 대변인이 방송대담에서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대청도 앞바다와 우도 앞바다를 향해 해안포를 쏠 때, 조명탄까지 쏘았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3차 위협사격이 끝난 시각은 오후 6시 14분이었으므로, 그 시각에는 아직 날이 어둡지 않아 조명탄을 쏠 필요가 없었다. 8월 9일 백령도의 일몰시각은 오후 7시 35분이었다.

박선영 대변인이 말한 대로,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위협사격을 하면서 조명탄까지 쏘았다면, 오후 8시가 훨씬 지나서 위협사격을 하였어야 이치에 맞다. 그런데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에 나오는 위협사격 종료시각은 오후 6시 14분이다. 박선영 대변인이 공개한 정보와 한국군 합참본부가 발표한 정보가 서로 어긋나는 데,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일까?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조명탄을 쏘며 위협사격을 하였다는, 박선영 대변인이 공개한 정보의 사실여부를 밝혀주는 또 다른 정보는 <연합뉴스> 2010년 8월 10일 보도기사에 들어있다. 그 보도기사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하였는데, 그는 “어제(8월 9일을 뜻함-옮긴이) 오후 8시 25분과 8시 37분께 북한 연안지역에서 포성이 들렸으며 일부 조명탄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측의 해상훈련에 대한 대응조치 일환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북측 연안지역에서 포성이 들렸다는 말은 인민군이 또 다시 해안포 위협사격을 하였다는 뜻이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이 오후 6시 14분에 끝났다고 발표하였지만, 위의 정보를 보면 그들은 오후 8시 25분과 8시 37분에 조명탄을 쏘면서 또 다시 4차 위협사격을 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은폐한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4차 위협사격은 한국군 전함에게 더 위협적인 야간사격이었다.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4차 위협사격에서 서해 다섯 섬 가운데 어느 섬 앞바다를 향해 쏘았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북측 연안지역이라고 말했는데, 연안지역이 백령군도 쪽인지 아니면 연평군도 쪽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박선영 대변인이 공개한 정보를 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대청도 앞바다와 우도 앞바다를 향해 위협사격을 할 때 조명탄까지 쏘았음을 알 수 있으므로, 4차 위협사격은 대청도 앞바다와 우도 앞바다를 향해 각각 쏜 것으로 보인다.

객쩍은 농담 꺼냈다가 찔끔한 국무부 대변인

2010년 8월 9일 필립 크라울리(Philip J. Crowley) 국무부 대변인은, 국무부의 매일 언론설명회(Daily Press Briefing)에서 기자들로부터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에 대한 논평을 요구 받고 “나는 그 결과가 물고기들이나 많이 죽인 것이었다고 확신하며, 우리는 페타(PETA)가 그에 대해 항의해주기를 확실하게 바란다”고 말했다. ‘페타’란,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하는 사람들(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이라는 동물애호단체의 약칭이다.

농담할 분위기가 아닌 데도 객쩍은 농담을 꺼내 주책을 부린 크라울리 대변인의 태도에 눈쌀을 찌푸린 기자들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따져들자, 그는 찔끔하여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다가 이런 말로 곤혹스러움을 피했다. “(인민군이) 문제의 지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포탄을 쏜 것은 명백하게도 우리가 바라는 일이 아니며 긴장을 감소하는 최선의 길도 아니다. 우리는 북측이 그러한 허풍으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그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크라울리 대변인의 답변은, 그가 한반도 군사상황에 대해 얼마나 무식한지를 드러내준 것이다. 한반도 군사상황은 객쩍은 농담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을 계기로, 서해 군사상황에 관한 아래의 정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인민군이 실전배치한 대구경 해안포는 서해 5도 해역을 겨냥하고 있다. 백령도에서 빤히 건너다 보이는 장산곶, 대청도에서 빤히 건너다 보이는 옹진반도, 그리고 연평도에서 빤히 건너다 보이는 강령반도를 비롯한 황해남도의 굴곡 많은 해안선을 따라 인민군 해안포가 집중 배치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황해남도에 속한 기린도, 월래도, 대수압도, 장재섬 같은 섬에도 인민군 해안포가 전진배치되었다. <연합뉴스> 2010년 8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서해 5도 해역을 겨냥한 인민군 해안포는 1,000여 문이다.

그런데 서해 5도에 있는 한국군 전탐감시대는 인민군 해안포를 거의 볼 수 없다. 남측 언론매체에 보도된 현장사진에는 인민군이 해안절벽에 동굴처럼 파놓은 포대 몇 개만 보일 뿐이고, 1,000여 문이나 되는 포대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은 인민군 해안포 발사징후를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 지역에 해안포 이외에도 차량발사대에 실린 240mm 방사포나 무궤도차량에 실린 170mm 자행포(자주포)가 얼마나 더 많은지 외부에서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만일 인민군이 그처럼 수많은 해안포, 방사포, 자주포를 대량사격하면, 하늘에는 검붉은 포탄 융탄자(barrage carpet)가 깔린다. 이것은 7함대 항모강습단이 자랑하는 이지스 방공망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백령도에서 북측 월래도까지는 12km, 연평도에서 북측 장재섬까지는 13km, 백령도에서 북측 장산곶까지는 17km, 대청도에서 북측 기린도까지는 20km다. 그런데 인민군 해안포 부대에 실전배치된 각종 대구경 장거리포 사거리는 27-60km에 이른다. 서해 5도 해역 전체가 인민군 해안포 사거리 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게이츠 국방장관의 샌프란시스코 발언

<연합뉴스> 2010년 8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8월 8일 오후 8시경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첫 위협사격을 하자, 한국군 합참본부는 인민군이 해안포를 쏘고 나서 대함 미사일도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판단한 한국군 합참본부는, 서해 5도 해역까지 북상시킨 전함들을 인민군 대함 미사일 사거리 밖으로 물러나도록 퇴각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한국군 전함에게 퇴각명령을 내렸으면서도,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대북 감시태세를 강화하였다고만 말했다.

그런데 인민군 미사일 부대에 실전배치된 대함 미사일은 신형 미사일이다. 북측이 아직 대함 미사일을 자체로 생산하지 못하던 1970년대 초에 소련과 중국에서 수입했던 스틱스 미사일과 실크웜 미사일에 관한 낡은 정보만 들으면, 현재 군사상황을 크게 오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낡은 정보에 따르더라도, 한국군 전함은 황해남도 해안에서 남쪽으로 100km 밖까지 물러나야 미사일 피격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 서해 군사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2003년 2월 24일 동해안에 나타난 인민군 차량발사대에서 발사된 KN-01 대함 미사일은 사거리가 120km이고, 2005년 6월 20일과 21일 인민군이 동해안에서 발사한 대함 미사일은 사거리가 340km다. 2009년 10월 6일 <동아일보>는 2009년 현재 북측이 최신형 미사일 KN-06을 개발하는 중이라고 보도한 것을 보면, KN-01 미사일에서 시작하여 KN-05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각종 신형 미사일들이 이미 실전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인민군이 실전배치한 각종 미사일들 가운데는 KN-01 대함 미사일보다 성능이 좋은 대함 미사일들이 더 있을 것이다. 황해남도 남쪽 해안에서 전라남도 서해안 최남단 해상까지 거리가 약 340km이므로, 인민군이 사거리 340km의 대함 미사일을 실전배치한 것은, 한국군 전함이 서해 어느 곳에 있건 미사일 피격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국방장관은 얼마 전 인민군 대함 미사일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하였다. 2010년 8월 12일 미국 해병대 기념사업회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연을 주최하였는데, 그 자리에 연사로 출연한 게이츠 국방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다가올 일을 생각하면, (6.25전쟁 때) 인천 해안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상륙강습전을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인민군에게) 긴 사거리와 높은 정밀도를 가진 대함 미사일이 있기 때문에, (미국군 상륙강습함들이) 해안에서 25마일(40km), 40마일(64km), 60마일(96km) 또는 그 이상 떨어진 바다에서 (해병대원을) 하선(debark)시켜야 할지 모른다.” 그가 에둘러 말한 것을 직설하면, 미국 해병대 원정강습단은 인민군 대함 미사일의 위력에 눌려 상륙강습전술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군사문제에 무지한 국무부 대변인은 인민군 해안포 위협사격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허풍이라고 빈정거렸지만, 군사문제를 아는 국방장관은 인민군 대함 미사일에 대해 크게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게이츠 국방장관이 미처 알지 못한 정보가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7함대 항모강습단과 해병대 원정강습단의 침공에 대비해 기상천외한 격파전술을 연마해온 인민군이 이제껏 외부에 공개한 무기와 전술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경고통신을 포기한 한국군 합참본부

<한국일보> 2010년 8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위협사격을 개시하자, 한민구 합참의장과 군 지휘관들은 합참본부 지휘통제실에서 비상근무에 들어갔고, 김진형 국가위기관리센터장과 청와대 관리들은 청와대 지하상황실에서 합참본부 지휘통제실과 화상연락을 주고 받으며 비상대책을 서둘렀다.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은 해외 출장 중이었다.

대북 경계 및 전투대기태세를 강화하라는 긴급명령이 한국군에게 내려진 시각은, 인민군 해안포 부대가 3차 위협사격을 하고 있었던 8월 9일 오후 5시 49분이었다.

대북 경계 및 전투대기태세를 강화하라는 긴급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한국군은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을 속수무책으로 관망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군이 해안포 위협사격을 관망만 하였다고 표현하는 것은 좀 부정확하다. 정확히 표현하면, 한국군이 관망만 한 것은 아니고, 국제상선무선통신망을 통해 북측에게 경고통신을 세 차례 발신한 것이다.

그러나 경고통신은 말짱 헛일이었다. 인민군은 한국군이 세 차례나 보낸 경고통신을 받았는지 말았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경고통신 이후에 되레 위협사격 강도를 더 높여 조명탄을 쏘며 야간위협사격까지 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자기들이 8월 9일 오후 6시 14분에 3차 경고통신을 보내자, 인민군이 그 경고통신을 받고 해안포 위협사격을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한 것처럼 말했으나 그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 소리다. 한국군이 3차 경고통신을 보낸 때로부터 2시간 11분이 지난 오후 8시 25분에 인민군은 4차 위협사격을 또 다시 시작하였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2시간 11분을 기다렸다가, 조명탄을 쏘면서 야간위협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이 오후 6시 14분에 끝난 줄 알았던 한국군 합참본부는 오후 8시 25분부터 야간위협사격이 또 시작되자 경고통신마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방일보> 2010년 8월 5일 보도에 따르면, 8월 3일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우도에 배치된 전탐감시대를 찾아가서 “총원 전투배치훈련을 불시에 실시했”는데, “김 총장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강도 높은 전투배치훈련”이 진행되었다고 하면서, “특히 적의 해상침투경로와 도발양상에 따른 다양한 대응방안을 확인하고 전탐감시대 본연의 임무인 조기경보 역할을 수행하는 부대 특성을 고려해 실제 상황전파 소요시간을 치밀하게 점검, 전투대비태세를 완비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은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으로 헛일이 되고 말았다.

왜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을까?

한국군 합참본부는 “우리의 경고통신 이후 북이 추가 발사를 하지 않아 대응사격을 자제한 것”이라고 하면서, 대응사격 자제를 “교전수칙에 따른 정상적인 대응”이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어설픈 변명이다.

2010년 1월 27일 인민군이 서해 5도 해역을 향해 해안포, 방사포, 자행포를 400여 발 쏜 뒤에, 한국군 합참본부는 만일 인민군이 쏜 포탄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남측 관할수역에 탄착하는 경우 즉각 대응사격에 나서 인민군이 1발을 쏘면 한국군은 3발을 쏘겠다고 강경하게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인민군 해안포 부대의 위협사격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런 식의 대북 강경발언이 허풍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군은 대응사격을 자제한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이다. 그들은 왜 대응사격을 포기한 것일까?

한국군이 인민군 위협사격에 맞서 대응사격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은, 교전권을 갖지 못한 한국군 합참본부와 청와대가 내리는 것이 아니다. 한국군의 무력행사에 관한 결정은,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장악한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내린다. 따라서 한국군이 대응사격을 포기한 까닭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대응사격을 하지 말라고 한국군에게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왜 대응사격을 포기하라고 명령한 것일까? 그 해답은 마이클 멀린(Michael G. Mullen) 합참의장의 최근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연합뉴스>가 2010년 8월 12일 워싱턴발로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멀린 합참의장은 현지 날짜로 8월 9일 미국군 병사들에게 한 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자신과의 대화에서 ‘상당한 초점’이 북한 문제에 맞춰져 있음을 시사”하면서 “북한이 향후 어떤 행동을 취할지 불확실하다고 전망한 뒤 매우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 연설에서 드러난 것처럼,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대응사격 포기를 한국군에게 명령한 까닭은, 미국군 수뇌부가 인민군에게 매우 신중한 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군 수뇌부가 인민군에게 매우 신중한 대응을 하는 까닭은, 멀린 합참의장의 연설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인민군의 군사행동이 “매우 예측하기 힘들고, 매우 위험스럽기” 때문이다. 멀린 합참의장이 에둘러 말한 것을 직설하면, 미국군 수뇌부는 인민군을 매우 무서워한다는 말이다. 미국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참가하는 대규모 대북침공연습이 한반도 군사정세를 긴장시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지 않고 정전상태가 유지되는 까닭은, 미국군 수뇌부가 인민군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2010년 8월 16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