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략적 인내, 북측의 마지막 비책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미관계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

2010년 1월 11일 북측 외무성이 성명을 통해 “조선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올해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 당사국들에 정중히 제의”하였건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키 리졸브(Key Resolve) 전쟁연습으로 응수하였다. 2010년 3월 15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항공모함은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에서 논한 대로, 태평양사령부 예하 제11 항모강습단은 전격적으로 동해에 진입하여 예고 없는 선제타격전 연습을 강행하였고, 제7 원정강습단은 포항에서 상륙공격전 연습을 강행하였고, 제9 항모강습단은 동중국해에서 또 다른 전쟁연습을 강행하였다. 이처럼 도발적인 실전연습은 태평양사령부의 단독 결정에 따라 실시될 수 없으며, 오바마 대통령이 주재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정하여야 실시될 수 있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전쟁연습 강행은 미국이 북측의 평화회담 제안을 거부하고, 핵전쟁 도발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평화회담 제안을 거부하고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기 석 달 전인 2009년 12월 8일,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평양을 방문하였다. 대통령 특사가 평양에 가서 친서를 전달한 것은 오마바 정부가 출범한 뒤로 교착상태에 있던 북미관계를 순항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2009년 12월 18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평양에 나타난 특사방문단’에서 “첫 번째 북미회담이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특사방문단의 평양 방문으로 성사되었으니, 두 번째 북미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특사방문단의 워싱턴 디씨 방문으로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본 것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전망이었다.

그러나 그런 전망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으로 북침전쟁연습이 실시되는 바람에 빗나가 버렸다. 지난 석 달 동안 북미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상황이 악화되었을까?

첫째, 2009년 12월 8일부터 2박3일 동안 평양을 방문 중이던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2월 9일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난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했으면서도, 방북 직후 서울과 워싱턴 디씨에서 각각 열린 기자회견에서 친서를 전달하였는가고 묻는 기자들의 물음에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친서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도 아니고, 전달 여부만 물었는데도 끝내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북측도 오바마 대통령 친서가 전달되었음을 밝히지 않았다. 쌍방은 왜 친서에 대해 침묵한 것일까?

이러한 분위기는, 2007년 12월 7일 평양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통해 조지 부쉬(George W. Bush) 당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한 분위기와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조지 부쉬 당시 대통령이 보낸 친서에는 “북측이 충분하고 완전한 핵신고를 하면 미국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으며, 북측은 친서를 전달 받은 이튿날 친서를 받았음을 밝히면서 “미국이 약속을 지키는 한, 우리도 약속을 이행할 것임을 확인한다”고 응답하였다. 2009년 12월 9일에 있었던 친서 전달과 2007년 12월 7일에 있었던 친서 전달을 비교할 때 드러나는 차이는, 오바마 대통령 친서가 교착상태에 있던 북미관계를 전혀 호전시키지 못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2009년 12월 당시에는 대통령 특사의 평양 방문과 친서 전달이 북미관계의 교착상태를 타개할 행동으로 보였기 때문에, 북미관계를 호전시킬 내용이 친서에 들어있었을 것으로 추측하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친서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었길래, 교착상태에 있던 북미관계를 전혀 호전시키지 못했을까? 외교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통일뉴스> 2009년 12월 17일자 관련보도는, 오바마 대통령 친서에 “6자회담을 재개하면 한반도 평화포럼을 (6자회담과) 병행 개최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6자회담에 북측이 복귀한 뒤에,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바마 대통령 친서는, 북측이 요구하는 한반도 평화회담 개최 제안을 거부하고, 북측의 6자회담 우선 복귀를 고집한 것이다. 이처럼 오바마 대통령 친서가, 북측이 6자회담에 먼저 복귀해야 한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것은, 북측이 요구하는 한반도 평화회담과 북미 양자회담을 모두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2009년 12월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느 기자가 “6자회담 재개 전에 평화협정 협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의미인가?”고 물었을 때, “물론이다. 우리는 6자회담이 재개되기 전에는 어떤 문제에 대한 협상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하였던 것이다.

둘째, 북미관계에 제기된 또 다른 현안은, 북측이 요구하는 대북 제재 철회다. 대북 제재는 유엔 안보리에서 결정된 것이지만, 그 결정과정을 주도한 당사국은 미국이므로 북측은 미국에게 제재를 철회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9년 12월 16일자는 남측 외교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하여, 북측이 당시 평양을 방문한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에게 대북 제재 철회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국제법에 저촉되지 않는 북측의 합법적인 군사행동을 범죄로 몰아간 조치였다. 유엔 안보리 5대 핵보유국들의 핵실험 실시와 인공위성 발사는 합법행위로 되지만, 북측의 핵실험 실시와 인공위성 발사는 평화를 해치는 범죄로 된다는 미국의 주장은,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천만부당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황당무계하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북측이 대북 제재 철회를 요구한 것은 정당한 일이다.

북측이 미국에게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철회하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까닭은, 대북 제재가 북측 경제를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북측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북 제재를 철회하라는 북측의 요구에 대해 미국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2009년 12월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제재 결의를 수정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비핵화를 위한 중요한 진전을 이뤄낸다면, 그 때 유엔 안보리는 제재 수준을 평가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은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을 보고 나서, 대북 제재를 철회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북 제재를 완화해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북측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허튼 소리여서 대꾸할 가치조차 없었을 것이다.

셋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고 베이징으로 돌아가던 2010년 2월 9일 그가 탄 고려항공 비행기에 이례적으로 북측 정부관리들도 함께 탔다. 그 관리들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북측 외무성 대표단이다. 외무성 대표단에는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과 외무성 영어 동시통역사 최선희 씨가 포함되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미국국장과 영어 동시통역사를 대동한 것을 보면, 그들이 중국 외교부 관리들을 만나려고 베이징으로 나간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외무성 대표단은 미국으로 떠나는 방미일정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무성 대표단은 2010년 2월 9일부터 4박5일 동안 베이징에 머물다가 2월 13일에 평양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북측 외무성 대표단이 베이징에 도착한 2월 9일, 워싱턴 디씨에 주재하는 기자들이 필립 크라울리(Philip J. Crowley)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에게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가고 물었을 때, 그런 계획이 없다고 잡아떼었지만, 사실은 미국 국무부가 외무성 대표단의 미국 입국을 거부한 것이다. 미국 대외관계협의회(CFR)의 코리아문제 선임 객원연구원 스캇 스나이더(Scott A. Snyder)가 2010년 3월 16일 대외관계협의회 대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 연구기관들이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미국에서 열리는 비공식 대화(unofficial talks)에 초청하였으나, 미국 국무부는 “북측이 6자회담 과정에 복귀하는 상황에서만 입국사증(visa)을 내줄 수 있다”고 하면서 입국을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2010년 3월 19일자 보도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지난 2월에 미국을 방문하는 입국사증을 신청했으나 미국 국무부가 입국사증 발급을 계속 미루고 있다고 하면서, 북측이 6자회담 복귀를 확약하지 않으면 입국사증을 내주지 않겠다는 방침이라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미국 연구기관들의 초청을 받고 베이징까지 나간 북측 외무성 대표단에게 입국사증을 내주지 않은 미국의 거부행동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국무부가 입국사증 발급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것처럼 오보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국무부가 북측 외무성 대표단에게 입국사증 발급을 미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과 대화하는 통로를 폐쇄한 것이다.

위에서 논한 세 가지 사건을 종합하면, 북측의 방침은 평화회담을 개최하고, 북미 양자회담을 재개하고, 대북 제재조치를 철회하여야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고, 미국의 방침은 북측이 무조건 6자회담에 복귀하여야 다른 사안들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0년 1월 23일 <니혼게이자이신붕(日本經濟新聞)> 베이징발 기사에 따르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2010년 1월 21일 평양을 방문 중인 이탈리아 국회의원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6자회담에 복귀하는 전제조건으로 북측, 미국, 중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측의 안전보장에 관한 북미 양자회담을 개최하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 재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밝힌 북측의 방침에 대한 미국의 대응발언은, 커트 캠벨(Kurt Campbell)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의 입에서 나왔다. 남측을 방문 중이던 그는 2010년 2월 3일 주한미국대사관 공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2005년과 2007년에 취해진 조치들(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뜻함)을 이행하겠다고 다시 약속하기 전에는 대북 제재조치를 해제하거나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전략적 인내 뒤에 기피의제 있다

2010년 1월 29일 제임스 스타인벅(James B. Steinberg)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워싱턴 디씨에서 열린 코리아 문제 토론회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기조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보다 몇 일 전인 2010년 1월 20일부터 23일까지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여 국무부 당국자들을 만나고 서울에 돌아간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1월 24일 <연합뉴스> 기자와 전화로 통화하면서 “전략적 인내심(strategic patience)을 갖고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와 비핵화 진전을 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인벅 국무부 부장관이 말한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기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언론매체들도 스쳐지나가는 식으로 해설 없이 보도하였다. 그러나 그가 말한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정책기조는 어려운 상황을 오랫동안 참고 견딘다는 일상적인 뜻이 아니라, 북측과 대화하는 통로를 폐쇄하고 도발적인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한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입으로는 전략적 인내를 외워대면서, 행동은 대화통로 폐쇄와 북침전쟁연습 강행으로 줄달음쳤다. 그들이 전략적 인내를 행동으로 옮긴 것은, 2010년 2월 17일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한반도 전쟁연습 일정을 발표하고, 2월 22일부터 제11 항모강습단이 동해에 진입하여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함으로써 교착상태에 있는 북미관계를 더 악화시킨 것이었다.

‘인내’라는 말 앞에 전략적이라는 말까지 붙여놓은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과 대화하는 통로를 폐쇄하고 한반도 군사정세를 긴장시키는 도발적인 행동을 얼마 동안 계속해 보다가 흐지부지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끝장을 볼 때까지 해보겠다는 속셈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처럼 도발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북미관계를 악화국면으로 몰아간 것은, 비핵화와 평화를 실현해야 할 한반도 정세의 앞길에 커다른 악재가 돌출하였음을 뜻한다. 오바마 정부가 등장하기 이전에 17년 동안 때로 북미관계가 개선되는 듯하다가 악화되곤 하였던 고질적인 과거행태를 오바마 정부가 또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러한 반복현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일까? 백악관 상황실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국가안보회의에서 대북 정책을 어떻게 논의하고 결정하는지 외부에서는 알 수 없지만, 궁금증을 풀어줄 해답의 실마리는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전 국무장관의 강연에서 발견되었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1970년대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연거푸 지내면서 대외정책을 주무르던 시기에 그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진보적인 정권을 전복시키고 진보정치세력을 제거하는 비밀공작을 총지휘했던 사람이다. 그는 딕 체니(Dick Cheney) 전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 전 국방장관과 함께 미국 극우정치세력을 대표하는 노회한 정객이다.

오마바 정부가 출범한 이후,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향해 줄곧 제기해온 것은, 북측과 대화하는 통로를 폐쇄하고 북측의 6자회담 무조건 복귀를 요구하면서 북측의 핵억제력을 제거하기 위해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2009년 5월 19일과 7월 14일 미국의 극우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 대담 프로그램에 각각 출연한 자리에서, 그리고 2009년 6월 4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에 발표한 글 ‘북코리아, 시련을 안겨주다(North Korea Throws Down the Gauntlet)’에서, 그리고 2009년 8월 9일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그리고 2009년 12월 18일 <워싱턴 포스트>에 발표한 글 ‘북코리아 문제에서 진전을 보는 방도(How to make progress on North Korea)’에서 북측의 무조건 6자회담 복귀와 북측의 핵억제력을 제거하기 위한 압박을 주장하였다.

그가 왜 그러한 주장을 계속하였는지는 한 동안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2010년 3월 11일 서울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 강당에서 ‘북핵문제와 동북아시아’라는 주제로 강연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그렇게 주장해온 까닭을 슬쩍 내비쳤다. 그는 “북미 양자회담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미국이 북한에게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은 쉽다. 이것만 주면 관계정상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관행을 보면 북한은 협상을 통해 다른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풀어보면,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재개하는 경우, 북측은 ‘다른 테스트’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측이 양자회담에서 미국을 시험하려 들 것이므로, 양자회담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말한 ‘다른 테스트’란 무엇일까? 남측의 보도기사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해설하지 않았지만, 그 말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논의하고 싶지 않고, 또 논의해서도 안 되는 의제를 북측이 양자회담에서 꺼내어 미국을 시험한다는 뜻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논의하고 싶지 않고, 또 논의해서도 안 되는 기피의제는 무엇일까?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자신의 강연에서 미국이 북측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은 쉽고, 북미관계 정상화도 가능하다고 말한 것으로 봐서, 평화협정 체결이나 북미국교 수립은 기피의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기피하는 것이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국교 수립이 아니라면, 기피의제는 결국 주한미국군 철군으로 좁혀진다.

과거사를 돌아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기피의제였던 대만 주둔 미국군 철군문제가 의제화되는 바람에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곤욕을 치른 중미 양자회담 경험은, 그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하던 1971년 7월 9일부터 11일까지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당시 대통령의 밀사로 베이징을 비공개 방문하여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와 벌인 담판에서 몸소 겪은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2009년 12월 7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세계 정치사를 바꿔놓은 담판’에서 논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북측이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의제로 꺼낼까봐 북측과 대화하는 통로를 폐쇄하고 북측의 핵억제력을 제거하기 위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의 주장과 같은 궤도 위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을 내건 대북정책기조를 추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고, 북측과 관계를 정상화할 수도 있지만,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는 않겠다는 완강한 입장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전에 <통일뉴스>에 발표한 내 글들에서 거듭 논한 것처럼, 북측이 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 방도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주한미국군 철군을 실현하는 일괄타결안을 합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다르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 방도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대북관계 정상화만 실현하는 일괄타결안을 합의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포괄적 해결이라는 개념에는 주한미국군 철군이 들어있지 않으며, 철군문제를 의제로 삼아서도 안 된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년 동안 북미관계가 때로 양자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진전되는 듯하다가 다시 대결국면으로 되돌아가곤 하는 역행현상이 일어난 까닭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의제화하는 문제를 놓고 북측과 미국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대립하였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정책기조가 대화를 무조건 폐쇄하자고 주장하는 극우 정객의 논리와 같아진 또 다른 까닭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측의 입장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17일 <러시아의 소리(VOR)> 보도에 따르면, 궁석웅 북측 외무성 부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진행한 회담들에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철회할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고, 6자회담에 앞서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는 북측 입장에 러시아가 동조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북측 입장에 동조한다는 의사를 밝힌 러시아보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갔다. 한반도 평화회담이 열리면 주한미국군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견해가 중국 측에서 제기된 것이다. 2010년 2월 3일 대외정책분석연구소(IFPA)가 보스턴에서 개최하고,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기조연설을 맡은 비공개 토론회에서 중국 대표단이 밝힌 견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유아시아방송> 2010년 2월 5일자 보도에 따르면, 그 비공개 토론회에서 중국 대표단은 6자회담과 한반도 평화회담을 동시에 개최하자고 하면서, 한반도 평화회담에서 주한미국군의 성격을 비롯한 한미동맹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중국 대표단이 이러한 견해를 표명한 것은, 비록 주한미국군 철군이라는 명시적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철군문제를 의제화해야 한다는 북측 입장에 동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요한 것은,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주장에 대해 중국이 반대하고, 평화회담이 열려도 철군문제는 논의하지 않겠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입장에 대해서도 중국이 반대한다는 점이다. 명백하게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의 기피의제가 제기될 북미 양자회담과 한반도 평화회담을 회피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대화 단절을 언제까지나 고집할 수도 없는 곤경에 빠졌다.

<연합뉴스> 2010년 3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북미 양자회담→예비회담→6자회담 순으로 개최하는 중재안을 미국에 제안하였다고 한다. 또한 <요미우리신붕(讀賣新聞)>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한 말을 인용하여 보도한 2010년 3월 21일자 워싱턴발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북미 양자회담→예비회담→6자회담 순으로 개최하자는 중국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중재안 수락은 머지 않아 회담을 재개하겠다는 태도변화로 볼 수 있지만, 과거경험을 상기하면, 대화통로를 폐쇄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과 없는 회담을 몇 차례 진행하다가 그만두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술책일 가능성이 보인다.

미국이 중국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회담을 재개해도, 북측과 미국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놓고 또 다시 충돌하고 회담이 결렬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회담을 개최하는 순서를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회담에서 다룰 의제를 합의하는 것이다.

북측의 마지막 비책은 무엇일까?

북측은 2009년 한 해 동안 인공위성 발사, 지하핵실험 실시, 첨단미사일 발사훈련, 6자회담 참석 거부, 우라늄 농축 개시, 추출한 플루토늄 전량 핵무기화, 경수로 건설 준비사업 착수 선언, 폐연료봉 8천여 개 재처리작업 완료 등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압박하였다. 북미관계에서 북측이 이처럼 연속적이고, 초강경한 압박공세를 취한 때는 2009년이 처음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전 대통령을 비공식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보내고,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공식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보내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2009년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항모강습단을 동원한 북침전쟁연습을 서해에서 강행하고, 2010년 2월 말에서 3월 초에 이르는 기간에 항모강습단과 원정강습단을 동원한 북침전쟁연습을 동해와 남측에서 또 강행하였다. 미국의 그런 행동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평화회담과 양자회담을 거부하는 ‘난치병’이 재발하였다고 말할 수 있고, 주한미국군 철군문제가 의제화되는 것을 가로막는 ‘방어선’을 구축하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난치병은 극약처방으로 치료하는 수밖에 없으며, 전술개념으로 표현하면, 적군의 완강한 방어선은 급소타격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극약처방에 부작용이 따르고, 급소타격에 위험부담이 따르지는 법이지만, 백약이 무효하고 다른 전술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극약처방이나 급소타격 같은 마지막 방도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평화회담과 양자회담을 거부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난치병’을 치료할 북측의 ‘극약처방’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의제화하지 않으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방어선’을 돌파할 북측의 ‘급소타격’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2009년 한 해 동안 계속 퍼부었던 압박공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압박력을 분출시킬, 그리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전략적 인내라는 말을 더 이상 입 밖에 꺼내놓지 못하고 평화회담과 양자회담에 나오도록 강제할 마지막 비책(subtle stratagem)일 것이다.

마지막 비책을 꺼내는 경우 자칫하면 북측과 미국의 무력충돌로 비화될 전쟁위험이 따른다는 점에서, 아무 때나 쉽사리 마지막 비책을 꺼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측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경우에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할 때, 바로 그러한 군사정세가 조성되었을 때 북측은 마지막 비책을 꺼낼 것이다.

북측이 꺼낼 마지막 비책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핵확산(nuclear proliferation)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핵무기보다 핵확산을 훨씬 더 두려워한다. 2010년 3월 18일 미국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USJFCOM)가 펴낸 ‘2010 합동작전 환경평가보고서’는 “미국의 안보에 계속되는 위협은 핵무기의 확산”이라고 지적하였다.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은 북측의 핵무기가 기껏해야 10기를 넘지 못하고, 그나마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기술도 아직 개발하지 못했고,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으니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식으로 허황한 거짓선전을 계속해왔다. 그러한 거짓선전으로, 북측의 핵무기 보유가 미국에게 얼마나 큰 위협요인인지를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눈가림을 한 것이다.

북측이 핵확산금지체제에서 탈퇴했어도 그 체제는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었지만, 북측이 반미국가들에게 핵기술을 지원해주어 그들이 핵물질을 생산하고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는 경우, 핵확산금지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미국이 군사적 지배력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북측이 꺼낼 마지막 비책을 최근에 언급한 사람은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다. 그는 2010년 3월 11일 서울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 강당에서 ‘북핵문제와 동북아시아’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자리에서 “핵무기 확산에 대해 미국은 굉장히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고 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확산은 이성적인 세계 질서에 대한 영구적 위협”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미국 국가정보기관들도 북측의 핵확산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이를테면, 2008년 2월 5일 마이클 맥코넬(John Michael McConenll) 당시 백악관 국가정보국장(DNI)은 연방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하여 “우리는 북코리아가 핵무기를 해외로 확산시켰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10년 2월 2일 데니스 블레어(Dennis C. Blair)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은 연방상원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연례 안보위협 보고서(Annual Threat Assessment)’에서 “북코리아가 이란과 파키스탄에 미사일을 수출하였고, 시리아의 원자로 건설을 지원하였다”고 하면서, “우리는 북코리아가 핵기술을 다시 수출할까봐 우려하고 있다(We remain concerned North Korea could again export nuclear technology)”고 말했다. 이를테면, 저농축 우라늄 630kg을 생산한 이란은 2010년 2월 9일에 고농축 계획을 밝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충격을 주었는데, 이란이 저농축 우라늄을 고농축하여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는 경우, 그 핵물질을 가지고 핵탄두를 만드는 기술을 북측으로부터 수입하려고 할 것이다.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2009년 11월 30일 국가정보국장실 북코리아 담당관 조셉 디트라니(Joseph R. DeTrani)를 국가반확산센터(National Counterproliferation Center) 소장에 임명하였다고 발표하였다. 2005년 11월 21일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 산하에 설치된 국가반확산센터는 핵확산을 방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다. 핵확산 방지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에 대북 정보에 정통한 관리를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핵확산 문제를 얼마나 우려하는지를 말해준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핵확산이란 핵무기 체계를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는 뜻이다. 핵무기 체계는 세 가지로 대별되는데, 무기급 핵물질 생산, 핵탄두 운반 미사일 개발, 핵탄두 제조다. 이 가운데서 마지막 단계는 핵탄두를 만드는 단계다. 일반적으로, 핵탄두는 격발장치(arming device), 신관(fuse), 기폭장치(detonating device), 안전장치(safing device), 고폭화약(high explosives), 중성자 촉발장치(neutron initiator), 플루토늄 핏(plutonium pit), 탬퍼(tamper)라고 부르는 반사재(反射材)를 정밀 조립하여 티타늄(titanium)으로 만든 특수용기에 담은 것이다. 핵관련 분야에서 첨단기술을 확보해야 그러한 장치와 물질을 만들 수 있으며, 고도의 초정밀 조립기술이 있어야 그러한 장치와 물질을 조립할 수 있다.

북측은 이미 1990년대에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고 핵탄두를 제조하는 원천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하였고,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미사일을 생산하는 원천기술도 독자적으로 개발하였으므로, 핵무기 체계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심에 달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핵확산이 실현되고,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고, 미국이 군사적 지배력을 잃어버리는 대격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번에 북미 양자회담이 재개되면, 북측은 주한미군군 철군문제를 의제화하지 않으면 핵확산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미국을 압박할 것이다. 2003년 11월 연방의회에 제출한 ‘대량파괴무기와 고성능 재래식 탄약에 관련된 기술 획득에 관한 공개보고서’에서 조지 테닛(George J. Tenet) 당시 중앙정보국장은, 2003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북측, 미국, 중국이 3자회담을 진행하는 도중에 “북측이 핵무기를 수출하겠다고 사적으로 위협하였다(North Korea privately threatened to export nuclear weapons)”고 밝힌 바 있다.

핵확산을 추진하겠다고 압박했는데도 미국이 상황을 오판하고 굴하지 않으면, 북측은 핵확산을 행동에 옮길 것이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대파국에 맞닥칠 것이다. (2010년 3월 22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