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의 보고, 전현직 대통령의 밀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백악관 상황실 회합현장을 촬영한 사진

2009년 8월 18일 오후 4시에 가까운 시각, 검은색 9인승 대형승용차 쉐비 섭어번(Chevy Suburban) 차량행렬(caravan)이 워싱턴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그 차량행렬 가운데 어느 한 승용차 뒷좌석에는 기자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잔뜩 몸을 낮춘 중년남자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전 대통령이 바로 그였다. 차량행렬은 기자들의 눈을 피해서 백악관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옆문으로 들어갔다. 2009년 8월 18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기사는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대통령을 만나러 백악관에 들어간 클린턴 전 대통령의 모습을 그렇게 전해주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백악관 서관(West Wing) 지하에 있는 상황실(Situation Room)로 갔다. 외부도청을 완벽하게 차단해주는 특수유리로 밀봉되고, 특수감지기들이 작동하는 백악관 상황실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회의가 열리는 장소다. 백악관 상황실에는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중요사건들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첨단통신시설이 갖춰져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상황실에 들어가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신의 방북활동을 보고(debrief)한 것은, 그가 꺼내놓은 대북정보가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정보이었음을 암시한다.

백악관 대변인실(Office of Press Secretary)은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현장을 찍은 사진 한 장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미국의 우익성향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가 보도한 현장사진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회의탁자의 가운데에 앉았는데, 그의 왼쪽 곁에 앉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뭔가 설명하는 모습이 보인다. 현장사진에는 배석자들 모습도 찍혔는데, 조 바이든(Joseph R. Biden) 부통령, 제임스 존스(James L. Jones) 국가안보보좌관, 토머스 다닐론(Thomas E. Donilon) 국가안보차석보좌관(Deputy National Security Advisor), 그리고 제프리 베이더(Jeffrey A. Bader)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Senior Director for Asian Affairs)이 차례로 앉아있다. 베이더 선임국장 다음에 앉아있었던 사람은 그를 보좌하는 대니 럿셀(Danny Russell) 일본 및 코리아 담당관(Director for Japan and Korea)인데, 사진에는 그의 모습이 찍히지 않았다.

현장사진이 보여주는 배석자 착석순서는 대통령 행정실(Executive Office of the President)의 관계부서에서 대북정책을 결정하는 지위와 권한이 어떻게 서열화되어 있는지를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제프리 베이더 선임국장이 작성한 백악관의 대북정책 초안은 토머스 다닐론→제임스 존스→버락 오바마로 이어지는 상향직보체계를 거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되는데,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된 대북정책이 다시 국무부로 내려가면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hdam Clinton) 국무장관이 주재하는 국무부 회의에서 집행방안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대북정책이 수행되는 것이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것은 국무부가 대북정책을 수행하는 맨 마지막 단계인데, 마지막 단계 이전에 진행된, 더 중요한 단계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현장사진을 찍은 촬영각도를 좁혀놓는 바람에, 그 밖의 다른 배석자들이 누구였는지를 알 수 없다. 그 자리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북정보를 보고하는 자리였으므로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관리들도 당연히 배석하였을 것이다. 백악관 현장사진을 찍는 전담 사진기사가 국가정보국장실 관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방향을 택해서 사진을 찍은 것은, 정보담당 관리들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습성을 고려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정식회의가 아니라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북정보를 보고하는 회합이었다. 따라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정규성원 아홉 사람이 그 회합에 모두 참석할 필요는 없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정규성원은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합참의장, 국가정보국장, 국가안보보좌관,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안보차석보좌관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북정보를 보고하는 자리가 국가안보회의 정식회의는 아니었지만, 국무장관이 배석해야 마땅한데 클린턴 국무장관이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그 시간에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을 마친 콜롬비아 외무장관 하임 버뮤디즈(Jaime Bermudez)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자기를 대신하여 자신의 선임보좌관(senior advisor) 체릴 밀스(Cheryl Mills)를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에 배석자로 보냈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왜 그 자리에 배석하지 않았을까? 콜롬비아 외무장관과 회담하는 것이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에 배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해서 불참한 것은 아니며, 자기 남편이 방북보고를 하는 자리여서 일부러 피한 것은 더욱 아니다.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에 클린턴 국무장관이 배석하지 않은 것은, 국무부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추진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나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은 모두 대통령 행정실에서 도맡아 추진한 일이다. 따라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보고한 대북정보에 기초하여 차후 대북사업의 방향을 정하는 것 역시 대통령 행정실에서 결정할 일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처음부터 대통령 행정실에서 추진해왔다는 사실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그것은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대북사업을 추진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국무부는 자기들이 추진하는 대북사업을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하지만, 대통령 행정실이 추진하는 대북사업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은밀성을 특징으로 한다.

대통령 행정실이 대북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다는 사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의 방북을 준비하는 실무책임을 맡은 관리는 조셉 디트라니(Joseph R. De Trani)였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대정보를 직보하는 백악관 국가정보국장 데니스 블레어(Dennis C. Blair) 밑에는 그를 보좌하는 담당관이 여섯 명 있는데, 조셉 디트라니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직책은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 소속 북코리아 담당관(North Korea Mission Manager)이다.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 소속 북코리아 담당관은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연방정부 16개 정보기관들이 수집하고 분석한 다종다양한 대북정보를 종합하는 임무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북사업을 기획하고 그 실행을 보장하는 임무도 맡아보는 매우 중요한 관직이다. 이것은 디트라니→블레어→오바마로 이어지는 대북정보 직보체계가 작동되고 있고, 오바마→블레어→디트라니로 이어지는 대북사업 실행체계가 작동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원래 국무부에 소속되어 한때 6자회담 특사로 활동하였던 디트라니가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 소속 북코리아 담당관으로 임명된 때는 2006년 1월 18일이었다. 그 뒤로 부시 정권이 오바마 정권으로 바뀌었는데도 디트라니는 여전히 그 직책을 맡아보고 있다. 그 직책이 아무나 대신할 수 없는 요직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국제연합통신(United Press International)> 2009년 5월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디트라니는 1주일 동안 서울을 비공식 방문하면서 청와대, 외교통상부, 국정원 관리들과 만나 대북정보를 수집해갔다고 한다. 그의 활동은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디트라니 담당관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관한 실무를 맡아보았다는 말은, 대통령 행정실이 국무부를 통하지 않고 직접, 독자적으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추진하였다는 뜻이다. 국무부 관리들이 대북사업을 추진해온 기존 사업방식에서 벗어나, 대통령 행정실이 직접 대북사업을 추진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소홀히 여기는 게 아니냐 하는 세간의 추측과는 정반대로 대북정책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음을 말해주는 중요한 정보다.

빌 클린턴이 꺼내놓은 대북정보

이 글의 주된 관심사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상황실에서 어떤 대북정보를 꺼내놓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보고한 대북정보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외부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할 길은 없지만, 미국 언론의 관련보도를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윤곽이 그려진다.

우선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에 대한 백악관의 공식입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황실 회합을 마친 직후, 로벗 깁스(Robert Gibbs) 백악관 대변인이 내놓은 성명은 이렇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 백악관 상황실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을 근 40분 동안 만났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넉 달이 넘게 북코리아에 잡혀있던 두 미국인의 석방을 성사시키는 인도주의 임무(humanitarian mission)를 수행한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몸소(in person) 사의를 표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코리아 지도부가 두 여기자에게 ‘특별사면(special amnesty)’을 실시하고 그들이 미국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해주고, 김정일과 만난 것으로 절정에 이른(culminate)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두 미국인이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온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백악관 대변인이 내놓은 위의 성명을 읽어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두 미국인 여기자가 특별사면을 받고 석방된 과정만 설명한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클린턴 전 대통령이 꺼내놓은 방북보고의 중요한 내용을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대외비로 처리하고 넘어간 것은 명백한 일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현직 대통령이 백악관 고위관리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전직 대통령을 거의 40분 동안 만난 흔치 않은 회합에서 고작 인도주의 임무수행에 관한 보고만 받고 끝났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로벗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이 시작되기 직전에 기자들에게 그 회합이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측에서) 보고 들은 것과 우리가 가야할 방향에 관련해서 그가 직접체험으로 얻은 생각들(first-hand and direct impressions)을 논하는 중요한 기회(crucial opportunity)”라고 말하면서 크게 기대했었는데, 회합을 마치고 나자 인도주의 임무수행에 관한 보고만 있었다는 식으로 말을 바꾼 축소성명을 내놓은 것이야말로 그들이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매우 중대한 정보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보고에 들어있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로이터통신(Reuters)>의 워싱턴발 2009년 8월 14일자 보도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매우 놀라운 경험(quite an amazing experience)”이었다고 회상한 존 포데스타(John D. Podesta) 회장의 말을 실었다.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회장인 존 포데스타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클린턴 대통령 밑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고,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월 20일까지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권인수단 공동단장을 지냈으며, 이번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수행한 사람이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Philadelphia Inquirer)> 2009년 8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이 진행되고 있었던 시간에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콜롬비아 외무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은둔하는 나라(reclusive country, 북측을 비꼬는 표현-옮긴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들여다볼 통로(window)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자기 남편이 북코리아에서 가져온 정보가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extremly helpful)”고 말했다고 한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자기들의 대북인식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표현한, 클린턴 전 대통령이 꺼내놓은 대북정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와 후계문제에 관한 정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이 파악하고 싶었던 대북정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와 후계문제에 관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2009년 8월 18일자 보도기사에서 미국 정부 관리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려고 애썼다고 지적하였다.

지난해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퍼뜨리고, 한 술 더 떠서 북측 지도부 안에서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권력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정보를 조작하여 미국 언론에 흘려주었던 왜곡선전의 진원지는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이었다. 데니스 블레어 국가정보국장이 2009년 2월 12일 연방상원 정보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버젓이 올라있었다.

그들의 왜곡선전을 되돌아보면, 2008년 9월 10일 <뉴욕타임스>가 “미국 정보기관 관리들로부터” 들었다고 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처음으로 보도하였고, 이튿날 <팍스 뉴스>는 “부시 정부 고위관리로부터” 들었다고 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으로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처럼 보도한 바 있다. 2009년 2월 19일 인도네시아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열린 비공식 기자간담회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측에서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권력투쟁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하면서 후계문제 불안정설을 꺼내놓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바 있다.

그런데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클린턴 전 대통령과 두 차례 만나서 얻은 대북정보, 그리고 그들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수행하여 방북하였던 동행자들과 만나서 파악한 대북정보는,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이 움켜쥐고 있었던 건강이상설이나 후계문제 불안정설이 한결같이 무지와 오판이 빚어낸 허구였음을 드러내주었다. <뉴욕타임스>는 2009년 8월 19일자 보도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를 둘러싼 몇 가지 그림자들을 걷어내게 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의혹의 그림자가 걷혔다는 표현은 너무 완곡한 것이고, 건강이상설이 파탄되었다고 표현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건강이상설이 허구로 판명되면, 거기서 파생된 후계문제 불안정설도 자연히 허구로 판명되는 것이다. 건강이상설과 후계문제 불안정설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보고로 동반하여 파산한 것은,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의 대북정보판단이 또 다시 실패의 쓴 잔을 들이키고 말았음을 말해준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눈 전현직 대통령의 밀담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09년 8월 9일 <팍스 뉴스> 텔레비전방송 대담프로그램인 ‘팍스 뉴스 선데이(Fox News Sunday)’에 출연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일행을 접견한 시간은 세 시간이었는데, 접견은 “진지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respectful and cordial in tone)”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존스 보좌관은 접견시간이 세 시간이었다고 하였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접견시간은 한 시간 15분이었고 만찬시간은 두 시간이었다.

접견 분위기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언급한 사람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수행한 존 포데스타 회장이다. <로이터통신> 2009년 8월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기자 몇 사람과 만난 존 포데스타 회장은 접견 분위기에 대해 말하면서 “토론은 매우 솔직하였고(the discussions were pretty straightforward)”,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주 적극적이었다(fully engaged)”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갔음을 뜻하는 말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자유아시아방송(RFA)> 2009년 8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찬을 베푼 자리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아리랑’ 공연을 함께 관람하자고 세 차례나 제의하였으나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때마다 대답을 피한 채 음식이 매우 훌륭하다고 말하는 식으로 화제를 돌렸다고 한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개막한 날은 2009년 8월 10일이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한 날은 8월 4일이었으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관람을 제의한 날은 아리랑 공연이 개막하기 전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막준비로 한창 바쁜 아리랑 공연을 앞당겨 함께 관람하자고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세 차례나 제의한 것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좀더 머물러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가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에 더 머물게 하려고 하였던 까닭은, 차분히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그를 설득해서 자신의 진의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확하게 전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거의 40분 동안 진행된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이 끝난 직후에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따로 만나 30분 동안 밀담을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로벗 깁스 백악관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회합을 마친 뒤에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로 초청(invite)하여 30분 동안 대담(conversation)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2009년 8월 10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글 ‘빌 클린턴 방북의 숨은 그림’에서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일행을 접견한 직후에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단독으로 접견하였음을 논한 바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단독으로 접견하였을 때, 오바마-클린턴의 집무실 밀담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단둘이 만난 까닭은, 그에게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예민한 정보를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2009년 8월 18일자 보도는 오바마-클린턴의 집무실 밀담을 묘사하면서 “그들이 처음으로 몸소 만나서 진행한, 깊이 있는 보고(their first in-person and in-depth debriefing)”였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한 표현은 배석자들이 있었던 오바마-클린턴의 상황실 회합보다 배석자들이 없었던 오바마-클린턴의 집무실 밀담에서 더 깊은 대북정보를 꺼내놓았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명백하게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밀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중대제안을 전하였을 것이다. 2009년 8월 9일에 방영된 ‘팍스 뉴스 선데이’에 출연한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코리아는 미국과 더 좋은 관계(better relation)를 맺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고 간단히 말하였을 뿐 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중대제안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제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대제안은 2009년 8월 10일에 발표한 나의 글 ‘빌 클린턴 방북의 숨은 그림’에서 논한 것처럼,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준비를 완료하였으니 오바마 대통령을 올해 안에 평양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합의하면 핵포기를 단행할 수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는 파격적인 제안이었을 것이다. 오바마-클린턴의 집무실 밀담이 30분 동안이나 이어진 까닭은, 그처럼 중대한 제안을 전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집무실 밀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달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밖에 없는데, 그는 그의 반응을 비밀로 묻어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반응에 대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무슨 조언을 주었을까? 그의 조언을 들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바마 대통령밖에 없는데, 그는 그의 조언을 비밀로 묻어둘 것이다.

집무실 밀담이 이처럼 비밀에 묻혀있어도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달받은 오바마 대통령이 그 제안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거듭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앞바다에 떠있는 말더스 빈여드(Martha’s Vineyard) 섬의 멋진 휴양시설 블루 헤론 팜(Blue Heron Farm)에서 2009년 8월 21일부터 1주일 동안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보내는 중인데, 그가 휴가를 마치고 백악관에 돌아가는 대로 백악관 고위관리들과 상의하여 자기의 고심을 풀기 위한 방도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을 것이다.

2008년 6월에 기밀해제된 1급 비밀문서인 대통령 문서 비망록(Memorandum for the President's File)에 따르면, 1974년 8월 27일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세스쿠(Nicolae Ceausescu) 당시 대통령의 특사로 파견된 대통령 고문 버싸일 푼간(Vasile Pungan)은 백악관을 예방한 자리에서 제럴드 포드(Gegald R. Ford) 당시 대통령에게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4년 6월 16일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였고, 또 다시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09년 8월 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지난 35년 동안 미국 민주당 출신의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은 평양을 방문하였으나 현직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1974년 8월 루마니아 대통령 고문을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였던 정상회담 제안을 이번에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35년 전에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어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고 구상하였던 김일성 주석의 유지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8월 24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