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나타난 특사방문단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특사방문단 파견에 얽힌 복잡한 내막

2009년 12월 8일 오후 2시 2분, 경기도 오산에 있는 주한미국군 공군기지에서 미국군 수송기가 날아올랐다. 그 수송기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평양에 보내는 정부관리 다섯 사람이 타고 있었다. 수송기는 서해직항로를 거쳐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 수송기에 탄 다섯 사람 가운데,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Special Representative for North Korean Policy)와 성 김(Sung Kim) 대북회담 특사(Special Envoy for North Korean Talks)는 언론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는 국무부 관리들이지만, 다른 세 사람은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관리들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니얼 러셀(Daniel A. Russell) 일본/코리아 국장(National Security Council Director for Japan and Korea),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찰스 루츠(Charles D. Lutes) 반확산전략 국장(Director for Counterproliferation Strategy), 그리고 국방부 마이클 쉬퍼(Michael Schffer)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Deputy Assistant Secretary for East Asia)가 그들이다.

원래 미국 국무부는 보스워즈 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내 북미회담을 재개하려고 하였으나, 북측은 그 제안을 거부하였다. 북측이 그 제안을 거부한 까닭은, 장관급 고위관리를 대통령 특사로 파견해주기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은 보스워즈 특별대표를 국무부 특사로 평양에 보내려고 하였는데, 국방위원회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사이의 직접대화를 요구한 북측 시각에서 보면 국무부의 특사파견 제안은 무의미하게 보였을 것이다. 더욱이 북측은 부쉬 정부와 마찬가지로 오바마 정부도 명목상 특사를 보내 시간끌기작전을 재개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올해 들어 인공위성 발사, 지하핵실험 실시, 첨단미사일 발사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6자회담 참석거부, 우라늄 농축 개시, 추출 플루토늄 전량 핵탄두화, 경수로 건설 준비사업 착수를 단행한다는 폭탄선언을 발표한 북측의 놀라운 행동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무의미한 제안을 내놓고 적당히 시간이나 끌어보자는 식으로 나온 오바마 정부를 최대로 압박하여 궁지에 몰아넣은 초강경 끝장공세였다.

북중국경을 넘어 들어가 불법취재활동을 기도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된 미국인 여기자 두 사람을 석방하는 구실을 내걸고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전 대통령이 비공식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전격방문하여 극적인 전환계기가 마련되었을 때, 북측은 2009년 3월부터 7월까지 다섯 달 동안이나 계속 퍼부었던 초강경 끝장공세를 멈추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공식 대통령 특사를 보내는 방도를 놓고 고심어린 선택을 해야 하였다. 그들이 특사파견문제를 고심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이렇다.

북미관계는 정치적 대결과 군사적 대치를 지속해온 적대관계이므로,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내는 것은 적국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는 것인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적국에 대통령 특사를 보내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대통령 특사가 장관급 고위관리여야 한다는 외교관례부터 그들에게 고심거리로 되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장관급 고위관리를 대통령 특사로 보낸다는 말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or)을 특사로 파견한다는 뜻인데, 그들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적국에 특사로 보낸 경험은 1971년 7월 9일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당시 대통령이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을 밀사로 베이징에 보낸 것이 유일무이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시각에서 보면, 중국은 큰 적국이고 북측은 작은 적국이므로, 그들은 큰 적국과 교섭통로를 개설할 때 추진하였던 예외적인 특사파견방식을 작은 적국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만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작은 적국에 장관급 고위관리인 국가안보보좌관을 대통령 특사로 파견하면, 그것은 외교적으로 굴복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38년 전에 그 자신이 베이징에 밀사로 파견되어 중미회담을 성사시켰던 헨리 키신저가, 오늘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내 북미회담을 재개하는 것을 반대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실제로, 키신저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반대하는 글을 2009년 8월 9일자 <뉴욕 타임스>에 발표하였고, 특사방문단의 평양 방문을 반대하는 글을 2009년 12월 18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발표하였다.

작은 적국에 어떻게 대통령 특사를 보낼 것인가 하는 고심거리를 비교적 원만하게 풀어낸 것은 클린턴 정부였다.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대북정책조정관이라는 대통령 직속 고위직을 신설하고, 그 자리에 전직 장관인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를 임명한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그러한 경험을 중시하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는 대북정책 특별대표라는 국무장관 직속 중간직을 신설하고, 그 자리에 주한미국대사 출신인 보스워즈를 임명하였으며, 북미회담도 평양이 아니라 제3국에서 개최하는 식으로 대처하려고 무모하게 시도하였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국무장관 직속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제임스 스타인벅(James Steinberg) 부장관(Deputy Secretary) 밑에 있는 중간직에 지나지 않는다. 남측 정부의 관직과 대비해보면,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차관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8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공식 특사자격으로 평양에 파견함으로써 정면충돌이 일어나던 북미관계에서 극적인 전환계기가 마련되었는데도,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내는 데 두 달 이상 시간이 걸린 까닭은, 대통령 직속 고위관리가 아닌 국무장관 직속 중간관리를 제3국에 보내 북미회담을 개최하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제안을 북측이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특사파견문제에 대해 온당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자, 북측은 2009년 11월 3일 폐연료봉 8천여 개를 재처리하는 작업을 완료하였다고 발표함으로써 또다시 압박공세를 재개했다. 폐연료봉을 재처리한 것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인데, 북측은 추출한 플루토늄 전량을 핵탄두로 만들겠다고 이미 선언한 터여서, 북측이 재처리 작업을 완료하였다는 발표가 나오자 오바마 정부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북측이 재개한 압박공세 직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무장관 직속 중간관리에게 대통령 친서를 들려 평양에 보내는 특이한 특사파견방식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중간관리를 대통령 특사로 임명하였으므로, 특사와 함께 떠날 방문단은 자연히 중간직 이하 관리들로 선발, 구성되었다.

이번에 평양에 파견된 미국 정부 관리들은 백악관 관리 두 사람, 국무부 관리 두 사람, 국방부 관리 한 사람이었다. 그들 다섯 관리는 사절단이나 협상단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백악관이나 국무부에서는 그들 다섯 관리들을 통칭하는 집체적 명칭을 명시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그들은 특사방문단이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은 대통령 친서를 전하는 임무를 맡은 특사방문단이었다.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대로, 2박3일 동안 평양에 머물렀던 특사방문단은 2009년 12월 10일 미국군 수송기편으로 서해직항로를 거쳐 낮 12시 42분 오산 공군기지에 내렸다. 특사방문단이 2박3일 동안 평양에 머물면서 진행한 북미회담은 어떠하였을까?

과거사 덮어두고 미래전망 논한 북미회담

특사방문단 방북활동에서 궁금한 것은, 회담분위기가 어떠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보스워즈 특사는 2009년 12월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특사방문단 활동내역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하면서 “특히 분위기는 매우 무미건조하고 사무적이었고, 열띤 과장어법은 별반 없었다(The atmosphere, in particular, was very matter-of-fact, very businesslike. There was not a lot of heated rhetoric)”고 밝혔다. 보스워즈 특사의 그러한 발언에 따르면, 양측은 논쟁을 벌이지 않고 실무적으로 회담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2월 11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특사방문단 평양 내방과 관련하여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해 “실무적이고 솔직한 론의를”진행하였다고 답하였다.

그러면 회담을 마친 뒤에 북미 양측은 그 회담을 각각 어떻게 평하였을까? 2009년 12월 10일 백악관 2층에 있는 조약실(Treaty Room)에서 미국-크로아티아 외무장관 회담이 열린 직후, 양국 외무장관 합동기자회견이 진행되었는데, 클린턴 국무장관은 보스워즈 특사가 서울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쓰려고 작성한 기록(transcript)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보스워즈를 뜻함)가 매우 유익한 대화를 하였다는 것, 그리고 우리 정부를 대표하여 평양에서 북측 사람들과 첫 공식회합을 가진 것은, 매우 특징적인 일(very fair characterization)이라고 생각한다. (줄임) 예비회동(preliminary meeting)으로서는 아주 긍정적(quite positive)이었다고 본다.” 대통령 특사를 단장으로 한 방문단이 진행한 첫 북미회담에 대해 국무장관이 “아주 긍정적이었다”고 평하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그러한 긍정적 평가는 보스워즈 특사의 방북결과 보고에 기초한 것인데, 보스워즈 특사는 2009년 12월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두발언을 통해 “내가 서울에서나 (워싱턴 디씨로) 돌아오는 길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이번 회담이 아주 긍정적(quite positive)이었음을 알았다”고 밝힌 바 있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보스워즈 특사의 방북보고에 기초하여 이번 북미회담을 긍정적으로 평한 것은, 북미 양측이 그 회담에서 어떤 합의에 이르렀음을 내비치는 발언으로 들린다. 보스워즈 특사는 2009년 12월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두발언을 통해 “존재하는 차이는 분명하였으나, 우리의 견해가 아주 비슷한 어떤 분야에서는 수렴을 확정하였으니 이 또한 중요하였다(The differences that exist were clear, but it also was important that we establish some areas of convergence where our views were quite similar)”고 밝혔다.

2009년 12월 11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특사방문단 평양 내방과 관련하여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해 “쌍방은 호상리해를 깊이 하였으며 서로의 견해 상 차이를 좁히고 공통점들도 적지 않게 찾게 되었다”고 답하였다. 보스워즈 특사는 양측의 견해가 수렴되었다는 표현을 썼고,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견해 차이를 좁히고 공통점을 찾았다는 표현을 썼다. 합의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외교적 표현들이다.

그렇다면 북미 양측은 구체적으로 어떤 합의에 이르렀을까? 우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한 6자회담 재개문제에 대해 어떤 합의점을 찾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보스워즈 특사는 2009년 12월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특히 6자회담 과정의 중요성과 2005년 9월의 공동성명 원칙의 중요한 역할을 그들(북측을 뜻함)이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아주 근본적인 진전(very substantial progress)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우리 모두는 협상탁자에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언제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는 내가 지금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클린턴 국무장관은 2009년 12월 10일 백악관에서 미국-크로아티아 외무장관 회담이 열린 직후 열린 양국 외무장관 합동기자회견에서 “북측 사람들이 과연 6자회담에 돌아올 것인지, 언제쯤 돌아올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하겠으나, 최저점은 그것이 협상이 아니라 탐색회담(exploratory talks)이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6자회담 재개문제와 관련하여,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2009년 12월 11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특사방문단 평양 내방에 대해 제기한 물음을 받고,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과 9.19공동성명 리행의 중요성과 관련하여서도 일련의 공동인식이 이룩되였다”고 답하였다.

위의 세 가지 발언을 종합해보면, 이번 북미회담에서 북측은 6자회담 재개를 약속한 것이 아니라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인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는 말은, 북측이 일방적으로 참석거부를 선언한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식의 다자회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국무부도 북측이 다른 형식의 다자회담을 제안할 가능성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 12월 11일자 관련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12월 10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들은 아직 (6자회담 복귀에 대해) 예스(Yes)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서, “북측이 전화를 통해 ‘좋다. (6자회담을) 시작하자’고 얘기할 수도 있고, ‘다른 대화가 필요하다’고 전화로 얘기할 수도 있다”면서 “우리는 이들 두 가능성에 모두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번 북미회담에서 받아내려고 하였던 것은 북측의 6자회담 복귀약속이었는데, 위의 발언을 보면 북측의 6자회담 복귀약속을 받아내려고 한 그들의 노력은 실패하였음이 확실해 보인다.

북측의 6자회담 복귀약속을 받아내려던 그들의 노력이 실패하였다면, 미국은 이번 북미회담에서 어떤 다른 성과를 얻었기에 클린턴 국무장관이나 보스워즈 특사가 그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한 것일까? 그들의 긍정적 평가는, 북측의 6자회담 복귀문제가 아닌 어떤 다른 문제에 대해 북미 양측이 견해 차이를 좁히고 상호접근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북미 양측이 견해 차이를 좁히고 상호접근한 문제는 어떤 것일까?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보스워즈 특사의 발언이다. 그는 2009년 12월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두발언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검토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데, 나는 과거에 대한 각이한 견해들을 조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였다고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앞을 내다보려고 하였다(So we’ve been trying to be very forward-looking)”고 밝혔다. 과거사를 덮어두고 미래전망을 논의하였다는 뜻이다.

근본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를 좁힌 북미회담

보스워즈 특사가 말한 것처럼, 북미회담에서 양측이 견해 차이를 좁히고 상호접근한 미래전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는 미래전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말을 아꼈지만, 그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준 것은 북측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이다. 2009년 12월 11일 외무성 대변인은 특사방문단 평양 내방과 관련하여 <조선중앙통신사>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고, “상봉과 회담에서 쌍방은 평화협정체결과 관계정상화, 경제 및 에네르기 협조, 조선반도 비핵화 등 광범위한 문제들을 장시간에 걸쳐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론의하였다”고 답하였다.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에 따르면, 이번 북미회담에서 논의한 미래전망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 경제분야 및 에너지분야에서 협조하는 문제,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문제다. 이 네 가지 문제를 통칭하여 한반도 근본문제라 한다. 미국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2009년 12월 10일 <연합뉴스> 기자에게 “그들은 많은 이슈(쟁점)들을 제기했고, 많은 시간을 그들의 우려와 불평을 표출하는 데 썼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북측이 이번 북미회담에서 한반도 근본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그 해결책을 논하였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이번 북미회담에 대한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북미 양측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논의하면서 견해 차이를 좁혔음을 알 수 있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열거한 네 가지 근본문제들 가운데서 특히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문제에 보도초점을 집중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첫째, 보스워즈 특사는 특사방문단 활동내역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진전을 보았음을 내세웠다. 2009년 12월 16일 보스워즈 특사는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평화조약(peace treaty)이라는 새로운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약속은 6자회담 참가자들이 2005년 9월에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줄임) 특히 우리는 평화조약 협상과 기타 문제들을 진전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들에 대해 논의하였다(We talked specifically about what kind of conditions would be necessary to move into a peace treaty negotiation, et cetera)”고 말했다. 또한 그는 “명백하게도, 평화조약 협상에는 네 나라만 직접 참가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모든 관련당사자들이 잘 양해하는 것이다(Obviously, only four of the countries would be directly involved in a peace treaty negotiation, and that’s well understood by all parties)”고 말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연합뉴스> 2009년 12월 13일자 관련보도에 따르면, 남측 정부의 한 소식통은 “평화협정 논의를 북미 대화가 아닌 4개국 간 대화에서 하자고 한 것은 북한이며, 미국이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북측이 6자회담 구도를 4자회담 구도로 좁혀놓았다는 뜻이며, 북미 공동코뮈니케에 명시되었으나 부쉬 정부가 외면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북측이 9년 만에 다시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뜻이다.

2009년 11월 23일 기자회견에서 이언 켈리(Ian C. Kelly) 국무부 대변인은 북측이 북미회담을 앞두고 <로동신문>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계 수립을 촉구한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보스워즈 특사가 평양에 가더라도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논의하지는 않을 것이고 6자회담 재개문제만 논의할 것이라는 예견발언을 했고, 당시 언론매체들이 내놓은 예상보도도 대체로 그와 같은 논조를 반복하였으나, 그러한 예견발언과 예상보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둘째, 이번 북미회담이 열리기 직전, 북측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함을 강조하였다. 이를테면, 미국 대외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한반도 정책 실무단을 이끌고 2009년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한미경제연구소(Korea Economic Institute)의 잭 프릿처드(Charles L. Pritchard) 소장이 12월 8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2009년 12월 9일자 관련보도에 따르면, 프릿처드 소장은 “(보즈워스 특사가 방북하여 열리게 될) 이번 첫 대화로 북한이 6자회담 복귀에 동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돌파구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북한은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를 강요할 것이며, 이를 여러 차례의 회담으로 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릿처드 소장에 따르면,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은 방북한 미국인들에게 “북미 간의 관계를 지배할 법적으로 유효한 국제문서인 평화협정 없이는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고 하면서 “6자회담 복귀를 위해서는 평화체제를 먼저 결론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프릿처드 소장에 따르면, 리근 국장만이 아니라 다른 북측 당국자들도 방북한 미국인들에게 “보즈워스 대표가 북한에 와서 단순히 6자회담 복귀만을 말할 경우 정말 그것은 시간낭비가 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말했다”고 한다. 2009년 12월 3일 <요미우리신붕>은 리근 국장이 평양을 방문한 프리처드 소장에게 “미국이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을 확약하면 북측은 핵폐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2009년 12월 16일 보스워즈 특사가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다른 대목을 살펴보면, 이번 북미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문제만을 중점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기자회견에서 보스워즈 특사는 “평양 토론에서 우리들은, 북측이 비핵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조건으로 두 나라가 맺게 될 양자관계에 관해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장관의 의사를 인용하는 것을 포함한 현 정부의 견해를 그들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윤곽을 제시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내가 북측 지도부에게 직접 전한 것은, 북측이 비핵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준비를 갖추는 조건에서, 현재나 과거와 크게 다른 미래에 대한 전망(vision), 그리고 우리의 양자관계를 개선하는 방도들과 동북아시아에서 북측의 전반적인 관계를 개선하는 방도들(ways in which we could improve both our bilateral relationship and improve North Korea’s overall relationships within Northeast Asia)이었다”고 말하였다. 이 발언은, 이번 북미회담에서 양측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문제보다도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면서 견해 차이를 좁히고 상호접근하였음을 말해준다.

양측이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에 대해 견해 차이를 좁혔다고 해도, 물론 완전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아니다. 한 차례 회담으로 완전합의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9년 12월 11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특사방문단 평양 내방과 관련하여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해 “조미쌍방은 남아있는 차이점들을 마저 좁히기 위하여 앞으로 계속 협력하기로 하였다”고 답하였다.

그렇다면, 이번 북미회담에서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와 관련하여 양측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견해 차이를 좁히고 상호접근한 것일까? 위에서 지적한 대로, 특사방문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므로, 특사방문단은 대통령 친서에 의거하여 북미관계 정상화 문제를 논의하였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 친서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에 대해 북측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된다.

한반도 안보정세 변화를 예고한 친서전달

<연합뉴스> 2009년 12월 13일자 관련보도에 따르면, 보스워즈 특사는 12월 9일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한 차례 2시간 동안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하였다고 한다. 친서전달을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은, "정보 소식통"을 인용한 <통일뉴스>와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한 <자유아시아방송> 2009년 12월 11일자 관련기사였는데, 미국 주요언론매체인 <워싱턴 포스트>가 친서전달을 보도한 때는 상당히 뒤늦은 12월 16일이었고,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 이튿날이 되어서야 친서전달을 보도하였다.

각국 언론매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국제사회에 궁금증을 안겨준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와 관련하여 언론을 상대로 발언할 수 있는 미국 정부 관리는 백악관 대변인과 대통령 특사 두 사람이다. 그런데 <워싱턴 포스트> 2009년 12월 16일자 관련보도에 따르면, 마이크 해머(Mike Hammer)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사적인 외교서신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는다(We do not comment on private diplomatic correspondence)”고 하면서 침묵을 지켰다. 친서를 전한 보스워즈 특사는, 친서에 대해 논평하기를 거부한 해머 대변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친서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언급을 회피하였다. <연합뉴스> 2009년 12월 13일자 관련보도에 따르면, 남측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보즈워스 대표가 친서와 관련해 우리에게 얘기한 게 없다”고 말했고, 다른 당국자는 “방북시 친서를 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친서를 전하였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을 받을 때마다, 보스워즈 특사는 그 물음을 비껴갔다. 방북 직후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그러하였지만, 2009년 12월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내가 한 발언이 뜻하는 바는 내가 친서이고 내가 친서였다는 것이다(What it means when I say, I am the message or I was the message)”고 말하면서 친서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였다. 이처럼 백악관 대변인과 대통령 특사가 친서에 대해 언급을 회피한 까닭은, 언론에 공개할 수 없는 중대한 내용이 친서에 들어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백악관에서 평양까지 들고 갔던 사람은 보스워즈 특사가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니얼 러셀 국장이었으므로, 보스워즈 특사는 방북 직전에 러셀 국장으로부터 친서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스워즈 특사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실 러셀 국장도 대통령 친서를 읽어볼 위치에 있지 않다. 친서전달자에게는 친서를 읽어볼 권한이 없다. 대통령 친서에 무슨 내용이 담겨졌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친서 문안을 직접 작성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제프리 베이더(Jeffrey A. Bader) 아시아국장이다.

베이더 국장이 문안을 작성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채택하고 대통령이 친필로 서명한 대통령 친서에는 한반도 근본문제의 포괄적 해결방안이 담겨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근본문제의 포괄적 해결방안이란, 이번 북미회담에서 북미 양측이 견해 차이를 좁히고 상호접근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경제분야 및 에너지분야에서의 협조를 실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북미 양측이 한반도 근본문제를 일괄타결 방식으로 합의하고, 순차적으로 실현해나가는 과제다.

이번 북미회담에서 양측은, 이 네 가지 실현목표를 어떤 시간순서로 배열하여 추진하느냐 하는 이행문제에 대해서만 견해 차이를 보였을 뿐이며, 그 네 가지 실현목표를 추구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것이 이번 북미회담에서 이룩한 성과다.

보스워즈 특사는 평양을 떠나 오산 공군기지에 돌아오자마자 그 기지의 특수통신시설을 이용해 워싱턴 디씨로 전화를 걸어 방북결과에 대해 긴급히 보고하였다. 그의 긴급보고를 받은 사람은 그의 직속상관인 클린턴 국무장관이었다. 그런데 대니얼 러셀 과장은 특사방문단의 다른 세 관리들과 함께 자기들이 타고 온 미국군 수송기를 타고 워싱턴 디씨로 곧장 날아갔다. 보스워즈 특사가 서울(12월 10일), 베이징(12월 11일), 도쿄(12월 12일), 모스크바(12월 13일)를 돌면서 방북활동내역을 설명하고 나서 12월 15일에야 워싱턴 디씨로 돌아간 순회일정을 이어가는 동안에, 워싱턴 디씨에 일찍 돌아간 러셀 과장은 베이더 국장에게 방북활동내역을 보고하였고, 베이더 국장은 자신이 작성한 북미회담 보고서를 들고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하였을 것이다.

이번 북미회담이 남겨놓은 과제는 2010년 초에 두 번째 북미회담을 개최하는 것이다. 두 번째 북미회담을 언제, 어디서, 어떤 형식으로 개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북미관계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근본문제의 해결방도를 논하게 될 두 번째 북미회담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특사방문단에게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두 번째 북미회담 개최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번 북미회담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 북미회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예견할 수 있다.

첫 번째 북미회담이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특사방문단의 평양 방문으로 성사되었으니, 두 번째 북미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특사방문단의 워싱턴 디씨 방문으로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북미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비핵화, 경제분야 및 에너지분야에서의 협조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나올 것이다.

시간적 순서를 배열해야 하는 당면과제를 생각해보면, 북측과 미국이 중심이 되고 남측과 중국이 동참하는 4자 평화회담이 개최되고, 4자 외무장관들이 참석한 평화협정 조인식이 거행되고, 그에 상응하여 북측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정세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북측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는, 북측이 이번 북미회담에서 재확인한 4자 평화회담 개최문제에 미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호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4자 평화회담이 열리기만 하면, 4자 외무장관이 참석한 평화협정 조인식을 판문점 또는 북미 양측이 합의한 장소에서 거행하는 문제가 급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측의 핵무기 개발중단은 동시에 이행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측의 핵무기 개발중단은 북측이 사실상 주도하는 과정인데, 2010년 상반기에 그 진전과정을 측면에서 촉진할 요인이 두 가지나 마련되어 있다. 한 가지 촉진요인은, 44개 나라 정상들이 참가한 가운데 2010년 4월 12일과 13일 워싱턴 디씨에서 개최될, 이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핵안보 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다. 다른 촉진요인은 2010년 5월 3일부터 28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5년마다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제8차 회의다. 핵안보 정상회의와 핵확산금지조약 평가회의를 주도하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의 핵무기 개발중단이라는 성과를 내오기 위해서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북측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공식적으로 청산하는 것은, 북측 국방위원회의 고위급 인사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고, 그에 상응하여 클린턴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을 부쩍 앞당겨줄 것이다. 한반도 근본문제를 담판으로 해결할 북미 정상회담 개최, 다시 말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포괄적 해결’이라고 표현한 과제를 실현하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북미 양측 고위관리들의 상호방문이 성사된 뒤에 오바마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실현될 것이다. (2009년 12월 28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