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의 해법은 하나뿐이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의견청취는 두 차례 있었다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로부터 해결요인과 미결요인을 물려받았다. 해결요인이란 부시 정부가 북측을 테러지원국 지정명단에서 해제한 것이고, 미결요인이란 핵검증의정서를 합의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부시 정부가 북측을 테러지원국 지정명단에서 해제한 것은 오바마 정부가 북측과 정치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촉진기능을 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해놓은 나라에 고위관리를 파견하는 것과 다르게, 테러지원국이 아닌 북측에 고위관리를 파견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대북관계에서 오바마 정부가 당면한 과제는, 부시 정부가 어설프게 시도하였다가 실패한 핵검증의정서 합의문제를 원만히 풀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마지막 단계로 진전시키는 것이다. 핵검증의정서를 합의하고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는 당면과제는, 미국 인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민주당이 연방의회 상하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함으로써 유리한 조건에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전권을 행사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2003년 8월 27일에 시작하여 이제까지 여섯 해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리하게 이어져온 다자회담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자회담으로 북측과 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전권행사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에 관해서 좀 더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비핵화의 단계가 1단계에서 2단계로, 다시 3단계로 자꾸 높아질수록 협상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비핵화의 높은 단계를 향해 나아가야 할 오바마 정부는 지난 시기 부시 정부가 비핵화의 낮은 단계에서 겪었던 난항 경험을 연장해서는 도저히 진척시킬 수 없는 매우 힘든 대북협상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미국 언론도 오바마 정부의 대북협상이 매우 힘들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이를테면, 미국의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 2008년 12월 28일자에 실린 기사 ‘오바마, 북측의 핵탈주를 막는 힘겨운 임무에 직면하다(Obama Faces Tough Task of Containing North Korea's Nuclear Breakout)’나, 미국의 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 2009년 1월 27일자에 실린 기사 ‘핵폭탄급 골치거리(Nuke-Size Headache)’가 그러한 사정을 논한 바 있다.

만약 오바마 정부가 비핵화의 낮은 단계에서 진행된 6자회담에서 비핵화의 최종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판이다. 비핵화단계의 상승은 비핵화해법 난이도의 상승을 뜻하며, 동시에 비핵화해법을 찾는 회담의 승격을 뜻한다. 비핵화가 진전될수록 해결해야 할 현안의 수준이 높아지므로 그에 따라 회담의 격도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비핵화의 높은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오바마 정부에게 시급히 요구된 것은, 핵검증의정서 합의문제에 대한 북측의 요구와 의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의견청취이다. 그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대북접촉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전직 고위관리들과 민간전문가들이 북측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자청하여 나선 것은 오바마 정부에게 다행한 일이었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시기를 전후하여 북측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들어볼 기회는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 의견청취는 2009년 1월 13일부터 4박5일 동안 국제정책연구소(Center for International Policy)의 셀릭 해리슨(Selig S. Harrison) 선임연구원이 평양을 방문한 것이고, 두 번째 의견청취는 2009년 2월 3일부터 4박5일 동안 전직 고위관리들과 민간전문가 7명이 평양을 방문한 것이다.

해리슨 연구원이 오바마 정부 출범 직전에 평양을 방문한 것보다 7명으로 이루어진 방문단이 오바마 정부 출범 직후에 평양을 방문한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방문단에는 나중에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된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가 포함되었다. 해리슨 연구원이 자신의 평양방문 경험과 견해를 정리하여 쓴 글을 미국 언론에 발표한 것처럼, 7명의 방문단에 포함된 몰튼 에이브러모위츠(Morton Abramowitz)도 자신의 평양방문 경험과 견해를 정리하여 쓴 글을 미국 언론에 발표하였다. 에이브러모위츠는 국무장관 보좌관, 국방장관 보좌관을 지냈고, 국무부 정보연구담당 차관보를 역임하고 지금은 세기재단(Century Foundation)의 선임연구원이다.

두 연구원의 위험한 역발상

해리슨 선임연구원이 글을 먼저 발표하였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2009년 2월 17일자에 쓴 자신의 글 ‘핵보유 북코리아와 지내는 것(Living with A Nuclear North Korea)’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해법에 대해 논하였다. 그로부터 아흐레 뒤인 2월 26일 에이브러모위츠 선임연구원은 닉슨센터(Nixon Center)가 운영하는 웹싸이트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에 발표한 자신의 글 ‘북코리아의 허용정도(North Korean Latitude)’에서 해리슨 선임연구원이 논한 것과 같은 주제를 논하였다.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이 일원으로 참가한 방문단이 평양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비롯한 북측 고위관리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정리하면, 북측은 6자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불능화(disable)하여 비핵화 2단계를 마무리하기를 바란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불능화한다는 말은 평안북도 영변에 있는 핵시설을 불능화한다는 뜻이고, 불능화란 철거(dismantle)하기 직전의 상태를 뜻한다. 다른 한편, 해리슨 연구원이 북측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북측이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조치에 상응하여 미국이 이행해야 하는 것은,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측에 제공하기로 약속하였으나 아직 이행하지 못한 중유제공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미국이 조직화한 합의사항을 실행하는 것이다.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이 북측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비핵화 3단계에서는 북측이 경수로를 제공받는 조건에서 플루토늄 구조(plutonium structure)를 철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플루토늄 구조를 철거한다는 말은 영변 핵시설을 철거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비핵화 3단계에 들어가서 경수로 제공과 영변 핵시설 철거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서 이행하여야 한다는 의사를 북측이 표명한 것이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이 전한 바에 따르면, 2009년 2월 17일부터 19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중국 외교부 우다웨이(武大偉) 부부장에게 북측은 포괄적 핵검증절차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경수로 두 기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에서 북측과 미국이 채택한 기본합의(Agreed Framework)에 따르면, 북측이 영변 핵시설을 동결(freeze)하는 것에 상응하여 미국은 100만kw급 경수로 두 기를 북측에 건설해주기로 하였다. 경수로 건설공사는 1997년 8월에 착공되었는데, 부시 정부가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버리는 바람에 공정률이 34.5%에 이르렀던 2003년 12월에 중지되고 말았다. 2009년 1월 27일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교 한국학연구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클린턴 정부 시기에 북측의 경수로 공사를 추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사무총장을 지낸 찰스 카트먼(Charles Kartman)과 그 기구에서 정책보좌관을 지낸 로벗 칼린(Robert Carlin), 그리고 미국 국무부 북코리아담당관을 지낸 조엘 위트(Joel Witt)는 이구동성으로 오바마 정부가 북측에 경수로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영변 핵시설을 철거하는 문제에 관한 북측의 의사를 정확하게 들은 사람은 해리슨 연구원이다. 그가 전한 바에 따르면, 북측 인사들이 그에게 설명한 요구조건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클린턴 정부가 착공하였으나 부시 정부가 중단해버린 경수로 두 기를 건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열린 6자회담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규정된 ‘확장된 검증과정(broadened verification process)’을 실행하는 것이다.

북측이 말한 확장된 검증과정이란 북측과 주한미국군의 상호핵사찰을 뜻한다. 해리슨 연구원에 따르면, 그것은 “미국이 1991년에 발표한 대로 남측에서 핵무기를 철수하였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 북측이 주한미국군 기지들을 사찰하는 것이고, 그에 상응해서 미국은 북측의 비군사적 핵시설들(nonmilitary nuclear installations)을 사찰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북측에서 시행할 사찰에는 의혹이 가는 핵폐기물 처리장들(nuclear waste sites)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미국이 가장 중시하는 요구가 포함되지만, 무기화된 플루토늄은 미국의 사찰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측이 주한미국군 기지를 사찰하지만 미국은 북측의 군사기지를 사찰하지 못하고 비군사적 핵시설(영변 핵시설)만 사찰하는 것은 비대칭 상호사찰이다. 오바마 정부가 그러한 비대칭 상호사찰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실행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비대칭 상호사찰에 관한 북측 인사들의 설명을 들은 해리슨 연구원은 그 설명에 들어있는 진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북측이 갑자기 ‘강경노선’으로 선회한 것으로 생각하고 얼떨떨한 느낌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북측이 오바마 정부에게 경수로 제공과 비대칭 상호사찰을 요구하는 것은 갑자기 ‘강경노선’으로 선회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니다. 경수로 두 기를 북측에 제공하는 것과 북측과 주한미국군이 상호핵사찰을 실시하는 것은 이미 클린턴 정부 시기에 제기되고 충분히 토론된 요구조건들이다. 당시 클린턴 정부는 경수로 두 기를 제공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였지만, 북측과 주한미국군이 상호핵사찰을 실시하자는 요구에 대해서는 논쟁만 하다가 끝났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북측이 ‘강경노선’으로 선회하였다는 해리슨 연구원의 주장은 클린턴 정부의 대북협상 경험에 대한 망각이 빚어낸 착오이다.

북측이 대미관계에서 갑자기 ‘강경노선’으로 선회한 것으로 착각한 해리슨 연구원은 어이없게도 북측 내부의 강온파 정책갈등에서 선회원인을 찾으려 하였다. 그는 “국방위원회의 강경파(hard-liners)와 대미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실용주의자들(pragmatists) 사이에서 정책갈등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면서, “북측과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미국의 관여정책은 실용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강경파와 온건파의 정책갈등은 오바마 정부에서나 있는 일상사이지, 북측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북측에서 강경파와 온건파의 정책갈등이 있다면, 미국의 역대정권들에게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일관되게 요구해올 수 없었을 것이고, 상황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요구들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전협정 이후 56년 동안의 경험이 입증하듯, 북측의 대미정책은 오로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북측의 대미협상은 오로지 주한미국군 철군을 요구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여왔다. 북측에서 어떤 파벌이 형성되어 서로 갈등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북측의 정치현실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발언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

북측이 오바마 정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대칭 상호사찰을 요구한 것은, 핵사찰이 비핵화의 해법으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측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핵사찰로는 실현할 수 없으므로 정치회담으로 실현하여야 한다고 되풀이하여 주장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최종해법은 핵사찰이 아니라 정치회담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핵사찰로는 한반도를 비핵화할 수 없으므로 정치회담으로 비핵화하자는 북측의 요구도 위에서 말한 다른 요구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이미 클린턴 정부 2기에 북측과 미국은 높은 급 정치회담을 성사시켰을 뿐만 아니라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정상회담 개최까지 합의하고, 그 합의를 실행 직전까지 진전시킨 바 있다.

정치회담으로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최종해법은 북측과 클린턴 정부가 오래 전에 이미 합의한 바 있으므로, 오바마 정부는 있지도 않는 그 어떤 다른 해법을 찾으려고 골몰하며 허송세월할 것이 아니라 이미 합의한 해법을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문제의 핵심은 북측을 상대하는 높은 급 정치회담에 나설 의사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리슨 연구원과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은 높은 급 정치회담 개최라는 비핵화의 최종해법을 외면하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은 “북측을 핵무기 포기로 이끌어가는 것은 신속하게 취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없는 듯하다”고 하면서, “미국은 북측의 핵무기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신중한 제안을 제기할 수 있지만, 북측이 과연 언제까지 핵무기를 포기할지는 알지 못한다”고 썼다. 또한 그는 “최선의 해법은 정권교체(regime change)이지만, 미국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북측의 정권교체를 추진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고 썼다. 또한 그는 “남측 정권이 지난 10년 동안 앞서서 경험한 것처럼, 장기적 관여(long-term engagement)를 포함하는 폭넓은 정책을 추진해보았으나 북측에서 일어난 변화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였다. 그가 말한 관여정책이란 햇볕정책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정권교체니 햇볕정책이니 하면서 실패한 과거사를 이제 와서 다시 꺼내놓는 것이야말로 파탄을 자초하는 위험한 역발상이다.

부시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였던 정권교체도 불가능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하였던 햇볕정책도 성과가 없다고 지적한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은 오바마 정부가 처한 현재 상황을 “굴 끝에 비치는 불빛마저 희미하게 보이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북측과 클린턴 정부가 2000년 10월에 합의한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최종해법이 엄연히 있는데도, 그것을 애써 무시, 외면하였으니 앞길이 캄캄하게 보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의 묘사법을 빌려 다시 표현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굴 속 어둠에서 벗어나 광명을 찾는 유일한 방도는 정치회담을 통한 비핵화 합의밖에 없다.

공염불은 해법이 아니다

해리슨 연구원과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은 정치회담을 통한 비핵화 합의라는 최종해법을 외면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았는데, 그들의 견해와 주장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은근한 무시(benign neglect)’라는 해법이다. 해리슨 연구원이 말한, 북측을 은근히 무시하는 해법이란, 오바마 정부가 대북 관계정상화나 대북 경제지원을 모두 중지하고, ‘정권교체’를 노리는 대북 적대정책도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 것이다. 말로는 은근히 무시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도 “은근한 무시가 적절한 해법으로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해리슨 연구원은 “은근히 무시하는 전략의 목적은 북측이 자기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려는 현재의 양국 교섭관계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다시 말하면, 오바마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비대칭 상호핵사찰을 북측이 요구하고 있으므로, 이참에 오바마 정부가 아예 대북교섭을 중단해버리고 북측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논법이다.

그러나 북측을 무시하는 전략은 해리슨 연구원이나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이 처음으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지난 시기에 미국의 역대 정권들이 줄곧 북측에 대해 취해왔던 낡은 전략이며, 핵무기 개발, 미사일 발사훈련, 지하핵실험 실시, 위성발사체 발사 같은 북측의 초강경한 압박공세에 의해서 이미 파탄나버린 전략이다. 현재 진행 중인 은하 2호 발사준비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관계에서 취해온 ‘은근한 무시’가 존립근거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음을 현실로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파탄되어버린 과거전략을 이제와서 다시 꺼내보는 것이 어떠냐 하고 제안하는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56년 동안 숱한 위기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국 2000년 10월에 정치회담 개최에까지 나아간 조미(북미)관계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 했던 부시 정부의 망동과 닮은꼴이다. 해리슨 연구원도 자신의 말에서 모순을 느꼈는지, “북측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도발적 행동으로 반격하기 쉽기 때문에 그 전략은 위험하다”고 지적하였다.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도 “은근한 무시는 (줄임) 북측의 도발, 전쟁공포, 회담재개로 불가피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은근한 무시’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이미 파탄나버린 ‘은근한 무시’라는 해법 아닌 해법을 다시 꺼낸 그들의 역발상이 위험한 것이다.

둘째, 북측의 핵무기 보유량을 4-5개 정도로 제한하고 넘어가는 해법이다. 해리슨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핵강국을 상대할 수 있다면, 북측이 (4-5개 밖에 되지 않는-옮긴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을 용인할 수 있다”고 썼다.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도 “클린턴 국무장관이 아시아 순방 중에 지적한 것처럼, 이것은 미국이 6자회담을 재개하고, 북측이 플루토늄을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최소한의 방도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그러나 해리슨 연구원이 북측은 핵탄두를 4-5개 밖에 갖지 못했다고 하면서 북측의 핵무기 제조능력을 과소평가한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북측이 얼마나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극비사항이어서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파키스탄의 핵탄두 보유에 관한 정보를 살펴보면 북측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1971년에 파키스탄이 인도와 벌인 전쟁에서 패하여 동파키스탄을 잃어버리자 그 이듬해인 1972년 1월 20일 파키스탄인민당(PPP) 창건자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Zulfiqar Ali Bhutto) 당시 총리는 핵무기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고,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핵기술을 습득한 유능한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이 1975년에 파키스탄에 귀국하면서 그의 주도로 핵무기 개발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파키스탄이 지하핵실험에 성공한 날은 핵무기 개발사업을 추진하였던 때로부터 26년이 지난 1998년 5월 28일이다.

해리슨 연구원이나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은 영변 핵시설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였지만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북측의 핵기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유일한 외국인이다. 그는 2008년 6월 3일 미국의 <맥클랫치-트리뷴 통신사(McClatchy-Tribune News Service)>와 진행한 대담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북측의 핵기술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북측의 프로그램은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는 공정에 전적으로 기초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핵개발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핵기술에 정통하였다. 나는 북측의 핵체계를 직접 보고나서 우리 정부에게 북측은 매우 훌륭한(excellent) 핵기술을 보유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북측의 핵체계는 우리보다 훨씬 더 진보한(much more advanced) 것이고, 매우 정교한 설계(very sophistigated designs)인 것이다.” 칸 박사의 발언에서 드러난 매우 놀라운 사실은, 파키스탄이 핵무기 개발사업을 시작하였던 1972년 이전에 북측이 이미 핵기술에 정통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늘날 북측이 첨단핵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008년 10월 24일 <동아일보>가 외교소식통을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측이 2008년 6월 26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게 보낸 핵신고서에서 밝힌 플루토늄 추출량은 30.8kg인데, 그 가운데 2kg은 2006년 10월 9일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에 사용했고 나머지 28.8kg을 가지고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불과 2kg밖에 되지 않는 플루토늄을 가지고 핵탄두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칸 박사가 자기의 발언에서 강하게 암시한 것처럼, 북측이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첨단핵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2000년 6월 9일 <워싱턴 타임스(The Washington Times)>가 미국의 군사정보를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00년 현재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탄두는 최대 100개에 이른다고 한다. 북측에 비하여 뒤떨어진 핵기술을 보유한 파키스탄이 최대 100개에 이르는 핵탄두를 보유하였다면, 파키스탄을 능가하는 높은 수준의 핵기술을 이미 오래 전에 개발한 북측이 핵탄두를 겨우 4-5개 밖에 만들어내지 못하였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북측도 파키스탄이 보유한 만큼 핵탄두를 많이 보유하였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북측이 핵탄두를 겨우 4-5개 밖에 보유하지 못하였다고 착각한 해리슨 연구원이 자신의 착각에 기초하여 꺼내놓은 해법이라는 것은, “6자회담의 비핵화협상을 계속 추진하여 북측의 핵무기 보유량을 현재까지 외부에 알려진 대로 4-5개 탄두로 제한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말할 나위 없이, 그러한 해법은 해법이 아니다.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최대 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측의 핵탄두 보유량을 4-5개로 제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린다.

해리슨 연구원은 자기가 말한 해법을 실행하려면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가 말한 ‘전제조건’이란 핵탄두 보유량을 제한하기 위해서 북측의 플루토늄 생산을 영구히 중지시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플루토늄 생산을 영구히 중지시킨다는 말은 영변 핵시설을 철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변 핵시설을 철거하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는 데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충족하여야 하는 북측의 요구는, 위에서 논한 것처럼, 경수로 두 기를 완공하는 것과 비대칭 상호핵사찰을 실시하는 것이다. 해법의 결말이 실행가능성 없는 비대칭 상호핵사찰로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해리슨 연구원이 논한 것은 해법이 아니라 공염불이다.

실행가능성 없는 공염불을 해법이라고 꺼내놓은 것은 미국인 전문가들의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낸 일이지만, 더 중요한 점은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과제가 미국인 전문가들이 빠져있는 기능주의적 폐쇄회로를 통해서는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고도의 정치문제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해법은 하나밖에 없다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 자신이 일원으로 참가한 방문단이 평양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북측이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 밝힌, 핵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은 미국의 적대행위 종식(ending American hostility), 미국의 핵우산 철거(removing the U.S. nuclear umbrella) 또는 한미동맹 종식(ending our alliance with the South)”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전에 발표한 여러 글들에서 거듭해서 지적한 것처럼, 북측이 핵무기 포기에 상응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백하게도 한미동맹 종식이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폐기라는 말이나 한미동맹 종식이라는 말은 같은 뜻이며, 한미동맹 종식이라는 말과 미국군 핵우산 철거와 주한미국군 완전철군이라는 말도 역시 같은 뜻이다.

경수로 제공이 영변 핵시설을 철거하기 위한 경제적 보상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요구하는 것이라면, 한미동맹 종식은 최대 100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핵탄두를 폐기하는 것에 상응한 정치적 결단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촉구하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이 최대 100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핵탄두를 폐기하는 조건으로 한미동맹을 종식하라고 요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한미동맹을 종식시키는 것으로 한반도를 비핵화할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입밖에 꺼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 종식은, 남측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끊고 적대관계로 돌아선다는 뜻이 아니다. 동맹관계라는 구실을 내걸고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가로채고 남측에 미국군을 무한정 주둔시켜오는 것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핵재앙으로 몰아넣을 위험천만한 핵전쟁 실전연습을 끊임없이 실시해오는 적대행위를 영구히 중지함으로써 한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한미동맹 종식이 뜻하는 바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미동맹을 종식한다는 뜻에서 한미관계의 정상화라고 말할 수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조미(북미)관계의 정상화라고만 이해해온 기존의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미관계의 정상화까지 포함하여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가 비핵화될 때 조미(북미)관계와 한미관계가 모두 정상화된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인 변화로 되는 것이며,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되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면서도 그에 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까닭은, 한미동맹을 종식시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가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 시리아, 쿠바, 미얀마 같은 나라들에게는 관계개선의 신호를 보내면서도 유독 북측에 대해서는 관계개선의 신호조차 보내지 못하고 되레 은하 2호 발사준비를 강행하는 북측의 대미강공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버린 까닭은, 한미동맹을 종식시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에이브러모위츠 연구원은 한미동맹을 종식시키는 문제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터라, 한미동맹 종식에 관한 북측의 요구를 직접 북측으로부터 듣고서도 한미동맹 종식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였지만, 북측은 한미동맹 종식이라는 대사변을 한꺼번에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측이 지금까지 펴낸 각종 관련자료들을 분석해보면, 북측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히 중지하여 핵우산 제공 공약을 폐기하는 한편,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하여 조미(북미)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한미동맹 종식이라는 최종목표에 이르게 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한미동맹 종식이라는 최종목표에 이르는 핵심고리는 주한미국군 철군이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국무장관은 2009년 3월 26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뉴스(Fox News)>의 대담에 출연하여 “나와 오바마 대통령은 (6자)회담을 재개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표명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뜻을 북측에 제기하였고,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내겠다는 뜻도 전했으나 북측은 그의 방문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측이 차관보급인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만나는 낮은 급 실무회담 제의를 거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북측의 당면요구는 클린턴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높은 급 정치회담을 개최하는 것이다.

북측이 오바마 정부와 높은 급 정치회담을 추진하려는 까닭은, 대미협상에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의제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차관보급이 참가하는 낮은 급 실무회담에서는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 지난 시기의 경험을 돌아보면, 북측은 4자회담에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의제화하려고 하였으나 클린턴 정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결국 4자회담 자체가 무산되고 말았다. 4자회담이 무산된 뒤에도 북측은 클린턴 정부와 미사일회담을 진행하면서 또다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의제화하려고 하였다. 1999년 7월 30일 북측의 조선중앙방송은 “미싸일발사문제를 재고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한 바 있는데, 그것은 미국의 대북제재 철회, 미국의 군사위협 중지, 한미일 공조 중단, 주한미국군 철군, 평화협정 체결이다.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의제화할 높은 급 정치회담의 개최, 바로 이것이 오직 하나뿐인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이다.  (2009년 3월 30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