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격돌 이후 조용한 진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제프리 베이더 국장의 기조연설에 담긴 뜻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미국 대통령은 2009년 11월 13일부터 19일까지 동아시아를 순방하는 일정을 앞두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전후하여 도쿄, 베이징, 서울 순으로 순방하면서 각각 정상회담을 갖는다.

오바마 대통령의 동아시아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관리는 대통령 특별보좌관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국장(Senior Director for Asian Affairs) 제프리 베이더(Jeffrey A. Bader)다. 그는 이전에 국무부에서 오랫동안 대중정책을 담당한 관리로 일한 뒤에 워싱턴 디씨에 있는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선임연구원으로 있다가 올해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국장에 임명되었다.

제프리 베이더 국장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까닭은, 그가 오바마 대통령의 동아시아 정상회담에 관련된 각종 현안을 챙기는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다. 만일 오바마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기획안이 백악관에서 작성된다면, 그것 역시 그의 손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중책을 맡은 제프리 베이더 국장이 2009년 11월 6일 브루킹스 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 기조연설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토론회 제목은 ‘아시아에 가는 오바마: 대통령 방문에 대한 이해(Obama Goes to Asia: Understanding the President’s Trip)’로 되어 있었다. 그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국장에 임명되기 직전까지 일했던 바로 그 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동아시아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그 정상회담을 기획하고 준비해온 책임자가 정상회담의 의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로이터(Reuters)통신> 2009년 11월 6일자 보도와 <아에프페(AFP)통신)> 2009년 11월 7일자 보도에 실린 제프리 베이더 국장의 기조연설 가운데서 백악관의 대북정책과 관해 언급한 대목을 발췌하여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2009년 1월 20일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뒤로 지금까지 10개월 동안, 북미 두 나라가 굉음을 내며 맞부딪친 격돌과정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얼마나 고심해왔는지를 제프리 베이더 국장의 기조연설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우리가 미국과 북코리아의 관계보다 더 몰두한 문제는 없다. 만일 어떤 현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를 보여주는 원형도표를 그린다면, 북코리아가 압도적일 것이다(There is no subject that has more preoccupied us than our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 If you did a pie chart on how much time has been spent on issues, North Korea would dominate)”고 말했다. 이라크 군사점령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허덕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가장 고심참담한 문제가 중동전쟁문제가 아니라 북미관계문제라고 밝힌 그의 발언은, 북측 국방위원회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퍼부은 끝장공세와 연속타격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암시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패색이 짙어진 아프가니스탄 전황에서 받은 충격파보다 훨씬 더 큰 충격파를 북측 국방위원회의 대미압박공세에서 받은 것이다.

이를테면,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된 날로부터 불과 사흘 뒤인 2009년 1월 23일경 미국군 정찰위성을 통해 은하 2호 발사를 준비하는 인민군의 움직임을 처음 포착한 날, 그리고 4월 5일 북측이 마침내 은하 2호를 발사한 날, 그리고 5월 25일 풍계리발 인공지진파가 전세계 지진계를 뒤흔들어 놓은 날, 그리고 6월 초 깃대령 미사일기지에서 중거리미사일 발사차량들이 노출과 은폐를 반복하면서 미국군에게 교란전술을 펼치고 6월 17일에는 무엇이 실려있는지 알 수 없는 화물선 강남 1호가 남포항에서 출항하여 동해안 상공에 떠있던 미국군 정찰위성을 엉뚱한 곳으로 유도하는 교란전술을 펼치던 날, 그리고 7월 2일 동해안 곳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미사일발사차량들이 기습발사한 단거리 지대함미사일 네 발이 화염을 뿜으며 날아간 날, 그리고 이틀 뒤인 7월 4일 미사일 연속발사훈련을 실시하는 중에 미국군 항모강습단을 격침시킬 초음속 순항미사일 두 발이 동해 상공으로 발사된 날, 그럴 때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짐짓 태연한 척하느라고 무척 애썼지만, 북측 국방위원회가 퍼부은 끝장공세와 연속타격으로 바짝 옥죄이는 바람에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느긋하게 지연전술을 펴면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처럼 말한 언론보도는 황당무계한 풍설에 가깝다.

제프리 베이더 국장은 브루킹스 연구소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북코리아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려고 준비하였다(We are prepared to engage directly with the North Koreans)”고 밝혔다. 또 그는 “오바마 행정부는 여과장치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적대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더 좋다고 믿는다(The Obama administration believes it is better to hear directly from others, including adversaries, than to hear from them secondhand through a filter)”고 말했다.

이 말에서는, 북측에게 6자회담 복귀를 요구해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더 버티지 못하고, 결국 북측 국방위원회의 양자회담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북측 국방위원회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강하게 요구해온 북미 양자회담 재개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말해준다. 북측 국방위원회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맞부딪친 격렬한 외교전에서 또다시 전술적 승리를 거둔 것이다.

양자회담을 왜 두 차례만 하자고 합의하였을까?

제프리 베이더 국장은 브루킹스 연구소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영변을 세 번째로 사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We are not interested in buying Yongbyun for the third time)”고 잘라말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곧 열릴 북미 양자회담에서 경제보상문제가 배제될 것임을 예고한다. 클린턴 정부 시기에 진행된 북미 양자회담에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영변원자로 동결에 상응하여 중유 공급과 경수로 건설을 추진하는 경제보상을 제공하였지만, 오바마 정부 시기에 진행될 북미 양자회담에서는 경제보상을 배제하고 정치적 해결에만 노력을 집중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 재개될 북미 양자회담은 클린턴 정부 시기에 진행된 양자회담처럼 시간을 끌면서 몇 해에 걸쳐 이어지는 장기회담이 아니라 몇 달 안에 속결방식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제프리 베이더 국장은 브루킹스 연구소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회담을 위한 회담에는 관심이 없다(We are not interested in talks for talk’s sake)”고 말했고, “우리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We’re less interested in process than we are in outcome)”고 말했다. 속결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이번에 재개될 북미 양자회담이 조속한 해결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미국 외교전문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에 실린 2009년 11월 2일자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사제목은 ‘미국-북코리아 회담은 조용한 진전을 보았다(Quiet Progress Made in U.S.-North Korea Talks)’로 되어있다. 북측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의 방미에 관련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오바마 정부 관리가 한 말을 인용한 그 기사는, 리근 미국국장과 성김(Sung Kim)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가 진행한 “막후회담에서 중대한 진전이 이루어졌다(substantial progress was made in behind-the-scenes talks)”고 하면서, “첫번째는 다자토론에 복귀하기 전에 미국과 양자회담을 꼭 두 차례만 한다는 것에 북측이 동의한 것이다(The first was that the North Koreans agree to have exactly two formal bilateral meetings with the United States before returning to a multilateral forum)”고 지적하였다.

아주 최근에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것처럼, 제1차 북미 양자회담은 그 윤곽을 이미 드러냈다. 2009년 11월 5일 워싱턴 디씨에 있는 미국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국무부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기자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언제쯤 (당신의) 방북여부가 결정되느냐?”

“곧 이뤄질 것이다. 이번 주말에 여러 얘기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북미대화가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느냐?”

“연내에는 (북한에) 갈 것이다.”

제1차 북미 양자회담은 스티븐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북측은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평양방문을 몇 차례 요청하였으나, 미국이 그 요청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위에 나온 <외교정책> 2009년 11월 2일자 기사에 따르면,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평양에 가면 외무성 강석주 제1부상을 만나게 해달라는 국무부의 요청에 대해 북측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평양에서 열릴 제1차 북미 양자회담이 강석주-보스워즈 회담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강석주 제1부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정책결정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대미외교담당 고위관리다.

그런데 리근-성김 막후접촉에서 왜 양자회담을 꼭 두 차례만 하자고 합의한 것일까? ‘북미관계 소식통’들이 한 말을 인용한 <니혼게이자이신붕(日本經濟新聞)> 2009년 11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리근-성김 막후접촉에서 북측은 양자회담을 네다섯 차례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보도가 정확하다면, 양자회담을 두 차례만 하자는 제안은 미국측에서 나온 것이다.

북미 양자회담을 두 차례만 한다는 합의에 대해서는 양측이 각각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북측 국방위원회는 양자회담을 여러 차례 할 것 없이 두 차례만 하고 곧바로 북미 정상회담에 들어가자는 뜻으로 그 합의를 해석하였을 것이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양자회담을 여러 차례 할 것 없이 두 차례만 하고 곧바로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뜻으로 그 합의를 해석하였을 것이다.

제프리 베이더 국장은 브루킹스 연구소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북코리아가)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하고 비핵화할 것을 2005년에 명시적으로 밝힌 이전 공약들이 유효하다고 인식하면서,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명백한 목표를 가지고,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북코리아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We are ready to talk to North Korea in the context of the six-party talks with the explicit goal of denuclearization and with a recognition that its previous commitments to denuclearize and return to the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notably those in 2005, remain valid)”고 말했고, “우리는 6자회담 과정이 적절한 계획이라는 점을 북코리아가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신호를 보고 싶다(We want to see genuine signs that the North Koreans understand that the six-party process is the right framework)”고 말했다. 6자회담 재개방침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역력하다.

그런데 그와 다르게, 북측 국방위원회의 방침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양자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하는 경우,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라 다자회담을 시작하는 것이다. 6자회담 거부방침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미국의 소리(The Voice of America)> 2009년 10월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을 방문한 리근 미국국장은 그가 말하는 다자회담을 6자회담이라고 특정하지(specify) 않았다고 한다. 방미기간에도 6자회담 거부방침을 견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측 국방위원회의 6자회담 거부방침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6자회담 재개방침이 이처럼 서로 팽팽하게 맞서는데, 양측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물론 그 문제는 앞으로 두 차례 열릴 북미 양자회담에서 풀어야 하는데, 북측이 요구한 새로운 다자회담이 시작되는 가운데, 미국이 요구한 6자회담도 재개되는 절충방식으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북측 국방위원회는 그러한 절충안을 제시하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제안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려는 것이 아닐까? 만일 북측 국방위원회가 의도한 대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6자회담은 존재가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양자회담을 속결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 근거

1998년 8월 31일, 북측이 첫 위성발사체 백두산 1호에 첫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실어 우주공간으로 쏘아올린 뒤로 2000년 10월 9일 북측 국방위원회 조명록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자격으로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여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대통령의 접견을 받기까지 스물다섯달 동안, 북미 두 나라는 양자회담을 열다섯 차례나 이어갔다. 이태 동안 평균 한 달 반마다 한 차례씩 양자회담을 계속 열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8년 10월 1일 뉴욕에서 북미 실무급회담을 연 뒤로 2000년 9월 27일 뉴욕에서 북미 차관급회담을 열기까지 북미 두 나라는 평양에서 네 차례, 뉴욕에서 네 차례, 제3국에서 일곱 차례 양자회담을 가졌다. 열네 차례 각급 양자회담을 가진 뒤에, 2000년 9월 27일 뉴욕에서 열린 열다섯번째 양자회담(차관급회담)에서 북측 국방위원회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마침내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였다.

양측이 그 합의에 도달한 뒤인 2000년 10월 9일 조명록 특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백악관에 들어가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접견하였고, 10월 12일 워싱턴 디씨에서 북미 공동코뮈니케가 발표되었으며, 10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 당시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북측 국방위원회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1998년 10월부터 2000년 9월까지 장기간에 걸쳐 양자회담을 이어간 경험을 답습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2009년 8월 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는 자리에서 들은 그의 의사를 직접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한 것은, 스물다섯 달 동안 열다섯 차례나 양자회담을 가졌던 과거경험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홉해 만에 북미 양자회담을 재개하는 출발점은 1998년 10월이 아니라 2000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확정하고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2000년 9월 27일에 열렸던 차관급회담에서 양자회담을 재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근-성김 막후접촉에서 앞으로 두 차례만 열기로 합의한 양자회담은, 2000년 9월 27일 뉴욕에서 열렸던 차관급회담의 경험과 성과를 오늘 형편에 맞게 조절하고 복원하는 후속회담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북미 두 나라가 양자회담을 이처럼 속결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 까닭은, 북미 관계개선 시나리오가 이미 문서로 확정되어 있어서 북미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들을 새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 12일 워싱턴 디씨에서 발표된 북미 공동코뮈니케(U.S.-D.P.R.K. Joint Communique)가 그것이다. 이 역사적인 합의는 사문화된 것이 아니라, 부시 정부가 지난 8년 동안 이행을 중단한 것이다. 공동코뮈니케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까닭은,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그 안에 전면적으로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줄임) 두 나라 사이의 쌍무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The United States and the D.P.R.K. have decided (줄임) to take steps to fundamentally improve their bilateral relations)”고 규정한 공동코뮈니케에서 북미 두 나라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10대 조치를 이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아홉해 전에 합의한 10대 조치를 행동에 옮기는 문제가 북미 양자회담 재개와 더불어 당면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오늘, 문서로 합의한 10대 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첫째 조치는 한반도 평화체계 수립이다. 공동코뮈니케 우리말본에는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라고 적혀있고, 영문본에는 “항구적인 평화조치들(permanent peace arrangements)”이라고 적혀있다. 복수형태로 쓴 것을 보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종전선언 채택문제는 준전시상태를 조성한 군사대치상태를 완화하는 것이므로, 한반도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인민군, 미국군, 한국군 3자가 합의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문제는 정전협정 체결당사자인 북측, 미국, 중국 3자가 합의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조치는 적대관계 청산이다. 공동코뮈니케는 “양측은 (줄임) 앞으로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공약을 확언하였다(The two sides (줄임) confirmed the commitment of both governments to make every effort in the future to build a new relationship free from past enmity)”고 밝혔다.

과거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노력들 가운데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전향적으로 취할 것은, 한미합동군사훈련 영구중지, 핵우산 제공공약 영구폐기, 주한미국군 단계적 전면철군과 주둔군사령부 해외철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그러한 노력에 상응해서 북측 국방위원회가 취할 조치들은 중장거리미사일 발사 영구중지, 핵시설 폐기, 핵탄두 해체다.

셋째 조치는 외교접촉 유지다. 공동코뮈니케는 “쌍무적 및 다무적 공간을 통한 외교적 접촉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영문본을 직역하면, “정규적인 외교접촉을 양자형태 및 더 포괄적인 회의형태(regular diplomatic contacts, bilaterally and in broader fora)로” 유지한다는 뜻이 드러난다. 오늘 북미 두 나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양자회담과 다자회담에 관한 쟁점이 이미 아홉해 전에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넷째 조치는 북미 경제협력이고, 다섯째 조치는 미사일문제 해결인데, 이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가 없다.

여섯째 조치는 제네바 기본합의 이행이다. 제네바 기본합의는 부시 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사문화되었으므로,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조치로 대체될 것이다.

일곱째 조치는 북측에서 미국군 유해를 발굴하고 미국군 실종자 조사를 계속하는 것이고, 여덟째 조치는 국제적인 반테러활동을 지지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가 없다.

아홉째 조치는 남북 화해협력을 지지하는 것이다. 미국측이 남북 화해협력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권은 북측을 자극하는 ‘비핵개방 3000’을 계속 읊조리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외면하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 정권이 시쳇말로 ‘왕따’를 자처하는 정치적 자해행위를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마지막 열 번째 조치는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이다. 공동코뮈니케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하여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가까운 시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기로 합의하였다(It was agreed that Secretary of State Madeleine Albright will visit the D.P.R.K. in the near future (줄임) to prepare for a possible visit by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고 밝혔다. 위에 나오는 아홉 개 조치들은 마지막 열 번째 조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협상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그를 초청한 것일까?

북미 두 나라가 각자 노력을 집중하게 될 북미관계의 정치현안이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근본문제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북미 두 나라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치현안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는 데 있다.

리근-성김 막후접촉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치현안을 얼마나 다르게 해석하는지가 드러났다. 위에 나온 <외교정책> 2009년 11월 2일자 기사에 따르면, 미국측은 북측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한” 9.19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대로 그 공약을 따르라고 북측에게 요구하였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개념에 근거해서 회담을 재개하는 것을 원하였다고 하면서 이의를 제기하였다는 것이다(Here the North Koreans demurred, saying that they wanted to resume talks based on the idea of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명백하게도, 북측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측이 일방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무장해제’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측의 핵포기에 상응하여 미국의 한반도 핵위협도 제거되는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풀어쓰면, 대북 핵공격을 상정하고 실시해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히 중지하고, 대북 핵공격을 현지에서 준비하하는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전면철군하고 주둔군사령부를 한반도 밖으로 철수하며, 남측에 대한 미국군의 핵우산 제공공약을 자진폐기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북측이 핵포기를 단행하고 미국측이 핵위협 제거를 단행할 때, 오직 그러한 상응행동을 취할 때만이 전쟁기운이 서려있는 이 땅 한반도에는 이 민족이 갈망하고 인류가 바라는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실현하는 이러한 방안이야말로 누구도 이견을 말할 여지가 없는 공명정대한 조치다.

2009년 11월 4일 뉴욕에 있는 코리아협회(Korea Society)의 토머스 허바드(Thomas Hubbard) 이사장은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 10월 30일 미국외교정책협의회(NCAFP)와 코리아협회가 공동주최한 뉴욕 토론회에서 리근 미국국장을 만난 소감을 전할 때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금요일 토론회에서 북한측은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뭘 원한다는 것입니까?”

“(줄임) 북한은 자신의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을 폐기할 수 있긴 한데 그에 앞서 미국이 뭔가 해줘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걸 요약해서 말하면 북한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제프리 베이더 국장은 브루킹스 연구소 기조연설에서 “그들 스스로 선포한 핵보유국 지위를 정당화하는 북코리아의 꿈을 만족시키는 일에 우리는 관심이 없다(We are not interested in indulging North Korea’s dream of validation as a self-proclaimed nuclear power)”고 말했지만, 그는 하나마나한 말을 하였다. 북측이 진정 바라는 것은 핵보유국 지위가 아니라 그 지위와 맞바꾸려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다. 북측이 핵보유국 지위를 포기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려고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부인하는 한,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북미 두 나라는 비핵화 개념을 상반되게 해석하기 때문에 아무리 양자회담을 계속해봐야 비핵화 과제를 합의할 수 없다. 오직 북미 정상회담에서 담판을 벌일 때, 한반도 비핵화 과제를 일괄타결 방식으로 합의할 수 있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벌써 아홉해 전에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하였고,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그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평양방문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홉해 뒤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9년 8월 4일 평양을 방문한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하여 오바마 대통령에게 똑같은 제안을 전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평양초청과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이미 받은 것이다.

이제 그 제안에 오바마 대통령이 응답해야 할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 곧 열리게 될 강석주-보스워즈 회담은, 북측 국방위원회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첫 접촉으로 될 수 있을까? 너무도 예민한 북미 정상회담 개최여부를 지금 속단하기는 힘들지만, 북미 정상회담 개최약속을 문서로 작성하여 세상에 공표하는 절차와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합의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은 필수적이다. 만일 2000년에 겪은 경험에 따라 그 절차를 정한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특사가 백악관을 방문하여 오바마 대통령의 접견을 받고,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는 정상회담 준비절차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독교계의 거물 프랭클린 그레이엄(Flanklin Graham) 목사가 2009년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는데, 그의 통역을 맡았던 인요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10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전한 바에 따르면, 그들이 평양에서 만난 북측 관리들은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와) 의논하자는 것도 아니고 일단 방문만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측은 강석주-보스워즈 회담에서 무엇을 협상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협상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그를 평양에 초청한 것일까? 북측의 기상천외한 회담전술을 외부에서 짐작하기 힘들지만, 어떤 선행조치를 먼저 취하여 북미 정상회담 개최합의를 이끌어 내려고 보스워즈 특별대표를 평양에 일단 와보라고 한 것은 아닐까?

인요한 교수는 10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그레이엄 목사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났을 때 주고받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인요한 교수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레이엄 목사가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돌려주면 미국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자, 김계관 부상은 “클린턴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면 푸에블로호 송환협상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응답하였다고 한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을 만나 평양방문 경험을 듣고 조언을 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2009년 11월 9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