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실무방문, 이상한 정상회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이상한 한미 정상회담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미국 대통령이 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그의 싱가포르 방문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는 국빈방문(state visit)에 준하는 의전격식을 갖춰 3박4일 동안 중국을 방문하였다. 중국 언론매체들은 그의 중국 방문을 국빈방문으로 보도하였다. 국빈방문 일정에는 정상회담 이외에 21발 예포를 발사하는 의장대 사열, 국립묘지 헌화, 국회방문, 국빈만찬, 공연관람, 고궁관람 등이 포함된다. 이와 같은 의전절차가 생략되고 정상회담과 국빈만찬 정도만 진행하는 것이 공식방문이다. 일본 방문은 공식방문(official visit)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 방문은 21시간 머물다 떠난, 격이 가장 낮은 실무방문(working visit)이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자기 임기 중에 처음 방한할 때는 국빈방문 격식을 갖추었던 것이 관례다. 이를테면, 1983년 11월 14일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 대통령의 임기 중 첫 방한, 1992년 1월 6일 조지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의 임기 중 첫 방한, 1993년 7월 10일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대통령의 임기 중 첫 방한, 2002년 2월 20일 조지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의 임기 중 첫 방한은 모두 국빈방문이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그 관례를 깼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중 첫 방한을 국빈방문은커녕 공식방문도 아니고 가장 격이 낮은 실무방문으로 정하였으며, 그것도 형식적인 정상회담만 하고 떠났다. 한중일 연속방문을 모두 국빈방문으로 할 수는 없었다 해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국 방문을 공식방문도 아닌 실무방문으로 격을 낮추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알맹이 없는 정상회담을 하였다. 아래와 같은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아프가니스탄에 한국군을 재파병하는 문제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이명박 정부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요구에 따라 자발적으로 재파병하겠다고 먼저 발표하였으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그 문제를 재론할 필요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요구에 따라 재파병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강대국에게 굽신거리는 ‘조공외교’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옛날 조정에서 조선 토산물인 말(軍馬)을 명나라 황제에게 예물로 조공(朝貢)하고, 명나라 황제는 조선의 봉건지배층이 좋아할 사치품인 비단을 회사(回賜)하였던 과거사가 오늘날 한미관계에서 표현방식과 추진방식만 달라진 채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오바마 대통령이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에 대통령 특사로 보내 북미 양자회담을 재개하는 문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국무장관은 보스워즈 특사를 곧 평양에 파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셋째,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그나마 다룰 의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의제였을 것이다. 이에 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09년 11월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미 의회의 FTA 비준과 관련해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우리 바람을 다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충분히 이해하겠다고 했고, 노력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상회담 직후에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자동차에서 문제가 있다면 다시 얘기할 자세가 돼 있다. (줄임) 미국하고 자동차 문제가 있다면 다시 이해를 해보려고 얘기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처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재협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불쑥 꺼낸 까닭은, 오바마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자동차 무역의 불균형을 지적하면서 재협상을 요구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바람에 펄럭이는 등불처럼 파산위기에 빠졌으므로, 백악관이 연방의회로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요구를 이전보다 더 거세게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아니나 다를까,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된 2009년 11월 19일, 한국의 불공정한 자동차 무역관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미국 연방하원에 제출되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관련하여 이러한 강경분위기가 워싱턴 디씨에서 조성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공동기자회견에서 재협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불쑥 꺼낸 것은,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굴복하겠다고 암시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의제 없는 회담이었다. 의제가 없었으니 논의도 없었고, 논의가 없었으니 합의가 나올 리 없었다. 중대현안을 논의하고 합의해야 하는 긴장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이명박-오바마 회담은, 정상회담(summit talks)이 아니라 정상환담(summit chat)이었다는 비판을 면할 길 없다. 그렇게 평하는 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공동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나는 한국 문화와 음식을 좋아한다. 오늘 오찬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모두발언을 마쳤다. 그는 소풍 나온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어떤 중대현안에 대해 말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회견장을 가득 메웠던 내외신 기자들에게 오찬에서 먹어보게 될 맛있는 한국 음식이 기다려진다고 말한 것은, 미국인들이 공식석상에서 드러내곤 하는 자유분망한 기질이 발동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상회담을 알맹이 없는 환담으로 진행하게 되었음을 은연 중에 드러낸 것이다.

둘째,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오전 11시 15분에 시작한 단독회담은 낮 12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35분 동안 단독회담을 하고 나서 양측 고위관리들과 함께 확대회담을 하려고 예정하였는데, 확대회담은 하지 않았다. 확대회담을 하지 않은 까닭은, 논의가 매우 진지해진 단독회담이 예정시간을 넘겨 계속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확대회담에서 논의할 의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통일뉴스> 2009년 11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75분 동안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정세에 관한 얘기를 중심으로” 말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명색이 정상회담인데, 오바마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의제가 오죽 없었으면 아시아 정세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그처럼 길게 늘어놓았겠는가.

셋째, 중국을 방문할 때까지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방한하지 않고 베이징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떠났다. 오바마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날, 클린턴 국무장관은 재선된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였다. 외교사령탑인 국무장관이 대통령을 수행하여 방한하지 않고 다른 나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서 논의할 의제가 없었음을 말해준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첫 방한을 성의 없게 진행한 것으로 봐서, 그가 국빈방문으로 서울을 다시 찾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는 국빈으로 방한하지 않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왜 서울공항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에 서울공항이 있다. 한국 공군이 관할하는 서울공항은 대통령이나 고위관리가 드나드는 의전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공항이 건설된 뒤로,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은 그곳을 이용하여 이 땅에 드나들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서울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공군이 주둔해있는 오산기지를 이용하였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오산기지를 통해 이 땅을 드나든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이다. 1983년 11월 14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김포공항을 이용하였고, 그 이후에 방한한 미국 대통령들은 모두 서울공항을 이용하였다.

만일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때 하네다(羽田)공항을 이용하지 않고 주일미국군 공군이 주둔해있는 요코다(橫田)기지를 이용했다면 일본 정부와 국민이 가만히 있었을까? 정상적인 외교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도, 친미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청와대, 국회, 언론매체들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산기지를 이용한 것은 의전관례를 무시한 행동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다르게 오바마 대통령은 왜 정상적인 외교관례를 벗어난 이상행동을 보였을까 하는 것이다. 이상행동을 보인 원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는 경우, 주한미국군사령관을 만나서 군사정세를 보고받는 것은 관례다. 그런데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을 만났다는 언론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병사들을 만나면서도 그들의 사령관을 만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그는 분명히 주한미국군사령관을 만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주한미국군사령관과 고위급 주둔군 지휘관들을 언제 만났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짧은 체류일정을 정리하면 이렇다. 그가 탄 전용기가 베이징 서두우(首都)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산기지에 내린 때는 오후 7시 45분께였고, 그곳에서 한국군 의장대 사열을 마친 뒤 서울로 향했다. 그는 서울에 있는 그랜드 하이야트 호텔(Grand Hyatte Seoul)에서 하룻밤 묵었다. 서울에서 하룻밤을 잔 오바마 대통령은 이튿날 오전 시간에 주한미국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자기가 묵은 호텔로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청와대로 가서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오찬을 하였다. 그가 오산기지에 도착한 때는 오후 3시 40분께였다. 그는 오산기지에서 주한미국군 병사들에게 연설한 뒤, 오후 4시 6분께 전용기를 타고 귀로에 올랐다.

위의 짧은 체류일정을 살펴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오산기지에서 한국군 의장대 사열을 마친 뒤 서울로 출발하기 직전에 주한미국군사령관과 고위급 주둔군 지휘관들을 잠깐 만났던 것으로 보인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다르게, 오바마 대통령은 용산기지에 있는 주한미국군사령부를 방문하여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기회를 갖지 않은 것이다. 평양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는 민감한 시점에, 만일 오바마 대통령이 용산기지를 방문하여 주한미국군사령관과 고위급 주둔군 지휘관들을 만났다면, 북측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였을 것이다. 바로 그 점을 생각하여, 오바마 대통령은 주한미국군사령관과 고위급 주둔군 지휘관들을 오산기지에서 잠깐 만나 격려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방한에서 북측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였음을 말해주는 또 다른 사실은, 그가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다르게 비무장지대(DMZ)를 시찰하지 않은 최초 사례를 남겼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를테면, 1983년 11월 14일에 방한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중부전선 최전방 미국군기지에 가서 “미국 국민들은 여러분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귀국하면 그것을 알려줄 작정”이라고 말했다. 1992년 1월 6일에 방한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비무장지대 부근에 있는 미국군 전방관측소에 가서 “우리 군대의 능력과 의지에 의문을 품는 자들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북측을 협박하였다. 1993년 7월 10일에 방한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들어가 군사분계선 45m까지 접근하여 “북측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지구 위에서 사라질 것이다”고 위협공갈하였다. 2002년 2월 20일에 방한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700m 떨어진 도라산역에 가서 “오늘날 지뢰밭과 철책선을 넘어 자유의 불빛은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21시간 실무방문은 그에게 역대 미국 대통령의 관례에 따라 비무장지대를 찾아갈 시간을 주지 않았다.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내기로 하였으니, 북측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왜 청와대에서 특사파견 발언을 하였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미국은 스티븐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12월 8일에 북한에 보내 양자대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통일뉴스> 2009년 11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스워즈 특별대표 방북에 관해 “오늘 발표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므로, 그를 평양에 보내는 문제는 국무부가 아니라 백악관에서 언론에 밝혀야 한다. 백악관 대변인이 백악관 기자회견실에서 특사파견을 발표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것도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청와대에서 발표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행동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통령 특사파견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009년 11월 10일 대청도 앞바다에서 남북 해군이 충돌한 포격사건이 일어났을 때,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포격사건은 특사파견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해명발언을 한 것만 봐도, 그들이 특사파견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1999년 5월 25일 클린턴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간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 대북정책조정관은 북미관계 정상화에 관한 ‘권고안’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2002년 10월 3일 부시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간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 국무부 차관보는 제네바 기본합의를 파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2009년 12월 8일 오바마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갈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무슨 임무를 수행하게 될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방북 대표단은 특사를 포함하여 4-5명으로 단출하게 꾸려질 것이며, 평양에서 1박2일 동안 머물 것이라고 한다. 대표단 구성이 단출하고 체류일정이 짧은 것은, 정치현안을 협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사를 상호표명하려는 것임을 말해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통령 특사파견을 중시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보스워즈 특사의 임무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사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보스워즈 특사는 2009년 8월 4일 평양을 전격방문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사표시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응답을 전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한다고 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담판 형식으로 한반도 근본문제를 일괄타결하자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면, 그들이 애타게 고대해온 핵포기 의사를 표명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던 것으로 보인다.

핵포기 의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표명할 수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에서만 핵포기 의사를 표명할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 사이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이루어진 핵문제에 관한 은밀한 의사소통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언론매체들은 북측에게 과연 핵무기를 포기하려는 의사가 있는지 알기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핵포기 의사를 표명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의사표명이다. 비공식적인 의사표명 이후에 요구되는 것은 공식적인 상호의사표명이다.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특사를 평양에 보내는 목적은, 특사외교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전달받기 위함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핵포기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전달받으려면, 그에 상응해서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는 의사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공식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지 않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포기 의사를 전달받을 길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는 문제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포기 의사를 표명하는 문제는 완전히 맞물린 것이다.

2009년 11월 17일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데이빗 스트롭(David Straub) 부소장은 서울 방문 중에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말했다. 그는 2002년 10월 3일부터 5일까지 부시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와 함께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했던 경험을 회고하면서, 그 해 10월 4일 평양에서 열린 강석주-켈리 회담에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담판으로 해결 가능하다. 최고지도자급 회담으로도 해결될 수 있겠지”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평양에 가서 우라늄 농축문제를 물고 늘어져 제네바 기본합의를 파탄시키고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고 방북한 켈리 일행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담판을 벌여 한반도 근본문제를 일괄타결할 수 있다는 강석주 제1부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향해 입에 올리기 힘든 모욕적인 언사를 토하며 북미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간 장본인이 바로 부시 대통령이었건만, 그러한 그를 만나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대범한 뜻을 지녔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늘 오바마 대통령과 왜 만나려고 하지 않겠으며, 방한 중에 북측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행동한 오바마 대통령이 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없겠는가.

사정이 이러한데도, 언론매체들은 보스워즈 특사의 파견목적이 북측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오보에 열중하고 있다. <아사히신붕(朝日新聞)> 2009년 11월 1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게 보스워즈 특사의 방북을 설명할 때, 특사방북이 6자회담 틀 안에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북측은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2009년 10월 중에 미국에게 전했다고 한다. 북측으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얻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명박 정부와 하토야마 정부에게 6자회담 틀 안에서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는 것이니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어디까지나 북측의 양해를 받아 표현방식을 조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북미관계에서 전개되는 현실은 그러한 설명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와 하토야마 정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설명을 듣고서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자기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6자회담 틀을 벗어나 북측 국방위원회를 직접 상대하면서 혹시 자기들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합의를 내오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불안한 눈길이 쏠릴 지점은, 보스워즈 특사가 평양에 들고 갈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다. 오바마 대통령이 보스워즈 특사를 통해 자신의 친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으로 보내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평양에 간 보스워즈 특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강석주 제1부상을 통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할 것이다.

예상컨대,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포기 의사를 표명하는 것에 상응하여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한다는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만일 오바마 대통령이 친서에서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면, 보스워즈 특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을 것이며, 접견석상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국빈방문으로 평양에 오면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핵포기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북측에서 발간된 문헌들에 나타나있는 것처럼,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외부인사들이 말한 것처럼, 그는 우물우물하거나 쪼물거리는 행동을 무척 싫어하고 언제나 시원시원하고 대범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그의 응답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2+2 회의 개최합의는 ‘깜짝선물’이 아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한미 외교장관과 국방장관이 한미동맹에 관해 협의하는 이른바 2+2 회의를 2010년에 열기로 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6.25전쟁이 일어난지 60년이 되는 2010년에 포괄적인 한미 안보회의를 여는 것이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도쿄신붕(東京新聞)> 2009년 7월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일 안보조약 개정 50주년이 되는 2010년을 앞두고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마련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커트 캠벨(Kurt Campbell)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도쿄를 방문하여 7월 16일에 회담하였다고 한다. 일본은 벌써 7월 16일에 회담을 시작하였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제서야 허둥지둥 일본의 뒤를 따라가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2+2 회의를 추진하려는 것은 미일 외교장관과 국방장관이 함께 만나는 미일 안보협의위원회(U.S.-Japan Security Consultative Committee)를 모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일 안보협의위원회는 1997년 9월 23일에 첫 회의를 연 뒤로 2000년 9월 11일, 2002년 12월 16일, 2005년 2월 19일과 10월 29일, 2006년 5월 1일, 2007년 5월 1일에 회의를 열었다.

언론매체들은, 내년에 2+2 회의를 개최하기로 한미 정상이 합의한 것이 2009년 6월 16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한미동맹 공동비전(Joint Vision for the Alliance of ROK and USA)’을 구체화한 성과라고 보았다. 그러나 <동아일보> 2009년 11월 21일자 관련기사에 드러난 내막을 살펴보면 그러한 인식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알 수 있다. 관련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2+2 회의를 추진하자는 한국 측 제안에 대해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도 전적으로 동의하며 미 국무부와 국방부에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을 요청하는 보고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상회담을 열흘 앞두고 미국은 긍정적인 사인을 보내왔고, 대니얼 러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16일 서울을 방문해 이에 대한 본격적인 발표문안 조정작업을 가져 성사됐다.”

이 관련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2+2 회의 개최문제를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 제안하였고, 그 제안을 받은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국군사령부가 각각 국무부와 국방부에게 보고한 것이다. 청와대 국가안보회의가 2+2 회의 개최문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제안하는 것이 정상인데, 왜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 의존하였을까? 그 까닭은, 청와대 국가안보회의가 2+2 회의 개최문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직접 제안하면 그 제안이 묵살될 것으로 우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2 회의 개최문제를 외면하고 있었다.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국군사령부로부터 2+2 회의 개최문제를 보고받은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가 그 안건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올린 때가 정확히 어느 날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의 2+2 회의 개최요청을 승인한 때는 2009년 11월 초였던 것으로 보이고,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자기들이 올린 요청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승인하였다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에게 통보해준 때는, 위의 관련기사에 따르면, 2009년 11월 9일이다. 제프리 베이더(Jeffrey A. Bader)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이 급파한 대니얼 러셀(Daniel A. Russell)은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사흘 전인 11월 16일에 부랴부랴 서울에 가서 청와대 관리들을 만나 발표문안을 조율하였다. 대니얼 러셀은 제프리 베이더 아시아담당 선임국장 밑에서 일하는 일본/한국 담당과장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막판에 급히 서두르면서 2+2 회의 개최요청을 승인한 행동은, 2+2 회의 개최문제를 생각하지 않다가 어떤 계기에 갑자기 그에 대한 요구를 느끼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아무런 성과 없이 진행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안겨줄 ‘깜짝선물(surprise gift)’로 2+2 회의 개최문제를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2+2 회의 개최문제에 관심이 없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어떤 계기에 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내는 결정을 내리면서 2+2 회의를 개최할 필요를 느낀 것은 아닐까?

주목하는 것은, 미일관계에서 진행한 2+2 회의에서 주일미국군 재배치문제를 주의제로 다루어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2005년 2월 19일과 10월 29일에 열린 미일 2+2 회의에서 주일미국군 재배치문제를 합의하였고, 2006년 5월 1일에 열린 미일 2+2 회의에서는 ‘재조정 이행을 위한 미일 구상도(U.S.-Japan Roadmap for Realignment Inplementation)’라는 제목의 합의문을 채택하였고, 그 이후 그 합의문에 따라 재배치 합의를 이행해왔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내년에 열릴 한미 2+2 회의가 주한미국군 재배치문제를 논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한미국군 재배치라는 개념이 동두천에서 평택으로 후방배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반도 밖으로 해외배치한다는 뜻이라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산기지에서 주한미국군 배치문제를 내비친 암시발언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암시발언에는 무슨 뜻이 들어있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1월 19일 오후 3시 40분께 오산기지에 도착하여, 1,500명 미국군 병사들 앞에서 16분 동안 연설하였다. 미국군 언론매체인 <성조(Stars and Stripes)>는 2009년 11월 21일 “오바마, 오산에서 배치문제 거론하다(At Osan, Obama Talks About Deployments)”는 제목의 오산기지발 기사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연설대목을 이렇게 전하였다. “장병 여러분들은 고생길로 들어서는 것을 알면서 전시에 자원복무를 택하였다.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이라크에서 복무하였고, 어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였다. 그리고 여러분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제 다시 배치될 것이다(...other among you will deploy yet again).” <성조> 기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배치를 암시하는 말을 꺼낸 순간에 갑자기 썰렁해진 현장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그의 연설 마디마디에 환호성을 지르며 갈채를 보내던 미국군 병사들은 자기들이 재배치된다는 소리에 조용해졌고, 서너 명만 ‘옳소’ 라고 외쳤다고 썼다.

주한미국군이 영구히 이 땅에 남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병사 1,500명 앞에서 해외 재배치문제를 암시한 발언을 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철렁하겠지만,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오래 전에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제시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을 한반도 이외의 다른 나라에 차출하는 방식으로 재배치하는 문제를 검토한 것은 어제오늘에 있는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한미 안보협의회(SCM) 제41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마이클 멀린(Michael Mullen) 미국군 합참의장은 2009년 10월 22일 주한미국군사령부에서 미국군 병사 수백 명에게 연설한 뒤 질의응답 순서에서 주한미국군 차출과 재배치에 관해 말했다. <성조> 2009년 10월 24일자 기사는 멀린 합참의장이 그 현장에서 한 말을 보도하면서, 그가 “지금 펜타곤은 주한미국군을 중동지역에 몇 해 안에 배치할 것인지 토의하는 중이다(Pentagon is discussing whether troops will deploy from South Korea to the Middle East in coming years). 이것은 우리가 매우 명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That’s something we’re looking very specifically at)”고 말했다고 썼다.

그보다 약 반년 앞서, 군사문제를 다루는 미국 언론인 리처드 핼로런(Richard Halloran)은 2009년 3월 5일 <워싱턴 타임스>에 기고한 평택발 기사에서, 평택기지가 아시아 분쟁지역에 파견될 원정군 기지로 건설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만일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면, 이 현대적인 기지는 남측이 물려받게 될 것(If the United States ever decides to withdraw those forces, the South Koreans will inherit the modern base)”이라고 썼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요구할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장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처리할 방도는, 북측과 미국이 맺은 밀약에 따른 철군을 ‘명예로운 철군’으로 보이게 꾸미는 것이다. 그들에게 ‘명예로운 철군’은,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으로 주한미국군을 차출하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주한미국군을 아프가니스탄 군사점령에 차출하지 않고 미국 본토로 철수해야 마땅하지만, 미국 본토로 철수하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퇴각으로 보일 것이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본토철수 대신 해외차출을 택할 것이다.

2010년에 열릴 2+2 회의에서는 주한미국군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차출, 재배치하는 문제를 결정하게 될 것이고, 2010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주한미국군의 단계적 전면철군을 밀약한 비밀문서를 채택하게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2+2 회의 결정에 따라 주한미국군을 세 단계로 나눠서 차출, 재배치하면, 2만8,500명을 ‘명예롭게’ 철군할 수 있을 것이다.

명백하게도, 핵포기와 철군은 북측과 미국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지점이다. 북측과 미국은 그 마지막 지점으로 가는 길에 바야흐로 들어선 것이다. (2009년 11월 23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