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것은 기회일까 위기일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악화일로에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

2006년에 실시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보고서에 대한 분석을 보면, 남측 사회의 성인인구 가운데 20%가 야간수면장애(nocturnal sleep problems)라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말 현재, 서울시 인구 1천42만 명 가운데 우울증 환자는 27만 명이고, 위기상담전화를 이용한 자살상담자 가운데 71%가 우울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2008년 10월 5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정신질환진료 현황자료에 따르면, 2007년도의 정신질환 진료건수는 874만8천635 건으로 2004년도의 568만9천784 건에 비해 300만 건 이상 급증하였는데, 우울증 진료가 209만여 건, 불안장애 진료가 125만2천931 건, 재발성 우울증장애 진료가 38만8천175 건, 공포장애 진료가 10만7천844 건이었다고 한다.

불안과 절망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마지막 선택은 자살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살을 불행과 비운을 이겨내지 못한 개인의 선택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자살은 불안지수와 절망지수가 높아진 사회체제의 특유한 현상이다. 사회체제의 불안지수와 절망지수가 자살률로 표시되는 것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적발하여 경찰에 신고한, 자살정보를 교환하는 웹사이트는 2007년에 480 건, 2008년에 849 건으로 해마다 급증하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0개 회원국들을 조사한 2009년도 통계연보에 따르면, 남측 사회에서 여자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11.1 명으로 1위를, 남자 자살률은 28.1 명으로 헝가리, 일본, 핀란드에 이어 4위를 차지하였다.

도시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된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에서는 불안지수와 절망지수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자살률도 낮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불안지수와 절망지수가 낮은 그 나라들에서 자살률이 높은 까닭은, 자본주의체제가 사회구성원들의 정신세계를 황폐화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난 자체가 자살률 증가의 원인이 아니라, 도시중산층이 신(新)빈곤층으로 굴러떨어지는 실업증가, 파산증가, 부채증가가 자살률 증가의 주된 원인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2008년 현재, 실업, 파산, 부채가 몰고온 민생파탄으로 부모가 이혼하거나 별거에 들어간 가족해체의 불행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도는 ‘노숙형 가출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2007년보다 24%나 급증한 2만3천 명이고, 학업을 중단한 아이들은 2007년보다 18%가 늘어난 3만2천 명으로 추산된다. 자료에 의하면, 지난 다섯 해 동안 가출하거나 실종된 아동과 청소년은 8만6천85 명이라고 한다.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고등학생 응답자 가운데 23.5%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으며, 50.7%는 학업을 그만두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으며, 29.4%는 가출을 고민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주식투자에 실패한 것을 비관해 자살하려고 인터넷 판매망을 통해 독극물인 시안화칼륨(청산가리) 30g을 샀다가 자살을 포기하고, 그 대신 자살용 독극물을 자살희망자들에게 팔아오던 사람이 최근 경찰에 붙잡힐 정도로 자살률 급증현상은 심각하다. 오죽하였으면, 보건복지부가 13개 정부부처와 함께 범정부 차원의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작성하여 2008년 12월 23일 국무회의에 제출하였겠는가.

실업증가, 파산증가, 부채증가에 대한 공포가 불안지수를 높여주며, 실업과 파산과 부채로 최악의 빈곤상태에 빠져 겪는 고통이 절망지수를 끌어올린다. 자살률의 증가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실업과 파산과 부채를 강요하는 자본주의체제의 특유한 현상인 것이다.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은 실업, 파산, 부채에 짓눌려 신음하는 데, 다른 한 쪽에서는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거액의 비자금을 빼돌려 대통령과 고위정치인들에게 뇌물로 상납하는 권력형 부정부패가 숨막힐 정도로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청렴결백한 인상을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부인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미화 100만 달러의 거금과 시가 1억 원짜리 스위스 명품시계 두 개를 뇌물로 받아챙긴 부패사건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학교 61학번 동기이자 최측근 기업인으로서 남측 최대의 여행사를 운영하는 천신일 회장이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비공식 후원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일으킨 경선 및 대선자금 의혹이 또 드러나 충격에 충격을 더하는 중이다. 보도에 따르면, 박연차 회장과 천신일 회장은 고향 선후배 사이로 의형제를 맺었다는데, 그들은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권력형 부패사건과 현직 대통령의 연루의혹을 받는 권력형 부패사건의 핵심인물로 각각 떠올랐다. 권력형 부정부패의 만연은 자본주의체제의 특유한 현상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관료와 유명정치인이 대기업 회장들과 결탁함으로서 형성된 특권-부유층은 권력과 부를 독점하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반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은 투표권 행사 이외에는 정치적으로 사실상 무권리한 상태에서 빈부격차와 생존권 박탈, 가난의 대물림 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하는 참담한 현실은 이 사회가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어떤 사람은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를 거쳐온 장장 15년 동안 이 땅에서 미국식 민주주의가 차츰 성숙되어왔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오늘 노동자, 농민, 서민의 고통스런 현실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현실이 더할 나위 없이 악화일로에 있지 아니한가!

더욱 복잡해진 정치정세

이 땅의 진보적 정치활동가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은 모순이 가득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론을 내오고 토론을 벌였지만 아직 명쾌한 답을 내오지 못하고 연구와 논쟁을 거듭하는 중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찾는 명쾌한 답이 진보정당의 집권에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그 답을 집권이 아니라 저항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이 땅의 역사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부터 끊임없이 저항운동을 이어왔지만 그러한 저항운동은 모순이 가득한 현실을 극복하는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였다. 물론 진보정당의 집권이 저항운동을 배제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번번이 경찰봉쇄로 무산되고 마는 서울도심 집회는 저항의 반복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저항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보정당의 집권을 논하고, 거기에서 명쾌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저항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진보정당의 집권이란,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의지와 능력, 강령과 정책을 가진 새로운 정치세력이 집권한다는 뜻이다. 우파정부의 탄압을 무릅쓰고 오직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하여 일해온 진보적이고 유능한 정치세력, 그리고 권력형 부정부패를 배격해온 깨끗하고 양심적인 정치세력이 집권하여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 이외에 다른 미래는 없다. 그러한 정치세력이 집권한다는 말은 평화통일강령과 민주주의강령을 가진 진보정당이 집권한다는 뜻이다.

이 땅에 전개된 정당분포를 보면, 진보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과 그 당에서 갈라져나간 진보신당이다. 이 두 당을 정치이념에 따라 분류하면 중도좌파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2007년 대선에서 패하여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주고 제1야당으로 밀려난 민주당을 정치이념에 따라 분류하면 중도우파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은 약간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우파정당으로 분류되는데, 그 가운데서 한나라당은 우파집권당이다.

이 땅에는 의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전면 부정하는 극우정당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주의강령을 추구하는 좌파정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땅의 정치지형은 중도좌파정당, 중도우파정당, 우파정당으로 삼분되어 상호대립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중도좌파정당 가운데 평화통일강령과 민주주의강령을 추구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진보신당은 민주주의강령을 추구하지만, 평화통일강령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민주당은 평화통일강령 대신에 교류협력강령을 추구하고 있으며, 노동자, 농민, 서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에는 매우 소극적이고 그 대신 도시중산층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껍데기 뿐인 민주주의강령을 추구한다. 다른 나라에는 사회민주주의강령을 추구하는 중도우파정당이나 민족주의강령을 추구하는 중도우파정당도 있는데, 이 땅의 중도우파정당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강령이나 민족주의강령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된 까닭은, 우파정당이 50년 동안 장기집권하여 억압통치를 계속해오는 바람에 사회민주주의나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성장하지 못한 사정과 관련된다. 다른 한편, 우파집권당은 노동자, 농민, 서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세계경제위기가 닥쳐오는 경우에는 도시중산층의 이익까지 서슴없이 희생시키면서 극소수 특권-부유층의 이익만 챙겨주는 것이다.

우파집권당의 재집권을 예고하는 2012년

2012년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제기될 집권문제에 대한 논의는 중도좌파정당, 중도우파정당, 우파집권당으로 삼분되어 상호대립하는 오늘의 정치현실에서 출발한다.

가상적 현실을 말해보는 것이지만, 만일 2012년 대선에서 평화통일강령과 민주주의강령을 추구하는 중도좌파정당이 승리하여 집권한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너무도 명확한 일이다. 그러면 2012년 대선에서 중도좌파정당이 승리할 수 있을까? 물어보나마나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2007년 12월에 실시된 대선에서 득표율이 3%대로 주저앉은 중도좌파정당은 2012년 대선에서 우파집권당을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또한 2007년 대선에서 패하여 정권을 내주고 기가 꺾인 중도우파정당도 기적에 가까운 정치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2012년 대선에서 우파집권당을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이것은 노동자, 농민, 서민을 전면적인 민생파탄으로 내몰고,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으로 진보적 대중단체들을 짓밟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친미반북정책을 강행하는 우파정부의 폭정이 2012년을 지나 2017년까지 연장, 확대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2017년 대선에서는 중도좌파정당이 우파집권당을 누르고 집권할 수 있을까? 앞으로 8년 뒤의 상황을 지금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중도좌파정당은 그때도 집권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남측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나라의 자본주의체제에서 중도좌파정당은 그 정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 농민, 서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성원을 받는 것이 아니며, 대선이나 총선에서 노동자, 농민, 서민의 배타적인 지지표를 얻는 것도 아니다. 이 땅에서 중도좌파정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정당인데도 실제로는 노동자, 농민, 서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성원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까닭은, 중도좌파정당이 자기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확신이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중도좌파정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확신을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안겨주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정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는 그 정당의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 평가받는 것인데, 소수야당의 울타리에 갇힌 중도좌파정당에게는 그러한 평가를 받을 정치적 실천의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이 땅의 정치현실을 좌우하는 우파집권당과 중도우파정당은 자기들의 집권을 위해서 노동자, 농민, 서민의 사회정치의식을 우파성향으로 끌어당기는 대중포섭전략을 추진해오고 있다.

6.25 전쟁 이후 중도좌파정당으로 재기한 진보당이 이승만 정부의 집중탄압을 받고 무너진 뒤로, 이 땅의 정치지형은 두 종류의 우파정당이 상호경쟁하는 무대로 되었다. 군사독재정권이 장기집권한 조건에서 진보당의 뒤를 잇는 새로운 중도좌파정당의 출현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군사독재정권이 점차 퇴조한 것과 더불어 일어난 정치정세의 변화는, 신흥계층인 도시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도우파세력이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정치세력화하여 우파야당에 들어가 그 정당의 우파적 성격에 중도적 성격을 더해주였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중도우파정당으로 자리잡아간 것이다.

도시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도우파세력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정치세력화하였던 것에 비해,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노동자, 농민, 서민이 주도하는 민주항쟁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에 중도좌파세력은 자신을 정치세력화할 결정적인 계기를 만나지 못한 채 중도좌파정당을 결성하였다. 이 땅의 중도좌파정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이 주도하는 민주항쟁의 폭발적 에너지를 받지 못한 채 민주노조와 진보단체의 비폭발적 에너지만 받은 이른바 ‘운동권 정당’으로 출범하였던 시대적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은 중도좌파정당을 자신의 정당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우파집권당이나 중도우파정당에게 끊임없이 속아왔으면서도 선거철이 되면 그 두 정당에게 또 다시 허망한 기대를 걸어보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중도우파정당마저 외면하고 우파야당을 대안으로 선택하여 정치현실을 10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것은, 노동자, 농민, 서민의 착시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해준다.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이 착시현상을 걷어내고 중도좌파정당을 일으켜 세울 결정적인 계기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 민주항쟁을 주도하여 폭발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길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민주항쟁의 가능성에 대해 아무도 확언하지 못한다. 2008년 초여름 이 땅을 저항운동의 열기로 후끈 달구었던 ‘촛불항쟁’이 여전히 도시중산층 또는 그 계층의 이해관계에 근접한 다양한 주변집단들에 의해서 주도되었음을 생각하면,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틀을 넘어서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 주도하는 민주항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 땅의 중도좌파정당에게 주어질 집권기회가 선거전(選擧戰)으로 고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치른 몇 차례 대선에서 나타난 결과를 돌아보면, 득표율이 최소한 35%를 넘어야 집권가능범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는데, 현재 중도좌파정당의 예상득표율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7%를 넘지 못한다. 그런 처지에 있는 중도좌파정당이 앞으로 3년 동안 자기의 득표율을 다섯 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까? 누가 봐도, 그 기간에 득표율을 다섯 배 이상 끌어올리는 것은 어림도 없다. 중도좌파정당이 우파집권당과 중도우파정당을 모두 제치고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한 것이다.

오늘의 정치상황을 살펴보면, 우파집권당만 유일하게 득표율을 35%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지형에 대변동을 일으키는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2012년 대선에서 우파집권당의 재집권은 확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12년 대선에서 우파집권당이 재집권에 실패할 가상의 시나리오를 굳이 말한다면, 그 당의 계파갈등이 격화되어 분당하는 것인데, 우파집권당의 분당을 기다리는 것은 맑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제파탄으로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생활고가 가중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면, 성난 민심이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우파정부에게 묻게 되고, 그에 따라 우파집권당의 여론지지율도 떨어지지 않을까 예상하기도 하였으나, 오늘의 정치현실은 그런 예상을 비켜가고 있다. 4.29 재보선에서 우파집권당이 참패한 선거결과가 2012년 대선에서도 되풀이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대선과 총선의 차이를 간과하는 오류다.

우파집권당이 2012년 이후에도 집권한다면, 그러지 않아도 정치혐오증에 걸린 대중들에게 절망감마저 스며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남측 정부와 북측 정부가 정치적 합의를 통해 실현할 수 있는데, 우파정부가 북측 정부와의 정치적 합의를 전면적으로 반대할 것이 분명하므로 우파집권당의 계속적인 집권은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연장시키고, 이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북측과 미국의 관계정상화가 한반도 정세를 평화통일 실현에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바꾼다 해도, 지금처럼 우파집권당이 계속 집권하면 평화통일의 길로 다가서기 힘들 것이다.

오늘의 정치현실이 이러한 데도, 이 땅의 중도좌파정당이 산발적인 저항운동에 참여하다 보면 언젠가는 집권할 날이 오겠거니 하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오류다. 중도좌파정당이 비상한 집권전략을 추진하여 난국을 돌파하지 못하고 산발적인 저항운동에만 관성적으로 참여한들, 집권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며 ‘영원한 소수야당’으로 명맥이나 유지할 것이다.

2012년에 대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 이 땅의 중도좌파정당은 단독집권전략을 논해오면서 그 전략 이외의 어떤 다른 대안전략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중도좌파정당에게 단독집권전략은 정당한 전략이며 앞으로도 그러하다.

그러나 중도좌파정당이 현재 직면한 심각한 문제는 2012년 대선에서 자기의 단독집권전략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독집권전략을 실현할 수 없는데도, 그 전략의 이론적 정당성만 강조하면서 대안전략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2012년이라는 중대한 시기가 요구하는 임무를 망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도좌파정당이 2012년 대선에서 단독집권전략을 실현할 수 없다면, 공동집권전략을 대안으로 선택할 수는 없을까? 공동집권전략이란 중도좌파정당이 다른 정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여 2012년 대선에 출전함으로써 우파집권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장차 2017년 대선에서 단독집권전략을 실현할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없는 다른 나라에서는 중도좌파정당이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할 때 좌파정당과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좌파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이 사회에서 중도좌파정당이 정치적으로 연대할 대상은 중도우파정당밖에 없다.

그런데 위에서 논한 대로, 이 땅의 중도우파정당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한 중도우파세력이 가세하여 도시중산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변신과정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중도적 성격보다는 우파적 성격이 더 강하다. 바로 이 점이 공동집권전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다시 말해서,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정치적으로 상호연대하여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하는 대안을 중도좌파정당이 받아들이기 힘든 까닭은, 중도우파정당의 우파적 성격이 중도적 성격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중도우파정당에서도 중도좌파정당과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하는 대안을 받아들이기 힘든 까닭은, 그 정당의 우파적 성격이 중도좌파정당의 좌파적 성격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과 도시중산층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사회계급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의 중도우파정당에 속해 있는, 중도적 성격이 좀더 뚜렷한 몇몇 계파들이 갈라져나가 중도적 성격을 강화한 새로운 중도우파정당을 창당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맑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도좌파정당에게나 중도우파정당에게나 모두 최선의 대안은 아니지만,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정치적으로 상호연대하여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하는 것 이외의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다. 이것은 이 땅의 중도좌파정당이나 중도우파정당이 각각 자기의 단독집권을 꿈꾸어온 비과학적인 전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정치적으로 상호연대하여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한다는 말은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중도연립정부를 세운다는 뜻이다. 그런데 연립정부라는 말만 들어도 덮어놓고 거부반응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 까닭은 지금까지 연립정부라는 개념이 우파정당들끼리 야합하여 권력을 분점한다는 뜻으로 쓰여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7년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이 이른바 ‘디제이피(DJP)연합’에 의거하여 우파연립정부를 구성한 적이 있다. 또 2005년 7월 4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연립정부구상을 내놓았고, 7월 28일에는 한나라당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거국 연립내각구상’을 내놓은 사례도 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의 연립정부가 중도우파정당과 우파정당의 정치야합에 의거한 우파연립정부에 지나지 않았고, 2005년에 7월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내놓은 연립정부구상 역시 민심을 잃은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의 정치야합으로 권력을 분점함으로써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몰락위기를 피해보려는 위기탈출계략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들은 우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양당구도를 강화하여 의회정치를 배타적으로 장악하고 우파연립정부를 세우려는 것이었으므로, 중도좌파정당 안에서 연립정부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던 것은 당연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2005년 7월 25일에 쓴 나의 글 ‘연정수립전략의 파산과 통일전선운동의 전진’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논하는 공동집권전략에 의거한 중도연립정부 수립방안은 우파연립정부를 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연립정부는 모조리 우파정당들의 정치야합에 지나지 않으므로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는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중도연립정부 수립방안은 우파집권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우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교차집권으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낡은 양당구도를 깨고,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새로운 양당구도를 형성함으로써 중도좌파정당이 장차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2009년 1월 30일에 쓴 나의 글 ‘현 시기 전선구축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이론문제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지금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 일각에서는 ‘반이명박(MB) 전선’을 구축하는 당면과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명박 우파정부를 반대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하자는 것이 그 논의의 핵심이다. ‘반이명박 전선’에는 여러 정치세력들이 결집될 것이다. 이명박 우파정부와 대립하는 정당들과 대중단체들이 공동전선에 총망라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반이명박 전선’에 대한 논의는 저항운동수준에서 맴돌고 있을 뿐, 공동집권전략으로 상승전개되지는 못하고 있다. ‘반이명박 전선’을 구축하는 과제를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주도하지 못하고 다기한 정치성향을 가진 대중단체들이 산만하게 논의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한계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은 ‘반이명박 전선’을 구축하는 당면과제를 2012년의 공동집권전략으로까지 확장하여 논의를 더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중도좌파정당의 여러 정파들 가운데서 중도우파정당을 적대시하는 좌파적 성격의 정파들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전략에 의거한 중도연립정부 수립방안을 우경화된 집권전략으로 오해하고 반대할 것이다. 또한 중도우파정당의 여러 계파들 가운데서 중도좌파정당을 위험한 급진정당으로 규정하는 우파적 성격의 계파들 역시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전략에 의거한 중도연립정부 수립방안을 좌경화된 집권전략으로 오해하고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우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상호연대하여 우파연립정부를 세울 수 있고, 좌파정당과 중도좌파정당이 상호연대하여 좌파연립정부를 세울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명박 우파정부에 맞서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상호연대하여 중도연립정부를 세우지 못할 까닭은 없다. 공동집권전략에 의거하여 중도연립정부를 세우는 것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자기의 정체성을 각각 약화하거나 해소하는 정치야합적 합당을 추진하자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단독집권전략을 포기하고 전략적으로 후퇴하자는 것도 아니다. 아주 오래 전의 역사적 경험에서 찾아내는 교훈이지만, 만일 여운형의 중도좌파정당과 김규식의 중도우파정당이 상호연대하여 중도연립정부를 세웠더라면, 아마도 이 땅에서 분단과 전쟁은 없었을지 모른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집권전략에 의거하여 중도연립정부를 세우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전환적 발상이 그 두 당 안에서 과연 가능할까?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처한 오늘의 정치현실은, 2012년 대선에서 혹시 독자집권전략을 실현할 수 있지나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비과학적인 전망에서 벗어나, 공동집권전략에 의거하여 중도연립정부를 세우는 발상의 대담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2012년에 대비하는 발상의 전환은 참으로 절실하지 않은가. (2009년 5월 11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