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인민군 전차 기동사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다섯 장 사진이 던져준 수수께끼

2010 1월 5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 관하 구분대를 시찰하였다고 보도하면서 시찰현장사진을 방영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새해를 맞아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을 시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그는 2009년 1월 1일에도 그 전차사단을 시찰한 바 있다.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은 제820전차군단 산하 5개 전차사단 가운데 최강의 전차사단이다.

그런데 <조선중앙텔레비죤>이 평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또는 현장시찰에 관한 사진을 보도할 때는 대체로 20여 장 정도 방영하는데, 그 날은 거의 세 배나 많은 59장을 방영하였다. 영상보도분량이 급증한 것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연유가 무엇이었는 지는 이 글에서 밝혀질 것이다.

<조선중앙텔레비죤>이 방영한 시찰현장사진 59장 가운데는, 인민군 전차 기동장면을 찍은 사진이 몇 장 있다. 사진에 나타난 전차들은 인민군이 작전배치한 수륙양용 경전차(amphibious light tank) 피티(PT)-85다. 인민군이 작전배치한 다른 종류의 전차들과 마찬가지로, 이 전차도 북측이 100% 자력으로 생산한 것인데, 북측에서 이 전차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 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중앙텔레비죤>이 인민군 전차 기동사진을 방영하자, 남측 언론매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사진이 “남한 공격 가상훈련을 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라고 보도하였고, <연합뉴스>는 한 술 더 떠서 “주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대남우호심리를 꺾고 적개심을 심어주려는 의도인 것 같다”는 ‘대북 전문가’의 ‘해석’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얼핏 보아서는 뜻을 알기 힘든 그 사진들에 담긴 수수께끼의 매듭은, 남측에 떠도는 ‘남침위협설’로 풀 수 있을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남측 지명을 크게 써넣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눈덮힌 벌판길을 인민군 전차 한 대 또는 두 대가 달리는 사진들은, 전차사단이 야외전술훈련을 하는 장면으로 보이지 않고, 갓 입대한 신입전차병들이 전차주행연습을 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인민군 전차사단의 야외전술훈련장면을 찍은 이전의 다른 사진들을 보면, 붉은 색 연막탄을 터뜨리고, 화염방사기가 뿜는 불길이 허공을 가르는 가운데 전차 여러 대가 전차포를 쏘며 가상적진으로 진격하는 실전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사진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전차병들이 전차출입구(hatch)를 열어놓고 머리를 밖으로 내놓은 채 기동하는 전차가 눈덮힌 벌판에 뚫려있는 한적한 1차선 직선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찍은 것이 전부다.

평소에 인민군은 전차출입구를 닫고 달리면서 실탄을 사격하는 야외전술훈련을 하지만, 전차출입구를 열어놓고 전차병들이 머리를 밖으로 내놓은 채 달리는 주행연습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기름을 한 방울이라도 아껴야 하는 인민군에게 전차주행연습은 유류낭비로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나온 사진들에서는 전차출입구를 열어놓고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를 수행한 인민군 고위급 지휘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해에 처음으로 실시한 야외전술훈련에서 신입전차병들이 전차주행을 연습하였 리는 만무하다. <로동신문> 2010년 1월 6일자 보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방감시소에서 “땅크병들의 용맹한 훈련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했는데, 그 사진들에서는 용맹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위의 보도기사에 “부대의 용감한 땅크병들은...위력한 포화력으로 <적진>을 산산이 짓부시며 노도처럼 전진하였다”고 쓰여있는 것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방감시소에서 굽어보는 가운데 인민군 전차들이 가상적진을 향해 실탄을 쏘며 진격하는 야외전술훈련을 실시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북측은 제105전차사단의 야외전술훈련장면은 공개하지 않고, 인민군 전차들이 하지 않는 주행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만 공개한 것이다.

전차부대에 갓 들어온 훈련병들이 전차주행연습을 한 것이 아니라면, 북측은 왜 주행연습장면을 찍은 듯한 수수께끼 같은 사진을 텔레비전방송 보도시간에 공개한 것일까? 수수께끼의 매듭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수수께끼 같은 사진들이 한층 더 난해하게 보인 까닭은, 인민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남측 언론매체들이 그 사진들을 순서대로 배열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진들을 순서대로 배열해놓지 않으면 수수께끼의 매듭을 풀 수 없다. 그 사진들을 순서대로 배열하면, 놀랍게도 이런 연속장면(panorama)이 시야에 들어온다.

첫째 사진은 인민군 전차 15대가 눈덮힌 계곡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장면을 먼 거리에서 찍은 것이다. 전차들은 왼쪽을 향해 선두부분은 이렬횡대로, 후미부분은 일렬횡대로 도열해 있다. 사진을 찍은 각도를 보면, 계곡 위쪽에서 계곡 아래쪽을 찍은 것이다. 야외전술훈련장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감시소에서 찍은 사진인 것이 분명하다. 너무 먼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어서, 중전차인지 경전차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이것은 준비를 마친 전차사단이 지휘관의 출동명령을 기다리는 것을 상정한 장면이다.

둘째 사진은 951호 수륙양용 전차가 얼음물을 가르며 개울을 건너는 장면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찍은 것이다. 달리는 전차 위에 서 있는 군인의 군복차림을 보면, 그는 전차병 복장을 한 사병이 아니라, 군관(장교) 군복을 입은 지휘관이다. 전차의 주행방향은 왼쪽이다. 이것은 인민군 전차사단이 도하작전을 하는 것을 상정한 장면이다.

셋째 사진은 전차 두 대가 눈덮힌 벌판에 직선으로 뚫린 1차선 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포탑에 적힌 전차번호를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에서 찍은 것이다. 두 전차의 주행방향은 역시 왼쪽이다. 길 윗쪽에는 전라남도라고 쓴 표지판이 보이고, 길 아랫쪽에는 호남고속도로라고 쓴 표지판이 보인다. 이것은 인민군 전차사단이 전라남도를 지나는 것은 상정한 장면이다.

넷째 사진은 도하작전을 상정한 장면에 나온 951호 전차가 눈덮힌 벌판에 직선으로 뚫린 1차선 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전차의 주행방향은 앞의 사진들과 달리 오른쪽이다. 길 윗쪽에는 ‘중앙고속도로 춘천-부산 354km’라고 쓴 표지판이 보이고, 길 아랫쪽에는 김해라고 쓴 표지판이 보인다. 이것은 인민군 전차사단이 경상남도를 지나는 것을 상정한 장면이다.

이 사진들에 남측 지명을 써넣은 표지판이 몇 개 나오는 것을 보고, 남측 지형을 축소해놓았다고 단순하게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남측 지형의 실제 위치, 방향, 거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급조한 것으로 보이는 지명 표지판 몇 개를 여기저기 세워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사진은 945호 전차가 눈덮힌 벌판에 직선으로 뚫린 1차선 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전차의 주행방향은 왼쪽이다. 길 윗쪽에는 삼랑이라고 쓴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것은 경상남도 삼랑진을 삼랑이라고 잘 못 쓴 것으로 보인다. 길 아랫쪽에는 창원이라고 쓴 표지판이 보인다.

위의 사진들과 다르게, 달리는 전차 포탑 위에서 북측 국기가 휘날리는 것이 보인다. 위에 나온 도하작전을 상정한 장면을 찍은 두 번째 사진을 확대해보면, 951호 전차에도 포탑에 북측 국기가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람에 휘날리지 않고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국기가 있는 지 알기 힘들다. 두 번째 사진에서 전차가 속력을 내어 달리고 있는 데도 국기가 휘날리지 않는 것은, 정해진 순서에서만 휘날리도록 치밀하게 사전준비를 해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 장 사진을 순서대로 배열하면, 출동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던 인민군 전차사단이 명령을 받고 출발하여 하천을 건너 남진하여, 전라남도쪽으로 내려간 한 갈래는 호남고속도로(논산-순천)와 남해고속도로(순천-부산)를 타고 우회하고, 경상남도쪽으로 내려간 다른 한 갈래는 중앙고속도로(춘천-부산)를 타고 직진해서, 부산에 도착하는 일련의 행동계획(scenario)이 나타난다. 그리고 최종목적지 부산에 도착할 때는 북측 국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장면까지 보여준 것이다.

명백하게도, 그 다섯 장 사진은 야외전술훈련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라, 부산을 향해 남진하는 행동계획을 상정한 기동장면을 행동계획 순서대로 찍은 것이다.

북측은 왜 그 사진을 공개하였을까?

인민군 전차의 부산행 행동계획을 상정한 기동사진을 공개한 북측의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이 난해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그 사진을 어떤 대상에게 공개한 것인가 하는 물음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사진은 북측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공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보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사진 다섯 장이 보여주는 것이 서울행 행동계획이 아니라 부산행 행동계획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 사진들이 서울행 행동계획을 상정한 장면을 찍은 것이라면, 인민군 전차사단이 ‘남한 공격 가상훈련’을 실시하였다는 남측 언론매체들의 오보가 뒤집혀 사실보도로 될 것이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그 사진들은 인민군 전차사단이 전라남도를 우회하고 경상남도를 직진하여 부산에 도착하는 행동계획을 상정한 것이다.

물론 인민군은 서울 점령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군과 한국군이 평양 점령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 인민군이 서울 점령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북측이 인민군 전차사단의 부산행 행동계획을 상정한 장면을 공개하였다는 점이다. 북측은 왜 서울행 행동계획이 아니라 부산행 행동계획을 상정한 장면을 공개하였을까?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한국군의 한반도전쟁 전략거점은 서울인데 비해, 미국군의 한반도전쟁 전략거점은 부산이다. 미국군은 서울방어전을 한국군에게 맡기고, 자기들은 부산을 전략거점으로 하여 전쟁을 수행하려는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증파한 증원군 병력이 부산으로 집결하여 북상하는 이른바 ‘신속전개전략’을 밀고 나간다는 뜻이다.

이런 전쟁예상판도를 읽어보면, 인민군이 미국의 증원군 파병을 차단하여 한반도전쟁을 신속히 끝내려면 부산부터 점령해야 한다는 점이 자명해진다. 60년 전에 일어난 6.25전쟁에서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의 작전목적지는 서울이었지만, 오늘날 그 전차사단의 작전목적지는 부산이다. 인민군 전차사단의 고속주공방향이 서울로만 집중될 것으로 보는 예측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오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남측의 모든 도로는 쏟아져나온 민간차량들과 피난민들이 마구 뒤엉켜 수라장이 되고, 철도는 후방에 침투한 인민군 특수전 병력이 파괴하여 마비되고, 헬기는 후방에 침투한 인민군 특수전 병력의 휴대용 대공미사일 공격을 받을 위험 때문에 뜨지 못한다. 이런 조건에서 인민군 전차군단이 고속기동전으로 부산을 점령하면, 주한미국군 3만8,000명은 부산으로 퇴각하지도 못하고 자기 영내에서 ‘전쟁포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남측에 있는 미국국적 민간인 14만명을 유사시 대피시키는 이른바 ‘용감한 통로훈련(Courageous Cannel Exercise)’을 해마다 한 차례씩 실시하지만, 그들 14만명은 부산행 고속열차(KTX)를 타보지도 못한 채 볼모가 될 것이다. 인민군 전차사단이 고속기동전으로 부산을 점령하면, 한국군이 수도권을 방어한다고 해도 한반도전쟁은 끝나게 되어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측이 서울행 행동계획을 상정한 장면을 공개하지 않고 부산행 행동계획을 상정한 장면을 공개한 것은, 북측이 그 사진들을 공개한 대상이 청와대가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이었음이 자명하게 드러난다.

둘째,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은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서울에 입성한 부대로만 알려졌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6.25전쟁 당시에는 전차여단이었던 그 전차사단은 인민군이 미국군과 맞붙은 첫 지상전에서 대승을 거둔 부대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50년 7월 5일에 벌어진 오산전투는 이러하였다.

일본에 점령군으로 주둔하던 미국 육군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와 제52포병대대는, 제24사단 본진이 부산에 상륙할 때까지 우선 인민군의 남진을 최대한 저지하라는 긴급작전명령을 받고 서둘러 전선에 투입되었다. 포병과 보병으로 구성된 미국군 선발대는 찰스 스미스(Charles B. Smith) 중령이 지휘하는 스미스 특공대(Task Force Smith)였다. 보병부대는 75mm 무반동총, 바주카포, 4.2인치 박격포로 무장하였고, 포병부대는 105mm 곡사포로 무장하였다. 스미스 특공대는 7월 5일 새벽에 경기도 오산에서 북쪽으로 3.5km 떨어진 죽미령에 매복, 포진하였다.

38도선돌파작전, 서울점령전투, 한강도하작전, 수원점령전투에서 파죽지세로 승리하면서 계속 남진하던 인민군은 7월 5일 오전 8시 26분 미국군과 역사상 처음으로 지상전을 벌였다. 그런데 미국군에게는 당시 인민군의 티(T)-34 전차를 파괴할 무기가 없었다. 스미스 특공대는 가지고 있는 각종 무기를 난사하면서 저항하였으나, 인민군 전차들은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다급해진 스미스 특공대는 곡사포로 고폭탄(HEAT)을 발사했으나 인민군 전차를 관통하지 못하고 전차궤도만 부셨을 뿐이다. 전차여단 선발대를 따라온 인민군 보병부대는 재빨리 우회하여 스미스 특공대를 포위하기 시작하였다. 섬멸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직감한 스미스 중령은 전투를 시작한 지 여섯 시간만에 퇴각명령을 내렸다. 스미스 특공대는 뿔뿔이 흩어져 경기도 안성으로 달아났고, 안성에서 패잔병을 모아 충청남도 천안으로 물러났다. 스미스 특공대는 전체 병력 406명 가운데 181명이 전사하였고, 포병대대장이 중상을 입고 후송되고, 곡사포를 비롯한 중화기를 모조리 인민군에게 빼앗기고 사실상 궤멸되고 말았다.

북측이 60년 전에 스미스 특공대를 궤멸시킨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의 부산행 행동계획을 상정한 장면을 이번에 공개한 것은, 인민군 전차사단이 한반도에 몰려온 미국군을 스미스 특공대처럼 궤멸시키겠다는 의지를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한 북측의 암시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낸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셋째, 그 사진을 방영한 때는 2010년 1월 5일 오후 10시 10분이었다. <조선중앙텔레비죤> 정규보도시간은 오후 8시인데, 그보다 두 시간 뒤에 사진을 방영한 까닭은 평양과 워싱턴 디씨의 시차를 고려하여 방영시각을 미국 동부시간에 맞추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평양 시간으로 오후 10시 10분이면, 워싱턴 시간으로는 같은 날 오전 9시 10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날이 새해 들어 처음으로 맞은 화요일이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이 주재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매주 화요일 아침 10시에 백악관 지하층에 있는 상황실(situation room)에서 정례회의를 시작한다. 북측이 사진을 방영한 시각은, 새해 들어 첫 번째로 소집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시작시간에 정확히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넷째, 북측이 2010년 새해 공동사설에서 대미관계에 대해 언급한 것은 아래와 같은 두 문장밖에 없다. “오늘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서 나서는 근본문제는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를 마련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립장은 일관하다.” 새해 공동사설에서 대미관계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른 통로를 통해 대미관계를 언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측이 이번에 공개한 다섯 장 사진은 대미관계를 언급한 다른 통로였던 것이다.

갈림길에 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북측이 <조선중앙텔레비죤>을 통해 인민군 전차 기동사진을 방영한 날로부터 엿새 뒤인 2010년 1월 11일 북측이 발표한 중대한 문서가 있으니, 외무성 성명이 그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1월 5일에 방영한 인민군 전차 기동사진과 1월 11일에 발표한 외무성 성명이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연관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부산행 행동계획을 상정한 인민군 전차 기동사진이 한반도의 전쟁문제를 암시하였다면, 정전협정 당사국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한 외무성 성명은 한반도의 평화문제를 명시한 것이다. 전쟁문제를 암시한 행동과 평화문제를 명시한 행동이 상호모순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북측의 그러한 두 가지 행동은 모순된 것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의 양자택일을 요구한 의사표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월 5일에 방영한 인민군 전차 기동사진과 1월 11일에 발표한 외무성 성명을 연결시켜 놓으면, 북측 국방위원회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전쟁과 평화의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난다.

1월 11일 외무성 성명은 “전쟁과 평화라는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문제를 떠난 그 어떤 합의도 지금까지와 같은 좌절과 실패의 운명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1월 5일 인민군 전차사단의 부산행 행동계획을 상정한 사진을 방영한 것은 한반도 전쟁이라는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고, 1월 11일 외무성이 한반도 평화회담의 신속한 개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한반도 평화라는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북측 외무성이 성명을 발표한 바로 그 날, 서울에 머물던 미국 국무부 대북인권특사 로벗 킹(Robert R. King)은 기자들 앞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 인권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이지만, 미국이 다른 나라에게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외교적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게 외교적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과 상대국의 상호관계에 놓여있는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문제를 회피하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국무부 대북인권특사가 서울에 나타나 ‘북한 인권 개선’을 요구한 것은 북미관계에 놓여있는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문제를 회피하려는 술책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1월 11일 외무성 성명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자국의 리익부터 앞세우면서 시간을 지체”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시간을 끌며 버틸 때까지 버티며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회피하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전쟁과 평화의 양자택일을 강하게 요구한 것이다.

북측이 연초부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향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하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러하였을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미국의 안보이익에만 집요하게 매달리면서 북측의 안보이익을 강제로 탈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북측은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시야를 넓혀보면, 한반도의 평화가 북측의 안보이익만이 아니라 남북을 포괄하는 한반도 전체의 전민족적 안보이익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안보이익에만 집요하게 매달리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 민족이 마땅히 누려야 할 한반도의 평화를 앗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 민족에게서 한반도의 평화를 마지막 한 조각까지 앗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이르면, 그것이 곧 한반도에 전쟁을 불러오는 것이다.

침략과 약탈에 이성을 잃고 파괴와 살육으로 광란하는 극소수 전쟁광신자들을 제외하면,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류의 이성과 양심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전쟁욕구가 인류의 이성과 양심을 무려 60년 동안이나 배반해온 땅이 있다. 무기와 무기가 맞선 팽팽한 군사적 긴장, 핵전략과 핵전략이 날카롭게 맞선 전쟁위험이 가시지 않은 한반도가 바로 그 땅이다.

이 민족이 마땅히 누려야 할 한반도의 평화를 앗아간 60년 배반의 역사를 뒤집어, 평화의 미래를 열어놓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누구도 방해해서는 아니 될 당면한 과업이자 정당한 요구다. 1월 11일 외무성 성명은 그러한 과업과 요구를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평화협정 체결로 좁혀진다. 그 성명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측과 미국이 신뢰를 조성하게 되고, 북측과 미국이 신뢰를 조성하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명백하게 밝혔다. 다시 말해서, 평화협정 체결→북미 신뢰조성→한반도 비핵화 실현으로 나아가는 실현경로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실현경로를 무시하고 무조건 한반도 비핵화만 외워대고 있다. 그것도 자기들이 가하는 한반도 핵위협은 거둘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북측에게만 일방적으로 핵포기를 단행하라고 을러대는 것이다. 무기를 들고 대치한 교전쌍방이 서로 믿지 못하는 데, 자기들은 무기를 여전히 움켜쥐고 있으면서 상대쪽에게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하는 소리는 망발 중의 망발이다. 그러한 무지막지한 망발이 북측에게 통할 리 만무하다. 정전협정 체결은 교전쌍방이 동시에 무기를 내려놓는 신뢰환경을 조성할 현실적이고 공명정대한 조치로 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북측은 1월 11일 외무성 성명에서 “조선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올해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 당사국들에 정중히 제의”하였다. 이 대목에서 외무성은 “위임에 따라” 평화회담을 정중히 제의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외무성이 국방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평화회담을 제의하였다는 뜻이다. 국방위원회의 위임결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리는 것이므로, 평화회담 제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의라고 말할 수 있다. 명백하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제의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화회담 개최 제의는 제의로 끝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도까지 담겨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할 구체적인 방도까지 택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외무성 성명에 나온 표현을 옮기면, 6자회담과 별도로 한반도 평화회담을 진행하는 방도가 있을 수 있고, 6자회담 틀 안에서 한반도 평화회담을 진행하는 방도가 있을 수 있다. 어떤 방도를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용단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외무성 성명은 “더 이상 자국의 리익부터 앞세우면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대담하게 근원적 문제에 손을 댈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였다. 사실상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용단촉구다.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길에서 2010년을 ‘변이 나는 해’로 만들려는 북측의 본격적인 행동이 연초부터 시작되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2010년 1월 18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