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문제 허위보도와 국무장관의 ‘금기깨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측은 왜 낙타와 야크를 수입하였을까?

중국의 〈신화통신(新華通訊)〉 2009년 2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遙寧省) 달리안(大連)에 있는 동물원에서 낙타 네 마리와 야크(yak) 두 마리를 북측에 수출했다고 한다. 야크는 히말라야 지방에 사는, 생김새가 들소 같은 야생동물이다. 남측 보수언론은 북측이 왜 낙타와 야크를 수입하였는지를 〈신화통신〉이 밝히지 않아 궁금증이 생긴다고 보도하였다.

북측이 왜 낙타와 야크를 수입하였는지 정 궁금하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낙타와 야크를 동물원에서 기르기 위해 수입한다는 상식은 초등학교 아이들도 알고 있다. 2008년 12월 2일 〈로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년 동안 개건확장공사를 마친 평양의 중앙동물원을 시찰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 중국에서 수입한 낙타와 야크는 그곳에서 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측 보수언론은 북측이 왜 낙타와 야크를 수입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고 하였다. 어처구니없는 보도다. 북측이 한미연합군의 레이더망을 피할 수 있는 낙타부대와 야크부대를 신설하려고 낙타와 야크를 수입하였다는 식의 허위보도를 내보내지 않고 그냥 궁금하다고 쓴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일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북측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무조건 의혹부터 품는 조건반사적 심리반응이 정상적인 판단을 배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북측에 대한 해내외 보수언론의 각종 보도는 거의 예외 없이 정상적인 판단을 배제한 허위보도다. 반공독재정권이 심어놓은 우익정치이념, 사회병리현상으로 퍼져있는 대북혐오증, 그리고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색다른 기사를 써보고 싶은 취재기자의 욕망이 뒤엉킨 결과가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경제정책파탄을 폭로한 누리꾼 ‘미네르바’를 허위사실 유포죄에 걸어 법정에 세우면서도, 북측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사법처리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한다. 확인할 수도 없고, 상식적으로 믿을 수도 없는 ‘대북정보’를 이명박 정권 자신이 언론에 공개하는 판이니,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는 보수언론이 북측에 대한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하는 것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묻기는커녕 그러한 행위를 고무해주고 장려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리하여 남측 보수언론은 북측에 대한 허위보도를 마음껏 쏟아내는 무한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1997년 8월 15일 자진하여 입북한 오익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해서 남측의 대표적인 보수언론매체인 〈신동아〉가 2008년 10월호에 ‘유인납치설’을 보도하여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통일뉴스〉 방북취재단이 2008년 12월 12일 평양에서 오익제 부위원장을 직접 만나 대담한 기사와 대담현장 동영상을 내보냄으로써 〈신동아〉가 보도한 ‘유인납치설’이 날조임을 밝혀냈다. 오익제 부위원장의 입북사실에 대한 〈신동아〉의 허위보도와 그에 대한 〈통일뉴스〉의 반론보도는, 이 땅의 언론사에서 북측에 관련된 보도를 둘러싸고 처음으로 벌어진 진실보도 대 허위보도의 대결이었으며, 그 대결에서 진실보도가 승리한 진보언론의 쾌거였다. 〈신동아〉의 허위보도는 이처럼 〈통일뉴스〉의 현지취재로 파탄나고 말았지만, 해내외 보수언론이 날마다 쏟아내는 북측에 관련된 보도의 진위여부를 진보언론의 현장취재로 일일이 밝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언론보도는 언제나 공정하게 작성되는 것이라고 간단히 믿어버리는 맹신이 허위보도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일반대중이 보수언론의 북측관련 허위보도를 믿는 맹신에 사로잡혀 있는 한,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북측을 무조건 의심할 것이 아니라 보수언론의 북측관련 보도를 무조건 의심해보아야 허위보도를 믿는 맹신에서 벗어나 이성적 판단력을 회복할 수 있다.

남북관계 발전에 해악을 끼치는 각종 북측관련 허위보도들 가운데, 가장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것은 북측의 후계문제에 관한 허위보도다. 해내외 보수언론이 북측의 후계문제에 관하여 날조수법을 동원하여 계속 허위보도를 내보내도 북측이 그 문제에 대해서 반박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보수언론은 잘 알고 있다.

한편, 북측의 후계문제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남측의 진보단체들은 후계문제에 관한 보수언론의 허위보도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 채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이처럼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보수언론은 북측을 심하게 자극하고 남측의 일반대중에게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후계문제 허위보도를 마음놓고 내보낸다.

해내외 보수언론의 후계문제 허위보도

지난 시기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후계자로 선출되기까지 대만의 보수언론은 중국의 후계문제를 보도하지 않았고, 2008년 3월 15일에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후계자로 선출되기까지도 그러하였다. 그런데 대만의 보수언론과 다르게, 남측의 보수언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문제를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하고 있다.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은, 해내외 보수언론이 자기들 멋대로 북측의 후계자를 ‘선정’하고 ‘발표’한다는 사실이다. 이성을 잃은 행동으로 보인다.

자기들 멋대로 북측의 후계자를 ‘선정’하고 ‘발표’하는 식의 이성을 잃은 보도에 앞장선 언론기관은 〈연합뉴스〉다. ‘정보소식통’의 제보를 인용하여 작성한 〈연합뉴스〉 2009년 1월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결정교시를 각 도당에 하달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는 그 내용과 똑같은 보도를 한 달 뒤인 2월 15일에도 또 내보냈다.

다른 한편, 일본 언론들도 북측의 후계문제에 관한 허위보도에 열중하고 있다. 2009년 2월 17일 일본 일간지 〈마이니치신붕(每日新聞)〉은 베이징발 기사에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결정되었음을 알리는 내부통신을 하달하였다고 썼다. 〈마이니치신붕〉은 2008년 12월 1일 도쿄발 기사에서는 북측이 후계문제로 혼란을 겪는다고 하더니, 2009년 2월 17일 기사에서는 후계자가 결정되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일본 일간지 <아사히신붕(朝日新聞)>은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한 2009년 3월 15일자 보도에서, 북측의 당조직지도부가 2008년 12월 1일자로 고위간부들에게 “김씨 가문의 사람이 후계자로 된다는 점에 대해 내부에서 사상교육을 철저히 하라는 취지”의 내부통신을 하달하였다고 썼다. 일본 일간지 〈요미우리신붕(讀賣新聞)〉은 미국의 정보소식통을 인용한 2009년 1월 14일자 보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에 대비해서 집단지도체제가 구축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물론 남측과 일본의 보수언론이 써낸 위의 보도내용은 전부 날조된 허위사실인데, 그들의 보도행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허위보도가 세 갈래로 나왔다는 점이다. 첫째는 후계자가 이미 결정되었다고 날조한 것이고, 둘째는 북측이 후계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고 날조한 것이고, 셋째는 집단지도체제가 구축되고 있다고 날조한 것이다. 후계문제에 관한 허위보도는 ‘건강이상설’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강이상설’ 허위보도가 ‘급변사태설’의 변종으로 출현하였다면, 후계문제에 관한 허위보도는 ‘건강이상설’의 변종으로 출현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북측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에 대비해서 집단지도체제가 구축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쓴 일본언론의 허위보도가 미국의 정보소식통의 제보를 근거로 작성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보소식통을 인용하였다면, 미국 국가정보기관이 흘려준 ‘대북정보’를 인용하였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미국 국가정보기관은 북측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에 대비하여 집단지도체제를 구축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북측의 후계문제에 대해 허위사실을 날조하는 것이라라면, 남측의 국가정보원이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2009년 2월 25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원세훈 신임 국정원장은 북측의 후계문제에 관한 ‘예측’을 내놓았다. 물론 신임 국정원장의 ‘예측’도 어떤 정보자료를 합리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해내외 보수언론에 떠도는 허위사실을 옮겨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보수언론과 정보기관은 사회주의체제의 정권계승에 관한 무지와 오해와 반감이 빚어내는 날조촌극을 경쟁적으로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후계문제에 대한 합리적 판단

해내외 보수언론이 내보내는 북측의 후계문제에 관한 허위보도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맹신에서 벗어나려면, 후계문제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후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뜸 ‘세습’이라는 말부터 뇌리에 떠오른다면, 그것은 후계와 세습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와 혼동 속에 파고 든 보수언론의 허위보도에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남측의 일반대중에게 아주 생소한 북측의 후계문제를 이해하려면, 북측의 후계문제와 남측의 선거문제를 비교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다. 자기에게 낯선 어떤 현상을 대할 때, 그 낯선 현상을 자신에게 익숙한 현상과 비교하여 고찰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자본주의체제의 정권계승방식은 선거(election)이고, 사회주의체제의 정권계승방식은 후계(succession)다. 선거와 후계는 상이한 두 체제에서 각각 행해지는 고유한 정권계승방식들이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계승하는 까닭은, 국민과 대통령의 관계가 계약관계이기 때문이다.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서 성립되는 계약이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성립되는 고용계약과 달리, 국민이 대통령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을 계약기간 동안 맡기는 정치적 계약(political contract)이다. 흔히 대통령 임기라고 알고 있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대통령은 권한을 내놓고 물러나야 하고, 국민들은 새로운 대통령과 계약을 맺는다. 대통령직은 계약직이고 선거는 계약체결이다.

그와 다르게 사회주의체제에서 후계를 통하여 정권을 계승하는 까닭은, 인민과 수령의 관계가 의리관계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 당총서기, 국가주석,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같은 최고직책은 모두 공직선출과정을 거쳐 취임하지만, 수령은 인민과의 의리관계 속에 존재하는 지위이지 어떤 공직선출과정을 거쳐서 취임하는 직책이 아니다.

인간관계가 거의 모두 계약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체제에서 의리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더욱이 사회주의체제의 수령을 ‘독재자’라고 비방중상해온 자본주의체제에서 인민과 수령의 의리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계약관계는 계약조건이 끝나면 해제되는 관계이지만, 의리관계에는 계약조건이 있을 수 없으므로 어느 한 쪽이 배신하지 않는 한 의리관계는 영원히 해제되지 않는다. 흔히 동지의 의리는 영원하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의리관계의 영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자본주의체제에서 국민과 대통령의 계약관계가 선거를 통하여 형성된다면, 사회주의체제에서 인민과 수령의 의리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인민과 수령의 의리관계는 혁명을 통하여 형성된다. 낡은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바꾼다는 뜻으로만 혁명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 아니라, 혁명적 인민이 출현하고 혁명의 수령이 등장함으로써 양자의 운명이 의리관계로 결합된다는 뜻으로도 혁명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혁명1세대가 혁명에서 승리하여 사회주의체제를 세운 뒤에 세월이 흐르면 후계세대인 혁명2세대가 자라나게 되는데, 만일 혁명2세대가 혁명을 계승하지 않으면, 혁명1세대가 형성한 인민과 수령의 의리관계는 차츰 약화되다가 나중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혁명계승은 멈추고 정권계승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후계세대가 혁명을 계승하지 않는 비혁명적인 사회주의체제에서 인민들은 자기의 최고지도자를 선출하여 정권을 계승하지만, 자기의 수령을 추대하여 혁명을 계승하지는 못한다. 비혁명적인 사회주의체제에서는 인민과 수령의 의리관계가 형성될 수 없으므로 최고지도자를 선출할 수는 있어도 수령을 추대하지는 못한다. 지난 시기에 실제로 소련과 동유럽에서 그러한 사태가 일어났다.

위에서 논한 대로, 계약관계와 의리관계는 남북의 상이한 두 체제를 각각 유지해주는 고유한 사회정치적 관계들이다. 남북에 각각 존재하는 사회정치적 관계가 서로 다르므로, 정권계승방식도 당연히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남북의 사회정치적 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북측에서도 남측과 마찬가지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계승해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것은 궤변이다. 계약관계에 기초한 정치는 민주정치이고 의리관계에 기초한 정치는 독재정치라는 식의 왜곡선전에 빠지면, 북측의 후계문제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선거과정에서는 국민이 대통령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차기 대통령을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후계과정에서는 당이 후계자의 자질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후대 수령을 올바르게 추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때는 2007년 8월 20일이었고,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은 2007년 12월 19일이었으므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기간은 불과 넉 달밖에 되지 않았다. 후보로서 활동하는 기간은 선거를 준비하는 기간이므로, 선거열기에 들뜬 유권자들이 넉 달 동안에 그의 국정운영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와 다르게, 사회주의체제에서 후계자를 선출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10년쯤 된다. 당이 길러낸 차세대 정치지도자들 가운데서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오랜 기간 동안 평가한 뒤에 후계자를 정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는 후계자를 어떻게 선출할까?

중국에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후계자를 선출한 과정을 살펴보면 사회주의체제의 후계과정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나중에 장쩌민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선출된 후진타오는 1964년에 칭화대학(淸華大學) 재학 중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이듬해 칭화대학 수리공학부를 졸업하였다. 1968년부터 중국의 가난한 내륙지방 간수성(甘肅省)에 있는 발전소에서 수리공학기사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중국공산당 간수성위원회 서기였던 송핑(宋平)의 추천을 받아 1982년에 베이징에 있는 중공중앙당교(中共中央黨校)에 들어가기까지 14년 동안, 만약 그가 경제건설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하지 않았거나 지방당 간부로서 정치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남다른 자질과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였다면 후계자 후보로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1982년에 중공중앙당교에 들어간 때부터 1993년에 후계자로 선출되기까지 11년이 걸렸다.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선출된 과정도 마찬가지다. 중국혁명에 참가한 혁명1세대 시종순(習仲勛)의 막내아들로 1953년에 태어난 시진핑은 1974년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고, 1979년에 칭화대학 화학공업부를 졸업하였고, 1982년에 후베이성(河北省) 정딩현(正定縣) 서기에 취임하였다. 2007년 상하이(上海)시 당위원회 서기에 취임하기까지 25년 동안 그는 후베이성, 저장성(浙江省), 푸전성(福建省)에서 지방당 간부로서 헌신적으로 일하면서 남다른 자질과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2008년 3월 15일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됨으로써 사실상 후계자로 등장하였다. 2002년 저장성 당위원회 서기로 선출된 그가 2008년에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되기까지 6년이 걸렸다.

그에 비해, 자본주의체제의 대통령 후보에게는 준비기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선거기간 넉 달 동안 엄청난 선거비용을 뿌리면서 선거광고를 잘 해서 유권자의 인기를 얻으면, 자질과 능력이 없는 사람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본주의 정당에는 당간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과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자질과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를 길러낼 수 없으므로, 대통령을 4년 또는 5년마다 자꾸 새로운 인물로 바꾸다보면 나중에는 자질과 능력이 고만고만한 정치인들 가운데서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글에서 북측의 후계자 선출과정을 먼저 설명하지 않고 중국의 후계자 선출과정부터 설명한 까닭은, 보수언론이 북측의 후계자 선출과정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무조건 ‘부자세습’이라고 날조해버린 허위보도가 일반대중의 후계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하게 왜곡하였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0년 9월 1일 김일성종합대학교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그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를 ‘천리마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까닭은, 그 세대가 천리마운동의 열기 속에서 청춘의 열정을 불태웠기 때문일 것이다. 천리마운동은 생산노동에 열심을 내자는 주민동원운동으로 남측에 잘못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천리마운동은 생산공정을 합리화하여 효율을 높이고 생산설비를 개선하여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경제건설운동이었을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모든 근로자를 사회주의건설의 주체로 만드는 사상교양운동이었다. 북측에서 전개한 천리마운동이 사상교양에 의거하여 경제건설을 추진하였다는 사실이야말로, 북측의 경제건설과정이 다른 사회주의나라들의 경제건설과정과 뚜렷이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특유한 본질이다.

천리마운동의 열기 속에서 청년기를 보내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때는 대학 재학시절인 1961년 7월 22일이었다. 그는 대학생 당원으로서 당세포 조직생활, 생산현장 노동생활, 사상이론활동에 노력을 집중하였다. 그는 당세포 조직활동에서 ‘당생활 총화제도’를 발기하였고, 생산현장 노동생활에서 ‘26호 모범기대 창조운동’을 발기하였고, 사상이론활동에서 ‘만페지 책읽기 운동’을 발기하였다. 특히 ‘만페지 책읽기 운동’은 독서장려운동이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을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체득하는 사상교양운동으로서 천리마운동의 사상교양사업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1964년 6월 19일부터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지도원으로 사업하기 시작하였다.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선출되기까지 10년 동안, 그는 사상이론분야와 문화예술분야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11년의 후계준비기간이 중요하였고, 시진핑 국가부주석에게 6년의 후계준비기간이 중요하였던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는 10년의 후계준비기간이 중요하였다. 북측에서 펴낸 여러 문헌들에 따르면,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고 한다. 북측에서 펴낸 여러 문헌들은, 그가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년 동안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Kimilsungism)로 정립하는 사상혁명업적을 이룩하였고, 사회주의 문예부흥을 일으키는 문화혁명업적을 이룩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북측의 혁명1세대는 일제식민지시기에 수행한 항일혁명과 8.15 해방 직후 북측에서 수행한 민주주의혁명을 통하여 인민과 수령의 의리관계를 형성하였고, 혁명2세대는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통하여 인민과 수령의 의리관계를 형성하였고, 혁명3세대는 선군혁명을 통하여 인민과 수령의 의리관계를 형성하였다.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룩한 혁명2세대 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가 되었으므로, 앞으로 때가 되면 선군혁명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룩한 혁명3세대 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혁명계승이 멈춰지고 정권계승만 지속되는 것에 비해, 북측에서는 혁명계승과 정권계승이 의연히 지속되고 있다.

금기를 깬 국무장관

2009년 2월 19일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국무장관이 탑승한 전용기가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에 내려앉았다. 인도네시아 방문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국무장관 전용기에는 외신기자들도 함께 탔다. 수다스러운 외신기자들이 길고 따분한 항공여로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리 만무하였다. 전용기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국무장관의 비공식 기자회견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클린턴 국무장관이 비공식 기자회견에서 꺼내놓은 발언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북측에서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바뀌는 경우에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내부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더욱 도발적인 행동을 자극할 것이라는 점에서 (북측의 대남)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북측에서) 후계문제를 들러싼 내부권력투쟁이 일어나고, 북한 지도체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북한과 인접국가 간의 긴장이 고조되지나 않을까 깊이 걱정한다.”

“누가 김정일 위원장의 뒤를 이을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전략을 신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앞의 두 문장은 클린턴 국무장관이 보고를 받은 ‘대북정보’가 어떠한 내용인지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고, 세 번째 문장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대북정보’에 바탕을 두고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위와 같은 발언을 읽어보면, 그가 북측에서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권력투쟁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측이 이명박 정권에게 전면 대결태세에 진입한다고 선언한 성명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측의 강경한 대남공세가 혹시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권력투쟁 조짐이 아닐까 하고 우려하는 것이다.

여기서, 위에서 언급한 〈요미우리신붕〉 2009년 1월 14일자 보도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정보소식통을 인용한 그 보도는,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에 대비해서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우려발언은 바로 그 미국의 정보소식통이 일본언론에게 흘려준 ‘집단지도체제 구축진행설’과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북측에 집단지도체제가 세워지면 정치적 불안정이 커질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09년 2월 20일 외교통상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연합뉴스〉 기자가 북측의 후계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발언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클린턴 국무장관의 답변은 이러하였다. “후계문제가 확실하지 않은 어떤 정부를 장차 (미국 정부가) 상대하게 된다고 생각할 경우,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북측에는 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가 지금 계획하는 것은, (북측에) 현존하는 정부 또는 (북측에) 현존하는 지도부를 상대하면서 북측을 다시 6자회담에 나오게 하는 방도를 찾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데니스 블레어(Dennis C. Blair) 국가정보국장(DNI)이 백안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보고한 정세보고에 ‘건강이상설’→‘집단지도체제 구축진행설’→‘불확실성 증대우려설’로 이어지는 ‘정보판단’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데니스 블레어 국장이 2009년 2월 12일 연방상원 정보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Annual Threat Assessment of the Intelligence Community)에서 ‘아마도(probably)’라는 표현을 쓰면서 ‘건강이상설’을 언급한 것이 그러한 ‘정보판단’이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클린턴 국무장관이 자기의 전용기에 동승한 외신기자들에게 북측의 후계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은, 국무장관이 기자들 앞에서 이러쿵 저러쿵 언급할 만한 대북정보가 아니다. 그의 발언은 후계문제와 선군혁명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항간에 유언비어로 떠도는 ‘건강이상설’에나 귀가 솔깃해진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의 오판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대북협상을 지휘해야 할 미국의 국무장관이 오판을 정보라고 착각하는 현실은 비극적이다.

문제는 클린턴 국무장관의 착각 그 자체가 아니라, 그의 발언이 몰고 올 파장이다. 〈뉴욕타임스〉 2009년 2월 21일자 서울발 기사는 미국의 외교관들이 언급을 회피해온 북측의 후계문제를 클린턴 국무장관이 언급함으로써 “비공식적인 금기(informal taboo)를 깨버렸다”고 지적하면서 ‘초보자의 실수(beginner’s error)’인가 아니면 ‘허심탄회한 행동(refreshing candor)’을 보여준 것인가 하고 물음표를 달았다. 2009년 3월 11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의 새 행정부가 우리를 건드리는 심히 내정간섭적인 언행들을 련발”하였다고 지적한 대목은, 클린턴 국무장관이 북측의 후계문제를 언급한 것을 비판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외교관리들이 북측의 후계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비공식적인 금기를 클린턴 국무장관이 깨버린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재개할 대북협상에서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2009년 2월 20일 외교통상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 한미외무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를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하였음을 발표하면서 북측에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는 신호를 보냈지만, 그가 전날 저지른 ‘금기깨기’는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촉구신호의 효과를 크게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과 마찬가지로 차관보급인데, 지금 북측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요구하는 것은 차관보급 실무회담이 아니라 고위급 정치회담이다. 북측이 은하 2호 발사를 준비하면서 고위급 양자정치회담을 재개하자고 보낸 신호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읽고서도 일부러 딴청을 피우는 것이 분명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차관보급을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하였다고 해서 북측이 미국의 6자회담 재개요구를 선뜻 받지는 않을 것이다. 스티븐 보스워즈 특별대표는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직보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지만, 북측이 오바마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2000년에 진행되다가 중단된 고위급회담의 재개다.

북측은 고위급 정치회담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을 상대하려고 생각한 듯한데, 미국의 외교관들이 북측의 후계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금기를 그가 깨버렸으니 북측에서 그러한 행동을 ‘초보자의 실수’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지 모른다. (2009년 3월 16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