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라스코산맥 핵실험에서 일어난 플루토늄 핵폭발

파키스탄 카라치(Karachi)에서 서쪽으로 약 480km 떨어진 곳에 라스코산맥(Ras Koh Range)이 해발 2,000-3,000m 높이로 솟아있다. 1998년 5월 28일 오전 11시 55분(현지 시각) 그 산악지대에서 파키스탄이 지하핵실험을 하였다. 이틀 뒤인 5월 30일, 그 곳에서 96km 떨어진 카란사막(Kharan Desert)에서 또 다른 지하핵실험이 실시되었다.

파키스탄이 12년 전에 실시한 핵실험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수수께끼를 남겨놓았다. 그 동안 파키스탄 핵실험에 관련된 단편적인 정보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이따금 세상에 알려졌지만, 실상이 제대로 알려진 것은 아니다.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다시 살펴보는 까닭은, 파키스탄의 핵개발과 북측의 핵확산이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파키스탄은 라스코산맥 핵실험에서 핵무기 5기를 터뜨렸는데, 시차를 두고 하나씩 터뜨린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터뜨린 동시폭발이었다. 파키스탄의 저명한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의 말에 따르면, 라스코산맥 핵실험에서 “증가핵분열장치(boosted fission device) 1기, 핵장치(nuclear device) 4기”를 터뜨렸다고 한다. 핵분열장치란 핵분열 반응을 높이기 위해 고폭화약을 줄이고 플루토늄 239를 두 배 정도 넣은 핵분열폭탄(fission bomb)을 뜻한다.

파키스탄 원자력위원회(Pakistan Atomic Energy Commission)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라스코산맥 핵실험에서 25킬로톤(kiloton)급 증가핵분열장치 1기, 12킬로톤급 핵분열장치(fission device) 1기, 1킬로톤급 이하 핵분열장치 3기를 폭발시켜 모두 40킬로톤급 핵폭발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남아리조나 지진관측소(Southern Arizona Seismic Observatory)가 인공지진파를 측정하였더니 폭발력이 9-12킬로톤급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인도가 샥티 작전(Operation Shakti)이라는 암호명으로 실시한 핵실험도 파키스탄 핵실험과 마찬가지로 동시폭발식이었다. 인도는 1998년 5월 11일 핵탄두 1기와 추가핵분열장치 2기를 동시에 터뜨리는 핵실험을 하였고, 5월 13일에는 실험용 핵분열폭탄 2기를 동시에 터뜨리는 핵실험을 하였다.

이처럼 핵폭탄 여러 기를 한꺼번에 터뜨린 파키스탄과 인도의 핵실험은, 핵탄두 1기를 떠뜨린 북측의 핵실험과 차이를 보인다. 핵기술이 아직 고도로 발달되지 못하여, 예정한 핵폭발력이 과연 나올지 자신이 없을 때 핵폭탄 여러 기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이다. 그에 비해, 발달된 핵기술을 가진 나라는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탄두를 작전배치하거나 또는 핵실험을 하는 경우에도 핵폭발에 자신이 있으므로 핵탄두 1기만 터뜨리는 것이다.

둘째,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는 미국군 특수정찰기가 파키스탄 핵실험장 부근 상공에서 포집해온 대기표본을 분석해보니 우라늄 핵폭발이 아니라 플루토늄 핵폭발이 일어난 것이었다고 한다.

핵폭발이 일어나면, 핵분열 반응에서 방출되는 수많은 방사성 동위원소(radioisotope)들 가운데서 제논(Xenon)-135나 크립톤(krypton)-85 같은 방사능 비활성 기체(radioactive inert gas)가 다른 물질로 변환되지 않고 대기에 퍼져나간다. 포집한 대기표본을 정밀분석하여 제논 대 크립톤 비율이 11 대 1로 검출되면 플루토늄 핵폭발이고, 그 비율이 5 대 1로 검출되면 우라늄 핵폭발이다.

그런데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가 라스코산맥 핵실험 직후 대기표본을 분석한 결과, 제논 대 크립톤 비율이 11 대 1로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스코산맥 핵실험에서 플루토늄 핵폭탄이 터졌음을 말해준다.

플루토늄 핵폭탄은 어디서 났을까?

원래 파키스탄은 프로젝트(Project)-706이라는 암호명으로 우라늄 핵개발과 플루토늄 핵개발을 동시에 추진해왔는데, 카디르 칸의 명성과 함께 우라늄 핵개발만 알려졌을 뿐이고 플루토늄 핵개발은 알려지지 않았다. 우라늄 핵개발을 이끈 핵과학자는 카디르 칸이고, 플루토늄 핵개발을 이끈 핵과학자는 무니르 아흐마드 칸(Munir Ahmad Khan)과 사마르 무바락만드(Samar Mubarakmand)다.

1983년 3월 11일 파키스탄은 키라나 힐즈(Kirana Hills)에서 플투토늄 핵분열장치 폭발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그 폭발실험에 쓰인 고순도 플루토늄 10kg은 파키스탄 핵과학기술연구원(Institute of Nuclear Science and Technology)에 설치된 10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에서 나온 것이다. 1960년대 중반 미국이 파키스탄에게 제공한 이 원자로는 1974년부터 가동되었는데, 1989년에 시설을 개량하였다. 핵과학기술연구원 원장 무니르 칸은 자체 제작한 또 다른 흑연감속로를 그 연구원에 설치하였는데, 두 번째 원자로는 1974년 1월 21일부터 가동되었다.

그에 비해, 북측의 녕변 원자력연구소에 소련산 1메가와트급 연구용 원자로(IRT-2000)가 설치된 때는 1967년이다. 그 연구용 원자로에서 경험을 축적한 북측은 1979년에 녕변 원자력연구소를 크게 확장하고, 1980년에 그 연구소에 흑연감속로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1986년부터 가동된 이 흑연감속로는 5메가와트급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25메가와트급이다. 이것은 북측이 그 동안 추출한 고순도 플루토늄 총량이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5배가 더 많다는 뜻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은, 소련산 연구용 원자로를 설치한 1967년부터 자국산 흑연감속로를 가동하기 시작한 1986년까지 19년 동안 북측은 또 다른 흑연감속로를 건설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자료로 입증할 수는 없지만, 그 19년 동안 북측은 미국군 정찰위성에게 노출되지 않은 여러 산악지역에 소형 흑연감속로를 여러 기 분산하여 건설한 것은 아닐까? 북측이 여러 지역에 소형 수력발전소를 분산하여 건설해온 것은, 북측이 원래 핵개발 과정에서 터득한 원리가 아니었을까?

한편, 카디르 칸이 1976년 7월 31일 설립한 공학연구소(Engineering Research Laboratory)는 1981년에 카후타 연구소(Khahuta Research Laboratories)로 이름을 바꿨는데, 칸 연구소라고도 불린다. 이 연구소는 1978년 독일제 P-1 원심분리기(centrifuge)를 본떠 만든 P-1 원심분리기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2009년 8월 31일 카디르 칸은 파키스탄의 <카라치 아지 뉴스 텔레비전(Karachi Aji News Television)> 방송 대담에서 1978년 4월 6일 원심분리기를 가동하는 우라늄 농축시설에서 처음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했고, 1983년 초에는 순도가 90%인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했다고 밝혔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파키스탄은 라스코산맥 핵실험에서 우라늄 핵폭탄 1기와 플루토튬 핵폭탄 4기를 한꺼번에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 원래 우라늄 핵폭탄은 폭발실험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1기만 터뜨렸고, 폭발실험이 요구되는 플루토늄 핵폭탄 4기를 터뜨린 것이다.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가 시행한 대기표본 분석에서 제논 대 크립톤 비율이 11 대 1로 검출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카란사막에 9일 동안 급히 파놓은 38m 수직갱

라스코산맥 핵실험은 높은 산중턱을 ㄴ형으로 파들어간 수평갱에서 실시한 것이고, 카란사막 핵실험은 평지를 수직으로 38m 정도 파내려간 수직갱에서 실시한 것이다. 카란사막 핵실험은 땅거죽에서 불과 38m밖에 되지 않는 땅속에서 실시한 것이어서, 미국 남아리조나 지진관측소가 라스코산맥 핵실험의 인공지진파보다 카란사막 핵실험의 인공지진파를 훨씬 더 뚜렷이 측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평갱을 건설하려면, 지상에서 100m 이상 수직갱을 파내려간 다음에, 방향을 90도로 꺾어 수평갱을 길게 뚫고, 수직갱을 콘크리이트로 막아야 하므로 수평갱 건설은 몇 일 사이에 끝낼 일이 아니다. 라스코산맥 핵실험을 수평갱에서 실시한 것은 파키스탄이 오래 전에 수평갱을 파놓고 핵실험을 대비해왔음을 말해준다. 그에 비해, 카란사막 핵실험을 실시한 수직갱은 불과 몇 일 사이에 급조한 것이다. 국영통신사인 <파키스탄 합동통신(Associated Press of Pakistan)> 1998년 5월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인도 핵실험으로 충격을 받은 1998년 5월 13일로부터 6일 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5월 19일부터 다급히 핵실험 준비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러니 카란사막에서 수직갱을 파는 건설기간은 9일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핵실험 직후, 나와즈 샤리프(Nawaz Sharif) 당시 총리와 씨예드 무샤히드 후세인(Syed Mushahid Hussain) 당시 공보장관은 각각 기자단을 이끌고 라스코산맥 핵실험장을 연이어 방문하였고, 파키스탄의 텔레비전 방송은 핵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라스코산맥의 거대한 봉우리들이 통째로 흔들리는 놀라운 장면을 방영하였다. 그러나 카란사막 핵실험장은 공개하지 않았다. 준비하지 않았던 카란사막 핵실험을 갑자기 서둘러 실시한 것도 이상하고, 그 핵실험장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파키스탄 합동통신> 1998년 5월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라스코산맥 핵실험에서 일어난 폭발력의 약 60% 정도인 “소형화된 장치(miniaturised device)”를 카란사막 핵실험에서 터뜨렸다고 한다. 이것은 소형 핵무기를 터뜨렸다는 말이다. 파키스탄 원자력위원회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그 소형 핵무기 폭발력이 12킬로톤급이었다고 했는데, 미국 남아리조나 지진관측소가 측정한 인공지진파는 4-6킬로톤급 폭발력이었다고 한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카란사막 핵실험에서 터뜨린 플루토늄 핵무기는 중거리 미사일에는 물론이고 준중거리 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에도 탑재할 수 있도록 소형화, 경량화되고, 정교하게 설계된 강력한 핵탄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래 설명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1998년 당시 파키스탄은 그처럼 정교하게 설계된 소형 핵탄두를 만드는 선진기술을 갖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파키스탄에 없는 소형 핵탄두가 어디서 온 것일까? 파키스탄 영토를 빌려 핵실험을 실시할 수 있는 나라는 북측밖에 없었다. 1998년 당시 북측과 파키스탄은 특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일이 가능하였다. 파키스탄이 급조해준 카란사막 핵실험장에서 북측은 자국의 소형 핵탄두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파키스탄이 북측에게 카란사막 핵실험을 하도록 허가한 까닭은, 파키스탄 핵개발에 북측의 지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논한다.

인민군 미사일이 파키스탄에 건너간 사연

핵개발을 추진하던 파키스탄에게 제기된 것은, 핵탄두를 탑재할 전략미사일을 만드는 과제였다. 파키스탄은 숙적인 인도의 내륙지방 전략거점을 타격할 중거리 미사일(IRBM)을 개발하려는 열망을 느꼈다. 인도가 사거리 2,500km, 탑재중량 1,000kg이 되는 2단형 중거리 미사일 애그니(Agni) 1호를 1989년 5월과 1992년 5월에 각각 시험발사하자, 중거리 미사일을 만들려는 파키스탄의 열망은 더욱 강렬해졌다.

2009년 8월 31일 카디르 칸이 <카라치 아지 뉴스 텔레비전> 방송 대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1988년에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파키스탄의 미사일 개발을 초기에 적극 지원해준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각각 인도와 영토분쟁을 겪으면서 적대감을 공유하게 되자 자연히 군사협력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파키스탄이 중국의 기술지원으로 제작하여 1989년 1월에 시험발사한 단거리 미사일 하트프(Hatf) 1호는 사거리가 80km밖에 되지 않고, 탑재중량도 500kg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한 전술미사일을 가지고 인도의 2단형 중거리 미사일을 상대할 수 없었다. 파키스탄에게 요구된 것은 핵탄두를 탑재하는 전략미사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파키스탄의 미사일 제조기술은, 미사일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전략미사일을 만들 수 없는 수준이었다. 기술적 난제를 풀기에도 힘이 모자라는 판에 국제정세마저 파키스탄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1990년대에 대미관계 정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중국은, 1992년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뒤에, 미사일 기술 확산을 극력 반대하는 미국과 충돌하는 것을 피해야 하였으므로 이전처럼 파키스탄에게 미사일 관련 핵심기술을 넘겨주지 않았다. 다른 한 쪽에서 인도는 군사력 증강으로 파키스탄을 위협하고 있었다.

전략미사일 개발에 국가지도자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 카디르 칸은 1993년 12월 초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 당시 총리를 찾아갔다. 파키스탄 인민당(Pakistan People’s Party)을 이끌던 저명한 여성정치인 부토는 1993년 10월 파키스탄 이슬람공화국 제16대 총리로 재선된 터여서, 새로운 국책사업을 시작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카디르 칸은 부토 총리에게 전략미사일을 개발하려면 북측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토 총리가 나중에 회고한 바에 따르면, 카디르 칸은 파키스탄의 전략미사일 개발을 지원해줄 나라는 북측밖에 없다고 자신에게 말하면서 방북을 요청했다고 한다.

1993년 12월 30일, 히잡(hijap)을 머리에 단정히 두른 중년여성이 김일성 주석의 집무실이 있는 금수산의사당에 들어섰다. 그가 바로 부토 총리였다. 부토 총리는 김일성 주석에게 파키스탄이 인도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전략미사일 개발 지원을 요청하였다. 처음 만난 외국 정상으로부터 전략미사일 개발을 지원해달라는 엄청난 요청을 들은 김일성 주석은 놀라움을 느꼈다고 한다. 전략미사일 해외 이전은 미국이 엄금하고 있는데, 미국과 가까운 파키스탄이 미국과 대결하는 북측에게 그런 금지사업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부토 총리의 요청을 들은 김일성 주석은 파키스탄에 기술지원단을 보내주겠다고 흔쾌히 약속하였고, 부토 총리가 평양을 떠날 때 “미사일 제조에 관한 기술자료를 저장한 컴퓨터 디스크 한 보따리(a bag of computer discs)”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강대국의 위협을 받는 전세계 약소민족들에게 정치,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온 김일성 주석은, 일반적인 국제거래에서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지원을 파키스탄에 보내준 것이다.

미국 통신사 <맥클래취 뉴스페이퍼(McClatchy Newspaper)>와 대담한 2008년 6월 4일자 기사에서, 카디르 칸은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북측과 협상하였고, 북측의 미사일을 입수하였다”고 말했다. 2009년 12월 28일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문건에서 카디르 칸은 1994년 방북 이후 파키스탄이 북측으로부터 노동 미사일 10기와 미사일 관련기술을 수입하고 1억5,000만 달러를 지불하였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국가정보기관(Inter-Services Intelligence)이 2004년에 카디르 칸과 혐의자 네 사람을 수사한 수사기록 요약본을 입수한 <워싱턴 포스트>가 2010년 3월 14일에 보도한 내용을 보면, 카디르 칸은 자력으로 개발한 P-2 원심분리기를 1996년에 이란에 수출하고 수입대금을 받았다고 하는데, 달러가 부족한 파키스탄은 이란에서 받은 자금으로 북측의 미사일 기술을 수입한 셈이다.

미국인 군사전문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는 1998년 5월 21일에 발표한 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파키스탄의 가우리 미사일 협력(DPRK-Pakistan Ghauri Missile Cooperation)’에서, 북측은 자국산 차량이동식 수직발사대도 노동 미사일과 함께 파키스탄에 수출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북측이 파키스탄에 수출한 차량이동식 수직발사대는 러시아군이 R-17 미사일을 싣고 다니는 미사일 발사차량 MAZ-543에 탑재된 차량이동식 수직발사대를 개량한 것이다. 파키스탄군은 북측에서 수입한 노동 미사일을 북측에서 수입한 차량이동식 수직발사대에 장착할 수 있었다. 조셉 버뮤디즈는 위의 글에서, 북측이 1989년 5월 헥사겐(Hexagen)이라고 부르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고폭화약도 파키스탄에 수출하였다고 썼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부토 총리와 가까웠던 〈아시안 어페어즈(Asian Affairs)〉 편집인 샤이암 바티아(Shyam Bhatia)는, 부토 총리가 총격으로 피살된 때로부터 한 해 뒤인 2008년 12월 〈샤자디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베나지르 부토의 정치전기(Goodbye Shahzadi: A Political Biography of Benazir Bhutto)〉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 책에 기술한 내용에 따르면, 부토 총리가 방북한 직후인 1995년부터 1998년까지 파키스탄 군부인사와 과학자들을 태운 파키스탄 군용기(C-130)가 매달 평균 아홉 차례씩 평양과 이슬라마바드를 오갔다고 한다. 파키스탄군 수송기가 북측 순안공항을 드나드는 모습을 미국군 정찰위성이 2002년 7월까지 포착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북측과 파키스탄의 협력관계는 2002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파키스탄군은 인민군 지대공 미사일도 수입하였다. 2009년 8월 31일 카디르 칸은 <카라치 아지 뉴스 텔레비전> 방송 대담에서, 당시 파키스탄 공군사령관 이프티카르 아흐메드 씨로헤이(Iftikhar Ahmed Sirohey)와 자신이 1994년에 방북하여 지대공 미사일 200기를 수입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주목하는 것은, 북측이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지대공 미사일 200기를 다른 나라에 수출할 만큼 막강한 미사일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오늘, 북측의 미사일 생산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파키스탄은 1998년 4월 6일 노동 미사일을 복제한 중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함으로써 마침내 숙원을 풀었다. 사거리가 1,500km에 이르고 탑재중량이 700kg이 되는 중거리 미사일 가우리(Ghauri) 1호가 바로 그 미사일이다.

북측은 파키스탄으로부터 무엇을 얻었을까?

모든 종류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마음 먹은대로 생산하는 군사강국인 북측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얻을 만한 선진기술이 있었을까? 2008년 6월 4일 <맥클래취 뉴스페이퍼> 대담기사에서, 카디르 칸은 “그들(북측을 뜻함)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가져갈 이유가 없음을 우리는 알았다(We knew there was no reason for them to take from us anything)”고 말했다.

파키스탄이 가진 선진기술이라면, 카후타 연구소에서 개발한 P-2 원심분리기 제작기술을 손꼽을 수 있다. 2009년 8월 31일 카디르 칸은 <카라치 아지 뉴스 텔레비전> 방송 대담에서, 카후타 연구소는 P-1 원심분리기를 1983년부터 더 이상 만들지 않았고, 그 뒤로는 P-2 원심분리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원심분리법에 관한 한, 파키스탄은 상당한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다.

자국에 무진장으로 매장된 천연우라늄을 이용하려는 북측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에너지를 넘어 핵에너지를 쓰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이미 1980년대 초에 옛 소련으로부터 우라늄 농축에 관련된 기술, 자재, 시설을 일부 수입하였다. 그런데 옛 소련으로부터 수입한 것은 P-1 원심분리기를 사용하는 1세대 기술이었다. 카후타 연구소가 개발한 P-2 원심분리기를 사용하는 2세대 기술에 북측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9년 12월 28일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문서에서 카디르 칸은 1994년 이후 북측 기술자 10명이 카후타 연구소에 장기체류하였다고 하면서, 북측 기술자들은 P-1 원심분리기 20기를 카후타 연구소 안에서 실험가동하였고, 신형 P-2 원심분리기를 다루는 법을 습득하고서는 신형 원심분리기 4기를 요청하였다고 말했다. P-2 원심분리기 값은 1개에 약 200,000달러나 하는데, 북측 기술자들은 2세대 원심분리기 4기를 들여가 자력으로 제작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 북측의 우라늄 농축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었다. 2009년 12월 28일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문서에서 카디르 칸은 1990년대 초 북측이 우라늄 농축 가스생산시설을 건립했으며, 2002년까지 3,000기 또는 그 이상의 원심분리기를 사용해 우라늄을 농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북측의 6불화우라늄(Uranium Hexafluoride) 생산능력이 초기에는 연간 2t 규모였는데 나중에는 10t 규모로 늘었다고 하면서, 이것은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로 진전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6불화우라늄은 천연우라늄을 농축하는 데 필수적인 물질인데, 그것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가동하면 고농축 우라늄을 얻을 수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북측이 플루토늄-239 생산만이 아니라 우라늄-235 생산에서도 상당한 기술을 확보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12월 28일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문서에서 카디르 칸은,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에 관한 기술조언, 관련설비, 설계도면을 북측에 주었고, 북측은 파키스탄에게 크립트론(Kryptron) 제조법을 가르쳐주었고, 파키스탄에게 가우리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기술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크립트론이란 핵탄두 기폭장치에 들어가는 초고속 전기 개폐기를 뜻한다. 또한 북측은 파키스탄에게 6불화우라늄 1t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북측 외무성은 2009년 6월 13일 성명에서 북측이 “우라늄 농축작업에 착수한다”고 선언하고, “자체의 경수로 건설이 결정된 데 따라 핵연료 보장을 위한 우라늄 농축기술 개발이 성과적으로 진행돼 시험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같은 해 9월 4일 신선호 유엔주재 북측 대사는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라늄 농축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결속단계에 들어섰다”고 썼다. 이러한 정황은 북측이 이미 오래 전부터 축적해온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라늄 농축을 가속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측은 핵확산을 재개할까?

파키스탄 핵과학기술연구원이 1983년에 만든 플루토늄 핵폭탄이나 카후타 연구소가 1984년에 만든 우라늄 핵폭탄은 기술적으로 완성된 핵무기가 아니다. 그것은 미사일에 탑재하지 못하는, 그래서 실전에서는 쓸 수 없는 원시적인 핵폭발 장치였다.

이처럼 핵무기를 만들었으나 아직 기술적으로 완성하지 못한 파키스탄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원시적인 핵무기를 소형화, 경량화하여 미사일에 탑재할 강력한 핵탄두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핵무기를 소형화, 경량화하여 고성능 핵탄두를 만드는 것은 핵개발의 마지막 단계에서 제기되는 난제다. 인도가 1998년 5월 11일과 13일에 실시한 핵실험에서 자극 받은 파키스탄이 서둘러 5월 28일에 대응 핵실험을 실시하였는데, 그 때까지도 파키스탄은 가우리 미사일에 탑재할 소형 핵탄두를 만들지 못하였으니 어찌 다급하지 않았겠는가.

파키스탄은 핵개발 선진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으면 핵무기를 소형화하는 기술적 난관을 돌파하기 힘들었고, 파키스탄이 그 첨단기술을 지원 받을 나라는 북측밖에 없었다. 그래서 카디르 칸은 1999년에 두 번째 방북길에 올랐다.

이수혁 전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자신의 책 ‘전환적 사건’에서 1999년에 방북한 카디르 칸이 평양에서 2시간 떨어진 지하시설을 방문하여 운반대 위에 놓인 핵장치 3기를 직접 보았는데, 지름이 약 61cm이고 64개 뇌관이 있는 것이었다고 썼다. 또한 2009년 12월 28일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문서에서 카디르 칸은, 자기가 1999년에 방북하였을 때 산중동굴(mountain tunnel)로 안내되었는데, 그 곳에서 북측 관계자들은 핵탄두 3기에 들어갈 부품들을 보여주면서 1시간 안에 조립해서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썼다. 그 때 북측 관계자들은 “여섯 개 상자에 들어있는 분리된 핵탄두 핵심부품들(split cores for the warheads)과 핵탄두 1기마다 내장되는 점화기폭장치(ignitor/detonators) 64개”를 그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2004년 4월 13일 <뉴욕 타임스>는, 인민군 핵탄두를 직접 보았다는 카디르 칸의 놀라운 발언을 보도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충격에 빠뜨렸다.

북측이 인민군 핵탄두를 다른 나라 핵과학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핵무기를 소형화 하는 기술을 지원 받기 위해 찾아간 카디르 칸에게 북측은 정상적인 국제거래에서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지원을 안겨주었다. 북측이 파키스탄의 핵무기 소형화 기술개발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해주었는지에 대해 카디르 칸은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영영 비밀에 묻어둘 것이다. 그러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파키스탄이 북측의 기술지원을 받아 2002년 쯤에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확보하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간파한 미국은 2001년부터 카디르 칸을 밀착감시하더니, 나와즈 무샤라프(Nawaz Musharaf)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어 결국 2004년 1월 25일 카디르 칸의 모든 직위를 박탈하였을 뿐 아니라 그를 체포하여 심문하고 가택연금형에 처하도록 배후조종하였다.

2008년 6월 4일 <맥클래취 뉴스페이퍼> 대담기사에서, 카디르 칸은 자기가 목격한, 고도로 발달된 북측의 핵무기 체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북측의 핵무기 체계를 보고 나서 나는 북측이 파키스탄보다 훨씬 더 앞섰고(much more advanced), 우수한 기술(excellent technology)을 가졌으며, (북측 핵무기가) 매우 정교한 설계(very sophisticated designs)로 제조되었음을 파키스탄 정부에게 말해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핵개발을 지휘해온 외국인 핵과학자의 눈에 비친 북측의 핵능력은, 미국발 허위선전을 뛰어넘어 고도의 수준에 이른 핵능력이었다. 1999년에 북측의 핵능력이 그처럼 발달하였으니, 10년이 지난 오늘은 얼마나 더 발달하였을까?

카디르 칸이 북측의 핵능력을 목격하고 설명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던 때로부터 9년이 지난 2008년 6월 26일, 북측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게 핵 신고서를 보냈는데, 거기에 주목할 만한 사실이 들어있었다. 북측은 그 동안 녕변 흑연감속로에서 고순도 플루토늄 30.8kg을 추출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28.8kg을 가지고 핵무기를 만들었고, 2kg은 2006년 10월 9일에 실시한 핵실험에 썼다고 밝힌 것이다. 이것은 북측이 플루토늄 2kg를 가지고 핵탄두 1기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북측의 핵능력을 터무니없이 과소평가하는 미국인 전문가들은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에서 터뜨린 핵탄두에 플루토늄 6kg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측하였지만, 북측은 그보다 훨씬 적은 2kg으로 핵탄두를 만들었다. 북측은 1kg만 가지고서도 강력한 소형 핵탄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핵기술이 발달한 미국이나 러시아는 플루토늄 1kg을 가지고 4킬로톤급 소형 핵탄두 1기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플루토늄-239를 원자로에서 생산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 트리튬(tritium) 몇 g만 있으면 핵폭발력을 300-400%까지 증대시킬 수 있다.

미국인 군사전문가들은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만들 고농축 우라늄을 1986년부터 2005년까지 20년 동안 1,500kg 정도 생산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핵무기 1기를 만드는데 고농축 우라늄이 20kg씩 들어갔다고 보고, 2005년 현재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는 적어도 75기가 될 것으로 그들은 추산하였다. 미국 군사정보기관은 2000년에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100기 정도 보유했을 것으로 보았다. 미국 해군 현대분쟁 연구소(NCCC)는 2003년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가 35-95기 정도라고 추산하였다. 파키스탄군 전략무기사단 부사령관 출신 퇴역장성 페로즈 칸(Feroz Khan)은 파키스탄 언론과 대담하면서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탄두가 80-120기 정도이고, 적들을 교란하기 위해 가짜 핵탄두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측의 핵능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파키스탄이 벌써 5년 전에 핵무기를 100기 정도 보유하였으니, 지금 북측에는 얼마나 많은 핵탄두가 있을까? 북측의 핵능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인민군 핵탄두가 10기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추산한 미국인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는 엉터리 중의 엉터리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쓰는 말로 표현하면, 북측의 파키스탄 핵개발 지원은 핵확산이다. 1990년대에 이미 핵확산을 추진한 북측이 오늘 핵확산을 재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미국 연방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미국 전략태세 의회위원회(Congressional Commission on the Strategic Posture of the United States)는 2008년 12월 15일에 발표한 중간보고서에서 “지금 우리는 핵확산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꼭지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북코리아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저지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폭발적인 핵확산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까닭은 북측이 핵확산을 재개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29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