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권정치를 청산할 수 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민주주의의 기원, 평민정치인가 대중정치인가

정치문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쟁점은 민주주의에 관한 담론이다. 민주주의란 원래 서양의 역사적 경험에서 형성된 개념인데, 19세기 말 우리나라 개화파 지식인들이 일본에서 들여와 쓰기 시작했다. 당시 개화파 지식인들은 서양에서 쓰는 개념을 우리 식으로 번역하는 주체적인 태도를 갖지 못했고, 일본말로 번역된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언어의 식민주의를 용인하고 말았다. 개화파 지식인들이 주장한 개화론이 식민주의의 내습에 무릎을 꿇고 결국 친일부역론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언어의 식민주의가 사상의 식민주의로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애초에 잘못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체제가 아니라 정치방식을 가리키는 개념이므로 민주정치라고 번역했어야 옳은데,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개념처럼 사회체제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번역해놓은 것이 문제다.

자본주의(capitalism)는 곧 민주주의(democracy)고, 공산주의(communism)는 곧 독재(dictatorship)라는 궤변이 머릿속에 주입되어 있는 반공주의자들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서로 대비시키지만, 정치방식을 가리키는 개념과 사회체제를 가리키는 개념은 서로 대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정치라고 번역되었어야 할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그리스의 고대도시국가였던 아테네에서 실현된 아테네식 민주정치(Athenian democracy)에 기원을 두고 발전되어온 정치방식이다. 그리스의 고대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평민이 공회(assembly)를 구성하고 직접 통치를 실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평민을 뜻하는 데모스(demos)라는 말과 통치를 뜻하는 크라티아(kratia)라는 말이 만나 평민통치(democratia)라는 합성어가 생겨났고, 그 합성어가 영어권으로 옮겨가서 평민정치(democracy)라는 개념이 성립된 것이다.

원래 평민정치는 귀족정치의 질곡에서 벗어난 당대의 진보적인 정치방식이었다. 귀족정치란 귀족을 뜻하는 아리스토스(aristos)라는 말과 통치를 뜻하는 크라티아(kratia)라는 말이 만나 귀족통치(aristokratia)라는 합성어가 생겨났고, 그 합성어가 영어권으로 옮겨가서 귀족정치(aristocracy)라는 개념이 성립된 것이다.

역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고대도시국가 아테네의 인구는 전성기에 약 25만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서 평민은 약 3만 명에 지나지 않았고, 3만 명 평민 가운데서 공회에 참가한 인원은 약 5천 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5천 명이 24만5천 명을 통치한 것을 평민정치라고 불렀는데, 실제로는 소수의 정치였던 평민정치에 다수의 정치라는 정치신화가 덧입혀지면서 민주정치(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평민정치라는 원천개념이 서양정치사에서 민주정치라는 개념으로 변신을 꾀했고, 그렇게 변신된 개념이 동양에 전래되면서 민주주의라는 번역어로 오역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의 고대도시국가에서 평민은, 현대의 사회계급구성으로 보면, 도시중산층에 해당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민주주의(민주정치)란 도시중산층(평민)을 위한 정치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다종다양한 민주당(democratic party)들이 도시중산층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고 실현하는 중도정당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2009년 6월 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전 의장이었던 고 강희남 목사는, 생전에 강연을 통하여 그리스의 고대도시국가에 존재한 사회계급관계가 귀족, 평민, 대중으로 구성되었다고 지적하면서, 평민정치에서 진보한 대중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고인이 여든 아홉의 생애를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에 특유한 필체로 남긴 유서에는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는 글귀가 들어있었는데, 그가 말한 민중정치는 평민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보적인 대중정치인 것이다.

고 강희남 목사가 생전에 역설한 대로, 대중을 뜻하는 오클로스(okhlos)라는 말과 통치를 뜻하는 크라티아(kratia)라는 말이 만나 대중통치(okhlokratia)라는 합성어가 되었는데,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대중정치(ochlocracy)가 된다. 사전에는 ‘아클라크러시’라는 말이 폭민정치라고 잘못 번역되어 있는데, 이런 식의 오역은 대중을 폭민이라고 비방중상하는 지배계급의 반민중적 정치이념이 용어선택에 반영된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고대도시국가 아테네에서 절대다수는 오클로스(대중)였다. 데모스(평민) 밑에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정도로 짓눌린 절대다수 오클로스는 노예와 여성이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다수의 통치라는 뜻으로 정의한다면, 절대다수인 오클로스가 통치권을 행사하는 대중정치가 실현되어야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다수의 통치는 그로부터 수 천 년이 흐른 뒤에야 진보적 근로대중의 의식 속에 진보정치라는 개념으로 생겨날 수 있었다.

현대의 사회계급구성으로 보면, 오클로스는 궁핍과 소외를 겪고 있는 근로대중이다. 진정한 민주정치는 평민정치가 아니라 대중정치이므로,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민주정치)라는 개념은 도시중산층의 민주정치가 아니라 근로대중의 진보정치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금권정치라는 특유한 정치방식

고대사회에서 평민정치(democracy)에 맞서는 반민주적인 정치방식이 귀족정치였다면, 현대사회에서 민주정치(democracy)에 맞서는 반민주적 정치방식으로 등장한 것은 금권정치다. 권력과 재력이 상호결탁한 정치방식을 금권정치(金權政治)라 한다. 원래 금권정치란 재력가(ploutos)라는 말과 통치(kratia)라는 말의 합성어지만, 부유층(plutocrat)이 권력을 장악한 정치방식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다시 말해서, 극소수 특권부유층이 권력을 장악한 정치방식이 금권정치다.

오늘날 자본주의체제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집권세력은, 고위관료층과 부유층이 상호결탁하여 혼합편성된 극소수 특권부유층이다. 극소수 특권부유층이 통치하는 금권정치가 민주정치로 될 수 없고, 절대다수 근로대중을 억누르는 독재정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실제로 자본주의체제의 정치현실을 보면, 극소수 특권부유층이 절대다수 근로대중을 통치라는 명목으로 억누르고 있다. 자본주의체제의 정치방식은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투표권을 행사하고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피선거권을 행사하는 ‘민주정치’가 실현되었으므로, 전제군주가 통치하는 군주제(monarchy) 같은 독재정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속을 파보면 극소수 특권부유층이 배타적으로, 그리고 영구히 절대다수 근로대중을 통치라는 명목으로 억누르는 독재정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제는 지구 위에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된 군주제를 보더라도, 전제군주 한 사람이 통치하는 1인 독재정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인 독재정치가 아니다. 군주제는 전제군주가 아니라 전제군주가 대표한 지배계급(왕족과 귀족)이 통치하는 독재정치이므로, 1인 독재정치가 아닌 것이다. 인류사에 등장한 모든 종류의 독재정치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dictator)의 정치방식이 아니라, 권력을 배타적으로 장악한 특정한 사회계급이 독재자를 앞에 내세운 정치방식이므로 1인 독재정치라는 개념은 성립될 수 없다. 1인 민주정치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1인 독재정치라는 개념도 성립되지 않는다. 모든 형태의 민주정치가 사회계급의 통치방식인 것처럼, 모든 형태의 독재정치도 사회계급의 통치방식인 것이다.

자본주의체제의 특유한 정치방식인 금권정치는, 절대다수 근로대중에 대한 극소수 특권부유층의 독재정치를 뜻한다. 자본주의체제는 그 체제를 옹호하는 선동가들이 아무리 민주주의와 인권이 실현되었다고 외쳐도 금권정치의 ‘원죄(original sin)’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체제를 지배하는 통치권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금권정치를 정치적으로 대표한다.

이 땅의 정치현실은 어떠한가? 국정을 맡아보는 대통령과 각료들은 말로는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국민의 절대다수인 근로대중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모조리 특권부유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 재적인원 299명 가운데 국민의 절대다수인 근로대중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다섯 명과 진보신당 소속 의원 한 명을 합해 여섯 명밖에 없고, 대부분은 특권부유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고 일부 도시중산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끼어있을 뿐이다. 바로 이것이 특권부유층이 통치하는 금권정치, 곧 자본주의체제의 특유한 독재정치다.

그런데 이 땅의 정치현실은, 금권정치라는 일반적 성격에 더하여 ‘한국적 특색’을 하나 더 지녔다. ‘한국적 특색’이란 친미적이고 반공적인 성향을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땅의 금권정치는 친미반공 금권정치인 것이다.

현재 지구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라들에는 거의 모두 자본주의체제가 성립되었는데, 그 체제에서 실시되는 금권정치가 친미성향과 반공성향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땅의 사회정치현실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렇게 광적인 친미성향을 지닌 경우는 없으며, 반공을 ‘국시’로 숭상하는 극단적인 반공성향을 지닌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일보> 2009년 2월 12일자 보도는 광적인 친미성향에 관해 이런 사실을 알려주었다. 주한미국군 자녀들, 미군속 자녀들, 미국 시민권자 자녀들이 다니는 용산 미8군 영내에 있는 서울미국인고등학교(SAHS)에 재학 중인 학생은 656명인데, 그 가운데 아시아계 학생이 195명이고, 그 대부분은 남측 학생이라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 교육처(DoDEA)가 관할하는 미국인학교는 남측에 여덟 개나 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남측에서 일부 부유층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서울미국인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미국인에게 2억 원(15만 달러)을 주고 입양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양을 알선해주는 어떤 업자는 “입양할 미국인을 구하지 못해서 그렇지, 자녀를 입양시키려는 한국 부모는 줄을 섰다. 다들 미8군 학교에 보내려고 난리다. 한때 한 달에 10여 명의 입양수속을 밟아준 적도 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친미주의는 반공주의의 일란성 쌍생아다. 이 땅에서 친미성향이 이처럼 광적이니, 반공성향이 얼마나 극단적인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땅의 정치의식을 황폐화시킨 광적인 친미성향과 극단적인 반공성향은 분단체제의 산물이고, 이 땅의 정치현실을 짓누르는 친미반공 금권정치는 분단체제 위에 성립한 정치방식이다.

금권정치 강행하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과 호감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 앤드 리서치가 2009년 8월 12일에 제주도를 제외한 남측 전역의 성인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명박 정권이 독재정권이라는 견해에 동의하느냐는 물음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53.2%에 이르렀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매우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18.4%, 어느 정도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34.8%로 나왔다. 그에 비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39.1%로 나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12.2%,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26.9%로 나왔다.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명박 정권에 반감을 느끼는 사회구성원이 대체로 50% 정도가 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또한 이명박 정권에 호감을 느끼는 사회구성원이 대체로 40% 정도가 된다는 것도 말해준다. 나머지 10% 정도에 해당하는 사회구성원은 반감도 호감도 느끼지 못하는 절대적 무관심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극소수 특권부유층을 위한 금권정치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므로, 극소수 특권부유층 이외의 사회구성원은 모두 이명박 정권에 반감을 느껴야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 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땅의 사회구성원 가운데 40% 정도가 이명박 정권에 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절대다수 근로대중 가운데 상당수가 금권정치를 강행하는 이명박 정권에 호감을 느끼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두 가지 문제를 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회계급관계는 극소수 특권부유층과 절대다수 근로대중으로 양분되지 않는다. 특권부유층과 근로대중 사이에 도시중산층이 끼어있다. 도시중산층은 끼어있는 정도가 아니라 커다란 사회계층을 형성하고, 특권부유층과 근로대중의 충돌을 막아주는 ‘안전판 기능’까지 맡아보고 있다.

도시중산층이 특권부유층으로 상승이동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제한되었지만, 도시중산층과 근로대중의 경계는 모호해서 근로대중이 도시중산층으로 상승이동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빈번하다. 그래서 근로대중 가운데 상당수가 도시중산층에 귀속감을 느끼고 도시중산층 흉내를 내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한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근로대중은 금권정치를 강행하는 이명박 정권에게 억눌리면서도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고, ‘중도실용’이니 ‘서민정책’이니 ‘민생우선’이니 하고 감언이설을 남발하는 금권정치의 대중선동에 속아 넘어가서 이명박 정권에게 호감마저 느끼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대중언론 관련법을 개악한 날치기 통과를 자행한 까닭은, 금권정치의 대중선동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기 위해서 대중언론을 장악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땅의 정치현실이 금권정치로 일색화, 장기화되어왔기 때문에, 절대다수 근로대중이 다수의 정치를 포기하고 소수의 정치에 이념적으로 동화되어 버렸다. 금권정치의 이념주입, 금권정치에 대한 이념동화가 일반화된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노총에 소속된 노동자 72만5천 명 거의 모두가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금권정치의 이념주입, 금권정치에 대한 이념동화가 노동자들 속에서 얼마나 넓고 두껍게 자리잡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근로대중의 구성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노동자들도 그러한 형편이니, 농민, 서민, 자영업자들의 정치의식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누가 금권정치를 청산할 수 있을까?

금권정치를 강행하는 이명박 정권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 이명박 정권퇴진에 동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정권퇴진운동을 찬성하는 비율이 대체로 50% 정도가 되어야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부설 연구소인 새세상연구소가 한길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하여 2009년 7월 25일부터 26일에 남측 전역의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그러한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왜냐하면 응답자 가운데 60%가 정권퇴진운동을 반대한다는 견해를 표명하였기 때문이다. 정권퇴진운동을 찬성하는 비율이 60%가 되어도 부족한 판인데, 반대하는 비율이 60%로 나왔으니, 정권퇴진운동이 대중적 동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정권퇴진운동은 극소수 특권부유층을 위한 금권정치를 청산하고 절대다수 근로대중을 위한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근로대중 자신의 운동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근로대중은 특권부유층을 위한 금권정치를 청산하려는 진보적 정치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대중이 금권정치를 청산하려는 진보적 정치의식을 갖지 못한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바로 이 물음이 이 땅의 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의 출발점이다. 그 출발점에서 아래와 같은 논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근로대중의 진보정치와 도시중산층의 민주정치는 서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

금권정치는 진보정치와 민주정치 가운데 어느 한 쪽의 단독역량만으로는 청산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방어력을 지녔다. 그러므로 근로대중의 진보정당과 도시중산층의 중도정당이 정치적으로 연합해서 투쟁해야 특권부유층의 보수정당을 이길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투쟁해야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금권정치를 청산할 유일한 방도는 근로대중의 진보정당과 도시중산층의 중도정당이 연대하고 거기에 각계각층이 결집하여 폭넓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 양대세력이 진보-민주 대연합을 형성하는 길 이외에 금권정치를 청산할 방도는 없다.

그런데도 근로대중의 진보정당은 진보대연합만 논하고, 도시중산층의 중도정당은 민주대연합만 논하고 있다. 반쪽짜리 정치연합은 대연합이 아니라 소연합이다. 진보-민주 대연합만이, 오직 정치역량을 폭넓게 결집한 대연합만이 금권정치를 청산할 강력한 동력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이명박 정권에 호감을 느끼도록 근로대중을 유인하는 금권정치의 이념주입이 차단되어야 하고, 근로대중의 정치의식 속에 파고드는 금권정치에 대한 이념동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간지 <한겨레>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 플러스에 의뢰하여 2007년 12월 26일부터 27일까지 남측 전역의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당 선호도를 묻는 물음에 대한 응답비율은, 진보정당 28.8%, 중도정당 17.2%, 보수정당 27.9%로 나왔다. 그보다 3년 전에 정당 선호도를 묻는 똑같은 물음에 대한 응답비율은, 진보정당 44.3%, 중도정당 19.7%, 보수정당 11.5%로 나왔었는데, 3년 만에 진보정당 선호도는 15.5% 포인트나 떨어졌고, 중도정당 선호도는 2.5% 포인트가 떨어졌고, 보수정당 선호도만 16.4% 포인트나 올라간 것이다.

만일 지금 똑같은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면, 진보정당 선호도와 중도정당 선호도는 더 떨어지고, 보수정당 선호도는 더 올라갔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금권정치의 이념주입과 금권정치에 대한 이념동화에 휘말린 근로대중이 정치적 판단에 커다란 혼란을 겪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금권정치에 순응, 맹종하는 교육계, 언론계, 종교계, 문화계, 학계가 금권정치의 이념주입에 봉사하고, 금권정치에 대한 이념동화를 다그치고 있는 것이 오늘 이 땅의 현실이다. 이처럼 결정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이 전개하는 소규모 대중선전활동이나 수공업적 방식의 정치교육으로는 100년이 지나도 그러한 현실을 타파할 수 없다.

금권정치의 이념주입과 금권정치에 대한 이념동화를 타파하려면 근로대중의 정치의식이 급진화(radicalize)되어야 하는데, 근로대중의 정치의식은 시대의 충격(shock of time)을 받을 때 낡은 껍질을 깨부수고 급진화되는 법이다. 시대의 충격을 받지 않고 근로대중의 정치의식이 급진화되는 길은 없다.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면, 이 땅의 근로대중이 8.15 해방이라는 시대의 충격을 받았을 때, 일제 식민주의에서 벗어나 근로대중의 진보정치를 지향한 정치의식의 급진화를 경험하였다. 4.19 혁명이라는 시대의 충격을 받았을 때, 이승만 정권의 친미반공 금권정치에서 벗어나 근로대중의 진보정치를 지향한 정치의식의 급진화를 경험하였다.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시대의 충격을 받았을 때, 전두환 정권의 친미반공 금권정치에서 벗어나 근로대중의 진보정치를 지향한 정치의식의 급진화를 경험하였다.

셋째, 진보-민주 대연합과 근로대중 정치의식의 급진화가 동반적으로 실현되어야 금권정치를 청산할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진보-민주 대연합은 형성되었으나 근로대중의 정치의식이 급진화되지 않았으면, 금권정치를 청산하는 정권퇴진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근로대중이 시대의 충격을 받아 정치의식이 급진화되었으나 진보-민주 대연합이 형성되지 않았으면, 금권정치를 청산하는 정권퇴진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권퇴진운동이 일어나는 조건은, 진보-민주 대연합 형성과 근로대중 정치의식의 급진화의 동반진출이다.

넷째, 근로대중의 정치의식이 급진화하는 것은 각계각층 근로대중 속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일어나는 균일현상이 아니다.

각계각층 근로대중 가운데서 어떤 사회집단이 남달리 정치의식을 쉽게 급진화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그러한 조건을 갖춘 사회집단에게 대중정치활동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위에 나온 리서치 앤드 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이 독재정권이라는 견해에 동의하는 응답자는 30대 연령층이 68.5%로 가장 많았고, 40대 연령층이 54.5%로 그 뒤를 이었다. 대학 재학 이상의 교육수준을 지닌 집단이 60.9%, 사무직 노동자가 70.1%로 응답비율이 높았다.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 재학 이상의 교육수준을 지닌 30-40대 연령층의 사무직 노동자가 정치의식의 급진화를 가장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30-40대 연령층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쟁대오에 합류하였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폭발적 경험을 상기시킨다.

다섯째, 근로대중과 도시중산층의 관계를 적대관계로 설정해서는 특권부유층의 금권정치를 청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근로대중과 도시중산층의 관계를 적대관계가 아니라 연대관계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근로대중과 도시중산층의 관계를 연대관계로 설정한다면, 근로대중의 진보정당과 도시중산층의 중도정당이 정치이념적 차이를 뒤로 남겨두고 우선 정치이념적 공통성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대안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근로대중의 진보정당이 특권부유층의 금권정치를 근로대중의 진보정치로 대체할, 그리하여 다수의 정치를 실현하는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진보적 민주주의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대안은 정작 근로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그래서 근로대중의 진보정당은 언제나 과격한 투쟁만 능사로 여기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할 줄은 모른다는 오해까지 받고 있지만, 그것은 오해이지 진실이 아니다. 명백하게도, 근로대중의 진보정당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한편, 도시중산층의 중도정당이 제시한 대안은, 민주당의 표현을 빌리면, 실질적 민주주의다.

이처럼 이 땅의 정치현실에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두 종류의 민주주의가 제시되어 있는데, 당면과제는 그 두 종류의 민주주의에서 공통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근로대중의 진보정당과 도시중산층의 중도정당이 ‘민주정치의 공통성’을 찾아내야, 그것에 기초하여 진보-민주 대연합의 공동목표를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목표를 합의하지 않고서도 진보-민주 대연합을 형성할 수 있다는 말은 궤변으로 들린다.

그런데 근로대중의 진보정당은 도시중산층의 중도정당이 제시한 실질적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있고, 도시중산층의 중도정당은 근로대중의 진보정당이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상대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서 벗어날 때, 소통과 연대를 실현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의 금권정치를 청산하는 길이 진보-민주 대연합을 형성하는 것이라면, 대연합을 추구하는 양대세력이 서로 소통하는 방법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2009년 9월 14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