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이여, 잘 가거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유엔안보리의 위법행위

2009년 4월 14일 유엔안보리는 북측의 위성발사를 비난하고, 북측에게 위성을 발사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북측에게 경제제재를 가한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성명에서 주목하는 대목은 아래의 두 문장이다.

“안보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안보리 제1718호(2006년)를 위반하여 2009년 4월 5일(현지시간)에 행한 발사를 비난한다. (The Security Council condemns the 5 April 2009(local time) launch by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which is in contravention of Security Council resolution 1718(2006).”

“안보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더 이상 추가발사를 행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The Security Council demands that the Democraric People's Republic of Korea not conduct any further launch.)”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위성발사(satellite launch)라는 말을 쓰지 않고 발사(launch)라는 말을 썼다는 점이다. 로켓발사(rocket launch)라는 말도 쓰지 않았다. 발사라는 말은 무엇을 쏘았는지를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아니면 부당한 것인지를 밝혀주지 못하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념이다. 자기들이 비난한 상대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규정하지도 못하면서 상대의 행동을 비난한다고 밝힌 것은, 그 성명이 최소한의 논리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궤변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그렇다면 유엔안보리는 왜 의장성명에서 위성발사라는 명확한 개념을 쓰지 못하고 발사라는 모호한 개념을 썼을까? 그 까닭은 유엔안보리에게는 유엔 회원국의 위성발사를 비난하고 반대할 아무런 명분도 권한도 없으며, 유엔 회원국의 위성발사를 위법행위로 규정할 아무런 법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북측이 이번에 위성이 아니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였다고 가정해도, 유엔안보리에게는 북측의 미사일발사를 위법행위로 규정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유엔은 유엔 회원국의 위성발사를 위법행위로 규정하는 국제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유엔 회원국의 위성발사를 보장해주는 국제법을 가지고 있다. 1966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달과 천체를 포함하는 우주의 탐사와 이용에서 각국의 행동을 규제하는 원칙에 관한 조약(Treaty on Principles Governing the Activities of States in the Exploration and Use of Outer Space, including the Moon and Other Celestial Bodies)’이 그것이다. 줄여서 우주조약이라고도 부른다. 그 조약의 제1조는 “모든 나라들은 경제적, 과학적 발전수준과 무관하게 각자의 이익과 혜택을 위해 달과 다른 천체를 포함하는 우주를 탐사하고 이용할 수 있으며, 모든 인류는 우주의 탐사와 이용을 자기의 분야로 삼을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유엔은 이 조약을 이행하기 위해 우주사무국(Office of Outer Space Affairs)을 산하기구로 두었다.

유엔이 창설된 때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위성을 쏘아올렸다고 해서 유엔안보리로부터 비난과 제재를 받은 유엔회원국은 없다. 북측은 1998년부터 지금까지 딱 두 차례밖에 위성을 쏘아올리지 않았으나, 일본은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제작한 위성발사체 에이취(H)-2에이(A)와 닛산(日産)중공업이 제작한 위성발사체 엠(M)-뷔(V)를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다섯 해 동안 무려 16차례나 계속 쏘아올렸는데도 유엔안보리는 일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만이 아니라, 일본 국회가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규정한 1969년의 결정을 뒤집고, 우주의 군사적 이용을 추구하는 ‘우주기본법’을 2008년 5월 21일에 채택한 뒤에, 일본 정부 산하에 설치한 우주개발전략본부가 앞으로 5년 동안 34기의 위성을 더 쏘아올리고, 조기경보위성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우주기본계획’을 2009년 4월 3일에 발표했을 때도, 유엔안보리는 일본의 군사적 우주개발사업에 대해 우려한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위성발사에 열심을 내는 인도의 우주연구소(ISRO)가 2008년 10월 22일 자국 최초의 무인 달탐사위성 찬드라이안 1호(Chandrayaan-1)를 쏘아올렸을 때도 유엔안보리는 인도에게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의 테러지원국 누명을 쓰고 있는 이란이 2009년 2월 2일에 위성발사체 사피르 2호(Safir-2)를 쏘아올렸을 때도 유엔안보리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했던 유엔안보리가 이번에는 근거도 명분도 없이 북측의 위성발사를 비난하고 제재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일 뿐아니라,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우주조약을 위반한 위법행위인 것이다. 북측의 위성발사가 위법행위가 아니라 유엔안보리의 대북 의장성명 발표가 위법행위인 것이다.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우주조약을 유엔안보리가 위반한 까닭은 유엔안보리 이사국들 가운데서 미국을 추종하는 일본, 그리고 미국의 편을 드는 영국과 프랑스 등 안보리에 망라된 친미국가들이 결탁하였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일본은 2009년 1월 1일부터 1년 동안 아시아지역에 할당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어 이번에 북측의 위성발사를 제재하려고 누구보다 설쳤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언제나 미국의 편을 들어왔다. 올해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된 터키와 멕시코도 대표적인 친미국가들이다.

친미국가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중국과 러시아는 북측의 위성발사에 제재를 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려던 미국의 행동을 저지하였으나, 결국 의장성명을 발표하자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타협하고 말았다. 반제노선을 포기한지 오래인 중국과 러시아는 제국주의세력의 횡포에 맞서 끝까지 싸울 의지와 능력이 없으므로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안보리의 논쟁을 마무리지은 것이다.

이에 대해 북측의 외무성 성명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행위는 ‘우주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동등한 기초 우에서 국제법에 부합되게 모든 국가들에 의하여 자유롭게 개발 및 리용되여야 한다’고 규제한 우주조약에도 배치되는 난폭한 국제법 유린죄행”이라고 단죄하고,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을 난폭하게 침해하고 우리 인민의 존엄을 엄중히 모독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부당천만한 처사를 단호히 규탄배격한다”고 밝혔다.

유엔이 창설된 이래 유엔안보리의 결정을 국제법 유린 죄행으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 배격하는 성명을 발표한 나라는 북측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안보리 강대국들의 위세에 눌려 항변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겠지만, 북측은 달랐다. 안보리 강대국들이 결탁하여 유엔안보리 결정으로 밀어붙인 위법행위에 단호하게 반격을 가한 북측의 당당한 자세가 돋보인다.

9.19 공동성명과 충돌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북측의 위성발사를 비난하고 경제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은 6자회담의 기본원칙과 정면으로 충돌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6자회담의 기본원칙을 합의한 9.19 공동성명 제2조에서 “6자는 상호관계에 있어 유엔헌장의 목적과 원칙 및 국제관계에서 인정된 규범을 준수할 것을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 6자가 6자회담의 결정만이 아니라 국제규범도 준수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6자가 준수하여야 할 국제규범들 가운데 유엔총회가 채택한 우주조약이 포함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9.19 공동성명 제2조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상호주권을 존중”하기로 “약속하였다”. 주권을 서로 존중하기로 약속한 규정은 외교문서를 장식해주는 알맹이 없는 문구가 아니다. 상호주권존중의 약속은 국제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자 규범이며, 국제관계의 모든 회담과 협상은 그 약속에 근거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우주조약에 부합되게 위성을 쏘아올린 북측의 정당한 주권행사를 터무니없이 위법행위로 몰면서 반대하였으며, 결국 유엔안보리를 앞세워 북측의 정당한 주권행사를 비난하고 제재를 가하는 의장성명 채택하도록 막후에서 움직였다. 이것은 미국이 9.19 공동성명 제2조에 명시된 국제규범준수의 약속과 상호주권존중의 약속을 모두 저버린 것이다.

9.19 공동성명 제2조에 명시된 국제규범 준수의 약속과 상호주권 존중의 약속을 어느 일방이 파기하는 순간, 9.19 공동성명은 존재의의를 잃어버리게 된다. 9.19 공동성명이 존재의의를 잃어버렸다는 말은 6자회담을 진행할 원칙과 규범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6자회담은 강권주의와 전횡 발동이 통하는 일종의 무법상태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2009년 3월 26일 북측의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물음에 답변하면서 이렇게 경고하였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의장성명’으로든 ‘공보문’으로든 우리의 평화적 위성발사에 대하여 단 한 마디라도 비난하는 문건 같은 것을 내는 것은 물론 상정취급하는 것 자체가 곧 우리에 대한 난폭한 적대행위로 된다. 이러한 적대행위로 하여 9.19 공동성명이 부정당하는 순간부터 6자회담은 없어지게 될 것이며 조선반도 비핵화를 향하여 지금까지 진척되어온 모든 과정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고 필요한 강한 조치들이 취해지게 될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국제협약을 위반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의 대외관계사는 강권주의와 전횡 발동으로 얼룩진 협약파기와 위법행위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짓밟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무력으로 침공한 미국의 전쟁범죄는 감싸고 돌면서, 국제법에 부합되게 위성을 쏘아올린 북측의 주권행사에 대해서는 비난과 제재를 가한 것은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강권주의와 전횡발동으로 국제질서를 깨뜨리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원칙과 규범이 사라진 6자회담에 기대나 미련을 남겨두는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강권주의와 전횡 발동이 어떤 것인지를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북측은 이번에 발표한 외무성 성명에서 “이런 회담에 다시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6자회담의 그 어떤 합의에도 더 이상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2009년 4월 14일 유엔안보리가 대북 의장성명을 채택하던 날, 일본의 관방장관 가와무라 다께오(河村建夫)는 기자회견에서 그 성명의 채택을 “일본의 외교적 노력이 거둔 커다란 성과”라고 자찬하였다. 그러나 그가 말한 일본의 외교적 노력이란 6자회담의 파탄을 불러온 노력이었다. 가와무라 다께오는 결국 6자회담의 파탄을 자기들의 외교적 성과라고 자찬한 셈이다. 2009년 3월 24일 북측의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에서 “6자회담 파탄의 책임은 일본부터 시작하여 9.19 공동성명의 ‘호상존중과 평등의 정신’을 거부한 나라들이 전적으로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었다.

쓸모없는 유물을 폐기하다

2009년 2월 3일부터 4박 5일 동안 평양을 방문한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를 비롯한 미국인 방북단이 평양방문을 마치고 2월 9일 서울에서 남측 인사들과 만나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전한 북측의 견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9년 2월 9일 〈연합뉴스〉가 방북단 성원들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측은 6자회담을 “원하지는 않지만 미국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할 수 있”으며, “핵무기는 6자회담의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의 말을 평양에서 들었다고 했다. 이것은 북측에게 6자회담을 그만두려는 생각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사실 북측이 6자회담을 그만두려고 생각한 것은 아주 오래 된 일이다. 아마도 6자회담 개막식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였을지 모른다.

북측이 6자회담을 그만두려고 생각하였으면서도 지난 6년 동안 그 회담에 참석해온 까닭은, 양자회담을 거부한 부시 정부를 상대해서라도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북측이 왜 6자회담을 그만두려고 생각하였는지를 이해하려면 6자회담 6년사에 담긴 진상을 재론할 필요가 있다.

첫째, 6자회담을 벌여놓은 장본인은 부시 정부다. 클린턴 정부가 시작한 4자회담은 1997년 12월 9일부터 1999년 8월 5일까지 여섯 차례 열리고 막을 내렸는데, 부시 정부는 일본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회담의 판을 6자로 넓혔다. 6자회담은 2003년 8월 27일에 첫 회담을 시작하였다. 부시 정부가 일본과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회담의 판을 넓힌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부시 정부는 이른바 국제공조로 북측을 압박하여 북측의 핵무장력을 제거하려는 계략을 추구했던 것이다. 자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은 그대로 두고 북측의 핵무장력만 일방적으로 제거하려고 획책하였다는 점에서, 부시 정부가 6자회담에서 추구해온 것을 전략이 아니라 계략이라고 격하해서 부르는 것이다.

물론 6자회담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부시 정부의 계략에 동조할 처지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측의 편을 들어줄 처지도 아니었다. 북측과 미국이 6자회담에서 충돌할 때, 중국과 러시아가 중립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북측의 핵무기 보유를 노골적으로 반대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두 나라의 태도가 중립이었다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측의 편을 들어주지 못하게 해놓고, 미국, 일본, 남측의 3자공조로 북측을 압박하여 북측의 핵무장력을 제거하려는 것이 부시 정부가 6자회담에서 일관되게 취해온 국제공조 계략이었다. 부시 정부는 국제공조 계략을 북측에 대해서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이란에 대해서도 추구하였다. 부시 정부는 이란과의 양자회담을 배제하고 다자회담에 매달렸던 것이다.

부시 정부의 그러한 계략에 맞서서 북측은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을 제거하려는 자기의 목적을 6자회담에서 추구해왔다.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을 제거한다는 말은, 주한미국군이 주도하는 한미연합군의 핵전쟁 실전연습, 주일미국군이 주도하는 미일동맹군의 한반도 핵전쟁 실전연습, 그리고 미국군이 단독으로 실시하는 한반도 핵전쟁 실전연습을 모두 영구히 중지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군이 한반도에서 전개하는 핵전쟁전략의 ‘고리’를 끊어버린다는 뜻이다. 미국군이 한반도에서 전개하는 핵전쟁전략의 ‘고리’를 끊어버리면, 미국군이 주도하거나 미국군이 단독으로 실시하는 각종 핵전쟁 실전연습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은 제거되고 한반도는 평화와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북측이 끊어버리려는 ‘고리’가 바로 주한미국군이다. 이전에 내가 발표한 글들에서 거듭 지적해온 것처럼, 주한미국군의 완전철군만이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을 제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 길인 것이다.

물론 북측은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만 일방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북측은 자신의 핵무장력을 포기하는 것을 교환조건으로 하여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을 제거하는 일괄타결을 한반도의 비핵화전략으로 설정하였다.

그런데 6자회담에서는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을 제거하기 위한 논의 자체가 진행될 수 없게 판이 짜여져 있었다. 부시 정부는 북측의 핵무장력만 일방적으로 제거하려는 잘못된 방향으로 6자회담을 끌어가려고 애썼던 것이다. 지금까지 6자회담에서 벌어진 격렬한 설전이나 갖가지 우여곡절은, 부시 정부의 계략과 북측의 전략이 충돌한 일련의 현상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측이 왜 처음부터 6자회담을 그만두려고 생각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둘째, 6자회담은 북측에게만 불리했던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도 불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6자회담이 미국에게 불리했다는 말은, 미국이 반드시 다루어야 할 북측의 미사일문제를 다룰 수 없는 결정적인 한계가 6자회담의 전망을 가로막았다는 뜻이다.

부시 정부는 북측의 핵무장력을 제거하려는 자기 계략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북측의 미사일능력을 제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였다. 핵무기와 전략미사일은 동전의 앞뒷면 같이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는 데, 핵무기만 제거하려고 애쓴 것은 부쉬 정부의 시야가 얼마나 비좁은 것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연합뉴스〉 2009년 2월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2009년 2월 12일 미국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대북정책 청문회에 출석한 잭 프릿처드(Charles L. Pritchard)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오로지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을 억지하는 데 집중하는 바람에 지난 2000년 11월부터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에 관한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중대한 외교적 손실 중 하나”라고 지적하였다.

클린턴 정부는 영변 핵시설을 동결시키고 나서, 북측과 미사일회담을 시작함으로써 그들 나름대로 비핵화전략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부시 정부는 그 정도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6자회담만 밀고 나가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사고의 빈곤을 드러낸 까닭이 거기에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모두 다루었어야 하는 데 핵문제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6자회담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스스로 그만두었어야 했던 잘못된 회담이었다.

6자회담은 오바마 정부가 폐기해야 할, 부시 정부의 쓸모없는 유물이다. 선행 정부가 추진해온 일이고, 더욱이 중국, 러시아, 일본, 남측이 미국과 더불어 동참해온 일이라서 설령 오바마 정부가 제손으로 폐기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도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을 터인데, 이번에 북측이 단호하게 6자회담을 폐기해주었으니 오바마 정부는 속으로 약간의 고마움이라도 느껴야 할 판이 아닌가.

악습의 순환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부시 정부 시기에 국무부 군축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낸 로버트 조셉(Robert G. Joseph)은 2009년 4월 18일 〈내셔널 리뷰 온라인(National Review Online)〉에 발표한 자신의 글 ‘북코리아의 관례적 행동(North Korea's Routine)’에서 북측과 미국은 1993년, 1994년, 1998년, 2006년, 2007년의 경험에서 나타난 것과 똑같은 관례적 행동을 이번에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이번에 북측은 6자회담을 거부하고 핵시설 불능화작업을 중지하고 핵시설 복구작업을 시작하는 대미강공책을 또 다시 꺼내들었다. 북측의 핵시설에 관한 정보에 정통한 식프릿 헥커(Siegfied S. Hecker) 스탠포드대학 교수는 2009년 4월 15일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북측이 앞으로 한 두 주 안에 플루토늄 재처리를 시작할 수 있고, 2008년 6월에 폭파한 냉각탑을 다시 세우는 데는 여섯 달쯤 걸릴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것은 한반도의 비핵화 과정이 원점으로 돌아갔음을 뜻한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한 단계 진전되는가 싶더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순환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러한 순환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순환현상은 로버트 조셉이 주장한 북측의 ‘관례적 행동’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선행 정부의 대북압박 실패경험에서 교훈을 찾기는커녕 실효도 없는 대북 경제제재조치를 자꾸 꺼내들어 비핵화의 진전을 중단시키곤 하는 악습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단계에 접근하지 못하고 6자회담만 맴돌면서 대북관계를 악습의 순환고리에 묶어둔 것이다.

2009년 4월 17일 미주기구(OAS) 회원국 제5차 정상회담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개막연설에서 “미국은 과거의 실수와 그 실수가 발생된 곳을 인정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들의 잘못을 완곡한 어법으로 인정했는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할 가장 커다란 잘못들 가운데 하나는 6자회담을 맴돌다가 툭하면 대북 경제제재조치를 꺼내들고 비핵화의 진전을 중단시키곤 하였던 악습이 아닌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처럼 대북관계를 악습의 순환고리에 묶어두려고 하지만,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이미 나와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을 제거하면, 그에 상응하여 북측은 자기의 핵무장력을 제거한다는 것이 답이다. 그런데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 답을 외면하고 6자회담만 맴돌았다. 그들이 지난 6년 동안 6자회담을 계속 맴돈 것은,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을 제거하기 싫다는 뜻이다. 미국군의 한반도 핵전쟁능력을 제거하려면 주한미국군을 철군해야 하는데,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면 한미동맹체제가 무너지기 때문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6자회담을 맴돌았던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 직후에 6자회담과 양자회담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제 6자회담은 막을 내렸다. 한반도가 6자회담과 영영 이별하게 된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6자회담에 매달렸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는 쓰라린 이별이겠지만, 6자회담 이후 새로운 미래를 찾아가는 북측에게는 속이 후련해지는 이별이다. 이처럼 6자회담과 이별한다고 해서 한반도 정세가 혼돈이나 위기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되돌아보면, 우여곡절 많았던 6자회담 진행과정이야말로 부시 정부의 계략에 의해서 발생한 혼돈과 위기의 돌출을 겪지 아니했던가. 6자회담과 이별하는 것은 지금까지 겪어온 혼돈과 위기를 걷어내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새로운 기회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6자회담과 이별하면서 맞는 새로운 기회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기회 이외에 어떤 다른 것으로 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북측과 미국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뜻에서, 새로운 기회는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그 기회는 북측과 미국이 높은 급 정치회담을 개시하는 협상의 기회다. 뉴욕의 사회과학연구협의회(SSRC)에서 동북아시아 협력안보 프로젝트 책임자로 있는 리언 시걸(Leon V. Sigal)이 2009년 4월 15일 〈연합뉴스〉 기자와 전화로 대담하면서 미국이 “먼저 제재행위를 중단하고 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옳은 지적이다.

로버트 조셉은 위에서 언급한 자기 글에서 북측의 위성발사가 오바마 대통령의 “중대한 시험(major test)”이라고 하면서, “북측의 지도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도발이라고 지적한 북측의 행동에 대한 대응행동을 근거로 그의 결심을 평가할 것”이라고 썼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지난 6년 동안 이어온 악습의 순환고리를 끊고, 한반도 비핵화의 마지막 기회를 살리느냐 아니면 놓치느냐 하는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결심에 달려있다. (2009년 4월 20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