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협상을 포기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양자회담 계획을 파탄시킨 강공

2009년 4월 24일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대통령과 아소다로(麻生太郞) 총리가 국제통화를 하였다. 양국 정상의 국제통화는 중대현안이 제기되었을 때 양국 정부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다. 두 정상이 국제통화에서 협의한 현안은 무엇이었을까? 그로부터 얼마 뒤인 5월 4일 <교도통신>이 도쿄와 워싱턴의 외교소식통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보도한 내용을 정리하면 두 정상의 통화내막은 이렇다.

오바마-아소 국제통화 이전에 일본 정부는 오바마 정부가 북측과의 양자회담을 당분간 고려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아소 총리와 통화하면서 뜻밖에도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하려는 뜻을 밝혔다. 그에 대해 아소 총리는 북측과 미국의 양자회담이 6자회담 재개로 귀결된다면 양자회담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조건부 찬의를 표시하였고, 오바마 대통령은 북측과의 양자회담에 대해 더 이상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오바마-아소 국제통화는,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하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계획을 동맹관계에 있는 일본 정부에게 미리 알려준 사전통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2009년 4월 5일 북측의 인공위성 발사로 충격을 받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6자회담 틀 안에서만 양자회담을 하겠다는 종전 태도를 외부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바꾸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유력 주간지 <타임>도 오바마-아소 국제통화 직전인 2009년 4월 15일 보도에서 오바마 정부가 북측과 양자회담을 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을 살펴보면, 2009년 4월 5일 북측이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전면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하자, 워싱턴 정가에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과 양자회담을 개시하여 사태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북측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항해서 반격공세를 가해야 한다는 강경한 견해도 당연히 제기되었지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과 양자회담을 벌일 준비를 조용히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양자회담 개최준비는 오바마-아소 국제통화가 있었던 날부터 닷새 뒤인 4월 29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로 파탄나고 말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양자회담 계획을 파탄시킨 담화의 마지막 문단을 옮기면 이렇다.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즉시 사죄하지 않는 경우 우리는 첫째로, 공화국의 최고리익을 지키기 위하여 부득불 추가적인 자위적 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싸일 발사시험들이 포함되게 될 것이다. 둘째로, 경수로발전소 건설을 결정하고 그 첫 공정으로서 핵연료를 자체로 생산보장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지체없이 시작할 것이다.”

4.29 담화가 밝힌 대로, 북측의 대미강공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을 실시하는 방향과 경수로발전소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각각 전개되는 것이다. 전자는 핵억지력을 물리적으로 공개, 입증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압박하는 것이고, 후자는 영변의 플루토늄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것에 더하여 새로운 우라늄 핵시설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그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이것은 북측이 이제까지 행동에 옮긴 여러 유형의 대미공세 가운데서 압박강도를 최고로 높인 강공이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응책을 찾기 힘들 만큼 초강력한 강공이다.

미국 국방장관, 방어태세를 명령하다

북측과 양자회담을 조용히 추진하려던 계획이 꺼내놓기도 전에 파탄되고, 4.29 담화 발표로 충격을 받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에서 대북정보를 총괄하는 담당관 조셉 디트라니(Joseph E. Ditrani)를 2009년 5월 초에 서울에 급파하여 북측이 강공을 퍼붓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서울방문 중에 남측 정부 고위관리들로부터 얻어낸 대북정보라는 것은, 북측의 의도를 왜곡해서 전달하기에 알맞은 북측 방문자들이나 탈북자들이 전해준 귀동냥 수준의 첩보였을 것이다.

이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의도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북측의 강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알지도 못해 쩔쩔매는 사이에 터진 것이, 북측이 핵실험이었다고 밝힌 5.25 폭발실험이다. 북측의 4.29 담화가 예고한 핵실험이 실시된 것만으로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경악할 노릇이었지만, 그들에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5.25 폭발실험에서 방사능 비활성 기체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그 폭발실험을 핵실험으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태연한 척하지만, 불가사의한 5.25 폭발실험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북측이 4.29 담화에서 발사하겠다고 예고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언제 쏘아올릴지 몰라서 우려와 긴장이 감도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를테면,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6월 22일 미국 <씨비에스(CBS)> 텔레비전방송 대담에서 미국군이 북측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위협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였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내용의 발언으로 미국인들의 불안감을 달래주었다.

특히 미국 국방부가 느끼는 긴장감이 심한 데, 그들이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준비에 무척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드러난 때는 2009년 6월 1일이다. 그날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아에프페(AF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북측이 “장거리미사일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기지로 옮겨놓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측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기지로 옮겼다는 말은 발사가 시간문제로 되었음을 뜻하므로, 미국 국방장관은 그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6월 9일 미국 연방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로벗 게이츠(Robert M. Gates) 국방장관은 “현재 배치된 요격미사일 30기는 앞으로 수년간 북한의 (미사일)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하면서, 성능이 입증되지도 않은 미사일방어체계를 일단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식의 발언을 늘어놓음으로써 워싱턴 정가의 불안감을 달래주기에 바빴다.

또한 그는 6월 18일에 열린 국방부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상황을 매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미국의) 서쪽으로 발사할 경우 하와이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는 점을 정말 우려하고 있다”고 하면서, 고고도방어체계(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요격미사일을 하와이에 배치하고, 엑스밴드 레이더(Sea-based X-band radar)를 하와이 앞바다에 배치하였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장관의 위와 같은 발언은, 북측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대비하여 미국군이 첨단무기를 동원하여 방어태세를 취했음을 뜻한다. 고고도방어체계 요격미사일은 미국이 보유한 군사과학기술의 결정체이며, 엑스밴드 레이더는 바다 위에 떠다니는 거대한 첨단 레이더기지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 첫 해에 북측의 강공책에 걸려드는 바람에 시련을 겪고 있다. 북측의 강공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폐기물 창고에서 꺼낸 대응책

냉전기에 미국 정부를 대표하여 베트남전쟁 종전협상에 참가하고, 중미 관계정상화를 이끌어낸 노회한 전략가인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강공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키신저는 2009년 6월 4일 미국 일간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에 ‘북코리아, 시련을 안겨주다(North Korea Throws Down the Gauntlet)’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는 그 글에서 오바마 정부가 북측의 강공에 맞설 두 가지 방책을 조언해주었다.

첫째, 북측의 핵무기 개발사업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오바마 정부가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핵활동이 영토 밖으로 확산되지 않게 금지선을 쳐놓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방책이다. 키신저가 조언한 첫 번째 방책은 핵확산 차단을 전제로 하여 북측의 핵보유를 묵인해주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 주변나라들이 대북압박에 동참하고 특히 중국을 대북압박에 끌어들인 가운데 북측을 최대로 압박하여 그들의 핵무기 개발사업을 중지시키는 방책이다. 키신저가 조언한 두 번째 방책은 국제공조압박으로 북측의 핵포기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글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은 대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방책에서 북측의 강공에 맞설 방도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핵확산 차단을 전제로 한 북측의 핵보유 묵인은, 키신저 자신이 우려한 대로, 미국의 비확산정책과 미사일방어정책을 모두 무너뜨릴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공조압박을 통한 북측의 핵포기 유도는, 키신저 자신이 지적한 대로, 국제공조압박 성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신통한 해결사(deus ex machina)’인 중국이 대북압박에 동참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데, 한반도 주변정세는 그러한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대북압박을 구실로 삼아 대한동맹과 대일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결국 자기 목에 이중동맹의 창끝을 겨누는 것임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유엔안보리에서는 대북 제재결의를 찬성하고서도 실제로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국제공조압박에 대해서는 불참의 선을 그어왔다. 러시아도 중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국제공조압박이 유엔안보리 회의장에서만 요란한 소리를 내고 유엔안보리 회의장 밖에서는 ‘효과’를 내지 못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오바마 정부가 북측을 제재해보겠다고 덤비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에 대해서는, 뉴욕사회과학연구회 동북아시아 협력안보담당 책임연구자인 리언 시걸(Leon V. Sigal)이 2009년 5월 25일 <연합뉴스>와 대담하면서 잘 지적하였다. 시걸은 “어떠한 제재도 북한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유엔안보리 결의도 북한에 어떤 영향을 주기에 충분치 않기 때문에 북한은 상관하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봉쇄하고 제재해도 실제로 북한에 영향이 없다. 오직 정치적 영향이 갈 뿐인데 이는 우리가 원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그런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클린턴 정부와 부시 정부가 시도해보았으나 결국 실패로 막을 내린 대북 제재강화라는 대응책을 폐기물 창고에서 다시 꺼냈다. 하기야 노회한 전략가로 이름을 날린 헨리 키신저도 묘수를 조언해주지 못할 막다른 골목에 밀려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헨리 키신저만한 전략가마저도 없으니 무슨 묘수가 나올 리 없고, 따라서 폐기물 창고를 뒤지는 수밖에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폐기물 창고에서 꺼낸 대응책에 따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급히 취한 궁색한 행동이 한미정상회담 개최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다.

북측이 무수단리 동해위성발사장에 있는 조립동 안에서 발사명령을 대기하던 은하 2호를 꺼내 발사대에 세운 날은 2009년 3월 25일이었고,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를 이용해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잠깐 만난 자리에서 오는 6월 16일 한미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발표한 날은 은하 2호 발사를 사흘 앞둔 4월 2일이었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이 은하 2호를 발사대에 세운 것을 보고 부랴부랴 폐기물 창고를 뒤져 한미정상회담이라는 대응책을 꺼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런던에서 약속한 대로 2009년 6월 16일 이명박 대통령을 백악관에 초청하여 정상회담을 갖고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의 동맹을 위한 공동전망(Joint Vision for the Alliance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 성명은 북측을 심히 자극하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를테면,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지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공약(the continuing commitment of extended deterrence, including the U.S. nuclear umbrella)”을 강조하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peaceful reunification on the principle of free democracy and a market economy)”을 주장하였으며, “북코리아 인민의 기본적인 인권존중을 증진시키는 것(to promote respect for the fundamental human rights of the North Korean people)”에 대해 언급하였다. 다시 말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북 선제핵공격, 남측 주도의 흡수통합, 대북 인권공세 강화를 공공연하게 들고나온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폐기물 창고에서 찾아낸 것은 한미정상회담 개최만이 아니었다. 6.16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사흘 전인 2009년 6월 13일 유엔안보리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막후에서 총지휘한 대북제재 결의 제1871호를 채택하였다. 기존의 대북제재를 한층 더 강화하는 각종 조치들이 그 결의안에 담긴 것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미정상회담도 열었고 유엔안보리를 움직여 대북제재 결의안도 채택하게 하였으니, 이제 그들이 폐기물 창고에서 꺼낼 대응책은 모두 꺼내놓은 셈이다.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카드’는 하나도 없다. 북측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카드 사용법’을 미리 읽은 북측은, 그들이 마지막 ‘카드’까지 빨리 써버리도록 강공을 퍼부어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측의 강공에 허둥지둥 긴급대응을 하다보니 자기들이 가진 ‘카드’를 한 장도 남겨두지 못하고 모두 써버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향해 북측은 굴복을 요구하는 강공을 계속 퍼부을 것이다. 2009년 6월 13일 북측 외무성 성명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바야흐로 “미국과의 전면대결이 시작된 현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3년만에 백지화된 핵포기 공약

2009년 5월 27일 리언 시걸은 <연합뉴스>와 대담하면서 “핵실험과 미사일실험이 지속되는 것을 막으려면 협상을 해야 하고, 협상을 시작하면 핵프로그램을 종료시키고 무기를 없애는데 얼마나 더 걸려야 할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언제 끝날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를 알아내는 것은 협상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걸이 말한 대로, 북측의 외부세계에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협상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발상은 북측이 대미협상을 포기하였음을 알지 못하는 엉뚱한 소리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것에 때맞춰 북측이 강공을 개시한 것은 대미협상을 포기하였음을 뜻한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북측의 강공책은 협상을 이끌어내려는 전술이 아니다. 북측은 말과 행동으로 대미협상을 포기하였음을 명백히 밝혔다.

북측 외무성이 2009년 6월 13일에 발표한 성명은 대미협상 포기선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측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보다 훨씬 격이 높은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북측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혔다. 6.13 외무성 성명에 담긴 놀라운 내용은, “이제와서 핵포기란 절대로, 철두철미 있을 수 없는 일로 되였으며 우리의 핵무기보유를 누가 인정하는가 마는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상관이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이것은 북측이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이른 시일 안에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약속한 핵포기 공약을 백지화한 것이다.

핵포기 공약을 백지화한 선언은 즉각 실행으로 옮겨졌다. 6.13 외무성 성명은 두 가지를 언급했는데, 첫째는, 진행 중인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이른 시일 안에 끝내고 추출된 플루토늄 전량을 핵탄두로 만드는 핵무기 증산이고, 둘째는, 경수로 건설 추진결정에 따라서 우라늄을 농축하는 새로운 핵기술 개발이다. 그 성명은 경수로 가동을 위한 농축우라늄을 만들어내는 기술개발이 이미 시험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요컨대, 북측은 6.13 외무성 성명에서 새로운 핵기술 개발과 핵무기 증산으로 핵포기 공약을 백지화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대미협상 포기는 한반도 비핵화 포기가 아니다

2006년 10월 3일 외무성 성명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는 온갖 도전과 난관을 과감하게 뚫고 우리 식대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던 북측은 그로부터 3년만에 대미협상을 포기하였다.

대미협상을 왜 포기하였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1993년 6월부터 2009년 6월까지 무려 16년 동안 계속되어온 북측과 미국의 협상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16년 동안 워싱턴에서는 클린턴 정권→부시 정권→오바마 정권으로 바뀌는 복잡하고 어수선한 정권교체가 있었다. 워싱턴에서 두 차례의 정권교체를 겪으며 진행된 16년 장기협상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일방적인 공약파기 또는 무작정 시간끌기로 일관해온 과정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핵협상을 구실로 회담을 벌여놓고 말싸움이나 하면서 무작정 시간을 끄는 지연전술로 버티거나, 그러한 지연전술이 북측의 공세로 파탄된 경우 협상에 진전을 보아 어렵사리 이끌어낸 합의마저도 정권교체와 함께 무효화되어버리는 공약파기, 바로 이것이 16년 장기협상에서 북측이 겪어온 체험이다.

또한 16년 협상기간 동안 북측과 미국은 1993년 6월 양국 공동성명, 1994년 10월 양국 기본합의, 2000년 10월 양국 공동코뮈니케, 2005년 9월 6자 공동성명, 2007년 2월 6자 초기조치, 2007년 10월 6자 2단계 조치에 이르기까지 각종 합의와 공약을 내왔지만, 어느 하나 이행된 것이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16년 협상기간 동안 북측과 미국은 비공개로 또는 공개로 협상을 벌여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양자회담, 3자회담, 4자회담, 그리고 6자회담에 이르기까지 해보지 않은 회담이 없었지만, 어떤 형식의 회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체험을 16년 동안 반복하였는데, 그래도 협상밖에 다른 방도가 없으니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돌이켜보면, 지난 16년 동안 진행된 협상과정은 답보와 퇴보의 교차반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북측에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상대하는 장기협상은 무의미하다. 백악관 대변인 로벗 깁스(Robert Gibbs)는 2009년 6월 17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그들(북측)이 한반도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길로 복귀하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들이 반복하는 6자회담 복귀요구는 북측의 대미협상 포기사실을 외면한 엉뚱한 소리다.

북측이 핵포기 공약을 백지화하고 대미협상도 포기하였으니, 한반도 비핵화는 영영 불가능하게 된 것일까? 6.13 외무성 성명에서 핵포기 공약을 백지화한 것을 보고 한반도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속단하면서, 핵포기 공약 백지화를 한반도 비핵화 포기와 동일시하는 것은 커다란 착오다. 북측이 핵포기 공약 백지화를 선언했다고 해서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북측은 새로운 핵기술을 개발하고 핵무기를 증산하면서 어떻게 한반도를 비핵화하겠다는 말인가? 영변 핵시설 건설과 핵무기 개발이 역설적으로 한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북측이 추진 중인 새로운 핵기술 개발과 핵무기 증산 역시 한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핵포기 공약 백지화와 대미협상 포기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측이 꺼내든 역설적인 방책인 것이다.

북측이 경수로발전소를 건설하는 도중에 한반도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어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한다면, 경수로발전소를 가동하기 위한 새로운 핵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또한 북측이 핵협상을 포기하고 핵무기를 증산하였다고 해서,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인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2009년 대격돌의 끝은 어디일까?

북측이 핵협상을 포기하고 새로운 핵기술 개발과 핵무기 증산을 추진한다는 말은, 미국과 맞싸우는 격돌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가다듬을 틈도 주지 않고, 북측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조준하여 전격적으로 선제공세를 개시한 것이 2009년 대격돌의 시작이었다. 북측의 과감한 선제공세는 미국과 맞싸우는 2009년 대격돌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격돌의 끝은 담판이다. 담판(parley)이라는 말과 협상(negotiation)이라는 말을 흔히 같은 뜻으로 쓰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다르다.

첫째, 협상만으로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이 담판이다. ‘협상짓다’는 말은 없어도, ‘담판짓다’는 말은 있는데, ‘짓다’는 말은 ‘결판을 낸다’ 또는 ‘결말을 본다’는 뜻이다. 협상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담판은 타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다.

둘째, 협상이 외교적이라면, 담판은 정치적이다. 협상이 잡다한 외교현안을 해결하는 것이라면, 담판은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영토문제나 주권문제 같은 근본문제는 담판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흔하다.

셋째, ‘힘의 대결’을 끝내는 정치군사회담을 담판이라 한다. 담판 이전에는 반드시 대격돌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역사적 경험을 상기하면, 고려의 북진정책과 송나라에 대한 화친정책에 불만을 느낀 거란의 소손녕이 지휘하는 80만 대군이 993년에 압록강을 건너 이 땅에 쳐들어왔을 때, 서희와 소손녕이 벌인 진중회담(陣中會談)이 담판이다. 서희가 담판으로 거란군을 물리친 이듬해인 994년에 고려군은 압록강 동부지역을 점령한 여진족을 3년 동안 싸워 몰아내고 강동 6주를 되찾는 것으로 영토주권을 완전히 실현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고려군이 청천강 남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거란군을 제압함으로써 소손녕을 담판에 끌어냈다는 점이다.

서희와 소손녕이 담판을 벌이기 전에 청천강 남쪽에서 고려군과 거란군이 격돌하였던 것처럼, 지금 북측과 미국은 담판을 앞두고 각기 자국군대가 보유한 첨단무기를 동원하여 격돌하는 중이다. 만일 미국군이 대북 해상봉쇄를 시도하면 그것을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단호히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6.13 외무성 성명의 엄중한 경고가 나온 직후, 미국군은 정찰위성과 이지스 군함을 동원하여 북측 화물선 강남 1호를 계속 감시, 추적하는 중이다.

중요한 것은, 북측이 협상전략을 접고 담판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담판전략의 목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최고위급 담판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최고위급 담판이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이다. 그 정상회담은 16년 동안 엎치락 뒤치락해온 핵협상이 아니라, 고려와 거란의 철군담판 이후 1천년만에 한반도에서 다시 벌어질 역사적인 철군담판이다.

소손녕이 청천강 남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해 진퇴양난에 빠지자 철군담판에 나섰던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도 북측의 강공에 밀려 진퇴양난에 빠져버렸으니 철군담판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측의 선제공세로 시작된 2009년 대격돌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기존의 핵협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최고위급 담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전문가들도 오바마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철군담판에 대해서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2009년 5월 27일 리언 시걸은 <연합뉴스>와 대담할 때 기자가 북측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자, “적대정책을 버리는 것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이는 외교관계는 물론 대통령의 방북, 안전보장, 투자지원 등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2009년 5월 12일 주한미국대사관과 평화재단이 ‘오바마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이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공동주최한 토론회에서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는 북측이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폐를 요구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철폐,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핵우산 제거 등을 추진하는 새로운 국면을 전개하려 할 수 있다”고 예고하였다.

북측은 강공을 퍼부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기어이 철군담판으로 끌어내려 할 것이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반발과 제재로 맞서면서 버틸 수 있는 한 버티려고 애쓸 것이다. 명백하게도, 2009년 대격돌에서 승리한 쪽이 최고위급 담판에서 승리할 것이므로, 2009년 대격돌은 북측과 미국이 나라의 명운을 걸고 맞붙은 전면대결이다.

2009년 대격돌 이후에 벌어질 최고위급 담판은 북측이 파기를 선언한 핵포기 공약을 되살릴 기회이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끈질기게 회피해온 철군문제를 해결할 기회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측의 강공에 굴복하는 식으로 철군담판에 끌려나가는 망신을 당하지 말고, 2009년 11월에 예정된 베이징 공식방문을 마친 길에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져야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것이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체통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1977년 1월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자마자 1982년 중반까지 4년 동안 3단계에 걸쳐 주한미국군을 철군한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도 소심하고 피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철군결정을 내림으로써 낡은 한반도 정책을 새로운 변화의 장으로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2009년 6월 22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