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은 왜 전작권 반환을 연기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3년 4개월 전의 결정을 깨고 3년 7개월 늦추다

미국-캐나다 중부 국경지대에 모여 있는 다섯 개 큰 담수호 가운데 넓이가 경상북도 만한 온타리오 호수(Lake Ontario)가 있는데, 그 호수를 굽어보는 캐나다 토론토 시내에 오성급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있다. 현지 날짜로 2010년 6월 26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그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람들의 이목이 그 회담에 쏠린 까닭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장악, 행사해온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wartime operational control authority)을 한국군에게 돌려주는 반환시기를 2015년 12월 1일로 늦춘다는 발표가 그 회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2007년 2월 22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과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국방장관은 미국군사령관이 지난 57년 동안 장악, 행사해온 한국군 전작권을 새로 창설될 한국군통합사령부에게 2012년 4월 17일 오전 10시에 돌려주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 4개월이 지난 뒤에 열린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에서 본래 결정을 바꿔 전작권 반환을 3년 7개월 늦추기로 하였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미국군은 전작권 반환을 결정한 2007년 2월 이후 3년 4개월 동안 해마다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점검, 평가하면서 반환준비작업을 시행해 왔다. 이를테면, 2009년 10월 22일에 나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은 전작권 반환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2012년 4월 17일로 잡혀있는 반환일정을 예정한 대로 추진해 나가기로 재확인하였다. 2010년 6월 27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장광일 국방정책실장의 말에 따르면, 전작권 반환작업은 현재까지 65% 정도 시행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와서 갑자기 반환을 3년 7개월 연기한다는 한미 정상회담 발표가 나왔으니, 간단히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출범할 때부터 전작권 환수를 반대한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환수를 연기한 조치를 당연하다고 여겼을 터이나, 전작권 반환에 적극적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갑자기 반환을 연기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전작권 반환을 연기한 조치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런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반도 군사정세가 천안함 사건으로 위태롭게 되었다고 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불안감을 느껴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에 사고진상이 속속 드러난 것처럼, 천안함 침몰원인은 인민군 어뢰공격이 아니었으므로 천안함 사고가 한반도 군사정세를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으며, 작전통제권도 갖지 못한 한국군 수뇌부가 대북 군사조치를 취할 것처럼 목청을 높인 것 뿐이다.

미국군 수뇌부는 7함대 항모강습단을 서해로 출동시켜 북측을 협박해 달라는 한국군의 간청을 선뜻 들어주지 못하고, 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이 어떤 대응행동을 취할 지를 몰라 눈치만 살피는 형편이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대북 군사조치의 목청을 좀 낮추라고 억제하였다는 <한겨레> 2010년 7월 7일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수구세력들이 허풍 떠는 대북 공세발언만 듣고, 천안함 사고 이후 한반도 전쟁위기가 심각해졌다고 판단하는 것은 수사(rhetoric)와 현실(reality)을 구분하지 못하는 착오다.

그것만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관리들이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한 때는 천안함 사고가 일어나기 훨씬 전이었으므로, 전작권 반환 연기 결정과 천안함 사고가 직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설명하면, 미국이 인민군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한 것으로 몰아가며 호들갑을 떨었던 까닭은,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기 위한 술책이 아니라 당시 파탄 직전까지 밀려간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문제를 원래 합의한 대로 풀어내려는 고도의 술책들 가운데 하나였다. 천안함 사고와 후텐마 기지 이전문제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지면관계상 논하지 않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는 문제는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중대한 문제다. 그처럼 중대한 문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군 전작권을 2012년 4월 17일 오전 10시에 돌려주기로 한 본래 결정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내린 것이고, 반환시기를 3년 7개월 뒤로 늦춘다는 새로운 결정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내린 것이다.

그런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전작권 반환 연기 문제를 결정하기 전에, 정치, 외교, 군사부문에서 관련정보를 재검토한 회의자료를 만들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하는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관리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백악관 국가안보관리들 가운데 다섯 명이 그 과제를 떠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거명하면,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Assistant to the President for National Security Advisor) 제임스 존스(James L. Jones), 국가안보 부보좌관(Deputy National Security Advisor) 토머스 도닐론(Thomas E. Donilon),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Executive Secretary) 네잇 티빗츠(Nate Tibbits), 그리고 18명 선임보좌관(Senior Director)들 가운데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제프리 베이더(Jeffrey Bader)와 국방 담당 선임보좌관 배리 페이블(Barry Pavel)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람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제프리 베이더다.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는 문제에 관한 실무책임을 맡은 백악관 관리가 바로 그다.

누가 간청과 수락의 변주곡을 연주하였을까?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는 문제는 한미관계에서 제기된 것이므로, 그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은 외형적으로 보면 한미 양쪽이 합의하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래서 언론매체들은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기로 한미 양쪽이 합의하였다고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합의하였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간청과 수락이 오고갔음을 알 수 있다.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는 문제에 관련하여 청와대가 백악관에 요청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간청했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본래 결정된 대로 2012년 4월 17일 오전 10시에 전작권을 반환하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의사가 확고했고, 따라서 청와대는 그처럼 확고한 의사를 바꿔 달라고 간청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오바마 토론토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반환을 연기한다는 발표가 나왔으니, 이명박 대통령이 간청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수락하여 전작권 반환이 연기된 것이 확실하다. <중앙일보> 2010년 6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난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의 안보환경과 양국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의미에서 우리가 2015년 말까지 (전작권) 이양을 연기하는 (요청을 한) 것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수락해 준 걸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위의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제프리 베이더도 “한국이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전 유지를 위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며 전작권 전환 연기를 원했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도 “미국이 한미동맹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 한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고위관리는 제임스 스타인벅(James B. Steinberg) 국무부 부장관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백악관에서 전작권 반환 연기 문제를 실무적으로 처리한 관리는 베이더 선임보좌관이고, 국무부에서 그 문제를 실무적으로 처리한 관리는 스타인벅 부장관이다. <중앙일보>가 인용, 보도한 베이더 선임보좌관과 스타인벅 부장관의 말을 정리해 보면, 청와대는 한반도 안보정세가 이전과 달리 변화되었다는 구실로 백악관에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백악관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그 간청을 받아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청와대가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백악관이 그 간청을 받아준 것은 사실이지만, 간청과 수락이 오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연기를 결정하게 된 전모(全貌)를 밝히지 못한다. 청와대가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고 간청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환 연기 문제를 결정하는 데서 그들의 간청은 부차적 요인이었다. 또한 백악관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청와대의 연기 간청을 받아준 것 역시 사실이지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보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연기 간청을 받아주었다는 설명은 너무 피상적이다.

이 글에서 더 밝혀내야 하는 것은, 백악관이 청와대의 연기 간청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평소와 달리 비상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백악관이 드러내지 않은, 그리하여 언론매체들도 보도하지 못한 결정적이고, 특별한 요인을 찾아내야,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과정이 어떠했는지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워싱턴에 간 ‘전작권 특사’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할 때부터 전작권 환수문제를 재조정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2008년 10월 7일에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 “전작권 전환의 적정성을 평가, 보완”하는 과제를 포함시켰다. 그러한 그가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려고 애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기의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 시작한 때는 2010년 2월이다. 2010년 6월 28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기자단과 진행한 일문일답에서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전작권 연기 협상을 언제부터 시작하였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대해 “지난해 말까지 (이미 합의된 전작권 전환 계획의) 이행을 전제로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맞추기 어렵다고 보고 올해 2월부터 본격 물밑작업을 했다”고 답변하였다. 짤막한 답변이었지만, 아래와 같은 정보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답변이었다.

첫째,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이 별도로 진행된, 주요 20개국 토론토 정상회의에는 김성환 외교안보수석만이 아니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대통령을 수행하여 참석하였다. 그런데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배경과 과정을 기자단에게 설명해 준 사람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다. 이것은 외교통상부 관리들이 아니라 청와대 외교안보관리들이 전작권 환수 연기를 추진하였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는 방침을 관철한 것이다.

둘째, 청와대 외교안보관리들이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시작한 때가 2010년 2월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진행한 청와대 외교안보관리들의 은밀한 움직임은 언론에 드러나지 않았는데, 한 가지 움직임이 물 위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의 워싱턴 방문이 언론에 노출된 것이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가 2010년 2월 3일부터 5일까지 2박3일 동안 워싱턴을 방문하였다고 보도하였다. 2010년 2월 4일 <연합뉴스>는,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방미 기간 카운터파트인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비롯, 미 당국자들과 만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이 위에서 언급한,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기 위한 물밑작업은 김태효-베이더 회동으로 시동이 걸린 것이다.

<중앙일보> 2010년 6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2010년 2월 3일부터 5일까지 워싱턴을 방문해 베이더 선임보좌관을 만나고 서울로 돌아간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미국이 부담스러워하긴 해도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내용으로 보고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작권 특사’였다.

그런데 당시 남측 언론매체들은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사전에 조율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였을 것으로 추측한 기사를 내보냈다. 엉뚱한 방향으로 추측기사를 쓴 것이다.

2010년 2월 22일 통일연구원 주최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기자들과 만나 “정상회담에 관한 남북 간 접촉이 없는 만큼 의제에 대한 논의도 진행된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파다했던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물밑접촉설을 부인한 것이다. <신동아> 2009년 12월호와 2010년 1월 13일에 발간된 <시사저널> 제1056호에 보도된 기사를 종합하면, 2009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의 온건파 심복인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북측 고위급 인사와 비밀접촉을 하자, ‘MB 네오콘’으로 불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강경파 심복들이 대북 비밀접촉에 관한 극비정보를 언론에 흘려주며 가로막았는데, 대북 비밀접촉을 가로막은 장본인이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대북 접촉을 가로막고,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기 위한 대미 접촉을 밀고 나간 것이다.

청와대는 왜 상당한 진통을 겪었을까?

2010년 4월 22일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하여 “한국 정부의 전작권 전환 시점 연기 요청에 대해 최근 백악관이 검토를 마치고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이런 의견 접근에 따라 양국이 세부 후속조치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 보도는 백악관이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는 청와대의 간청을 수락한 때가 2010년 4월 중순이었음을 말해준다. 백악관이 청와대의 간청을 수락한 무렵에 있었던 청와대의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첫째 움직임은 이명박-오바마 워싱턴 대화다. 2010년 6월 28일 <중앙일보>는 2010년 4월 12일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짬을 이용하여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는 문제를 “조심스럽게 화제에 올렸”다고 보도했으며, 2010년 4월 22일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하여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주(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옆자리에 앉아 전작권 전환 시기 연기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안다”고 보도하였다.

둘째 움직임은 김태효-스타인벅 회동이다. 미국 국무부가 매일 발표하는 회동약속 시간표(Daily Appointments Schedule)를 뒤져보면, 2010년 4월 15일 오후 1시에 국무부 청사에서 제임스 스타인벅 부장관이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을 면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회동은 국무부에게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고 간청한 자리였다.

그런데 김태효-베이더 회동, 이명박-오바마 대화, 김태효-스타인벅 회동, 백악관의 수락으로 이어진,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기 위한 물밑작업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6월 27일 보도는 “전작권 전환 연기 결정과 관련, ‘한미 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말해 물밑협상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었음을 시사했다”고 하였다. 물밑작업을 하는 동안 청와대는 왜 상당한 진통을 겪은 것일까?

<동아일보> 2010년 4월 22일 보도는 이명박 정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하여 “백악관과 미 국무부와는 달리 미 국방부가 여전히 연기 방침에 부정적인 것으로 안다”고 하였다. 이 보도는,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는 청와대의 간청을 미국군 수뇌부가 들어주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미국군 수뇌부가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는 문제에 제동을 걸자 다급해진 청와대는 로벗 게이츠 국방장관을 직접 만나 간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수행한 고위관리들은 2010년 6월 4일부터 5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연례 아시아 안보정상회의 샹그릴라 대화(Shangri-La Dialog)에 참석하는 길에 게이츠 국방장관을 만났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장관은 각각 게이츠 국방장관을 따로 만나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도 게이츠 국방장관을 따로 만났다. 청와대 비서관이 미국 국방장관을 제3국에서 접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전작권 특사’ 자격으로 게이츠 국방장관을 접견하고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고 애걸하였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가 게이츠 국방장관을 설득하였다고 표현하였지만, 두 사람의 지위 격차로 보나 미국군 수뇌부가 전작권 반환 연기를 반대하고 있었던 당시 분위기로 보나, 그가 게이츠 국방장관에게 애걸하였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장관이 간청하고,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애걸했어도 게이츠 국방장관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2010년 6월 28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기자단과의 일문일답에서,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전작권을 2015년 12월 1일에 환수하는 시기문제를 언제 합의하였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대해 “어제(6월 25일을 뜻함-옮긴이) 서울을 떠나기 직전에도 양국 국방장관이 전화로 협의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협의했다”고 답변하였다. 미국군 수뇌부는 전작권 반환시기를 확정해 주지 않고 청와대의 애를 태우다가 결국 이명박-오바마 토론토 정상회담 직전에 가서야 반환시기를 확정해 준 것이다. 미국군 수뇌부는 전작권을 본래 결정한 시기에 돌려주려는 확고한 생각을 품고 있었으므로, 그처럼 막판까지 청와대의 애를 태우며 ‘제동장치’를 풀지 않고 있었다.

리처드 롤리스 발언이 암시한 것

백악관이 청와대의 연기 간청을 받아주었다는 소문이 워싱턴 정가에 흘러나온 무렵인 2010년 5월 6일, 워싱턴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International Studies)가 개최한 토론회에 리처드 롤리스(Richard Lawless)가 지정토론자로 나섰다. 부쉬 정부 시기에 국방부 아시아 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였던 그는 전작권 반환 협상을 주도했는데, 이른바 백성학 사건으로 자기 정체가 노출될 위험이 닥치자 관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런 그가 토론회에 나가서 전작권 반환 연기문제에 대해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군이 자기 임무를 탁월하게 수행하면서 전작권을 넘겨받을 준비를 하였기 때문에 (전작권 반환) 합의에 이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연기를 결정한다면, 그 것은 정치적 동기에서 나온 결정일 것이며, 그런 정치적 결정이 남코리아에게 최고 이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작권 반환을 연기하기로 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결정에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에 작용하는 정치적 동기란 이른바 국익 추구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미국에게, 더 정확히 표현하면 미국의 지배계급에게 이익이라고 판단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전에 내린 어떤 결정도 뒤집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전작권 반환에 관련하여 이전에 내린 결정을 뒤집게 만든 ‘미국의 이익’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지금 군사부문에서 백악관이 추구하는 가장 큰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은 지구적 범위에서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2009년 9월 24일 미셸 플러노이(Michele Flournoy)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현재 국방부가 중심이 되고, 정보당국 및 기타 부처가 참여한 가운데 유럽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포괄하는 미사일방어와 관련한 전략적 접근방법을 재검토하는 작업이 포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면서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북코리아와 이란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미국과 동맹국들을 보호”하는 원칙이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명백한 것은, 미국이 남측을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에 끌어들이려고 하였고, 지난 시기 노무현 정부는 실익은 없고 돈만 대주는 그 사업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여 한미동맹을 ‘복원’하겠다고 나서자 상황이 바뀌었다. 2009년 8월 미국 국방부 산하 미사일방어국(Missile Defense Agency)이 우주 및 미사일 방어에 관한 연례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는 남측이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인도와 함께 지구적 미사일방어체계에 관심을 표명하였다고 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미사일방어에 관련된 토론을 요구하고, 관련된 분석자료도 요구”하였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2010년 2월 1일에 발표된 ‘탄도미사일 검토보고서(BMDR)’는 남측을 “미사일방어체계의 중요한 동반자”로 인정하고, 미사일방어 국제협력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남측이 진일보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고 명기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2010년 4월 15일 미사일방어국 패트릭 오레일리(Patrick J. O'reilly) 국장은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소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우리는 현재 20개가 넘는 나라들과 미사일방어사업을 연구,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하면서, 협력대상들 가운데 남측을 포함시켰다. 이 발언은 우연한 기회에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발언은 백악관 국가안보관리들, 미국군 수뇌부, 국무부 관리들이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는 청와대의 간청을 놓고 벌인 내부 논의가 막바지에 이른 무렵에 나온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는 청와대의 간청과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에 남측을 끌어들이려는 백악관의 요구가 서로 맞아떨어졌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신동아> 2008년 2월호는, “익명을 요청한 보수성향 대미관계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하였는데, 그는 “내부적으로 MD 참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해도, 이를 일절 거론하지 않은 채 ‘몸값’을 높여가며 한미 간 주요 현안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공론화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일정 재논의를 이와 연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는 청와대의 간청을 수락한 대신, 청와대는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에 참가하기로 밀약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전작권 반환과 후텐마 기지 이전

한국군 전작권을 2012년 4월 17일 오전 10시에 한국군에게 돌려주기로 한 본래 결정은, 백악관이 청와대의 간청을 수락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에 따라 내려진 것이다. ‘군사변혁(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또는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이라는 신종 개념으로 세상에 알려진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는 한동안 시도해 보다가 그만두거나 도중에 다른 것으로 바꾸는 전술적 요구가 아니라, 앞으로 수 십년 동안 일관되게 전개할 전략적 방침이다. 미국 합동군사령부(Joint Forces Command)가 정의한 ‘군사변환’의 의미를 그대로 옮기면, “평시에는 설득하고, 전시에는 결정적이고, 어떤 형태의 분쟁에서건 우수한, 군사작전의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우세한 군대를 창설하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군 전작권을 돌려주는 문제는, ‘군사변환’에 따라 미국군을 탈바꿈시키는 군사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청와대가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고 간청하고, 백악관이 그 간청을 수락함으로써 반환이 연기되었다고 분석하는 것은, 결정적 요인을 간과하고 부차적 요인만 논하는 것이다. 또한 청와대가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에 참가하겠다는 전향적 태도를 취하였다 해도, ‘군사변환’에 따라 추진해 오던 미국군의 전작권 반환 일정을 그러한 전향적 태도만으로 변경시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전작권 반환을 연기한 결정적 요인은, 한반도 정세가 전작권 반환 연기를 요구할 만큼 변화되었다고 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판단이다. 따라서 백악관이 전작권 반환을 왜 연기하였는지 파악하려면, 한반도 정세가 전작권 반환 연기를 요구할 만큼 변화되었다고 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판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주목하는 것은, 김태효-베이더 회동이 있었던 2010년 2월 4일부터 백악관이 연기 간청을 수락한 4월 중순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동아시아 정책이 사상 최악의 곤경에 빠져있었다는 점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런 곤경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한반도 군사정세에 대한 판단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곤경은, 미일 양국이 2006년 5월에 합의했던 후텐마 기지 이전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민주당 정부와 일본 민주당 정부가 벌인 심각한 갈등이다. 갈등사건의 줄거리는 이렇다.

2009년 8월 말 일본 자민당의 집권연장 실패로 이른바 55년 체제가 무너지면서 등장한 민주당 정부가, 불평등한 미일관계를 대등한 동반관계로 전환하겠다는 이른바 신아시아주의(New Asianism)를 들고 나오자 미일 양국은 이내 갈등에 빠지고 말았다. 그 갈등은 사상 처음으로 미일동맹에 생긴 균열을 노출시켰으며,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정책의 대들보로 여기는 미일동맹이 손상될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2010년 5월 22일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외무상과 존 루스(John V. Roos) 주일미국대사가 후텐마 기지 이전 합의서에 서명하기까지 미일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이 지속, 증폭된 기간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겪은 곤란은 외부에서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였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였다.

첫째, 만일 후텐마 기지 이전에 실패하면, 미일동맹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미일동맹이 치명상을 입는 것은 미국이 중시하는 동아시아 정책이 미증유의 파국으로 밀려가는 것이다. 미국의 일본 정책이 파국으로 밀려가면, 연쇄반응이 일어나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중국 정책도 혼란에 빠지게 된다.

둘째, 오키나와에 있는 후텐마 기지는 북침공격을 상정하고 전진배치한 미국 해병대 항공전력이 주둔하는 군사전략거점이다. 만일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에 있는 헤노코(邊野吉)로 이전하지 못하면, 미국 해병대의 유일한 해외기지는 오키나와에서 2,270km 떨어진 미국령 괌(Guam)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것은 해병대 원정강습단(expeditionary strike group)의 발이 묶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군 수뇌부가 후텐마 기지의 괌 이전이 심각한 전력 공백을 불러올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처럼 심각해진 후텐마 갈등을 간신히 해결하느라 진땀 깨나 흘린 백악관 실무책임자가 제프리 베이더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다. 그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군 전작권을 반환하는 문제와 미국 해병대 후텐마 기지를 이전하는 문제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미일 양국의 후텐마 갈등을 해소할 전망이 불투명하였던 2010년 2월 초부터 4월 중순까지 미일동맹이 치명상을 입지나 않을까 하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백악관 국가안보관리들은, 미일동맹이 치명상을 입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예상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하였다. 한국군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는 청와대의 간청을 받아들인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그런 대비책들 가운데 하나였다. (2010년 7월 12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