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방북의 숨은 그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그를 지목하였을까?

2009년 8월 4일 전세계 언론들은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한 소식을 긴급히 타전하였다. 그로부터 약 20시간이 지난 8월 5일 오전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사면을 받은 두 미국인 여기자를 자신이 타고 갔던 특별기에 태우고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

모든 사람들이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두 미국인 여기자의 특별사면과 귀환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특별사면에서 귀환으로 숨가쁘게 이어진 전개과정 속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그림’이 있다. 클린턴 방북의 숨은 그림을 찾아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숨은 그림의 첫 장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택이다. 그는 두 미국인 여기자를 데려갈 적임자로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지목하였다. 원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두 미국인 여기자를 데려오기 위해 앨 고어(Al Gore) 전 부통령을 평양에 보내려고 하였다. 그 여기자들이 소속된 텔레비전 방송국의 소유주가 앨 고어 전 부통령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를 평양에 보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생각과 다르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적임자로 지목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를 지목한 까닭은,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대통령에게 자신의 진의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해줄 적임자는 이 세상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밖에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러한 판단은 아래와 같은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첫째,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북측과 미국의 대결을 개시하였던 장본인이었고, 그 대결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나서려고 하였던 장본인이었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대로, 빌 클린턴이 제42대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던 1993년 1월 20일부터 2001년 1월 20일까지 8년 기간은 북측과 미국이 핵문제를 놓고 전쟁접경에까지 다가서는 대결을 벌이다가 결국 핵문제를 풀기 위한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1993년 3월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3월 12일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였고, 그로부터 7년 뒤인 2000년 10월 1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명록 특사를 워싱턴에 파견하여 클린턴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하였고 조미 공동코뮈니케가 발표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받은 친서에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대제안이 들어있었다. 그 제안을 받은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11월에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를 검토하다가 막판에 반대파의 강한 제동에 걸려 포기하고 말았다.

둘째, 클린턴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북측 핵문제에 관련한 극비정보를 보고받은 경험이 있다. 8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그는 중앙정보국장의 정기보고를 통하여 북측 핵문제에 관련한 극비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경험은 그가 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북측 핵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주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 가운데서 북측 핵문제와 관련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하는 말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적임자였다.

셋째,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지위를 가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진의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하는 길은, 자기의 말을 들은 매개자가 백악관에 들어가서 대통령에게 직접 전하는 것이다. 백악관에 들어가서 대통령을 따로 만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전직 대통령에게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존스(James Logan Jonse, Jr.)에게 자신이 두 미국인 여기자를 데려오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겠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한 언론보도만 읽으면, 마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평양방문 의사를 밝힌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위에서 논한 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적임자로 지목하였는데, 그러한 사실을 백악관에 전달한 사람은 북측 법정에서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고 평양 시내 초대소에 연금되어 있었던 두 미국인 여기자였다. 그들은 2009년 7월 18일 미국에 사는 자기 가족들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와준다면 자신들이 석방될 수 있다는 북측의 의사를 전하였다. 북측의 이러한 의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지목하여 초청하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북측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바란다는 사실은 제임스 존스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전해졌고, 존스 보좌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평양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하였다. 2009년 7월 24일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백악관의 방북요청을 수락하였다. 그리하여 존스 보좌관은 7월 26일부터 8월 1일까지 정부 당국자들을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보내 방북준비와 관련하여 설명하는 기회를 여러 차례 가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그의 방북활동을 여기자 석방을 위한 인도주의적 개인활동으로 보이게 만드는 과제였다.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그들의 고심어린 노력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일행을 태운 특별기가 태평양 상공을 가로질러 평양에 도착하였을 때, 로벗 깁스(Robert Gibbs) 백악관 대변인이 발표한 두 문장으로 된 짤막한 성명에서도 드러났다. 그 성명은 이렇다. “두 미국인의 석방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 오로지 사적인 임무(solely private mission)가 수행되는 동안,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삼갈 것이다. 우리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공적인 임무수행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전직 대통령의 방북을 개인활동으로 보이게 만들려면 연방정부의 재정을 한 푼도 지출하지 않고, 현직 정부관리가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북측과 미국을 항공기로 왕복하는 경비는 민간인의 재정후원으로 해결하였다. 클린턴의 자택이 있는 뉴욕시 인근 웨체스터(Westchester)에서 로스앤젤레스 인근 버뱅크(Burbank)에 있는 밥 호프 공항(Bob Hope Airport)까지 미국내 항공편은 클린턴에게 재정후원을 해주는 기업체인 다우 케미컬(Dow Chemical)에서 제공하였고, 할리우드의 재력가이며 클린턴의 가장 유력한 재정후원자인 스티브 빙(Steve Bing)이 소유한 전용기 보잉 737기가 캘리포니아에서 평양까지 왕복 항공편을 위해 동원되었다. 스티브 빙이 클린턴과 그 일행의 항공편 방북에 지출한 경비는 20만 달러에 이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측근과 전직 관리를 민간인 신분으로 동행하도록 조치하였고, 통역관도 국무부에서 차출하지 않고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차출하는 등 신경을 썼다.

북측과 미국이 핵문제를 둘러싸고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이고 있었던 1994년 6월 15일부터 18일까지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를 평양에 보낸 사람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평양을 찾은 카터 전 대통령에게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대제안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하라고 부탁하였고, 그 부탁을 받은 카터 전 대통령은 판문점에 대기시켜놓은 자신의 수행원을 통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즉각 보고하였다. 이처럼 김일성 주석과 클린턴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을 매개자(mediator)로 하여 긴박하게 핵협상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가져오는 정치적 변화에 대한 학습효과를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번에 자기 차례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정치화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의 방북을 비정치화(depoliticize)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일행이 평양 인근에 있는 순안비행장에 내리는 순간부터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즉석사진이 말해주는 놀라운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년 전 정상회담에서 만나려고 하였던 클린턴 전 대통령을 이번에 만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를 만난 것은 그를 통하여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신의 진의를 정확하게 전하기 위한 조치였으므로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체류는 그 조치에 따라 진행되었다. 국빈급 내방자를 위한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일행을 접견한 시간은 1시간 15분이었고, 국방위원회가 주최한 만찬 시간은 2시간이었다.

외부 언론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체류 현장을 취재할 수 없었으므로 체류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의 체류상황에 대해서는 <조선중앙통신>이 2009년 8월 5일 오전 3시 58분에 보도한 기사와 현장사진 몇 장이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을 분석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개선 방도와 관련한 견해를 담은 바라크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의 구두메쎄지를 정중히 전달하였다”고 한다.

북측에서는 다른 나라 국가원수의 특사자격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사람들이 ‘구두친서’를 전달하였다고 지금까지 줄곧 표기해왔는데, 이번에는 ‘구두메쎄지’라는 새로운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 구두메쎄지는 구두친서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의 방북을 어떻게 해서든지 비정치화하려고 애썼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어떤 정치적 의사를 전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한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메쎄지는 북측과 미국의 “관계개선 방도와 관련한 견해를 담은” 일반적인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메쎄지를 전달한 자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미국인 여기자에게 특별사면을 실시하고 석방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알려준 접견석상이었다. 그래서 “클린톤은 이에 깊은 사의를 표시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메쎄지를 정중히 전달한 것이다. 이와 같은 특별사면과 사의표명은 실무문제를 처리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관심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클린턴 전 대통령 접견이 위와 같이 실무문제를 처리한 뒤에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무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접견한 것이 아니다. 만일 두 미국인 여기자를 미국으로 돌려보내는 석방문제를 처리하는 실무적 접견이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지목하여 평양에 오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고 평양에 나타난 그에게 국빈급에 준하는 예우를 베풀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목적은 실무적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일관되게 정치적인 것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클린턴 전 대통령 접견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조미 사이의 현안문제들이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고 깊이 있게 론의되였다”고 전하였다. 원래 논의한다는 말은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다는 뜻인데,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자리에서 “조미 사이의 현안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왜냐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방북을 준비하던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평양에 머무는 동안 그 현안문제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접견석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매개자로 하여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신의 진의를 전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매개자에게서 어떤 중대발언이 나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접견은 논의가 아니라 경청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접견현장 사진은 모두 네 장이다. 그 가운데서 한 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일행 전원과 함께 촬영한 의전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접견석상을 촬영한 의전사진이다. 또 다른 사진은 접견실 문 앞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른 손을 들고 클린턴과 그 수행원들에게 무엇인가 말해주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고, 마지막 사진은 접견실 문 앞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원래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국빈급 내방자는 거대한 파도그림이 걸려있는, 의전사진을 찍는 지정장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른쪽에 서거나 또는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에 클린턴 일행 전원과 함께 찍은 의전사진에서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른쪽에 앉아 있다. 그런데 네 번째 사진은 의전사진을 찍는 지정장소가 아니라 접견실 문 앞에 서서 찍은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른쪽에 서서 사진을 찍어야 정상인데, 왼쪽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러한 사정은 그 사진촬영이 의전상 예정되지 않았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즉석에서 청하여 찍은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그 즉석사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얼굴빛이 환하게 웃는 밝은 모습이고, 그의 왼쪽에 서 있는 클린턴 전 대통령은 평소에 웃음기를 머금던 화사한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의전상 예정되지 않은 즉석사진을 찍었을까? 그 즉석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일행을 접견한 직후에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단독으로 접견하였음을 말해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단독으로 접견한 직후 접견실 문을 나서는 순간, 그를 자신의 왼쪽에 세운 채 즉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일행을 접견한 자리에서 실무문제를 처리하고 나서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단독으로 접견하였고, 그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중대제안을 하였다는 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단독으로 접견하면서, <조선중앙통신>의 표현을 빌리면,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고 깊이 있게” 중대제안을 설명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단독접견을 위해서 그를 방북 적임자로 지목하였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자신의 중대제안을 단독접견 석상에서 그에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9년 8월 7일 뉴욕에서 클린턴 재단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나는 미국과 북측이 현재 상태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하게 되기를 바라지만, 내가 그 이상 더 말하는 것은 두 나라의 결정이나 조치에 부주의하게(inadvertently)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더 이상 정책결정권자가 아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방북활동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였다. 달변가형 정치인으로 소문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에 돌아와서 자신의 방북에 대해 말을 아끼며 매우 절제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가 갑자기 소심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에게만 직접 보고해야 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대제안을 들었기 때문이고, 그 중대제안에 엄청난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단독접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만 전하라고 당부하면서 말해준 중대제안은 무엇일까? 명백하게도, 클린턴 전 대통령이 들은 중대제안은 북측과 미국 사이에 최대 정치현안으로 제기된 핵문제에 관련한 제안이다.

북측은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관계정상화를 실현하면 그에 상응하여 핵포기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말해왔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단독접견한 자리에서 그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진 해결방침을 되풀이하여 말해주었을 리는 만무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한 중대제안은, 이미 공개된 해결방침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일 것이며, 세상에 공개할 수 없는 극비사항이 담긴 제안일 것이며, 그리하여 오바마 대통령에게만 전해주어야 할 놀라운 내용이 담긴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중대제안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아래와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측이 핵탄두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핵탄두 운반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를 밝혀주었을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즉석사진에서 잔뜩 긴장한 모습을 하였고, 미국에 돌아와서도 입조심을 하고 있는 까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위와 같은 충격적인 극비정보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북측이 보유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직접 듣는 순간,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받은 충격은 너무 컸을 것이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측이 보유한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폐기하는 핵포기 공약을 이행할 유일한 해법은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는 정상회담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오바마 대통령을 올해 안에 평양에서 만나고 싶다는 초청의사를 표명하였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포기 공약을 이행할 모든 준비를 완료하였으니 정상회담을 열기만 하면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덧붙여 말해주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나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여야 핵문제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이 이처럼 명백한데도, 정상회담 개최제안을 거부하고, 실효성 없는 대북제재조치나 남발하면서 허송세월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정상회담으로 끌어내려면 위와 같은 극비정보를 그에게 알려주는 ‘충격요법’을 쓰는 것 이외에 다른 방책은 없었을 것이다. 만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단독접견에서 핵포기 공약을 이행하겠으니 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식의 누구나 다 아는 제안을 꺼내놓았다면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정상회담으로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셋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위와 같은 극비정보와 중대제안을 말해주는 단독접견 석상에 북측 통역관과 미국측 통역관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영어로 말하였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4시간 뉴스만 방영하는 미국 텔레비전방송인 씨엔엔(CNN)을 평소에 시청해오고 있다는 사실은 외부에도 알려진 바 있는데,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급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불신과 소심증에서 벗어날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두 미국인 여기자를 데려가기 위해 평양을 찾아간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하여 오바마 대통령에게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중대제안을 전하였다. 그 중대제안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북측과 미국의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올해 안에 개최하자는 것이다. 이미 파산되어버린 6자회담으로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수 없으므로, 이제는 북측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한반도를 비핵화하자는 제안이다.

북측과 미국 사이에 제기된 최대 현안인 핵문제를 정상회담으로 풀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2000년 1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정상회담을 검토하였던 과거사를 회상하면서 착잡한 심정을 느꼈을지 모른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일행, 그리고 석방된 두 미국인 여기자를 태운 특별기가 북태평양 상공을 날아가고 있었던 2009년 8월 5일에 나온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클린톤 일행의 우리나라 방문은 조선과 미국 사이의 리해를 깊이하고 신뢰를 조성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하였다. 그 특별기는 8월 5일 오전 로스앤젤레스 인근 버뱅크에 있는 밥 호프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는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두 여기자의 귀환행사가 벌어졌다.

미국으로 돌아온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짧게 통화하였다. 로벗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튿날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오전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통화하였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이내(fairly soon) 만나려는 의사를 표명하였으므로 두 분은 곧 만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줄임) 지금 우리는 두 분의 분주한 일정을 조정하는 중이다.”

오마바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도 전화를 걸어 자신의 방북활동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물론 클린턴 전 대통령이 존스 보좌관에게 설명한 방북활동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을 직접 만나 그에게만 전해달라고 당부한 극비정보가 들어있지 않았다. 존스 보좌관은 그와 통화한 뒤에 기자들에게 “우리는 그 일(클린턴의 방북을 뜻함-옮긴이)이 좋은 일(good things)로 이어지라고 확실히 바란다. (줄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줄임)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에 만족스러우나, 사실을 넘어서 다른 결론을 끌어내지는 않겠다”고 말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존스 보좌관은 북측과 미국의 관계가 장차 어떻게 바뀔 것인지 가늠할 수 없겠지만, 누구나 예감하는 것처럼 두 나라의 관계정상화는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다가오고 있다. 핵문제 해법은 미국이 북측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에서, 오직 그 길에서 찾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북측과 미국의 관계정상화는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을 받고 평양을 방문하여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성사될 때, 그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핵포기 공약을 이행하고 비핵국가로 복귀하는, 자신이 마련한 최종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핵포기 공약을 이행할 준비를 완료했다고 밝힌 것처럼, 북측의 국방위원회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에 상응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핵포기 공약에 상응하는 관계정상화 공약을 이행할 준비를 하지 못하였다는 데 있다. 핵포기 공약을 이행하고 비핵국가로 복귀하는 북측의 최종 해법에 상응해서, 미국은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함으로써 관계정상화 공약을 이행하는 최종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아직 그럴만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함으로써 관계정상화 공약을 이행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까닭은, 북측이 말로는 핵포기 공약을 말하지만 실제로 그 공약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깊은 불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경우 한미동맹이 해체될 것이고, 한미동맹이 해체되면 미국의 국익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소심증에 사로잡힌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고위관리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포기 공약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늪에 빠져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면 한미동맹이 해체될 것인데, 한미동맹 해체가 미국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다. 한미동맹이 해체되면 한미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화되는 것이고, 또한 한미동맹이 해체되어야 북측이 핵포기 공약을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한미동맹 해체는 한반도와 미국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지름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대제안을 보낸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불신과 소심증을 해소시킬 결정적인 요인이다. 그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진의를 파악하고 불신과 소심증에서 벗어날 때, 오바마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성사의 문턱으로 성큼 다가설 것이다. (2009년 8월 10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