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시켰다는 중어뢰는 없었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10년 4월 5일 오전 <통일뉴스>는 내가 기고한 ‘천안함의 침몰과 연합함대의 집결’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 글에는 세 가지 논지가 담겼는데, 첫째는 방대한 무력으로 편성된 한미연합함대가 천안함 사고 당일 서해에서 대북침공작전을 연습하고 있었다는 것, 둘째는 한미연합함대가 대북침공작전을 연습하던 해역의 북쪽에서는 한국군 2함대사령부 휘하 초계함, 고속정, 대잠헬기들이 한미연합함대를 위한 대잠경비작전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 셋째는 한미연합함대의 대북침공작전 연습을 정찰한 뒤에 북측으로 돌아가던 인민군 잠수함이 대잠경비작전을 벌이던 천안함과 불의에 조우하자, 자기방어 차원에서 어뢰로 선제공격을 가해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논지 가운데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자료적 근거를 가지고 논증한 것이지만, 세 번째 논지는 정황을 추리한 것이다.

그런데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공식발표가 아직 나오지 않은데다가, 그 때까지만 해도 언론에 공개된 정보도 제한적인데 어뢰피습이라고 예단한 글을 발표하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느냐 하는 의견을 <통일뉴스> 측이 내게 보내왔다. 나는 그 의견에 공감하고, <통일뉴스> 측과 합의하여 그 글을 삭제하였다. 글을 삭제할 때, 이명박 정부가 나중에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공식발표를 내놓으면, 그 때 가서 나는 그들이 내놓은 조사결과를 분석하는 글을 다시 써서 발표하겠노라고 <통일뉴스> 측과 약속하였다.

2010년 5월 20일 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하였고, 나는 조사결과를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결과를 정밀분석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조사결과가 모순투성이임을 발견하고 경악하였으며, 더욱이 조사결과가 발표된 뒤에 조사결과를 뒤집는 중요한 정보들이 언론에 연이어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조사결과를 전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글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서 모순되고 왜곡된 내용을 들춰낸 것이다.

사고 발생 순간 천안함 모습을 자동녹화한 동영상은 어디에 있을까?

백령도에 주둔하는 해병대 제6여단은 백령도 서쪽에 있는 연화리 해안에 열상감시장비(Thermal Observation Device, TOD)를 세 군데나 설치해두었다. 연화리 해안에 그 장비를 세 군데 설치한 까닭은, 그 장비의 촬영각이 제한되어 있어서 장비 한 대만 가지고서는 연화리 앞바다 전경(全景)을 촬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장비는 밤낮 없이 24시간 영상을 자동녹화하며, 레이저로 표적까지 거리를 측정하는 기능이 있고, 표적의 위치를 위성항법장치(GPS)로 파악하는 기능도 있다.

그러므로 연화리 해안에 설치한 열상감시장비 세 대가 자동녹화한 동영상을 이어놓으면 천안함의 사고 직전 모습, 사고 순간 모습, 사고 직후 모습을 거의 전경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이 나올 것이다. 그 장비가 촬영한 동영상은 사고 당시 천안함이 기동하던 방향과 속도, 사고가 발생한 위치와 시각, 사고 순간 모습, 그리고 침몰한 위치와 시각을 정확하게 알려줄 결정적인 자료다. 특히 그 동영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 발생 순간 천안함 모습이 촬영된 부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군 당국은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공개하라는 여론이 빗발치자 1분 20초 분량만 발췌, 편집해서 공개하였다. 군 당국이 2010년 3월 30일에 마지못해 발췌해서 공개한 동영상은 세 군데에서 각각 촬영된 세 종류의 동영상자료 가운데 하나다. 군 당국은 나머지 두 종류의 동영상자료에 대해서는 그 존재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군 당국이 발췌, 편집하여 합동조사단의 4월 7일 중간발표를 통해 뒤늦게 공개한 동영상은, 사건 당일 오후 9시 4분 6초부터 9초까지 3초 동안 천안함이 정상적으로 기동하는 장면, 오후 9시 24분 18초부터 1분 1초 동안 함미가 침몰하는 장면, 그리고 오후 9시 25분 20초부터 10시 9분 3초까지 함수가 침몰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함미가 침몰한 위치와 함수가 침몰한 위치는 7.35km나 떨어져 있으므로, 함미 침몰 장면을 촬영한 열상감시장비와 함수 침몰 장면을 촬영한 열상감시장비는 서로 다른 곳에 설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군 당국이 동영상 일부를 공개하였는데도 세간의 의심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커진 까닭은,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는 장면이 없다고 잡아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후 9시 4분 10초부터 24분 17초까지 무려 20분 7초 동안 촬영된,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 천안함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련 동영상은 더 이상 없다고 우기던 군 당국은 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한 날로부터 열흘이나 지난 2010년 5월 30일에 가서야 관련 동영상 일부를 언론에 추가로 공개하였다. 이전에는 없다고 잡아떼었던 동영상을 추가로 공개하는 것은, 군 당국 발표의 신뢰도를 크게 훼손시킨다. 추가로 공개한 동영상에도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 천안함 모습은 들어있지 않다. 천안함에서 사고가 일어난 오후 9시 21분 57초를 전후하여 찍은, 천안함이 아예 보이지 않는 동영상을 추가로 공개한 것이다.

문병옥 합동조사단 대변인은,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 천안함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없는 까닭을 해명하면서, 열상감시장비를 담당한 초병이 “폭발음을 인지하고 그 때부터 천안함을 찾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사고 발생 순간 천안함 모습을 촬영하지 못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까닭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열상감시장비 세 대가 각각 다른 위치에서 사고해역을 자동촬영하고 있었고, 따라서 사고 발생 순간의 천안함 모습이 아예 촬영되지 않은 동영상도 있고, 사고 발생 순간의 천안함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도 있기 때문이다. 초병이 천안함 사고 현장에서 발생한 굉음을 듣고 그 때부터 사고 현장이 어디인지를 찾았기 때문에 사고 발생 순간 천안함 모습을 미처 촬영하지 못했다는 군 당국의 해명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주목하는 것은, 군 당국이 5월 30일에도 이전처럼 사고 발생 순간의 천안함 모습이 촬영되지 않은 동영상만 공개하였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그 동영상을 본 <연합뉴스> 기자는 보도기사에서 “9시 21분 57초 전후로 TOD 초병은 천안함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관측하고 있다”고 썼다.

5월 30일에 군 당국이 추가로 공개한 동영상 가운데서 중요한 부분은, 사고 발생 시각으로부터 36초가 지난 오후 9시 22분 33초에 촬영된 천안함 모습과 사고 발생 시각으로부터 2분 22초가 지난 오후 9시 24분 19초에 촬영된 천안함 모습이다. 전자에는 천안함이 희미한 물체로 나타나있고, 후자에는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어 함미가 침몰하는 장면이 들어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전자는 초병이 천안함을 3배율로 촬영하였기 때문에 천안함이 희미한 물체로 보이고, 후자는 그 초병이 3배율을 10배율로 높여 촬영하였기 때문에 침몰장면이 식별된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도 다른 설명과 마찬가지로 사실왜곡으로 보이는 까닭은, 초병 한 사람이 동일한 위치에서 수동으로 촬영배율을 조절해가면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서로 다른 배율로 촬영된 다른 종류의 동영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사고 발생 순간의 천안함 모습을 촬영한 결정적으로 중요한 동영상만 빼놓고 나머지 동영상들을 추가로 공개한 것이다.

 

▲천안함 사고현장 위치 및 거리.

함체는 언제 두 동강으로 절단되었을까?

2010년 4월 7일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조사결과에 대한 중간발표를 내놓았다. 중간발표에 따르면, 전술지휘통제체계(KNTDS) 디지털 화면에 자동으로 표시되는 천안함 위치신호가 오후 9시 21분 57초에 깜박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술지휘통제체계 디지털 화면에는 바다에 떠다니는 각종 함선의 현재 위치가 단점신호(dot signal)로 나타나는데, 만일 함선이 위치신호를 발신하지 못하게 되면 단점신호가 명멸신호(blinking signal)로 바뀌어 깜박인다.

천안함의 단점신호가 오후 9시 21분 57초에 명멸신호로 바뀌었다는 말은, 천안함이 바로 그 시각부터 위치신호를 발신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합동조사단의 4월 7일 중간발표에서 천안함의 단점신호가 명멸신호로 바뀐 시각으로 제시된 시각은 오후 9시 21분 57초이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백령도 관측소가 천안함 사고현장에서 발생한 인공지진파를 포착한 시각은 오후 9시 21분 57초에서 58초 사이다.

그런데 2010년 5월 24일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국회 천안함 특별위원회에서 공개한 자료에는, 전술지휘통제체계 디지털 화면에서 천안함의 단점신호가 명멸시각으로 바뀐 시각이 오후 9시 25분으로 되어 있다. 합동조사단 중간발표에 나온, 단점신호가 명멸시각으로 바뀐 시각이 오후 9시 21분 57초이므로, 박영선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나온, 단점신호가 명멸신호로 바뀐 시각보다 약 3분이 이르다. 합동조사단이 위치신호가 바뀐 시각을 오인하였을 가능성은 없으므로, 합동조사단의 4월 7일 중간발표에는 3분이나 앞당겨 사실을 왜곡한 내용이 들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천안함에서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백령도 관측소가 천안함 사고현장에서 발생한 인공지진파를 포착한 시각과 동일한 오후 9시 21분 57초다.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에서 사고가 발생한 시각에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가 즉시 분리된 것처럼 발표하였지만, 그것은 사실왜곡이다.

2010년 5월 28일 여당이 불참하여 야당이 단독으로 진행한 국회 천안함 특위에서 합동조사단으로부터 3시간 10분 분량의 동영상을 보고 받은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폭발이 일어나고 바로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는 게 정상인데 폭발이 있고 나서 38초가 됐는데 함수와 함미가 완전히 분리 안 되고 2분 20초 지나서야 분리됐다”고 말했다. 또한 2010년 5월 29일 <민중의 소리>는, 국방부가 5월 28일 밤에 공개한, 사고 당일 오후 9시 22분 29초에서 37초까지 8초 동안에 사고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에서는 “함수와 함미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검은 점으로 연통이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이 동영상은 사고 발생 시각으로부터 32초가 지난 뒤에도 함체가 두 동강으로 절단되지 않았음을 입증한 것이다.

그런데 5월 30일 군 당국은 천안함에서 사고가 발생한 시각으로부터 36초가 지난 오후 9시 22분 33초에 천안함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언론에 추가로 공개하였다. 없다던 동영상을 추가로 공개한 것은, 최문순 의원의 발언과 <민중의 소리> 보도를 의식한 행동으로 보인다. 그들이 공개한 동영상에 나타난 천안함은 함체가 기울어져 있지만, 너무 희미해서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었는지 아니면 붙어있는지 식별하기 힘든데, 군 당국은 함수와 함미가 분리된 모습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한 자리에서 문병옥 합동조사단 대변인은 “함수와 함미가 붙어 있다면 부력 때문에 절대 함수가 기울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안함보다 크고 단단한 물체가 함체 왼쪽 중앙 하단부에 충돌하여 함체가 위로 들어올려져 ∧꼴로 꺾인 뒤에 다시 해수면에 내려앉았다면, 함체는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오른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천안함에서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오후 9시 21분 57초인데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면서 함체가 두 동강이 난 시각은 그로부터 2분 20초가 지난 오후 9시 24분 17초라는 것이다. 함수와 함미가 분리된 시각이 오후 9시 24분 17초이므로, 오후 9시 24분 18초부터 1분 1초 동안 촬영된 동영상에 함수와 함미가 분리된 모습이 들어있다는 합동조사단의 4월 7일 중간발표는 사실왜곡이다.

그리고 박영선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단점신호가 명멸신호로 바뀐 시각은 오후 9시 25분이므로, 천안함은 오후 9시 24분 17초에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고 나서도 오후 9시 25분까지 43초 동안 위치신호를 발신하며 기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천안함이 수중에서 폭발한 1.7t 짜리 중어뢰의 분출압력으로 절단되었다는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천안함은 엄청난 분출압력을 받는 순간 함수와 함미가 즉시 분리되면서 두 동강으로 절단되어 그 자리에 멈춰 서고 전진하기는커녕 위치신호도 발신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정보는,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뒤집는 새로운 사실을 말해준다. 천안함에서 사고가 발생한 순간 즉시 절단되어 기동을 멈춘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한 뒤에 2분 20초 동안 침수되어 함체의 무게균형이 깨지는 순간에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었고, 함체가 둘로 절단된 뒤에도 43초 동안 기동한 것이다.

이러한 정황이 말해주는 것은, 천안함이 수중에서 폭발한 중어뢰의 분출압력으로 즉시 절단된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충격을 받고 2분 20초 동안 침수되는 과정에서 절단되었다는 점이다.

천안함은 왜 북상하고 있었을까?

천안함 사고 직후, 군 당국은 사고발생위치 좌표를 공개하지 않고, 백령도 연화리 해안에서 서남쪽으로 2.5km 떨어진 해상에서 사고가 났다고만 밝혔다. 사고위치에 대해서, 군 당국은 처음에 1마일(1.8km)이라고 하였다가 얼마 뒤에 2.5km로 수정하였는데, 사고위치 좌표는 북위 37도 55분과 동경 124도 37분이 만나는 점이라고 하였다.

군 당국은 사고 발생 후 열흘이 지난 4월 7일에 가서야 사고위치 좌표를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밝혔다. 북위 37도 55분 45초와 동경 124도 36분 02초가 만나는 점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이 좌표는 5월 20일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결과에 나온 좌표와 같다. 인터넷에서 구글(Google) 지도로 측정하면, 이 좌표는 군 당국이 처음에 발표한 사고위치(연화리 해안 서남쪽 2.5km 떨어진 해상)에서 서북쪽으로 1.98km 올라간 곳이다.

열상감시장비가 사고위치를 자동으로 기록하였을 뿐 아니라, 사고 발생 시각에 천안함의 현재 위치가 전술지휘통제체계 디지털 화면에 좌표로 나타났으므로, 군 당국은 처음부터 사고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 군 당국은 다른 곳을 사고위치로 지목하고 그 곳에서 가라앉은 함미를 찾는다고 사흘 동안이나 수색작업을 벌이는 척하면서 언론의 눈길을 엉뚱한 곳에 쏠리게 하고 세상을 속였다.

4월 7일에 나온 합동조사단의 중간발표나 5월 20일에 나온 합동조사단의 최종발표에는, 사고위치 좌표가 북위 37도 55분 45초와 동경 124도 36분 02초가 만나는 점이다. 그리고 2010년 5월 24일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국회 천안함 특별위원회에서 공개한 자료에는, 천안함이 발신하던 위치신호가 전술지휘통제체계 디지털 화면에서 명멸신호로 바뀐 시각(오후 9시 25분)에 천안함의 위치좌표가 북위 37도 56분 01초와 동경 124도 35분 47초가 만나는 점으로 나타나 있다.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사고위치 좌표를 구글 지도로 측정하면, 연화리 해안에서 2.71km 떨어진 해상이고, 천안함의 단점신호가 명멸신호로 바뀐 곳의 좌표를 구글 지도로 측정하면, 연화리 해안에서 2.89km 떨어진 해상이다. 그 두 좌표의 위도로 살펴보면, 사고가 발생한 위치보다 단점신호가 명멸신호로 바뀐 위치가 더 북쪽에 있다. 이것은 천안함이 사고 당시 북상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위의 사실을 종합하면, 천안함은 사고 당일 오후 9시 21분 57초에 연화리 해안에서 2.71km 떨어진 해상에서 사고를 당했고, 그 때부터 약 3분 동안 서북쪽으로 607m 더 올라간 뒤 오후 9시 25분에 연화리 해안에서 2.89km 떨어진 해상에서 위치신호 발신이 중지된 것이다. 사고 당시 천안함이 북상하고 있었던 까닭은 군 당국만 알고 있다.

사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사고를 당한 뒤 약 3분 동안 서북쪽으로 607m 이동하는 과정에 침수된 천안함은 함체의 무게균형이 침수로 깨져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었고, 함미가 먼저 침몰하고 함수는 남쪽으로 조류에 밀려 떠내려 오던 중 현장에 달려온 고속정과 해경이 함수에 몰려있던 승조원들을 구조하였고, 구조 이후에도 함수는 계속 조류에 밀려 남동쪽으로 떠내려가다가 백령도 남쪽 해안에서 약 2km 떨어진 해상에 침몰한 것이다.

그런데 합동조사단은 위의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다. 합동조사단의 사실은폐는 그들의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다.

‘결정적 증거’ 인양시점을 의도적으로 조절한 의혹

2010년 4월 2일 <연합뉴스>는 “기뢰탐지 능력이 있는 소해함인 양양함과 옹진함이 음파를 이용해 기뢰를 탐색하는 음탐기(VDS) 등을 통해 어뢰나 기뢰로 추정되는 파편을 탐색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쌍끌이 어선 10척도 사고해상에서 부유물 회수작업을 돕고 있기 때문에 어뢰가 폭발했다면 소해함이나 어선 등에 그 파편이 걸려들 수 있을 것으로 군은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4월 26일 <연합뉴스>는 “어민들은 이날 오후 비바람이 치는 궂은 날씨에도 신속히 형망틀을 손질한 뒤 형망어선 2척을 끌고 바다로 나섰다. 이들은 함수와 함미가 가라앉았던 구간 6.4km를 오가며 바다밑을 탐색했다. 수색을 마친 최치호 어촌계장은 ‘작업 첫 날이라 금속파편을 수거하지는 못했지만 파편탐색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하였다. 4월 28일 <동아일보>는 “그 동안 해저탐색작업에 투입된 쌍끌이 어망, 무인잠수정인 해미래호, 조개를 채취하는 어구인 형망(刑網)을 활용한 바닥 뒤지기 노력은 아직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였다. 5월 20일 <매일경제>는 “민군합동조사단은 증거 자료 확보에 난항을 겪다가 저인망 어선을 투입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4월 1일부터 그물망 제작에 돌입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런데 합동조사단은 딴소리를 늘어놓았다.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윤중성 과학수사분과장은 “조류나 수심이나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우리는 사례를 수집해봤다. (줄임) 그런 가운데 우리 공군에서 전투기가 추락했을 때 동해안과 서해안에서는 쌍끌이 어선을 이용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줄임) 그래서 어촌을 수소문해서 사흘 간 쌍끌이 그물망을 수집했고 5월 3일 시험운영을 했다”고 말했다. 합동조사단이 쌍끌이 작업을 본격적으로 개시하였다고 밝힌 날은 5월 10일이다.

그러나 위의 보도기사에서 드러났듯이, 이미 4월 초부터 쌍끌이 어선이 사고현장에서 잔해를 수색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합동조사단은 뜬금없이 5월 초에 가서야 쌍끌이 작업을 시험적으로 진행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4월 초부터 쌍끌이 어선이 바다밑을 훑었는데도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한 까닭은, 군 당국이 사고해역에서 7.35km나 떨어진, 함수가 침몰한 해상 부근에서 쌍끌이 어선들이 헛수고를 하도록 오도하였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쌍끌이 어선들을 오도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군 당국은 4월 초부터 함수 침몰 해상에서 헛수고를 한 쌍끌이 어선의 수색작업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말한 것이다.

그렇게 한 뒤에, 군 당국은 5월 10일부터 사고해역에서 135톤급 쌍끌이 어선 두 척을 동원하여 바다 밑을 훑기 시작하였고, 5일 만에 사고위치 부근의 47m 깊이 바다밑에서 극적으로 어뢰추진기 잔해를 찾아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군 당국이 사전에 어뢰추진기 잔해를 발견할 시간을 미리 계산한 각본에 따라 쌍끌이 어선을 투입한 것이 아니냐 하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군 당국은 함체에서 떨어져나간 가스터빈을 5월 19일 오전 6시쯤 사고해역에서 찾아냈다고 발표하였다. 만일 가스터빈실 바로 밑에서 1.7t 짜리 중어뢰가 수중 폭발하였다는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가스터빈은 엄청난 충격으로 대파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합동조사단은 대파된 가스터빈을 증거물로 공개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군 당국은 가스터빈이 있는 위치를 처음부터 정확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시간을 끌며 인양하는 것을 자꾸 미루다가 합동조사단이 최종결과를 발표하기 하루 전에야 갑자기 인양하였다. 이것은 가스터빈이 파괴된 모습이 공개되지 않도록 고의적으로 인양시점을 조절한 것이 아니냐 하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문제점을 의식한 군 당국은 5월 30일에 가서야 가스터빈 실물이 아니라 가스터빈을 찍은 사진 한 장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가스터빈실에 있었던 발전기, 조수기, 유수분리기, 가스터빈 덮개가 파손되었으며, 가스터빈도 파손되어 연소실과 압축기 일부만 남고 공기흡입관, 파워터빈, 폐기관은 유실되었다고 밝혔다. 상자형 덮개에 달려있는 부품들인 공기흡입관과 폐기관은 강한 충격을 받으면 유실될 수밖에 없고, 가스터빈 앞부분에 붙어있는 부품인 파워터빈도 강한 충격을 받으면 유실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가스터빈이 어느 정도 파손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함체를 즉각 두 동강으로 절단시킬 중어뢰가 가스터빈실 바로 아래서 폭발했다면, 가스터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파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5월 30일 군 당국이 공개한 사진에 나타난 가스터빈은 크게 찌그러지기만 했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파된 상태는 아니다. 이것은 중어뢰가 가스터빈실 바로 아래서 폭발한 것이 아니라, 천안함 함체보다 크고 단단한 물체가 가스터빈실에 충돌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누가 목격자의 진술을 바꿔놓았을까?

천안함 사고 당시 백령도 앞바다의 시정(視程)은 10km 이상이었고, 구름도 끼지 않았다. 음력으로 2월 11일이었으니, 보름달이 되기 나흘 전이라서 달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이것은 백령도 해안에서 경계를 서던 해병대 초병이 육안으로 사고현장을 충분히 관측할 수 있는 기상조건이었다. 따라서 해병대 초병은 천안함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현장을 육안으로 목격하였을 것이다.

2010년 4월 9일 군 고위 관계자는 “백령도 해안초소의 열상감시장비를 운용하는 해병대 초병이 ‘쾅 소리를 듣고 소리 나는 쪽을 봤더니 배가 두 동강 나서 공중으로 올라가 역브이(∧)자 형태가 돼 있더라. 그 뒤 곧 평평해졌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초병의 진술을 전한 군 고위 관계자의 발언에서 주의해서 들어야 하는 것은 함체가 두 동강 나서 공중으로 올라가 ∧꼴로 되어 있더라고 말한 대목이다. ∧꼴은 꺾어진 굴절장면을 묘사한 것이지, ∕ ∖꼴로 된 절단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닌데도, 그는 두 동강 났다는 과장된 표현을 썼다. 다른 군 관계자가 “초병의 진술을 그린 그림을 보면 왼쪽은 30도 정도 들려 꺾어져 있고, 오른쪽은 45도 정도 들려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사고 당시 함체는 절단된 것이 아니라 꺾인 것이 분명하다. 함체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충격을 받았으므로, 함체가 해수면 위로 들리면서 ∧꼴로 꺾인 것이다. 만일 1.7t 짜리 중어뢰가 폭발하여 함체가 절단되었다는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중어뢰가 폭발하는 순간 함체는 물기둥과 함께 공중으로 높이 튀어 오르면서 두 동강으로 완전히 절단되었을 것이다.

함체가 해수면 위로 들리면서 ∧꼴로 꺾이는 순간, 함체가 찢겨나가는 큰 굉음이 났을 것이다. 초병이 “마치 철판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처럼 들렸다”고 상부에 보고한 것은 그러한 상황을 목격하였음을 말해준다. 사고가 발생한 순간에 함체가 절단된 것도 아니고, 함체가 물기둥과 함께 솟구친 것도 아니고, 사고현장에서 폭발음이 들린 것도 아니다. 그래서 초병은 물기둥이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지 않고, 함체가 해수면 위로 들려 ∧꼴로 꺾인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였으며,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고하지 않고 철판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보고한 것이다.

그러나 4월 9일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백령도의 한 초병이 천안함 함체가 ∧꼴로 꺾인 장면을 봤다는 전날의 언론보도에 대해, 열상감시장비 초병은 그 장비의 화면으로만 주변상황을 볼 수 있으며 육안으로는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거리까지 관측이 불가능하다고 부정하였다. 그의 발언, 사건진상을 밝혀줄 목격자의 진술을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런데 5월 20일에 나온 합동조사단 발표는 목격자의 진술을 완전히 뒤바꿔놓아 사람들을 경악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발표에 따르면, 초병이 폭발음과 함께 2-3초 동안 약 100m 높이의 백색 섬광기둥을 보았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며, 백색 섬광기둥은 함체 밑에서 폭발한 중어뢰의 분출압력으로 솟구친 거대한 물기둥 현상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원래 목격자의 초기진술에는 없었던 폭발음과 백색 섬광기둥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이처럼 목격자의 진술을 바꿔놓은 것은 합동조사단 조사결과를 믿지 못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다.

폭발충격이 아니라 충돌충격이었다

천안함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물기둥이 솟구치는 현상이 있었는가 아니면 없었는가 하는 것은 사건진상을 규명하는 결정적인 문제다. 2010년 5월 24일 국회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규명특위 제1차 회의에 나온 박정이 공동조사단장은 “물기둥 문제가 제일 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 미묘한 느낌을 주는 발언이다.

합동조사단이 이른바 ‘폭발위치’라고 지적한 곳은 가스터빈실 중앙에서 좌현으로 3m 되는 곳이고, 함체 좌현과 우현에 각각 한 명 씩 배치된 견시병들이 서 있던 자리는 함교 윗부분 높은 위치에 있는 조타실 양쪽에 붙어있는 관측대다. 가스터빈실은 조타실 아래에서 약간 뒤쪽에 있다. 관측대는 주위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설치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조타실 양쪽에 붙어있는 관측대에 서 있던 견시병은 사고발생 상황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사고 당시 우현에 배치된 견시병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심한 진동을 느꼈다”고 진술하였는데, 그도 역시 해안 초병과 마찬가지로 물기둥이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지 않았다. 4월 7일 천안함 생존자 57명이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자리에서 부함장 김덕원 소령은 “쿵 하는 소리 외에 다른 상황을 목격한 건 없나?”고 기자가 묻자 “야간에는 등화관제를 하고 대원들이 외부로 나가다 실족해 떨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문을 폐쇄한다. 외부에 나가는 사람은 좌우현 견시(갑판에서 주로 전방을 주시하며 육안으로 항로를 살피는 임무)뿐이다. 물기둥이 후방에서 발생했다면 확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부함장도 쿵 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며 물기둥이 솟구치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 4월 9일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함선에 탑승한 좌우 견시병들은 물기둥을 못 봤다고 하기 때문에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의 진술들을 들어보면, 사고 발생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견시병들도 해안에서 관측한 초병과 마찬가지로 물기둥이 솟구치는 현상을 보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5월 20일에 나온 합동조사단 발표에 따르면, 좌현에 배치된 견시병이 충격을 받고 쓰러진 상태에서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고 진술하였다는 것이며, 그것이 1.7t 짜리 중어뢰가 폭발한 증거라고 하였다.

4월 9일 국방부 대변인은 두 견시병이 물기둥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였다고 밝혔는데, 5월 20일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는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는 견시병의 진술로 봐서 중어뢰가 폭발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목격자의 진술을 정반대로 바꿔놓은 것이다.

만일 약 100m 높이의 물기둥이 2-3초 동안 솟구쳤다고 발표한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견시병이 물기둥을 보지 못했을 리 없다. 천안함 함체의 길이가 88m밖에 되지 않는데, 물기둥이 약 100m 높이까지 솟구쳐 올랐다면 물기둥의 폭은 20m가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해안 초병이나 함상 견시병의 진술에는 그처럼 거대한 물기둥 현상을 보았다는 증언이 없다. 이것은 1.7t 짜리 중어뢰가 폭발한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충격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만일 약 100m 높이의 물기둥이 솟구쳤다고 발표한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강력한 폭발로 1,200t급 함체가 물기둥과 함께 공중으로 높이 튀어 올랐을 것이고, 그 순간 높은 곳에 위치한 관측대에 서 있던 견시병은 엄청난 충격으로 튕겨나가 바다에 빠졌을 것이다. 견시병만이 아니라 천안함에 타고 있던 모든 승조원들도 엄청난 충격으로 벽에 부딪쳐 심한 골절상을 입었거나 혹은 머리부분을 심하게 부딪친 경우 뇌진탕으로 사망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견시병은 자신이 충격을 받아 바닥에 쓰러졌다고 진술하였고, 구조된 승조원 58명 가운데 심한 골절상을 입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윤한두 수도병원장은 대퇴부 골절과 인대파열로 수술을 받은 환자가 2명, 척추압박골절 등으로 보조기를 착용한 환자는 4명, 그리고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환자가 몇 명 더 있다고 밝혔다. 자기 몸이 바다로 튕겨나가지 않고 바닥에 쓰러졌다는 견시병의 진술, 그리고 심한 골절상을 입은 승조원이 2명이라는 병원장의 말은, 함체를 공중으로 튀어오르게 만든 중어뢰가 폭발한 것이 아니라 함체에 충돌하여 함체를 해수면 위로 들어 올린 어떤 다른 충격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만일 약 100m 높이의 물기둥이 솟구쳤다고 발표한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그리고 견시병이 관측대 바닥에 쓰려졌다면, 그 는 당연히 물벼락을 맞았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자기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고 진술하였다. 해경이 구조현장에서 촬영한 동영상에서도, 물벼락을 맞은 생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생존자들이 물벼락을 맞지 않은 것은, 중어뢰가 폭발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약한 충돌충격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010년 5월 28일 야당 단독으로 진행한 특위에서 합동조사단으로부터 3시간 10분 분량의 동영상을 보고 받은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어뢰에 맞았으면 큰 파도와 물기둥이 있어야 하는데 TOD 상으로는 평온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또한 2010년 4월 16일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연구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고 당시 천안함에서 발생한 지진파형을 분석하였더니 버블제트 어뢰에 동반되는 전조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버블제트 어뢰라면 수중폭발음이 먼저 잡힌 뒤 간격을 두고 선체 울림이 일어나야 하는데 파형을 보면 폭발과 동시에 선체 길이 88m의 천안함이 가진 고유진동수인 8.54Hz의 공명 주파수가 1.1초간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기둥 어뢰가 함체 밑 수중에서 폭발한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충격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함체에 파공이 나 있지 않으므로, 직격어뢰가 함체를 뚫고 들어가면서 폭발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물기둥 어뢰나 직격어뢰가 아니라, 어떤 큰 물체가 함체에 충돌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면 함체 좌현 하단부에 충돌하여 함체를 크게 파손한, 함체보다 더 크고 더 단단한 물체는 무엇이었을까?

경악할 만한 것은, 물기둥 어뢰가 없었는데도 합동조사단이 어뢰추진기 잔해를 ‘결정적 증거’로 공개하였다는 점이다. 어뢰가 없는데 어뢰추진기 잔해를 바다 속에서 찾아냈다고 하니, 도대체 그 잔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2010년 5월 3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