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을 위한 전략구상, 전선형성과 연정수립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온건에서 강경으로 선회하는 흐름

2009년 5월 16일 충청남도 대전광역시에서 ‘고 박종태 열사 투쟁승리, 5.18 정신계승, 노동기본권쟁취 전국노동자.민중대회’가 1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대회에서는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 산하 광주지부 박종태 지회장이 화물운수 노동자들의 초보적 권리마저 짓밟는 기업주의 횡포에 저항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투쟁유언에 따라 화물연대가 곧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선포하였고, 민주노총은 오는 6월로 예정한 총파업 일정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하였다. 또 한 사람 열사의 희생으로 노동자 총파업이 점화된 것이다.

그보다 하루 앞서 5월 15일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렸는데, 비주류에 속한 이강래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정치평론가들은 민주당의 새로운 원내대표 선출을 논평하면서 민주당이 새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로 ‘선명야당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노동자 총파업 결의와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겉만 훑어보면 연관성이 보이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눈에 보이지 않은 흐름이 그 양자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물론 민주노조와 중도우파정당이 상호교감하지는 않지만, 양자가 온건에서 강경으로 선회하는 공통점을 드러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역행이 민주노조와 중도우파정당을 온건에서 강경으로 선회하도록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시야를 넓히면, 온건에서 강경으로 선회하는 흐름이 사회 곳곳에서 보인다. 이명박 정권에게 생존권을 짓밟힌 노동자, 농민, 서민과 그 정권의 경제정책실패로 등을 돌린 도시중산층 일부가 그 흐름에 동조하거나 합류하고 있으며, 그 정권에 맞서 싸우는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그 흐름을 확산시키고 있다.

5월 15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민중대회’는 이명박 정권에 맞서는 저항력이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서 어떻게 살아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보도에 따르면, 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경찰의 폭력진압을 무릅쓰고 격렬하게 투쟁하였으며, 현장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457명이 검거되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과 그 정권의 대변자로 나선 우파언론들은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물류대란’을 일으킬 것이니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상투적인 어법으로 으름장을 놓았고, 민주노총이 예정한 6월 총파업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경제대란’에 빠뜨릴 위험이 있으니 더욱 엄히 진압해야 한다는 식으로 공갈하였다. 그러나 노동자 총파업을 ‘대란’으로 비방하는 것은, 광주민중항쟁이나 6월 민주항쟁을 ‘폭력난동’으로 비방하는 것처럼 망발이다. 특권-부유층은 수십억대의 비자금을 주고받으며 ‘뇌물천하’를 주름잡는데, 생존을 위협받는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서는 것은 너무도 정당한 일이 아닌가. 노동자 총파업을 ‘대란’으로 비방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발전계기로 인정하여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선진국이라고 우러러보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유럽연합 나라들의 최근 정세를 보면, 우파정권이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고 민주주의에 역행하려는 경우에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권리를 지키고 반민주적 역행을 막아내는 전국적 총파업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땅에서 우파정당이 집권하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만, 유럽연합 나라들에서는 우파정당이 집권해도 그러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까닭은, 노동자 총파업이 우파정권의 반민주적 역행을 강하게 저지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총파업이 우파정권의 반민주적 역행을 저지하는 사회에서는 총파업에 대해 누가 감히 ‘대란’이라는 망발을 입밖에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예컨대 병원치료비가 없는 무상의료제도, 대학등록금이 없는 무상교육제도, 직장에서 쫓겨난 실업자에게 정상생활이 보장되는 실업수당제도 같은 유럽연합 나라들의 민주주의 존립기반은 원래 노동자 총파업으로 쟁취한 것이었고, 지금도 노동자 총파업이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 나라들의 경우, 노동자 총파업은 민주노조운동을 정치화(politicization)하고, 좌파정당과 중도좌파정당은 노동자 총파업을 지지하고 동참함으로써 자기의 정강정책을 대중화(popularization)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유럽연합 나라들에서 수십만 명 노동자가 총궐기하여 진압경찰과 충돌하는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전국총파업은 진보정치와 대중역량의 완벽한 합성물을 만들어내는 민주주의의 ‘거대한 용광로’인 것이다. 노동자 총파업이 민주주의의 ‘거대한 용광로’에서 만들어내는 진보정치와 대중역량의 합성물을 ‘전선’이라 한다. 연대전선, 공동전선, 통일전선 같은 전문용어들은 진보정치와 대중역량의 완벽한 합성물을 가리키는 동의어다. 이 글에서는 통틀어 전선이라 부른다.

분명하게 따져물을 필요가 있다. 이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일으켜도 유럽연합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전국총파업처럼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경우는 없고, 저항으로 끝나고 만다. 더욱이 좌파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이 사회에서 중도좌파정당이 홀로 노동자 총파업을 지지하고 동참할 수밖에 없는데,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중도좌파정당의 정치역량은 너무 미약하다. 그에 반하여, 노동자 총파업에 대한 우파정권의 집중탄압과 우파언론의 비방공세는 너무 압도적이다. 이 사회에서는 진보정당과 민주노조가 노동자 총파업을 통해서 자기역량을 동반적으로 강화하지 못하고, 정체의 순환과 탄압의 반복을 겪고 있는 것이다.

괴리를 넘어서 전선으로

괴리가 있다는 말은,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 사이에 넓고 깊은 괴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 땅에 형성된 사회계급관계를 보면 노동자, 농민, 서민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정치세력관계를 보면 극소수 특권-부유층이 권력과 재부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를 갈라놓은 괴리현상 때문에 이 땅의 정치세력관계에는 사회계급관계가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으며 매우 심하게 굴절되어 반영된다. 정치현실과 계급관계가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일어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러한 괴리현상을 극복하지 못한 주된 원인은 ‘주인’에게 있다. 민주주의의 ‘주인’인 노동자, 농민, 서민이 자기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을 내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빈부격차, 사회적 양극화, 생존권 박탈, 경제파탄, 사회적 불안정, 고위관리의 부정부패, 정권의 대미굴종, 그리고 그러한 모순덩어리에서 끊임없이 파생되는 사회구성원 각 개인들의 불행과 고통은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의 괴리에 발생원인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괴리는 노동자, 농민, 서민과 극소수 특권-부유층 사이의 대립관계를 격화시킨다. 이 사회에서 사회계급관계의 모순과 정치세력관계의 대립이 격화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위에서 지적한, 온건에서 강경으로 선회하는 흐름은 그러한 격화상태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농민, 서민은 민주주의의 ‘주인’인 자기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권력과 재부를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해결방도는 ‘정치’에 있다. 정치는 권력과 재부를 분배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유일한 영역이다. 권력과 재부에 대한 분배권, 통제권, 관리권의 총체를 정권이라 한다. 정치라는 말과 정권이라는 말이 사실상 같은 뜻으로 쓰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하여 일하는 정당이 집권하여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권력과 재부를 정당하게 분배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정권을 내올 때, 오직 그렇게 할 때만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는 말 잘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말 못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은 돈벌이나 열중하면 된다는 식의 정치적 무관심이나 정치적 무책임은 민주주의의 ‘주인’이 주인의 지위와 권리를 스스로 내던지는 자포자기의 함정이다. 우파정권이 노동자, 농민, 서민의 이익을 박탈하거나 침해하는데도, 우파정권에게 잘못은 많지만 그래도 민주주의가 이만큼 실현되지 않았느냐는 식의 정치적 착각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정치적 무관심, 정치적 무책임, 정치적 착각을 털어버린 노동자, 농민, 서민이 상호연대하여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는 투쟁에 나서게 되는데, 그 투쟁이 전개되는 전략거점이 전선이다. 물론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당인 중도좌파정당은 그 전선의 중심에 위치한다. 노동자, 농민, 서민이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는 길은 전선형성이다. 전선만이 그들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다.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면 중도좌파정당이 건설되어도 소수야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며, 각종 선거에 노동자, 농민, 서민이 유권자로 참가하여 각자 ‘소중한 한 표’를 던져도 그들의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수 십년 동안 각종 선거에 참가해온 결과가 말해주고 있지 아니한가!

세계노동절 119주년을 맞은 2009년 5월 1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4만여 명의 군중이 참가한 가운데 500여 개 사회단체들이 합동으로 개최한 ‘5.1 노동절 대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사회연대운동을 제안하고 10대 요구안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전선을 형성하려는 요구가 노동자, 농민, 서민 속에서 높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폭우형 전선인가, 장마형 전선인가

논의를 더 진전시키면, 전선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과제가 나선다. 그 과제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이, 투쟁으로, 투쟁에 의해서, 투쟁 속에서 전선이 형성된다고 답할 수 있다. 투쟁이 없는 데도 전선이 형성된다는 말은 궤변이다.

그런데 전선과 투쟁은 그처럼 떼어놓을 수 없는 결합관계에 놓여있지만, 덮어놓고 모든 투쟁이 전선을 형성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투쟁의 형식과 내용이 다종다양한데, 과연 어떤 투쟁을 벌여야 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다뤄야 논점이 명료해질 수 있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산발적인 저항만으로는 전선을 형성할 수 없으며, ‘노동계의 맥없는 총파업’으로도 전선을 형성하지 못한다.

현 단계의 전선개념을 1987년 민주항쟁 같은 대규모 항쟁이 일어나는 전선이라고만 이해하면,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예컨대, 하늘에 비구름대가 형성되면 번개와 돌풍을 동반한 집중폭우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고, 광범위한 지역에 오랫동안 많은 비가 내리는 장마가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전선이 형성되는 이치도 그와 마찬가지다. 1987년 민주항쟁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대규모 항쟁이 폭발하는 폭우형 전선이 형성될 수도 있고, 2008년 촛불항쟁이 예고한 것처럼 대치선을 그어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장마형 전선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면 오늘 이 땅에는 폭우형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을까 아니면 장마형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을까? 폭우형 전선이 형성되면 이명박 정권이 퇴진하여 2012년 대선이 앞당겨질 것이고, 장마형 전선이 형성되면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투쟁이 벌어져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 폭우형 전선인가 아니면 장마형 전선인가 하는 문제는, 현 시기 조성된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에 얽혀있는 매우 복잡한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노동자 총파업의 전개양상, 농민과 서민의 동참 수준, 도시중산층의 향배, 그리고 노동자 총파업에 대한 중도좌파정당의 결합능력과 중도우파정당의 대응행동, 이명박 정권의 탄압강도와 미국의 비밀공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 폭우형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그 대신,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저항운동이 확대되면서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총결집하여 이명박 정권과 대치선을 긋고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는 장마형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수십만 명이 참가할 정도로 위력적이지는 못하지만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노동자, 농민, 서민의 산발적인 저항에서 뿜어져나오는 동력이 장마형 전선에 계속 공급되면서 투쟁국면을 날카롭게 벼려주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장마형 전선이 형성되어야 중도좌파정당이 자기의 투쟁력을 원내외에서 발휘할 수 있으며, 우파정당에게 정권을 내주고 기가 꺾인 중도우파정당이 자기의 지지기반를 복구할 수 있다.

‘반이명박 전선’을 요구하는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은, 지난 해 초여름 장마형 전선으로 상승발전되지 못한채 대량검거로 막을 내린 자연발생적인 촛불항쟁에서 교훈을 찾고, 장마형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전술을 검토하고 조직적 준비태세를 갖출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전선은 투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항은 투쟁으로 끝나지만, 전선은 투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항과 다르게, 전선은 집권을 지향하며, 결국 집권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저항과 집권은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지만, 전선과 집권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이 산발적인 저항만 계속해서는 그들의 정당이 집권할 수 없지만, 전선을 형성하면 그들의 정당이 집권할 수 있다. 저항의 범위를 넘지 못하는 협소한 시야를 가진 사람은 전선을 저항의 결집상태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명백하게도 전선은 집권전략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 농민, 서민이 상호연대하여 전선을 형성한다는 기본명제만 가지고서는 ‘반이명박 전선’을 형성하는 당면과제를 해명할 수 없다. 그 당명과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현재 이 땅에 조성된 정치세력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글에서 정치세력관계를 분석하는 범위를 한반도 전역으로 넓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치세력관계의 분석범위를 한반도 전역으로 넓혀야 총체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내올 수 있는데, 한미관계, 북미관계, 남북관계에 대한 분석까지 이 글에 담아내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이다. 한미관계에서 대미굴종의 악화, 북미관계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결, 남북관계에서 전면적 단절과 대치상태의 격화는 이 땅의 정치세력관계를 좌우하는 중대한 요인들인데, 이 글에서는 정치세력관계라는 개념을 남측 내부로 한정한다.

주목하는 것은, 이 땅에서 중도좌파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은 얼마 되지 않고, 중도우파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 훨씬 더 많고, 우파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 가장 많다는 사실이다. 〈한겨레 21〉이 2009년 1월 31일과 2월 6-7일에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의 ‘선진화’와 ‘경제성장담론’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 중도좌파정당의 민주주의와 진보담론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이명박 정권에게 생존권을 짓밟힌 피해자들이 역설적으로 그 정권을 지지해주고 있음을 말해준다. 민생파탄이 전례없이 심해지는데도, 민생파탄의 피해자가 민생파탄의 가해자를 지지해주는 이상현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노동자, 농민, 서민을 포괄하는 이른바 저소득층(low-income strata)이 민주주의와 진보담론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갖지 못한 저정보유권자(low-information voters)와 일치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무시하면 ‘반이명박 전선’에 관한 논의는 공리공론으로 전락한다.

위와 같은 이상현상이 일어나는 현실에서, 전선의 참가범위를 중도좌파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으로 좁혀놓으면 집권가능성이 전무한 ‘폭좁은 좌파연대’ 이상으로 되지 않는다. 중도우파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까지 참가하는 범위로 전선의 폭을 확장할 때, 중도우파정당에게 기대와 미련을 가지고 시류변화에 따라 동요하는 도시중산층까지 동조 범위로 끌어들이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해야 이명박 정권에 맞서는 강고한 전선이 형성되는 것이다.

전선담론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도좌파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과 중도우파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 함께 참가할 뿐 아니라, 중도우파정당에 기대와 미련을 가지고 시류변화에 따라 동요하던 도시중산층까지 동조에로 견인하는 폭넓은 전선을 형성한다는 말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정치적으로 연대하여 공동집권을 추진한다는 뜻이다. 명백하게도, 전선의 공동투쟁은 정당의 공동집권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만일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전선을 형성하고 상호연대하다가 2012년에 가서 막상 집권기회가 오면 연대원칙을 저버리고 각자 독자집권을 추진한다면, 그것을 전선형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전선의 의의를 공동투쟁전술이 아니라 공동집권전략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상대를 이용하다가,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갈라서는 것은 정치야합이지 전선이 아니다.

전선은 공동투쟁만이 아니라 공동집권까지 나아가는 것이며, 이 땅에서 전선에 의거한 공동집권은 중도연립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현 단계의 전선에서 수행되어야 할 것은 중도좌파정당이나 중도우파정당의 단독집권전략이 아니라 그 양당이 공동으로 집권하는 전략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현 단계의 전선전략은 중도연정수립을 향한 공동집권전략이다. 오늘의 정치정세는 전선형성-공동투쟁-공동집권-연정수립의 발전단계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요구한다.

전선을 형성할 때, 저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르니 같이할 수 없다는 식의 뺄셈법으로 계산할 것이 아니라, 저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르지만 공동목표가 있으니 그래도 같이해야 한다는 식의 덧셈법으로 계산해야 한다. 차이를 상호인정하고 공동목표를 내오고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전선이다. 전선형성의 원칙은 어디까지나 덧셈이다.

전선을 형성할 때 반제노선과 계급노선을 설정하면,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폭넓은 전선을 형성할 수 없지만,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공동목표를 내걸면,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모두 참가하는 폭넓은 전선을 형성하는 길이 열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전선을 형성할 때 반미-친미의 기준선을 그어놓으면, 중도좌파정당과 그 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만 참가하게 되고, 중도우파정당과 그 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 참가하기 힘들게 된다. 반미-친미의 기준선은 중도좌파정당이 추진할 단독집권전략의 기준선이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함께 추진할 공동집권전략의 기준선은 아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인정하는 중도우파정당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중도좌파정당이 어찌 상호연대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반이명박 전선’에서 중도우파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좌경적 오류다. ‘반이명박 전선’을 형성하는 공동목표를 친미정당에 대한 심판보다 앞세워야 하며, 그렇게 해야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각당각파의 정치연대를 실현할 수 있다. 현재 전선형성의 기준선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찬반여부이고, ‘반이명박 전선’의 형성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2012년 공동집권을 지향하며, 현 단계 전선의 당면목표는 2012년 중도연정수립이다.

중도연정수립은 왜 2012년에만 가능한가?

역사적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군정(미국의 군사점령체제)에서 좌파정당이 단독집권전략으로 좌파정권을 세우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모스크바 삼국회의 결정이행에 따른 민주연립정부 수립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었다. 역사자료를 읽어보면, 당시 남측에서 민주연립정부 수립에 앞장선 사람은 여운형이었고, 북측도 여운형의 중도좌파정당과 김규식의 중도우파정당이 주도하는 민주연립정부 수립방안을 적극 추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방안을 끝까지 반대한 사람은 우파세력을 이끌던 이승만과 김구, 좌파정당을 장악한 박헌영과 이승엽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좌파정당(남조선로동당)이 있었고 좌파연대전선(민주주의민족전선)도 형성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좌파정당이나 전선이 없는데다가, 노동자 총파업이 맥없이 전개되고 농민과 서민의 동참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겨우 7%의 지지율을 맴도는 중도좌파정당이 무슨 수로 단독집권을 실현한다는 말인가. 원내에 진출하고 지방의회를 장악한 좌파정당도 있고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노동자 총파업도 벌어지는 유럽연합 나라들에서도 중도좌파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지 못하고 연정을 추진하는데, 총선패배와 대선패배 직후 분당사태마저 겹치는 상처를 입은 중도좌파정당이 무슨 수로 단독집권을 실현한다는 말인가. 현재 이 사회의 정치세력관계를 따져보면, 중도좌파정당의 단독집권은 8.15 해방 직후 김구를 대표로 하는 우파민족주의세력의 ‘즉시 독립’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조급증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은 2012년 대선에서 중도좌파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독자집권능력을 양성하여 언젠가는 집권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력양성론은 2012년 대선에 대처하는 방안이 아니며, 집권의 미래를 기약 없이 미뤄놓는 것이다. 2012년 대선에 대처하는 방안은 실력양성이 아니라 중도연정이다. 더욱이 중도연정은 중도좌파정당의 독자집권능력을 양성하는 중간단계가 될 뿐 아니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도좌파정당은 중도연정을 통해서 독자집권능력을 결정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도연정수립 방안은 아무 때나 꺼내놓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이 아니다. 전선전략이 덮어놓고 뭉치자는 주장이 아닌 것처럼, 공동집권전략도 덮어놓고 권력을 분점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중도연정수립 방안은 현재 조성된 정치세력관계를 타산한 기초 위에서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판별하여 제기하는 것이다.

지난 시기를 돌아보면, 1997년 대선, 2002년 대선, 2007년 대선에서는 중도연정을 수립할 수 없었고, 또 추진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중도연정은 2017년 대선이나 그 이후의 대선에서도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2012년은 중도연정을 실현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도연정은 2012년 대선에서만 수립할 수 있고, 또 추진해야 할 집권전략인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도좌파정당이 아직 창당되지 않았고, 민주노총이 설립된지 2년 밖에 되지 못했던 1997년 대선에서는, 중도연정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었다. 만일 ‘재야민주세력’이 중도우파정당(새정치국민회의)과 정치적으로 연대하여 공동집권하였다면, 이 땅에서 중도좌파정당을 창당할 기회는 사라져버렸을 것이며,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자’들처럼 중도우파정당에 일괄흡수되어 중도우파집권당의 비주류 계파로 되고 말았을 것이다.

둘째, 중도우파정당이 집권한 조건에서 실시된 2002년 대선이나 2007년 대선에서도, 중도연정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었다. 전선을 형성하여야 중도연정을 수립할 수 있는데, 중도좌파정당이 중도우파집권당에 맞서기 위해서 우파정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여 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만일 2002년 대선 당시에 창당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중도좌파정당이 중도우파정권과 정치적으로 연대하였다면, 그것은 어떤 대상과 투쟁하는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중도우파정권에 사실상 흡수되어 중도우파정권의 계속집권을 도와준 것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던 2007년 대선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 글에서 논하는, 전선에 의거한 중도연정이란, 중도좌파정당이 중도우파정권에 사실상 흡수되는 것도 아니고, 중도우파정당의 집권을 도와주려는 것도 아니다.

지금 중도좌파정당은 중도우파정당에 비해 힘이 약하지만, 전선을 형성하고 투쟁하면 그 두 당의 역량관계가 달라진다. 중도좌파정당이 중도우파정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오직 전선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 이외의 경우에 연대하면 중도우파정당의 ‘들러리 노릇’이나 하게 될 것이다.

명백하게도, 2012년 중도연정의 목적은 중도좌파정당이 전선과 중도연정을 통하여 진보적 정권교체의 전략적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유럽연합 나라들에서 그러한 것처럼, 중도좌파정당이 중도우파정권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식의 중도연정이 중도좌파정당의 진보적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중도정당들끼리의 정치야합으로 귀결되는 오류는 피해야 한다. 중도좌파정당이 전선을 형성하고 투쟁하여야 그런 오류를 피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에 맞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는 장마형 전선에 총결집한 각당각파 각계각층의 투쟁 속에서, 오직 그러한 투쟁에 속에서 중도연정수립은 실천적 의의와 이론적 정합성을 지니는 것이다. (2009년 5월 18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