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공중전에서 패한 두 전쟁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소형 프로펠러기로 중폭격기를 격추하다

1950년 5월 31일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통제하는 각종 작전기는 1,172대였다.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 극동군사령부는 1개 중폭격기 편대, 1개 경폭격기 편대, 8개 전투기 대대를 한반도에 투입하였다. 그처럼 방대한 공군력이 한반도 상공으로 몰려갈 때, 인민군의 주력 전투기는 일류신(Ilyushin)-10과 야크(Yak)-9였다. 소련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그 전투기들은 프로펠러기종이다. 그에 비해, 미국군의 주력 전투기는 P-80이었다. 이 전투기는 미국 공군의 1세대 제트기종이다. 당시 정규군으로 개편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은 인민군에게는 제트기종이 한 대도 없었다. 그에 비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공중전 실전경험을 쌓은 미국 공군은 최신형 제트기종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인민군은 프로펠러기를 대지공격작전에 투입하였다. 1950년 6월 27일 인민군 일류신-10 8대는 김포비행장을 공습하여 한국군 작전기 7대를 파괴하였고, 6월 28일에는 인민군 야크-9 4대가 수원비행장을 공습하여 미국군 F-82 1대, B-26 1대, C-54 2대를 파괴하였고, 6월 29일에도 C-54 1대를 파괴하였다.

미국인 전쟁사가 윌리엄 이블러드(William T. Y'Blood)가 2000년에 쓴 글 ‘미그 뒷골목: 공중우세를 위한 싸움(MiG Alley: The Fight for Air Superiority)’에 따르면, 1950년 7월 12일 인민군 야크-9가 B-29 1대를 격추하였고, 7월 15일 B-29 1대를 격상하였으며, 9월 28일에는 F-51 1대를 격추하였다고 한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소련군 조종사의 회상기 ‘사람들이 모르는 전쟁’를 인용보도한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 2007년 6월 1일자 보도기사에 따르면, 1950년 11월 8일 압록강 상공에서 소련군 미그-15와 미국군 F-51이 첫 공중전을 벌였는데 F-51이 패하였다고 한다. 이틀 뒤인 11월 10일에도 압록강 상공에서 미그-15 2대가 미국군 중폭격기 B-29 1대를 격추하였고, 미그-15기 6대가 미국군 제307폭격편대를 궤멸시켰다. 압록강 상공에서 미국군 전투기와 첫 공중전을 벌인 소련군 비행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적기를 62대나 격추한 이반 코체두브(Ivan Kozhedub)가 지휘하였는데, 원래 이 비행대는 모스크바를 방어하기 위해 수도방공구역에 배치된 미그-15 요격편대였다.

세계 전쟁사에서 처음 벌어진 제트기 공중전

6.25전쟁은 세계 전쟁사에서 제트기종이 첫 공중전을 벌인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소련군 제트기 미그-15는 비행성능이나 무장수준에서 미국군 제트기 P-80보다 우세하였다. 미그-15가 P-80을 계속 격추하자, 미국 공군은 제트기 F-86을 전선에 투입하였다. 세이버(Sabre)라고 부른 F-86은 비행성능에서 미그-15와 엇비슷하였고, 무장수준에서는 미그-15보다 우세하였다.

6.25전쟁에서 벌어진 제트기 공중전은 처음에 소련군과 미국군의 전투였는데, 나중에는 미그-15로 훈련 받은 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 조종사들도 미국군 전투기를 상대로 공중전을 벌였다. 1951년 5월 중국 선양(瀋陽)에서 창설된 국제 공산주의 지원 공군(International Communist Volunteer Air Force)은 소련군 2개 비행단과 중국인민해방군 2개 비행단으로 편성되었다. 미국군은 미그-15가 출현하는 압록강 상공을 미그 뒷골목(MiG Alley)이라 불렀고, 공중전에서 미국군 전투기를 제압한 미그-15 조종사들을 한초(honcho)라고 부르며 그들을 공중전에서 상대하기를 꺼렸다. 한초란 반장(班長)이라는 뜻의 일본말에서 따온 것이다.

미국 공군사령관 출신 윌리엄 모마이어(William W. Momyer)가 2003년에 펴낸 책 ‘세 전쟁에서의 공군력(Airpower in Three Wars)’은 6.25전쟁 당시 미국 공군의 작전상황을 밝혀주었는데, 중국인민해방군의 공중전 전술을 언급한 이런 대목이 있다. “코리아전쟁에서 공산주의 중국의 공군은 우리의 F-86 및 전투폭격기와 싸우기 위해 한꺼번에 미그기 200대를 출격시키기도 하였다. (줄임) 그들은 공격기회를 잡으면, 4-6대가 태양을 등지고 전속력으로 돌진해 와서 공격하고 사라지는 전술을 썼다.” 이것은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들이 과감하게 고속돌진하여 미국군 전투기들과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음을 말해준다. 이를테면, 1951년 11월 18일 중국인민해방군 조종사 왕하이(王海)가 이끄는 전투기 6대는 미국군 전투기 60대를 상대로 벌인 공중전에서 미국군 전투기 5대를 격추하였고,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는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또한 모마이어의 책에는 6.25전쟁 공중전에 관한 이런 대목도 있다. “미그-15와 F-86의 공중전은 자주 벌어졌다. 1952년 12월에 미그기 출현은 3,997회나 관측되었고, 공중전은 1,849회나 벌어졌으며, F-86 27대가 파괴되었다.” 치열한 공중전에서 미그-15가 F-86을 제압하였음을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다.

6.25전쟁 중 미그-15가 대승을 거둔 날은 1951년 4월 12일이다. 그 날, 미국군은 B-29 72대로 편성된 대규모 폭격편대와 F-86 32대로 편성된 대규모 요격편대가 출격시켰다. 그에 맞서 미그-15 60대가 대응출격하였다. 164대가 뒤엉켜 40분 동안 벌인 공중전에서 미그-15는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고, B-29 16대, F-86 10대가 격추되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소련군 조종사들의 회상기 ‘사람들이 모르는 전쟁’에 따르면, 그들은 전쟁 3년 동안 B-29 651대를 격추하였고, 소련군 전투기는 335대가 격추되었다고 한다.

6.25전쟁 공중전 격추율의 진상

그런데 미국 공군 역사연구실(Historical Studies Office)에서 펴낸 제81호 자료는 반대로 기록하였다. 그 자료에 따르면, 6.25전쟁에서 F-86은 미그-15 792대를 격추하였고, F-86은 78대밖에 격추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0:1의 격추율(kill ratio)로 미국군이 승리하였다는 것이다. 미국 공군의 전쟁기록에 그런 내용이 들어간 까닭은, 미국군 조종사들이 과장보고한 전과를 현장검증으로 확인하지 못한 채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이 그처럼 과장된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쓰는 바람에, 6.25전쟁 공중전에서 미국군이 승리하였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사실처럼 굳어졌다.

미국 공군 역사연구실이 기록한 6.25전쟁 공중전 전과를 검증한 자료는, 2005년 미국에서 출판된 ‘코리아 전쟁의 격추왕들(Korean War Aces)’이다. 그 책은 미국 공군 역사연구실 자료에 나온 10:1의 격추율을 2:1의 격추율로 하향수정하였다. 격추율을 대폭 수정한 것은, 미국 공군 역사연구실이 기록한 공중전 전과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말해준다.

6.25전쟁 공중전을 최근에 분석한 글은, 2008년 8월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에서 펴낸 논문 “공중전의 과거, 현재, 미래(Air Combat Past, Present and Future)”다. 그 논문은 6.25전쟁에서 F-86 대 미그-15의 손실율(loss ratio)이 1.8:1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격추율이라는 말을 손실율이라는 말로 바꿔놓고 미국군의 공중전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다른 한편, 소련군의 전쟁사 자료는 6.25전쟁 때 F-86 약 600대를 격추하였고, 미그-15는 345대가 격추당했다고 하면서 2:1의 격추율로 승리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명백하게도, 6.25전쟁 공중전에서 우세승을 거둔 전투기는 미그-15다. 미국군은 미그-15보다 성능이 우수한 F-86을 공중전에 투입하였으면서도 패하고 말았다. 6.25전쟁에서 파괴당한 미국군의 각종 작전기는 1,466대이고, 그 가운데서 공중에서 격추되거나 추락한 작전기는 1,106대다.

소련군은 소련공산당의 결정에 따라 6.25전쟁에 전면적으로 참전하지 않았고, 전투기와 조종사를 만주에 보내 압록강 상공을 넘나들며 제한적인 공중전만 벌였다. 또한 소련군은 1952년 10월에 처음 작전배치한, 당시 최고 성능을 가진 미그-17을 한반도 전선에 보내지 않았다. 만일 소련이 미그-17을 한반도 전선에 보냈더라면 미국군은 공중전에서 아마 4:1의 격추율로 완패하였을지 모른다.

베트남전쟁에서 격추된 미국군 전투기들

미국 공군이 1973년 11월 30일에 작성한 ‘작전보고서(Operational Report)’에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군의 각종 작전기 2,255대가 파괴당했다고 씌여있다. 파괴당한 원인을 보면, 지상포화에 격추된 작전기 1,443대, 작전적 손실(operational loss)로 파괴된 작전기 518대,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작전기 110대, 공군기지 피습으로 파괴된 작전기 96대, 공중전에서 격추된 작전기 67대, 그 밖의 전투에서 격추된 작전기 21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공중전에서 격추당한 미국군 전투기가 67대밖에 되지 않는데 작전적 손실로 파괴된 작전기는 518대나 된다고 기록한 것이다. 작전적 손실이란 공군기지가 습격을 받아 주기장에 세워둔 작전기가 파괴당한 경우 또는 아군기들끼리 사고로 충돌하거나 오인공격으로 파괴된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67년 7월 15일 베트남 다낭(Danang) 공군기지가 박격포와 로켓포로 습격을 받는 바람에 주기장에 세워둔 작전기 43대가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작전적 손실로 파괴된 미국군 작전기가 518대나 된다는 기록은 자료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 비행기의 손실(United States Aircraft Losses of the Vietnam War)’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전쟁에서 파괴된 미국군의 각종 제트기종은 2,182대인데, 그 가운데서 1,783대가 공중에서 격추되었다고 한다. 또한 베트남전쟁에서 파괴된 미국군의 프로펠러기는 1,015대이며, 파괴된 헬기는 5,505대이다. 프로펠러기나 헬기는 공중에서 격추되었더라도 공중전 개념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공중에서 격추된 미국군 제트기종 1,783대 가운데 공중전에서 몇 대가 격추되었을까? 미국 군사전문지 공군(Air Force)> 편집장이었던 존 코렐(John T. Correll)이 2004년에 펴낸 책 ‘베트남전쟁에서의 공군(The Air Force in the Vietnam War)’은 그 전쟁에서 격추된 미국군 작전기 가운데 68%가 지상포화 또는 지대공 미사일을 맞아 격추당했다고 지적하였다. 그 비율로 따지면, 공중전에서 격추된 미국군 작전기는 570대다. 베트남전쟁에 투입된 미국 공군병력 및 해군병력 전사자가 5,152명, 실종자가 935명, 전상자가 5,199명이었으니, 공중전에서 570대가 격추되었다는 것은 무리한 추산이 아니다.

미국군이 베트남전쟁에서 잃은 각종 작전기를 기종별로 보면, 가장 많이 잃은 기종은 공군, 해군, 해병대의 주력 전투기 F-4인데, 761대를 잃었다. 그 다음으로 많이 잃은 기종은 공군의 F-105 전투폭격기인데, 382대를 잃었다. 세 번째로 많이 잃은 기종은 해군 및 해병대의 A-4 대지공격기인데, 286대를 잃었다. 네 번째로 많이 잃은 기종은 공군의 F-100 전투기인데, 243대를 잃었다. 다섯 번째로 많이 잃은 기종은 해군 및 해병대의 F-8 전투기인데, 118대를 잃었다. 여섯 번째로 많이 잃은 기종은 해군 및 해병대의 A-7 전투기인데, 106대를 잃었다. 일곱 번째로 많이 잃은 기종은 해군 및 해병대의 A-6 전투기인데, 62대를 잃었다. 여덟 번째로 많이 잃은 기종은 공군의 B-57 폭격정찰기인데, 56대를 잃었다. 아홉 번째로 많이 잃은 기종은 공군의 B-52 전략폭격기인데, 31대를 잃었다. 열 번째로 많이 잃은 기종은 해군의 A-5 폭격기인데, 27대를 잃었다. 그 밖에도 16개 기종을 여러 대씩 잃었다.

그에 비해, 북베트남군 전투기는 공중전에서 91대가 격추되었다. 기종별로 보면, 미그-19 2대, 미그-17 35대, 미그-21 54대가 격추되었다.

미국군 작전기가 570대 격추되고, 북베트남군 전투기가 91대 격추되었으므로, 미국군은 공중전에서 6:1의 격추율로 패한 것이다. 6.25전쟁에서 2:1의 격추율로 패한 미국군이 베트남전쟁에서는 6:1의 격추율로 대패하였다.

미국군이 공중전에서 패한 원인

미국군이 패한 원인은 북베트남군 공군력이 미국군의 예상보다 강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또 다른 원인은 미국군이 저지른 실책이다.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미국 공군, 해군, 해병대가 베트남전쟁에 공통적으로 투입한 F-4는 1960년 12월 30일에 처음 작전배치된, 당시 최강기종이라고 격찬한 전투기다. 그 최강기종에는 사이드와인더(Sidewinder)라고 부르는 공대공 단거리 미사일 4기가 장착되었다. 미국 군부는 이 미사일이 근접공중전 작전환경에 맞춰 제작한 공대공 미사일이라고 믿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 미사일은 적기의 제트엔진이 내뿜는 열을 멀리서 포착하여 날아가는 열추적 장비를 내장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쏠 수 있도록 사거리가 1-18km 범위로 짧았다. 최강기종 F-4에 그런 미사일까지 장착했으니, 미그-17은 모조리 격추하리라고 미국 군부는 예상하였다.

그러나 공중전 결과는 그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공중전에서 우수수 떨어진 것은 F-4였다. 미그-17보다 훨씬 우수한 최강기종 F-4는 왜 공중전에서 패했을까? 영국인 군사항공전문가 빌 건스턴(Bill Gunston)이 1977년에 펴낸 책 ‘F-4 팬텀’에서 패인을 찾아낼 수 있다. 그 책에는 F-4를 몰고 출격하여 미그-17과 공중전을 벌인 노련한 미국군 조종사 로빈 올즈(Robin Olds) 대령의 실전경험이 소개되었다. 경험에 따르면, 공대공 미사일 최단 사거리 1km 안으로 재빨리 파고 드는 북베트남군 전술 앞에서 공대공 미사일이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다. 고속돌진으로 파고 드는 미그-17을 향해 기관포를 쏘아야 하는데, 당시 F-4에는 기관포가 없었다. 사거리가 짧은 공대공 미사일만 있으면 공중전에서 이길 줄로 착각하였던 미국 군부의 실책이 미국 공군을 어이없는 패배로 내몰았다. 그래서 로빈 올즈 대령은 “기관포 없는 전투기는 날개 없는 전투기와 같다”는 탄식조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미그-17에 장착된 기관포 사거리는 700m이므로, 공대공 미사일이 없는 미그-17이 F-4를 격추하려면 무조건 700m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하였다. 가시거리 밖(BVR)의 원격 공중전에 맞춰 제작된 최강기종 F-4는 1km 안으로 파고 들어온 미그-17의 기관포 사격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원래 근접공중전에서 쓰려고 F-4에 달아놓은 단거리 미사일은 전투기 꼬리쪽에서 내뿜는 엔진분사열을 멀리서 포착하여 날아가는 열추적 미사일인데, 그런 종류의 미사일은 열이 나오지 않는 적기 정면을 향해 쏠 수 없고 적기 후방에서 쏘아야 한다. 그런데 F-4가 미사일을 쏘려고 미그-17 후방으로 기동하기 전에 미그-17이 먼저 F-4를 향해 기관포를 쏘게 되니 F-4는 피격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공대공 미사일을 4발 밖에 장착하지 않은 F-4가 4발을 모두 쏘고 나면 사실상 무장을 해제당한 처지가 되었던 것에 비해, 미그-17은 기체 정면에 장착된 37mm 기관포에서 400발을 쏠 수 있었고, 기체 후면에 장착된 23mm 기관포에서 160발을 쏠 수 있었다.

공중전 참패로 충격을 받은 미국 군부는 기관포의 중요성을 깨닫고 F-4에 기관포를 달아주었다. 미국 해군이 속칭 탑건(Topgun)이라고 부르는 근접공중전 교육(SFTI)을 도입한 때는 1969년이고, 미국 공군이 붉은 깃발(Red Flag)라고 부르는 근접공중전 교육을 도입한 때는 1975년이다. 그러나 F-4에 기관포를 달았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원래 기체무게가 무거워 공중기동에서 굼뜰 수밖에 없는 F-4는 날렵한 공중기동으로 파고 드는 미그-17의 기관포 사격을 당할 수 없었다.

미국군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인 인민군 조종사들

1965년 4월 3일에 벌어진 공중전에서 북베트남군 미그-17은 미국군 F-8을 격추하였다. 놀랍게도, 저음속 기종이 초음속 기종을 또 제압한 것이다. 북베트남에서는 미국군 초음속 전투기를 처음 격추한 4월 3일을 공군절로 정하고 기념하게 되었다. 공중전은 이튿날에도 계속되었는데, 이번에는 미그-17이 F-105와 접전을 벌였다. 그 공중전에서도 미그-17은 F-105 두 대를 격추하는 놀라운 전과를 얻었다.

윌리엄 모마이어 전 미국 공군사령관이 쓴 책 ‘세 전쟁에서의 공군력’에 따르면, 1967년부터 북베트남군의 공중작전능력이 눈에 띄게 강해졌고, 그에 따라 미그-17의 기관포 사격을 받고 격추되는 미국군 작전기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1967년 8월 하순 얼 윌러(Earle Wheeler) 당시 미국군 합참의장, 그랜트 샤프(Grant Sharp) 당시 태평양사령관, 존 조셉 하일랜드(John Joseph Hyland) 당시 제7함대 사령관, 존 폴 맥코넬(John Paul McConnell) 당시 공군참모장, 그리고 윌리엄 모마이어 당시 공군사령관은 “미그기와 샘(SAM) 미사일에 격추되는 아군기가 늘어남에 따라, 아군 공군 및 해군 조종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북베트남 공군기지들과 방공망을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 책에서 모마이어 당시 공군사령관은 “만일 적의 방공망을 공격하지 않으면, 우리는 조종사들과 작전기들을 불필요하게 계속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미그기들이 실질적이고 위협적인 공격을 해오기 때문에 우리는 전투폭격기들에 적재한 폭탄을 계속 버리게 될 것”이라고 썼다. 또한 미국인 전쟁사가 앤써니 로빈슨(Anthony Robinson)은 1982년에 펴낸 책 ‘공중전투: 도해로 보는 역사(Aerial Warfare: An Illustrated History)’에서 “(1967년부터) 북베트남 조종사들이 미국군 작전기를 공격하는 데서 더욱 용감해졌고 더욱 성공적이었다”고 썼다.

이처럼 1967년에 북베트남군의 공중작전능력이 눈에 띄게 강해진 데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해에 인민군 조종사들이 베트남전쟁에 대거 참전하였기 때문이다.

반제군사노선을 견지해온 북측은 1966년 10월 베트남전쟁에 인민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결정에 따라 1967년 초에 2개 비행대와 2개 방공포대를 북베트남에 보냈다. 인민군 비행대가 지원군으로 합세하자, 북베트남군은 1967년 3월 24일 제921비행대, 제923비행대, 제919비행대를 제371비행단으로 통합하였고, 인민군 비행대는 그 비행단과 합동작전을 벌였다. 인민군 1개 비행대의 조종사는 70명이었다.

베트남전선에 출전한 인민군 2개 비행대는 1972년까지 6년 동안 계속 머문 것이 아니라, 6개월마다 다른 2개 비행대와 교체되었다. 인민군 지휘부는 순환파병으로 더 많은 조종사들에게 실전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었고, 순환파병기간 6년 동안 인민군 조종사 840명이 미국군 전투기를 상대로 싸우는 공중전 실전경험을 쌓았다.

베트남전쟁에서 인민군의 공중전 전술

베트남전쟁에서 인민군의 공중전 전술이 어떠했는지를 언급한 사람은 윌리엄 모마이어 전 공군사령관인데, 그의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는 거의 모든 미그-17을 조종한 사람들이 인민군 조종사들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특히 미그-21이 이착륙하는 동안 공군기지 상공을 지켜주었다. 그들은 미그-17 비행대형에 두 대밖에 배치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자주 사용한 전술은 F-4의 항공유가 거의 바닥이 날 때쯤, F-4를 저고도 공중전으로 유인하는 전술이었다. 미그-17은 미국 해군의 작전구역 안에 있는 베트남 북동부 동쪽 철도망 상공으로 집중출격하였는데, 격추된 미국 해군기들은 거의 미그-17에게 당했다.”

그 책에 따르면, 북위 20도선(군사분계선은 북위 17도선)을 넘어 북베트남 영공에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격추당하는 미국군 작전기들이 많아지자, 1968년 3월 31일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북위 17도선을 넘어가는 공중작전을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1968년 4월부터 미국 군부는 베트남전선에서 미국군을 철군하는 문제를 기정사실(fait accomli)로 인정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인민군으로부터 공군력을 지원 받아 공중작전을 강화한 북베트남군이 영공방어전에서 승기를 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베트남전선에 출전한 인민군 조종사들이 가장 큰 전과를 올린 공중전은 1969년 5월 28일에 있었던 ‘5.28 공중전’이다. 그 날, 미그-17 8대를 몰고 출격한 인민군 조종사들은 미국군 F-105 12대를 격추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시속 1,144km의 저음속 기종으로 시속 2,208km(마하 2.08)의 초음속 기종을 제압한 것이다. 대승을 거둔 조종사들이 속한 인민군 비행대는 ‘5.28 공중전’ 승리를 기념하여 대대이름을 제528대대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베트남전쟁에 출전한 인민군 조종사들은 6년 동안 미국군 전투기를 몇 대나 격추하였을까? 인민군 조종사들이 거둔 공중전 전과를 말해주는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는데, 1996년 5월 23일 미그-19를 몰고 남측으로 넘어간 인민군 조종사는 베트남전쟁에서 인민군 조종사들이 미국군 전투기 약 100대를 격추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남측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하노이에서 북동쪽으로 60km 떨어진 곳에 있는 박쟝(Bac Giang)에는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인민군 조종사들의 묘비가 있다고 한다. 높이 10m의 열사추모탑 뒤에 묘비 14기가 있는데, 조종사 묘비가 11기, 항공정비사 묘비가 3기다. 물론 유해는 북측에 안치되었고, 그 곳에는 묘비만 있다. 거의 모든 묘비에는 전사시기가 1967년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것은 공중전에서 전사한 인민군 조종사가 11명이었음을 말해주며, 파병 첫 해에만 전사자가 있었고 그 뒤 5년 동안에는 전사자가 거의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묘비들은 인민군 조종사들이 미국군 전투기와 싸운 공중전에서 9:1의 격추율로 완승한 전승기록이다.

40년 뒤 인민군의 공군력

인민군 조종사들이 미그-17을 몰고 미국군 최강기종을 제압한 때로부터 어언 40년 이 지났다. 현재 인민군 공군력은 40년 전 수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성했을 것이다. 인민군 공군병력 11만명은 4개 비행사단, 2개 항공지원사단, 1개 훈련비행사단, 2개 공군저격여단, 지상방공부대로 편성되어 있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인민군 조종사가 2,000명이라고 보도했고, 남측 국방부가 발표한 ‘2008 국방백서’는 인민군이 각종 작전기 840대, 감시통제기 30대, 공중기동기 330대, 훈련기 180대를 보유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인민군 공군력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인민군의 갱도 활주로와 지하격납고는 한반도 공중전 작전환경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보장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교전 쌍방은 공군기지를 향해 미사일, 로켓포, 장거리포를 집중발사할 것인데,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공군기지는 미국에서 수입한 엉성한 미사일방어망에 의존할 뿐 다른 방어대책이 없으나, 인민군은 갱도 활주로와 지하격납고로 거의 완벽한 방어대책을 마련해놓았다.

<신동아> 2004년 12월호 관련기사는 미국 민간위성정보회사로부터 입수한, 2002년 3월 10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지하격납고가 있는 인민군 공군기지 19개를 찾아냈다. <신동아> 기자는 해상도가 떨어지는 위성사진을 보고 19개를 찾아냈지만, 지하요새로 건설된 공군기지는 위성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 지하요새란 커다란 산 전체를 3분의 1 이상 파내서 지하격납고만이 아니라 갱도 활주로, 병기창, 병력수용공간까지 만든 것이다. 지하요새 출입구의 폭은 15-30m, 넓이는 30,000㎡인데, 전투기 70-100대가 들어간다. 폭격기들이 들어가는 지하요새는 더 넓고 크다. 지하요새 출입구가 북쪽을 향해 세 개가 나있으니, 한꺼번에 3대씩 출격할 수 있다. 공중작전을 지휘하는 인민군 공군사령부는 평양에 있는 해발 309m의 마장산을 파내고 건설한 지하요새에 있다.

둘째, 인민군은 전자전기와 자폭공격기를 배치하여 공중작전 양상을 바꿔놓았다. <연합뉴스> 2005년 9월 23일자 관련보도에 따르면, 인민군은 자체로 제작한 전자전기를 1992-1993년에 작전배치하였다고 한다. 인민군은 전자전 연대를 5개나 배치하였다. 이것은 인민군이 전자전 능력 증강에 힘을 기울였음을 말해준다. 미국군이 전자전 능력을 독점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보부족에서 오는 착시현상이다.

또한 인민군은 노후기종인 미그-15과 미그-17 320대를 전부 스텔스 자폭공격기로 개조하였다. 고성능 폭탄을 만재한 스텔스 자폭공격기의 비행거리는 1,000km다. 지대지 미사일로 공격하기 힘든 요새는 스텔스 자폭공격기로 파괴할 것이다. <연합뉴스> 1998년 9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1998년 초 자폭공격기 조종사를 모집하였는데, 지원자가 수 만 명이나 몰려서, 일차로 200명만 선발하였다고 한다. 자폭공격기 조종사들은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지하요새 공군기지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셋째, 인민군은 공중전 기습육박전술을 연마하였다. 공중전 기습육박전술이란 공대공 미사일을 쏠 수 없는 근접거리로 기습접근한 아군기가 적기와 서로 기관포를 쏘면서 마주보고 돌진할 때 쓰는 전술이다. 육탄정신으로 무장한 조종사가 이 전술을 쓸 수 있다. 공중전 반경이 좁은 한반도 상공에서 벌어지는 근접공중전에서는 쌍방 전투기들이 시속 1,600km 정도의 초고속으로 상호접근하여 공대공 미사일을 미처 쏠 수 없게 되므로, 기습육박전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한겨레> 2005년 10월 31일자 기사는 1996년 5월 23일 미그-19를 몰고 남측으로 넘어간 조종사가 당시 국방부 기자실에서 인민군 조종사들이 조준기 겨누는 연습을 평소에 열심히 하기 때문에 기관포 사격술이 상당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는데, 그 말에서 인민군이 미그-19로 기습육박전술을 연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민군이 기습육박전술에 쓸 미그-19는 160대다.

넷째, <연합뉴스> 2008년 2월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은 1995년 이후 13년 만에 전투기 일일 출격횟수를 최고 수준인 170회로 높이고, 전투기와 폭격기를 전방으로 전개하는 훈련을 1월에만 세 차례나 실시하였다고 한다. 인민군 조종사들이 항공유 부족으로 비행훈련시간을 크게 줄인 것은 10여 년 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다른 한편, 2007년부터 ‘고유가 직격탄’을 맞은 한국군은 조종사의 지상모의훈련에 집중하고 군용기 사용을 통제하고 비행훈련시간을 10% 줄였는데, 2008년에는 장병 급식비에서 떼어낸 400억원으로 유류를 구입하는 등 비상책을 쓰고 있다.

적기를 발견하고 공대공 미사일을 쏘는 과정을 자동화하는 헬멧장착 시현장치(JHMCS)나 탐색기로 공대공 미사일을 조준하는 자동조준장치 등은 우수한 전자장비임이 분명한데, 공중전 컴퓨터 게임에서 멋진 성능을 발휘할 뿐, 공중전, 미사일전, 포병전, 전자전, 사이버전이 복잡하게 뒤엉키는 실전상황에서는 전자장비가 무력화된다. 또한 700km 떨어진 상공을 비행하는 적기에 관한 정보를 아군기에게 알려주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는 우수한 기종이지만, 영공이 넓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같은 나라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영공이 좁은 남측에서는 만주 상공을 감시할 때나 쓸모가 있지 정작 근접공중전에서는 쓸모가 없다. 이를테면, 1996년 5월 23일 남측으로 넘어간 미그-19가 평양 서쪽에 있는 온천공군기지 남쪽 24km 상공에서 남하하여 인천 상공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6분이다. 한국군 전투기들이 대응출격한시각은 미그-19가 인천 상공에 도달하고 1분이 지난 오전 10시 50분이었다.

한반도 전쟁에서 교전 쌍방이 미사일, 로켓포, 장거리포를 집중발사하여 공군기지, 레이더기지, 방공망을 서로 파괴하더라도, 지하요새에 들어있던 인민군 전투기들은 갱도 활주로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때부터 공중전은 시작되는데,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의 전투기는 지상에 몇 대가 남아있을까? (2010년 3월 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