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의 악순환이 빚어낸 대북정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09년 5월 6일에 발표된 대북정보문서

내외언론에 가끔 보도되는 미국 국가정보기관은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 정도인데, 미국 연방정부 안에는 그 밖에도 14개 국가정보기관이 더 있다. 국방부 산하에 군정보기관이 8개나 있고, 법무부와 국토안보부 산하에 정보기관이 각각 2개씩 있고, 국무부, 재무부, 동력자원부 산하에 각각 1개씩 있고, 중앙정보국까지 있으니, 모두 16개 정보기관이 연방정부에 속해 있는 것이다.

1981년 12월 4일 당시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은 16개 정보기관들이 국가안보와 국제관계에 관련된 정보업무에서 불필요한 경쟁과 혼선을 피하고 서로 협의하는 기구를 창설하였으니, 그것이 미국 정보협력체(United States Intelligence Community)다.

16개 정보기관으로 구성된 정보협력체의 협의과정을 조절하면서 국가정보사업을 감독, 지휘하는 기관은 2005년 4월 22일에 창설된 국가정보국장실(Office of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인데, 2009년 1월 28일 오바마 대통령이 제3대 국가정보국장으로 임명한 사람은 데니스 블레어(Dennis C. Blair)다. 그는 1996년 9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미국군 합동참모본부 실장(DJS)을 지냈고, 1999년 2월부터 2002년 5월까지 태평양군사령관을 지내고 군복을 벗은 해군제독 출신이다. 국가정보국장실은 16개 정보기관들의 합치된 정보판단을 종합하여 비공개 정보문서인 국가정보평가보고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를 작성한다.

국가정보국장실에 소속되어 공개자료정보(open source intelligence)를 다루는 실무책임자는, 정보수집부문에 배치된 부국장보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국가공개자료정보 담당 부국장보(Assistant Deputy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for Open Source)다. 그가 관장하는 부서는 국가공개자료기획실(National Open Source Enterprise)과 공개자료실(Open Source Center)이다. 공개자료실은 중앙정보국이 1941년에 산하부서로 창설한 대외방송정보실(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을 흡수하여 2005년 11월 1일에 확대 창설되었는데, 국가정보담당관들과 연방정부관리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각종 고급정보를 제공한다.

공개자료실이 제공하는 정보분석은 미국 정부의 정세인식과 정책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공개자료실이 발표한 문서들을 읽어보면, 미국 정부가 정보판단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공개 정보문서보다 훨씬 더 ‘권위’를 가진 비공개 정보문서가 있지만, 양자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2009년 5월 6일 공개자료실이 자기 웹싸이트에 피디에프(pdf) 파일로 올려놓은 20쪽에 이르는 장문의 대북정보문서가 있다. 제목은 ‘북코리아 언론활동이 암시한 세습후계자를 위한 장기계획(North Korean Media Campaign Suggests Long-Term Planning for Hereditary Successor)’으로 되어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대북정보문서에 관해서는 <워싱턴포스트> 2009년 7월 16일자 보도에서 언급된 바 있고, 2009년 7월 2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축약,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이튿날 <연합뉴스>도 <합동통신(AP)> 워싱턴발 기사를 인용하여 그 대북정보문서에 관해 보도하였다.

원래 공개자료실이 운영하는 자체 웹싸이트는 미국 정부관리들만 들어가 볼 수 있도록 열람범위가 제한되어 있는데, 미국 정부의 비밀정책을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미국과학자협회(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의 정부비밀대책활동(Project on Government Secrecy) 책임자 스티븐 애프터굿(Steven Aftergood)이 운영하는 웹싸이트 <비밀보도(Secrecy News)>에서 위의 대북정보문서 전문을 공개하였다.

공개자료실이 펴낸 대북정보문서 ‘북코리아 언론활동이 암시한 세습후계자를 위한 장기계획’(이하 대북정보문서로 약칭함)에 주목하는 까닭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 문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문제를 미국 정부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공개자료실의 상급기관인 국가정보국장실은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대북정보를 직보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므로, 대북정보문서에 담겨있는 후계문제에 대한 정보분석은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정세인식을 사실상 규정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대북정보문서가 분석대상으로 삼은 북측의 공개자료라는 것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의 텔레비전방송과 라디오방송에 나온 기사들이다. 물론 대북정보문서는 공개정보를 분석하여 불특정한 미국 정부관리들에게 제공한 것인데 비해,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고되는 대북정보문서는 비공개 정보를 분석한 것에 기초하여 별도로 작성되겠지만, 정보분석의 기본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1년 7월 21일에 ‘첫 번째 중요신호’를 보냈을까?

대북정보문서는 북측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문제에 관한 암시적 선전사업이 시작된 때를 2001년이라고 보았다. 국가정보국장실의 대북정보담당관들은 2001년 7월 21일자 <로동신문>에 ‘빛나는 계승’이라는 제목의 정론이 실린 것을 보고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로동신문>에 정론 ‘빛나는 계승’이 실린 것은, 대북정보문서의 표현을 빌리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문제에 관한 암시적 선전사업을 시작하였음을 말해준 ‘첫 번째 중요신호(the first major signal)’였다는 것이다.

대북정보문서가 정론 ‘빛나는 계승’에서 주목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승리하는 혁명에는 위대한 전통이 있다. 전통이 없는 혁명, 전통을 계승해나가지 않는 혁명은 죽은 혁명이다. 아무리 위대한 전통이나 창조적 유산도 다음 세대들이 그 귀중한 가치를 잘 알고 그대로 계승해나가야지 그것을 잊어버리거나 변형시키거나 부정하면 지나온 력사만이 아니라 미래마저 잃는다.”

대북정보문서는, 정론 ‘빛나는 계승’만이 아니라 2002년 7월 15일 북측의 문학예술출판사가 펴낸 백남룡이 쓴 장편소설 ‘계승자’도 후계문제를 암시한 문학작품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만일 대북정보문서가 지적한 정론이나 장편소설에 어떤 암시가 들어있다면, 정작 그 글을 읽는 북측 인민들은 알 수 없고 국가정보국장실만 알아차릴 수 있는 중요한 암시가 북측의 신문기사나 문학작품에 실렸다는 말인데, 그러한 발상 자체가 허무맹랑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정보문서의 그러한 황당한 해석은, 수령의 후계문제와 후대의 혁명전통 계승문제를 혼동한 데서 빚어진 오류다. 정론 ‘빛나는 계승’의 논제나 장편소설 ‘계승자’의 주제는 한결같이 청년세대가 혁명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다. 정론 ‘빛나는 계승’이나 장편소설 ‘계승자’에서 수령의 후계문제에 대한 암시는 찾을 수 없다. 물론 수령의 후계문제와 후대의 혁명전통 계승문제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양자를 동일차원에 놓고 이해하는 것은 명백한 오해다.

그렇다면 대북정보문서 작성자들이 수령의 후계문제와 후대의 혁명전통 계승문제를 혼동한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그들이 북측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60돐을 맞았던 2002년의 의의를 수령의 후계문제와 결부시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2002년 2월 16일이 오기 전에 북측에서 수령의 후계문제와 관련된 어떤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후대의 혁명전통 계승문제를 논한 글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수령의 후계문제에 관한 암시가 보인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은 주관주의인데, 대북정보문서야말로 주관주의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우리말과 영어의 언어적 차이가 자의적 해석의 오류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북측에서는 계승이라는 말과 후계라는 말을 구분해서 쓰지만, 미국에서는 그 말을 구분하지 않고 ‘succession’이라는 말로 통일하여 쓴다. ‘succession’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계승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것이고, 북측에서 특수개념으로 쓰는 후계라는 뜻으로는 번역되지 않는다. 북측에서 특수개념으로 쓰는 후계라는 뜻에 꼭 들어맞는 영어낱말은 없다. 후계라는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체와 자주 또는 민중과 민족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는 영어낱말도 없다.

그런 까닭에 영어에서는 후계자라는 말과 계승자라는 말이 구분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백남룡이 쓴 장편소설 제목 ‘계승자’를 영역하면 ‘The Successor’가 되는데, 미국인들은 이것을 후계자라는 뜻으로도 읽는다. 계승자와 후계자를 구분하지 못한 국가정보국장실 대북정보담당관들은, 북측에서 ‘계승자’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 나오자 북측이 후계문제를 암시하는 선전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해석하는 오류에 빠졌던 것이다.

‘강선의 불길’은 암시가 아니라 명시다

대북정보문서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주목한 분석대상은, 2008년 11월 6일자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강선의 불길’이다. 강선이라는 지명은 평안남도 천리마군에 있는, 북측의 대표적인 제강공장인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뜻한다. 북측에서 강선이라는 지명과 천리마운동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고, 사회주의경제건설과 천리마운동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김일성 주석은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20여 회나 찾아가 현지지도를 하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5회 이상 찾아가 현지지도를 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정전협정을 조인한지 1주일이 되는 1953년 8월 3일,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아 무너진 그 공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가 공장부지에 뒤덮인 잔해들을 두 시간 동안 헤쳐가며 도보시찰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후세에 전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56년 12월 김일성 주석은 그 공장을 다시 찾았다. 그는 강선의 노동자들에게 강재를 1만톤만 더 생산하면 나라의 경제건설을 크게 촉진시킬 수 있다고 호소하였고, 노동자들은 그 호소에 따라 생산조직개선과 대중역량발동에 온힘을 집중한 결과 공칭능력이 6만톤밖에 되지 않는 분괴압연기를 돌려 12만톤을 생산하는 ‘기적’을 일으켰고, 1968년에는 생산량이 45만톤에 이르렀다. 그러한 ‘기적’ 속에서 ‘강선속도’가 창조되었으며,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라는 진리가 입증되었다. 이것이 천리마운동의 시작이었다. 천리마운동은 1957년에 시작되어 1961년에 마치도록 되었던 제1차 5개년계획을 1년 앞당겨 1960년에 목표를 달성하도록 이끌었다.

2008년은 천리마운동이 시작된 1958년으로부터 꼭 반세기가 되는 해였다. 2008년 4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천리마운동 50주년을 맞은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찾아가 현지지도를 하였는데, 현지지도 이후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서 또 다시 ‘기적’이 일어났다. 2008년 7월 31일 그 기업소에서는 초고전력 전기로 동체를 조립하였고, 10월 31일에는 초고전력 전기로 조업식이 현장에서 열렸다. 생산속도를 15배나 높이고 전력소비량은 7분의 1 수준으로 줄인 현대화된 초고전력 전기로를 완성한 것은 자체기술로 이루어낸 커다란 성과였다. 증산투쟁만 강조하였던 소련의 스타하노프운동이나 중국의 대약진운동은 결국 실패하여 과거사로 잠들었지만, 증산투쟁과 함께 사상교양을 강조하며 새로운 유형의 사회주의건설을 추동한 천리마운동의 자력갱생노선은 5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2008년 12월 24일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력갱생의 승리’를 또 다시 쟁취한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였음을 보도하였고, 그 기업소 종업원들은 12월 28일에 궐기모임을 열고 ‘전국의 근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2008년 12월 30일자 <로동신문>은 ‘강선의 본때로 용감무쌍하게 앞으로! -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봉화를 추켜든 강선로동계급의 편지에 화답하여’라는 제목의 정론을 실었다. ‘강선’에서 불붙은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봉화’는 북측의 생산현장 곳곳에서 근로대중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를 관철하자고 결의하는 수많은 궐기모임으로 이끌었다.

북측 전역에서 근로대중의 열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2009년 5월 4일자 <로동신문> 사설은 ‘150일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2009년 9월 11일자 <로동신문>은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서 150일 전투목표를 성과적으로 돌파하였음을 보도하였다. 2008년 11월 6일자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강선의 불길’은, 이처럼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봉화’에 불을 붙인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노동자들이 실현한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의 현대화와 혁명위업 계승문제”를 논한 글이다.

그런데 대북정보문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direct allusion)’가 그 정론에 들어있다고 보았다. 대북정보문서가 ‘직접적인 암시’라고 지적한 대목을 옮기면 이렇다. “흙 한 줌을 손에 쥐여보아도 천리마시대 강선사람들이 흘린 무수한 땀들이 손을 척척하게 해줄 것만 같은 영웅의 땅에 21세기 강선의 새 모습을 펼치는 사람들, 그들이 과연 누구인가. 강선의 현대화를 위한 돌격전에 붉은 기발을 들고 나선 력사의 주인공들, 그들의 평균나이는 25살이다. 평균나이 25살. 이 얼마나 가슴을 쩡하게 울려주는 현실인가. 그렇다. 혁명의 3세, 4세들이 강선땅에서 혁명위업계승의 불길을 높이 추켜들었다. (줄임) 돌격대옷을 땀으로 적신 위훈자의 손을 잡고 동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고 물으면 나는 누구의 손자라고 말하며 할아버지의 이름을 외운다. 강선의 현대화에 벽돌 한 장이라도 쌓겠다고 달려나온 학생소년들에게 할아버지가 누구인가 물으면 《우리는 <천리마기수>들의 증손자들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대북정보문서는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평균나이 25살이 2008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3남의 나이와 같다고 지적하면서, 정론 ‘강선의 불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를 암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3남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국의 대북정보담당관들이 그의 나이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더욱이 위의 인용문을 다시 읽어보면, 정론 ‘강선의 불길’은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현대화사업에 힘쓴, 평균나이 25살에 해당하는 천리마세대의 손자들인 청년들(혁명의 3세)만 언급한 것이 아니라, 그 기업소 현대화사업을 지원한, 평균나이 15살에 해당할 것으로 보이는 천리마세대의 증손자들인 청소년(혁명의 4세)들도 언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혁명의 3세’인 청년 노동자들과 ‘혁명의 4세’인 청소년 학생들을 함께 언급한 것이야말로 정론 ‘강선의 불길’이 혁명위업 계승문제를 명시적으로 논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혁명위업을 계승하는 ‘혁명의 3세와 4세’에 대해 논한 정론을 수령의 후계자가 누구인지를 암시한 글이라고 주장한 대북정보문서의 해석은 오류다.

북측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67돐을 맞은 2009년 2월 16일, <로동신문>은 ‘위대한 당의 령도 따라 부강조국의 찬란한 래일을 위하여 힘차게 싸워나가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그런데 대북정보문서는 그 사설 역시 수령의 후계문제를 암시하였다고 해석하였다. 그 사설에서 대북정보문서가 주목한 것은, “선군조선의 양양한 미래는 위대한 김정일 동지께서 키우신 혁명의 믿음직한 계승자의 대부대에 의해서 담보되고 있다”고 쓴 대목이다. 대북정보문서에 따르면, ‘혁명의 믿음직한 계승자를 키우셨다’는 표현이 후계자를 키웠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 사설도 혁명의 계승자들에 대해 쓴 것이지 수령의 후계자를 암시한 것은 아니다.

‘혁명의 3세, 4세’에 대해 쓴 글은 2006년 2월 28일자 <로동신문>에도 실린 바 있고, ‘강선의 노동계급’에 대해 쓴 글은 2008년 1월 18일자 <로동신문>에 ‘강선의 붉은 노을 안고 살자’는 제목으로 실린 바 있고, 청년세대의 혁명위업계승에 대해 쓴 글은 2008년 3월 28일자 <로동신문>에 ‘조국은 청년영웅을 부른다’는 제목으로 실린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2008년 11월 6일자 정론이나 2009년 2월 16일자 사설이 후계문제를 직접적으로 암시하였다고 본 대북정보문서의 해석이 오류임을 알 수 있다.

사실이 밝혀져도 되풀이되는 맹신의 비극

2009년 4월 5일 새벽시간에 나온 <조선중앙통신> 보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건공사를 마친 평양대극장을 현지지도한 기사가 실렸다. 평양특별시 중구역에 있는 평양대극장은, 2천190석이 배치된 객석공간과 2천 명 이상이 공연할 수 있는 무대공간, 그리고 700석 소극장을 갖춘 대표적인 공연장인데, 개건공사를 마치고 2009년 4월 3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대극장 현지지도와 관련하여 대북정보문서가 주목하는 사실은, 평양대극장이 1961년에 조선로동당 제4차 대회가 열렸던 곳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대극장 완공 직전에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으며, 평양대극장 개건공사는 정론 ‘강선의 불길’이 발표된 시점에 맞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대북정보문서는 이러한 사실을 열거하면서 제4차 당대회 개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당, 평양대극장 개건공사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는 가정을 꺼내놓았지만, 그러한 가정은 자의적인 해석이다.

조선로동당 제4차 당대회가 1961년 9월 11일부터 9월 18일까지 평양대극장에서 열린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종합대학 2학년 재학시기인 1961년 7월 22일에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며, 평양대극장 개건공사를 반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마쳤다는 북측 언론보도를 보면, 2008년 11월 6일자 <로동신문>에 정론 ‘강선의 불길’이 발표된 무렵에 평양대극장 개건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위의 세 가지 사실들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억측이다.

이처럼 대북정보문서가 2008년 11월 6일에 발표된 정론 ‘강선의 불길’, 2009년 2월 16일자 <로동신문> 사설, 그리고 2009년 4월 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대극장 현지지도를 수령의 후계문제와 결부시키면서 자의적 해석의 오류를 빚어낸 근본원인은, 건강이상설을 기정사실로 믿어버린 국가정보국장실의 맹신에 있다. 건강이상설을 맹신한 국가정보국장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문제 결정을 서두를 수밖에 없으리라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후계문제에 관한 정보수집에 열을 올렸고, 그에 질세라 보수언론들도 취재경쟁에 앞을 다투었다.

그러한 사정을 간파한 제보자들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허위사실을 그럴 듯하게 날조하여 미국 국가정보기관 정보원들과 보수언론 취재기자들에게 사례금을 받고 팔아먹었다. 대북정보문서는 사례금에 눈이 먼 제보자들이 팔아먹은 엉터리 정보를 믿는 맹신의 비극을 낳았고, 건강이상설이나 후계문제에 관한 온갖 보도들은 특종을 노리는 보수언론들이 사례금에 눈이 먼 제보자들의 엉터리 정보를 믿는 맹신의 비극을 낳았다.

맹신의 비극은 정보부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군사부문에까지 파급되었다. 2009년 6월 8일부터 6월 11일까지 남측의 국방정보본부와 미국의 국방정보국 관계자들이 특별정보교류협의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양측 군정보요원들은 북측의 후계과정에서 이른바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국가정보국장 데니스 블레어는 2009년 2월 12일 연방상원 정보위원회 국가위협평가 청문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최근 상당히 회복되었다”고 썼다. 이것은 2009년 1월 23일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중국공산당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이 베이징에 돌아간 뒤에 중국 정부당국이 미국 정부당국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통보한 뒤에 말을 슬쩍 바꾼 것이다.

그러나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만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하였다. 이를테면, 2008년 9월 9일 북측에서 열린 공화국 창건 60주년 경축행사에 참석한 직후 그의 접견을 받은 이탈리아 국제관계연구소 장까를로 발로리(Giancarlo E. Valori) 사무총장, 2009년 8월 4일 그의 접견을 받은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전 대통령, 2009년 8월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함께 그의 접견을 받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2009년 9월 8일 그의 접견을 받은 러시아의 21세기 관현악단 파벨 오브샤니코브(Pavel B. Ovsyannikov) 단장 겸 수석지휘자가 평양방문 직후 제각기 언론에 밝힌 내용은 건강이상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2009년 9월 10일 일본 <교도통신> 방북단을 접견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후계문제에 관한 방북단의 질문에 대해 “현 시점에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지만,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헛소문으로 판명된 건강이상설에 대한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한 그들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맹신의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오판과 억측에 표절의혹까지

대북정보문서에서 드러난 대북정보담당관리들의 정보판단은 정상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오판와 억측이다. 국가정보국장실이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고하는 대북정보가 대북정책의 판단근거로 된다는 사실은 설명하지 않아도 명백한데, 오바마 대통령과 각료들이 오판과 억측으로 꾸며진 대북정보문서를 놓고 대북정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정책이 왜 똑같은 오류를 반복적으로 저질러왔는지, 그 원인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과 각료들이 오판과 억측으로 꾸며진 대북정보문서에 의존하는 충격적인 현실은, 미국이 대북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하게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애요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북정보문서가 오판와 억측으로 꾸며진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대북정보를 담당한 국가정보국장실 관리들이 북측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국가정보국장실에서 대북정보를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대북담당관(North Korea Mission Manager)은 조셉 디트라니(Joseph R. DeTrani)인데, 그가 할 줄 아는 외국어는 중국어와 프랑스어다. 그는 우리말과 영어를 모두 잘하는 이중언어능력을 가진 자신의 보좌관들이 영어로 번역해준 자료를 읽어야 한다. 만일 남측의 국가정보원이 영어를 하지 못하는 관리에게 대미정보를 담당하는 직책을 맡긴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국가정보국장실은 우리말을 하지 못하는 관리에게 대북정보를 담당하는 직책을 맡겼으니 대북정보사업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이중언어 번역관들의 정보처리능력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계승개념과 후계개념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한심한 수준이다. 그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실상 문외한들이 북측의 수많은 공개자료들 가운데서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자의적으로 번역한 정보자료를 제출하면, 대북정보담당관이 그러한 정보자료를 읽고 정보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 결과는 보나 마나 뻔하다.

둘째, 대북정보문서는, 극단적인 반북성향을 지닌 제보자들이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소문 또는 사례금에 눈이 먼 제보자들이 돈을 받고 팔아먹는 날조된 허위사실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반북언론에 의존하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를테면, 대북정보문서에 들어있는 각주는 모두 60개인데, 그 가운데 북측 자료를 인용한 각주는 37개, 공개자료실 자체 자료를 재인용한 각주는 5개이고, 나머지 18개 각주는 반북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기사나 책을 인용한 것들이다. 대북정보문서를 작성하는 관리들 자신이 누구보다 투철한 반북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북측의 어떤 현실을 해석할 때 반북성향의 정보자료를 사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피한 일이다. 바로 이러한 이념적 성향이 북측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가로막고 오판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북측에 관한 헛소문이나 날조정보를 보수언론들이 기사화하면, 미국 관리들이 그것을 영역해서 대북정보분석에 사용하고, 그렇게 둔갑한 대북정보를 미국 언론들이 재인용하여 기사화하면, 그 영문기사를 남측 언론이 다시 우리말로 번역, 인용하여 남측에 보도하는 엄청난 오류의 확대재생산이 끊임없이 악순환되고 있다.

셋째, 대북정보문서가 표절의혹을 불러일으켰음을 지적할 수 있다. 대북정보문서에 들어있는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2008년 11월 6일자 <로동신문>에 실린 정론 ‘강선의 불길’에 대한 그들의 해석이다. 그런데 그 해석은, 2009년 2월 4일 인제대학교 통일학연구소 진희관 소장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가하여 발표한 내용과 똑같다. 진희관 소장은 그 날 발표한 논문에서 정론 ‘강선의 불길’이 “차기 후계구도를 염두에 두고” 발표된 글이며, “후계를 암시하는 은유적 표현”이 들어있다고 주장하면서, 평균나이 25살을 강조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 3남의 나이와 같다”고 지적하였다.

공개정보실이 대북정보문서를 발표한 날은 2009년 5월 6일이고, 진희관 교수가 그 논문을 발표한 날은 2009년 2월 4일이었으니, 시기적으로 보면 진희관 교수의 발표가 석 달이나 앞선다. 똑같은 해석을 담은 대북정보문서가 석 달 뒤에 발표된 것은 우연한 일치였을까? 대북정보문서를 작성한 미국 정부관리들이 진희관 교수의 주장을 출처도 밝히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원래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이 남의 글을 도용하는 표절유혹에 쉽게 빠지는 법이다. 무지와 억측으로 꾸며진 대북정보문서가 표절의혹까지 받게 되었으니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10월 5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