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벨 알리에서 일어난 의혹사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2009년 8월말 작은 파문이 일다

전세계 석유의 해상수송량 가운데 40%가 지나가는, 중동지역 최고의 전략요충지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을 사이에 두고 지리적으로 이란과 마주한 시아파 이슬람연방국이 있으니, 인구 480만 명이 살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다.

2009년 8월 28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가 보도한 기사 한 편으로 그 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졌다.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 참가국의 한 외교관으로부터 받은 정보에 기초해 작성된 그 기사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은 자국 항구에 입항한 화물선에서 무기가 숨겨진 화물운송함(container) 10개를 발견하고 압수하였고, 즉각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위원회에 그 사실을 통보하였다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그 사건을 보도한 직후, 각국 통신사들이 경쟁적으로 그 사건을 보도하면서 국제사회에 파문이 일었다.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비밀에 쌓인 채 갖가지 억측과 소문을 불러일으킨 그 사건에 대해서 각국 언론들이 제각기 산만하게 보도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사건경위가 드러난다.

첫째, <파이낸셜 타임스> 8월 28일자 보도는, 문제의 화물선이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에 의해서 “몇 주 전에(some weeks ago)에 억류(seize)되었다가 떠나도록 허용되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Reuters)> 8월 28일자 보도는 문제의 화물선이 2009년 8월 14일에 억류되었다고 밝혔고, <블룸버그 통신(Bloomberg)> 같은 날짜 보도는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두 주일 전(보도시점으로부터 두 주 전이면 8월 14일-옮긴이)에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에 억류사실을 통보하였다고 밝혔다.

둘째, <블룸버그 통신> 8월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그 화물선에서 압수한 물품은 북측에서 제조한 탄약, 뇌관, 폭약, 로켓추진류탄(rocket-propelled grenade)이라는 것이다. 로켓추진류탄이란 어깨에 메고 발사하는 로켓탄 발사기(RPG-7)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파이낸셜 타임스> 8월 28일자 보도는 이란의 선박제조 연구개발업체인 탓비르 싸낫 샤리프(Tadbir Sanaat Sharif Technology Development Center)가 그 물품을 탁송해달라고 주문하였다고 밝히면서, 탁송주문업체인 탓비르 싸낫 샤리프는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군(Sepha, Army of the Guardians of the Islamic Revolution)에 연계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전에도 무기관련물품 수입을 금지당하는 국제제재조치를 받았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보도에 따르면,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군에 연계된 이란의 선박제조 연구개발업체가 북측으로부터 불법적으로 무기를 밀수입하려다가 적발되었다는 말이 된다.

넷째, 미국의 우익성향 일간지 <월스트릿 저널(Wall Street Journal)> 8월 31일자 보도는 문제의 화물선적을 계약한 당사자가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 본사를 둔 국제화물운송업체 오팀(Otim, Organizzazione Transporti Internazionali e Marittimi SpA)이라고 밝혔다. 오팀이 지사를 둔 도시들은 이탈리아의 제노바(Genova)와 로마(Roma), 미국 뉴저지(New Jersey)주의 우드리지(Woodridge), 중국의 상하이(上海), 대만의 타이페이(臺北), 그리고 평양이다. <로이터 통신> 8월 28일자 보도는, 화물선적계약이 이탈리아 회사의 상하이 사무실에서 체결되었다고 밝혔다.

<월스트릿 저널> 8월 31일자 보도는, 화물선적 계약업체인 오팀의 대표 마리오 카르니글리아(Mario Carniglia)와 전자우편(email)을 통해 대담한 내용을 실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오팀은 익명의 수출업체로부터 “석유채취장비(oil pumping equipment)[석유시추기 부품(oil boring machine spare parts)]”가 실렸다고 적혀있는 계약문서를 받고, 북측의 남포항에서 화물운송함 10개를 받아 중국의 다롄(大連)항으로 운송했다.

2. 오팀은 다롄항에서 그 화물을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Bandar Abbas)항으로 향하는 화물선 에이엔엘(ANL)-오스트레일리아에 옮겨 실었다.

3. “화물운송함들은 처음에 봉인된 그대로 다롄항을 출발했다. (The containers left Dalian ... untouched with the same seals put on at the origin.)”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이 보도한 위와 같은 내용을 정리하면, 사건경위는 이렇게 요약된다. 북측 남포항에서 선적(船籍)이 알려지지 않은 화물선에 실린, 무기가 든 화물운송함 10개가 중국 다롄항에서 또 다른 화물선 에이엔엘(ANL)-오스트리아에 환적되었고,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항으로 향하던 그 화물선은 2009년 8월 14일 아랍에미리트의 어느 항구에 입항하였다가 그 나라 정부당국의 검색과정에서 적발되어 무기가 실린 화물운송함들이 모두 압수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얽혀있는 여섯 가지 의혹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이 그 사건에 대해 보도한 내용을 다시 자세히 읽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의혹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특히 의혹에 의혹이 더해지는 까닭은, 사건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아직까지 아무런 말도 입 밖에 꺼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경위를 두 번째로 정확하게 파악한 당사자는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으로부터 사건통보를 받은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인데, 그 위원회도 이번 사건을 ‘극비’로 취급하면서 ‘이상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아에프페(AFP) 통신>이 8월 31일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Melbourne)발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 교통부 장관 앤터니 앨보니즈(Anthony Albonese)는 그 나라의 <채널 나인(Channel Nine)> 텔레비전방송에 출연하여 문제의 화물선이 조사를 받는 중이라고 하면서 말을 아꼈다고 한다. 문제의 화물선 에이엔엘(ANL)-오스트레일리아의 소유회사 총관리인(general manager) 크리스 슐츠(Chris Shultz)도 화물압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답변을 거부하였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유엔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뒤 처음으로 북측의 무기수출을 차단한 사건이 일어났다면 응당 그 사건경위에 관한 관련정보를 공개하고 사건을 처리해야 마땅한데,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과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더욱이 북측에게 제재의 올가미를 씌워보려고 애쓰는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는 대북제재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을 크게 떠들어야 자연스러운데, 그들마저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란 언론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북측 언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사건에 관련하여 국제사회에 떠도는 갖가지 오보들이 세간의 의혹을 키우고 있는 데도, 그들이 해명하지 않고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는 의혹스러운 사태는 이 사건에 관한 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의혹투성이 사건을 꼼꼼히 파헤쳐보면, 사건을 조작한 흔적이 드러날 것이다. 우선 이 사건에 관한 언론보도에 들어있는 의혹부터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문제의 화물운송함 10개를 맨 처음에 화물선에 실은 수출업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월스트릿 저널> 8월 31일자에 보도된 대로, 남포항에서 문제의 화물운송함을 실었다면 그 수출업체는 당연히 북측의 무역회사일 것이다. 화물선적 계약업체인 오팀의 대표 마리오 카르니글리아는 <월스트릿 저널>과 주고받은 전자우편 대담에서 남포항에서 화물운송함을 실은 수출업체가 어떤 수출업체였는지 밝히는 것을 거부했다.

둘째,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검색한 문제의 화물선에는 남포항에서 실려 다롄항에서 환적한 화물운송함 이외에도 많은 다른 화물운송함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문제의 화물선은 재화중량(DWT) 4만7천326톤이 되는 화물운송함 수송선박이다.

문제는 압수당한 화물운송함과 남포항에서 실린 화물운송함이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영영 입증되지 않을 수 있다. 화물선적 계약업체인 오팀의 대표 마리오 카르니글리아는 <월스트릿 저널>과 주고받은 전자우편 대담에서 환적사실만 확인해준 것이지 압수사실까지 확인해준 것이 아닌데도, 미국 언론보도는 환적사실과 압수사실을 자의적으로 동일시하였다.

셋째, 문제의 화물운송함 10개를 환적하는 과정에서 중국 다롄항 당국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 한 두 개도 아니고 열 개나 되는 화물운송함이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고 다른 화물선으로 옮겨실릴 수 있었을까?

넷째, 남포항에서 실리고 다롄항에서 환적된 화물운송함에 실린 물품이 석유시추기 부품이라고 계약문서에 적혀있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북측이 세계 4위 산유국인 이란에 석유시추기 부품을 수출한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섯째, 그 무기들을 수입하려 하였다고 보도된 이란의 수입업체가 선박건조 연구개발업체였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선박건조 연구개발업체가 함정을 건조하거나 함정 배치 미사일을 제조하는데 요구되는 부품을 북측에서 수입하려 하였다고 보도했다면 그럴 듯하게 들리겠지만, 지상전투에서 쓰는 개인화기나 폭약을 수입하려고 하였다는 언론보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이란의 선박건조 연구개발업체가 북측에서 생산한 무기를 석유시추기 부품으로 위장하여 수입하려고 하다가 발각되었다는 주장은 조작냄새를 풍긴다.

여섯째, 문제의 화물운송함 10개에 북측이 생산한 무기들이 숨겨져 있었다는 언론보도도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숨겨졌다고 보도된 무기들은 개인화기들인데, 인공위성도 쏘아올리는 이란이 그러한 개인화기들을 자체로 생산하지 못해서 북측으로부터 수입하려고 하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화물운송함에 숨겨진 무기들이 북측에서 생산된 무기들이라는 점을 물리적으로 입증한 공식발표를 내놓기 전에는 그 무기들이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압수당한 무기들이 북측에서 생산된 무기라는 주장은 억측일 뿐이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압수한 무기들은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의 현장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처분되는데, 이미 처분해버렸을 것이다. 그로써 압수무기들이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입증할 증거는 인멸된 것이다.

일곱째,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은,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무기가 숨겨진 화물운송함 10개를 8월 14일에 압수하였다고 보도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문제의 화물선 에이엔엘(ANL)-오스트레일리아의 정기항로일정을 살펴보면,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이 사건발생시점을 오보하였음이 분명하다. 8월 14일에 문제의 화물선은 중국 영해에 있었고, 아랍에미리트 영해에 들어간 날은 8월 27일이다.

문제의 화물선은 중국-말레이시아-인도양-페르시아만을 잇는 정기왕복항로(China India Middle East Express/CIMEX)를 오가는 화물운송함 수송선박(container carrier)이다. 문제의 화물선이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원래 출발지인 중국 텐진(天津)항에 돌아간 날은 2009년 8월 5일이었다. 그 화물선은 이튿날 텐진항을 떠나 8월 7일에 중국 다롄항에 도착했고, 같은 날 그곳을 떠나 8월 9일에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북측 무기가 숨겨져 있다고 보도된 화물운송함 10개를 실은 문제의 화물선이 부산항을 경유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009년 8월 9일 부산항을 떠난 문제의 화물선은 8월 12일 중국 상하이(上海)항→8월 14일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항→8월 16일 광동성(廣東省) 세커우(蛇口)항→8월 21일 말레이시아 켈랑(Kelang)항을 거쳐 8월 27일에 아랍에미리트 코르 알 팍칸(Khor Al Fakkan)항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그곳을 떠나 같은 날 아랍에미리트 제벨 알리(Jebel Ali)항에 입항하였다. 문제의 화물선은 8월 30일 제벨 알리항을 떠나 이튿날 이란의 반다르 샤히드 레자이 세즈(Bandar Shahid Rejaie Sez)항에 입항하였고, 9월 1일 그곳을 떠나 이튿날 사우디 아라비아의 아드 다만(Ad Damman)항에 입항하였다. 아드 다만항은 중국-말레이시아-인도양-페르시아만을 잇는 정기왕복항로의 종착지다. 문제의 화물선은 9월 2일 아드 다만항을 떠났고, 지금은 이전에 왔던 항로를 따라 중국 텐진항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수색, 압수를 당한 이후의 항해일정은 원래 일정보다 늦어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위의 정기항로일정을 보면, 문제의 화물선이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으로부터 화물운송함을 압수당한 날은 그 화물선이 제벨 알리항에 입항하였던 8월 28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벨 알리항은 수도 두바이(Dubai)에서 남동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항만 수심이 깊어 미국 해군이 페르시아만 작전거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해군 함정들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제벨 알리항에서는 화물선 검색과 항만 감시가 다른 중동지역 항구들과는 달리 매우 엄격하다.

문제의 화물선은 수색, 압수를 당한 뒤 그 항구를 떠나 이란의 반다르 샤히드 레자이 세즈항에 입항하였다. 당시 언론보도는 문제의 화물선이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로 향하게 되어있었다고 하였지만, 반다르 압바스가 아니라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반다르 샤히드 레자이 세즈항이다.

의혹을 털어내면 무엇이 보이는가?

<연합뉴스>가 8월 29일 유엔본부발로 보도한 기사는,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가 “금주 초에”(8월 24일을 뜻함-옮긴이) 북측과 이란에 이 사건을 통보하면서 9월 10일까지 경위를 설명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하였다. <연합뉴스>는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이 내보낸 오보를 그대로 믿고 문제의 화물선이 8월 14일에 억류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으므로, 8월 24일에 사건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는 기사를 확인해보지 않고 보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것처럼 사건은 8월 28일에 일어난 것이 확실한데,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인 8월 24일에 사건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로 들린다. 설령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가 사건발생 직후(8월 29일)에 북측과 이란에게 그런 서한을 보냈다고 해도, 그러한 서한발송 자체가 어리석은 행위로 보인다. 북측과 이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번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는 데서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갖가지 의혹들을 털어내면, 어떤 모습이 드러날까?

첫째,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압수한 무기들은 북측에서 생산된 무기들이 아니라, 중국제 무기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중동지역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는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세력들에게 중국제 무기들이 밀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공개된 비밀이다. 이를테면, 2007년 9월 3일 영국 <비비씨(BBC)> 텔레비전방송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조직들이 중국제 무기로 무장하였음을 보도한 바 있다.

중국제 무기들이 무기밀매상을 통해 해외에 밀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월간지 <동향(動向)> 2007년 1월호 기사에서 알 수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가 2004년 5월 초순에 직속기관으로 설립한 ‘2004-5 특수안건조사단’이 중국인민해방군 후방병기창의 무기관리실태를 조사하였더니 아래와 같은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샨시성(山西省)에 있는 후방병기창에 보관된 미그-15 전투기 385대 가운데 360대가 고철로 분해되어 밀매처분되고 25대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스촨성(四川省)에 있는 후방병기창에 보관된 소련제 티(T)-48 탱크, 중국제 티(T)-50 탱크와 장갑차 1천800여 대가 고철로 분해되어 밀매처분되었고, 중국제 티(T)-55 탱크 700대도 역시 그런 식으로 밀매처분되었다. 후난성(湖南省)에 있는 후방병기창에 보관된 소총, 권총 같은 개인화기 27만3천 정이 밀매처분되었다. 광시족 자치구에 있는 후방병기창에 보관된,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에서 중국이 노획한 소총과 대포들, 그리고 1980년대에 후송처분된 각종 무기들과 군사장비들이 거의 모두 밀매처분되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2000년 이후 해마다 3억7천만 달러에서 7억4천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무기와 군사장비를 후방병기창으로 후송처분하거나 폐기처분해오고 있는데, 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무기들이 밀수출되는지 중국 정부당국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무기밀매는 중국 지방정부의 부패관리들, 중국인민해방군의 부패장교들, 중국에서 암약하는 무기밀매상들, 국제사회에서 암약하는 무기밀매상들이 공모.결탁하여 저지르는 것이다.

문제의 화물선이 중국 텐진항에서 출발하여 중국 남부의 여러 항구를 경유하였다는 사실은,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압수한 무기들이 중국제 밀매무기였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건을 다시 읽어보면,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은 무기밀매상이 중동지역에 밀수출하려는 중국제 밀매무기가 숨겨진 화물운송함을 통상적인 검색과정에서 발견하고 이를 압수처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란의 텔레비전방송 <프레스 티비(PRESS TV)> 2009년 8월 29일자 보도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일어난 선박억류에 관한 언론보도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최근에 펴낸 이란의 핵활동에 관한 보고서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 시온주의(이스라엘이라는 뜻-옮긴이) 언론매체들이 조작(fabricate)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이 꾸며낸 그 따위 유치한 장난(childish games)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한 이란 정치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번 사건을 조작하였을 것이라는 이란 정치소식통의 발언은, 이란에게 불리한 사건에는 언제나 이란의 적국인 이스라엘이 개입하였다고 보는 직감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판단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이번 사건에 개입한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에 미국이 개입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화물선이 인도양을 지날 때, 미국 군부가 그 해역에서 초계임무를 수행하는 유럽 동맹국의 해군 함정들에게 연락하여 정선, 수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한다. 만일 미국이 개입하였다면 아랍에미리트 정부보다도 미국에서 먼저 목소리를 높이면서 대북제재 강행을 선동하였을 터인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미국이 개입하였을 가능성은 배제된다. 이러한 정황은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이번 사건을 단독으로 일으켰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아랍에미리트 정부당국이 이번 사건을 일으킨 동기는 무엇일까? 이란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북측과도 갈등을 빚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나라가 왜 그러한 사건을 일으켰을까?

아랍에미리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내셔널(The National)> 2009년 8월 30일자 보도는, 이번 사건과 아랍에미리트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한 바 있다. <내셔널> 2009년 4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는 아랍권에서 처음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추진하는 중인데, 2017년에 완공을 목표로 600억 달러 이상이 들어갈 원전건설사업에 프랑스, 미국, 일본, 남측의 여러 기업들이 몇몇 국제차관단들(consortia)을 구성하여 참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남측에서는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산업은행이 공동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내셔널> 8월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 연방의회가 90일 동안 아랍에미리트 원전건설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중인데, 이란에 핵물질이 흘러들어갈 것을 우려하는 강경파 연방의원들이 친이란 성향이 있는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세우는 것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의회는 오는 10월 17일까지 아랍에미리트 원전건설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여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그 결정이 자국의 원전건설사업에 유리하게 나오도록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무기밀매상이 판매하려던 중국제 밀매무기들을 발견하고서도 그것을 북측이 이란에 수출하는 무기인 것처럼 사건을 조작하고, 무기밀매사건을 자기들이 차단한 것처럼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에 보고함으로써, 아랍에미리트의 원전건설이 이란에게 핵개발 기술을 유출시키는 위험을 높여주지 않을까 우려하는 미국 연방의회 강경파를 안심시키려고 하였을 것으로 분석한 현지 언론의 보도는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2003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 동부연안 해역에서 마약밀매 혐의를 받고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에게 나포된 북측 화물선 봉수호 선원들은 2006년 3월 5일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재판부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이 북측에게 무기밀수출 혐의를 씌운 이번 사건도 2003년에 마약밀매 혐의를 뒤집어씌웠으나 결국 무죄로 판명된 봉수호 나포사건과 유사하게 보인다. 누가 저질렀는지 밝혀내기 힘든 국제범죄사건이 일어나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조건 북측이나 이란에게 혐의를 두고 국제여론을 몰아가는 관행이야말로 상습적인 국제범죄가 아닐까? (2009년 9월 7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