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접촉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언론에 노출된 극비정보

2009년 10월 20일 남측 텔레비전방송 엠비씨(MBC)가 오후 9시에 방영되는 뉴스 데스크(News Desk)에서 ‘대북소식통’을 인용하여 남북 당국자 비밀접촉설을 보도하였다. 남북 당국자들이 비밀접촉을 하였다는 극비정보가 언론에 노출되자, 남측 언론매체들이 보도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보도경쟁만 잠시 요란하였을 뿐, 이명박 대통령이 정보통제 속 깊은 곳에 감춰둔 비밀접촉 극비정보는 그 전모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2009년 10월 22일 청와대 관계자는 비밀접촉설에 대해 “현재로선 확인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 문제가 사실이라 해도 극소수만 아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극소수만이 남북 당국자 비밀접촉을 알고 있다는 말은, 비밀접촉이 극비정보이므로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래 극비정보를 다루는 정부기관은 국가정보원인데, 원세훈 국정원장 역시 2009년 10월 29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비밀접촉설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이 그에게 왜 확인해 줄 수 없느냐고 묻자,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북측을 의식해야 하므로 남북 당국자 비밀접촉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밀접촉설에 대해 남측 언론매체들이 산만하게 보도하거나 때로 잘못 보도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밀명을 받은 측근인사와 북측의 대남사업 핵심인사가 싱가포르에서 비밀접촉을 하였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이전에도 남북 당국자 비밀접촉이 있었다. 2000년 3월 9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밀명을 받은 국정원 ‘케이(K)’ 국장 일행과 조선아태평화위원회 송호경 당시 부위원장 일행이 비밀접촉을 가졌던 곳도 싱가포르다. 이번에 있었던 싱가포르 비밀접촉에 관해 남측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2009년 10월 15일 북측의 대남사업 책임자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원동연 조선아태평화위원회 실장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 도착하였고, 10월 16일부터 20일 사이 어느 날에 베이징에서 싱가포르로 이동하여, 이명박 대통령의 밀명을 띄고 파견된 남측 인사와 만났다. 언론매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싱가포르 비밀접촉에 보낸 사람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이러저러한 추측보도를 내놓았지만, 그가 누구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둘째, ‘정보관련 핵심인사’가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10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비밀접촉은 북측의 요청으로 성사되었는데, 김양건 부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남측 인사에게 남북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제안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남측과 북측의 최고지도자들이 만나는 회담을 말할 때, 남측은 정상회담(summit talks)이라는 말을 쓰고 북측은 최고위급회담(highest-level talks)이라는 말을 쓴다는 점이다. 명백하게도, 남북관계는 국제관계가 아니라 분단국가 내부관계이므로 국제관계에서 쓰는 정상회담이라는 말을 남북관계에 끌어다 분별없이 쓰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예컨대 중국과 대만 관계도 국제관계가 아니라 분단국가 내부관계이므로, 중국과 대만은 중국과 대만 관계라는 일반개념을 쓰지 않고 양안관계(兩岸關係)라는 특수개념을 쓰고 있고, 따라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국가원수 직책으로 만나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고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국민당 주석으로 만나는 최고위급회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잘못된 말을 쓰는 것은 피해야 마땅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잘못된 말을 쓰는 관행이 굳어진 남측 언론매체에 이 글이 실리는 점을 생각해서 그 말을 편의상 쓴다는 점을 밝혀둔다.

셋째, ‘정부 핵심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09년 10월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비밀접촉에선 서로 간의 입장차가 크다는 점만 확인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북측의 제안을 받고 추진한 싱가포르 비밀접촉에 자신의 측근인사를 보냈다는 극비정보가 언론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연합뉴스> 2009년 10월 23일자 관련보도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남북 당국자 “비밀접촉이 초기단계에 노출된 것”이다.

국민에게는 숨기면서 백악관에는 알려주고

싱가포르 비밀접촉에 관한 언론보도는 갑자기 나온 것이지만, 그 비밀접촉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북측은 남북 당국자 비밀접촉을 위해 지난 8월부터 움직여왔던 것으로 보인다. 남북 당국자 비밀접촉을 위한 북측의 조용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2009년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에서 거행된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 북측 특사조의방문단이 참석하였을 때 처음으로 감지되었다. 특사조의방문단은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 김덕룡 청와대 국민통합특보를 만난 자리에서, 그리고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여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를 조심스럽게 거론하였다. 더욱이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10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지난 8월 조문사절단을 보냈을 때 이 대통령 면담에서도 비슷한 뜻(남북 정상회담 개최문제에 관한 뜻-옮긴이)을 전했고, 그 동안 여러 경로로 남북관계 개선을 전해왔”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측으로부터 언제 어떤 경로로 싱가포르 비밀접촉을 제안받았는가 하는 극비정보를 알 길은 없지만, 북측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싱가포르 비밀접촉을 제안한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싱가포르 비밀접촉이 극비로 추진되는 중이던 2009년 10월 14일, 엉뚱하게도 워싱턴에서 문제가 생겼다.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미국 국방장관이 남측, 일본, 슬로바키아를 순방하기 직전에 동행기자단에게 순방일정을 설명하는 비공개 석상에서,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월러스 그렉슨(Wallace C. Gregson, Jr) 차관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한 김정일의 북코리아와 유화국면에 갑자기 들어섰다. (We’ve suddenly reached a charm phase with North Korea with Kim Jong-Il inviting President Lee Myung-bak from the Republic of Korea to visit Pyongyang.)”

미국 정부 차관보급 관리가 북측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였다는 극비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 극비정보를 백악관에 전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외교관례를 보면,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실에 그 극비정보를 직접 전하였을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10월 18일자 보도는, “정보공유 차원에서 미 행정부 쪽에 전달했다”고 말하여 극비정보를 백악관에 전한 사실을 사실상 시인하였다.

그렉슨의 발언으로 극비정보가 언론에 노출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화를 냈다. ‘정보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 2009년 10월 24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가 화를 낸 것은 한중일 정상회담 때 얘기를 미국이 오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밀하게 이뤄지고 있던 남북 정상회담 추진문제의 ‘천기(天機)’를 누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싱가포르 비밀접촉에 관한 극비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백악관에 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남측 대통령이 극비정보를 백악관에 전하는 것은, 청와대와 백악관이 정보를 공유하려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청와대가 백악관으로부터 사전동의를 받으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문제 같은 중대 현안을 남측 국민에게는 전혀 알려주지 않으면서도 백악관에게는 반드시 알려주어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 만일 백악관이 사전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이명박 대통령은 북측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제안에 응하지 못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중대 현안을 추진한 뒤에는 반드시 백악관에 결과를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것이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현주소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싱가포르 비밀접촉에 응하기 전에 백악관으로부터 사전동의를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에서 장관급 고위관리가 아닌 차관보급 관리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북측의 초청을 받았다는 극비정보를 기자단에게 말해줄 정도였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 개최제안을 받아들여도 좋다고 동의하였을 것이다. 그렉슨 차관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는 극비정보를 기자단에게 말해줄 때,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이 예상된다”는 전망 발언까지 덧붙였는데, 이것은 국방부의 월러스 그렉슨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의 입에서 나올 만한 발언이 아니라 국무부의 커트 캠벨(Kurt Campbell)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입에서 나올 만한 발언인 것이다. 평소에 남북관계 개선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미국 국방부 관리가 그러한 전망 발언을 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남북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측으로부터 평양초청을 받았다는 극비정보가 미국 국방부 차관보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남측 언론매체들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문제에 관한 보도를 중구난방으로 쏟아냈다.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문제에 관해 온갖 추측보도와 소문들이 쏟아져나오자, 청와대와 백악관이 수습에 나섰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2009년 10월 18일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말했고, 같은 날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백악관 고위당국자는 워싱턴에 주재하는 남측 특파원단에 전화를 걸어 “오해(misunderstanding)가 있었다. 우리가 말하려고 한 건 북한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그런 맥락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에도 북한의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방문을 얘기하기도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이 보인 반응

싱가포르 비밀접촉에서 북측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 개최문제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정보관련 핵심인사’가 한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10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남측 인사는 “핵폐기를 포함한 북한측의 근본적인 태도변화가 있어야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고, 남북 정상회담이 “두 차례 평양에서 개최된 만큼 이번에는 형평성 차원에서 김 위원장이 답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한 ‘남북현안에 밝은 정부소식통’을 인용한 <조선일보> 2009년 10월 24일자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비밀접촉에서 남측 인사는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폐기를 추진하되 안 되면 제1의제로라도 다룬다는 약속을 북한이 발표해야 한다는 것과 회담장소는 더 이상 평양은 안 되고 서울이나 최소한 판문점으로 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걸”고, 북측이 이 두 가지 조건을 들어주면 대규모 식량지원과 비료지원을 재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보도내용은 이명박 대통령이 북측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제안에 핵폐기 선행론으로 응답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핵폐기 선행론은 2009년 10월 25일 태국 후아힌(Hua Hin)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n Summit Meeting) 오찬발언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북 등 노력의 결과로 북한이 대화복귀의 의사를 표명하는 등 일부 진전이 있다. 그러나 아직 북한의 의도가 불투명하여 핵을 포기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는 징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대화의 길을 계속 열어놓되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의 엄격한 이행 등 단합된 입장을 유지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진정한 대화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핵포기의 결단을 내리고 조속히 6자회담으로 복귀하도록 국제사회가 긴밀히 협력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이 곳에 계신 정상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동아시아 각국 정상들과 함께 있는 자리라서 차마 거친 표현까지 쓰지는 못하였겠지만, 외교발언에서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각료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폐기 선행론에 깔려있는 진의를 솔직하게 대변하였다. 이를테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009년 9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학술회의 축사에서 “핵을 앞에 두고 민족공동체를 논의할 수 없다. 북한의 비핵화는 민족공동체 논의를 위한 전제조건이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토대”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폐기 선행론을 전파하는 데서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빠지지 않는데, 그는 2009년 9월 18일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미국과의 문제일 뿐이며, (북한이 핵무기를) 과연 남한을 향해서 쓰겠느냐고 하는 것은 순박한 생각이다. 그런 순박한 생각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 북한의 핵무기는 남한을 겨냥한 것이다. 북한의 목표는 적화통일이고 그런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다. 북핵문제가 미국과의 문제이고 남북한이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과거에는 남북관계가 북핵문제에 비해 우선순위를 가진 적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자극적인 발언은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이 아니라 극우반공단체장의 발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009년 10월 26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하여 “북한 핵문제는 남북정상 간 회담에서 언제나 의제가 돼야 한다는 데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이튿날 서울에서 열린 민간단체 주최 토론회 기조발표에서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근본적 태도변화가 없으며 (북한은) 우리와는 핵문제 협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하면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당장의 과제는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고 그 안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한 북측에게 이명박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이 미국의 공화당과 군부와 극우세력이 외치는 핵폐기 선행론으로 응답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지독스러운 대결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이 지닌 대결관념은 핵폐기 선행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극우반공단체장 수준의 도발적 발언을 하였던 2009년 9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 후보자는 한 술 더 떴다. 그는 “전시에 북한이 핵으로 우리를 공격할 우려가 있을 때는 다양한 정보로 이를 획득하고 한미 국가통수기구협의가 (타격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타격은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한미간 협의채널을 최대한 활용해 빠른 시간 내 결정해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장관도 북측을 의식해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꺼리는 핵시설 선제타격론을 남측 국방장관 후보자가 거리낌없이 들고 나오면서 만용(蠻勇)을 부린 것이다.

불행은 시차를 두고 반복된다

이처럼 이명박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이 도발적인 핵폐기 선행론과 핵시설 선제타격론을 꺼내는 것은, 이미 악화될대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개선할 뜻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들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행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대결소동을 불러일으킨 ‘비핵개방 3000’을 밀어붙일 기회만 노리고 있다. 이를테면, 통일부는 2009년 10월 23일 국정감사에 제출한 통일부 감사자료에서 “11월 중 남북관계발전위원회를 개최, 기본계획 수정안을 심의할 것”이며, “연내 기본계획 수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10.4선언에 의거하여 2007년 11월에 작성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5개년 계획(2008-2012)’을 ‘비핵개방 3000’에 맞춰 전부 뜯어고치겠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미 악화된 남북관계를 개선으로 이끌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대결을 되레 더 부추기는 위험천만한 도발행동이다.

이처럼 남북관계에 도발적으로 대응하려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측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제안에 대해 이러저러한 구실을 내걸고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고위관리들은 북측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제안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거부의사를 대변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2009년 10월 18일 “정략적, 정치적, 전술적 고려를 깔고 진정성없이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고,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2009년 10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민간단체 주최 토론회 기조발표에서 “지금 북한이 대화의 손짓을 보내고 있으나 그것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없는 6자회담 복귀가 아니며, 우리가 바라는 진정성있는 남북대화가 아닌 조건부 대화 제의”라고 말했다.

이전에 부시 대통령이 고집하다가 그의 임기와 함께 끝나버린 핵폐기 선행론을 붙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는 뜻이 없고 북측을 6자회담에 끌어내어 핵폐기를 선행시켜 보겠다는 집념만 지녔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를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와 비교하면 너무 다르다. 2009년 9월 28일 서울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2주년 학술회의’에서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 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남북 정상회담은 조건, 여건이 됐을 때 성사되는 것이 중요하다.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때 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것을 위해서 북핵문제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된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갖고 계셨다”고 말했다.

지난 경험을 돌아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6월 3일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핵무기를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는 핵폐기 선행론을 들이대면서 남북관계를 파탄시켰고, 그것도 모자라서 당시 클린턴 정부가 추진하던 대북협상까지 만류하는 극단적인 대결관념에 집착하였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결관념이 오늘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계승된 것이다. 이것은 대결관념에 사로잡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겪은 정치적 자해(political self-injury)의 전철을 이명박 대통령이 16년만에 다시 밟아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결관념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불행은 시차를 두고 반복되고 있다.

남북미 삼각관계에 새로운 방정식을

<연합뉴스> 2009년 10월 23일자 보도를 읽어보면, ‘남북관계에 정통한 정부소식통’은 “최근 실무급 접촉에서 장소 등에서 이견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남북접촉을 진행할 것”이며, “현 상황에서 연내 정상회담 개최는 어렵지만 내년에는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보았고, 다른 핵심당국자는 “남북 간에 정상회담을 놓고 현격한 시각차가 있는 만큼, 만약 성사가 된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였다. 이들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전망을 조심스럽게 낙관하였지만, 정작 그 문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남북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느냐 마느냐 하는 개최지 선택문제에 대한 남측과 북측의 의견충돌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대결관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결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가 북측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제안에 긍정적으로 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싱가포르 비밀접촉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날 수밖에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전망은 2009년 10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을 수행하던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싱가포르 비밀접촉 이후에 추가접촉이 있을 것이라는 언론매체들의 추측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보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 핵심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09년 10월 27일자 보도기사는 “남북간 추가접촉 계획이 잡힌 것이 전혀 없어, 정상회담 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 오르는 일이 조만간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시야를 넓혀 보면, 한반도 핵문제는 미국의 대북 핵위협을 원인으로 하여 북미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그 문제를 북미관계에서 해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서 한반도 핵문제가 1993년에 수면 위로 떠오른 뒤로 이제껏 미국 대통령들은 북측에게 핵포기를 요구하면서도, 북미관계에서 발생한 한반도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북미 정상회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들과 다르게, 이명박 대통령은 북미관계에서 발생한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할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에, 북측이 만일 핵포기를 선행하겠다고 약속하면 남북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응답하면서도 실제로는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생각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싱가포르 비밀접촉에서 제기한 핵폐기 선행론은, 핵문제 해결의지가 아니라 대결관념을 북측에게 직접 표명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생각이 없는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0월 10일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그에게 “남북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조언하였으나,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자신에게 기회가 아니라 위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그런 불길한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의 눈에는 북측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연동시키는 회담전술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측이 회담전술을 시도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반도 정세변화가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연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일어나는 연동작용에 대해서는 2009년 8월 31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변화의 바람 부는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연동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가 양자 연동을 반대하는 까닭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009년 9월 18일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북한이 얘기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는 미북 평화협정과 그에 따른 주한미군 철수”라고 말했다. 사실 유명환 장관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없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의제로 제기하고 오바마 대통령과 담판을 벌일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연동이 북측의 회담전술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북측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제안에 핵폐기 선행론으로 대응하는 식으로 시간이나 끌면서 북측의 회담전술을 무력화하려고 애쓸 것이 뻔하다. 다른 한편, 북측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제안을 거부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은근히 무시하는 전술(benign neglect tactics)로 상대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거부로 성사여부가 불투명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려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고, 북미 정상회담으로 나아가는 직통로를 뚫으려고 힘쓸 것이다.

200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에 먼저 평양을 방문하고 10월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추진되는 순서를 밟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걸어간 길을 역행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남북미 삼각관계에 2000년식 방정식은 들어맞지 않는다. 남북미 삼각관계에 2000년식 방정식을 도입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서울을 먼저 방문하고 나서 평양을 방문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2009년에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18일에 서울을 먼저 방문한 뒤, 내년에 평양을 방문하는 계획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미 삼각관계에 2010년식 방정식이 새로 도입되는 것이다. (2009년 11월 2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