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의 허와 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인터넷에 확산된 천안함-잠수함 충돌설

합동조사단이 결정적인 증거물이라고 하면서 꺼내놓은 어뢰추진기 잔해가 가짜임을 말해주는 반대증거들이 속속 나오는 바람에, 지금 어뢰추진기 잔해 가짜설은 가설이 아니라 차츰 진실로 굳어지는 중이다. 어뢰추진기 잔해 가짜설과 밀접히 연관된 가설이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이다. 누리꾼들과 인터넷 논객들 사이에 널리 퍼진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하는 바람에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가설이다.

이 글에서 그 가설을 다루는 까닭은, 천안함이 어떤 다른 물체와 충돌하여 침수되는 과정에서 함체의 무게균형이 깨지고 그 결과 절단되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정황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천안함 함교 유리창이 깨지지 않고 멀쩡한 상태로 인양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2010년 6월 8일 국방부가 누리꾼 55명을 초청하여 천안함 함체를 보여준 현장에서 촬영한 절단면 사진에는 놀랍게도 기다란 전구가 두 개 달린 형광등이 깨지지 않고 절단면 윗부분에 걸려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1,200t급 함체를 두 동강 낼 정도로 엄청난 폭발충격이 가해졌다면 당연히 깨졌어야 하는 유리창과 형광등이 원상태로 남아있는 것은, 천안함이 어뢰폭발 충격으로 절단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더욱이 합동참모본부가 천안함 사고를 상부에 보고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조작하였다는 사실이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로 드러나는 바람에,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결과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 천안함 사건은 사상 최대의 의혹사건으로 된 것이다.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천안함이 위로 솟구쳐오르며 파손될 만큼 엄청난 충격을 준 커다란 물체는 무엇이었을까? 천안함이 암초에 부딪쳐 그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지만, 암초충돌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안함 절단면에 남겨진 충격흔적은 함체 아래쪽에서 윗쪽으로 충격이 가해졌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만일 암초에 부딪쳤다면, 함체가 위로 솟구치지 않으며 충격흔적도 상향각으로 남지 않는다. 또한 천안함과 수상함(surface ship)이 충돌하였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지만, 수상함과 충돌한 것도 아니다. 해병대 초병들이나 천안함 견시병들이 사고현장에서 수상함을 보았다고 진술하지 않은 것을 보면 수상함과 충돌한 것은 아니며, 충격흔적이 천안함 함체 밑부분에 상향각으로 남겨진 것을 봐도 천안함과 수상함이 충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천안함을 침몰시킨 충격은 잠수함이 천안함 함체 아래쪽에 충돌하면서 발생하였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200t급 초계함을 들이받아 두 동강으로 절단시킬 큰 충격을 일으킨 잠수함이라면 천안함보다 함체가 몇 배나 더 큰 잠수함이었을 것이다. 원래 잠수함 함체는 엄청난 해저수압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 제작되었기 때문에 수상함에 비해 훨씬 더 견고하고 강하다. 그래서 잠수함과 수상함이 충돌하는 경우, 수상함이 함체 손상을 훨씬 더 많이 입게 된다.

천안함보다 몇 배나 더 큰 잠수함을 백령도 앞바다에 출동시킬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현재 미국이 보유한 잠수함 70척은 원자로를 장착한 대형 핵추진 잠수함들이다. 미국 해군에는 중형이나 소형 잠수함이 없다. 미국 잠수함은 6,900t급에서 19,000t급에 이르기까지 4종으로 분류되는데, 배수량 크기에 따라 열거하면, 로스앤젤레스급(Los Angeles-class)은 승조원 129명이 타는 6,900t 규모의 잠수함이고, 버지니아급(Virginia-class)은 승조원 134명이 타는 7,800t 규모의 잠수함이고, 시울프급(Seawolf-class)은 승조원 140명이 타는 9,100t 규모의 잠수함이고, 오하이오급(Ohio-class)은 승조원 155명이 타는 19,000t 규모의 초대형 잠수함이다. 미국의 주력 잠수함인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이 6,900t 규모인데 비해, 천안함은 1,200t 규모밖에 되지 않으니, 만일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하면, 침몰하는 쪽은 천안함이다.

미국의 대형 잠수함이 수심이 낮은 서해에서 잠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미국 잠수함은 서해에서 잠항할 뿐 아니라 서해안에 바짝 접근하기도 한다. 미국 군사전문지 <글로벌 밀리터리(Global Military)> 2009년 10월 18일부 보도에 따르면, 2009년 7월 서해에 출동한 미국 잠수함이 서해위성발사기지가 있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앞바다에서 “북코리아의 턱밑까지 가까이(close to North Korea under the nose)” 접근하여 정보를 수집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은 수심이 약 50m가 되는 천안함 사고현장에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이 잠항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첨단설비를 갖춘 미국 잠수함이 충돌사고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미국 잠수함 충돌사고는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이를테면, 2005년 1월 9일 괌(Guam)에서 남쪽으로 560km 떨어진 해역을 잠항하던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샌프란시스코호(USS San Francisco)가 해저암초를 들이받는 바람에 잠수함 앞부분이 깨져 승조원 한 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쳤다. 2009년 3월 19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반잠수상태로 항해하던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하트포드호(USS Hartford)가 미국의 24,900t급 초대형 상륙수송함 뉴 올리언즈호(USS New Orleans)와 충돌하였다. 그 사고로 하트포드호는 함체 상단부가 크게 깨지고, 좌현 앞부분에 달려 있는 잠수함 날개가 부러졌으며, 뉴 올리언즈호는 함체 밑부분에 4.9×5.5m 크기의 파공이 생겼고, 안정기 두 대가 손상을 입었고, 연료저장고가 깨지는 바람에 디젤유 95,000리터가 바다에 쏟아졌다.

미국 잠수함은 우리 나라 동해, 서해, 남해에서 돌아가며 충돌사고를 냈다. 1998년 2월 부산 영도에서 9.6km 떨어진 해상에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라 홀라호(USS La Jolla)가 어선 영창호와 충돌하였다. 2002년 10월 2일 밤에도 미국군이 주도하는 한미합동훈련에 동원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헬레나호(USS Helena)가 어선 두 척과 충돌하였다. 2004년 10월 12일에는 미국군 주도로 동해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하던 중에 그 훈련에 동원된 한국 해군 특수선박이 잠수함과 충돌한 것으로 보이는 사고로 침몰하였으나, 군 당국은 진상을 밝히지 않고 묻어버렸다. 이런 과거경험을 살펴보면, 천안함이 미국 잠수함과 충돌하여 침몰되었다는 가설이 뜬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 해군 보도국이 인터넷에 실어놓은 이색적인 사진

미국 해군 보도국(Navy News Service)이 인터넷에 공개한 사진 한 장이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에 불을 지폈다. 그 사진은 태평양사령부 휘하 7함대 소속 버지니아급 잠수함 하와이호(USS Hawaii, SSN 776)가 하와이에 있는 진주항 해군조선소(Pearl Harbor Naval Shipyard)에서 건선거(乾船渠) 수리(dry-dock repair)를 받는 현장을 찍은 것이다. 해군 보도국이 2010년 4월 8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하와이호는 2010년 3월 30일부터 진주항 해군조선소와 중급유지시설(Intermediate Maintenance Facility)에서 건선거 수리를 받았다고 한다. 건선거 수리는 5월 5일에 끝났다.

그런데 건선거 수리를 받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사진에 찍힌 하와이호는 함체 상단부 네 군데를 커다란 흰 천으로 가려놓고 수리를 받았다. 누리꾼들은 그 사진이 함체충돌로 손상된 부분을 흰 천으로 가려놓고 수리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언뜻 보면 그렇게 해석할 만하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정보를 파악하면, 하와이호가 천안함과 충돌하였을 가능성은 없다.

첫째, 2010년 4월 16일 <하와히 해군 소식(Hawaii Navy News)>은 하와이호가 예정된 일정에 따라 정기적으로 건선거 수리를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하와이호 건선거 수리가 충돌사고로 생긴 함체손상부분을 수리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만일 하와이호가 천안함과 충돌하였다면, 잠수함 함체 상단부에 솟아있는 전망탑(sail)이 천안함 함체 밑부분을 들이받았을 것이고, 따라서 깨진 전망탑을 수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에 보이는 하와이호 전망탑은 멀쩡하다. 사진을 합성하여 조작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셋째,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3월 26일 밤 9시 22분이었는데, 하와이호가 사건 발생 직후 현장을 빠져나가 3월 30일까지 불과 닷새만에 하와이에 도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와이호가 낼 수 있는 최고 항속은 시속 46km이므로, 닷새 동안 24시간 전속력 항해를 계속해도 5,520km밖에 가지 못한다. 인천에서 하와이 호놀룰루까지 직선거리는 7,345km이므로, 백령도 앞바다에서 진주항 해군조선소까지 항해거리는 약 7,500km다. 7,500km를 닷새만에 주파할 능력이 하와이호에게는 없다. 더욱이 충돌사고로 전망탑이 부셔졌다면, 그런 상태에서는 최고 항속으로 항해하는 것도 힘들 것이므로, 전망탑이 부셔진 하와이호가 닷새만에 7,500km를 초고속으로 항해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넷째, 만일 하와이호가 천안함과 충돌한 사고로 긴급수리를 받아야 하였다면, 백령도 앞바다 사고현장에서 괌의 에이프라항(Apra Harbor)에 있는 괌 조선소(Guam Shipyard)로 달려가지, 하와이 진주항까지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 나타난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주한미국군사령부 대변인 제인 크릭튼(Jane Crichton) 대령이 전자우편(email)을 통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한 <합동통신(Associated Press)> 2010년 6월 5일부 보도에 따르면, 천안함 사고 당시 서해에서는 미국군이 주도하는 한미연합군 대북침공연습인 ‘독수리(Foal Eagle) 훈련’의 일환으로 대잠수함 훈련이 벌어졌다고 한다. 크릭튼 대령은 <합동통신> 기자에게 대잠수함 훈련에 “미국 구축함 두 척과 다른 함선들(two U.S. destroyers and other ships)”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미국 구축함 두 척은 7함대 소속 9,200t급 미사일구축함 래슨호(USS Lassen)와 8,300t급 미사일구축함 커티스 윌버호(USS Curtis Wilbur)다. 미국 미사일구축함은 길이가 1km나 되는 예인식 수중음파탐지기(TASS, Towed Array Sonar System)를 함미에 달고 항해하는데, 바닷속이 잔잔하고 해수온도가 고를 경우 160km 밖에서 기동하는 잠수함도 찾아낼 수 있다.

미국 해군 전력이 서해에 출동하면, 인민군이 경계태세에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군도 긴장한다. 특히 서해에서 ‘독수리 훈련’이 실시되면, 중국군 북해함대가 긴장하고, 중국군 정찰위성이 서해 정찰을 강화한다. 이번에 ‘독수리 훈련’을 정찰위성을 통해 집중 감시한 중국은 천안함 사고에 대한 독자적인 정보를 파악하였다. 중국이 합동조사단 조사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정찰위성을 통해 직접 파악한 정보와 합동조사단 조사결과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한미국군사령부 대변인은 대잠수함 훈련에 미국 잠수함이 투입되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2010년 6월 7일 대언론 설명회에서 “훈련 당시 해군과 공군의 항공전력과 한미 해군의 수상함, 해상초계기(P3-C) 등이 참여했다. 잠수함은 우리 측에서 1척이 동원됐고 미국 잠수함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잠수함이 대잠수함 훈련에 투입되지 않았다고 단언하였다.

대잠수함 훈련에 미국 잠수함이 투입되지 않았을까? 대잠수함 훈련은,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하고 이동표적물로 삼은 한국군 잠수함을 수상함, 잠수함, 초계기가 공중, 수상, 수중에서 추적, 격파하는 입체적인 훈련이다. 미국 해군 보도국이 2010년 3월 23일에 보도한 자료를 보면,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하고 이동표적물 역할을 한 잠수함은 최무선함이다. 7함대 소속 미사일구축함이나 핵추진 잠수함이 이동표적물을 격파하는 훈련에서 가짜 폭뢰나 가짜 어뢰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인터넷에 떠돈 미국군 어뢰오폭설은 근거 없는 가설이다.

한반도에서 대북침공작전 연습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쪽은 미국군이므로, 대잠수함 훈련도 당연히 미국군이 기획하고 주도한다. 그런데 대잠수함 훈련을 기획하고 주도한 미국군이 자국 잠수함을 한 척도 동원하지 않고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하였다는 원태재 대변인의 발언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미국 해군 보도국이 2010년 3월 23일 경상남도 진해 발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7함대 소속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 콜럼비아호(USS Columbia, SSN 771)가 2010년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진해에 머문 뒤에 1,285t급 디젤 잠수함 최무선함과 함께 서해에서 실시되는 한미합동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잠수함이 현장에 없었다는 원태재 대변인의 말은 거짓이다.

대잠수함 훈련에 동원된 콜럼비아호는 어떤 잠수함일까? 신속공격 잠수함(fast attack submarine)으로 알려진 그 잠수함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다방면적인(versatile) 전함들 중에 하나”라고 격찬하는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토마호크(Tomahawk) 순항미사일 공격, 대잠수함 및 대수상함 추적, 정찰과 정보수집, 특수전 병력 침투 등 다양한 연안작전(littoral operation)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콜럼비아호는 서해 연안에서 작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하게 설계된 잠수함이다.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날, 콜럼비아호가 대잠수함 훈련에 투입된 것은 명백하지만, 그 것만으로는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을 사실로 입증하기 어렵다. 대잠수함 훈련에 투입되었으나 천안함과 충돌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콜럼비아호가 천안함과 충돌하였음을 입증할 만한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천안함-잠수함 충돌설이 가설이 아니라 사실로 된다. 이 민감한 논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을 요구한다.

최무선함 추적하며 백령도로 북상한 콜럼비아호

주한미국군사령부 대변인이 <합동통신> 기자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대잠수함 훈련이 벌어진 곳은 천안함 사고현장에서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해상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말하면,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이다. 이 해상은 서해 해상수송로를 지키는 전략요충지다. 한국군은 원래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각종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그런데 미국 해군 보도국이 2010년 4월 6일 서해 발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부 미국 해군 전력이 인근에서(in the near vicinity) 한국 해군과 합동훈련을 실시하는 중이었고, 수색과 구조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으로 급파되었다”는 것이다.

백령도와 격렬비열도 사이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백령도 앞바다와 대잠수함 훈련이 실시된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은 120km나 떨어졌다. 그런데도 미국 해군 보도국은 왜 백령도 “인근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진행 중이었다고 보도하였을까?

대잠수함 훈련은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맴도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격렬비열도 부근 해상에서 시작된 훈련은, 백령도 쪽으로 북상하는 이동표적물, 다시 말해서 인민군 잠수함으로 가정한 최무선함을 추적, 격파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남측 언론에 보도된 유사한 사례를 보면, 2004년 10월 10일부터 미국군 주도로 실시한 대잠수함 훈련도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까지 북상하면서 실시되었다. 대잠수함 훈련의 범위가 북방한계선 바로 남쪽 해상까지 북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천안함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콜럼비아호가 최무선함을 추적하면서 백령도 쪽으로 북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미국 해군 보도국은 백령도 “인근에서”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하는 중이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콜럼비아호는 백령도 앞바다 쪽으로 잠항, 북상하고 있었고, 같은 시각 천안함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대북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을 개연성을 높여준다.

주한미국군사령부 대변인은 <합동통신> 기자에게 “미한 대잠수함 훈련은 3월 25일 밤 10시에 시작되어 이튿날 밤 9시에 끝났다(The U.S.-South Korean anti-sub exercise began at 10 p.m. March 25 and ended at 9 p.m. the next day)”고 전했다. 대잠수함 훈련을 밤 10시에 시작하였다는 말은 심야훈련 위주로 진행하였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합동통신> 기자에게 “그 훈련은 천안함에서 일어난 폭발 때문에 종결되었다(The exercise was terminated because of the blast aboard the Cheonan)”고 전했다. 이와 관련하여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2010년 6월 7일 대언론 설명회에서 “사고 다음날인 27일에는 해양 차단작전, 잠수함 차단 격멸훈련 등을 실시하는 등 28일까지 훈련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천안함 사고로 중단됐다”고 말했다. 대잠수함 훈련을 3월 25일 밤 10시부터 3월 28일까지 진행하는 일정을 잡아놓은 것은 한미연합군이 사흘 동안 밤낮으로 계속되는 강도 높은 북침작전연습을 벌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문병옥 합동조사단 대변인은 “당시 키 리졸브 전체 훈련은 3월 28일까지였지만 26일 훈련은 사고 발생 전인 오후 9시에 이미 종료됐으며 이후 28일까지 예정돼 있던 다른 훈련은 사고가 발생해 중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 다시 말해서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기 22분 전에 대잠수함 훈련이 끝난 뒤, 훈련을 마친 미국 잠수함 콜럼비아호는 어디로 갔을까? 격렬비열도 인근 해상에서 백령도 쪽으로 북상한 최무선함을 추적, 격파하는 훈련이었으므로, 그 훈련을 마친 밤 9시에 콜럼비아호는 당연히 백령도 앞바다에 도착해 있었을 것이다. 세 가지 요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긴장 속에 진행되던 대잠수함 훈련이 밤 9시에 끝났으니, 그 때부터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은 휴식에 들어갔을 것이다. 천안함 사고 당시 자기들이 운동실에 있었다거나 빨래를 하고 있었다거나 외부와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었다는 생존 승조원들의 진술은, 그들이 휴식시간에 방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콜럼비아호 승조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3월 26일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긴장을 풀고 방심하던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충돌사고가 일어났을 개연성을 크게 높여준다.

둘째, 사고해역은 수심이 50m 정도다. 그런 바다에서 콜럼비아호는 당연히 해수면 가까이 올라가서 잠항한다. 잠수함이 해수면 가까이 올라가서 잠항하면 수상함과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셋째, 천안함 함체 밑에 수중음파탐지기(SONAR)가 설치되었는데, 천안함은 왜 콜럼비아호가 접근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까? 진주항 해군조선소 공보실(Pearl Harbor Naval Shipyard Public Affairs)이 2009년 10월 27일에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잠수함 하와이호가 2009년 9월 12일부터 26일까지 함체표면을 보강하는 공사를 받았다고 한다. 잠수함 함체에 특수한 함체 처리 타일(special hull treatment tile)을 덧씌운 것인데, 적함의 수중음파탐지기에서 발사된 음파를 흡수하는 스텔스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하와이호만이 아니라 콜럼비아호도 스텔스 기능 보강공사를 받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천안함에 접근할 때, 천안함 수중음파탐지기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까닭은 콜럼비아호 함체가 스텔스 기능 타일로 덮여있었기 때문이다.

왜 9시 15분을 9시 45분으로 고쳐놓았을까?

천안함 사고발생 시각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믿지 못하게 만든 새로운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정보는, 해군작전사령부가 천안함 사고 직후 합동참모본부에 상신한 보고서에 천안함 사고가 밤 9시 15분에 일어났다고 기록해놓은 것이다. 이 사실은 2010년 6월 10일 감사원이 발표한 ‘천안함 침몰사건 대응실태’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밤 9시 15분에 천안함이 사고를 당했다는 해군작전사령부의 보고를 받은 합동참모본부는 15분이라는 글자에 볼펜으로 ㄴ자를 그려넣어 9시 45분으로 고쳐놓았다. 이 사실은 국회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특위 위원인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2010년 6월 11일 천안함 특위 전체회의에서 폭로한 것이다.

합참본부는 해군작전사령부가 보고한 사고발생 시각을 왜 30분이나 늦추려고 가필하였을까? 군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보고서 조작행위는, 처벌 위험을 감수할 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만일 콜럼비아호가 천안함과 충돌했다면, 충돌사고에 대한 보고를 가장 먼저 받은 쪽은 주한미국군사령부였을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한국군은 보고체계가 너무 엉망이어서 늑장보고, 왜곡보고로 허둥대고 있었으며, 긴급명령을 내려야 하는 시각에 한국군 합참의장은 저녁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상태에 있었다. 실제로 합참본부 지휘통제실에 늑장보고가 전해진 시각은 밤 9시 45분이다. 합참본부는 사고발생 시각을 늑장보고를 받은 시각으로 고쳐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군 합참본부는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늑장보고를 받기 전에 주한미국군사령부로부터 먼저 통보를 받았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한국군 합참본부보다 먼저 천안함 사고에 관한 보고를 받은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한국군 합참본부에 사고발생 사실을 통보해주고 사태수습을 위한 긴급조치를 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다면, 한국군 합참본부는 사고발생 시각을 뒤로 늦추려고 가필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사고발생 시각을 뒤로 늦춰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는 시각을 뒤로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에 되도록 늦게 나타나야, 천안함과 충돌한 콜럼비아호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현장을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를 얻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해군 고속정 다섯 척이 사고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밤 10시 32분이었고, 해경 501함이 사고현장에 나타난 시각은 밤 10시 38분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때로부터 무려 1시간 10분이 지난 뒤에 사고현장에 나타난, 매우 이례적인 늑장대응이었다. 합동참보본부가 사고발생 시각을 조작한 것과 해군과 해경이 사고현장에 늦게 나타난 것은, 천안함과 충돌한 콜럼비아호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고 사고현장을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을까?

특이한 현상에 대한 의문은 어떻게 풀리는가?

만일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이 충돌하였다면, 천안함만 절단되어 침몰한 것이 아니라 콜럼비아호도 전망탑이나 상단부 등에 큰 손상을 입었을 것이고, 잠수함에 타고 있던 승조원이 부상당했거나 사망하였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미국은 해저에 가라앉은 잠수함 파편들을 수거하고,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인양했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이 그러한 행동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은 사고현장 일대를 차단하여 충돌사고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유지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사고현장을 차단하려면 사고발생 위치를 은폐하고, 언론의 취재활동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바다밑에 가라앉은 함미를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놓을 수 없는 조건에서, 그렇게 하려면 물 위에 떠있는 함수를 다른 곳에 끌어다 놓으면 된다. 함수가 사고현장에서 7.35km나 떨어진 먼 곳으로 이동한 뒤에 침몰한 이상한 현상에 대한 의문은, 함수가 조류를 타고 멀리 이동하였다는 군 당국의 황당한 설명으로는 풀리지 않으며, 함수를 다른 곳에 끌어다 놓았다고 보아야 풀린다. 실제로 언론의 취재활동은 3월 27일부터 사흘 동안 함수가 침몰한 엉뚱한 곳에서 벌어졌고, 그 사이에 미국은 함미가 침몰한 사고현장에서 콜럼비아호 파편을 수거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은 7함대 전력을 사고현장에 집중 투입하여 잠수함 파편을 수거했어야 한다.

① 7함대사령관 홍보실이 2010년 4월 19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현장 지휘관으로 임명된 7함대 상륙군사령관 해군 소장 리처드 랜돌트(Richard Landolt)는 사고현장에 투입한 상륙함 하퍼스 페리호(USS Harpers Ferry)에 승선하여 사건수습을 총지휘하였다. 해군 소장 피트 구마타오타오(Pete Gumataotao)가 주한미해군사령관으로 있는데도, 상륙군사령관을 현장 지휘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사고현장 지휘권이 7함대 상륙군사령관으로부터 주한미해군사령관으로 넘어간 때는 2010년 4월 17일이다. 만일 미국이 한국군의 천안함 인양작업을 도와주었다면,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있는데도 상륙군사령관을 별도로 현장 지휘관에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충돌사고를 냈기 때문에 그런 특별대책을 취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② 7함대사령관 홍보실이 2010년 4월 14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7함대사령부가 사고현장에 16,600t급 상륙함 하퍼스 페리호 승조원 419명, 3,282t급 구조함 샐버호(USNS Salvor) 승조원 100명, 미사일순양함 샤일로호(USS Shilo) 승조원 400명, 미사일구축함 커티스 윌버호 승조원 281명, 미사일구축함 래슨호 승조원 320명, 제25해상전투헬기대대(HSC-25) 제6파견대 병력 33명, 제5폭발물처리기동단(EODMU-5) 산하 제501소대 소속 기술병력 12명, 제1잠수구조원기동단(MDSU-1) 소속 잠수병력 16명, 제11상륙대대(AS-11) 일부 병력, 민간잠수사 26명을 투입하였다고 한다. 만일 미국이 한국군의 천안함 인양작업을 도와주었다면, 1,600명이 넘는 방대한 병력과 각종 군사장비들을 사고현장에 집중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럼비아호가 충돌사고를 냈기 때문에 그런 특별대책을 취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③ 7함대사령부가 사고현장에 투입한 병력들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상은 제25해상전투헬기대대 병력이다. 7함대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6월 7일에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헬기조종사들은 사고현장에 25일 동안 머물면서 총 350회 이상 출격하였다고 한다. 사고현장에서 그들이 조종한 헬기는 씨호크(Seahawk)라고 부르는 다목적 군용헬기(MH-60S)다. 바다속에서 잔해를 건져올리는 인양작업에 왜 군용헬기를 그처럼 많이 출격시켰을까? 만일 미국이 한국군의 천안함 잔해 인양작업을 도와주었다면, 군용헬기를 그처럼 집중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수사들이 속속 건져올린 콜럼비아호 잔해들을 오산 공군기지로 계속 실어나르기 위해 군용헬기를 그처럼 집중 투입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셋째, 미국은 사고현장에서 콜럼비아호 승조원 시신을 인양하고, 애도행동을 취했어야 한다.

① 사고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한준호 준위가 3월 30일에 순직하였고, 그의 영결식은 4월 3일에 해군장으로 거행되었다. 그런데 7함대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4월 3일 서해 발로 보도한 사진기사는, 고 한준호 준위 영결식이 거행되던 날 사고현장의 특이한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영결식 당일 오전 10시부터 1분 동안 사고현장에서 모든 미국 전함들이 애도 경적을 일제히 울렸다고 하면서, 현장 지휘관 리처드 랜돌트, 하퍼스 페리호 함장 에드 톰슨(Ed Thompson), 제11상륙대대 함장 마크 웨버(Mark Weber)가 애도 경적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갑판에 나가 바다쪽을 향해 도열하여 거수경례를 하는 현장사진을 게재하였다. 보도기사에는 그런 애도행동이 고 한준호 준위를 위한 것이었다고 씌여있지만, 미국군이 사망하지 않았는데 외국군 사망에 그처럼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② 7함대사령부 홍보실이 2010년 4월 6일에 보도한 현장사진들 가운데는 사고현장에서 다목적 군용헬기(SH-60B)가 들것(litter)을 긴 줄에 매달아 해수면으로 내리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다. 또한 7함대사령부 홍보실이 4월 14일에 보도한 현장사진들 가운데는 적십자 표식을 한 미국군 의료헬기(UH-60G MEDEVAC)가 하퍼스 페리호 갑판에 착륙하고, 적십자 표식을 한 병사가 갑판에서 대기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다. 이 사진들은 사망한 콜럼비아호 승조원 시신을 바다에서 인양하여 지휘함으로 수송하는 장면을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③ 주한미국대사관은 2010년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조기를 게양하였다. 그 기간을 천안함 희생자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한 이명박 정부는 영결식이 거행된 4월 29일 하루만 각급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였는데, 이례적으로 주한미국대사관은 닷새 동안이나 조기를 내리지 않았다. 미국의 국기 관련 규정(United States Code Title 4 Chapter 1)에 따르면, 다른 나라의 고위관리가 사망하였을 때, 대통령의 지시나 외교관행에 따라 조기를 게양한다. 고 한준호 준위는 고위관리가 아니므로, 위의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 위의 규정에서 조기를 게양하는 다른 경우는 미국군이 복무 중 사망하였을 때다. 외국군이 사망하였을 때 조기를 게양한다는 조항은 없다. 주한미국대사관이 보여준 매우 이례적인 애도행동은, 콜럼비아호와 천안함의 충돌사고로 미국군이 사망한 경우에만 있을 수 있는 행동이다.

미국 해군 보도국이 2010년 5월 4일 하와이 진주항 발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콜럼비아호는 서태평양에서 여섯 달 동안 수행한 작전을 마치고 2010년 5월 3일 하와이에 있는 모항(home port)인 진주항-히컴 공동기지(Joint Base Pearl Harbor-Hickam)에 복귀하였다고 한다. 그 잠수함이 진주항-히컴 공동기지를 떠난 날이 2009년 11월 3일이었으므로, 예정된 복귀날짜에 맞춰 정확히 여섯 달만에 모항으로 돌아간 것이다. 미국 해군 보도국은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3월 26일부터 모항에 복귀한 5월 3일까지 37일 동안 콜럼비아호가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천안함과 충돌하여 손상을 입은 콜럼비아호를 괌 조선소에서 수리한 뒤에 하와이로 복귀하였음을 숨긴 것이 아닐까? (2010년 6월 14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