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명박 연합전선이 정답이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연합전선 형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 그런데 왜 반이명박 연합전선인가?
3. 그러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4. 반이명박 연합전선,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1. 연합전선 형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통일전선이라고도 부르고 공동전선이라고도 부르는 연합전선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파도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심지어 제국주의세력도 연합전선을 형성한다. 연합전선은 모든 종류의 정치세력이 공유하는 투쟁전략이며 운동원리다.

진보정치세력이, 특히 진보정치세력의 중심인 진보정당이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않고서도 집권할 수 있다는 말은 궤변이다. 진보정치세력에게 연합전선 형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진보정치세력에게 연합전선 형성이 필수적으로 되는 조건은 아래와 같다.

첫째, 상대쪽이 강하고 우리쪽이 약할 때,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상대쪽은 모든 권력을 장악한 집권세력이고, 우리쪽은 아무런 권력도 갖지 못하였다. 대중언론매체들은 한결같이 상대쪽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우리쪽을 대변해주는 대중언론매체는 하나도 없다. 거기에 다가 상대쪽이 한미동맹관계에 의존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상대쪽의 힘은 우리쪽에 비할 바 없이 강하다. 이처럼 취약하고 불리한 조건에서, 진보정치세력이 자기 이외의 다른 정치세력과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않고 단독으로 투쟁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을 외면한 무지의 산물이다.

둘째, 진보정당이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할 때,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진보정당이 등장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즉각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과 대중의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까닭은, 우파의 집권이 장기화되고 고착화된 정치현실에서 진보정당이 등장해도 대중의 관심 밖에 놓이기 때문이다. 우파정치세력이 장기적으로 집권하는 기간에 우파 정치이념을 지속적으로 주입받아온 대중에게는 진보정당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관심사로 될 수 없다. 이처럼 취약하고 불리한 조건에서, 진보정치세력이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않고 단독으로 투쟁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한 것이다.

셋째, 도시중산층이 크게 성장하여 사회계급구성이 복잡해졌을 때,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원래 진보정치세력은 사회변혁운동에서 노동계급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역량에 무조건 의거하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사회계급구성이 복잡하지 않은 100년 전의 서유럽 사회에서 노농동맹전략으로 사회변혁운동을 밀고 나갈 때 통할 수 있었던 것이지, 계급구성이 매우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노동계급은 여러 층으로 분화되었고, 농민은 급격히 축소되었으며, 도시중산층이 크게 성장하였다. 사회의 양극화 또는 빈부격차의 극대화로 표현되는 오늘의 현실은, 노동계급의 내부분화, 농민의 급격한 축소, 도시중산층 하층의 궁핍화를 촉진시켰다.

진보정치세력이 노동계급의 지위와 역할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역량에만 배타적으로 의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매우 복잡해진 사회계급구성을 알지 못하는 오류다. 도시중산층을 방치하거나 적대시하면서 기존의 노농동맹에만 의거하여 사회변혁운동을 밀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진보정치세력과 도시중산층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21세기 사회변혁운동이 풀어야 할 가장 커다란 숙제다. 노동계급을 외면하고 노동자들에게 거리감을 느끼며 민주노조운동을 거부하는 도시중산층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오늘 진보정치세력에게 주어졌다. 진보정치세력과 도시중산층의 관계문제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옳게 풀어야 사회변혁운동을 진전시킬 수 있다. 그 문제를 푸는 해답은 연합전선에서 찾을 수 있다.

넷째, 민주노조운동이 허약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진보정치세력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노동계급은 민주노총의 5대 정파다. 민주노총의 5대 정파만 만나보고, 노동계급 전체가 마치 그들과 같은 것인 양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솔직하게 말하면, 현 시기 민주노조운동은 생각보다 훨씬 더 허약하다.

우선 양적 추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8년을 기준으로, 노조조직률은 10.5%다. 노조조직률은 1989년에 최고수준인 19.8%에 이르렀다가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2008년 현재, 양적 추세가 답보상태에 있는 민주노총에는 65만8천 명(39.5%)이 가입되어 있고, 양적 추세가 하락하고 있는 한국노총에는 72만5천 명(43.5%)이 가입되어 있고, 양적 추세가 증가하고 있는 미가맹 노조들에는 28만3천 명(17%)이 가입되어 있다. 65만8천 명 민주노총 조합원들 가운데 5대 정파에 망라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운동의 기반인데, 실제로 그 인원수는 얼마나 될까?

민주노조운동이 허약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두 가지 대표적인 사례는 아래와 같다.

2008년 10월 17일 현대자동차 노조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를 산하조직으로 가입시키는 문제를 놓고 찬반투표에 들어간 결과, 부결되었다. 비정규직 노조의 가입안은 그로써 세 번째 부결된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에서 울려나오는 ‘노동자는 하나다’는 외침은 공허하게 들린다.

그리고 2009년에 들어와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치열하게 싸운 77일 공장점거투쟁은 현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허약체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해고노동자들은 공장점거투쟁을 치열하게 벌였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연대투쟁 한 번 벌이지 못하고 77일 동안 맥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위와 같은 사태가 일어난 근본원인은 노동계급 의식의 비정치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망하건 말건 자기 조합원들의 실리만 추구하면 된다고 믿는 노동조합이 많다. 또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상생을 내세워 양보교섭과 협력선언을 택하는 노동조합이 많다. 그런 까닭에 민주노조 총파업투쟁은 불능화의 질곡에 빠져있는 것이며, 민주노조운동은 만성화된 무기력증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대중항쟁으로 정권퇴진운동을 전개하여야 할 때,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은 그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였다. 이명박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였으므로, 정권퇴진운동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정권퇴진운동의 당위성이 아니라 그 운동의 현실성이다. 정권퇴진과 정권교체는 다르다. 정권교체는 선거만으로 실현될 수 있지만, 정권퇴진은 선거만으로 실현될 수 없는 것이며 반드시 대중항쟁을 동반하여야 실현될 수 있다. 대중항쟁 없는 정권퇴진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그런데 77일 공장점거투쟁에서 패배한 현실을 생각하면, 대중항쟁의 가능성은 너무 멀어 보인다. 공장점거투쟁에서도 패배한 진보정치세력이 공장점거투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복잡한 대중항쟁을 과연 이끌어갈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로 나온다.

공장점거투쟁이 패배한 원인도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못한 데 있고, 대중항쟁이 일어나지 않는 원인도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못한 데 있다. 대중항쟁은 반드시 연합전선을 형성했을 때, 오직 그렇게 하였을 때에만 일어나는 법이다. 명백하게도, 연합전선→대중항쟁→정권퇴진은 일직선 위에서 전개되는 일련의 연속과정이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세력이 정권퇴진을 외치면서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정치활동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행동이다.

2. 그런데 왜 반이명박 연합전선인가?

친미반공독재의 완전한 청산과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 이것은 진보정치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추구하는 전략목표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중도우파정권 10년 동안 그 정권은 친미반공독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매우 불완전하게 청산하였다. 그들 중도우파정권 안에 친미성향과 반공성향이 온건한 형태로 온존하기 때문에 친미반공독재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바로 그런 까닭에 중도우파정권은 10년 만에 우파정권에게 다시 권력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만일 지난 10년 동안 친미반공독재를 완전히 청산하였다면 우파정권이 다시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친미반공독재의 완전한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중도우파정권에게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을 현실로 입증하였다. 친미반공독재를 완전히 청산하는 과업을 맡을 유일한 세력은 진보정치세력이라는 점도 아울러 입증되었다. 바로 이것이 진보정치세력이 집권해야 할 이론적 근거로 된다.

친미반공독재를 완전히 청산한 뒤에 실현되는 민주주의는 어떠한 민주주의일까? 그 민주주의는 중도우파정권이 실현하다가 중단되고만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명백하다. 친미반공독재가 완전히 청산되면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친미반공독재는 청산해야 할 낡은 과거이고, 진보적 민주주의는 실현해야 할 새로운 미래다. 이명박 정권과 진보정치세력의 싸움은 낡은 과거와 새로운 미래의 싸움이다.

친미반공독재를 청산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새로운 정치방식을 진보정치라 한다.

진보정치는 넓은 의미의 좌파정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좌파정치가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좌파정치다.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좌파정치를 노동계급의 진보정치라고 정의한다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좌파정치는 근로대중의 진보정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진보정치는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이다. 근로대중은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도시중산층의 일부까지 포괄하는 ‘일하는 사람들’의 집합개념이다.

진보정치는 근로대중이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정치가 아니라, 근로대중이 세운, 근로대중을 대변하는, 근로대중의 정당이 수행하는 정치다. 근로대중 정당이 없으면 진보정치도 존재할 수 없다. 근로대중 정당이 창당된 날부터 진보정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로대중 정당을 창당하고, 강화하는 것이 곧 진보정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근로대중 정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른다. 진보정당은 근로대중의 정치적 희망 그 자체다. 민주노동당이 스스로를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러한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진보정치가 근로대중 정당의 정치라는 말은, 진보정치가 연합정치라는 뜻이다. 근로대중 정당 자체도 연합전선형 정당이다. 진보정치도 연합정치고, 근로대중 정당도 연합전선형 정당이므로, 진보정치의 실현 또는 근로대중 정당의 집권은 연합전선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형성해야 할 연합전선의 이름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이다. 내일 그 이름은 달라질 것이다.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현 시기 진보정치의 최우선적 과업이다. 오늘의 진보정치는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노력과 투쟁으로 자기를 실현해간다.

그런데 어떤 논자들은 연합전선에 대해 논하면서 무엇을 반대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개념이 아니라 무엇을 실현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개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다.

현 단계의 연합전선을 가리켜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연합전선이라고 부르지 않고, 반이명박 연합전선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두 종류의 정치세력이 이명박 정권퇴진이라는 공동목표로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 종류의 정치세력이란 근로대중에 기반을 둔 진보정치세력과 도시중산층에 기반을 둔 민주정치세력을 뜻한다. 전자는 민중운동의 주체이며, 후자는 시민운동의 주체이다. 또한 전자는 체제변혁을 추구하는 급진적인 정치세력이며, 후자는 현실변화를 추구하는 온건한 정치세력이다. 진보정치세력은 사회주의 용인, 좌파적 사회변혁,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반면, 민주정치세력은 온건한 반공주의, 중도적 개혁, 불완전한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한다.

진보정치세력만 이명박 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정치세력도 그 정권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물론 투쟁강도, 투쟁양상, 투쟁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그 두 정치세력이 반정부투쟁이라는 당면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진보정치세력은 정권퇴진이라는 투쟁구호를 내놓고 비타협적인 전면대결을 벌이는데 비해, 민주정치세력은 정책반대라는 투쟁구호를 내놓고 일면 협상, 일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진보정치세력이 실현하려는 민주주의와 민주정치세력이 실현하려는 민주주의는 서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긍정적인 의미를 써서 현 단계 연합전선의 성격을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연합전선에 의거하여 정권퇴진을 실현하여 어떠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권퇴진운동 과정에서, 다시 말해서 반이명박 연합전선의 투쟁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다.

만일 그 과정을 진보정치세력이 주도하면 친미반공독재를 완전히 청산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고, 만일 그 과정을 민주정치세력이 주도하면 친미반공독재를 불완전하게 청산한 시민민주주의의 실현을 재현하는 수준에 또 다시 머물게 될 것이다. 이처럼 두 가지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진보정치세력은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연합전선이라는 일방적인 개념을 쓰지 않고 반이명박 연합전선이라는 개념을 쓰는 것이다.

3. 그러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데는 몇 가지 기본원칙들이 있다. 이 기본원칙들과 통하는 전술을 채택하여야 연합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 연합전선 기본원칙부터 명료하게 다듬어야 연합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에서 전술적 혼란이나 실패를 피할 수 있다.

첫째, 좌우합작의 원칙이다. 이것은 좌파와 우파가 연합하는 원칙이다. 넓은 의미의 좌파에 속하는 여러 갈래의 진보정치세력들이 서로 연합하는 것은 연합전선이 아니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하는 것은 연합전선이 아니다. 진보대연합이라는 개념을 진보정치세력들끼리 연합한다는 뜻으로 쓴다면, 그 개념을 가지고서는 연합전선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없다. 반대로, 민주대연합이라는 개념을 민주정치세력들끼리 연합한다는 뜻으로 쓴다면, 그 개념을 가지고서는 연합전선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없다.

명백하게도, 연합전선이라는 개념은 좌파와 우파가 연합한다는 뜻으로 써야 한다.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결집한 폭넓은 연합전선이라는 말은 좌파와 우파가 연합하였다는 뜻이다.

좌파와 우파는 열 개 가운데 한 개만 같아도 연합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좌우합작의 원칙을 실현하고 단일한 전선에 결집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열 개 가운데 아홉 개가 같고 한 개만 달라도, 그 다른 한 개를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연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같은 것(공동목표)을 중시하지 않고 다른 것(정치이념)을 앞세우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존이구동이라는 한자말은 다른 아홉 개를 남겨두고 같은 한 개를 찾는다는 뜻이다. 특히 좌파성향이 강한 정파들은 사회정치적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홀시하고 좌파 정치이념을 앞세우는 주관주의적 편향에 기울어지는 유혹을 받기 때문에, 공동목표를 중시하지 않고 단독적, 분산적 투쟁에 열중하다가 정치적으로 고립, 좌초되는 경우가 흔하다.

좌우합작의 원칙으로 이해하는 연합전선이라는 개념은 진보정치세력과 민주정치세력이 연합한다는 뜻으로 써야 한다. 그러므로 진보대연합이나 민주대연합이라는 부정확한 개념보다는 진보-민주 대연합이라는 개념을 써야 좌우합작의 원칙을 확실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

진보대연합이라는 개념을 진보정치세력들의 결집이라는 뜻으로 쓰고, 민주대연합이라는 개념을 민주정치세력들의 결집이라는 뜻으로 쓴다면, 반이명박 연합전선은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을 통합한 진보-민주 대연합으로 되어야 한다.

둘째, 공동투쟁의 원칙이다. 연합전선이라는 개념에서 전선이라는 말에는 투쟁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투쟁하지 않는 전선은 전선이 아니다. 전선의 생명력은 투쟁에서 발현되고 투쟁으로 분출된다. 연합전선이란 공동투쟁이 벌어지는 전선을 뜻하는 개념이다. 연합전선은 그것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공동투쟁을 벌이는 것이며, 그것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공동투쟁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세력과 민주정치세력이 힘을 조직적으로 결합하여 공동투쟁을 밀고 나갈 때, 연합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반이명박 연합전선은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각당각파 각계각층의 공동투쟁이 벌어지는 전선이다.

셋째, 과거불문의 원칙이다. 연합전선에 참가하는 세력에게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 과거에 우파정권을 지지하였지만 지금은 태도를 바꿔 우파정권을 반대한다면 과거를 묻지 말고 연합전선에 받아들여야 한다.

4. 반이명박 연합전선,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진보정치세력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의 전략목표를 정권퇴진으로 인식하고, 민주정치세력은 그 전선의 전략목표를 정권교체로 인식한다.

정권퇴진과 정권교체는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반이명박 연합전선에서 그 두 가지 개념을 서로 대치시킬 필요는 없다. 그 두 개념은 상호모순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다.

반이명박 연합전선 안에서 양대 개념의 상호보완성과 공동투쟁의 역동성은 공존하게 된다. 모든 투쟁이 역동인 것처럼, 공동투쟁으로 형성되는 반이명박 연합전선도 역동적이기 때문에 정권퇴진 개념과 정권교체 개념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의 역동적인 전개과정에서 서로 역동적으로 상호보완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양대 개념의 상호보완성과 공동투쟁의 역동성은 대중항쟁과 선거전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에 의해서 상호보완될 것임을 예고한다. 다시 말해서, 대중항쟁은 선거전을 보완해주고, 선거전은 대중항쟁을 보완해줄 것이다. 1987년에는 전개되었던 반군사독재 연합전선이 부실하게 세워진 까닭에 6월 민주항쟁, 노동자대투쟁, 12월 대통령선거가 서로 분리된 채 상호보완성을 갖지 못하였고 그래서 친미반공독재를 청산하는 투쟁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오늘 진보정치세력과 민주정치세력이 결집한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튼튼히 세우면 대중항쟁과 선거전의 상호보완을 넉넉히 실현할 수 있다.

반이명박 연합전선은 정치투쟁의 전략적 거점이다.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세우는 것은 정치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함이다. 정치투쟁은 누가 권력을 잡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연합전선전략은 곧 공동집권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보정치세력과 민주정치세력이 결집한 반이명박 연합전선은 그 양대 세력을 공동집권을 향한 정치투쟁으로 이끌어 간다. 연합전선전략을 논하면서도 공동집권전략을 외면하는 것은 연합전선전략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연합전선은 공동집권을 위한 전선이지 그 밖의 다른 것이 아니다.

반이명박 연합전선이 승리하여 새로운 정부를 세우게 될 때, 그 새로운 정부도 역시 연합전선형 정부가 될 것이다. 반이명박 연합전선의 승리 이후에 성립될 새로운 민주정부형태가 전선형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합전선형 정부를 연립정부라고 부른다. 공동정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립정부의 성격은 세 종류로 나뉘는데, 우파연립정부, 좌파연립정부, 중도연립정부가 있다. 우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으로 세운 정부는 우파연립정부이고, 좌파정당과 중도좌파정당이 공동으로 세운 정부는 좌파연립정부이고,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으로 세운 정부는 중도연립정부다.

현 시기 반이명박 연합전선이 지향할 연립정부의 성격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도연립정부다. 진보-민주 대연합이 지향하는 연립정부가 진보-민주 연립정부로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참고로 말하자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의거하여 세워질 한반도 통일정부도 연립정부다. 남측의 중도연립정부와 북측의 좌파정부가 연방제 방식에 따라 세울 통일정부의 성격은 중도연립정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좌파연립정부가 될 것이다. 한반도 통일정부의 성격문제는 연구과제로 남아있다.

이 땅의 진보정치세력과 민주정치세력에게 연립정부라는 개념은 아직 낯설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중도연립정부 수립경험을 연구하고 그들의 경험과 성과를 한반도의 실정에 맞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중도연립정부를 세워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반이명박 연합전선이 진보-민주 대연합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그 전선에 의거하여 세워지는 정부형태도 당연히 진보-민주가 연립하는 중도연립정부로 될 것이다.

전선은 연합전선이지만, 그 전선 위에 세워질 정부는 연합정부가 아니라 연립정부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립 개념은 연합 개념과 달리 결합력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뜻을 지닌다.

개념적으로 이해하면, 연합전선은 결집력이 강한 반면, 연립정부는 결합력이 약하다. 이것은 연립정부를 구성한 진보정치세력과 민주정치세력이 정치노선을 둘러싸고 정치적 갈등을 빚을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 갈등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시민민주주의의 갈등일 것이다. 연립정부 안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갈등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 흔하며, 심지어 연립정부에서 어느 한 쪽이 탈퇴하는 경우도 있다. 연립정부의 내부갈등을 해소하는 문제는 연구과제로 남아있다.

둘째, 지배-예속 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한미동맹체제는 이 땅에 좌파연립정부 수립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이 땅의 민주노조운동이 정체된 조건에서 노동계급의 정치투쟁에 의거해서 좌파정당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좌파연립정부가 세워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만약 중도좌파가 진보적 정권교체에 성공하여 단독정부를 세운다고 가정해도, 우파정치세력의 반정부투쟁과 미국의 전복공작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무너질 것이다. 2009년 6월 28일 미국의 배후지원을 받은 온두라스 군부가 선거승리로 집권한 셀라야 중도좌파정권을 전복한 사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중도연립정부 수립 이외에 다른 현실적 대안은 없다. 좌파연립정부 수립은 통일정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셋째, 한반도 분단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은 남측에서 중도연립정부 수립을 절실히 요구한다. 분단체제는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해체될 것이다. 그 해체과정은 조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국군 철군을 합의하는 것으로 시작될 것인데, 조미 정상회담은 적어도 2012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좀 성급한 전망이 될지 몰라도, 올해 말에 조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2012년 대선에서 우파정권이 집권연장에 성공하는 경우 조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주한미국군 철군을 행동에 옮기기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주한미국군 철군으로 한미동맹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우파정권은 격렬한 반발심리가 작동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중단시키기 위한 방해공작을 추진할 것이다. 집권연장에 성공한 우파정권이 한반도 비핵화를 중단시키려는 방해공작에 매달리는 경우, 주한미국군 철군은 무기한 지연될 뿐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자체가 파탄될 위험에 빠진다. 철군이 무기한 지연되고 한반도 비핵화가 파탄에 빠지면, 분단체제를 해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중도연립정부가 세워져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적으로 이행하는 경우, 주한미국군 철군과 한반도 비핵화를 크게 촉진시킬 것이다. 중도연립정부 수립문제를 남측 정치정세의 변화에만 국한하여 인식해서는 안 되며, 한반도 정세변화의 역동적 과정으로 넓혀서 인식해야 그 의의를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도연립정부 수립은 남측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전략목표이며 동시에 한반도 분단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결과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현 시기 한반도의 정세변화는 남측의 중도연립정부 수립을 절실히 요구한다.

2012년에,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라도 한반도는 대변혁의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그 기회는 1천년에 한 번 찾아올 귀중한 기회다. 진보정치세력은 1천년 만에 찾아온 결정적인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며, 모든 힘을 반이명박 연합전선 형성에 집중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2012년까지 주어진 시간은 너무 촉박하고, 진보정치세력의 준비태세는 너무 미흡하다.

진보정치세력과 민주정치세력이 결집한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2012년까지 중도연립정부를 세울 수 있는가 라고 묻는 한반도 정세의 절박한 물음에 어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 이 글은 2009년 9월 13일 프랑스 쌩드니시 꼬흐네브공원에서 열린 뤼마니떼 축전장에서 진행된 2009 파리국제정책포럼에서 발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