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삼각관계의 3차 방정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비이성적 태도에는 원인이 있다

남북관계 갈등이 해소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갈등을 악화시키는 악재들만 쏟아져나온다. 분단체제에서 남북관계의 긴장은 필연적이지만, 남북관계의 갈등을 고의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남북관계의 갈등을 해소할 요인은 화해협력밖에 없는데, 이명박 정권은 대북화해협력을 배척하고 있다. 집권 이전에 그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화해협력을 ‘북한 퍼주기’라고 비방하더니, 집권한 뒤에는 북측의 ‘대남협박’에 단호하게 반격해야 한다고 외치며 대결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남북관계의 갈등이 자꾸 악화되면 물리적으로 충돌할 위험요소가 강해질 것이고, 한반도 정세에서 충돌위험요소가 강해질수록 이명박 정권은 외국자본이탈, 주가폭락, 환율상승 등 막대한 경제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비관론자들의 전망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 남측이 겪는 경제위기는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데, 경제정책에서 실패한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마저 파탄시켜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를 파경으로 끌어감으로써 얻을만한 이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를 파경으로 끌어가는 이명박 정권의 태도는 분명히 비이성적이다.

이명박 정권의 비이성적인 태도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대북관계에서 비이성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어떤 숨겨진 원인은 없을까?

그 원인을 밝혀내려면, 시야를 남북미 삼각관계로 넓혀야 한다.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나 한미관계와 각각 연동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현재 한반도 정세변화에서 남북관계보다 북미관계와 한미관계가 더 중요한 변화요인이다.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미관계의 복잡화현상은 3차 방정식을 풀어야 이해될 수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상호연동

남북관계의 변화와 북미관계의 변화는 연동된다. 양자의 변화가 연동된다는 말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북미관계가 개선되거나 악화되는 것에 따라 남북관계도 개선되거나 악화된다는 것이다.

북미관계가 개선되어야 남북관계도 개선된다는 사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남북관계의 변화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김대중 정권 시기인 1999년에서 2000년까지 이루어진 제1차 대북관계개선, 그리고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7년에 이루어진 제2차 대북관계개선은 똑같은 과정을 밟아갔다. 그것은 북미관계의 개선이 선행하고 그에 따라 남북관계가 개선된 과정이었다.

제1차 대북관계 개선과정을 보면, 1999년 5월 25일에 윌리엄 페리 대통령 특사가 방북하였고, 같은 해 9월 7일에 북미 미사일회담이 열렸고, 2000년 1월 11일에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리면서 북미관계가 크게 개선되고 있을 때, 2000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북미 차관급회담이 시작된 것과 때를 맞춰 3월 9일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대북화해협력선언을 발표하였고, 같은 날 국가정보원 관계자와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관계자가 싱가포르에서 만나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준비하기 위한 비공개회담을 가졌다.

제2차 대북관계 개선과정을 보면, 2007년 1월 16일 북미 베를린회담이 열렸고, 6월 21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하였고, 9월 1일 북미 제네바회담이 열리면서 북미관계가 크게 개선되는 가운데, 8월 14일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준비하기 위한 남북회담이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각각 평양방문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관계를 개선한 것이었다. 이처럼 남북관계의 변화가 북미관계의 변화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북미관계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아야 남북관계의 변화전망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북미관계의 최근 동향에서 떠오른 가장 커다란 관심거리는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할 대북정책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을 계승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2009년 2월 20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스티븐 보스워즈를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하였음을 서울 방문 중에 발표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가 북측과의 양자회담을 재개하기 바란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더욱이 대북관계를 크게 개선하였던 클린턴 행정부 2기에 대북관련 실무집행을 맡았던 사람을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으로,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주한미국대사로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에서 눈여겨보는 핵심내용은, 대북관계의 현안을 해결하려고 북미 고위급회담을 개최하였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2009년 3월 9일 서울을 방문하는 중에 북미 고위급회담 재개를 바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속내를 슬쩍 내비쳤다. 북미 고위급대화가 6자회담을 약화시키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대해 그는 “미국은 과거에도 대체로 북측과 고위급대화에 긍정적이었다. (고위급대화가) 6자회담 프로세스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적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또한 클린턴 국무장관과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서울을 떠나기에 앞서 약속이나 한 듯이 각자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한 것이다. 국무장관과 특별대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화해협력에 대한 지지의사를 그런 식으로 은근하게 표현하고 워싱턴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미관계와 북미관계의 상호연동

클린턴 국무장관과 보스워즈 특별대표가 북미 고위급회담을 재개할 추진의사를 내비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화해협력에 대한 지지의사를 내비치자 당황실색한 쪽은 이명박 정권이다. 대북갈등대결을 추구하는 이명박 정권이 오바마 행정부의 북미 고위급회담 추진의사와 대북화해협력 지지의사를 확인하고 당황실색한 것은 당연하다. 친미노선에 집착하면서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엇서야 하는 자가당착, 이것이 당황실색의 발생원인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미 고위급회담을 재개하려면, 이명박 정권의 대북갈등대결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으면, 북미 고위급회담을 재개하고 싶어도 재개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러하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대북관계에서 이명박 정권과 어긋날 수밖에 없는 자가당착, 이것이 오마바 행정부의 고민거리이다.

북측은 오바마 행정부와 이명박 정권이 대북관계에서 엇박자를 밟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북측은 대북관계의 엇박자를 불협화음으로 증폭시킴으로써 한미관계를 뒤흔들고, 오바마 행정부를 북미 고위급회담 재개로 끌어당기면서 이명박 정권을 정치적 고립상태로 떠미는 전술을 취하였다. 북측이 오바마 행정부를 북미 고위급회담으로 끌어당길수록 한미관계는 불협화음을 낼 것이며, 한미관계가 불협화음을 낼수록 이명박 정권은 고립될 것이다.

북측이 오바마 행정부를 북미 고위급회담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꺼내 든 비책이 6자회담을 장기휴회상태에 묶어두고 은하 2호의 발사준비태세를 취한 것이고, 북측이 이명박 정권을 고립시키기 위해 꺼내 든 비책이 이명박 정권에 대해 전면대결태세를 선언한 것이다. 은하 2호가 지구궤도를 향해 날아오르면 오바마 행정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북미 고위급회담에 나설 것이고, 만일 제3차 서해교전이 일어나면 이명박 정권은 사면초가의 파경에 빠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명박 정권이 대북화해협력을 배척하면서 북측을 자극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그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북측이 꺼내 든 비책의 효과를 증대시켜주는 것이다. 자충수를 둔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어울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결주의적 속성을 버리지 못하는 이명박 정권이 대북화해협력으로 전향할 수도 없거니와 만약 당면위기를 모면하려고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맞은 위기보다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이명박 정권이 당면위기를 모면하려고 대북관계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 북측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전면대결태세를 완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수는 없다. 이처럼 남북관계가 현상유지로 복귀하는 것일 뿐 그 이상의 관계개선은 기대하기 어렵게 정체되겠지만, 남북관계가 현상유지로 복귀하면 오바마 행정부는 북미 고위급회담에 나설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미 고위급회담이 이명박 정권에게 근본적인 위기를 몰고 온다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정체되었는데 북미관계만 개선되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고립을 심화시키기 때문에 그러하다. 더욱이 북미관계가 개선되어 북측과 오바마 행정부가 핵검증방식을 합의하고 미사일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나아간다면, 남북관계 정체에 발목이 잡힌 이명박 정권은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정체는 이명박 정권을 진퇴양난의 곤경으로 떠밀게 될 것이다.

3차 방정식은 어떻게 풀릴까?

오바마 행정부는 북미 고위급회담을 재개하고 북측과의 직접협상을 통해 핵검증방식을 합의하여야 6자회담이 재개되리라는 점을 알고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미 고위급회담 재개가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이다. 핵검증방식을 합의하고 미사일문제를 해결하는 일괄타결은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관계에서 추구하는 전략목표인데, 북측이 대미관계에서 추구하는 당면목표는 따로 있다. 북측이 추구하는 당면목표는 오바마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이다.

핵검증방식을 합의하고 미사일문제를 해결하는 일괄타결은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이루어질 만한 손쉬운 과제가 결코 아니다. 북미관계의 현안을 일괄타결하는 과제는 전권을 가진 양국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풀 수밖에 없다. 북미관계의 현안을 일괄타결하는 과제를 반드시 정상회담에서 풀 수밖에 없는 까닭은, 핵검증방식의 합의가 한반도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로 들어서는 것을 뜻하며, 미사일문제의 해결이 북미 미사일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진입은 북측의 핵무기 포기를 뜻하며, 미사일협정 체결은 북측의 중거리 및 장거리 미사일 포기를 뜻한다. 북측의 핵무기 및 미사일 포기의사를 미국에게 밝히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행사할 수 있는 최고권한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무기 및 미사일 포기의사를 밝힐 협상대상은 오바마 대통령밖에 없다.

핵검증방식을 합의하고 북미 미사일협정을 체결하는 협상과정에서 북측이 오바마 행정부에게 꺼내놓을 의제는 미국군 핵우산 철거와 주한미국군 철군이다. 오래 전부터 북미 양자회담에서 미국군 핵우산 철거와 주한미국군 철군을 의제화하려고 애써온 북측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그 회담에서 그 의제를 관철시키려고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오바마 행정부도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관계에서 신중하다 못해 소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뒤로 50일이 지났는데도 대북정책을 검토하는 중이라는 소리만 들릴 뿐, 확정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까닭은, 북측이 꺼내놓을 미국군 핵우산 철거 및 주한미국군 철군 의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고심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군 핵우산 철거와 주한미국군 철군을 의제로 다루게 될 북미 정상회담이 핵우산 제공공약과 미국군 장기주둔공약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이명박 정권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은 북미 고위급회담이 재개되어 북미 정상회담 개최문제가 가시화되는 경우,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남북관계를 심각한 갈등국면에 계속 묶어두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심각한 갈등국면에 묶여있는 한, 오바마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를 갈등국면에 묶어둠으로써 오바마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이명박 정권이 북미 정상회담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면 한미관계가 파경에 빠질 것이고, 고립무원한 상태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강한 압박을 받으면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생명은 단축될 것이다. 이에 관한 사례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몰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7년 1월 20일 카터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그가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주한미국군 철군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그 동안 미국의 압력으로 중단했던 핵무기 개발을 다시 강행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군을 저지하기 위해 거의 필사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강행할수록 한미관계가 파경에 빠지면서 자신의 정치생명을 급속히 단축시켰다.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철군을 추진하면서 박정희 정권을 완전히 고립시켰다. 일본에게는 월터 먼데일 부통령을 보내서 자신의 철군결정을 알렸지만,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먼데일 부통령이 도쿄를 방문한지 15일 뒤에 편지 한 장으로 간단히 통보해버렸다. 당시 경찰청 정보책임자가 2005년에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7월 1일 서울을 방문한 카터 대통령과 정면충돌을 벌이자 주한미국대사, 부대사, 정치참사,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이 모인 비밀회의에서 박정희 제거공작을 논의하였고, 남측의 중앙정보부에게 제거공작을 맡기기로 결론을 맺었다고 한다. 카터 대통령은 그해 10월 6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는 마지막 조치를 강행하였고,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마항쟁이 일어났으며, 그로부터 엿새 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였다.

한미관계가 그처럼 파경에 빠진 것과는 반대로, 북미관계는 개선되었다. 카터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977년 3월 미국 외교사상 처음으로 워싱턴에서 열린 정부행사에 유엔주재 북측 외교관들을 초청했고, 1979년 4월에는 평양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미국 대표단이 역사상 처음으로 참가하였다.

한미관계의 엇박자를 조율할 최후의 장치는 한미정상회담인데, 남측 정권과 미국 행정부가 엇박자를 밟은 시기마다 한미정상회담은 특징을 보였다. 이를테면, 박정희 정권이 핵무기 개발을 강행함으로써 한미관계가 파경에 이르렀던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은 한 차례도 워싱턴을 방문하지 못하였고, 1974년 11월 22일 포드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하고 1979년 7월 1일 카터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하였을 뿐이다. 또한 2003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노무현 정권이 대북화해협력을 추진함으로써 한미관계가 엇박자를 밟았던 기간에, 노무현 대통령은 세 차례나 워싱턴을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부쉬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없다.

예상컨대, 장차 열리게 될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은 노무현-부쉬 정상회담의 경험과 매우 유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유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에서 한미관계의 엇박자를 조율하는 방향이 결국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선회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화해협력을 추진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부쉬 대통령이 2001년 3월 7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화해협력을 제어하였던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도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면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갈등대결을 제어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행정부는 임기말에 녕변 핵시설을 동결하기로 북측과 합의한 것이 핵문제를 해결한 것이라 여기고 북측과 미사일협정을 체결하려고 평양방문을 준비하였는데, 지금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북측으로부터 공세적 외교압력을 받고 있는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한꺼번에, 그리고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측으로부터 받았던 외교압력에 비하면, 오늘 오바마 행정부가 북측으로부터 받는 외교압력은 배가된 것이다. 배가된 외교압력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선택권을 결정적으로 제약한다.

이명박 정권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반대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계속 악화시킬 것이고, 북측은 오바마 대통령을 북미 정상회담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은하 2호를 발사할 것이고, 오바마 행정부는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고민할 것이다. 남북미 삼각관계에 얽힌 3차 방정식의 답은 올해 안에 나올 수 있을까? (2009년 3월 15일 작성)

* 이 글은 ‘월간 말’ 2009년 4월호에 기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