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서 격파된 미영연합군 소함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주문진 앞바다에 나타난 전함들

강원도를 가로지른 북위 38도선 바로 아래, 그리고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 바로 위에 주문진이라는 고장이 있는데, 바로 그 앞바다에서 1950년 7월 2일 인민군과 미국군이 해전을 벌였다.

경기도 오산 북쪽 3.5km 지점에 있는 죽미령에서 인민군과 미국군이 맞붙은 지상전을 두 나라 군대가 벌인 첫 전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오산 전투는 주문진 해전 이후 사흘이 지난 1950년 7월 5일에 벌어졌다. 1950년 6월 29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hippe Truman)이 미국 해군에게 한반도 해안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내린 직후, 인민군과 미국군이 역사상 처음으로 맞붙은 전투가 주문진 해전이다.

주문진 해전은, 북측에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 한국전쟁에서 인민군이 대승을 거둔 5대 전투 가운데 하나다. 5대 전투란, 주문진 해전 이외에, 1950년 7월 14일부터 20일까지 벌어진 대전 해방작전, 1950년 9월 13일부터 9월 15일까지 벌어진 인천 월미도 방어전, 1951년 9월부터 10월까지 강원도 금강군에 있는 1211고지에서 벌어진 1211고지 전투, 그리고 1953년 6월 2일부터 50여 일 동안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351고지에서 벌어진 351고지 전투를 말한다.

59년 전에 있었던 주문진 해전에 관한 북측의 기록을 정리하면 이렇다. 4척으로 편성된 인민군 제2어뢰정대는 강원도 장전항을 떠나면서 무선교신을 일부러 끊고 은밀히 남진하여 속초항에 전진배치되었다. 1950년 7월 1일 자정, 속초항을 떠난 어뢰정대는 네 시간 동안 밤바다를 남진하여 마침내 공격목표를 발견하였다. 7월 2일 새벽 주문진 앞바다에서 중순양함(heavy cruiser) 1척, 경순양함(light cruiser) 1척, 구축함(destroyer) 1척을 만난 것이다.

제2어뢰정대는 그 전함들을 향하여 고속으로 돌진하였다. 기습공격에 당황한 전함들은 함포사격을 퍼부었다. 어뢰정 2척은 쏟아지는 포탄을 뚫고 1천m까지 바짝 접근한 뒤에 중순양함을 향해 어뢰를 발사하였다. 다른 어뢰정은 구축함을 다른 방향으로 유인하면서 연막을 쳐 반격을 막아냈고, 또 다른 어뢰정은 경순양함에 어뢰를 발사하여 파손시켰다. 그 사이에 어뢰 세 발이 선체에 명중한 중순양함은 침몰하였다. 해전은 인민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북측 기록에는 인민군 어뢰정이 미국 중순양함 ‘발찌모르’를 격침하였다고 적혀있다.

17t밖에 되지 않는 어뢰정 4척이 중순양함을 격침하고 경순양함을 파손한 전설 같은 전승기록은 세계 해전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8월 13일 이탈리아 어뢰정 2척이 지중해 몰타 인근해상에서 영국 경순양함 맨체스터호(HMS Manchester)를 격침한 것을 기적적인 승리라고 하지만, 인민군 어뢰정들은 중순양함을 격침하고 경순양함을 파손하였으니 전공(戰功)을 따지면 훨씬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인민군 제2어뢰정대에게는 ‘근위칭호’가 주어졌고, 어뢰정대를 이끈 정대장(艇隊長) 김군옥은 인민군 해군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고 한다. 그의 회상기는 2000년 9월 평양에서 출판된 책 ‘인민들 속에서(60)’에 실린 ‘세계해전사에 빛나는 기적은 이렇게 마련되였다’에 들어있다. 평양에 있는 ‘조국해방전쟁기념관’에는 주문진 해전에서 승리를 안겨준 어뢰정 1척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전시현장을 찍은 사진에 나온 어뢰정은 소련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쾌속어뢰정(motor torpedo boat) G-5로 보인다.

여기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북측 기록에는 인민군 제2어뢰정대가 공격한 전함의 국적이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미국 중순양함 ‘발찌모르’를 격침하고 다른 경순양함 1척을 파손시켰다고만 적혀있어서, 그 전함들이 모두 미국 해군 소속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문진 해전에서 인민군 제2어뢰정대와 교전을 벌인 전함들 가운데는 미국 해군 전함도 있었고 영국 해군 전함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미영연합군 소함대(flotilla)로 편성되었던 것이다. 미국 전쟁사에서 미국군이 다른 나라 군대 밑에 들어가 지휘를 받아본 역사는 없으므로, 주문진 해전에서도 미영연합군 소함대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한 기함(flagship)은 당연히 미국 중순양함 ‘발찌모르’였다.

주문진 해전에 관한 미국측 기록

그러면 미국측은 주문진 해전에 관해 어떤 기록은 남겼을까? 놀랍게도, 주문진 해전에 관한 미국측 기록은 정반대다. 미국 해전사를 살펴보면, 주문진 해전에 관해서 아주 간단한 기록밖에 나오지 않는다. “1950년 7월 2일 주노호(USS Juneau)와 영국 해군 전함 2척이 북코리아 어뢰정과 기관포정(gunboat) 6척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5척을 격침하였다”는 것이 전부다.

북측 기록에 나오지 않은 기관포정을 미국측 기록에서 언급하였는데, 다른 미국측 기록에는 기관포정이 나오지 않는다. 미국측 기록이 들쭉날쭉해서 기관포정들이 교전현장에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주문진 해전에 관한 미국측 기록들 가운데 좀더 자세한 것은, 제임스 필드(James A. Field)가 쓰고, 해군사적부(Naval History Division)가 1962년에 출판한 책 ‘미국 해군 작전사: 코리아편(A History of United States Naval Operations: Korea)’이다. 그 가운데서 주문진 해전에 관한 부분을 번역하면 이렇다.

“미국 경순양함 주노호, 영국 크라운 콜로니급(Crown Colony-class) 순양함 저메이커호(HMS Jamaica), 영국 프리깃함(frigate) 블랙 스완호(HMS Black Swan)는 1950년 7월 2일 오전 6시 15분 주문진 앞바다에서 북코리아 어뢰정 4척, 기관포정 2척을 발견하였다. 10km 거리를 두고 함포사격을 가했는데, 어뢰정들은 3.6km까지 접근하였다. 어뢰정 1척을 격침하였고, 1척을 파손하였고, 1척은 해안으로 퇴각하였고, 다른 1척은 바다쪽으로 달아났다. 그 전투에서 어뢰정 3척과 기관포정 2척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저메이커호는 포로 2명을 붙잡았다. 그날 늦게 저메이커호는 연료를 보급받기 위해 일본 사세보(佐世保)항으로 떠났다.”

주문진 해전을 더 실감 나게 기록한 미국측 문서는 교전현장에서 주노호에 타고 있었던 커틴(T.A. Curtin)의 기록이다. 현장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문제는 그의 기록이 두 종류의 문서로 전해진다는 점이다.

첫 번째 문서는 ‘코리아분쟁 초기의 주노호(USS Juneau in the Early Days of the Korean Conflict)’라는 제목인데, ‘당시 미국 해군 소위 커틴 일기의 편집본(An edited transcript of the diary of then ENS T. A. Curtin, USN)’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았다. 그 문서에서 주문진 해전에 관한 부분을 번역하면 이렇다.

“북코리아 소속으로 확인된 어뢰정 4척이 바닷가쪽에서 우리를 향해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어뢰정들을 포격했다. 세 번째 쏜 포탄이 그 중 1척에 명중하였다. 얼마 뒤에 다른 1척을 포격하였고, 2척이 남았다. 저메이커호(영국 경순양함-옮긴이)가 1척을 격침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나머지 1척은 어젯밤 영국 프리깃함 앨러크리티호(HMS Alacrity)와 함께 우리에게 합류한 블랙 스완호(영국 프리깃함-옮긴이)를 그대로 지나쳐 가버렸다. 앨러크리티호와 콜렛호(Collett, 미국 구축함-옮긴이)는 어젯밤 비밀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전하였다. 우리는 어뢰정 2척을 바닷가쪽으로 몰아낸 뒤, 1척은 5인치 포로, 다른 1척은 40mm포로 격침하였다.”

두 번째 문서는 ‘코리아 해안의 발빠른 귀신(A Galloping Ghost of the Korean Coast)’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커틴의 회상기인데, 그 가운데서 주문진 해전에 관한 부분을 번역하면 이렇다.

“우리가 고개들 돌리자, 어뢰정들이 보였고, 그로써 코리아 ‘분쟁’에서 첫 번째 해상교전이 실제로 시작되었다. 북코리아 군대가 상륙할 지점으로 예상한 긴 해안을 따라 초계임무를 수행하다가 어뢰정들을 발견하여 그들에게 놀라움을 주면서 우리는 바닷가쪽으로 종렬을 지어 접근하였다. 그들은 대열을 짓더니 우리에게 덤벼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재빠르고 연속적인 통제사격으로 응했다. 갑판에 있던 동료들이 전해준 말에 따르면, 우리가 해군사관학교에 다닐 때, ‘어뢰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존 벅클리라는 범선함장(CDR John Bulkely)이 나오는 용감무쌍한 전쟁영화 ‘희생되어도 좋은 사람들(They Were Expandable)’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어둠침침한 새벽녘에 어뢰정들이 일렬종대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우리에게 돌진해오는 것이 보였다. 발사물로 물길이 솟구치는 가운데 컴퓨터를 작동하고 발사장치를 누른 우리는 제트추진음을 들으며 마침내 행동이 개시되었음을 느꼈다. 어뢰정 가운데 1척이 명중되고 곧이어 다른 1척이 불탄다는 소리가 들렸다. 세 번째 어뢰정은 살짝 빗맞아 물 속에 쳐박혔고, 네 번째 어뢰정은 파손당해 바닷가쪽으로 갔으나 결국 피격으로 불이 붙자 승무원들은 배를 버리고 바닷가로 달아났다. 물벌레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던 마지막 남은 어뢰정은 계속 다가오더니 갑자기 우리 뒷쪽을 가로질러 우리와 블랙 스완호 사이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블랙 스완호는 4.5 인치 포를 쏘면서 힘차게 나갔으나, 재빠른 먹이감을 잡지 못하였다. 어뢰정들은 어뢰 한 발도 발사하지 못했다!”

커틴이 썼다는 일기 편집본과 회상기는 내용이 서로 달라서, 위작(僞作)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위작 의혹은 주노호가 교전현장에 없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누군가 기록을 지워버린 것일까?

1950년 7월 당시, 정규군으로 재건된지 불과 2년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인민군이 미국군에 관한 정보를 거의 갖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북측 기록에는 미국 전함의 이름이 부정확하게 적혀있다. 북측 기록에 나오는 ‘발찌모르’라는 함명(艦名)은 볼티모어(Baltimore)를 그렇게 발음한 것이다. 당시 미국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했던 인민군에게 착오가 있었다면, 볼티모어급 순양함(Baltimore-class cruiser)과 순양함 볼티모어호(USS Baltimore)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측 기록사진을 찾아보면, 미국 전함 뱃머리 쪽에 커다랗게 표시해놓은 아라비아숫자가 금방 눈에 띄지만, 선체 뒷면 상단에 작은 글씨로 표시해놓은 함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인민군 제2어뢰정대는 자기들과 교전한 미국 순양함의 함명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고, 나중에야 그 전함이 볼티모어급 순양함이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미국 해군이 보유한 볼티모어급 순양함은 14척이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먼저 건조된 볼티모어급 순양함 제1번함이 볼티모어호다. 그런데 미국측 기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한국전쟁에 참전한 순양함 명단에서 볼티모어호를 찾을 수 없다. 볼티모어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것이다.

참전하지도 않은 볼티모어호를 격침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므로, 인민군 제2어뢰정대가 주문진 앞바다에서 격침했다고 기록한 미국 순양함은 볼티모어호가 아니라 볼티모어급 순양함 나머지 13척 가운데 어느 1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볼티모어급 순양함 13척 가운데 인민군 어뢰정에게 격침당한 것으로 미국 해전사에 기록된 순양함은 1척도 없다는 점이다.

미국측 기록에 따르면, 한국전쟁에서 침몰한 미국 전함은 모두 5척이다. 1950년 9월 29일(다른 기록에는 10월 1일) 동해에서 소해정(掃海艇) 맥파이호(USS Magpie)가 기뢰피폭으로 침몰하였고, 1950년 10월 12일 원산만에서 소해정 파이어럿호(USS Pirate)와 플레지호(USS Pledge)가 11분 간격으로 기뢰피폭을 당하여 침몰하였고, 1951년 2월 2일 원산만에서 소해정 파트리지호(USS Partridge)가 기뢰피폭으로 침몰하였고, 1952년 8월 27일 흥남항에서 구난선 살시호(USS Sarsi)가 기뢰피폭으로 침몰하였다. 북측 전쟁사에는 1950년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치열했던 월미도 전투에서 인민군 포병중대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미국 구축함 3척을 해안포 포격으로 격침하였다고 기록하였지만, 미국측 해전사에서는 그러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주문진 해전이나 월미도 전투에서 미국 순양함이나 구축함이 격침되었다는 기록을 미국측 해전사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은, 미국 군부가 자기들의 치욕적인 패전기록을 지워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 군부가 설마 그런 비열한 짓까지 저질렀을 리가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이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과(戰果)를 조작한 사례들이 있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1950년 7월 5일에 벌어진 오산 전투에 관한 미국측 기록에서도 왜곡한 흔적이 보인다. 미국측 기록에는 “1950년 7월 5일 미국군 제24사단 제21보병 연대가 오산에서 북코리아군을 지체(delay)시켰다”고 적혀있으나, 실제로는 지체시킨 것이 아니라 참패를 당한 것이다. 오산 전투의 실상은 이렇다.

오산 전투에 참가한 보포병 연합부대는 미국 육군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 병력 406명과 제52포병대대 병력 134명을 합해 모두 540명이었다. 그 부대를 스미스 기동부대(Task Force Smith)라 불렀다. 교전이 시작되었을 때, 스미스 기동부대가 대전차무기로 조준사격을 가했으나 밀려드는 인민군 전차를 파괴할 수 없었다. 인민군 전차부대는 대전차무기를 쏘아대는 스미스 특공대를 상대해주지도 않고 그들의 사격권을 유유히 돌파하여 계속 남진하였다. 스미스 기동부대는 전차부대 뒤를 따라온 인민군 보병부대와 교전하게 되었는데, 인민군 보병부대 일부가 재빨리 우회하면서 정면과 측면에서 맹렬히 공격하는 바람에 궤멸당할 위기를 느끼고 보병전투 개시 1시간만에 황급히 퇴각명령을 내렸다. 북측과 미국의 첫 지상전에서 미국군은 포병대대장이 중상으로 후송되고, 180여 명이 전사하고, 야포와 박격포를 모조리 빼앗기는 참패를 당했다.

오산 전투를 왜곡한 것보다 더 심한 것은, 1964년 8월 2일 베트남에서 일어난 통킨만 사변(Gulf of Tonkin Incident)을 조작한 것이다. 통킨만은 베트남과 중국 하이난섬(海南島) 사이에 있는 해역인데,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USS Maddox)는 1964년 8월 2일 통킨만에서 작전을 벌이던 중, 공해에서 북베트남 어뢰정 3척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나 재빨리 회피기동을 하면서 격퇴하였다. 원래 매독스호는 1953년 5월 2일 함경남도 호도반도 앞바다에서 인민군 해안포 포격을 받아 파손된 적이 있다.

그런데 매독스호는 1964년 8월 4일 구축함 터너 조이호(USS Turner Joy)와 함께 작전을 벌이던 중 통킨만에서 또 다시 북베트남 함정(vessel)들로부터 기습적으로 어뢰공격을 받은 것처럼 사건을 조작하였다. 맥독스호 피격사건이 조작극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격분에 휩싸인 미국 연방의회는 8월 7일 북베트남에 대한 선전포고를 양원합동으로 의결하였고, 조작극을 보고받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기다렸다는 듯이 북베트남에 대한 집중폭격을 명령하고 베트남전쟁에 지상군을 들이밀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베트남전쟁에 은밀히 개입해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조작극을 이용하여 베트남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할 명분을 찾은 것이다.

이처럼 왜곡과 조작에 능한 미국 군부가 주문진 해전을 실상대로 기록하였을 리 만무하다.

태평양함대에는 순양함 4척이 더 있었다

왜곡과 조작의 전과(前過)로 얼룩진 미국측 전쟁사 기록을 무턱대고 믿을 수 없는 조건에서, 주문진 해전의 실상을 파악하려면 북측 기록과 미국측 기록을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판별하여 사실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다.

첫째, 북측 기록에는 교전현장에서 인민군의 어뢰공격을 받고 경순양함 1척이 파손당했다고 씌여 있는데, 파손된 경순양함은 저메이커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미국 해군 작전사: 코리아편’에 “그날 늦게 저메이커호는 연료를 보급받기 위해 일본 사세보항으로 떠났다”고 적은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저메이커호는 항속거리(range)가 1만1천736km나 되는 순양함인데,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 동해로 출전한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연료가 떨어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작전 중인 전함이 교전현장에 다른 전함들을 남겨둔 채 갑자기 이탈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저메이커호가 주문진 해전 직후 급히 사세보항으로 향한 것은, 북측 기록에 나와있는 것처럼 인민군의 어뢰공격으로 파손된 선체를 보수해야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피격으로 파손당한 사실을 숨겨야 했던 미국 군부는 저메이커호가 마치 연료를 보급받으러 사세보항으로 떠난 것처럼 왜곡하였을 것이다.

둘째, 주문진 해전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전현장에 경순양함 2척이 있었다는 미국측 기록과 중순양함 1척과 경순양함 1척이 있었다는 북측 기록 가운데서 어느 쪽의 기록이 진실인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미국 해군 주노호나 영국 해군 저메이커호는 모두 경순양함이다. 주노호는 배수량 6천t, 선체 길이 165m, 승무인원 700명이고, 저메이커호는 배수량 8천530t, 선체 길이 169m, 승무인원 730명이다. 같은 급 경순양함이라 해도 저메이커호가 주노호보다 조금 더 크지만, 인민군 어뢰정 승무원들이 맨눈으로 식별할 만큼 커다란 차이는 아니다. 그에 비해,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은 배수량 1만3천600t, 선체 길이 205m, 승무인원 1천142명이므로, 인민군 어뢰정 승무원들은 맨눈으로도 경순양함과 중순양함을 식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교전현장에는 저메이커호보다 크기가 훨씬 더 큰, 그래서 맨눈으로 봐도 금방 중순양함으로 식별할 수 있는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1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전현장에 중순양함 1척이 있었다면, 미국측 기록에 나와있는 경순양함 주노호는 교전현장에 없었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다시 말해서, 교전현장에는 미국 중순양함 1척, 그리고 영국 경순양함 1척과 구축함 1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에게 당한 최악의 패전치욕을 감추기 위해서, 교전현장에 있었던 중순양함을 경순양함으로 왜곡하였을 뿐아니라, 경순양함이 인민군 어뢰정을 격침한 것처럼 기록을 조작하는 것은, 미국 군부로서는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다. 주문진 해전에 관한 미국측 기록이 조작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판별하려면,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에 관한 미국측 기록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에드워드 머롤다(Edward J. Morolda)가 쓴 기록 ‘해상전투(Naval Battles)’에 따르면, 1950년 6월 일본에 배치되어 있던 미국 극동해군은 중순양함 1척과 경순양함 1척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맬콤 케이글(Malcolm W. Cagle)과 프랭크 맨슨(Frank A. Manson)이 함께 써서 1957년 미국 해군연구원(U.S. Naval Institute)에서 펴낸 책 ‘코리아 해전(The Sea War in Korea)’에서도 당시 미국의 서태평양 해군력에 포함된 순양함은 2척이었다고 기록하였다.

서태평양에 배치된 미국 해군 순양함 2척 가운데 1척은, 미국측이 주문진 해전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왜곡하여 기록한 경순양함 주노호다. 그리고 다른 1척은 오레곤시티급(Oregon City-class) 중순양함 로체스터호(USS Rochester)인데, 이 순양함은 주문진 해전이 일어난 날 필리핀의 생글리 포인트(Sangley Point)에 있었고, 1950년 7월 18일에 가서야 한국전쟁에 출전하여 포항상륙작전을 지원하였다.

그런데 케이글과 맨슨이 함께 쓴 책 ‘코리아 해전’의 다른 부분에는, 1950년 6월 당시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에 순양함 6척이 배속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주노호와 로체스토호를 제외하고 순양함 4척이 더 있었던 것이다. 주문진 해전에서 격침된 중순양함은 바로 그 4척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격침된 중순양함이 복제전함으로 재생되다

주문진 해전 당시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에 배속된 순양함 4척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대상은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보스턴호(USS Boston)다. 미국측 기록에는 그 무렵 보스턴호의 행적이 이렇게 적혀있다.

1. 1945년 7월 20일부터 8월 15일까지 보스턴호는 일본 혼슈(本州)에 함포공격을 가했고,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을 때 도쿄 부근의 사가미만(相模灣)에 있었다. 그 이후에도 1946년 2월 28일까지 일본에 머물렀다. 그런데 미국측 기록에 따르면, 미국 군부는 그로부터 약 보름 뒤인 1946년 3월 12일 보스턴호에게 예비역 발령을 내렸고, 같은 해 10월 29일부터 1952년 1월 4일까지 약 5년 2개월 동안 워싱턴주 브리머튼(Bremerton)항에 있는 뿌제만 해군조선소(Puget Sound Naval Shipyard)에 장기 정박시켰다는 것이다.

뿌제만 해군조선소는 전함을 새로 건조하기도 하고, 멀쩡한 전함을 예비역(mothball)으로 분류하여 장기정박해두기도 한다. 그곳에 장기 정박하는 예비역 전함들은 꽤 많은데, 1950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것만이 아니라, 미국 전함이 격침된 경우, 격침된 전함과 똑같은 전함을 다시 건조하고 같은 이름을 붙여 재생시키는 전함복제관습이 있다.

미국측이 주문진 해전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왜곡하여 기록한 주노호도 복제전함이다. 주노호는 원래 1940년 5월 27일 배수량 6천t의 애틀랜타급(Atlanta-class) 경순양함으로 건조되었고, 1941년 10월 25일 진수되었고, 1942년 2월 14일 취역하였는데, 취역한지 아홉달만인 11월 13일 남태평양 솔로몬제도(Solomon Islands) 인근 해상에서 일본 전함과 교전 중에 격침되었다. 그런데 미국 해군은 2년 뒤인 1944년 9월 15일 주노호를 복제건조하였고, 1945년 7월 15일 진수하였고, 1946년 2월 15일 취역시켰다.

2. 한국전쟁 중인 1952년 1월 4일 미국 해군은 보스턴호를 재분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재분류(reclassification)란 전함을 다른 급으로 개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함포를 뜯어내고 미사일발사대를 설치하는 개조작업이었다. 당시 개조명령을 받은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은 보스턴호와 캔버러호(USS Canberra)였다. 보스턴호는 워싱턴주 브리머튼항에 있는 뿌제만 해군조선소에서 뉴저지주 캠든(Camden)항에 있는 캠든 해군조선소로 견인되었고, 같은 조선소에 정박 중이던 캔버러호도 캠든 해군조선소로 견인되었다.

3. 미국 해전사에 연대순으로 실려있는 기록사진을 보면, 보스턴호가 1945년 8월 15일 사가미만에 정박해 있는 사진이 있고, 1952년 5월 이후 어느 날 캠든 해군조선소에서 미사일순양함으로 개조되기 전에 부두에 정박한 모습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있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촬영날짜와 촬영장소가 적히지 않은 보스턴호 사진 두 장이 더 있다는 점이다. 촬영날짜와 촬영장소가 적히지 않은 보스턴호 사진 두 장이 촬영된 시기는 1945년 8월부터 1952년 5월까지 기간에 해당한다.

미국 해전사에 실린 보스턴호 사진들을 촬영, 소유한 사람의 이름은 데이빗 부얼(David Buell)로 적혀있는데, 그가 촬영, 소유한 사진 6장 가운데서 촬영날짜와 촬영장소를 적어놓지 않은 것은 1945년 8월부터 1952년 5월까지 기간에 찍은 보스턴호 사진 두 장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두 장 사진에 나타난 보스턴호는 뿌제만 해군조선소에 정박해 있는 장면이 아니라 어디론가 항해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두 번째 사진에는 육지쪽을 식별하지 못하도록 사진 윗부분을 덧칠한 흔적이 보인다. 이것은 보스턴호가 장기 정박 중이었다고 미국 해전사에 기록된 1946년 10월 29일부터 1952년 1월 4일까지 기간에, 해전사 기록과는 다르게, 작전에 참가하고 있었음을 입증해주는 유력한 증거다. 다시 말해서, 1946년 10월 이후 보스턴호는 개조명령을 받고 장기 정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작전에 참가하였던 것이다.

4. 미국측 자료들 가운데는, 보스턴호가 1946년 10월 29일부터 1952년 1월 4일까지 뿌제만 해군조선소에 장기 정박하였고 연이어 1956년 6월 1일까지 미사일순양함으로 개조되었다고 기록한 자료도 있지만, 보스턴호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고 기록한 자료도 있다. 이것은 보스턴호가 주문진 해전에 참가하였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보스턴호가 주문진 해전에서 인민군 어뢰정에게 격침당하자, 미국 군부는 보스턴호가 한국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뿌제만 해군조선소에 장기 정박했던 것처럼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5. 미국측 기록에는 미국 군부가 볼티모어급 함포순양함들인 보스턴호와 캔버러호를 동시에 보스턴급 미사일순양함으로 개조하였다고 적혀있다. 캔버라호는 1952년 5월 30일부터 1956년 6월 1일까지 캠든 해군조선소에서 보스턴급 미사일순양함으로 개조되어, 1956년 6월 15일 버지니아주 노퍽(Norfolk)항을 모항으로 하여 재취역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보스턴호는 개조작업기간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고, 모항도 명시되지 않았으며 그저 1955년 11월 1일에 재취역하였다고만 적혀있다. 함포순양함 보스턴호가 개조기록도 남기지 않은채 사라지고, 미사일순양함 보스턴호가 출현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신형 미사일순양함으로 출현한 보스턴호는 뿌제만 해군조선소에 장기 정박 중이던 함포순양함을 개조한 것이 아니라, 새로 건조한 미사일순양함에 보스턴호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마치 함포순양함을 미사일순양함으로 개조한 것처럼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군부는 주문진 앞바다에서 격침된 보스턴호와 똑같이 생긴 전함을 복제건조하면서 그 복제전함에 미사일발사대를 설치하여 세계 최초의 미사일순양함 보스턴호를 만들어낸 것이다.

“간단히 답하면, 그렇다”

주문진 해전 이후 59년 긴 세월이 흘렀다. 한반도는 정전상태에 있고, 미국군은 한반도에서 물러가지 않았다. 물러가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전쟁위협발언을 공공연히 꺼내놓고 있다. 2009년 5월 28일 미국 육군 참모총장 조지 케이시(George W. Casey, Jr.)가 워싱턴에 있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방문했을 때,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이 참전할 준비가 되었느냐는 물음이 나오자 “간단히 답하면, 그렇다(The short answer is yes)”고 말한 것이 가장 최근에 나온 미국 군부의 전쟁위협발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전쟁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 〈연합뉴스〉는 2009년 6월 23일 워싱턴발 기사에서, 미국 인터넷 라디오방송인 <터너 라디오네트워크>(TRN)의 6월 22일자 기사를 인용하여,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가 이끄는 항모전투단이 동해에 배치되었다고 보도하였다. 배수량 10만1천t, 선체 길이 332m, 승무원 5천680명, 함재기와 헬기 90대를 싣고 다니는 니미츠급(Nimitz class)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45억 달러 짜리 초대형 항공모함이다. 항모전투단은 항공모함 1척, 이지스 순양함 2척, 구축함 4척으로 편성된다.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橫須賀) 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삼고 있기에, 출전명령이 떨어지면 시속 56km로 항진하여 곧바로 동해에 들어올 수 있다.

미국이 항모전투단을 동해에 배치하였다는 위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평시의 긴장도를 뛰어넘어 심각한 격화수준에 이른 것이다. 인민군은 전함들을 태평양 건너 미국 캘리포니아 앞바다에 배치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태평양 건너에 전진배치된 미국군 항모전투단은 동해에 무더기로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 생각해봐도,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고조시키고 평화를 파괴하려는 세력이 누구인지 명백하다.

미국군이 한반도에 몰려와 긴장을 격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짓이다. 인민군은 주문진 해전에서 어뢰정 4척으로 미영연합군 소함대를 격파했지만, 59년이 지난 오늘 인민군이 보유한 항모 타격력은 일반대중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이를테면, 2009년 2월 9일 〈통일뉴스〉에 발표한 나의 글 ‘패전을 경고받은 모의전쟁 MC02’에서 논한 대로, 인민군은 항모전투단 상공으로 불시에 전파방해 화학탄두를 집중발사하여 항모전투단의 작전능력을 순식간에 마비시킬 전술을 연마해왔고, 무기체계도 그러한 전술에 맞게 개발하였다. 사거리 60km가 되는 전파방해 화학로켓탄을 22발 씩 장착한 방사포고속정들, 2003년부터 해마다 10발 씩 이동발사훈련을 실시해오는 명중률 높은 신형 지대함미사일(KN-01), 지하방호시설에 은폐된 장거리 해안포들, 지하정박장에서 출격을 기다리는 고속어뢰정들과 잠수함들이 미국군 항모전투단을 상대할 것이다.

이 시각, 동해 수평선을 응시하며 미국 항모전투단과 격돌을 벼리고 있을 인민군에게, 만일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싸워 이길 수 있느냐고 누가 물으면, 그들에게서는 아마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답하면, 그렇다.”  (2009년 6월 29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