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천안함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그들은 천안함 사건 수습과정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남측 언론매체들이 어떤 사건에 대해 그처럼 한 달 동안 지속적으로 대서특필한 경우는 근래에 없던 일이다. 언론매체들의 보도태도만 봐도, 천안함 사건이 남측 사회 전반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 지 알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언론매체들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그토록 대서특필하면서도 눈길을 주지 않은 언론보도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남측 언론매체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언론보도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누구보다 먼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확한 보고를 받았고, 그 보고에 기초하여 은밀히 긴급조치를 취하면서 상황을 장악, 통제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천안함 사건 직후 그처럼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까닭은, 미국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남측의 군사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천안함을 비롯한 초계함 및 고속정으로 편성된 함대가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서해 5개섬 접적수역에서 전개한 해상작전은 남측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으며, 미국군 합동참모본부의 작전명령과 미국 태평양사령부의 작전지휘와 7함대사령부의 작전통제에 따라 전개한 해상작전이었다. 이처럼 미국군 지휘부의 작전통제에 따라 전개된 해상작전 중에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으므로, 그 사건 직후에 전개된 대처과정을 미국이 장악, 통제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제임스 존스(James Logan Jonse, Jr.)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10년 4월 29일 주미한국대사관에 설치된 천안함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가 조문하였다. 제프리 베이더(Jeffrey A. Bader)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마이크 쉬퍼(Mike Schiffer)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조 도노번(Joseph R. Donovan, Jr.)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 로벗 킹(Robert King) 대북인권특사, 성 김 국무부 6자회담 특사도 조문하였다.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의 이례적인 조문행렬은 그들이 천안함 사건 수습과정에 깊숙이 개입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천안함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였는 지 알지 못하면, 수습과정의 내막을 알 수 없게 된다.

501 정보여단이 상신한 천안함 사건 정보보고서

한국군 고위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4월 22일부 보도에 따르면, 천안함 사건 직후, 청와대와 국방부는 그 사건에 대한 정보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2010년 4월 7일 청와대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자료에 따르면,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는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천안함 사건에 대한 첫 번째 상황보고를 하였고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이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는데, 그 시각은 3월 26일 오후 9시 51분이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3월 26일 오후 9시 51분에 받은 첫 보고는 합참의 상황보고였다.

중요한 것은, 합참 지휘통제실이 2함대사령부로부터 받아 청와대에 급히 상신한, 사건현장 상황을 묘사한 상황보고가 아니라 군 정보기관이 각종 정보를 분석, 종합하여 정식으로 작성한 정보보고서다. 이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물증으로 된 것은, 천안함 폭발장면이 찍힌 열상감지장비(TOD) 녹화 동영상, 그리고 사고 직전인 오후 9시 15분부터 22분까지 천안함이 2함대사령부와 주고 받은 교신기록이다. 국방부와 합참은 이 두 가지 물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강력한 정보통제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언제 어떻게 천안함 사건 정보보고서를 받았는 지는 기밀사항이어서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군 정보기관이 정보보고를 상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처럼 당연하게 보이는 행위 속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들어있다.  

첫째, 위의 보도기사에서 한국군 고위 소식통이 말한 “군 정보기관”은 구체적으로 어느 기관일까?  한국군 정보기관은 국방정보본부다. 한국군 국방정보본부 산하에는 국군정보사령부, 제777사령부, 사이버사령부가 있는데, 국방정보본부가 독자적으로 정보보고서를 작성하여 청와대와 국방부에 상신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판이다. 한반도 군사정보를 판단하는 실질적인 권한은 주한미국군 정보기관이 행사한다. 한국군은 미국군과 군사정보를 공유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정보전력을 미국군에게 의존하고 있다. 정찰위성과 고공정찰기를 비롯한 고급한 정보수집장비들은 모조리 미국군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주한미국군 정보기관은 미국 육군 정보사령부 예하 501 군사정보여단인데, 그 산하에 4개 정보대대가 있다. 미국군 지휘부가 자기 직속의 군사정보여단을 한반도에 상주시키는 것을 보면, 그들이 인민군에 대한 정보수집에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지는 지 알 수 있다.

501 군사정보여단은 한국군 국방정보본부와 합동으로 연합정보융합센터라는 이름을 가진 한미합동 군사정보협의체를 운영하는데, 그 협의체에서 군사정보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는 쪽은 501 군사정보여단이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 정보보고서는 501 군사정보여단의 주도로 작성된 것이다.

연합정보융합센터에서 501 군사정보여단의 주도로 작성된 정보보고서를 한국군 국방정보본부가 청와대와 국방부에 상신하는 것처럼, 501 군사정보여단도 그 보고서를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에 상신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청와대와 국방부가 천안함 사건 정보보고를 받은 시각에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도 천안함 사건 정보보고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똑같은 내용으로 작성된 천안함 사건 정보보고를 거의 같은 시각에 받았음을 말해준다.

둘째, 위에서 언급한 <연합뉴스> 2010년 4월 22일부 보도기사에 따르면, 군 정보기관이 서해 5개섬 접적수역에 대한 상황보고서를 12시간 단위로 작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군 501 군사정보여단과 한국군 국방정보본부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서해 5개섬 접적수역에서 인민군 동향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한미연합함대가 백령군도 인근 해역까지 북상해서 도발적인 북침공격연습을 벌이고 있었으니, 미국군 501 군사정보여단과 한국국 국방정보본부가 접적수역을 집중 감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두 정보기관이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던 접적수역에서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으므로, 그 두 정보기관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각각 자기의 상부에 상신한 천안함 사건 정보보고서에는 천안함 침몰 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힌 극비정보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셋째, 미국군 501 군사정보여단과 한국군 국방정보본부가 파악한 천안함 사건 정보보고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을까? 위의 보도기사는 “북한 잠수함이 중어뢰로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것이 군 정보기관의 판단”이었다는 한국군 고위소식통의 말을 인용하였다. 놀랍게도, 미국군 501 군사정보여단과 한국군 국방정보본부는 인민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로 천안함이 격침되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천안함이 인민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격침되었다는 내용으로 작성된 501 군사정보여단의 정보보고서가 사건 직후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에 제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악관에서 정보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는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이므로,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직후 데니스 블레어(Dennis C. Blair) 국가정보국장은 천안함이 인민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격침되었다는 긴급정보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하였고, 제임스 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그러한 정보를 보고하고 오바마 대통령의 주재로 대응책을 논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은 천안함이 인민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격침되었다는 정보보고를 받았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면서 천안함 사건과 북측의 연관설이 퍼지는 것을 차단하였고,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여 원인부터 규명하여야 하며 섣불리 예단해서는 아니된다고 말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꺼내놓은 원인규명 선행론은 천안함 사건과 북측의 연관설이 퍼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논리였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이 외부폭발인지, 내부폭발인지, 암초충돌인지, 피로파괴인지, 새떼인지, 잠수정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극도의 혼돈상태가 지속되면서 침몰 원인에 대한 온갖 억측과 상상이 난무하였던 까닭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청와대가 군 정보기관의 정보보고를 감추고 원인규명 선행론과 예단 불용론을 강하게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 직후 백악관의 긴급대응

천안함 사건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사건수습에 직접 개입하였다. 그는 한반도 시간으로 2010년 4월 1일 오전 7시 10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친히 전화를 걸었다. 20분 동안 이어진 전화통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무슨 말을 하였는 지 언론에 알려진 바 없으나, 그가 자기의 개인 견해가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된 공식 견해를 전했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2010년 4월 22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한 바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4월 13일 워싱턴 디씨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이명박 대통령과 대화하면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공식 견해를 또 다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전함 침몰사건에 이처럼 직접 개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공식 견해는 무엇이었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그는 천안함 사건 진상을 조사하여 원인부터 규명하여야 하며, 군 정보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보고에 들어있는 북측 연관 정보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견해를 전했을 것이다. 그 날 전화통화를 한 뒤로부터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강하게 주장해온 원인규명 선행론과 예단 불용론은, 그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그러한 공식 견해를 전해들었음을 말해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처럼 오바마-이명박 직접대화를 통해 천안함 사건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북측 연관설을 차단할 것을 요구하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남측 정보기관을 직접 통제하는 긴급행동에 나섰다. 2010년 4월 초 데니스 블레어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은 자기 밑에서 일하는 실비아 코플랜드(Sylvia Copeland) 북코리아 담당관(North Korea Mission Manager)을 서울에 급파하였다.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은 미국 16개 국가정보기관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이므로, 미국 정부의 대북정보사업은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의 북코리아 담당관이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중책을 맡은 백악관 관리를 서울에 급파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천안함 사건 대응책을 얼마나 중시하고, 얼마나 서둘렀는 지 말해준다.

코플랜드 북코리아 담당관은 일반 항공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내린 것이 아니라 특별기편으로 주한미국군 오산 공군기지에 내려 정상적인 입국절차를 무시하고 서울에 은밀히 들어갔으므로 아무도 그의 방문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조선일보>가 2010년 4월 19일 보도를 통해 그의 비밀방문을 뒤늦게 알려주었다. <조선일보> 관련기사에 따르면, 코플랜드 담당관은 남측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천안함의 침몰이 북한에 의해 저질러졌을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관련 정보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501 군사정보여단의 천안함 사건 정보보고에 기초한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의 공식 견해를 코플랜드 담당관이 남측 정보기관들에게 전하였음을 말해준다.

코플랜드 담당관이 남측 정보기관들에게 전한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의 공식 견해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공식 견해와 똑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코플랜드 담당관이 전한 내용은 천안함 사건 진상을 조사하여 원인부터 규명하여야 하며, 원인이 규명되기 전에 섣불리 북측 연관설을 꺼내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2010년 4월 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국정원이 군 내부의 정보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북한의 관련성 유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은 것은,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의 정보통제 요구에 부합하는 발언이었다.

미국 국방부와 합참, 국무부가 취한 긴급대처행동들

천안함 사건 직후,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미국 국방부였다. 천안함 사건이 군사부문에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미국 국방부는 다른 부서들보다 먼저 발빠르게 대처하여야 하였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2010년 3월 26일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워싱턴 디씨에서 열린 연방의회 청문회에 출석 중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그에게 급히 서울로 돌아가 천안함 사건을 현지에서 수습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2010년 3월 27일 서울로 돌아갔고, 이튿날 서둘러 ‘보도자료’를 발표하였다. 그는 ‘보도자료’에서 “청와대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북한군에 의한 어떠한 특이동향도 탐지하지 못했다. 미군은 이번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모든 우발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의 그러한 발표내용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된 원인규명 선행과 북측 연관설 차단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미국군 합동참모본부도 긴급행동을 취했다. 정확한 날짜는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이클 멀린(Michael Mullen) 미국군 합참의장과 로벗 윌러드(Robert F. Willard) 태평양사령관이 이상의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공식 견해를 그들도 이상의 합참의장에게 전했을 것이다.

2010년 4월 5일 한국군 고위급 지휘관과 주한미국군 고위급 지휘관 14명이 국방부 청사 7층에 있는 한국군 합동참모본부 지휘부 회의실에서 “천안함 사고대책 한미 군수뇌부 협조회의”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나타났다. 그는 협조회의에서 “이미 워싱턴에 이 사항을 건의하여 승인을 받았고, 미국의 최고 전문가팀을 파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미군조사단을 천안함 사건 조사현장에 파견하는 문제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되었음을 한국군 지휘부에게 통보한 것이다.  

미군조사단을 남측에 파견하는 문제는 한미 군수뇌부 협조회의에서 합의된 것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이미 결정한 것을 남측이 받아들인 것이다. 미군조사단은 천안함 사건 진상조사를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조사작업을 실질적으로 장악, 주도하게 되었다.

<연합뉴스> 2010년 4월 13일부 보도에 따르면,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국방장관은 태평양함대사령부 예하 해양체계사령부(Naval Sea System Command) 소속 군인들로 구성된 미군조사단에 대한 지휘권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예외적인 조치를 승인하였다고 한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태평양사령부 휘하에 있지 않고 미국군 합동참모본부 휘하에 있으므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태평양사령부 예하 해양체계사령부가 파견한 군인들로 구성된 미군조사단을 지휘할 권한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게이츠 국방장관은 미군조사단 지휘권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행사할 수 있도록 승인해준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지시에 따라 천안함 사건 조사권과 정보 판단권을 장악한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천안함 사고대책 한미 군수뇌부 협조회의”에 참석한 다음 날인 2010년 4월 6일 캐슬린 스티븐스(Kathleen Stevens) 주한미국대사와 함께 헬기를 타고 당시 백령도 앞바다에 배치되어 천안함 인양 및 수색작업 지휘본부로 사용되던 독도함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미국 국방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을 만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면서 천안함 사건 조사권을 자신이 행사하게 되었음을 내비쳤다. 그는 독도함을 시찰한 다음 날인 4월 7일 워싱턴 디씨로 날아가 미국군 수뇌부를 다시 만났다.

미국 국방부가 파견한 토머스 에클스(Thomas J. Eccles) 준장을 단장으로 하는 미군조사단은 2010년 4월 16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국군 2함대사령부에 도착하였다. 미국 국방부는 미군조사단 인원을 당초 8명으로 구성하겠다고 하였는데, 4월 19일 남측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인원을 8명에서 15명으로 늘렸다고 한다. 미군조사단은 천안함 절단면을 촬영할 특수장비를 가져갔는데, 특수장비로 촬영한 영상자료를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과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에 있는 미국 해군 전문분석기관으로 보냈다. 이것은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미국 해군이 장악하였으며, 천안함 사건 진상조사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권한도 월터 샤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행사하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와 합참이 이처럼 발빠르게 움직인 것과 더불어 국무부도 그에 뒤질세라 긴급조치를 취하였다. 미국 국무부 제임스 스타인벅(James B. Steinberg) 부장관은 2010년 3월 29일 “북한 개입이 사고원인이라 믿거나 우려할 근거는 없다”고 말하면서 북측 연관설을 차단하였다. 또한 미국 국무부는 당시 인도를 방문하고 있던 커트 캠벨(Kurt Campbell)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2010년 4월 2일 서울에 급파하였다. 남측 외교부 관계자는 캠벨 차관보가 인도 방문을 마치고 워싱턴 디씨로 돌아가는 길에 현지방문(field trip) 차원에서 서울에 온 것이라고 에둘렀지만, 그가 서울에서 하루만 머문 뒤 4월 3일 오전에 워싱턴 디씨로 급히 돌아간 것을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한 천안함 사건에 대한 공식 견해를 남측 외교담당관리들에게 긴급히 전해주기 위해 서울에 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서울에 하루 동안 머물면서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을 만났다.

그들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공식 견해가 청와대와 한국군 지휘부, 그리고 정부기관들에 전달되자,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에 관해 꺼내놓은 일련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그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공식 견해에 정확히 부합되는 발언만 골라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3월 30일 천안함 사고해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이 “내부 폭발은 없었던 것으로 본다”고 하면서 “어뢰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보고하자, “절대로 원인을 예단해서는 안 된다. 아주 과학적이고 종합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또한 그는 2010년 4월 1일 대통령 특사로 외국을 다녀온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만난 청와대 오찬간담회에서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때와 달리 이번 사고 직후에 감청된 북한군의 교신기록을 보면, 특이동향이 없다. 정황도 없는데 개입했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원인을 제대로 알기 전에 혼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 선진국 대열에 든 나라답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원인을 밝혀야 한다. 언론에 자꾸 추측성 보도가 나오는데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고, 이튿날인 4월 2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만난 청와대 조찬회동에서도 “북한과 국제사회가 보고 있기 때문에 차분히 원인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북측 연관설을 차단하기 위한 원인규명 선행론을 계속 강조하였다.

2010년 4월 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한 김태영 국방장관이 “어뢰 가능성이 좀 더 실질적이지 않나 싶다”고 하면서 어뢰공격설을 암시하자, 청와대는 어뢰공격설 발언을 중지하라는 취지가 적힌 쪽지를 급히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전하여 어뢰공격설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말문을 막아버렸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2010년 4월 15-16일 도쿄에서 일본 정계인사들과 만나 어뢰공격설과 북측 연관설을 언급하였는데, 서울에 돌아간 뒤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태도를 180도 바꿔 4월 19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신중론을 강조하였고,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은 외교안보자문단을 만난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 “(진상이) 명백히 밝혀지는 시점까지는 절대로 북한을 거론하지 말자”는 취지로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장관, 그리고 한국군 지휘부는 애초에 한국군 국방정보본부로부터 보고 받은 대로 천안함이 인민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에 맞아 격침되었다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그런 식의 발언을 삼가는 고도의 자제력을 보여주었다. 지난 시기 남측 정부는 북측이 실제로 하지 않았는데도 북측과 억지로 연관시켜 반북선동을 불러일으키곤 하였는데, 이번에는 국방정보본부가 상신한, 인민군이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정보보고를 받고서도 북측 연관설을 꺼내지 못하였을 뿐아니라 관계나 정계에서 북측 연관설이 나오려고 하면 그것을 서둘러 제지하기까지 하는 적극적인 자제행동을 취했다.   

그들이 그처럼 자제력을 보여준 까닭은, 그들에게서 인내심이 발동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명백하게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보공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철저히 장악,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미관계의 현주소다.

천안함 북풍은 불어오지 않는다

만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청와대와 한국군 지휘부의 정보공개를 통제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보나마나, 인민군 잠수함이 천안함을 격침하였으니 북측에 보복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드센 북풍정국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정보공개는 한나라당과 수구언론들을 자극하여 그들이 극렬한 반북선동에 열을 올리게 만들었을 것이고, 흥분한 수구세력들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북한 응징’을 촉구하는 대규모 궐기대회를 강행하는 등 대소동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을 것이며, 한국군 지휘부는 서해 5개섬 접적수역에서 인민군 경비정을 기습공격하는 보복작전을 허락해달라고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파탄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보복공격 선동으로 더욱 악화시킬 천안함 북풍정국은 조성되지 않았고, 천안함 희생자 분향소에 조문행렬이 이어지는 애도정국만 조성되었다.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청와대와 한국군 지휘부의 정보공개를 강력히 통제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천안함이 인민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에 맞아 격침되었다는 정보보고를 받았으면서도, 왜 그 정보를 숨기면서 청와대와 한국군 지휘부의 정보공개를 통제하였을까?

첫째, 격앙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한국군 지휘부가 서해 5개섬 접적수역에서 우발적으로 군사행동을 취하는 경우, 우발적 군사행동이 무력충돌로 비화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누구의 공격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언제 공격을 받았는지도 모른 채 갈팡질팡한 한국군이 한미연합군의 북침공격에 대비하여 만반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인민군을 이길 수 있을까? 천안함 사건 직후, 한국군 지휘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갈팡질팡한 것은, 한국군의 정보체계와 지휘체계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정보체계와 지휘체계가 그처럼 엉망인 한국군이 우발적인 군사행동으로 인민군과 교전을 벌인다면, 패배할 가능성만 있다.

만일 한국군의 우발적인 군사행동으로 교전이 벌어진다면, 인민군은 방사포, 미사일, 대구경 장거리포를 총동원하여 서해 5개섬에 있는 군사시설을 초토화하고 기상천외한 전술로 강습상륙전을 감행하여 백령군도 3개섬을 기습적으로 점령할지 모른다. 군 고위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0년 4월 22일부 기사에 따르면, 2009년 2월부터 한국군 지휘부는 인민군이 백령군도를 기습적으로 공격, 점령하지 않을까 우려해왔다는 것이다. 만일 백령군도에 4,000명을 전진배치한 한국군 해병여단 흑룡부대가 궤멸되고 백령군도가 인민군에게 점령당하면 천안함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열패감이 한국군의 사기를 꺾어놓을 것이며, 안보무능으로 낙인 찍힌 이명박 정권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정권을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이 수습하지 못할 그러한 엄청난 사태가 일어날 지 모른다고 우려하였기 때문에 청와대와 한국군 지휘부의 정보공개를 통제함으로써 무모한 북풍정국이 조성되는 것을 예방적 차원에서 차단하였던 것이다.

둘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대북관계에서 한반도 평화회담을 회피하기 위한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궁여지책에 의존하고 있다. 그들의 궁여지책은 북측이 6자회담에 무조건 복귀하고 핵무기를 포기하는 가시적 행동을 보일 때까지 무한정으로 한반도 평화회담을 회피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복공격에 나선 한국군이 인민군에게 패하여 백령군도를 점령당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 한반도의 군사정세와 정치정세는 미증유의 급변사태에 휘말릴 것이고, 그에 따라 남측 대자본은 안전한 해외 도피처를 찾아 떠날 것이며, 남측에 들어가 있던 외국계 대자본들도 이탈행렬에 줄을 이을 것이다. 남측 안보체제가 이처럼 군사, 정치, 경제부문에서 한꺼번에 무너지기 시작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조치를 추가로 취하고 싶어도 취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극도의 위기상황에서 국내외 여론은 북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정세를 안정화하는 비상조치를 요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여 ‘한국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쏟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평화회담을 촉구하는 여론이 국내외에서 폭발하면, 한반도 평화회담을 회피하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궁여지책마저 날아가 버린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이 수습하지 못할 그러한 엄청난 사태가 일어날 지 모른다고 우려하였기 때문에 청와대와 한국군 지휘부의 정보공개를 통제함으로써 무모한 북풍정국이 조성되는 것을 예방적 차원에서 차단하였던 것이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한 달이 지나면서, 미군조사단의 진상규명은 어뢰공격설로 가닥을 잡았다. 이제부터 미군조사단이 어뢰공격설을 확증하려면 물증을 제시하여야 한다. 어뢰공격설의 물증이란 어뢰파편이다. 그래서 한국군은 무인잠수정 해미래호, 쌍끌이 어선, 조개를 채취하는 어구인 형망(刑網)까지 동원하여 사고수역 바닷속을 뒤지며 어뢰파편을 찾고 있다. 그러나 사고수역은 유속이 빠르기로 소문난 곳이어서 수 백 톤짜리 천안함 함수가 폭발위치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쓸려갔던 곳이다. 그처럼 사나운 해류가 밀려가는 바닷속에서 어뢰파편을 찾아내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운 좋게 어뢰파편을 찾아낸다 해도, 그 금속파편이 어느 나라 군대의 어뢰에서 떨어져나온 것인지 규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므로, 심증만 하나 더 추가하게 되는 것 뿐이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어뢰공격설 물증확보에 실패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1980년대에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을 지낸 미국 국방연구소 제임스 딜레이니(James Delaney) 상임고문은, 2010년 4월 14일 서울 방문 중에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미국과 남측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군사보복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물증도 찾지 못한 사건을 백악관과 청와대가 국제사회에 가지고 나가 어떤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까? 천안함 북풍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될 것이다.  (2010년 4월 2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