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을 일으킬 거대한 잠재력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정치세력관계를 바꿀 수 있을까?

정권교체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정치세력관계의 변동이 대통령선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 선거결과에 따라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이고 반통일적인 역행이 혼란과 파국을 몰고 오는 요즈음에는, 정권교체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정치정세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실현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래의 정치정세 변화들 가운데서 특히 남측의 정권교체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남측의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실현을 앞당기기도 하고 가로막기도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남측의 정권교체로 민주주의의 존폐여부가 결정되고, 남측의 정권교체로 평화통일의 실현여부가 결정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측의 정권교체를 한반도 정세변화의 중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정치세력관계를 바꿔야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결적인 문제는 정치세력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정치세력관계가 형성된 곳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각당각파가 뒤엉켜 끊임없이 혼전을 벌이는 정치권이다. 정치세력관계의 변동이 시시각각 일어나는 적나라한 현실정치의 장(場)을 일반적으로 정치권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정치세력관계의 변동이란 정치권의 변동을 뜻한다. 정치권을 바꿔야 정권을 바꿀 수 있으며, 정권을 바꿔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실현할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각당각파의 끝없는 혼전에 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부패한 정치인들이 저지르는 권력형 부정비리가 터져나와 충격과 환멸을 주는 판국에, 그러한 혼전과 부패의 온상을 누가 무슨 수로 바꾼다는 말일까? 정치권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꺼내면, 웬 잠꼬대 같은 소리냐 하는 핀잔이나 들을 형편이 아닌가.

그렇지만 이론적으로 따진다면, 혼전과 부패로 얼룩진 정치권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혁명이 일어나 강제로 의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정부조직을 해체하면 정치권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 각국에 다 있는 좌파정당이 출현하는 것마저 ‘국가보안법’으로 금압할 뿐 아니라, 집회와 시위의 초보적 권리까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로 억누르는, 지구 위에서 가장 우경적인 이 사회에서 갑자기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혁명의 가능성은 좌파적 상상력 안에서 하나의 정치적 신념으로 존재하지만, 이 글에서 논하려는 것은 좌파적 상상력이 아니다.

이 땅의 현실정치에서 통용되는 논리에 따르면, 정치권에서 이러저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길은 선거밖에 없다는 것이다. 합법적 절차에 따라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각종 선거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 60년 동안 계속되었다. 60년 동안의 선거경험을 결산하면, 총선과 대선으로 정치권이 바뀐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정치권의 변동이 총선판도와 대선판도를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은 내부변동을 겪은 정치권이 자기의 변신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화려한 외출’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물론 선거를 통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정치권의 변동이란 정치세력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 각당각파가 벌이는 합종연횡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지구 위에서 가장 우경적인 이 사회에서 선거로 정치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말은 현실정치가 얼마나 견고하게 고착되어 있는지를 모르고 내뱉는 허망한 실언으로 들린다.

혁명은 좌파적 상상력 안에 존재할 뿐이고, 선거로는 현실정치를 바꿀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 땅의 정치현실이 놓여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근본적 변화를 좌파적 상상력의 시나리오에 대입시키는 것도 비현실적이고, 선거로 정치권을 바꿀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1960년 4월, 정권교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다

역사적 경험을 논하면, 1960년에 일어난 4.19 혁명이 좌파적 상상력에 가장 근접한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는 혁명이나 항쟁 같은 좌파적 용어는 모두 삭제한 채 그냥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이라고 모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을 불의에 대한 항거라고 모호하게 인식하지 말고 항쟁에 의한 정권퇴진이라고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권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4.19 혁명의 의의를 다시 검토하면, 이 땅의 정치사가 항쟁에 의한 정권퇴진을 이미 49년 전에 경험하였음을 알 수 있다.

4.19 혁명에 관한 역사자료를 읽어보면, 항쟁 폭발→정권 퇴진→과도정부 수립→헌법 개정→총선거 실시→새로운 공화국 출범으로 불과 몇 달 동안에 숨가쁘게 이어진 일련의 정권교체과정이 돋보인다.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항쟁이 폭발하여 무정부상태에 빠진 1960년 4월 26일 여야 국회의원 18명이 외무장관 허정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를 세우기로 결정하였고, 여야 국회의원 9명으로 구성된 ‘개헌안 기초위원회’가 5월 11일 국회에 내각제 개헌안을 제출하였고, 국회는 6월 15일 내각제 개헌안을 의결하였고, 같은 날 허정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새 헌법을 공포하였으며, 7월 29일 새 헌법에 의거하여 총선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항쟁이 정권을 퇴진시킨 혁명적 상황이 전개되었을 뿐 아니라 정권퇴진 이후에 선거를 실시하여 정권을 교체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출범시켰다는 점에서, 4.19 혁명은 정권퇴진과 선거실시가 상호결합된 역사적 경험이었다.

그러나 좀 더 분석적으로 고찰하면, 이승만 정권이 전면퇴진한 뒤에 새로운 정권을 세운 것이 아니라, 정권퇴진을 이승만의 하야로 대체한 뒤에, 이승만 정권의 잔여세력이 과도정부를 세운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불철저한 정권퇴진에서 불완전한 정권교체로 이어진 과정이었다. 불철저한 정권퇴진 이후에 선거를 실시하였으므로, 전면적으로 퇴진하지 않은 낡은 정권의 잔여세력이 선거를 통해 정치권에 다시 진출하여 반민주적 역행을 일삼았다. 이를테면, 과도정부 시기의 국회는 1960년 6월 10일 새로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7월 1일에는 ‘집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등의 반민주적 역행을 노골적으로 벌였다.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역행이 1960년 이승만 정권이 불철저하게 퇴진한 직후에도 있었던 것이다.

역사가들이 4.19 혁명을 ‘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불철저한 정권퇴진 이후의 반민주적 역행이 그 혁명의 의의를 앗아갔기 때문이다. 혁명적 상황을 불러온 거대한 항쟁이 이승만 정권을 퇴진시켰지만,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낡은 정권의 잔여세력이 정치권에 남아 반민주적 역행을 벌였던 것이다. 1961년 5월 16일 새벽에 서울을 점령하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은 4.19 혁명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반민주적 역행의 절정이었다.

비록 4.19 혁명이 불철저한 정권퇴진에서 불완전한 정권교체로 이어졌고, 이듬해에 5.16 군사정변으로 좌절하였지만, 정권교체의 교훈을 남겼다는 점에서 ‘미완의 혁명’은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전선형성과 선거실시를 상호결합시켜 정권을 교체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4.19 혁명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중도좌파정당인 진보당이 1958년 1월 13일 이승만 정권의 집중탄압으로 강제해산당하지 않고 1960년 4월까지 정치권에 존재하고 있었고, 각계층 근로대중이 결집한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더라면, 진보당과 민주당의 정치연대로 ‘반이승만 전선’이 결정적으로 강화되었을 것이고, 그 강화된 전선에서 항쟁이 일어났더라면 철저한 정권퇴진에서 완전한 정권교체로 나아갔을 것이다.

전선역량이 없으면 항쟁이 폭발하여 정권을 퇴진시키고서도 정권교체에 실패하기 마련이지만, 전선역량이 있으면 정권을 퇴진시킬 만큼 거대한 항쟁이 일어나지는 않아도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전선형성과 선거실시를 상호결합시킨 정권교체의 새로운 가능성은 2012년 대선의 전략적 대안으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진보적 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이 전선전략에 대한 인식을 심화하기까지 이 땅의 역사는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의 민주항쟁, 1995년 11월의 민주노조 건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중도우파정당의 연속집권, 2000년 1월의 진보정당 창당과 2003년 4월의 진보정당 원내진출, 2007년 12월의 우파정당 대선승리와 2008년 5월의 촛불항쟁 등을 거치는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진보의 힘’을 키워왔다. 전선형성과 선거실시를 상호결합시킨 정권교체의 새로운 가능성은, 4.19 혁명 이후 반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축적해온 ‘진보의 힘’을 2012년의 대선에서 발산할 전략적 대안이 아닌가.

반전(反轉)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2009년 3월 10일 남측에서 한 여론조사업체가 실시한 정당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우파정당(한나라당, 친박연대,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 지지율은 42.1%, 중도우파정당(민주당) 지지율은 14.3%, 중도좌파정당(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지지율은 6.4%, 부동층(浮動層)은 36.3%로 나타났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헤럴드경제〉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실시한, 2010년 지방선거에서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을 교체하는 경우 지지할 후보의 정당을 물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파정당 지지율은 27.8%, 중도우파정당 지지율은 14.2%, 중도좌파정당 지지율은 3.7%, 부동층은 54.3%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5월 1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파정당 지지율은 38.7%, 중도우파정당 지지율은 15.7%, 중도좌파정당 지지율은 9.0%, 부동층은 36.6%로 나타났다. 최근 몇 차례 실시된 여론조사결과에서 엿보이는 의미를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우파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고 부동층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파정당에 등을 돌린 사람들이 부동층으로 옮겨갔다는 뜻이다. 우파정당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이 대안정당을 찾지 못하고 부동층을 형성한 비율은 조사에 따라 편차를 보이지만, 그 가운데서 최대값이 자그마치 54.3%에 이른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정치적으로 연대한다고 해도, 중도양당에 대한 지지율의 합계는 조사시기별로 20.7%, 17.9%, 24.7%로 나왔다. 그에 비해, 우파정당들에 대한 지지율의 합계는 조사시기별로 42.1%, 27.8%, 38.7%로 나왔다. 이것은 중도양당의 2012년 대선패배를 예고하는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 실시되는 2012년까지 앞으로 3년 남짓한 기간에 우파정당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정치권에서 중도정당들의 반전이 가능할까? 중도양당이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도 힘들지만, 정치연대에 성공한다고 해도 반전은 거의 불가능하게 보인다. 몇 가지 객관적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경향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때로부터 12개월 뒤에 <경향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이 42.2%로, 비판율이 13.0%로 나왔었는데,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때로부터 15개월이 지난 요즈음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이 37.4%로, 비판율이 45.4%로 나왔다. 5월 19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이 26.7%, 비판율이 61.2%로 나왔다.

정권 지지율이 경향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은 지난 노무현 정권보다 오늘의 이명박 정권이 훨씬 더 심하다. 이것은 이명박 정권이 임기 중반을 넘어가면 사상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게 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한겨레>가 2009년 2월 21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금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57.9%가 지지하지 않겠다고 응답하였고, 28.9%만이 지지하겠다고 응답하였다. 또한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투표하였다고 밝힌 응답자 중에서 계속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한 응답자는 48.7%였고, 지지를 철회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응답자는 33.4%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율의 자유낙하현상은, 2012년에 정권을 교체하기 바라는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에게 유리한 조건을 안겨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명박 정권에 대해 철회한 지지가 중도좌파정당이나 중도우파정당으로 옮겨가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도우파정당인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호남지역과 수도권에 몰려있는데, <시사IN> 제57호(2008년 10월 14일)가 보도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호남지역에서 51.6%, 서울에서 11.9%로 저조하다.

반이명박 정서가 야당지지로 전환되지 않고 부동층으로 대량 흡입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고민이 커져간다.

둘째, 차기 대선후보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선호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9년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헤럴드경제>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실시한, 개별정치인의 영향력을 평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32.6%를 얻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였다. 그 뒤로 한참 쳐져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9.0%로 2위,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8.2%로 3위, 오세훈 서울시장이 6.8%로 4위, 정동영 의원이 5.8%로 5위,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5.0%로 6위,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4.0%로 7위를 각각 차지하였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2009년 5월 19일에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를 물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41.1%, 정동영 12.3%, 이회창 7.0%, 손학규 6.6%, 정몽준 5.6%, 오세훈 4.6%, 김문수 3.0%, 정세균 2.0%로 나타났다.

차기 대선주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보면, 우파정치인들에 대한 선호도가 월등히 높은 것에 비해, 중도우파정치인들에 대한 선호도는 ‘초라한 성적표’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중도좌파정당의 정치인들은 아예 ‘기타 항목’에 흡수되어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차기 대선주자로 등장할 우파정치인들 가운데서도 특히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 대한 압도적인 선호도가 눈길을 끈다.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월간 <말> 2008년 11월호 기사에 따르면, 그 관계자는 “선거공학적으로 보자. 영남 인구가 많다. 영남이 MB에 등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가 있지 않나. MB지지도는 떨어져도 박근혜라는 대안이 있는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당이나 야당에 대해 모두 등을 돌린 부동층은 특정정당이 아니라 특정인물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쏟아낼 위험성을 지닌다. 특히 파산위기에 내몰린 도시중산층의 불안심리는 정치권에 대한 자기들의 불신과 환멸을 극적으로 보상해줄 대중영합주의(populism)에 빠질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의 영화배우이자 자선사업가로서 대통령 부인이었던 에바 페론(Maria Eva Duarte Peron)이 생전에 ‘페론주의 우상’으로 출현하여 대중영합주의의 광기로 도시중산층을 사로잡았던 역사적 경험을 상기할 수 있다. 1951년 8월 22일 아르헨티나 수도에 운집한 200만 명의 군중은 에바 페론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국난극복’을 위해 대선에 출마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당시 에바 페론은 폐암이 극도로 악화되었던 터라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고 결국 1952년 7월 26일 서른 세 살을 일기로 사망하였지만, 정치사가들은 대중영합주의의 광기에 감염된 페론주의를 “라틴 아메리카적 특색을 지닌 파시즘의 한 형태”로 규정하였다.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재집권하려고 벼르는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비록 지금은 당권파로부터 날카로운 견제를 받는 당내 비주류의 수장이지만 대중적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인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그를 대선후보로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정치권에 불신과 환멸을 느끼고 등을 돌린 부동층의 심리를 자극하여 대중영합주의의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한국형 페론주의 선거전술’이 등장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는 부동층의 실체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이명박 정권에게 등을 돌렸으나 대안정당을 찾지 못한 부동층의 향배가 정권교체문제를 결정할 것이다. 각종 통계자료에서 나타난 것처럼, 부동층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우파여당 지지층도 줄어들고, 동시에 중도우파야당 지지층도 줄어드는 동반감소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행정권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 그리고 무능야당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이 중첩되면서 일어난 부동층의 폭발적 증가, 바로 이것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예측하기 힘든 결과를 안겨줄 요인으로 될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부동층은 더 확대될 것이고,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은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는 부동층으로부터 의미 있는 지지를 끌어내는 정당이 승리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012년의 전략구상을 부동층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개하려면 우선 부동층의 실체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이 논할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들이 조사과정에서 계급계층적 분석을 하지 않아서, 부동층이 구체적으로 어느 계급계층에 속하였는지를 판독할 수 없으나, 서비스업 근로대중이 부동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7년 현재 남측의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에서 차지하는 구성비율은 서비스업 57.6%, 제조업 39.4%, 농업 3.0%이며, 직종별 노동인구비율은 서비스업 75.2%, 제조업 17.3%, 농업 7.5%다. 생산구성에서나 노동인구분포에서 서비스업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층의 폭발적 증가세는 서비스업 근로대중이 부동층으로 계속 이동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서비스업의 발달이란 농촌해체와 농업위축을 전제로 하는 급속한 사회변동, 곧 산업화와 도시화를 뜻한다. 산업화가 진척될수록 제조업과 농업은 줄어들고, 근로대중은 서비스업에 집중된다. 서비스업에 속한 다양한 업종을 손꼽아보면,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오락문화업, 관광업, 부동산업, 정보통신업, 금융보험업, 출판인쇄업, 무역업, 운수업, 창고업, 교육서비스업, 의료보건업, 자동차수리업, 전기, 수도 가스공급업 등이다. 이처럼 다양한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근로대중은 노동자와 자영업자로 구성된다. 종업원을 고용하지 않거나 소수의 종업원을 고용한 서비스업 근로대중을 자영업자라 한다.

서비스업의 발달로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도 있다. 관리직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전문직 노동자가 그들이다. 이들은 고용관계에 놓여 있는 임금노동자이지만,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관리직 노동자는 기업간부로 자칭하면서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사무직 노동자는,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나 중소기업 사무직 노동자나 막론하고 회사원으로 자칭하면서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언론계, 문화예술계, 교육계, 지식정보계, 의료계, 종교계 등에 속한 전문직 노동자들은 전문직 종사자로 자칭하면서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간부, 회사원, 전문직 종사자는 사실상 도시중산층에 속한다.

서비스업 근로대중에 포괄되는 노동자, 자영업자, 기업간부, 회사원, 전문직 종사자들이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는 부동층의 실체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은 어느 정당이 그들로부터 얼마만큼 지지를 회복하느냐 하는 문제에 의해서 승패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거대한 잠재력은 그들에게 있다

경제파탄의 충격파를 가장 심하게 받는 사회구성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고용불안과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며 하루벌이로 연명하는 일용직 노동자와 임시직 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2008년 3월 현재 통계청이 축소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563만8천 명이지만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869만 명으로 추산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에 비해 평균 60.5% 수준의 저임금을 받는 869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속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해 반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869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이명박 정서’야말로 ‘반이명박 전선’을 형성할 거대한 잠재력이 아닌가!

다른 한편, 경제파탄이 장기화되면서 도시중산층이 파산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도시중산층 가운데 일부가 신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08년 2월 24일에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가 해마다 평균 18만5천 개씩 줄어들었는데, 특히 “중간직종의 고용창출이 크게 저하되었다”고 한다. 이 중간직종이 도시중산층의 직종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결과를 분석하여 2009년 4월 22일에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중산층 비중이 2005년에는 57.5%였는데, 2008년에는 49.9%로 떨어졌다고 한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이 2009년 2월 13일에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8년 11월 이후 두 달 동안에 자영업자 42만 명이 도산 또는 폐업하였고 2009년 1월 현재 자영업자는 558만7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 영세자영업자가 412만 명을 차지하는데, 종업원을 고용하지 않은 영세자영업자(서민)가 종업원을 고용한 중소자영업자(도시중산층)보다 더 빠르게 몰락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 2008년 12월 1일자 보도에 따르면, 한달 수익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영세자영업자가 전체 자영업자 중에 62%를 차지한다고 한다.

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412만 명의 영세자영업자들과 파산위기에 내몰린 146만 명의 도시중산층, 바로 그들 속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해 반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이명박 전선’에 합류할 거대한 잠재력은, 869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412만 명의 영세자영업자들과 146만 명의 도시중산층에게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전선형성의 범위에 각계층 근로대중 이외에 도시중산층까지 포함시키는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파산위기에 내몰린 146만 명의 도시중산층을 배제하고 폭넓은 전선을 형성하겠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다. 각계층 근로대중 전체가 전선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도시중산층의 참가는 절실해진다. 근로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도좌파정당이 폭넓은 전선을 형성하기 위해서 도시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도우파정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여야 할 필요성은 사회계급관계의 현실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강력하게 작용할 요인들은 우파집권당을 위한 부유층의 정치자금 동원, 우파집권당에 대한 우파언론의 배타적인 지지,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국의 개입공작 등이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거기에 맞설 수 있는 대응력은 오직 전선에서 나올 것이다. 그 두 당이 정치적으로 연대하면, 전선의 돌파력으로 불리한 정세를 뚫고 반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전선전략은 반전전략(反轉戰略)이다. 각계층 근로대중이 결집한 전선을 형성하고 도시중산층까지 그 전선에 동참할 때 전선의 승리가 보이게 된다.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는 부동층 속에 잠재된 거대한 힘을 반전전략으로 불러일으키는 것은 오직 전선에서만 가능하다.

중도좌파정당과 사회단체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노동자 총파업으로 전선형성의 시동이 걸리고, 농민, 서민, 도시중산층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그 전선에 참가하고, 중도우파정당이 대세의 흐름을 따라 그 전선에 합류하면,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투쟁이 반전을 시작할 것이다. 각당각파 각계각층의 폭넓은 전선은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전선은 공동집권전략을 현실화할 것이고 중도연립정권을 세움으로써 우파정권을 대체할 것이다.

전선에 의거한 공동집권전략은, 당선 가능한 중도우파정당 대선후보에게 중도좌파정당 지지층의 표를 몰아주어 사표를 방지하거나 중도양당이 후보단일화를 실현하자는 식의 선거전술이 아니다. 전선에 의거한 중도연립정권 수립론은, 중도좌파정당의 대선후보가 보나마나 낙선할 것이므로 당선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도우파정당 대선후보를 지지해주자는 식의 비판적 지지론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각계층 근로대중과 도시중산층이 참가하는 전선을 형성하여 투쟁하지 않으면서 나눠먹기 식으로 연립정권을 세우자는 권력분점론이 아니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노동자 총파업으로 형성된 ‘반이명박 전선’에 참가하여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공동투쟁을 벌이고, 대안정당을 찾지 못해 부동층으로 나앉은 각계층 근로대중과 도시중산층에게 ‘반이명박 전선’의 투쟁열기를 공급하여 그들의 마음을 지지와 동조로 돌려세우고, 중도양당이 합의한 공동집권전략에 따라 대선에서 승리하여 중도연립정권을 세우려는 것이 이 글에서 말하는 전선전략이다. 지금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게 보이는 반전을 가능하게 만들려면, 중도양당이 전선에 의거하여 반전을 일으키고 중도연정을 세우는 정권교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탈고하기 직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서거 비보를 들었다.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적 표적수사와 우파언론의 집중압박을 견디지 못한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죽음이라는 점에서 너무도 충격적이다. 삼가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죽음으로 충격과 격분을 느낀 그의 지지층과 민주당은 물론이고 그의 정치적 죽음을 슬퍼하는 수많은 근로대중은 이명박 정권에게 원한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들이 느끼는 원한과 분노의 폭발력이 얼마나 강할지는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각당각파 각계각층의 ‘반이명박 전선’에 투쟁열기를 공급하는 또 하나의 불길이 타오를 것이다. (2009년 5월 25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