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수주 최대수혜자는 ‘복병’이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불꽃 튀는 수주경쟁을 벌인 미국과 프랑스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의 수도 아부 다비(Abu Dhabi)에는 세계적인 호텔기업 켐핀스키 그룹(Kempinski Group)이 경영하는, 금장식과 대리석으로 번쩍이는 오성급 최고급 호텔 에미릿츠 팰리스(Emirates Palace)가 있다. 2009년 12월 27일 그 호텔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셰이크 칼리파(Sheikh Khalifa bin Zayed al-Nahyan)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열었고,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과 압둘라(Abdullar bin Zayed al-Nahyan) 외무장관이 한국-아랍에미리트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하였고, 김쌍수 한국전력공사(KEPCO) 사장과 칼둔(Khaldoon al-Mubarak) 에미리트 원자력회사(Emirates Nuclear Energy Corporation) 사장이 원전건설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한국전력공사를 주계약자로 한 기업투자단(consortium)이 아랍에미리트 원전건설을 수주한 것을 두고, 청와대와 언론매체들은 단군 이래 가장 큰 수주성과를 올렸다고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청와대 발표를 앵무새처럼 옮겨놓는 언론보도만 읽으면, 뭐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저들의 선전술에 속기 쉽다. 원전수출문제와 지역안보문제가 뒤엉킨 아랍에미리트에서 벌어진 수주경쟁은 복잡하고 또 치열하였다.

2008년 1월 15일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프랑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하면서 수주경쟁에 불이 붙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아부 다비에 도착하기 전날인 1월 14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원전기업 아레바(Areva)가 주도하는 프랑스 기업투자단이 결성되었다. 아레바는 CEA Industry, COGEMA, Framatome, ANP, FCI가 합병하여 2001년 9월에 출현한, 세계에서 가장 큰 원전기업인데, 연간 매출액은 약 145억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프랑스 기업투자단이 결성되고, 사르코지 대통령이 아부 다비에 모습을 드러내기 이틀 전인 2008년 1월 13일, 조지 부시(George W. Bush)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 발 먼저 아부 다비에 나타났다. 미국 대통령과 프랑스 대통령이 이틀 간격으로 아부 다비에 나타난 것은,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주를 놓고 미국과 프랑스가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였는지를 말해준다.

프랑스 장관 네 사람과 프랑스 기업가들로 구성된 민관합동 원전수출협상단이 2009년 5월 26일 아부 다비에 도착하고,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튿날 아랍에미리트에 주둔하는 프랑스 군사기지 창설식과 르부르 아부 다비(Louvre Abu Dhabi) 박물관 기공식에 참석하자, 원전수주경쟁은 프랑스에게 한결 유리해졌다. 프랑스는 전세계 해상 원유수송량의 40%가 지나가는 전략요충지 호르무즈해협(Strait of Hormuz)에 항구적인 해군기지와 공군기지를 두고 프랑스군 병력 500명을 상주시켰다. 물론 미국군도 아부 다비 근교에 있는 알 다파(Al Dhafa)기지에 공군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제벨 알리(Jebel Ali)항을 해군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이미 2007년 7월에 리비아 원전건설을 수주하고, 연이어 12월에 알제리 원전건설도 수주한 프랑스는 여세를 몰아 아랍에미티트 원전건설을 수주하려고 분주히 움직였다.

프랑스가 그처럼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미국에서는 대선이 실시되고 정권이 바뀌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원전수주경쟁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미국은 프랑스에게 뒤질세라 수주외교에 힘을 더욱 집중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09년 4월 7일 압둘라 아랍에미리트 외무장관을 워싱턴 디씨로 초청하여,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 스티븐 추(Steven Chu) 에너지장관과 각각 회담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2009년 7월 3일 원전수주경쟁에 뛰어든 국제기업투자단들은 제각기 작성한 원전건설계약 입찰신청서를 원전건설 발주자인 에미리트 원자력공사에 제출하였다. 수주경쟁이 절정에 오른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2009년 7월 15일 티모디 가이트너(Timothy Geithner) 재무장관을 아랍에미리트에 급파하였고, 7월 24일에는 중동 순방길에 오른 조지 밋첼(George Mitchell) 중동특사(U.S. Special Envoy for the Middle East)를 아랍에미리트에 보냈다. 2009년 9월 10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셰이크 칼리파 대통령의 친동생 모하메드(Mohammed bin Zayed al-Nahyan) 왕세자와 압둘라 외무장관을 워싱턴 디씨로 초청하였다. 모하메드 왕세자는 원전건설사업을 총지휘하는 책임자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그들을 접견하였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국방장관, 제임스 존스(James L. Jonse) 국가안보보좌관,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스티븐 추 에너지장관이 그들을 차례로 만났다. 국빈급 예우를 갖춘 것이다. 원전건설 최강국인 프랑스의 위력적인 수주공세에 맞서, 미국이 외교총력전을 펼친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가 그처럼 원전수주에 총력전을 펼친 까닭은, 선점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석유자금(oil dollar)이 흘러나오는 중동 산유국들 가운데 처음으로 원전을 건설하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원전수출을 선점한 나라가 앞으로 중동지역에 형성될 원전수출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프랑스는 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과 프랑스가 벌인 수주경쟁이 과열되자,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은 원래 2009년 9월 16일에 원전수출 계약자를 결정하려던 일정을 뒤로 미루는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주경쟁에서 승세를 굳힌 프랑스

세계 원전수출시장은 미국과 프랑스가 지배한다. 원전수출시장 점유율을 보면,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가 28%, 프랑스 원전기업 아베라가 24%, 미국 원전기업 지이 에너지(GE Energy)가 20%, 러시아 원전기업 아톰에너고프롬(Atomenergoprom)이 10%, 캐나다 원전기업 캐나다원자력회사(Atomic Energy of Canada Limited)가 5%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원전수출시장을 미국과 프랑스가 지배하는 까닭은, 그 두 나라가 원자로 개발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원자로를 독자적으로 개발한 나라가 원전수출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오늘 세계 원전수출시장에 나와있는 신형 원자로는 3세대 원자로와 3.5세대 원자로다. 후자가 전자보다 성능개량에서 한 발 앞섰다.

3세대 원자로는 네 종류다. 프랑스 원전기업 아레바가 개발한 1,600메가와트(MWe)급 유럽형 가압경수로(European Pressurized Reactor, EPR), 러시아 원전기업 아톰 스트로이 엑스포트(Atom Stroy Export)가 개발한 1,000메가와트급 양수강력경수로(Water-Water Energetic Reactor, VVER),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일본 미츠비시중공업(三菱重工業)이 공동개발한 1,540메가와트급 또는 1,700메가와트급 개량가압경수로(Advanced Pressurized Water Reactor, APWR), 미국 원전기업 지이 에너지, 일본 히다치중공업(日立重工業), 도시바중공업(東芝重工業)이 공동개발한 1,350메가와트급 개량비등경수로(Advanced Boiling Water Reactor, ABWR)다.

위에 열거한 3세대 원자로보다 더 신형인 3.5세대 원자로는 세 종류다.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1,100메가와트급 가압경수로 에이피(AP) 1000, 지이 에너지가 개발한 1,500메가와트급 경제단순형 비등경수로(Economic Simplified Boiling Water Reactor, ESBWR), 그리고 캐나다원자력회사가 개발한 1,100메가와트급 가압중수로(Pressurized Heavy Water Reactor, PHWR) 에이씨알(ACR)-1000이다.

이러한 원자로 출시현황을 보면, 아랍에미리트가 선택할만한 최신형 3.5세대 원자로로 손꼽히는 것은 가압경수로들 가운데서 가장 성능이 앞선,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에이피(AP) 1000이다. 이 경수로는 미국 핵규제위원회(Nuclear Regulatory Commission)의 30개월 심사를 거쳐 2004년 9월 13일 최종설계승인(Final Design Approval)을 받은 세계 최초의 3.5세대 경수로이며, 미국 해군이 핵추진 항공모함에 설치한 경수로보다 안전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웨스팅하우스 원전기술은 전세계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약 절반에 적용되었다. 그런 까닭에, 중국국가핵전기술공사(中國國家核電技術公司)도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가압경수로(AP 1000) 네 기를 수입하기로 2006년 12월 16일에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처럼 첨단기술력으로 최고의 수출조건을 갖춘 웨스팅하우스는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주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중동지역 원전수출시장을 선점할 중요한 수주경쟁에 웨스팅하우스는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까? 아래에서 논하면서 자연히 드러나겠지만, 웨스팅하우스는 언론의 눈길이 닿지 않는 막뒤에서 복병처럼 움직이며 수주경쟁을 벌인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펼친 수주외교에 힘입어 원전수주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선 미국계 기업투자단은, 노스 캐롤라이나(North Calorina)주 윌밍턴(Wilmington)에 본사를 둔 지이-히다치 원자력(GE-Hitachi Nuclear Energy)이다. 지이(GE)는 2009년에 미국 언론 <포브스(Forbes)>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체로 지목한 미국의 다국적 재벌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머리글자인데, 그 재벌기업에 속한 원전건설 계열사인 지이 에너지(GE Energy)가 일본 히다치중공업과 합작기업을 세워 2007년 6월에 세계 원전수출시장에 등장한 원전기업이 지이-히다치 원자력이다.

다른 한편, 프랑스 원전기업 아레바는 2008년 7월 22일 프랑스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기업인 가즈 드 프랑스(Gaz de France)와 프랑스의 대표적인 다국적기업 수에즈(Suez)의 기업합병으로 출현한 거대기업 쥐디에프 수에즈(GDF Suez)를 기업투자단에 끌어들이고서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세계 6대 석유기업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Total)까지 끌어들였다. 아레바는 지이-히다치 원자력과의 치열한 수주경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프랑스의 대표적인 건설, 전기기업 빈씨(Vinci)와 미국의 대표적인 건설기업 벡텔(Bechtel Corp)까지 기업투자단에 끌어들였다. 그렇게 하여 크게 보강된 프랑스 기업투자단은 경쟁상대가 없을 만큼 막강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확보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원전수주경쟁은 지이-히다치 원자력과 프랑스 기업투자단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프랑스 기업투자단이 원전수주경쟁에서 지이-히다치 원자력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이-히다치 원자력은 비등경수로(BWR)를 개발하였고, 아레바는 가압경수로(PWR)를 개발하였는데, 아랍에미리트가 선호한 기종은 가압경수로다. 프랑스 기업투자단이 지이-히다치 원자력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요인이 거기에 있었다. 2009년 10월에 들어서자, 원전수주를 놓고 벌인 격돌에서 프랑스 기업투자단이 승세를 굳힌 가운데 수주경쟁은 차츰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은 자국의 원전건설을 프랑스 기업투자단에게 발주하기로 내정하였던 것이다.

123 합의로 막판뒤집기에 성공한 미국

세계 원전수출시장에 진출한 경험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과 자금력에서도 열세를 면하지 못한 남측 기업투자단은 미국과 프랑스가 벌인 과열된 수주경쟁에서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탈락통고나 기다리는 처지에 있었다. 원전수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명박 대통령은 요행을 바라는 심정으로 2009년 11월 4일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을 아랍에미리트에 급파하였다. 그러나 유명환 장관은 아랍에미리트 외무장관으로부터 “사실상 거절통보”를 받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세계 원전수출시장 동향을 아는 사람들 가운데 남측 기업투자단이 원전건설을 수주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테니, 남측 기업투자단이 사실상 탈락통보를 받은 것은 화제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9년 11월 중순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의 현지방문을 통해 탈락통보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1월 17일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김태영 국방장관 등 고위관리들로 꾸려진 비공개 특사방문단을 현지에 급파하였다. 대통령 친서를 들고 극비방문길에 오른 특사방문단은 아랍에미리트에서 11월 20일까지 머물렀다. 특사방문단이 아랍에미리트에 머물던 11월 19일, 청와대에서는 한미정상회담이 열렸고, 그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중동정세에 관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길게 설명하였는데, 그의 긴 설명 속에는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주문제가 들어있었을 것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2009년 11월 23일 다시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하여 11월 26일까지 머물면서 한국-아랍에미리트 군사협력협정 양해각서를 교환하였다. 주종관계로 묶여있는 한미군사관계에서는, 반드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국군이 다른 나라 군대와 군사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아랍에미리트 군사협력협정은 청와대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막후공작에 따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에 비공개 특사방문단을 급파하여 군사, 경제부문에서 협력협정을 타결하고 그와 동시에 청와대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린 직후, 놀랍게도 원전수주경쟁은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은 프랑스 기업투자단이 수출하려는 유럽형 가압경수로 가격이 비싸다고 하면서 프랑스 기업투자단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경향신문> 2009년 12월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특사협상단 파견 후부터 UAE의 마음이 조금씩 돌아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주경쟁에서 미국의 추격을 따돌린 프랑스는 몇 일이 지나면 곧 낙찰을 받을 것으로 낙관하였으나, 아랍에미리트가 느닷없이 자기들에게 등을 돌리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하였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두 번째로 파견되어 아랍에미리트에 머물던 2009년 11월 24일, 프랑스 기업투자단 대표들이 대통령관저 엘리제궁(Palais de l'Élysée)에 모여 긴급대책회의를 가진 것은 그러한 상황급변에 대응한 것이다.

값이 비싼 것이 흠이라면 초기에 문제를 제기했어야 정상인데, 낙찰을 눈앞에 둔 시점에 가서 아랍에미리트가 프랑스 기업투자단이 수출하려는 유럽형 가압경수로(EPR) 가격이 비싸다는 문제를 갑자기 꺼낸 것은 프랑스에게 유리한 수주경쟁판세를 뒤집기 위한 핑계였다. 얼마나 정확한 가격평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남측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남측 기업투자단이 내놓은 한국형 가압경수로의 킬로와트당 건설단가는 2,300 달러였고, 프랑스 기업투자단이 내놓은 유럽형 가압경수로의 킬로와트당 건설단가는 2,900 달러였다고 한다. 600달러 차이가 난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자기 나라 기업투자단에게 압력을 넣어 원전수출가격을 10%나 낮춘 바 있었기 때문에 600달러에 이르렀던 가격차이는 이미 상당히 좁혀져 있었다. 그런데도 아랍에미리트가 새삼스럽게 가격문제를 들고 나와 갑자기 프랑스에게 등을 돌린 결정적인 원인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막뒤에서 아랍에미리트 정부에게 압력을 넣은 것에 있었다.

그렇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아랍에미리트에게 어떻게 압력을 넣은 것일까? 미국은 프랑스와의 수주경쟁에서 밀리고 있었으나, 프랑스가 갖지 못한 지렛대가 미국에게 있었다. 미국과 아랍에미리트가 체결한 원자력협정이 그것이다. 만일 미국이 원자력협정을 체결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면, 아랍에미리트는 프랑스와 원전건설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 이번 수주경쟁에서 핵심요인으로 떠올랐던 원자력협정에 얽힌 내막은 아래와 같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승인을 받기 위해 미국-아랍에미리트 원자력협정문을 연방의회에 제출한 날은 2009년 5월 21일이다. 협정의 정식명칭은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에 관한 미합중국 정부와 아랍에미리트 정부의 협력을 위한 합의(Agreement for Cooperation Between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Arab Emirates Concerning Peaceful Uses of Nuclear Energy)’다. 그 협정은 미국 연방의회가 1954년에 제정한 원자력법(Atomic Energy Act) 제123조에 의거하여 작성되었으므로, 줄여서 123 합의(123 Agreement)라고도 부른다. 그 협정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는 민감한 핵설비 보유, 사용후 연료 재처리, 우라늄 농축을 포기하여 반확산의무를 준수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민수용 원자력개발기술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의회가 원자력협정문에 대한 검토를 끝낸 날은 2009년 10월 17일이었고,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그 협정문안을 승인한 날은 10월 27일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원자력협정 체결문제를 가지고 아랍에미리트 정부에게 어떻게 막후압력을 넣었는지는 언론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2009년 12월 28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관련기사에 나온 문장 한 줄이 막후압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 보도기사는 “그 거래는 (핵)확산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가 12월 17일 워싱턴과 함께 합의에 서명한 뒤에 진전되었다(The deal went forward after the emirates signed an agreement with Washington on Dec. 17 to alleviate proliferation concerns)”고 썼다. <뉴욕 타임스>는 수주경쟁판세가 12월 17일 이후에 뒤집어진 것처럼 보도하였으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미 2009년 10월부터 원자력협정을 지렛대로 삼아 아랍에미리트에게 지속적으로 막후압력을 넣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2009년 12월 15일 “오랜 숙고 끝에 한국과 함께 이 프로젝트(원전건설사업을 뜻함)를 수행키로 사실상 결정하였다”는 통보를 청와대에게 보냈고, 이틀 뒤인 12월 17일 엘렌 토우셔(Ellen Tauscher)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부장관은 요세프(Yousef al-Otaiba) 주미 아랍에미리트 대사를 국무부로 불러 원자력협정에 서명하였다. 그 협정체결과정이 프랑스의 중동 원전시장 진출을 차단하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의도에 따라 진행되었음은 명백해 보인다.

프랑스가 원전건설을 사실상 수주하게 되었으나, 막판에 이명박 대통령이 “입술이 터지도록” 뛰어다닌 덕분에 판세가 뒤집혀 결국 남측 기업투자단이 수주할 수 있었다는 청와대의 발표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과장한 것이며, 실제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아랍에미리트에게 막후압력을 넣어 수주경쟁판세를 뒤집으면서 프랑스 기업투자단 밀어내기에 성공한 것이다.

남측 기업투자단 속에 몸을 숨긴 ‘복병’

최종 결과를 보면, 아랍에미리트는 경쟁관계에 있는 프랑스 기업투자단이나 지이-히다치 원자력이 아닌 제3입찰자에게 낙찰하는 것으로 미국과 타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프랑스의 중동 원전시장 진출을 저지할 수만 있다면, 나머지 두 개 기업투자단 가운데 어느 쪽이 원전건설을 수주해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남측 기업투자단에 웨스팅하우스가 들어있었으므로, 미국으로서는 지이-히다치 원자력이 수주하지 못해도 괜찮았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웨스팅하우스가 남측 기업투자단에 참여하여 낙찰수혜나 약간 받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전건설 핵심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면에 나서서 프랑스 기업투자단과 경쟁한 지이-히다치 원자력이 탈락한 대신, 남측 기업투자단 속에 복병처럼 몸을 숨긴 웨스팅하우스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막판뒤집기로 원전수주 최대수혜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보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남측 기업투자단에 들어간 외국 원전기업은 웨스팅하우스와 도시바중공업이다. 그런데 주식회사 도시바(Toshiba Corporation)는 2006년 10월 16일 웨스팅하우스를 사들여 자회사로 만들었다. 웨스팅하우스 판매가는 54억 달러였는데, 도시바가 단독구매한 것이 아니라, 도시바가 77%, 미국 원전시공기업 쇼우그룹(Show Group)이 20%, 일본 원전건설기업 이시가와지마-하리마중공업(石川島-播磨重工業)이 3%를 각각 분담하여 구매하였다. 2007년 8월 13일 도시바는 지분 10%를 카자흐스탄 국영기업 카자톰프롬(Kazatomprom)에 5억4천만 달러를 받고 넘겼다.

이런 사정을 보면, 웨스팅하우스를 자회사로 사들인 도시바가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주의 실질적인 승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도시바중공업이 생산하는 원자로는 아랍에미리트가 수입하려는 가압경수로(PWR)가 아니라 비등경수로(BWR)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할 가압경수로는 도시바중공업이 아니라 웨스팅하우스가 생산한다.

둘째, 남측 원전기업들은 원전핵심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지 못하고, 웨스팅하우스 기술에 종속되어 있다. 원전 한 기는 약 200만 개 부품으로 구성되는데, 남측 원전기업은 원전핵심설비를 개발하는 원천기술(generic technology)을 갖지 못하고,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원전설계를 수입하여 성능이나 개량하는 개량기술(improvement technology)만 가졌다. 경상남도 울주군 간절곶에서 2007년부터 건설하고 있는,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완공될 신고리 3호기와 4호기에 들어갈 1,400메가와트급 한국형 경수로(AP 1400)는,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1,000메가와트급 경수로(OPR 1000)를 수입하여 성능을 개량한 것이다.

한국에너지자원기술기획평가원이 2009년 4월에 펴낸 자료 ‘원자력’에 따르면, 한국형 원전의 특허경쟁력은 67%이고, 3극특허비율은 14%밖에 되지 않는다. 원자로계통(NSSS) 기술수준은 65%, 터빈 및 발전기(T/G) 기술수준은 80%, 보조기기(BOP) 기술수준은 90%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원전핵심기술이 없는 남측 원전기업들은 한국형 경수로(APR 1400)에 들어갈 각종 핵심설비를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수입하여야 한다.

2006년 8월 29일 웨스팅하우스는 두산중공업,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와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계약은 한국형 경수로(AP 1400)에 들어갈 원전핵심설비 및 원전핵심용역을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수입하는 계약이다. 그 계약에 따라 남측 원전기업들이 수입한 원전핵심설비는 reactor coolant pumps and motors, reactor vessel internals, control element drive mechanisms, advanced instrumentation and control systems, Man-Machine Interfacing Systems이며, 원전 핵심용역은 technical support services와 engineering support services다. 또한 웨스팅하우스는 2009년 2월 5일 한국수력원자력과 공동출자하여, 제어봉집합체(control element assemblies)를 생산하는 한미합작기업 KW 원자력부품회사를 설립하였다. 출자비율은 웨스팅하우스가 55%이었고, 한국수력원자력이 45%인데, 그 한미합작기업은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기술을 들여다가 제어봉집합체를 제작하는 하청기업이다.

한국에너지자원기술기획평가원이 2009년 4월에 펴낸 자료 ‘원자력’에 따르면, 한국형 원전에 들어가는 원자로계통 핵심설비 일곱 종, 터빈 및 발전기 관련설비 다섯 종, 보조기기 열네 종 가운데 남측 원전기업들이 100% 자체생산하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원자로계통 핵심설비와 보조기기 일부는 웨스팅하우스에서 완제품을 수입하거나, 설계기술을 수입하여 제작하거나,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해야 하고, 터빈 및 발전기는 도시바중공업에서 수입해야 한다.

남측 기업투자단이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할 한국형 원전을 제작하기 위해 각종 핵심설비를 얼마나 사들여야 하는지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힘들지만, 울진 5호기와 6호기 건설에서 핵심설비 규모가 21.7%를 차지하고, 보조설비 규모가 16.3%를 차지한다는 자료를 보면, 남측 원전기업들이 웨스팅하우스에서 사들여야 할 핵심설비 수입총액은 약 50억 달러로 추산된다. 청와대와 언론매체들은 원전건설을 수주하여 200억 달러를 벌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그것은 과장선전이었다.

셋째, 1956년 2월 3일 워싱턴 디씨에서 체결된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의 협력을 위한 협정’(한미원자력협정)은 남측 원전기업들이 원전연료(nuclear fuel)를 자체로 생산하는 재처리를 금하고 있다. 남측은 원전연료를 웨스팅하우스에서 수입해야 한다. 남측만이 아니라,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은 나라들은, 일본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렇다. 이번에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은 아랍에미리트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 원전연료시장 점유율을 보면, 프랑스 아레바가 36%,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29%, 러시아 아톰에너고프롬 계열사(TVEL)가 1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주경쟁에서 아레바가 탈락하였으니, 그 나라 원전가동에 요구되는 원전연료공급은 장차 웨스팅하우스가 장악할 것이다. 2009년 12월 28일자 <뉴욕 타임스>는 “에미리트 관리들이 (원전)연료의 장기공급, 투자, 훈련 같은 분야에서 다른 입찰자들과 협력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Emirates officials said they were still discussing cooperation with the other bidders in areas like long-term fuel sullpy, investments and training)”고 보도하였는데, 웨스팅하우스가 아랍에미리트 원전연료판매를 장악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분명하다.

원자로에는 길이 60cm가 되는 원통형 연료봉을 여러 다발로 묶은 장치가 들어가는데, 그것을 핵연료 집합체(nuclear fuel cladding tube)라 한다. 가압경수로에 들어가는 핵연료 집합체 개당 가격은 10만 달러가 넘는다. 가압경수로 한 기에는 핵연료 집합체 170개가 장전되므로, 가압경수로 한 기에 장전되는 원전연료가격은 1천700만 달러이고, 아랍에미리트에 건설될 경수로 네 기에 장전되면 총액은 6천800만 달러로 늘어난다. 한국형 경수로의 수명은 60년이고, 원전연료는 18개월 주기로 교체하여야 하므로, 아랍에미리트는 웨스팅하우스로부터 60년 동안 원전연료를 계속 사들여야 한다. 원전수주 최대수혜자가 웨스팅하우스라고 말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넷째, 남측 원전기업이 해외에 원전을 수출할 때는 미국 정부의 사전승인(prior approval)을 받아야 한다. 한미원자력협정 제7조는 “대여, 매도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이양된 설비 및 장치를 포함한 자재가, 허가되지 않은 자에게 또는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 밖으로 이양되지 않을 것”으로 규정하였다. 남측 원전기업이 수출하려는 한국형 원전에는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수입한 설비 및 장치가 들어있으므로, 미국 정부로부터 사전승인을 받지 못하면 원전을 수출하지 못한다. 더욱이 남측 원전기업이 직접 미국 정부에게 원전수출 승인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원전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자국 정부에게 남측 원전수출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남측 원전기업이 해외에 원전을 수출할 때 미국 정부의 사전승인만이 아니라 웨스팅하우스의 사전승인도 받아야 한다. 웨스팅하우스는 1987년에 한국전력공사와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였고, 계약기간이 끝난 1997년에는 기술사용협정을 체결하였다. 기술사용협정에 들어있는 보상조항은 “한국전력공사와 웨스팅하우스는 재실시권 허여(許與)에 대해 웨스팅하우스에 대한 보상에 상호합의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웨스팅하우스가 보상을 합의해주지 않으면, 한국전력공사는 재실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재실시권이란 남측 원전기업이 웨스팅하우스에서 수입한 기술을 제3자에게 파는 권리를 뜻하는 전문용어다. 또한 기술사용협정에 들어있는 재실시권 조항은 남측 원전기업이 웨스팅하우스에서 수입한 원전기술을 제3자에게 수출할 때, 수출계약에 서명하기 60일 전에 웨스팅하우스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기술사용협정이 규정한 이와같은 보상합의와 사전통보는 웨스팅하우스가 남측 원전수출을 전면적으로 통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내막을 알고 있는 중국은 2004년 8월 자국이 발주한 원전건설 국제입찰에서 웨스팅하우스, 아베라, 아톰에너고프롬에게만 입찰을 청하였고, 남측 원전기업은 제외하였다. <월간조선> 2008년 7월호에 실린 이병령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전사업본부장의 대담기사가 그 사연을 알려준다. 대담기사에 따르면, “한수원(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로 원전사업을 담당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약자)은 2004년 3월 웨스팅하우스에 ‘한국이 중국 원전사업에 참여할 경우, 중국에 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사전동의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고, “웨스팅하우스는 중국 원전의 입찰 참가자가 결정된 후인 2004년 10월, 한수원에 ‘원칙적으로 협조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남측 정부는 굴욕적인 한미원자력협정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1978년부터 그 협정을 개정하자고 미국에게 여러 차례 간청했지만, 그때마다 미국은 거절하였다. 미국이 협정개정 요청을 거절한 까닭은, 그 협정을 개정하여 남측이 독자적으로 원전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원전연료를 생산하는 경우, 핵확산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고, 남측에게 원전핵심설비와 원전연료를 더 이상 팔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4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