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길은 하나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프리토리아의 삼자동맹

이 땅의 친미언론은 워싱턴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취임한 것만 대서특필하였으나, 친미언론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프리토리아(Pretoria)에서 있었던 또 다른 흑인대통령의 취임이 눈길을 끈다.

프리토리아라는 낯선 지명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다. 2009년 5월 9일 남아공에서 제4대 흑인대통령 제이콥 주마(Jacob Zuma)가 취임하였다. 주마 정권의 등장에 주목하는 까닭은, 이 땅의 진보정치운동이 주마 정권의 집권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마 정권은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쳐 집권하였다.

첫째, 제이콥 주마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에 총재로 있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1912년에 창당된 중도우파정당이며, 사회민주주의 정치조직의 국제협의체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의 성원이다.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는 2009년 4월 22일에 실시한 총선에서 66.89%의 득표율을 올렸다. 2004년 총선의 득표율 65.9%보다 조금 더 높았다. 이번에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의회 400석 가운데 267석을 차지함으로써 계속해서 집권당의 자리를 지켰다.

지난 시기 남아공에서 흑인억압정책(Apartheid)에 매달려 폭압통치로 일관하였던 백인우파정권은 그 정권에 맞서싸운 흑인정치세력과 흑인민중에게 결국 굴복하였고, 그리하여 1994년 4월 사상 처음으로 남아공 흑인들이 선거권을 행사하였을 때, 흑인억압정책이 본격화된 1948년부터 그 정책을 철폐하기 위해 46년 동안 싸워온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백인정권이 흑인정권으로 교체된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선거 때마다 65% 이상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집권당으로 자리를 굳혔다.

남아공의 선거제도에 따르면, 대통령선거를 따로 실시하지 않고, 총선에서 집권당으로 선출된 당의 총재가 대통령이 된다. 대선후보 개인에 대한 지지여부가 아니라 정당에 대한 지지여부가 정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주마 대통령은 원래 아프리카민족회의 총재였으므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총선에서 승리하자 대통령직을 맡게 되었다.

둘째,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아프리카민족회의 총재였던 제이콥 주마는 남아프리카공산당(South African Communist Party) 평생당원이다. 그는 1980년대에 남아프리카공산당 최고지도기관인 정치국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아프리카민족회의와 다르게, 남아프리카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삼고 1921년에 창당된 좌파정당이다.

그런데 좌파정당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평생당원이 어떻게 중도우파정당의 총재가 될 수 있었을까? 주마 대통령은 1959년에 아프리카민족회의에 입당하였는데, 1963년에는 남아프리카공산당에도 입당하여 이중당적을 가졌다. 그 시기는 흑인억압정책이 극에 이른 정치적 암흑기였으므로, 아프리카민족회의나 남아프리카공산당은 백인우파정권의 탄압을 피해 비합법투쟁을 벌였고, 그러한 조건에서 공동투쟁과 정치연대가 가능하였다. 당시 백인우파정권에 맞서싸운 열혈투사이자 청년당원이었던 제이콥 주마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중당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주마 대통령이 이중당적을 가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동집권이 실현된 것이다.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는 남아프리카공산당,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회(Congress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COSATU)와 정치연합을 실현하여 공동으로 집권하였다. 1985년에 결성되고, 노동자 180만 명을 조합원으로 망라한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회는, 우리 실정에 견주어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해당한다. 아프리카민족회의, 남아프리카공산당,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회가 형성한 정치연합을 삼자동맹(Tripartite Alliance)이라 부른다.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중도우파정당이고, 남아프리카공산당은 좌파정당이고,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회는 중도좌파노조다. 이처럼 정치이념이 서로 다른 삼자가 공동으로 집권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지난 시기 백인우파정권을 퇴진시키기 위해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총결집한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함께 싸운 공동투쟁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3자가 공유한 공동투쟁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1980년대에 남아공의 피터 보타(Pieter Willem Botha) 대통령과 그가 이끈 국민당(National Party)은 흑인억압정책에 광분하였다. 보타 정권에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8천700여 명에 이른다. 보타 정권의 폭압통치를 반대하는 야당들, 민주노조들, 사회단체들은 인종적 차이와 정치이념적 차이를 불문하고 총결집하여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을 밀고 나갔다.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의 추진주체는 1983년에 400여 개에 이르는 야당들, 민주노조들, 사회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연합민주전선(United Democratic Front)이다. 아프리카민족회의, 남아프리카공산당,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회가 연합민주전선의 투쟁을 이끌었음은 물론이다.

주목하는 것은, 연합민주전선 위에 삼자동맹을 세우고, 삼자동맹을 발판으로 삼아 중도연립정부를 세웠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이념이 서로 다른 삼자동맹 안에서 이념적, 정파적 갈등이 일어났지만, 정치이념이 서로 다른 정당들이 공동집권을 실현하였음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넷째, 삼자동맹에 의거해 연립정권을 세운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 내가 조사한 자료에서 얻은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자세히 논하지 못하지만, 남아프리카공산당이 중도연립정권 수립에 참가한 과정은 이렇다. 남아프리카공산당은 독자적인 좌파정당이지만, 총선에 독자적으로 자기 당의 후보를 내보내지 않고, 대신 그 당의 후보들은 아프리카민족회의를 통해서 총선에 출마하였다.

올해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총선에서 또 다시 승리하여 연립정권을 구성할 때, 남아프리카공산당 사무총장 블레이드 응지만드(Blade Nzimande)는 교육훈련부 장관으로, 그 당의 이론가 롭 데이비스(Rob Davies)는 산업통상부 장관으로 입각하였고, 그 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몇몇 차관직에 임명되었다.

다섯째, 삼자동맹에서 가장 강한 정치역량을 지닌 쪽은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이므로, 삼자동맹은 아프리카민족회의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따라서 주마 정권은 중도우파정당을 중심으로 하여 좌파정당과 중도좌파노조가 결합한 삼자동맹 위에 세워진 중도연립정권이다. 그런데 올해 세워진 중도연립정권은 이전의 중도연립정권과 달리, 아프리카민족회의에서 좌파성향을 지닌 제이콥 주마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을 계기로 중도좌파적 성격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지난 시기 흑인억압정책에 광분하던 백인우파정권이 퇴진하고, 흑인민주정권이 세워져 초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자, 남아공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1999년 이후 남아프리카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경제성장과정에서 새로운 도시중산층이 출현한 것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도시중산층의 출현은 아프리카민족회의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냈고, 그에 따라 흑인민주정권의 장기집권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흑인민주정권이 세워진 뒤로 초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경제가 성장하고, 도시중산층이 증가한 것과 대조적으로 근로대중은 민생파탄을 겪게 되었다. 이를테면 1996년에 남아공의 절대적 빈곤인구는 전체 인구의 4.6%에 이르는 190만 명이었는데, 차츰 증가되어 2005년에는 전체 인구의 8.9%에 이르는 420만 명이나 되었다. 2000년에 상대적 빈곤인구는 전체 인구의 50%에 이르렀다. 2008년 4.4분기에 남아공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8%였는데, 이것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진 것이다. 공식실업률은 2008년에 21.7%였는데, 2009년 1.4분기에 23.5%로 높아졌다. 사회단체들은 실질실업률이 40% 가까이 폭증하였다고 주장한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도시중산층이 증가하였는데도, 근로대중이 민생파탄을 겪는 까닭은, 흑인억압정책을 철폐하고 초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역대 흑인민주정권들이 신자유주의정책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요구에 굴복하여 신자유주의정책에 매달리면 예외 없이 사회적 양극화(social bipolarization)라고 부르는 극심한 빈부격차가 생겨나고 민생파탄을 겪게 된다는 사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현실로 입증되었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하다. 남아공의 흑인민주정권과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은 그런 점에서 같은 궤도를 따라 갔다고 말할 수 있다.

일곱째, 민생파탄으로 아우성치는 남아공의 근로대중은 곳곳에서 민생폭동을 일으켰다. 2009년 7월 19일에도 남아공 각지에서 민생폭동이 일어났다. 폭동참가자들은 도로를 차단하고 경찰과 대치하면서 폐타이어와 쓰레기에 불을 지르고 투석전을 벌였으며, 외국인 상점을 약탈하고 외국인을 폭행하였다. 남아공 빈민지역에서 연이어 터져나오는 민생폭동은 주마 정권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프리토리아의 연정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 땅의 사회정치적 현실과 남아공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비교하면서 이 땅의 진보정치운동에게 부족한 점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지난 시기 이 땅에서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서싸우며 초보적인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반정부투쟁이 벌어졌고, 남아공에서는 백인우파정권의 폭압에 맞서싸우며 초보적인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반정부투쟁이 벌어졌다. 그 양자의 반정부투쟁이 각각 정권퇴진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나아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땅에서는 군사독재정권이 퇴진하였고 남아공에서는 백인우파정권이 퇴진하였다. 군사독재정권의 퇴진이나 백인우파정권의 퇴진은 초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시작하였음을 뜻하지만, 정권퇴진운동의 발전수준은 달랐다. 1980년대에 이 땅에서는 정권퇴진운동을 밀고 나갈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못하였던 것에 비해, 남아공에서는 연합민주전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력한 연합전선을 형성하였다.

연합전선을 형성한 남아공에서는 우파정당이 정권을 다시 장악하지 못하였지만,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못한 이 땅에서는 10년만에 우파정당이 정권을 다시 장악하였다. 이 땅에서는 도시중산층 정당이 대선에서 패하여 특권부유층 정당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는데, 남아공에서는 도시중산층 정당이 좌파정당, 중도좌파노조와 함께 중도연립정권을 세웠다.

이것은 반정부투쟁에서 연합전선을 형성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민주주의 실현문제를 결정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투쟁에서 연합전선전략은 선택적 과제가 아니라 사활적 과제다.

둘째,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10년 동안 초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아공에서도 흑인민주정권이 집권한 기간 동안 초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신자유주의정책이 추진되었다. 초보적 민주주의 실현과 신자유주의정책 추진이 병행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정책 추진이 초보적 민주주의를 진보적 민주주의로 강화발전시키는 길을 완전히 가로막았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정책 추진은 빈부격차를 극도로 심화시키고, 근로대중을 실업과 빈곤으로 몰아넣고, 도시중산층을 감소시키는 민생파탄으로 귀결되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집중타격으로 일어난 고용정책 파탄, 농업경제 붕괴, 영세자영업 파산, 중소기업 연쇄도산을 외면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승한 몇몇 재벌기업의 자본축적을 중심으로 경제정세 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일면적인 인식이다.

오늘의 현실은 신자유주의정책을 파기하지 않는 한, 중도우파정당이 집권하고, 초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도시중산층이 늘어나도 근로대중이 민생파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명백하게도, 신자유주의정책 추진과 민주주의의 발전은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땅에서 민주주의가 안정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시중산층 정당의 10년 집권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잉태한 초보적 민주주의를 김영삼 정권 5년의 산고 끝에 겨우 출산하는데 성공하였건만, 신자유주의의 덫에 걸리는 바람에 그것을 안전하게 키울 정치적 보육능력이 없었다. 이 땅의 초보적 민주주의는 난산 이후 10년 동안 미숙아로 숨쉬고 있었을 뿐이고, 이명박 정권은 미숙아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있다.

셋째, 민생파탄을 겪는 남아공에서는 민생폭동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비해, 민생파탄을 겪는 이 땅에서는 민생폭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폭력적인 소규모 민생투쟁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이 땅에서 민생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이명박 정권이 민생폭동 발생을 억제하는 위기관리능력을 발동하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이 민생폭동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그러한 위기관리능력을 무한정으로 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민생파탄이 심화되면서 그 능력은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이 땅의 사회안전망은 너무 미비하고 부실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주목하는 것은, 민생파탄으로 아우성치는 근로대중이 불만과 분노를 폭발시키는 민생폭동은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보는 것처럼, 민생폭동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안겨줄 뿐,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민생파탄으로 아우성치는 근로대중이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이명박 정권을 퇴진시키고 민생을 보장할 새로운 민주정권을 세우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권퇴진운동은 민생폭동을 예방하고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넷째,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압도적인 대중적 지지를 받기 때문에, 남아프리카공산당이나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회와 정치연합을 실현할 필요가 없는데도 삼자동맹을 결성하고 중도연립정권을 세웠다. 단독집권능력이 있는 아프리카민족회의가 공동집권을 택한 까닭은, 1980년대 연합민주전선 시기부터 오랫동안 남아프리카공산당과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회와 함께 투쟁해왔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이 땅에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장외공동투쟁에 나선 경험이 없지만, 경쟁과 타협밖에 모르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관계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서와 한나라당의 언론악법 날치기 통과 등을 둘러싸고 격돌하면서 차츰 적대적으로 변하였다. 그러한 관계변화는 진보-민주야당들이 각계각층 사회단체들과 손잡고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진보-민주야당들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싸우는 것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공동으로 집권하여 중도연립정권을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다섯째, 남아공에서는 중도우파정당이 안정적인 장기집권에 성공하였지만, 이 땅에서는 중도우파정당의 집권이 10년만에 막을 내리고 우파정당이 다시 집권한 뒤로 초보적 민주주의마저 말살하는 강압통치가 횡행되고 있다.

우파정당이 다시 집권한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중도우파정당과 우파정당 사이에서 “정치권력의 지속적인 순환”이 가능해져서 양당의 교차집권이 고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특권부유층 정당과 도시중산층 정당의 교차집권이 고착되었다는 말은 근로대중 정당의 집권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차집권 고착론은 두 가지 오류에 빠져있다.

첫째 오류는 이 땅의 정치현실에서 미국식 양당체제가 고착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교차집권이 1860년대부터 고착되어 140년 동안 유지되고 있지만, 이 땅의 정치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땅에서는 1948년 8월 15일 이후 우파정당의 안정적 장기집권이 지속되었고, 1998년 2월 25일부터 2008년 2월 24일까지 10년 동안 예외적으로 중도우파정당이 집권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교차집권이 고착된 것이 아니라, 우파정당의 장기집권이 10년만에 재개된 것이다. 앞으로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둘째 오류는 이 땅의 노동계급을 비롯한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특권부유층 정당이나 도시중산층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였던 정치의식의 질곡에서 벗어나, 근로대중 정당을 창당하고 진보정치운동을 펼치고 있는 현실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민주노조 결성과 진보정당 창당은 이 땅의 정치세력관계를 바꾸기 시작한 중대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근로대중의 전반적 궁핍화, 도시중산층 하층의 빈민화, 특권부유층의 극단적인 이윤독점을 저지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정치세력은 근로대중 정당과 민주노조밖에 없다.

강압통치 아래서 민주주의의 길은 하나 뿐이다

어떤 논자는 민생파탄을 겪는 근로대중이 “극도의 심리적 위축상태”에 있고, “생계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대중은 함부로 거리에 나서지 않으며”, “경기불황기에 이명박 퇴진과 같은 높은 구호에 행동적으로 동참할 서민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민생파탄을 겪는 근로대중의 심리는 위축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절망과 체념에 시달린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민생파탄을 겪는 근로대중의 심리현상에 절망감과 위축감만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민심의 한 측면을 과장한 것이다. 민생파탄을 겪는 근로대중이 불만과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주장은 궤변으로 들린다.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민생파탄을 겪는 근로대중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침묵하는 경우보다 불만과 분노를 드러내며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요즈음 프랑스, 그리스, 독일 같이 사회안전망이 튼튼하고 도시중산층이 발달한 나라에서도 민주노조가 주도하는 민생투쟁이 일어나는데, 사회안전망도 없고 도시중산층도 발달하지 못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생폭동이 일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민심의 한 측면을 과장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오류는, 정세변화를 오로지 사회심리현상으로만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정세 변화를 오로지 투자심리와 소비심리만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오류인 것과 같다. 정세변화에서 정치세력관계가 상수이고, 민심이라는 사회심리현상은 그 관계에 따라 바뀌는 변수다. 정치세력관계의 변화를 상수에, 민심의 변화동향을 변수에 놓고 정세를 읽어야 과학적 정세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정치세력관계를 바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민생폭동은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니라 절망의 악순환을 재촉할 뿐이다. 근로대중이 민생파탄을 겪고 초보적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강압통치 아래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은 정권퇴진운동에서 시작되고 새로운 민주정권 수립을 향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길은 오직 하나다.

이 땅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나리오는, 민생파탄을 겪는 근로대중이 불만과 분노를 드러내며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에 결합하는 시나리오다. 그러한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까닭은 이렇다.

현재 진행 중인 용산참사 진상규명투쟁, 쌍용자동차 공장점거투쟁, 언론노조 파업투쟁, 4대강 개발 저지투쟁 등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근로대중의 민생투쟁에 추동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진보-민주야당들, 민주노조, 각계 사회단체들의 연대투쟁에서 분출되는 그 추동력은 산발적인 민생투쟁을 반정부투쟁으로 결집전개시키는 힘이다. 근로대중의 민생투쟁을 범국민적인 반정부투쟁으로 끌어올리는 진보-민주야당들, 민주노조, 각계 사회단체들의 추동력은, 이 땅의 정치정세를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요인이다.

남아공의 주마 정권은 아프리카민족회의, 남아프리카공산당,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회의 삼자동맹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그 나라에는 산발적인 민생폭동을 범국민적인 반정부투쟁으로 결집전개시킬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도리어 주마 정권은 민생폭동을 진압하는 곤혹스런 처지에 몰려있다. 그와 다르게,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민주야당들, 민주노조, 각계 사회단체들이 근로대중의 산발적인 민생투쟁을 범국민적인 반정부투쟁으로 결집전개시키 위해 힘쓰고 있다. 부족한 점은,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총결집한 연합전선을 아직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반이명박 연합전선은 누가 선동한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강압통치에 매달리는 이명박 정권과 그 정권에 대한 진보-민주야당들, 민주노조, 각계 사회단체들의 대립관계가 심하게 격화될 때, 그리하여 곳곳에서 두 진영이 충돌하며 정치적 불안정이 전례 없이 확산될 때, 그리고 민생파탄으로 아우성치는 근로대중이 불만과 분노를 이명박 정권에 대한 공격심리로 표출할 때, 바로 그러한 때에 형성될 것이다.

용산참사 진상규명투쟁과 쌍용자동자 공장점거투쟁 같은 산발적인 민생투쟁이 차츰 범국민적인 반정부투쟁의 성격을 띠어가고, 언론악법 날치기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한나라당과 정면충돌한 민주당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하고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할 조건이 성숙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날치기 수법을 동원하여 언론악법 통과를 강행한 한나라당의 의회폭거에 민주당이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그 두 당의 대립관계가 절충과 타협을 배제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 두 당의 대립관계가 앞으로 더욱 격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처럼 특권부유층 정당과 도시중산층 정당의 대립관계가 격화되는 필연성은, 도시중산층 정당이 지닌 절충적, 타협적 성향을 억제하는 한편 그 당을 근로대중 정당과의 장외공동투쟁으로 힘있게 떠밀어준다. 그 장외공동투쟁의 현장에서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총결집한 반이명박 연합전선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명박 정권이 “선거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속단이다.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명박 정권과 그에 대립하는 진보-민주야당들, 민주노조, 각계 사회단체들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 연합전선전략을 추진하려고 별러온 진보정치세력이 주동적으로 작용하여 그 대립관계 위에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총결집한 반이명박 연합전선 형성을 적극 추동할 것이다. 폭넓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이 형성되면,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진보-민주야당들의 반정부투쟁과 민주노조 및 각계 사회단체들의 반정부투쟁이 광장과 거리에서 결집되면서 투쟁력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2009년의 현재 상황은 1987년의 상황을 닮아가고 있다. 2009년의 투쟁상황과 1987년의 투쟁상황에서 큰 차이가 있다면, 1987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진보정당과 민주노조가 오늘 반정부투쟁을 적극 추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목하는 것은, 기폭계기의 발생여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다시 읽어보면, 두 가지 기폭계기가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만일 그 기폭계기가 없었다면, 6월 민주항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1986년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1987년이나 그 이후에도 각계각층 대중이 참가하지 않는 반정부투쟁이 계속되었을지 모른다.

1987년에 발생한 두 가지 기폭계기는, 야당의 개헌요구를 묵살한 군사독재정권이 4월 13일에 호헌조치를 발표한 것, 그리고 박종철 열사를 고문살해한 경찰 만행이 5월 18일에 폭로된 것이다. 전자는 야당과 그 지지층을 반정부투쟁으로 끌어내었고, 후자는 각계각층 대중을 반정부투쟁으로 끌어내었다. 그 두 가지 기폭계기를 거치면서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범국민적인 반정부투쟁에 총결집하였고, 마침내 6월 10일부터 6월 28일까지 18일 동안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운동이 폭발하였으니, 그것이 6월 민주항쟁이다.

그 항쟁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피와 눈물로 아로새긴 것은, 근로대중이 민생파탄으로 아우성치고 초보적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강압통치 아래서 민주주의의 길은 오직 하나 뿐이라는 진리다. (2009년 7월 27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