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원 담화와 총리회담의 진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백화원 담화의 진실

2009년 10월 4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북측을 공식방문하였다. 리펑(李鵬) 당시 총리가 북측을 방문한 때가 1991년 5월 8일이었으니, 중국 총리로서는 18년만에 북측을 방문한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고 담화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것이 아니라 원자바오 총리를 접견한 것이므로 정상회담이 아니라 담화라고 한다.

2009년 10월 5일 저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원자바오 총리의 숙소인 백화원에서 나눈 담화는, 같은 날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따뜻하고 친선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였다”고 한다.

외부에서는 백화원 담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길이 없는데, 그 담화에 대해 그나마 조금 구체적으로 보도한 곳은 중국의 <신화통신>이다. 남측 보수언론은 ‘북측의 6자회담 복귀설’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미국 언론을 맹종하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화원 담화에서 6자회담 복귀의사를 표명한 것처럼 엉터리 보도를 내놓았고, 그래서 남측 일반대중은 그 담화의 진실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백화원 담화는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이정표를 또 하나 세워놓은 중대사변이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백화원 담화의 진실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정밀분석이 요구된다.

2009년 10월 5일 <신화통신> 평양발 기사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최고영도자는 중조관계와 비핵화된 조선반도의 창설을 위한 중요한 합의에 도달하였다(Chinese Premier Wen Jabao and Kim Jong Il, top leader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 reached important consensus on China-DPRK relations and the promotion of a nuclear-free Korean Peninsula)”고 보도하였다. <신화통신>은 이튿날인 10월 6일 베이징(北京)발 기사에서 그 날 귀국길에 오른 양제츠(楊潔篪) 외교부장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보도하였다. “원자바오 총리는 조선반도 비핵화에 관하여 조선의 지도자들과 진지하고 깊이 있게 대화하였고, 비핵화된 조선반도를 창설하는 문제에 관한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 (Premier Wen had sincere and in-depth talks with the DPRK leaders on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made much headway on the promotion of a nuclear-free Korean Peninsula.)”

주목하는 것은, 백화원 담화가 <신화통신>이 보도한 것처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중대한 합의’를 내오고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백화원 담화에서 이루어진 ‘중대한 합의’와 ‘커다란 진전’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려면 백화원 담화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9년 10월 5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백화원 담화발언은 이렇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조미량자회담을 통하여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는 반드시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되여야 한다. 우리는 조미회담 결과를 보고 다자회담을 진행할 용의를 표명하였다. 다자회담에는 6자회담도 포함되여있다. 조선반도 비핵화 목표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변하지 않았다.”

같은 날, <신화통신>이 보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백화원 담화발언은 이렇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조선의 노력은 변하지 않았다. 조미 양자만남을 통하여(through the DPRK-U.S. bilateral meeting), 두 나라의 적대관계는 반드시 평화적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조선은 조미관계의 진전에 의거하여,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회담에 나설 용의가 있다. (The DPRK is willing to attend multilateral talks, including the six-party talks, based on the progress in the DPRK-U.S. talks.)”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기사나 <신화통신>이 보도한 영문기사는 어순이 조금 바뀌었을 뿐, 내용은 같다. 그런데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발언만 보도하였을 뿐 원자바오 총리의 담화발언은 보도하지 않았는데, <신화통신>이 보도한 원자바오 총리의 담화발언은 이렇다. “원 총리는 비핵화된 조선반도와 그 목표를 실현하려는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대화를 위한 조선의 실행에 대해 중국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원 총리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평화와 안전, 그리고 발전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조선 및 관련당사자들과 함께 일치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과 <신화통신>의 보도기사들을 읽어보면, 원자바오 총리의 담화발언은 의례적인 외교발언을 넘어서지 않은 것이었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대미회담 추진방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발언에 들어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하기에 앞서 2009년 9월 18일에 평양을 방문하여 자신의 접견을 받은 다이빙궈(戴秉國) 특사를 통해 자신의 대미회담 추진방침을 이미 중국 지도부에 전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중국 지도부가 특사파견을 통해 전달받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회담 추진방침에 대한 입장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할 차례가 되었는데, 그 임무를 맡은 사람이 원자바오 총리다.

백화원 담화가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보는 까닭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회담 추진방침과 중국 지도부의 6자회담 재개방침이 그 담화에서 상호조율되어 ‘중요한 합의’와 ‘커다란 진전’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가 지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회담 추진방침

백화원 담화에 대한 <조선중앙통신>과 <신화통신> 보도를 읽어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회담 추진방침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조선중앙통신>은 “조미회담 결과를 보고”라는 말로 표현하였고, <신화통신> 영문기사는 “조미관계의 진전에 의거하여”라는 말로 표현하였는데, 그 표현에 담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진의는 미국이 북미(조미)양자회담에서 과연 대북관계를 진전시키는지 지켜본 뒤에 다자회담에 나선다는 뜻이다.

여기서 지켜본다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미양자회담을 대하는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대통령의 태도를 지켜볼 것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북측이 미국을 상대해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것이니 중국은 북미양자회담이 어떻게 추진되는지 보고 있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파탄된 6자회담을 재개해보겠다고 무리수를 두지 말라는 뜻을 중국 지도부에게 암시한 것이다.

둘째, “조미관계의 진전”이라는 표현에 담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진의를 이해하려면, 그가 2009년 9월 18일 다이빙궈 특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해 미국과 대화하여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였던 담화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미(조미)관계의 진전이라는 말은 곧 한반도 근본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북미양자회담에서 북미관계가 진전되어야 한다는 말은, 그 회담에서 한반도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한 한반도 근본문제는 미국의 주한미국군 전면철군 문제와 그에 상응하는 북측의 핵포기 문제다. 그가 백화원 담화에서 “조미 두 나라의 적대관계는 반드시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말도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백화원 담화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미회담 결과를 보고 다자회담을 진행하겠다”고 말한 것은, 머지 않아 시작될 북미양자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만일 북미관계를 진전시키지 않으면 다자회담을 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백화원 담화발언에서 강조점은 북측이 다자회담에 나서겠다는 의사표명에 찍혀있는 것이 아니라 북미관계를 진전시켜 한반도 근본문제를 해결할 북미양자회담을 촉구하는 것에 찍혀있다.

그러면 백화원 담화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무슨 문제를 제기했을까? 2009년 10월 6일 <신화통신> 베이징발 기사는, 귀국길에 오른 양제츠 외교부장이 “6자회담은 모든 관련당사자들이 노력해야 할, 위에서 언급한 목표들을 실현하는 효과적인 장치(effective mechanism)”라고 말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 이것은 세상에 알려진 대로 중국이 6자회담을 중시하고 있음을 재론한 것이다. 2009년 10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조선은 6자회담에 반대의사를 보이지 않았고, 양자대화와 다자대화를 통해 문제를 맞닥드리려는(tackle) 의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그가 백화원 담화에서 6자회담 재개문제를 제기하였음을 뜻한다.

원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9년 9월 18일 평양을 방문한 다이빙궈 특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양자 또는 다자대화를 통해 해결하기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6자회담은 언급하지 않았고, 이번에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기간 중에 열린 총리회담에서 김영일 내각 총리 역시 “조선은 다자 및 양자대화를 통해 비핵화 목표를 실현한다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6자회담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화원 담화에서 “다자회담에는 6자회담도 포함되여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2009년 10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공동기자회견에서 나온 원자바오 총리의 표현을 빌리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자회담 문제에 대해 유연성을 보인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의 6자회담 재개제안을 반대하지 않는 외교적 유연성을 취하였으나, 6자회담에 다시 나서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북중 두 나라 언론보도에 나온 백화원 담화발언들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미양자회담을 우선하고 그 회담결과에 따라 다자회담을 추진하는 방침을 중국 지도부에 제시하였고, 원자바오 총리는 6자회담 재개문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기하였다. 결국 백화원 담화는, 원자바오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대미회담 추진방침을 찬동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원자바오 총리가 제기한 6자회담 재개문제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결속되었다.

2009년 10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대미회담 추진방침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지지의사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중국은 모든 당사자들이 양자대화를 통해 이해와 신뢰를 증진하는 것을 언제나 환영하였다. 우리는 조선과 미국이 진지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지지한다.”

북측과 중국이 합의한 새로운 회담전략

백화원 담화의 의의는, 중국 지도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회담 추진방침을 지지함으로써 북측과 중국이 새로운 회담전략을 합의하였다는 데 있다. 북측과 중국이 합의한 새로운 회담전략은, 북미양자회담을 우선하고 그 회담결과에 따라 다자회담 개시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백화원 담화에서 북측과 중국이 합의한 새로운 회담전략에 따르면, 북측이 우선적으로 추진하려는 북미양자회담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미정상회담이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는 북측이 추진하려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지지의사를 표명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지도부는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강하게 제기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미국군이 철군하는 것은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되므로, 중국 지도부가 북측의 북미정상회담 추진방침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른 한편, 백화원 담화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원자바오 총리가 제기한 6자회담 재개문제를 외교적으로 처리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들의 6자회담 재개제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중국 지도부는 그가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것이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원자바오 총리는 10월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공동기자회견에서 “기회를 제대로 틀어쥐지 못하면 (6자회담이) 사라질 수 있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백화원 담화 이후, 중국이 걱정하는 것과 비교되지 않을만큼 심한 충격을 받은 쪽은 미국이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백화원 담화의 진상을 파악하고, 그만 아연실색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2009년 10월 7일 <연합뉴스>는 백악관과 국무부가 백화원 담화에 대해 “공식논평을 유보하며 극도로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사정이 이러한 데도, 남측 보수언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화원 담화에서 6자회담에 조건부로 복귀할 의사를 표명한 것처럼 엉터리 보도를 내놓았다. 지난 9월 1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이빙궈 특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담화한 것에 대해 남측 보수언론은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을 시사하였다”는 엉터리 보도를 내놓았는데,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북측이 6자회담에 조건부로 복귀할 의사를 표명하였다”는 엉터리 보도를 내놓은 것이다.

남측 보수언론이 백화원 담화에 대해 그처럼 엉터리 보도를 내놓은 까닭은, 미국 국무부가 집착하는 북측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요구를 맹종하기 때문이다. 2009년 9월 30일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동아시아포럼 웹싸이트에 실린 자신의 대담에서, 자신이 방북하면 북측이 6자회담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을 말하겠다고 하면서, 6자회담 틀 안에서 진행될 양자대화의 목표는 북측을 6자회담으로 복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같은 날 서울을 방문 중인 제임스 스타인버그(James B. Steinberg) 국무부 부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양자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북측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미국의 요구에 열심히 맞장구를 치고 있다. 그는 발언기회를 잡을 때마다 ‘복귀요구’를 꺼내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2009년 10월 9일 청와대에서 한일정상회담을 가진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국제사회에 형성되고 있다. 북한이 북미회담을 통해서 6자회담에 나올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과 중국이 백화원 담화에서 새로운 회담전략을 합의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맞장구치는 미국의 ‘복귀요구’가 얼마나 허망한 낭설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북측과 중국이 백화원 담화에서 새로운 회담전략을 합의한 것도 알지 못하고, 생뚱맞은 ‘복귀요구’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에게 복귀하는 것은 실패밖에 없다.

북측과 중국의 총리회담이 예고한 경제협력 발전전망

2009년 10월 4일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일정 첫날, 김영일 총리와 원자바오 총리는 만수대의사당에서 총리회담을 진행하였다. 총리회담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합의를 이끌어냈는지는 두 나라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나, 아래와 같은 사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첫째, 북측과 중국이 총리회담에서 합의한 것은, 국제사회에 놀라움을 안겨주는 특별한 조치들이었다. 우선 중국이 북측을 위해 취한 특별조치부터 알아보면, 북측에 막대한 규모로 무상지원을 보내는 것이다.

2003년 10월 29일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방북할 때는 5천만 달러 무상지원을 보냈고, 2005년 10월 28일 후진타오 주석이 방북할 때는 2천400만 달러 무상지원을 보냈고, 2008년 6월 17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방북할 때는 1천500만 달러 무상지원을 보냈는데, 이번에 원자바오 총리는 무려 3억 달러 무상지원을 보내기로 하였다. 2009년 10월 8일 <한국경제> 보도에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중국이 보내는 3억 달러 지원물자 가운데 2억 달러는 석유, 식량, 생필품이고, 나머지 1억 달러는 통신설비와 장비라고 한다.

주목하는 것은, 중국이 북측에 보내는 무상지원이 미국이 주도해오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를 불능화하는 특별조치로 된다는 점이다. 북측 경제는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이기 때문에 미국이 아무리 대북제재를 가해도 사실상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현실로 입증되었는데, 이번에 중국이 북측에게 무상지원을 보내는 것은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를 명목상으로도 완전히 불능화해버린 것이다.

중미관계를 의식해야 하는 중국은 유엔안보리에 나가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해서는 북중관계를 의식해서 대북제재를 불능화하는 상반된 조치를 취하였다. 중국이 취한 그러한 모순된 행동은, 유엔안보리에서 대북제재를 찬성하였다가 나중에 평양에 가서 그것을 조용히 뒤집어버리는 외교수완의 일종이다. 격돌하는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중국의 행동은 이른바 실리외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를 불능화하면서 3억 달러 무상지원을 북측에 보내기로 하였을까? 그것은 북측이 3억 달러가 훨씬 넘는 엄청난 경제이익을 중국에게 안겨줄 특별한 경제협력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남측 보수언론은 중국이 북측에 보내는 무상지원만 보도하고 말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북측에 보내는 무상지원보다 북측이 중국을 위해 취한 특별조치가 더 엄청나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 까닭에, 2009년 10월 6일 원자바오 총리는 방북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일 내각 총리 앞으로 감사전문을 보냈던 것이다. 감사전문에서 그는 “방문에서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고, 양제츠 외교부장도 같은 날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원 총리의 방북은 풍성하고도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흡족해 하였다.

그렇다면 북측이 중국을 위해 취한 특별조치는 무엇일까? 그것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양국 총리가 각각 이끄는 양국 대표단은, 총리회담을 마친 직후에 그 자리에서 각종 외교문서에 서명하는 조인식을 가졌다. 양국 대표단이 조인한 문서는 경제원조에 관한 교환문서, 조약정리 의정서, 경제기술협조협정, 교육기관 사이의 교류협조 합의서, 소프트웨어 산업분야 교류협조 양해문, 국가품질 감독기관 사이의 수출입품 공동검사 의정서, 중국 관광단체의 조선관광 실현에 관한 양해문, 야생동물 보호 협조강화 합의서 등이다. 그 자리에서 조인한 각종 문서에 어떤 조항이 있는지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나, 언론보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북측이 중국에게 압록강 대교를 건설하고 라진항 부두를 사용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이것은 북중관계 60년 사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대사변이다.

압록강 대교 건설과 라진항 부두 사용은 북측과 중국의 경제협력을 비상히 촉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그 의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려면, 북측과 중국의 경제발전전략을 각각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측의 경제발전전략은 계획경제와 자립경제를 고도로 발전시켜 사회주의경제강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북측이 당면한 과제는, 국방공업을 중심으로 편성된 중화학공업부문과 첨단산업부문에서 과학기술수준을 끊임없이 높이면서, 농업부문과 경공업부문에 더 많은 힘을 집중하여 인민경제 발전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혁신이다.

북측이 인민경제 발전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려면, 중화학공업부문을 물론이고 농업부문과 경공업부문에서도 생산의 고속화, 기술의 정밀화, 설비의 현대화를 다그쳐야 한다. 이것이 북측에서 추구하는 혁신의 의미다. “혁신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려면, 자체의 과학기술을 “첨단을 돌파하는”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와 경제협력을 강화할 요구도 절실해지는데, 북측이 협력하려는 다른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다.

특히 북측이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면 랴오닝(遼寧)성, 지린(吉林)성, 헤이룽장(黑龍江)성으로 이루어진 동북지방 개발사업에 연계되는 상응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그 상응조치는 중국 동북지방과 지리적으로 맞닿은 한반도 동북쪽과 서북쪽에서 개발사업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한반도 동북쪽을 개발하는 사업은, 이미 1991년 12월 28일에 설치한 라선경제무역지대에서 경제발전을 결정적으로 촉진하는 것이다. 이번에 총리회담에서 북측이 라선경제무역지대의 전략거점인 라진항을 중국이 사용하도록 특별조치를 취한 것은, 북측이 추진하는 경제발전전략과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지방 개발사업이 상호협력의 궤도에 올라섰음을 말해준다.

당연한 일이지만, 북측은 한반도 서북쪽에도 경제무역지대를 설치해야 한다. 이미 2002년 9월 12일에 북측은 132㎢에 이르는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설치한다고 발표하였으나, 특별행정구를 이끌어갈 중국인이 중국 실정법을 위반한 혐의로 중국 사법당국에 검거되는 바람에 신의주 특별행정구 개발사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총리회담에서 북측은 평안북도 신도군에 있는 비단섬에 경제무역지대를 설치하는 계획을 중국에 알렸다고 한다.

한반도 동쪽 끝섬이 동경 131도 52분 40초에 자리잡은 독도라면, 한반도 서쪽 끝섬은 동경 124도 10분 47초에 자리잡은 비단섬이다. 여의도보다 7.7배가 큰 비단섬은 여러 섬들을 제방으로 연결하여 만든 인공섬이다. 북측의 용암포와 중국의 둥강(東港)에서 가까운 비단섬은 압록강이 서해로 빠져나가는 곳에 있는 전략요충지다.

둘째, 북측의 경제발전전략과 다르게, 중국의 경제발전전략은 기존의 노동집약형 경공업에서 벗어나 현대화된 중화학공업과 첨단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2009년 2월 25일 원자바오 총리가 주재한 국무원 상무회의는 21세기에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갈 10대 산업진흥계획을 확정하였는데, 철강, 비철금속, 자동차, 선박, 석유화학, 장비제조, 전자정보, 경공업, 방직, 유통업을 발전시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0대 산업부문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는 2007년에 중국 공업생산의 부가가치에서 80%를 차지하였으며,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3분의 1을 차지하였으며, 세금수입의 37.4%를 차지하였으며, 3천615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는 고용효과를 가져왔다.

중국이 10대 산업진흥계획을 펼칠 주된 터전은 동북지방이다. 2009년 9월 17일 원자바오 총리가 주재한 국무원 상무회의는 ‘동북지방 노후산업기지 진흥에 관한 계획’을 승인하였다. 이 계획은 동북지방에 현대화된 철강, 석유, 자동차, 장비제조를 위한 산업기반을 구축하고, 현대화된 농업기반을 구축하며,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자원절약형 도시를 건설하며, 녹색경제와 생태환경을 보호하고,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개혁개방을 심화시키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계획을 추진하는 영도소조(task force) 조장은 원자바오 총리가 맡았고, 부조장은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맡았다. 총리와 부총리가 동북지방 개발에 나선 것을 보면, 중국이 동북지방 개발에 얼마나 힘쓰는지 알 수 있다.

중국이 동북지방을 개발하려면 물류수송로부터 내야 하는데, 동북지방에서 바다로 나가는 전략거점은 랴오동(遼東)반도 끝에 있는 남만주철도의 시발점이자 서해로 나가는 출해관문인 다롄(大連)이다. 그런데 다롄만 개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판을 넓혀 랴오닝성 연해경제권을 개발해야 한다.

2009년 7월 1일 원자바오 총리가 주재한 국무원 상무회의는 ‘랴오닝성 연해경제권 발전계획’을 승인하였는데, 그 발전계획에 따르면, 다롄, 단둥(丹東), 진저우(錦州), 잉커우(營口), 판진(盤錦), 후루다오(葫蘆島)를 잇는 연해경제권을 개발하고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석유산업, 전자정보산업, 의약산업, 해양산업, 생태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랴오닝성 연해경제권은 베이징과 텐진(天津) 그리고 산둥(山東)성, 랴오닝성, 허베이(河北)성을 잇는 거대한 환발해(環渤海)경제권 안에 포괄된다.

랴오닝성 연해경제권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두 전략거점은 다롄과 단둥이다. 중국은 단둥이 자리잡은 압록강 하구에 97㎢에 이르는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워두었는데, 중국이 압록강 하구를 개발하려면 압록강 대교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2007년 12월 17일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이 방북하였을 때 압록강 대교 건설문제를 북측에 제기하였다. 당시 중국은 신의주 남부와 단둥의 랑터우(浪頭)항을 잇는 압록강 대교를 건설하는 제안을 내놓았는데, 북측은 위화도를 통과하는 압록강 대교를 건설하는 제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숙원을 풀었고, 북측은 추진동력을 하나 더 얻었다

북측과 중국이 압록강 대교를 건설하기로 합의한 것은 중국이 추진하는 랴오닝성 연해경제권 개발에 힘을 실어주는 것인데, 중국의 고민거리는 동북지방에서 동해로 나가는 출해관문이 없는 것이다.

1991년 12월 28일 북측이 라선경제무역지대를 설치하였을 때, 중국은 1992년 3월 9일 14개 변경도시에 변경경제합작구를 설치하면서 지린성 훈춘(琿春)을 변경경제합작구에 포함시켰다. 훈춘에 변경경제합작구가 설치되고 17년이 지났는데, 처음에 기대한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한 까닭은, 동북지방에서 동해로 나가는 출해관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총리회담에서 북측은 중국에게 라진항 사용을 허락한 특별조치를 취하였다. 이것은 중국이 동북지방과 동해를 연결하는 차항출해(借港出海)방침을 마침내 실현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이 라진항 사용허가를 받기 전에 러시아가 한 발 먼저 라진항 사용허가를 받은 것이다. 러시아는 라진항 3호 부두와 4호 부두 사용허가를 받았고, 그에 질세라 중국은 라진항 1호 부두 사용허가를 받았다. 지금 러시아는 4호 부두 건설공사를 하는 중이며, 중국은 1호 부두의 연간 하역능력을 100만t으로 올려세우는 확장공사를 곧 시작할 것이다.

러시아는 라진항을 사용하는 대가로 공사비 1억9천500만 달러가 들어가는 라진-하싼을 잇는 길이 54km의 국제철도를 2012년까지 완공하는 목표를 세우고 2008년 10월 4일에 착공하여 현재 부설하는 중이며, 중국은 라진항을 사용하는 대가로 라진-훈춘을 잇는 93km의 국제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공사를 시작하게 된다.

라진-하싼 국제철도가 개통되면, 라진항에서 출발하여 모스크바에 이르는 길이 9천334km의 ‘비단철도’를 축으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자원보고인 동시베리아를 개발하는 러시아의 숙원이 풀리는 것이며, 라진-훈춘 국제고속도로가 개통되면, 1억839만 명이 살고 총면적이 79만3300㎢나 되는 동북지방 곳곳에 중화학공업과 첨단산업의 전략기지를 세우는 중국의 숙원이 풀리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가 라진항을 시발점으로 한 ‘비단철도’를 완공하는 것은 태평양과 유라시아대륙을 잇는 세계에서 가장 긴 물류수송망을 설치하는 것이며, 중국이 라진-훈춘 국제고속도로를 개통하고 압록강 대교를 건설하는 것은 동북지방 개발을 결정적으로 촉진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2008년 11월 3일 <통일뉴스>에 실린 나의 글 ‘비단철도의 긴한목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에서 논한 바 있다.

라선경제무역지대는 한반도 동북쪽에서 북중러 3국이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에 비례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새로 설치할 비단섬경제무역지대도 한반도 서북쪽에서 북측과 중국이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에 비례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외부에서는 북측이 경제무역지대를 설치하는 것을 두고 시장경제로 전환한 중국식 경제특구를 따라가는 ‘개혁개방의 신호탄’이라고 오판하지만, 그것은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라선경제무역지대법 제1장 제1조에 나와있는 대로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협력과 교류를 확대발전시키는” 것으로 계획경제와 자립경제의 고도발전에 이바지할 ‘조선식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것이다.

생산의 고속화, 기술의 정밀화, 설비의 현대화를 다그쳐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놓겠다”고 선언한 북측은,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기간에 두 나라 사이에서 제기된 각종 경제현안을 해결함으로써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는 추진동력을 하나 더 얻었다. (2009년 10월 5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