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발 인공지진, 끝장공세와 연속타격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풍계리발 인공지진의 위력

한반도 시간으로 2009년 5월 25일 오전 9시 54분, 세계 각국의 지진계는 핵폭발로 일어난 인공지진파를 탐지하였다. 북측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지하핵실험장에서 두 번째 핵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2009년 5월 29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담화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 핵실험은 “지구 상의 2054번째로 되는 핵시험”이었다. 북측이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기 직전인 2009년 5월 18일 워싱턴에서 브루킹스 연구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마이클 멀린(Michael Mullen) 미국군 합참의장이 “매우, 매우 위험스러운 것”이라고 걱정했던 핵실험이 실시된 것이다.

핵실험의 성패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핵폭발력(nuclear blast yield)이다. 제2차 지하핵실험의 핵폭발력을 북측 이외의 외부세계에서 탐지하는 방도는, 핵폭발로 일어난 진도를 측정하여 폭발력을 역산하는 것이다. 그러한 역산법에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는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측정한 진도는 4.5였고,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가 측정한 진도는 4.52였고,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측정한 진도는 4.7이었고, 일본 기상청이 측정한 진도는 5.3이었다.

그런데 2006년 10월 9일에 북측이 제1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을 때,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측정한 진도는 3.9였고,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기구가 측정한 진도는 4.1이었고, 미국 지질조사국이 측정한 진도는 4.2였고, 일본 기상청이 측정한 진도는 4.9였다.

제1차 지하핵실험의 폭발력에 대해서 프랑스 국방성이 역산한 폭발력은 0.5kt(킬로톤) 정도였고, 남측 정부당국이 역산한 폭발력은 0.8kt 이상이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지진연구소(ACSR)와 미국의 핵공학 전문가들이 역산한 폭발력은 1kt이었다. 그와 다르게, 중국 정부당국이 역산한 폭발력은 10kt 정도였고, 러시아 정부당국이 역산한 폭발력은 5-15kt이었다. 이처럼 각국의 진도측정과 역산결과가 상당한 편차를 드러내는 바람에 폭발력을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었지만, 폭발력을 1kt으로 역산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1kt이란 일반폭약(TNT) 1천t을 뜻하므로, 제1차 지하핵실험의 폭발력은 일반폭약 1천t을 터뜨린 폭발력이었다.

일본 기상청이 북측의 제1차 핵실험에서 측정한 진도와 제2차 핵실험에서 측정한 진도를 비교하였는데, 이번에 실시한 핵실험에서는 지난번보다 약 다섯 배 더 강력한 폭발력이 나왔다. 제1차 핵실험의 폭발력이 1kt이었으니, 이번에 실시한 핵실험의 폭발력은 5kt인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체커 과학평화연구소(ZNF)의 마르틴 칼리노브스키(Martin Kalinowsky) 교수는 북측이 이번에 실시한 핵실험의 폭발력은 3-8kt이라고 역산하였다. 5kt의 폭발력은 탑재량 5t짜리 대형트럭 1천 대에 가득 실은 일반폭약을 한꺼번에 터뜨린 가공할 폭발력이다.

상식을 뛰어넘은 북측의 핵실험

2008년 6월 26일 북측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게 보낸 핵신고서에 따르면, 2006년 10월 9일에 실시한 핵실험에서 무기급 플루토늄(WGPu) 2kg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각국의 핵공학 전문가들은 북측이 무기급 플루토늄 2kg만 가지고 핵탄두를 만들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 정도 극소량으로 초소형 전술핵탄두를 만드는 기술은 5대 핵강국밖에 갖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형 전술핵탄두 한 발을 만들려면 최소한 5-8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사용하여야 한다는 상식을 믿는 사람들의 시야에는 낙후한 핵기술밖에 갖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북측이 2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가지고 초소형 전술핵탄두를 만들어 핵실험까지 실시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북측이 5-8kg의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전술핵탄두 한 발을 만들어내는 핵무기 공학기술을 뛰어넘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북측의 핵무기 공학기술 수준을 알지 못하면서 과소평가하는 습관성 판단착오에 시야가 어두워진 그들은 북측이 2kg의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초소형 전술핵탄두를 만들어내는 최고 수준의 핵무기 공학기술을 보유하였음을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1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이 핵분열을 일으키면 핵폭발력의 최대값은 2kt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도 역시 상식이다. 그런데 북측의 핵실험은 그 상식을 뛰어넘었다. 2kg의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핵분열을 일으켰으면 최대 4kt의 폭발력이 발생했어야 하는데, 1kt의 폭발력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상식 이하의 폭발력이 나오자, 상식에 얽매인 핵공학 전문가들은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 핵폭발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기폭 순간에 쉭 소리를 내며 꺼진 것(fizzle)이라고 의심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첫째, 핵폭발이 언제나 최대값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미국군이 히로시마에서 터뜨린 핵폭탄에는 고농축 우라늄 64kg이 들어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7.8kg만 핵분열을 일으켜 핵폭발 효율이 12.1%에 머물렀고, 나가사키에서 터뜨린 핵폭탄에는 무기급 플루토늄 6.1kg이 들어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1.037kg만 핵분열을 일으켜 핵폭발 효율이 17%에 머물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측의 핵실험에서 상식 이하의 약한 폭발력이 나온 것은 핵폭발 효율이 어느 정도인가를 따져볼 문제이지, 핵실험이 성공했느냐 아니면 실패했느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둘째, 북측에게는 전략핵실험 경험이 있다. 북측은 1998년 5월 30일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사막(Baluchistan Desert)에 있는 차가이 힐스(Chagai Hills) 핵실험장 수직갱에서 전략핵실험을 실시하였다. 폭발력은 15-18kt이었다. 그것은 히로시마 핵폭탄에 맞먹는 폭발력을 일으킨 전략핵실험이었다.

북측처럼 영토가 작은 나라가 폭발력이 큰 전략핵실험을 실시하는 경우 다른 나라 영토를 빌리기도 하는데,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핵실험을 몇 차례씩 실시한 적이 있다. 1998년 5월에 파키스탄에서 전략핵실험을 실시한 것까지 포함하면, 북측이 이번에 실시한 핵실험은 제3차 핵실험이다. 북측이 파키스탄에서 실시한 전략핵실험에 관해서는 2004년 3월 3일에 발표한 나의 글 ‘제2차 6자회담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을 것인가’에서, 그리고 2004년 3월 19일에 발표한 나의 글 ‘핵문제와 탄핵문제로 본 한(조선)반도 현 정세’에서 자세히 논하였다.

히로시마 핵폭탄은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한 포신형(gun type)이었고, 나가사키 핵폭탄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사용한 내폭형(implosion type)이었는데, 나가사키에서 터진 내폭형 핵폭탄에는 적은 양의 무기급 플루토늄이 들어갔는데도 폭발력은 히로시마에서 터진 포신형 핵폭탄보다 훨씬 더 컸다. 포신형 핵폭탄은 폭발이 쉽게 일어나지만 효율성과 안전성은 떨어진다. 내폭형은 포신형보다 제작기술이 훨씬 더 어려운, 한 단계 진보한 핵무기다. 북측의 핵무기 공학기술 수준보다 한 수 낮은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들이 포신형이다. 북측이 지금까지 실시한 핵실험들에서 실험한 핵무기는 모두 내폭형이다.

제1차 지하핵실험에서 북측은 1kt의 폭발력을 일으킨 초소형 전술핵탄두를 터뜨렸건만, 미국 정부는 실패설을 조작, 유포하였다. 북측이 설마 핵무기를 소형화하는 기술을 가졌겠느냐는 편견이 지배적인 이 사회에서는 미국 정부가 조작, 유포한 핵실험 실패설이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북측의 발표는 거짓말로 들리고, 그와 반대로 미국 정부의 발표는 진실로 믿어지는 도착적 맹신풍조가 만연된 이 사회에서는 북측의 핵무기 공학기술이 원시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따라서 북측의 핵실험은 매번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거짓정보가 사실로 둔갑하였다.

그러나 히로시마 핵폭팔력에 맞먹는 전략핵실험을 1998년 5월에 실시한 북측이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6년 10월 9일에 무기급 플루토늄이 불과 2kg밖에 들어있지 않은 초소형 핵탄두를 터뜨린 전술핵실험에 성공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전술핵무기를 실험한 것이다. 평안북도 구성시 용덕동에 있는, 최신 설비가 마련된 고폭실험장을 첩보위성으로 줄곧 감시해온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미사일에 탑재할 소형 핵탄두를 제조하는 북측의 설계작업이 그 실험장에서 진행되었다는 정보를 동맹국들에게 제공하였음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때는 2003년 7월 1일이다. 북측의 핵무기 공학기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첫째, 북측이 파키스탄에서 실시한 한 차례의 전략핵실험은 전략핵무기를 보유하였음을 입증하였고, 북측이 자국 영토에서 실시한 두 차례의 전술핵실험은 미사일에 탑재할 전술핵탄두를 보유하였음을 입증하였다.

둘째, 북측의 핵무기 공학기술은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언론에 공개한 것보다 훨씬 더 발달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북측이 전략핵실험과 전술핵실험을 모두 실시한 것은 핵폭발력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기술을 가졌음을 입증한 것이며, 특히 두 차례의 전술핵실험은 핵폭발 순간에 발생하는 기체상태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최소량으로 줄여 방출시키는 기술까지 가졌음을 입증한 것이다. 초소형 전술핵탄두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5대 핵강국밖에 갖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놀랍게도 북측이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칸 박사의 핵탄두 목격담

북측의 핵무기 공학기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파키스탄의 핵개발사업을 주도한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다. 그는 북측의 핵탄두를 직접 관찰한 유일한 외국인이다. 〈뉴욕타임스〉 2004년 4월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칸 박사는 “어느 방향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도(평양을 뜻함-옮긴이)에서 한 시간쯤 되는 곳”으로 안내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북측 사람들이 “핵억제력(nuclear deterrent force)이라고 자신에게 말해준, 완전한 무기들(full weapons)로 보이는 세 개의 플루토늄 장치들(three plutonium devices)”을 관찰하였고 한다. 그는 북측 당국이 핵탄두를 “잠시 관찰(inspect)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몇 해 뒤에 칸 박사를 심문하였던 파키스탄 정보기관(ISI)은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한 까닭에 핵탄두라는 말을 쓰지 않고 플루토늄 장치라고 어색하게 표현하였지만, 칸 박사가 북측에서 관찰한 것은 명백하게도 세 발의 핵탄두였다.

원래 칸 박사의 핵탄두 목격담은 파키스탄 정보기관이 그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 파키스탄 정부는 엄청난 정치파장을 일으킬 그야말로 ‘핵폭탄급 정보’가 칸 박사의 심문정보에 들어있는 까닭에 그 심문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2004년 4월 13일자 보도는, 파키스탄 정부가 미국 정부에게 넘겨준, 칸 박사 심문정보가 담긴 보고서가 중요한 내용을 많이 빠뜨렸다고 지적하였다. 파키스탄이 정보를 은폐하자, 미국 중앙정보부가 나서서 칸 박사를 직접 심문하려고 하였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그들의 직접심문을 끝내 허용하지 않았다.

칸 박사가 목격한 북측의 핵탄두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전해준 사람은 노무현 정부 시기에 6자회담 남측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보다. 2008년 4월 서울에서 펴낸 자신의 책 <전환적 사건>에서 그는 칸 박사가 1999년에 방북하였을 때, 평양에서 두 시간 떨어진 어떤 지하시설에 안내되었는데, 거기에서 운반대 위에 놓인, 직경이 약 24인치(60.96cm)가 되고 뇌관이 64개가 들어있는 세 개의 플루토늄 핵장치를 목격하였다고 썼다. 핵탄두 직경이 미국에서 쓰이는 도량형(度量衡)인 인치(inch)로 표기된 것으로 봐서, 그 정보는 미국 정부가 넘겨주었을 것이다.

첫째, 이수혁 전 차관보의 글에 따르면, 칸 박사가 1999년에 방북하였을 때 핵탄두를 관찰하였다고 적혀있다. 파키스탄은 1999년 4월 15일 사거리 750km, 탑재중량 1천kg의 1단형 탄도미사일 샤힌(Shaheen)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하였다. 그 미사일을 ‘해프트 4호(Haft-IV)’라고도 부른다. 칸 박사가 방북하여 핵탄두를 관찰한 시기는 샤힌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1999년 4월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빌 클린 턴(William J. Clinton) 당시 대통령이 서둘러 임명한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 대북정책조정관이 1999년 5월 25일 평양을 방문하고, 같은 해 9월 15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페리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었던 무렵, 칸 박사는 북측의 지하시설에서 핵탄두를 관찰하였던 것이다. 칸 박사의 핵탄두 관찰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논한다.

둘째, 칸 박사의 핵탄두 목격담에 뇌관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재래식 탄두에 들어가는 일반뇌관이 아니라 핵탄두에 들어가는 특수한 폭선뇌관(exploding wire detonator)이다. 칸 박사가 관찰한 북측의 핵탄두는 신관(fuse) 64개를 정밀하게 연결한 폭선뇌관이 들어있는 핵탄두인 것이다. 폭선뇌관은 티타늄 합금으로 만든 견고한 탄두외피 속에 들어있어서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북측은 탄두외피를 일부러 벗겨놓고 칸 박사가 그 속에 있는 폭선뇌관을 자세히 관찰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칸 박사는 가느다란 전선 모양의 신관 64개를 연결한 폭선뇌관이 일반폭약보다 최대 1천 배나 강한 폭발력을 지닌 고속폭발 특수폭약, 저속폭발 특수폭약, 고속폭발 증폭장치에 각각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관찰하였다. 북측의 핵공학 기술자들은 핵탄두 중심부에 중성자 반동방출장치, 중성자 기폭뇌관, 그리고 플루토늄 핏트(pit)가 설치되었음을 칸 박사에게 설명해주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칸 박사가 관찰한 핵탄두 직경이 약 61cm였다는 점이다. 직경 61cm 핵탄두는 미사일에 탑재할 소형 핵탄두이므로, 북측은 1999년에 이미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북측은 그보다 더 진보한 초소형 전술핵탄두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하시설의 눈부신 조명 아래서 각종 고성능 특수폭약과 정밀한 폭발장치들이 조밀하게 결합된 전술핵탄두 세 발이 운반대 위에 주런히 놓여있는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는 순간, 칸 박사는 아마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파키스탄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여 1998년 5월 28일에 핵실험까지 마쳤고, 북측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아 핵무기 운반수단인 미사일도 개발하여 1999년 4월 15일에 미사일 시험발사까지 마쳤건만, 당시에는 핵무기를 소형화하는 기술적 난제를 풀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소형화해야 핵무장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핵무기 설계공학의 마지막 단계에서 직면하는 고난도의 소형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그의 눈앞에 소형 전술핵탄두 세 발이 놓였으니 어찌 전율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북측으로부터 핵무기 소형화에 관한 기술자료를 받아든 칸 박사가 얼마나 기뻐하였는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그들이 덮어버린 충격적인 정보

파키스탄이 북측으로부터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넘겨받은 사실에 대해 칸 박사 자신은 물론 그를 심문한 파키스탄 정부당국도 비밀에 묻어두었다. 칸 박사는 <맥클랫치 뉴스페이퍼즈(McClatchy Newspapers)> 2008년 6월 4일자 대담기사에서 “당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언제 전부 공개할 수 있는가?”는 물음을 받자 “언젠가는 그런 때가 오겠지. 문제 없다(Some day that time will come. No Problem)”고 답변하였다.

북측이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파키스탄에 넘겨주었다는 정보를 듣고 충격을 받은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였다. <뉴욕타임스> 2004년 4월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지 부쉬(George W. Bush) 당시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은 파키스탄 정보기관이 칸 박사를 심문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3-4주 동안 침묵을 지켰고, 백악관 관리들은 그 주제가 “너무 민감하다(too sensitive)”고 하면서 파키스탄 정부당국의 “정보보고서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였다”고 한다. 북측이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파키스탄에게 넘겨준 것에 대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침묵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측이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파키스탄에게 넘겨준 것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충격을 안겨준 까닭은 무엇일까? 만일 북측이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파키스탄에게 넘겨주었다는 정보가 세상에 알려지면, 미국의 반확산정책, 비확산정책, 미사일방어정책은 모조리 무너질 것이다. 파키스탄이 미국의 반확산정책과 비확산정책을 거스르면서 북측의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넘겨받았는데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파키스탄에게 제재를 가하기는커녕 기술이전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까봐 쉬쉬하면서 덮어둘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파키스탄 군부가 우라늄 농축기술을 리비아에 팔아넘기려다가 미국 중앙정보국에게 들켜버린 핵유출 사건의 책임을 칸 박사에게 뒤집어씌워 그를 가택에 장기간 연금하는 것으로 사태를 축소, 수습하도록 막후에서 무샤라프(Pervez Musharraf)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고 사건을 덮어버렸다.

미국의 반확산정책, 비확산정책, 미사일방어정책을 무너뜨릴 ‘지렛대’를 움켜쥔 쪽은 북측이다. 북측이 소형 전술핵탄두를 보유하였음을 전술핵실험으로 세상에 입증하면, 핵무기와 미사일에 관한 미국의 기존정책들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북측이 두 번째로 실시한 전술핵실험은, 북측의 핵무기 공학기술수준과 핵실험 성패여부에 관한 미국 정부의 언급이 정보조작이었음을 반증한 것이다. 북측은 이번에 실시한 전술핵실험에서 제1차 전술핵실험의 초소형 전술핵탄두보다 좀 더 폭발력이 강한 소형 전술핵탄두를 실험함으로써 미국 정부의 정보조작을 차단하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미국 정부는 제2차 핵실험의 성패여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였다.

북측은 자기의 요구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받아들이지 않고 딴청을 피우는 경우, 전술핵실험을 반복하여 전술핵탄두를 보유하였음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반확산정책, 비확산정책, 미사일방어정책을 무너뜨리는 강공책을 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다급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에 속한 하원의원 두 사람은 2009년 5월 6일 연방하원 본회의에서 의사발언을 통해 북측이 미사일에 탑재할 소형 핵탄두를 보유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미국 연방의회에서 그런 식의 발언이 자꾸 나올수록 더욱 곤경에 빠지는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09년 5월 15일자 보도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지금 대북정책 검토를 뒤로 미루고 있다고 논평했지만, 뒤로 미룬 것이 아니라 검토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귀중품’ 거래

2008년 6월 26일 북측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게 제출한 핵신고서에는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량이 적혀있다.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측의 영변 핵시설에서 생산된 플루토늄 총량은 44kg인데, 그 가운데서 30kg은 재처리과정에서 발생한 추출량이고, 8kg은 사용후 핵연료봉에 남아있는 잔재량이고, 6kg은 재처리과정에서 발생한 손실량이라는 것이다.

북측이 영변 핵시설을 가동하면 해마다 무기급 플루토늄 6kg을 생산할 수 있다. 북측이 무기급 플루토늄 2kg을 가지고 초소형 전술핵탄두를 만드는 기술을 가졌으니, 무기급 플루토늄을 연간 6kg씩 생산하는 녕변 핵시설을 가동하면, 4kt급 초소형 전술핵탄두를 해마다 세 발씩 만들어낼 수 있다. 핵신고서에는 2008년까지 생산한 무기급 플루토늄 총량이 30kg이었다고 적혀있으므로, 4kt급 초소형 전술핵탄두 15기를 보유하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미국의 정부관리들과 전문가들은 북측의 무기급 플루토늄 총량이 30kg으로 한정되었으니, 전술핵실험을 계속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칸 박사 심문정보에서 관심을 끄는 문제는,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넘겨받은 파키스탄이 그 대가로 북측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하는 것이다. 파키스탄이 막대한 대금을 현찰로 북측에게 지불하였을까? 파키스탄은 지금도 그렇지만, 1999년에도 대외지불력이 없었다. 파키스탄은 1996년에 외환고갈위기에 빠져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5억 달러의 긴급구제금융을 받고 파산위기를 모면하였는데, 1999년에도 달러화가 여전히 부족하였다. 그래서 파키스탄은 현찰지불방식 대신 현물제공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현물이란 파키스탄이 생산한 고농축 우라늄이다.

1994년 10월 21일 북측은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하고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였으므로,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 플루토늄 재처리가 중단되었다는 말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조건에 있었던 북측에게 무기급 핵물질을 계속해서 확보할 방도가 생겼으니, 그것이 바로 파키스탄으로부터 고농축 우라늄을 받는 것이었다.

북측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이 칸 박사를 강제로 은퇴시켰던 2001년 3월 이전까지 파키스탄으로부터 많은 양의 고농축 우라늄을 받았다. 북측은 자국에 무진장으로 묻혀있는 천연우라늄을 파키스탄에 보내주고, 파키스탄은 그 천연우라늄을 가지고 자국의 우라늄 농축시설에서 생산한 고농축 우라늄을 북측에 보낸 것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품’ 거래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미국 언론인 세이모어 허쉬(Seymour M. Hersh)가 <뉴욕커(The New Yorker)> 2003년 2월 27일자에 쓴 기사에 따르면, 2002년 6월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지 부쉬 당시 대통령과 백악관 고위관리들에게 제출한, ‘극비민감정보(Top Secret Sensitive Compartmented Information)’로 분류된 국가정보평가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는 1997년에 파키스탄이 북측에게 고속 원심분리기를 넘겨주고 우라늄 핵폭탄 제조 및 실험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였고 북측은 2001년에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였다고 썼다는 것이다.

세이모어 허쉬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분석가들은 북측이 파키스탄에게 중거리미사일 제조기술을 넘겨주는 대가로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필요한 몇 가지 핵심설비와 제조기술을 넘겨받았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측이다. 북측은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또 다른 핵시설을 건설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파키스탄의 군용기가 고농축 우라늄을 실어다주면 무기급 핵물질을 확보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미국군 첩보위성의 감시를 피해가며 엄청난 자금과 기술을 들여 새로운 종류의 핵시설을 또 건설하였겠는가.

미국 국방부 산하의 국방정보국(DIA)이 2004년에 발표한 정보보고서는 당시 파키스탄이 핵탄두 35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하였는데, 현재 북측은 그보다 더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북측이 전술핵실험을 얼마든지 더 계속할 수 있음을 뜻한다.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의 피터 헤이즈(Peter Hayes) 사무총장이 2009년 5월 27일 <자유아시아방송>과 전화로 대담하면서 “비교적 가까운 장래에 3차 핵실험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한 것은 무리한 추정이 아니다.

북측의 끝장공세와 연속타격

북측은 전술핵실험과 더불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도 단행할 것이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것이다. 북측은 지금까지 인공위성을 두 차례 발사하였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한 적은 없다. ‘광명성 2호’를 쏘아올리던 날, 미국군 인공위성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을 지구궤도로 쏘아올리는 군사행동을 취하였지만, 그 때 비공개로 쏘아올린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니었다.

남측 “정보담당 핵심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5월 31일자 보도에 따르면, “평양 인근 산음동 병기연구소에서 차량에 태운 장거리미사일 1기가 화물열차 3량으로 옮겨진 뒤 이동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ICBM이 확실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어디선가 차량에 싣고 온 장거리미사일을 미국군 정찰위성이 내려다보는 현장에서 열차에 옮겨 실은 것은, 열차이동식 수직발사대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장착하는 장면을 일부러 보여준 것이다. 북측은 2009년 4월 29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전술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열차이동식 수직발사대를 박차고 날아간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북극해 빙산에 내려꽂히는 놀라운 장면을 ‘구경’하게 되지 않을까?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까닭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유엔안보리가 공모결탁하여 북측의 광명성 2호 발사를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 위반행위라고 제멋대로 규정하고 대북 제재조치까지 강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9년 5월 29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는 “우리의 이번 핵시험은 천추에 용납할 수 없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강도적 행위에 대처하여 우리가 세상에 공개한 데 따라 취한 자위적 조치의 일환”이었다고 지적하고, “예측할 수 없는 금후 사태발전에 대한 책임을 똑바로 가르기 위해 이 시점에서 대결의 현 계선을 명백히 해두고저 한다”고 밝혔다. ‘대결의 현 계선’이라는 말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더 이상의 도발을 해오는 경우 그에 대처한 우리의 더 이상의 자위적 조치가 불가피해 질 것”이라는 뜻이며, 또한 “세계는 이제 곧 우리 군대와 인민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강권과 전횡에 어떻게 끝까지 맞서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켜내는가를 보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명백하게도, 북측은 5.29 담화를 통하여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그 담화는 미국을 겨냥하여 “미국은 입만 벌리면 당근과 채찍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당근은 민주당의 하늘소들이나 먹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마지막 줄에 썼다. ‘당근’이란 외교적 해결을 뜻하고, ‘하늘소’란 미국 민주당의 상징이다. 북측에서는 당나귀를 하늘소라고 부른다. 당나귀가 당근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은 아이들도 안다. ‘당근은 하늘소나 먹어라’는 말은 외교적 해결을 거부하는 차단쐐기를 박은 것이다. 2009년 5월 28일 워싱턴에서 열린 대외관계협의회(CFR) 토론회에 출연한 헤리티지재단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 선임연구원은 이러한 정황을 눈치채고, 지금 북측은 “모든 외교적 수단과 협상을 포기한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북측이 제2차 지하핵실험을 단행하였다는 긴급보고를 받자마자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대통령이 발표한 성명은 북측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노골적으로 반항하는 행동”을 취한다고 비난했지만, 그것은 반항이 아니라 대결이다. 북측의 5.29 담화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편을 드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북측과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양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을 추종하는 일본까지 포함해서 세계 6대 강대국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정면대결을 선포한 것이다. 6자회담이 아니라 6자와의 대결이다. 유엔안보리를 장악하고 국제사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주물러온 5대 핵강국과 일본의 6자 공조에 북측이 단독으로 맞서서 즉각사죄를 요구하는 정면대결을 선포하고 핵과 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행동으로 압박하는 것은 세계정치사를 격동으로 몰아넣었다.

북측의 의도는 분명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연속타격을 가하려는 것이다. 연속타격은 북측이 지난 30여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애써 개발해온, 오늘의 연속타격을 위해 지금껏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비밀병기들을 속속 꺼내놓으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벼랑끝으로 떠미는 것이다. 연속타격을 언제까지 계속하겠는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에 미국과의 오랜 대결을 끝내버리는 끝장공세를 가한다는 점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협상을 제의하면 공세를 멈추고 외교적 해결방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끝장을 볼 때까지 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북측의 요구는 분명하다. 협상이나 보상이 아니라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굴복할 때까지 북측의 끝장공세와 연속타격은 계속될 것이다. 친미언론들이 북측의 ‘전방위 도발’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굴복을 요구하는 끝장공세이며 연속타격이다.

북측이 전술핵실험을 단행한 5월 25일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성명에서 북측의 핵실험을 “심각한 근심거리(a matter of grave concern)”라고 지적하였다. <연합뉴스> 2009년 5월 29일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정부관리가 “현재의 상황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며, 더 심각하고, 더 두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였다. 제임스 존스(James Logan Jonse, Jr.)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09년 5월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강연에서 북측이 핵실험을 단행한 “첫날부터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수준에서 진심어린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비상대책 논의로 분주해진 백악관 내부사정을 슬쩍 내비쳤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유엔안보리가 공모결탁하여 대북 제재결의안을 발표하는 것도 이젠 그들에게 화를 키우는 꼴이 되었고, 그들의 손으로 파탄을 자초한 6자회담에 북측이 복귀해야 한다느니 또는 북측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되풀이하는 것도 이젠 그들 자신이 듣기에도 지겨울 것이다. 그들에게 남아있는 선택은 하나뿐이다. 마지막 선택은, 올해 안에 베이징을 공식방문하기로 예정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해법을 찾는 것이다. (2009년 6월 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