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일 물리노에서 다시 만났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전현직 대통령의 두 번째 밀담

2009년 9월 14일 점심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 있는 유명한 이탈리아 고급식당 일 물리노(Il Mulino)에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다. 그 날 점심시간에 백악관은 그 식당을 통째로 빌렸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보좌관들을 건너편 방으로 보낸 뒤에 배석자 없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그 두 사람은 생선요리, 파스타, 샐러드로 차려진 오찬을 나누면서 1시간 30분이 넘도록 밀담을 이어갔다.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9년 8월 18일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가져온 방북정보를 놓고 밀담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에 뉴욕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두 번째로 밀담한 것이다.

전현직 대통령의 밀담에 호기심이 동한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자 백악관 대변인 로벗 깁스(Robert Gibbs)는 “두 분이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경제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건강보험 개혁문제에 대해서도 대화하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구체적인 대화내용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넘어갔다. 그런데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은, 전현직 대통령의 두 번째 밀담이 오래 전에 계획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로벗 깁스 대변인의 말에 따르면, 8월 18일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있었던 첫 번째 밀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9월 14일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자고 제안하였다는 것인데, 두 번째 밀담은 그 제안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원래 오바마 대통령은 9월 14일 뉴욕 맨해튼의 월가(Wall Street)에 있는 페더럴 홀(Federal Hall)에서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파산 1주년에 즈음하여 미국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문제에 관해 연설하기로 예정되었는데, 그 연설을 위해 뉴욕 맨해튼에 간 길에 인근에 사는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다시 만나 오찬을 겸해 밀담하기로 약조했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텔레비전 방송 <씨엔비씨(CNBC)>나 <뉴욕타임스>와 회견하는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나에게 매우 값진 일”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밀담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전현직 대통령의 뉴욕 밀담이 백악관 밀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전에 백악관 밀담에서 논의하였던 대북문제를 뉴욕 밀담에서 다시 논의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백악관 밀담에 대해서는 2009년 8월 24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전직 대통령의 보고, 전현직 대통령의 밀담’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8월 18일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단둘이 만나 대북문제에 관해 밀담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달 뒤에 한 차례 더 밀담하려고 하였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알려면, 8월 18일 백악관 밀담 이후 9월 14일 뉴욕 밀담에 이르는 근 한 달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관계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관계에서 취한 행동은 미국 언론에 나타나지 않았다. 언론의 촉수가 닿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움직였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지만 미국 언론에 나타난 주목할만한 행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미국 국무부의 대북정책 특별대표 스티븐 보즈워즈(Stephen W. Bosworth)가 베이징, 서울, 도쿄를 차례로 찾아간 순방외교활동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밀담하였던 날로부터 아흐레가 지난 2009년 8월 27일,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 필립 크롤리(Philip Crowley)는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가까운 시일 안에 6자회담 참가국들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국무부 소속 관리이므로, 국무부가 그의 베이징, 서울, 도쿄 순방을 검토한다는 말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그를 베이징, 서울, 도쿄에 보내기로 결정한 방침에 따라 국무부가 순방업무를 처리한다는 뜻이다.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동북아시아 순방여부를 결정할 권한은 국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있으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의 순방여부를 결정한 시점은 국무부가 동북아시아 순방계획을 언론에 공개한 8월 27일 이전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가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순방계획을 언론에 공개하였던 8월 27일, 오바마 대통령은 매사추세츠주 대서양 연안에 있는 여름철 휴양지 말더스 빈녀드(Martha’s Vineyard)에 머물고 있었다. 풍치 좋은 그 섬에서 그는 가족과 함께 8월 24일부터 1주일 동안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위와 같은 8월 일정을 살펴보면, 그가 클린턴 전 대통령과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밀담하였던 8월 18일부터 말더스 빈녀드로 여름휴가를 떠나기 직전인 8월 22일 사이에, 그는 백악관 고위관리들과 숙의한 끝에 대북문제에 관한 어떤 정치방침을 결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한 정치방침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한 정치방침과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동북아시아 순방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판이다.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동북아시아 순방은,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한 정치방침을 포장하고 있는 국무부의 외교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국무부의 공개된 외교활동 너머에 있는, 미국 언론의 촉수가 전혀 닿지 않는 은밀한 곳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한 중대한 정치방침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스워즈의 맥빠진 ‘재탕발언’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국무부의 중간급 관리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무부의 중간급 관리를 언제 어느 곳에 파견할 것인가 하는 실무문제까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 수준의 외교활동을 지휘하는 책임자는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직속상관인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국무장관이다. 백악관이 아니라 국무부가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동북아시아 순방계획을 언론에 공개하였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은 국무부의 중간급 관리를 동북아시아에 보내는 외교활동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차원이 높은 정치방침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한 정치방침은 무엇이었을까? 대통령 집무실에서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외부에서 알 길이 없지만, 그가 결정한 정치방침을 수행하기 위하여 바삐 움직인 국무부의 외교활동을 추적해보면 그 내막에 접근할 수 있다. 해당기간 동안 국무부가 펼친 관련외교활동은 이러하였다.

국무부는 2009년 9월 3일부터 8일까지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동북아시아 순방을 추진하였는데, 그는 9월 4일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기자들 앞에서 그는 “이번 협상결과는 대북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재관여(re-engage)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베이징에서 꺼내놓은 첫 발언은, 마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문제에 관해 아무런 방침도 결정하지 않은 채 한.중.일 3자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고나서 대북문제에 관한 어떤 결정을 내리려고 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중요한 사실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한.중.일 3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순방에 나선 것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한 정치방침 가운데 일부를 한.중.일에 통보하기 위해 순방길에 오른 것이었다. 보스워즈 특별대표가 그 정치방침들 가운데 다른 나라에 통보해줄 수 있는 일부사항을 처음으로 언론에 밝힌 때는, 그가 도쿄에서 순방일정을 모두 마친 9월 8일이었다. 그가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방침 가운데 공개할 수 있는 일부사항을 한.중.일에 먼저 통보하고 맨 나중에 가서 언론에 공개한 것은, 미국 국무부의 외교활동에서 불문율처럼 지켜지는 관행이다. 그는 도쿄에서 기자들에게 “미국은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이 원하는 미국-북한 양자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 앞으로 몇 주 안에 나의 방북여부를 포함한 북핵 대응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서 드러난,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방침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도쿄발언에서 드러난 것은 ‘재탕방침’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래 전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그러한 정치방침을 언론에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한다고 밝힌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도쿄발언은, 양자회담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양자회담과 6자회담을 병행하겠다는 뜻인데, 그러한 병행추진방침은 오바마 정부 출범 직후에 나온 정치방침인 것이다. 이를테면, 2009년 1월 13일 존 케리(John F. Kerry)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이 보낸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6자회담과 양자회담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정치방침을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한다는 정치방침은 이번에 새로 제기된 것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에 이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다. 그래서 2009년 4월 24일 오바마 대통령은 아소다로(麻生太郞) 당시 일본 총리와 국제전화로 통화하면서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가.

또한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평양방문도 이번에 처음으로 제기된 것이 아니다. 그는 2009년 2월 3일부터 7일까지 국무부의 요청에 따라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2009년 2월 말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된 뒤에는 자신의 방북의사를 여러 차례 북측에 전했지만 그 때마다 북측은 그의 방북요청을 거절하였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이 2009년 8월 24일에 제보한 내용을 인용하여 보도한 <연합뉴스> 2009년 8월 25일자 기사에 따르면, 2009년 8월 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전후해 북측은 보스워즈 특별대표와 성 김 6자회담 수석대표의 9월 중 방북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소리(VOA)>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수행하였던 존 포데스타(John D. Podesta)의 말을 인용하여 2009년 9월 12일에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자리에서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평양방문을 건의하였다고 한다. 2009년 9월 14일 국무부 대변인 아이언 켈리(Ian C. Kelly)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았을 때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평양방문 의제가 논의”되었다고 밝혔는데, 북측이 보스워즈 방북을 언제 초청하였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초청은 아주 최근에 왔다”고 답변하였다.

그런데 미국 언론은 국무부가 발표한 양자회담 추진과 특별대표의 평양방문이 마치 대북정책의 전환적 계기인 것처럼 과장하였고, 남측 언론은 미국 언론의 과장해석을 베껴쓰는 데 정신을 팔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사를 평양에 보낼 것인가?

보스워즈 특별대표가 도쿄에서 ‘재탕방침’을 언론에 꺼내놓은 직후인 9월 9일, ‘핵심당국자’라고 표현한 남측 정부의 고위관리가 <연합뉴스> 기자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보스워즈 특별대표가 서울에서 남측 정부 고위관리를 만났을 때, “앞으로 북미대화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있게 될 것인지에 대해 상호의견교환이 있었다”고 한다. 남측 정부 고위관리의 그러한 제보는, 국무부가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방식문제, 다시 말해서 양자회담 추진에 요구되는 외교방식을 한.중.일 고위관리들에게 전하였음을 귀띔해준 것으로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2009년 9월 11일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 필립 크롤리는 기자들에게 “북한과 양자논의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양자회담의 방식과 장소를 앞으로 2주간 안에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한다는 국무부의 공식발언이 나오자,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미국의 중대한 정책변화”라고 평가하였지만, 위에서 논한 대로 양자회담 재개방침은 정책변화가 아니라 ‘재탕방침’에 지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교활동만 바라보면, ‘재탕’을 ‘변화’로 오인하기 쉽다.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한다는 국무부의 공식발언이 나왔을 때, 미국의 극우성향 일간지 <월 스트릿 저널(Wall Street Journal)> 2009년 9월 14일자에는 “김이 또 다시 이겼다(Kim wins another)”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고, 러시아 정부 기관지 <로씨스카야 가제타(Rossiskaya Gazeta)> 2009년 9월 15일자는 “조선이 외교적 승리를 얻었다”고 논평하였다. 그러나 북측의 외교적 승리는 국무부가 꺼내놓은 ‘재탕방침’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측이 이룩한 외교적 승리는, 양자회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될 것인지를 좀 더 분석적으로 고찰해야 드러나는 것이다.

우선 주목하는 것은, 북측과 미국이 양자회담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미국 언론이 보도한 국무부의 외교활동을 읽어보면, 양자회담은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내는 특사파견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하였던 시기인 1999년 5월 25일부터 28일까지 당시 대북정책 조정관이었던 월리엄 페리(William J. Perry)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보냈던 경험이 그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대통령 특사를 보내는 것은 외교현안을 처리하는 일반적인 외교활동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특별한 외교활동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통령 특사의 평양방문을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북측의 외교적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누구를 특사로 지명할 것인가? 이미 평양파견명단에 올라있는 보스워즈 특별대표를 특사로 지명할 수도 있고, 그보다 급이 높은 고위관리를 특사로 지명할 수도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자리에서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평양방문을 건의한 것을 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보스워즈 특별대표를 특사로 지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특사방문은 북측의 대미관계에서 외교적 승리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북측과 미국이 곧 재개할 양자회담 추진과정에서 특사방문이라는 회담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특사방문에서 합의할 회담의제다. 회담의제는 미국 국무부가 결정하는 실무안건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하는 정치방침이다.

미국 대통령 특사가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평양을 방문하면, 오바마 대통령은 그 친서에 회담의제를 담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제안하게 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친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할 의제는 무엇일까?

첫째 의제는, 6자회담 재개에 관한 의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백악관과 국무부가 언론에 공개한 공식입장은,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재개하는 경우, 6자회담 틀 안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한다는 주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6자회담과 양자회담을 병행하여 추진한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려는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은 아래에서 논한다.

둘째 의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조미(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관한 의제일 것이다. 백악관 밀담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고위관리들과 숙의한 끝에 결정한 정치방침은 자신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는 문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의회가 설립한 반관영 언론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RFA)>의 2009년 9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9월 18일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국무부의 한반도 관련 전현직 관리들, 국방정보국(DIA) 관리, 연방의회 관계자, 한반도 전문가 등 20여 명이 참석한 비공개회의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조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대부분 개최 가능성에 동의하였다는 것이며, 특히 조미 정상회담이 이르면 2010년 상반기에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였다고 한다.

국무부, 국방부, 연방의회, 비정부단체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미 정상회담 개최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는 언론보도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워싱턴 정가에서 조미 정상회담의 개최시기까지 논하고 있는 것은 조미 정상회담이 미래전망을 넘어 당면현실로 바짝 접근하고 있음을 귀띔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이빙궈 특사가 들은 다자회담의 의미

2009년 9월 16일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국가주석 특사자격으로 평양에 급파하였다. 한반도와 미국 동부지역의 시차를 계산하면,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뉴욕에서 만나 밀담한 때로부터 하루가 지난 뒤에 평양에 도착한 것이다.

2009년 9월 19일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Bloomberg)>이 보도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리언 파네타(Leon Panetta)의 회견에서 그가 미국과 북측이 “지금 밀월상황(honeymoon situation)에 있다”고 묘사한 양국 관계의 변화동향을 간파한 중국은, 상황변화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평양에 급파된 다이빙궈 특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것은, 중국이 북측과 미국의 관계변화과정에서 무력한 방관자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의 <신화통신>이 영문으로 펴내는 관영 인터넷 언론매체 〈차이나 뷰(China View)〉가 2009년 9월 18일자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다이빙궈 특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조선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강조(insist)하고 있으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하고, 조선은 양자회담 또는 다자회담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 있다(The DPRK is willing to solve problems through bilateral or multilateral talks)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 보도에는 “중국은 조선을 비롯한 관련 당사자들의 공동노력으로(with joint efforts of involed parties including the DPRK)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다이빙궈 특사의 말이 인용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이빙궈 특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양자회담 또는 다자회담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할 의사를 밝혔다는 식으로 아전인수 격 해석을 내놓았다. 남측 언론들이 그러한 자의적 해석에 맞장구를 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신화통신>이 보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이 너무 짧은 문장으로 인용되어 있어서 의미맥락을 정확하게 알 길은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 발언은 북측의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다자회담 언급을 6자회담 복귀로 해석할 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다이빙궈 특사마저도 6자회담을 언급하지 않고 ‘관련 당사자들의 공동노력’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다.

2009년 7월 15일 이집트의 샴 엘-셰익(Sharm el-Sheikh)에서 열린 제15차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밝혔고, 2009년 7월 27일 북측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6자회담은 적대세력의 변함없는 반공화국 압살책동에 의하여 개최초기의 목표와 성격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변질퇴색되고 말았다”고 지적하였다. 북측이 6자회담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까닭에 대해서는 2009년 4월 20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6자회담이여, 잘 가거라!’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이처럼 6자회담이 영원히 끝났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북측이 이제와서 6자회담에 되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양자회담 또는 다자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9월 18일 발언은, 북측과 양자회담을 재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국무부의 9월 11일 발표에 견주어 보아야 그 진의를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진의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9월 18일 발언은 다자회담이 아니라 양자회담에 강조점을 찍은 것이다. 다이빙궈 특사의 평양방문을 통해 6자회담 재개를 바라는 후진타오 주석의 친서를 받은 외교석상에서 중국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으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자회담 복귀가 아니라 다자회담 가능성을 외교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이빙워 특사에게 말한 다자회담은 부시 정부가 추진하다가 결국 파탄으로 막을 내린 6자회담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자회담은 북측, 미국, 중국이 만나는 3자회담이 될 수도 있고, 그 3자에 남측이 포함되는 4자회담이 될 수도 있고, 기존의 6자에 몽골까지 포함되는 7자회담이 될 수도 있다. 자국의 체면을 생각해달라는 미국의 강한 요구를 북측이 묵살할 수 없어서 혹시 다자회담 개최를 합의해주는 경우에도, 새로 시작할 다자회담은 파탄으로 막을 내린 6자회담을 연장한 ‘낡은 다자회담’은 아닐 것이다.

2009년 7월 2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와 방식은 당사자인 우리가 제일 잘 알게 되여 있다.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화방식은 따로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이것은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새로운 회담방식을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측의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은, 북측이 우라늄 농축기술을 개발한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2009년 6월 13일 북측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은 “새로 추출되는 플루토늄 전량을 무기화한다”는 것과 “우라늄 농축작업에 착수한다. 자체의 경수로 건설이 결정된 데 따라 핵연료 보장을 위한 우라늄 농축기술 개발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시험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009년 9월 4일 유엔주재 북측 상임대표부 특명전권대사가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서한은 북측에서 “우라늄 농축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여 결속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북측이 영변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무기화하고 우라늄 농축기술을 개발한 것은 6자회담을 재개할 조건을 완전히 제거해버린 것이다. 6자회담의 완전한 파탄은 조미 정상회담 성사를 촉진하는 강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포괄적 해결과 수뇌담판은 동의어다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ITAR-TASS)>의 2009년 9월 6일자 보도에 따르면, 공화국 창건 61주년을 맞아 모스크바 주재 북측 대사관에서 9월 4일에 열린 경축연회에 참석한 러시아 외무차관 알렉세이 보로다브킨(Aleksei Borodavkin)은 경축연회 직후에 기자들에게 “평양은 한반도 핵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말한 북측의 논의준비는 대미협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북측은 미국을 상대로 더 이상 협상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북측이 대미협상을 그만둔 까닭에 관해서는 2009년 6월 22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그들은 왜 협상을 포기했을까?’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북측이 앞으로 미국을 상대하는 경우는 정상회담밖에 없다. 근본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에 외교협상을 통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취하는 아주 특별한 회담방식이 정상회담(summit talks)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평양에 특사를 보내는 목적은, 1993년 이후 장장 16년 동안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해왔던 기존의 양자회담을 이제와서 또 다시 재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양방문으로 성사될 조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가 평양에 도착하는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준비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사실상(de facto) 대통령 특사로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단독접견을 받은 것은, 북측이 그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은밀히 몇 차례 전했던 조미 정상회담 개최제안에 오바마 대통령이 마침내 응답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북측이 존 케리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을 평양에 초청한 것은 연방의회에서 조미 정상회담 개최를 지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2009년 9월 20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텔레비전방송 <씨엔엔(CNN)>의 일요대담 ‘연방국가(State of the Union)’에 출연하여 언론인 존 킹(John King)과 회견하는 자리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한 어떤 정보를 들었는가 하는 민감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변하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가는 그가 아주 건강하고 건재하다는 것이었다. (President Clinton’s assessment was that he’s pretty healthy and in control.) 우리가 북측 사람들과 많이 교류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한때 사람들이 그가 가버리는(slip away) 게 아닌가 여기지 않았던가. 그는 자신을 다시 과시하였다. (He’s reasserted himself.) 그가 병 중에는 후계문제에 더 신경을 썼겠지만, 건강한 지금은 그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발언을 주목하는 까닭은, 그가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ODNI) 관리들이 이전에 자신에게 보고하였던 ‘건강이상설’, ‘후계불안정설’ 따위의 정보들을 이제 더 이상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하였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이상설’, ‘후계불안정설’ 따위의 정보들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신의 발언을 통해 직접 밝힌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재하므로 자기가 그를 만날 수 있음을 워싱턴 정가에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이 만나는 정상회담은, 앞으로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길고 지루한 양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정상회담은 1993년 이후 장장 16년 동안 북측과 미국이 우여곡절과 파행, 위기와 격돌을 넘고 또 넘으며 파란만장하게 이어온 길고 지루한 양자회담에서 두 나라의 근본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에 결국 어느 것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수뇌담판으로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명백하게도, 조미 정상회담에서 중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수뇌담판이다. 그 정상회담을 수뇌협상이 아니라 수뇌담판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 정상회담을 통해서 미국 언론이 포괄적 해결(comprehensive settlement)이라고 표현하는, 한반도 근본문제의 해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이 말하는 포괄적 해결을 회담방식으로 표현하면 수뇌담판이라는 개념이 성립된다.

그렇다면 수뇌담판에 오를 의제는 무엇일까? 그 의제를 좀 거칠게 표현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보유 포기 결단과 오바마 대통령의 핵우산 포기 결단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북측의 핵보유 포기를 ‘비핵화’라는 개념으로 표시하고, 미국의 핵우산 포기를 ‘철군’이라는 개념으로 표시한다. 그러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의 담판은 비핵화와 철군을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역사상 최초의 수뇌담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핵보유를 포기하고 미국이 핵우산을 포기하는 것은 두 나라가 서로를 겨눈 핵공격능력을 각자 거두어들이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다. 수뇌담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보유 포기를 결정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핵우산 포기를 결정해야, 한반도를 비핵화할 수 있으며 조미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 수뇌담판 이외에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조미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수뇌담판에서 비핵화 문제와 철군 문제를 일괄 해결한다는 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이 핵포기 협정과 철군 협정을 동시에 체결하기로 합의한다는 뜻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이 핵포기 협정과 철군 협정을 체결하는 대타결에 이르러야 북측은 핵포기 작업을 시작할 수 있고, 미국은 주한미국군 철군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과 담판할 준비를 완료하고 그의 평양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평양방문을 추진하였던 클린턴 전 대통령을 2009년 9월 14일 뉴욕에서 다시 만나 두 번째 밀담을 나눈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평양방문을 자기가 다시 추진하기 위해 어떤 조언을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2009년 9월 2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