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바람 부는 남북미 삼각관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남북관계에서 나타난 주동과 피동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줄곧 대결분위기가 감돌던 남북관계에 2009년 8월 중순부터 유화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북측은 개성공업단지에서 북측의 실정법을 위반하여 구금된 현대아산 직원을 8월 13일에 송환하였고,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8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 머물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접견하였고, 8월 17일에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현대그룹이 남북교류협력사업 5개항을 합의하였고, 8월 21일에는 북측이 고 김대중 대통령 국장에 특사조의방문단을 파견하였고, 8월 23일에는 북측의 특사조의방문단이 청와대를 예방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였으며, 8월 25일 북측은 2008년 11월 12일에 끊었던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직통전화를 원상복구하였으며,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금강산 관광지구에 있는 금강산 호텔에서는 2007년 11월 이후 중단된 남북적십자회담이 북측의 제안으로 다시 열려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올해 추석 직전에 갖자고 합의하였으며, 8월 29일 북측은 30일 전에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13km 넘어갔다가 북측의 해군 경비함에게 나포된 오징어채낚이 어선 ‘800 연안호’ 선원 4명과 선박을 송환하였다.

이처럼 유화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8월 25일부터 북측의 <평양방송>은 2008년 4월 이후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로 비난하고 현 집권세력을 ‘역적패당’이라고 비난하던 말을 ‘남조선의 보수집권세력’이라는 말로 대체하고, ‘이명박 정권 타도’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있다.

지금 남측 언론이 ‘유화조치’ 또는 ‘평화공세’라고 부르는 일련의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하면서 남북관계를 유화분위기로 이끌고 있는 쪽은 북측이다. 북측의 그러한 태도변화와 비교해보면, 이명박 정권의 태도는 남북관계의 전환적 분위기에 하는 수 없이 끌려가는 옹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만나고 싶지 않은 북측의 특사조의방문단을 하는 수 없이 만나주는 식의 행동을 취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의 개선은 고사하고 대결분위기마저 거두려 하지 않는데도, 북측은 적극적으로 유화분위기를 띄웠다. 남북관계의 변화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은 피동적이고, 북측은 주동적이다.

부시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이명박

최근에 일어나는 상황변화는 남북관계 그 자체가 개선된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대결분위기가 유화분위기로 바뀐 것일 뿐, 남북관계의 대결요인들은 여전히 남아있을 뿐아니라, 그러한 대결요인들을 제거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가 감돌고 있어도 그러한 유화분위기 조성이 실질적인 관계개선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기간에 남북관계를 이처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까닭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첫째, 남북이 관계를 개선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남북 정부당국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는가 또는 이행하지 않는가 하는데 달려있다. 남북 정부당국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지 않고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는 말은 궤변이다.

북측이 이명박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까닭은, 이명박 정권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측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지름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정권에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려는 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라는 말 자체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명백하게도, 이명박 정권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밀쳐내는 태생적인 거부형질을 타고난 정권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기간에 남북관계 개선을 비관적으로 전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이명박 정권은 북측에게 핵포기부터 선행하라는, 말이 되지 않는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이전에 부시 정부가 대북압박책으로 써먹으려 하다가 결국 자승자박의 함정에 빠졌던 핵포기 선행론을 답습하는 것이다. 2009년 8월 29일 <연합뉴스>는 “최근 남북관계가 유화분위기인 건 사실이지만 비핵화 진전 없이 남북관계 개선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한 남측 정부당국자의 발언을 보도하였다. 그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이명박 정권은 부시 정부를 자승자박의 함정에 빠뜨린 핵포기 선행론에 매달려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2009년 8.15 경축사에서 핵포기 선행론을 재확인하였다. 그는 8.15 경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를 빌려 저는 북한 당국에 간곡히 촉구합니다. 핵무기는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장래를 더욱 어렵게 할 뿐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그는 핵포기 선행론을 재확인한 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북측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결심을 보여준다면,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적극 실행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것은 북측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북측을 개방하여 일인당 소득을 3천 달러로 올려주겠다는 이른바 ‘비핵개방 3000’을 다시 꺼낸 것이다.

조지 부시(George W. Bush)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기간에 ‘선 핵포기, 후 관계개선’을 주장하면서 북측을 자극하다가 북측의 초강경한 반격공세를 받고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는데, 오늘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보다 한 술 더 떠서 ‘선 핵포기, 후 개방촉진’을 주장하면서 북측에게 해서는 안 될 자극발언만 골라서 꺼내놓고 있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이 대북관계에서 보여준 갖가지 행태를 보면, 그 정권이 ‘선 핵포기, 후 개방촉진’을 스스로 철회하고 대북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명백하게도, 이명박 정권은 태생적으로 반북대결형질을 타고난 정권이다.

사정이 이처럼 심각한데, 북측이 일방적으로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를 띄우는 것을 보고 고무된 일부 분석가들이 이명박 정권에게 용단을 내려 대북관계 개선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 실현을 가로막아 왔듯이, 남북관계 개선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북측이 유화분위기를 띄운 까닭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현대그룹이 남북교류협력사업 5개항을 합의하였던 2009년 8월 17일, 그들의 합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명박 정권과 미국 군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합군 실전연습인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Ulchi-Freedom Guardian Exercise)을 강행하였다. 이전에 을지 포커스 렌즈(Ulchi-Focus Lense)라고 부르던 것을 2008년부터 을지 프리덤 가디언으로 개칭한 이 연례실전연습에서는, 한미연합군의 전투지휘소 훈련(warfighting command post exercise, CPX)을 정점으로 한 다종다양한 기동훈련이 남측 전역에서 8월 27일까지 계속되었다. 이 실전연습의 목표가 한미연합군의 침략적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없이 명백하다.

이처럼 북침공격을 가상한 한미연합군의 실전연습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데도, 북측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화분위기를 띄웠다. 왜 그러하였을까? 일부 분석가들은 최근에 일어나는 상황변화를 주시하면서 남북관계가 대결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되었다고 성급하게 단정하였지만, 그것은 논거가 빈약한 속단이며 도가 지나친 낙관이다.

물론 북측도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북측이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를 띄운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 개선에 호응해 나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까닭을 알아보려면, 남북미 삼각관계가 미묘하게 얽혀있는 상호연관성을 파악해야 한다.

현재 북측이 관심과 노력을 집중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남북관계 개선이 아니라 조미(북미)관계 개선이다. 조미관계 개선을 가장 중시하는 북측이 거기에 온 힘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왜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를 띄우기까지 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남북관계가 대결분위기에 묶인 조건에서는 북측이 대미관계를 개선하려 해도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측이 대미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대남관계를 대결분위기에 방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남북관계가 대결분위기에 묶인 조건에서 북측과 미국의 관계는 개선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북측은 대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우선 대남관계를 유화분위기로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00년과 2007년에 일어났던 연동작용

남북미 삼각관계가 미묘하게 얽혀있는 상호연관성이 연동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반도 정세는 이미 2000년에 그 연동작용을 경험한 바 있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나서, 10월 9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인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10월 12일에 워싱턴에서 발표된 조미 공동코뮈니케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들어있다. “조명록 특사는 역사적인 북남 최고위급 상봉결과를 비롯하여 최근 몇 개월 사이의 북남대화 상황에 대하여 미국측에 통보하였다. 미합중국측은 현행 북남대화의 계속적인 전진과 성과 그리고 안보대화의 강화를 포함한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조를 강화하기 위한 발기들의 실현을 위하여 모든 적절한 방법으로 협조할 자기의 확고한 공약을 표명하였다.” 이 구절은 남북미 삼각관계가 상호연관성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6.15공동선언에는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한다는 구절이 들어있고, 조미 공동코뮈니케에는 “쌍방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사이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이 조성된 데 대하여 심도 있게 검토하였다”는 구절이 들어있다. 6.15공동선언과 조미공동코뮈니케는, 남북미 삼각관계의 변화가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한 연동작용은 2007년에도 재발되었다. 2007년 8월 5일 국가정보원 김만복 원장과 통일전선사업부 김양건 부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남북(북남) 합의서’를 공동으로 발표하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월 3일에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을 맞아 그와 함께 10.4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남북관계 개선은 곧 조미관계 개선으로 이어졌다. 2007년 12월 1일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써서 서울에 대기 중이던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에게 급히 전달하였고, 힐 차관보는 12월 5일 평양방문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떠나기 직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대통령 친서를 박의춘 외무상에게 전하였다.

2000년과 2007년에 있었던 남북미 삼각관계의 연동작용을 살펴보면, 먼저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나서 조미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북측이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를 띄워놓은 것에 따라 조미관계도 곧 개선될 것이라는 점이다. 북측은 조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먼저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를 띄워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에 북측이 남북관계에서 일방적으로 띄우기 시작한 유화분위기는, 조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사전조치라고 말할 수 있다.

북측이 조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사전조치로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를 띄우는 까닭은, 북측에게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남북관계가 한미관계와 조미관계에 각각 의존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측이 인식하는 한미관계의 본질은, 미국이 남측을 지배하고, 남측은 미국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측이 인식하는 조미관계의 본질은, 북측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측은 남측과 미국의 지배-종속관계와 북측과 미국의 적대관계가 남북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고 있다. 남북미 삼각관계가 변화되는 방향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남북관계 개선과 조미관계 개선은 연동되는 것이므로, 북측이 조미관계를 개선하려고 할 때는 먼저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를 띄우게 된다. 지난 시기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의 경험에서 나타난 것처럼, 남측 정권이 남북관계를 개선할 진정성을 지닌 경우에는 북측이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를 띄우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개선까지 적극 추진하게 된다.

둘째, 북측과 미국이 관계를 개선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미관계가 정상화되면, 남북관계도 당연히 개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상화될 것이다. 조미관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북측과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이행해야 하고,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남측과 북측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해야 한다. 북측과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이행하려면 조미 정상회담이 열려야 하고, 남측과 북측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려면 남북 최고위급회담이 열려야 한다.

그런데 최근 정세변화를 보면, 조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차츰 높아지는 반면, 남북 최고위급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조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높여준 두 가지 사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전 대통령을 통해 오바마(Barack H. Obama) 대통령을 평양에서 만나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담판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제안한 것과 일본에서 8월 30일에 실시된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하여 54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 정권과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대북정책에서 엇박자를 내지 않게 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북외교에 ‘윤활유’를 쳐주는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다.

그에 비해서, 이번에 북측의 특사조의방문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하기는 하였어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할 의사가 없는 까닭에 남북 최고위급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백악관에 보낸 관계개선의 신호

북측을 방문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8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고, 그 이튿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남북교류협력사업 5개항을 합의하고 있을 때, 조미민간교류협회(Korea-America Private Exchange Society) 최일 부회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조미민간교류협회의 미국 방문은 국제아동구호단체 월드 비전 인터내셔널(World Vision International)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월드 비전 인터내셔널은 미국 정부의 대북식량지원사업에 참가해온 비정부기관인데, 조미민간교류협회 대표단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먼로비아(Monrovia)에서 그 기관의 관계자들과 만나 인도주의사업에 관해 협의하였다. 조미민간교류협회는 2006년에 창설된 비정부기관인데, 창설된 뒤 몇 차례 미국을 방문하였고, 2009년에 들어와서도 2월 26일부터 3월 7일까지 미국을 방문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남측 언론들이 조미민간교류협회 대표단의 미국 방문에 대해 ‘비밀방문’이니 ‘조미관계 개선 신호’니 하는 식으로 보도한 것은 오보다. 조미민간교류협회 대표단의 미국 방문은 북측과 미국의 민간단체들끼리 전개하는 교류협력사업의 일환이다.

정작 관심을 끄는 것은, 2009년 8월에 들어와서 북측이 남북관계에 유화분위기를 띄우는 것과 더불어 조미관계 개선의 신호를 보냈다는 점이다. 북측은 아래와 같은 신호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냈다.

첫째, 조미민간교류협회 대표단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날인 2009년 8월 19일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 김명길 공사가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 뉴멕시코주 주지사를 만났다. 그 만남은 유엔주재 북측 대표부의 제의로 이루어진 것인데, 빌 리처드슨 주지사는 산타페(Santa Fe)에 있는 주지사 관저에서 김명길 공사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김명길 공사는 북측이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화하기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둘째, 2009년 8월 24일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이 언론에 전한 바에 따르면, 북측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전후한 시점인 2009년 8월 초에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대북정책 특별대표(Special Representative for North Korean Policy)와 성 김(Sung Kim) 대북회담 특사(Special Envoy for North Korean Talks)가 9월에 평양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미국 뉴욕에 있는 사회과학연구소의 동북아안보협력사업국 리언 시걸(Leon V. Sigal) 국장은 2009년 8월 28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대담하면서, 보스워즈 특별대표가 2009년 9월 중순께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리언 시걸 국장은, 2009년 8월 17일 미국 국무부의 필립 크롤리(Philip J. Crowely) 공보담당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for Public Affairs)가 기자들의 물음에 답하면서 보스워즈 특별대표의 즉각적인 방북계획은 없다(no immediate plans to visit North Korea)고 말한 것은 그가 당장 평양에 가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의 방북 가능성 자체를 부정한 말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김명길 공사가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 빌 리처드슨 주지사를 만나고 있을 때, 중국 외교부 우다웨이(武大偉) 부부장은 평양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나고 있었다. 우다웨이 부부장은 8월 17일부터 21일까지 평양에 머물면서 북측에게 6자회담 복귀문제를 설득하였으나 북측은 그를 빈 손으로 돌려보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공식선언한 북측이 혹시 생각을 바꿔 6자회담에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리석게도 중국은 북측이 6자회담에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어처구니없게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이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기 때문에 조미관계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왜곡선전을 내대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구상하는 조미 양자회담은 그 자체가 정치적 의의를 갖는 회담이 아니라, 북측을 6자회담에 끌어들이는 유도전술의 의의만 가진 회담으로 미리 정해진 것이다. 이를테면, 2009년 5월 9일 미국 국무부 로벗 우드(Robert A. Wood) 부대변인은 6자회담을 강화하는 것이 조미 양자회담의 전제조건이라고 하면서, 6자회담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북측과 양자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5월 11일 일본 도쿄를 방문한 스티븐 보스워즈 특별대표가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6자회담 틀 안에서 북측과 직접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도 유도전술에 근거한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이 6자회담에 미련을 갖는 것이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6자회담을 고집하는 것은 모두 오판의 산물이다.

기억해야 할 협상경험, 선택해야 할 정상회담

문제의 핵심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적대정책은 그대로 두고, 북측을 유도하여 이미 파산되어버린 6자회담에 복귀시켜보려는 생각에 집착하는 한, 조미관계도 개선될 수 없고 한반도 비핵화도 실현될 수 없다. 그러므로 명백하게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여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한다는 의사는 성명발표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 같은 실천행동으로도 보여주어야 한다.

첫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유엔안보리 막후에서 주동한 대북제재 결의를 해제하는 것이다. 북측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야말로 대북적대정책의 본보기가 아닌가.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공식선언한 북측에게 제재를 강행하면서 6자회담에 복귀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북측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하는 적대행위이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6자회담 복귀촉구를 철회해야 마땅하다. 그들은 6자회담 복귀촉구를 철회하는 대신, 변형된 다자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를 북측과 합의하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에 제출한 대북제재 이행 국가보고서에서 유엔안보리 결의 이행이 북측의 정상적인 대외관계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북측이 대북제재 결의 규정을 준수할 경우 대북제재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해제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판단은,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해제하지 않는 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둘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오바마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를 추진하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유엔안보리에게 대북제재 결의를 해제하는 길을 터주고, 북측과 정상회담 개최문제를 합의한다면, 북측은 변형된 다자회담 개최문제를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조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주한미국군 철군을 결단하고, 그에 상응하여 북측은 핵무기 포기를 결단함으로써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관계정상화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

2009년 8월 22일 주중 미국대사 존 헌츠먼(Jon M. Huntsman)은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11월 14일부터 15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한 길에 중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에서 평양까지는 항공편으로 1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베이징까지 갔다가 그냥 발길을 돌리는 것은 그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의사가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조미 정상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 포기와 주한미국군 철군을 맞바꾸는 담판을 짓고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유일한 길이다. 지난 시기에 있었던 중미관계 정상화의 역사적 경험은, 적대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정상회담에서 담판을 짓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1977년 1월 20일 백악관에 입성한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 미국이 1972년 2월 27일에 발표한 ‘상하이 코뮈니케(Shanghai Communique)’를 실현하기 위한 방도를 강구하였고, 1979년 1월 1일 워싱턴을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과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을 계기로 하여 ‘외교관계 설정에 관한 공동코뮈니케(Joint Communique on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를 채택하였다. 중미관계 정상화에 따라, 지미 카터 대통령은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 집권시기인 1954년 12월 2일에 미국과 대만이 체결한 중미상호방위조약(Sino-American Mutual Defense Treaty)을 대통령 직권으로 폐기하고, 대만에서 미군군의 전면철군을 단행하였다.

2007년 12월 5일 베이징에서 열린 공개강연회에 출연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30여 년 전 중미 수교협상 경험을 회고하면서 당시 백악관은 보안유지를 위해 중미수교에 관한 일부 민감한 문제를 국무부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로 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싸이런스 밴스(Cyruns Vance) 당시 국무장관에게도 알리지 않고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상의하면서 은밀하게 중미 수교협상을 추진하였다는 뜻이다. 그보다 먼저 중미수교의 길을 터놓았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도 윌리엄 로저스(William P. Rogers) 당시 국무장관에게 알리지 않고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상의하면서 은밀하게 중미 수교협상을 추진하였는데, 그러한 경험이 카터 집권시기까지 연장된 것이다.

2009년 8월 24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전직 대통령의 보고, 전현직 대통령의 밀담’에서 논한 것처럼,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오바마 대통령이 국무부를 통하지 않고 직접 대통령 행정실을 통하여 추진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직접지시를 받는 대통령 행정실이 대북외교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 직권으로 조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닉슨 전 대통령의 중미 정상회담 추진경험과 카터 전 대통령의 중미관계 정상화 추진경험을 계승할 수 있을까? (2009년 8월 3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