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은 어떻게 첨단을 돌파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측이 맞닥뜨린 문제를 풀어준 열쇠

북측은 ‘당 창건 65돐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는 문장을 2010년 새해 공동사설 제목으로 앉혔다. 그 제목에서 말하는 인민생활이란 인민이 먹고 입고 소비하는 물질경제적 생활을 뜻하고,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한다는 말은 인민의 물질경제적 생활수준을 크게 높인다는 뜻이다.

2010년 새해 공동사설 제목을 보고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2009년에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를 밀고 나간 것이나 화폐교환조치를 실시한 것을 보더라도, 북측이 인민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크게 힘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측의 이러한 움직임은, 인민생활향상에 직결된 경공업 생산현장과 농업 생산현장을 집중적으로 현지지도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도와 구상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북측이 경제건설과업을 중시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북측에서 나오는 각종 문헌을 분석해보면, 특히 2000년 이후 경제건설과 과학기술의 결합을 중대과업으로 제시하고 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힘써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북측의 최근 동향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것은, 경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키는 과업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고 한 2010년 새해 공동사설 제목이 그러한 사정을 말해준다. 그 공동사설은 “인민생활향상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일대공세를 벌리는 것, 이것이 올해의 총적인 투쟁방향”이라고 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은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투쟁의 주공전선”이라고 지적하였다.

북측의 경공업과 농업은 뒤쳐진 분야다. 국방공업을 중심으로 편성된 중화학공업의 우선적 발전에 자원, 기술, 자금을 집중 투입해왔으므로 그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북측은 경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키기만 하면, 그들이 목표달성 시한을 2012년으로 정한 경제강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맞닥뜨린 문제는, 어떻게 경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방법론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경공업제품과 농축산물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여 인민들에게 낮은 값으로 공급하면 인민생활수준이 높아진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지만, 오직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 북측에서 타력의존이 통할 리 만무하다. 국제시장이 오르내리는 것에 따라 요동치는 수출입 지표에 명줄을 거는 타력의존에 대해서 그들은 일찌감치 생각을 접었다. 자력으로 개발한 기술과 자원을 가지고 경공업제품과 농축산물을 생산하여 인민생활수준을 높이려는 것이 북측이 추진하는 자력갱생형 경제건설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경제건설도 과학기술이 발달해야 이룩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해야 경공업제품 생산에 들어갈 각종 원료와 자재를 찾아내고 그 제품을 생산할 각종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또한 과학기술이 발달해야 농축산물을 증산할 각종 영농물자와 각종 농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과학기술을 접하지 못한 근로대중이 맨손에 마치와 낫을 들고 경제를 일으키던 시대가 지난 지는 까마득히 오래되었다. 이 시대는 생산현장에 과학기술력을 적극 받아들여야 하는, 경제건설과 과학기술이 고도로 결합된 시대다. 북측에서 새로운 경공업제품을 더 많이 생산하고 농축산물을 더 많이 생산하여 인민생활수준을 높이는 과업도 과학기술력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북측에서 말하는 경제건설의 ‘단번 도약’은, 높은 수준에 올라선 과학기술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과학기술력이란 과학자와 기술자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어떤 사고력이 아니라 경공업과 농업의 생산현장에 작용하는 기계력이다. 그러므로 어떤 성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경공업 및 농업의 생산력 높낮이가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과학기술로 기계공업(machine industry)을 발달시켜야 경공업제품과 농축산물을 생산, 가공하는 각종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측이 경제건설과정에서 맞닥뜨린 선차적 과업은, 공작기계를 만드는 기계공학(mechnical engineering)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기계공업 발달수준이 경공업 및 농업의 발달수준을 결정하고, 기계공학 기술수준이 경공업 및 농업의 생산력을 좌우한다. 경제건설과정에서 제기된 첫 문제를 푸는 열쇠를 기계공업이 쥐고 있는 것이다.

공작기계제작에 요구되는 소재들 가운데는 합성수지나 유리도 있지만, 기본소재는 어디까지나 쇠(鐵)다. 모든 공작기계는 쇠로 만든다. 무릇 공작기계는 정해진 작동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쇠붙이들의 정교한 결합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쇠를 만들지 못하면, 쇠를 기본소재로 한 공작기계도 만들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연관관계는, 기계공업이 발달하는 것과 함께 쇠를 만드는 제철공업(iron industry)도 발달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기계공업과 제철공업은 산업연관관계로 밀착되어 있다.

산업연관효과가 일어나는 발생순서를 생각한다면, 북측이 요즈음 제철공업에서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야 옳을 것이다.

50년만에 이뤄낸 새로운 제철공법 완성

쇠를 만드는 제선공정(制銑工程)의 기본원리를 단순화하면, 철광석, 점결탄(coking coal), 석회석을 용광로에 넣고 고열로 녹여 쇳물을 뽑아낸다고 설명할 수 있다. 철광석을 넣은 용광로에서 쇳물을 뽑아내기까지 대여섯 시간 걸리는데, 쇳물온도는 대략 섭씨 1,500도가 된다. 광재(slag)와 분리된 쇳물이 굳으면 그것이 곧 선철(pig iron)이다.

선철에는 탄소를 비롯한 불순물이 들어있어 쉽게 부러지므로 그대로 쓸 수 없다. 그래서 선철을 전기로에 다시 넣고 산화연소시켜 탄소를 줄이고 불순물을 없앤 쇳덩이를 만들어내나니 그것이 강괴(鋼塊)다. 강철덩어리를 만드는 작업과정을 제강공정(製鋼工程)이라 한다. 강괴는 압연공정 또는 단조공정 또는 주조공정을 거쳐 강재(鋼材)로 바뀐다. 산업부문에서 쓰는 쇠는 강재다.

철광석을 강재로 만드는 제철공업의 핵심기술은 불로 쇠를 다스리는 기술이다. 불 다루는 기술이 없으면 쇠를 만들 수 없다. 제철공정에서 불을 다루는 기술이란 섭씨 1,300도가 넘는 높은 열을 내게 만드는 것인데, 열원은 점결탄이다. 북측에서는 점결탄을 콕스탄이라고 부른다. 점결탄은 역청탄(bituminous coal)을 해탄로에 넣고 열분해(pyrolysis)하는 건류공정(destructive distillation)을 거쳐 만들어낸다. 인류의 철기문명이 5,300여 년 전에 시작된 이래, 점결탄은 제철공업의 유일한 열원으로 되어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반도에서는 점결탄 원료인 역청탄이 나지 않는다. 북측 곳곳에 있는 석탄광산들에서 무연탄은 많이 나오지만, 역청탄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한반도에 있는 모든 제철공장은 다른 나라에서 사들인 역청탄으로 돌아간다. 북측 단천지구에 많이 묻혀있는 값비싼 희귀광물 마그네사이트(Magnesite)를 구워 마그네시아 클링커(Magnesia Clinker)를 만들려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역청탄을 사와야 한다.

북측은 중국, 러시아, 폴란드에서 역청탄을 수입하여 점결탄으로 가공하고 제철공정에 투입해왔는데, 그 수입가격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지난 시기 톤당 20-40달러를 오르내리던 호주산 역청탄은 2008년 초에 갑자기 톤당 400달러까지 치솟은 적도 있다. 2009년 11월 현재 국제시장 쌀값을 보면 태국산 쌀(A1 Super)이 톤당 338달러에 거래되는데, 역청탄이 쌀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사태까지 일어난 것이다. 지금 역청탄 국제시세는 톤당 100달러 이상으로 크게 올랐으며, 앞으로 더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역청탄값이 이처럼 폭등한 까닭은, 세계 경제위기가 장기화되자 역청탄 광산들이 문을 닫아 공급량이 줄었을 뿐 아니라,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공업국에서 역청탄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2007년 경우, 남측은 역청탄 8,034만톤을 수입하는 데 54억2,608만 달러를 썼고, 포스코(POSCO)는 역청탄 2,300만톤을 수입하는데 2조원을 썼다. 포스코 연간 총매출이 22조원인데, 거의 10%에 이르는 자금을 역청탄 수입에 쓴 것이다. ‘유엔 에너지 통계자료’는 북측이 2005년에 사들인 역청탄 및 점결탄 수입량을 229만톤으로 추산했는데, 이것을 남측에서 사들인 수입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1억5,340만 달러다.

오직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라고 믿는 북측으로서는 자기 땅에 무진장 묻혀있는 무연탄을 제철공업에 쓰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많은 자금을 주고 역청탄을 사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김일성 주석은 8.15 해방 직후 황해제철소(당시 명칭)를 현지지도하면서 “조선이 다른 나라에 앞서 제철공업을 일으켰다면 콕스탄을 리용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제철소를 현지지도할 때마다 무연탄을 쓰는 새로운 제철공법을 개발하도록 온갖 대책을 취해주었다. 전후복구시기에도 그는 “우리나라의 무진장한 무연탄으로 제철을 하는 것은 제철공업에서 주체를 세우는 것으로 됩니다”고 강조하면서, 점결탄 대신 무연탄을 쓰는 새로운 제철공법을 개발하도록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이끌어주었다.

그러나 풀기 힘든 과학기술적 난제들이 놓여 있었기에 제철공법을 자립화하는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며 애쓴 끝에 마침내 새로운 제철공법 개발에 성공하였으니, 그 때가 1958년이었다. 52년 전에 개발한 제철공법은 점결탄을 무연탄으로 완전히 대체한 것이 아니라 점결탄 사용량을 23% 정도 줄이는 미완성 자립화였다.

황해제철련합기업소가 미완성 77%를 마저 채워 점결탄을 한 줌도 쓰지 않고 쇳물을 뽑아내는 제철공법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도전한 때는 1991년이었다. 국가과학원에서 보낸 과학자들과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이 10년 동안 온갖 어려운 고비를 넘으며 애쓴 끝에 얻어낸 성과물이 산소열법용광로다. 1999년 2월 14일 황해제철련합기업소에서는 산소열법용광로가 조업을 개시하였고, 새로운 제철공법으로 생산한 철을 주체철이라고 불렀다. 산소열법용광로 개발과 주체철 생산은 ‘제2인공지구위성 발사에 버금가는 사변’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주체철 생산은 거기에서 기술혁신을 멈춘 것이 아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06년 7월,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산하 보산제철소는 생산공정을 단축하고 새로운 원료장입장치를 설치하며 용해특성지표의 기술적 문제들을 개선함으로써 기존 주체철 생산공정을 또 다시 혁신하는 데 성공하였다.

주체철 생산체계의 최종완성은 성진제강련합기업소에서 이루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8년 12월 24일 그 기업소를 현지지도하였는데, 현지지도를 받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주체철 생산공정을 과학기술적으로 더욱 완비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성진제강련합기업소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은 1년 동안 투쟁하여 2009년 12월, 마침내 제3차 핵실험 성공보다 더 위대한 승리라는 격찬을 받은 주체철 생산체계를 완성하였다. 반만년을 이어온 세계 제철공업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 주체철 생산체계 완성으로 하여 성진제강련합기업소에는 ‘김일성상’이, 산소용융로와 정련로에는 ‘김일성훈장’이 각각 수여되었고, 그 기업소의 노동자, 기술자들로 꾸려진 대규모 대표단이 평양에 초청되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로동신문> 2009년 12월 20일자는 그 기업소를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곳에서 생산된 주체철 덩이들을 만져보는 장면, 용해공들이 철광석을 덩어리째로 용광로에 넣는 장면 등을 찍은 각종 현장사진을 지면에 가득 실었다.

주체철 생산체계를 과학기술적으로 완비하기까지 두 가지 큰 과제가 제기되었다.

첫째 과제는 주체철 생산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대형산소분리기를 만드는 일이다. 20년 전에 대형산소분리기를 만들었던 공장은 락원기계련합기업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8년 11월과 2009년 2월 락원기계련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면서 대형산소분리기를 다시 만드는 과업을 주었다. 그 과업을 받은 락원기계련합기업소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은 20년 전에 중단된 대형산소분리기 생산을 재개하는 투쟁에 돌입하였다. 대형산소분리기 제작은 원래 2009년 10월까지 만들어낼 목표를 세웠는데, 넉 달이나 앞당겨 6월에 만들어냈다.

둘째 과제는 주체철 생산공정 전반을 컴퓨터로 조종하는 공장자동화(factory automation)를 실현하는 일이다. 용광로만 새 것으로 바꾸지 않고 제철공정 전반을 바꿔, 컴퓨터로 조종하는 공장자동화체계를 세우는 방대한 기술혁신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북측이 만들어낸 명품공작기계들

락원기계련합기업소에서 대형산소분리기를 제작하는 데서나, 성진제강련합기업소에서 주체철 생산공정을 컴퓨터화하는 데서 절실히 요구된 것은 기계공업 첨단기술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기계공업 첨단기술은 컴퓨터수치제어(computer numerical control, CNC)를 뜻한다. 컴퓨터수치제어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설계도면을 손으로 그리면서 기계나 공장생산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설계하는 컴퓨터원용설계(computer-aided design, CAD)를 실현하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선반공이 손으로 선반을 돌려서 기계를 만들거나 수많은 기능공들이 생산공정에 달라붙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조종하여 기계를 만들어내고 컴퓨터로 생산공정을 조종하는 컴퓨터원용생산(computer-aided manufacturing, CAM)을 실현하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컴퓨터원용설계와 컴퓨터원용생산에 관련된 기술은 기계공업이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나라에서나 개발할 수 있는 어려운 기술이다. 그 기술은 21세기 기계공업의 정수(精髓)라는 항공우주공학(aerospace engineering), 자동차공학(automotive engineering), 조선공학(marine engineering) 등이 요구하는 제어계측기술(control-instrumentation technology)이다.

북측이 이 기술장벽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이 자동조절기전(servomechanism)으로 가공하는 다축가공기술(multiaxis machining technology)을 개발하는 과제였다. 이 성능을 가진 기계를 컴퓨터수치제어(CNC)공작기계라 한다. 미국 CNC Software가 개발한 Mastercam, 미국 Parametric Technology가 개발한 Pro/Engineer, 영국 Planit가 개발한 Edgecam, 영국 Delcam이 개발한 Powermill, 독일 SIEMENS가 개발한 NX, 독일 Tebis AG가 개발한 Tebis, 프랑스 Dassault Systémes가 개발한 CATIA, 프랑스 Sescoi가 개발한 WorkNC, 일본 히다치조선(日立造船) 계열사 NTT Data Engineering Systems가 개발한 Space-E/CAM, 이스라엘 Cimatron Group이 개발한 Cimatron 등이 세계 10대 공작기계기업이 만들어낸 명품공작기계들이다.

그런데 세계 10대 공작기계기업이 만들어낸 명품공작기계들을 무색케 할 명품공작기계가 또 하나 나왔다. 북측이 100% 자력으로 명품공작기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컴퓨터수치제어기술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수출통제에 묶여있어서, 북측이 어디서 돈을 주고 사오려 해도 사오지 못한다.

북측이 만들어낸 명품공작기계에 대해 가장 자세한 정보를 전해준 문헌은, <로동신문> 2009년 8월 11일자에 ‘첨단을 돌파하라’는 제목으로 실린 ‘정론’이다. 이 기사가 나오자 남측 언론매체들도 간략하게 보도한 바 있는데, 그렇게 전재, 요악한 기사를 읽어서는 실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로동신문>에 이따금 실리는 장문의 ‘정론’을 명문장으로 쓰는 송미란 기자가 생산현장을 직접 취재하고 쓴 그 기사에는, 출하를 기다리는 각종 첨단공작기계를 열거한 대목이 나온다. 그가 열거한 선삭가공중심반(turning center lathe), 수직가공중심반(vertical machining center lathe), 줄방전가공반(wire electric discharge lathe)은 북측에서 명품공작기계들에 붙여준 우리말 이름들이다. 그 기계들은 컴퓨터로 다면설계, 고속가공, 정밀가공, 다축가공, 복합가공을 하는 첨단공작기계들이다. 위의 ‘정론’에서는 북측이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닫긴형 CNC 기술’을 뛰어넘어 ‘우리 식의 CNC 기술’을 완성하였다고 했는데, 이것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특별한 컴퓨터수치제어장치가 그 명품공작기계에 들어있다는 뜻이다.

위의 ‘정론’은 북측이 명품공작기계를 처음으로 만들어 선보인 날이 1995년 4월 29일이었다고 밝히면서 그 때 일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그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느 한 공장의 현관 앞에 세워놓은 한 대의 기계를 첫 눈에 알아보고...이것이 CNC기계가 아닌가? 이 기계를 누가 만들었는가?”고 물어보며 “너무도 반갑고 기쁘시여...온 세상이 환하도록 웃으시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 나라에 CNC공작기계가 태여났다고, 우리의 새 기계에 축하를 보내자고” 하면서 세 차례나 박수를 보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오래도록 기계곁을 떠나지 못하고 쓸어보고 또 쓸어보았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명품공작기계에 련하기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하여 련하기계는 어떤 특정공작기계의 이름이 아니라, 북측에서 생산하는 각종 첨단공작기계를 통칭하는 대명사로 되었다. 련하기계로 통칭하는 각종 첨단공작기계를 만드는 공장은 구성공작기계공장이고, 거기서 만든 기계를 해외에 수출하는 회사는 조선련하기계합영회사다.

<조선중앙통신>이 련하기계를 보도한 때는 2001년 11월 9일과 2002년 12월 4일이다. 두 기사내용을 종합하면, 김책공업종합대학 기술진이 새롭게 연구완성한, 분당 250㎣의 가공속도, 0.001mm의 정밀도, 1.5㎛(마이크로미터)의 정결도를 보장하는 수자조종(수치제어)줄방전가공반이 “현재 나라의 여러 공장들에 도입되여 은을 내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신보> 2009년 5월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2009년 5월 3대혁명박물관에서 열린 제12차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에 ‘구성 8A-1500’이 전시되었는데, 이 기계는 구성공작기계공장에서 생산하는 만능중심반(universal center lathe)이다. 조선련하기계합영회사 간부는 이 공작기계를 2012년까지 연간 1,000대 이상 수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이 첨단공작기계를 15년 전인 1995년에 자력으로 만들어낸 것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 공작기계를 연구, 개발해온 북측의 역사와 경험은 길고 풍부하다. 이를테면, <조선신보> 2009년 11월 6일자 관련기사는, 북측의 구성기계공장(당시 명칭)에서 만든, 수치제어기술을 도입한 최신 공작기계 ‘구성-1호’가 일본 도쿄에서 열린 ‘공화국상품전람회’에 전시된 때가 1970년이었다고 보도하였다. 북측은 1960년대 말에 이미 수치제어기술을 개발했던 것이다.

북측에서 1995년에 컴퓨터공학기술과 공작기계제작기술을 결합한 각종 련하기계를 만들어낸 것은 컴퓨터공학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컴퓨터공학기술을 발달시켜온 북측의 역사와 경험 역시 길고 풍부하다. 이를테면, 남측에는 아직 컴퓨터라는 말도 알려지지 않았던 1961년 9월 북측은 원시형태 컴퓨터인 ‘9.11형 만능전자계산기’를 만들었고, 컴퓨터제작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1969년에는 ‘전진 5500’을 만들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전진 111호’를 만들었고, 2세대 컴퓨터 ‘충성 311호’가 나왔다. 1981년 10월 북측은 마침내 3세대 컴퓨터 ‘백두산 102호’ 개발에 성공하였다. 미국의 세계적인 전자회사 인텔(Intel Corporation)이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 ‘인텔(Intel) 4004’를 만들어낸 때는 1971년 11월 15일이고, 미국 전자회사 커머도어 인터내셔널(Commodore International)이 커머도어 펫(Commodore PET)이라는 초기형태 컴퓨터를 처음 생산한 때는 1977년이다.

공업생산체계의 최고발전단계에 이르다

<로동신문> 2009년 8월 11일자에 ‘첨단을 돌파하라’는 제목으로 실린 ‘정론’에서 송미란 기자가 열거한 북측 명품공작기계들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유연생산세포라는 특이한 명칭이다. 유연생산세포는 무슨 기계일까? 유연생산세포(Flexible Manufacturing Cell, FMC)란 수치제어설비, 계측장치, 감지기, 품질검사기 등을 컴퓨터망(computer network)으로 연결한 집합생산설비를 뜻하는 개념이다. 기계공업이 발달한 나라에서도 만들내기 힘든 유연생산세포라는 최첨단 생산설비를 북측이 자력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위의 ‘정론’에 따르면, 북측은 이미 1980년대에 산업용 로봇(robot)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북측이 그 때로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로봇공학을 연구해왔으니, 북측이 외부에 공개하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오늘날 그들의 로봇공학기술도 컴퓨터공학기술만큼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연생산세포에 로봇공학기술을 결합하면, 유연생산체계(Flexible Manufacturing System, FMS)가 세워지고, 거기에 정보통신기술까지 더하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컴퓨터통합생산(Computer Integrated Manufacturing, CIM)이 실현되는 것이다. 원래 컴퓨터통합생산은 유럽연합 행정부인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1990년대 중반에 에미미스 기업투자단(AMICE Consortium)을 앞세워 장기 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한 정보기술연구 유럽전략사업(European Strategic Program on Research in Information Technology, ESPRIT)에서 정보통신기술과 자동화 생산체계를 통합한 첨단생산기술로 개발된 것이다. 오늘날 컴퓨터통합생산보다 더 높은 단계의 생산체계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북측은 공업생산체계의 최고발전단계에 이르렀을까? 위의 ‘정론’은 그렇다고 당당히 말한다. ‘정론’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재래식 기계 열 대, 스무 대를 들어내고 CNC기계 한 대를 들여놓는 첫 단계, 하나의 생산구역을 자동화된 유연생산공정으로 꾸리는 두 번째 단계, 옹근 하나의 공장이 컴퓨터에 의한 통합생산체계로 경영되는 세 번째 단계,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에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첨단의 이 세 단계를 력사도 짧고 경험도 적은 크지 않은 나라, 그것도 제국주의의 악랄한 <제재>와 봉쇄 속에 있는 나라가 어떻게 돌파하였는가.”

북측을 기술후진국이라고 빈정대는 반북허위선전이 퍼뜨려놓은 편견과 착오를 걷어내고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과학기술진보의 몇 단계를 단번 도약으로 뛰어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에 이른 북측의 공학기술 발전상은 실로 경이롭다.

북측의 최근 보도를 종합해보면, 성진제강련합기업소,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황해제철련합기업소,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 룡성기계련합기업소, 구성공작기계공장, 장자강공작기계공장,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 금성뜨락또르공장, 순천세멘트련합기업소, 2.8비날론련합기업소, 흥남비료련합기업소,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같은 대형생산기지에서 컴퓨터통합생산체계가 세워졌거나 세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각지에 있는 크고 작은 공장들과 기업소들에서도 컴퓨터통합생산체계가 세워졌거나 세워지고 있다.

북측의 컴퓨터통합생산체계는 인민경제부문에 도입되기에 앞서 국방공업부문에 먼저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외부에 드러낼 수 없는 공장을 언론에 보도할 때, 공장이름을 밝히지 않는 대신 그 공장에서 일하는 어떤 종업원 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보도하는 관행이 있다. 북측의 국영인터넷언론 <내나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일만이 사업하는 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였음을 2006년 6월 8일에 보도하였고, “리종옥이 사업하는 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였음을 2008년 12월 19일에 보도하였는데, 그 공장들에는 “성능이 높은 최신식 설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현대화, 과학화를 적극 추진하여 기계생산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는 것이다. 이 보도기사들은, 공장이름을 밝힐 수 없는 국방공업부문의 중요한 공장들에서 컴퓨터통합생산체계가 갖추어졌음을 알려준다. 위에 나오는 여러 정보들을 종합분석하면, 북측이 지금 추진 중인 ‘첨단돌파 기술혁명’이 어떠한 성과를 가져오고 있는지를 직감할 수 있다.

10년 시차를 두고 나온 언론보도

북측이 1995년에 련하기계를 처음으로 만든 이후 14년이 지나도록 련하기계에 대한 언론보도를 거의 하지 않다가, 2009년에 와서 크게 보도한 까닭은 무엇일까? 두 가지 사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사연은, 첨단공작기계 개발을 대량생산으로 끌어올리기까지, 그리고 첨단공작기계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컴퓨터통합생산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생산력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 긴 세월에는 북측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난의 행군>과 대북제재봉쇄의 폭풍우를 뚫고 나아간 기술혁명의 역사가 담겨있을 것이다.

둘째 사연은, 북측이 자체생산한 명품공작기계들을 우선 국방공업부문에 배정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방식과 선군혁명노선에 따라 국방공업 중심의 중화학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온 북측에서는, 각종 첨단공작기계가 개발되는 대로 무기공장에 먼저 보내주는 것이 당연하였을 것이다. 북측이 1990년대 후반에 다면설계, 고속가공, 정밀가공, 다축가공, 복합가공을 필수공정으로 요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탄두 같은 각종 첨단전략무기들을 새로 만들어내거나 기존 성능을 개량하고, 전차와 장갑차, 스텔스 고속전투함과 공기부양정과 잠수함, 헬기와 훈련기, 방사포와 각종 화포와 레이저무기 등을 최신형으로 개발하고 더 나아가 대량생산하고 해외수출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능이 뛰어난 각종 첨단공작기계를 무기공장에 집중 배치하였기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몇 해 사이 북측에서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과학기술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국가자금과 기술인력을 많이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2007년 4월 11일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5차 회의에서는 과학기술부문 투자를 지난 해에 비해 60.3%나 늘리기로 결정하였는데, 그처럼 증액된 자금을 가지고 2012년까지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처럼 막대한 투입자금은 갑자기 어디서 났을까? 1999년 4월 26일 <중앙일보>가 <평양방송>을 인용하여 보도한 기사에서 그 사정을 엿볼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9년 1월 1일 당정간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적들은 우리가 인공지구위성을 쏴올리는 데만 몇 억 달러가 들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우리 인민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운명을 지켜내고 내일의 부강조국을 위해 자금을 그 부문으로 돌리는 것을 허락했다. 그 돈을 인민생활에 돌렸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09년 3월 21일 <로동신문>에 ‘뿌리가 되라’는 제목으로 실린 ‘정론’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새로운 결심을 알려주는 이런 대목이 들어있다. “나는 지금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우리 인민들을 잘 살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본때있게 일하여 가까운 앞날에 우리 인민들을 남부러운 것이 없이 잘 살게 하고 모든 면에서 보란 듯이 내세우고자 합니다. 이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10년 시차를 두고 나온 두 보도기사를 읽어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도와 구상을 알 수 있다. 각종 첨단무기를 만들어내어 적대국들을 압도할 만한 국방력을 튼튼하게 다졌으므로, 이제는 인민생활향상에 막대한 국가자금과 기술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북측에서 쓰는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경제과학전선에서 기술혁명의 첨단돌파는 자력갱생의 완전승리이고, 자력갱생의 완전승리는 곧 인민생활향상인 것이다.

북측이 자력갱생으로 거둘 성과는 무엇일까? 그들은 2012년에 그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2010년 1월 1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