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과 미국은 난국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미국의 극단적 반응 뒤에 감춰진 비밀
2.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한반도 핵문제의 근본원인
3. 북측과 프랑스,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이 다르다
4. 남아공 식 핵포기가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다
5. 한반도 핵문제,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

1. 미국의 극단적 반응 뒤에 감춰진 비밀

2009년 1월 20일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뒤로, 북측과 미국의 관계가 순항할 것으로 보았던 분석가들의 예상이 여지 없이 빗나갔다. 2003년 8월 27일 부쉬 정부의 제안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 열린 뒤에 5년 동안 계속되었던 6자회담은 중단되었다. 북측은 6자회담이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북측이 6자회담을 전면적으로 거부함으로써, 북측과 미국의 대화통로는 막혀버렸다.

이것은 북측과 미국의 관계가 이전보다 더 격화된 정치적 대결과 군사적 긴장으로 밀려들어갔음을 말해준다. 사태가 이처럼 심각해진 까닭은,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측이 2009년 4월 5일에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유엔안보리를 동원하여 제재를 결정하였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나라가 하나 둘이 아니고, 심지어 미국이 적대국으로 규정한 이란도 2009년 2월 2일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는데, 미국은 유독 북측의 인공위성 발사만 물고 늘어지면서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갔다. 만일 미국이 프랑스의 인공위성 발사를 ‘범죄행위’로 비난하면서 제재를 가한다면, 프랑스 정부와 프랑스 국민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까?

이란이 인공위성을 발사해도 그냥 넘어간 미국이 왜 북측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서는 그토록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극단적 반응 뒤에는 비밀이 감춰져 있다. 그 비밀은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의 극단적 반응 뒤에는 군사적 비밀이 감춰져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는 군사비밀정보가 있는데, 그 군사비밀정보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북측의 미사일 전력(戰力)에 관한 극비정보도 들어있을 것이다.

북측의 미사일 전력이 어떤 수준인지를 알려면, 러시아의 미사일 전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2005년 11월 처음으로 사거리가 8천km에 이르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불라바(Bulava)를 시험발사하였고, 2009년 7월 16일에 11번째 시험발사를 실시하였으나 또 실패하였다. 이번이 일곱 번째 실패다. 불라바는 핵탄두를 한꺼번에 10개나 장착하고 핵추진 전략잠수함에서 발사하는 고성능 미사일이다. 바닷 속에 숨어 다니는 잠수함에서 불시에 불라바를 한 발 발사하면 탄두 10개가 분리되어 각기 다른 표적을 향해 날아가므로, 러시아가 불라바 시험발사에 성공하는 날,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북측에는 핵추진 전략잠수함도 없고, 다탄두 미사일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미국은 왜 북측에 대해서 그토록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 까닭은, 미국이 매년 100억 달러씩 쓰면서 국력을 기울여 개발해낸 미사일 방어망을 무용지물로 만들 미사일 전술을 북측이 보유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러시아의 미사일 전술은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식으로 전개되지만,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북측의 미사일 전술은 러시아 식과 전혀 다른 독자적인 전술일 것이다. 이를테면, 북측은 미국의 항공모함 전투단을 제압하기 위한 미사일 전술을 개발하였다. 그들은 특수화학탄두를 장착한 로켓을 항공모함 전투단 상공에 집중적으로 발사하여 군사위성과 항공모함 전투단의 전파교신을 차단함으로써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시키고 나서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식으로 미국의 항공모함 전투단을 궤멸시킬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왜곡선전만 들리는 국제사회에서는 북측의 미사일 개발수준이 뒤떨어진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북측은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자력으로 만들어낼 뿐아니라, 독자적인 미사일 전술을 개발함으로써 미사일 전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북측은 미국에 맞서 미사일 전술을 개발한 미사일 강국이다.

미국이 오랜 기간 동안 국력을 기울여 개발한 미사일 방어망이 북측의 미사일 전술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면,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깨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미사일 전력을 가진 북측이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개발하여 쏘아올렸으니 오바마 정부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공위성 개발은 고성능 미사일 개발과 기술적 호환성을 갖는 것이므로, 북측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것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을 무용지물로 만들 미사일 전력을 세계에 과시하는 것으로 된다. 북측의 인공위성 발사가 실패였다고 왜곡선전을 퍼뜨리고 서둘러 국제제재를 선동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다급한 속사정이 그러하였다.

둘째, 미국의 극단적 반응 뒤에는 정치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북측이 미사일 강국의 지위와 핵보유국의 지위에 올라서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특히 북측의 대미관계에서 북측의 정치적 발언권이 크게 강화되는 것을 뜻한다. 북측의 정치적 발언권이 강화될수록 미국은 북측을 상대하기 힘들어 지게 된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측을 6자회담이라는 이름의 다자관계에서 상대해왔지만, 북측이 미사일 강국의 지위와 핵보유국의 지위에 올라선 뒤에는 북측을 대등한 관계에서 상대해야 한다.

북측의 인공위성 발사와 지하핵실험 실시는, 다자관계를 통하여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는 낡은 관점을 버리고, 북측과 미국이 대등한 양자관계를 통하여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미국을 강하게 압박한 것이다. 대등한 양자관계에서 핵협상을 벌이는 것은, 2009년 7월 27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화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측으로부터 그토록 강한 압박을 받고서도, 대등한 양자관계를 통하여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으며, 유엔안보리를 움직여 북측에 대한 국제제제를 강행하였다.

미국이 북측과 대등한 양자관계에서 핵협상을 벌이는 것을 거부한 까닭은, 대등한 양자관계에서 핵협상을 벌이는 경우 북측에게 질질 끌려갈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북측의 대미협상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려면, 부쉬 정부 1기에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Colin Powell)의 경험담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2009년 7월 28일 미국 씨엔엔(CNN) 텔레비전 방송의 유명한 대담 프로그램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에 출연하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들(북측을 뜻함-옮긴이)은 정말 이상하고 별난 체제에서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체제를 미친 체제라고 부르지만,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미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만나본 협상상대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힘겨운 협상상대였다.”

2.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한반도 핵문제의 근본원인

국제사회는 북측과 미국의 관계에서 정치적 대결과 군사적 긴장을 일으킨 근본원인이 북측의 핵무기 보유에 있다고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북측이 핵확산금지조약을 위반하면서 핵무기를 만들고 핵실험을 실시한 것이 한반도 핵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미국이 국제사회에 퍼뜨린 왜곡선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판단착오다.

물론 북측이 핵무기를 만들고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측이 핵보유국으로 되었기 때문에 한반도 핵문제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 북측의 핵무기 보유는 한반도 핵문제의 근본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한반도 핵문제의 근본원인이 따로 존재한다.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한반도 핵문제의 근본원인은, 미국군이 북측 영토를 점령한 것에 있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에서 핵문제가 발생한 근본원인은 미국군의 북측 영토점령인 것이다.

미국군이 북측 영토를 점령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미국군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반부 영토를 점령하였다는 뜻이다. 국제사회가 대한민국 영토로 알고 있는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은, 북측의 견지에서 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반부 영토다.

북측의 현행 헌법에는 영토조항이 없지만, 북측이 한반도 전역을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북측의 영토규정에 따르면, 북측 영토는 북반부와 남반부로 구분된다. 자국 영토를 한반도의 북반부와 남반부로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북측이 한반도 전역을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만일 독일군이 프랑스 영토인 알사스 로렌(Alsace-Lorraine)을 점령하였다고 가정하면, 프랑스 정부와 프랑스 국민은 독일군의 영토점령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국 영토를 외국군에게 점령당하는 것은 심각한 주권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프랑스가 알사스 로렌을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였다고 가정하면, 프랑스는 영토주권을 완전히 회복한 것이 아니다. 그와 똑같은 논리에서, 북측이 남반부 영토를 미국군에게 점령당한 것은 북측이 자국의 영토주권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프랑스 영토인 알사스 로렌은 면적이 1만4천496㎢이고 인구가 285만 명인데 비해, 북측이 자국 영토로 규정한 남반부는 면적이 9만8천480㎢이고 인구가 4천859만 명이나 된다. 이러한 통계수치를 보면, 북측이 남반부 영토를 미국군에게 점령당한 것은, 프랑스가 알사스 로렌을 독일군에게 점령당하는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타격을 북측에게 안겨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제사회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한국(조선)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56년 동안, 북측은 미국군이 점령한 남반부 영토를 되찾아 영토주권을 완성하는 과업에 자국의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노력을 집중해왔다.

미국군이 점령한 남반부 영토를 되찾기 위해, 북측은 미국을 상대로 영토점령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벌여야 하였다. 그러나 세계를 지배하는 오만한 대제국인 미국은 동아시아의 조그만 사회주의 나라가 제기하는 영토주권문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묵살한 것만이 아니라, 한 술 더 떠서 북측을 봉쇄하고 압박하는 도발적인 대북적대정책으로 일관해왔다. 미국은 북측의 북반부 영토(12만540㎢)보다 82배나 넓은 광대한 영토(982만6천630㎢)를 가졌고, 북측의 북반부 인구(2천266만 명)보다 13.5배나 많은 거대한 인구(3억721만 명)를 가졌는데, 그러한 강대국이 북측의 영토주권에 관한 문제제기를 묵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자기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봉쇄와 압박을 밀어붙이는 미국을 상대하여 북측이 영토주권문제에 관한 협상을 벌이려면 무엇보다 먼저 미국과 대등한 협상지위를 획득하여야 하였다. 대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면 협상 자체가 성립되지 못하고 무시당할 뿐 아니라, 혹시 협상이 성사되더라도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비해 영토와 인구가 비할 바 없이 적은 북측이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이었을까? 북측에게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만이 미국을 상대로 대등한 협상을 시작할 수 길이었다. 다른 길은 없었다. 북측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3. 북측과 프랑스,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이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여 나치 독일의 점령군을 자기 영토에서 몰아낸 프랑스는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0월 18일 당시 프랑스 임시정부 샤를 드골(Charle de Gaulle) 대통령의 지시로 원자력에너지위원회(Commissariat a l'Energie Atomique, CEA)를 창설하였고, 그로부터 7년 뒤인 1952년 4월 북측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국가과학원에 원자 및 핵물리학연구소를 설치하였다.

프랑스가 핵개발에 착수하였던 1945년 10월 당시의 프랑스 국력과 북측이 핵개발에 착수하였던 1952년 4월 당시의 북측 국력은 비교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격차를 보였다. 놀랍게도, 북측은 한국(조선)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던 전시에 핵개발에 착수하였다. 한국(조선)전쟁에서 미국군은 북측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는 작전목표를 내걸고 무차별 폭격을 퍼부어 초토화하였고, 미국군은 자기들이 전쟁으로 파괴한 북측이 앞으로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 1945년 8월 15일에 40년 간의 혹독한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북측은 공업생산력이 성장하지 못한 낙후한 농업국가였는데, 한국(조선)전쟁에서 그처럼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까지 받았으니, 그나마 돌아가던 산업시설이 모두 파괴되고 수백만명에 이르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40년의 식민통치와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핵무기를 만들기는커녕 나사못도 만들 수 없는 처지였던 북측이 핵무기 개발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핵무기 개발사업은 남반부 영토를 되찾는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방책이었으므로, 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핵무기 개발사업을 추진하였다.

1960년 2월 13일 프랑스가 프랑스령 사하라에서 70킬로톤(kiloton)의 폭발위력을 과시한 자국 최초의 핵실험을 실시하였던 때로부터 이태가 지난 1962년 1월 북측은 평안북도 녕변에서 연구용 원자로 건설에 착공하였다.

프랑스는 원자력에너지위원회를 창설하였던 1945년 10월부터 15년만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첫 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핵보유국으로 등장하였다. 프랑스는 첫 핵실험을 실시한 1960년부터 핵실험을 중지한 1996년까지 200 차례 이상 핵실험을 실시하였고, 현재 350여 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전략군(Force de frappe)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에 비해 공업화 수준이 매우 낮았던 북측은 원자 및 핵물리학연구소를 설치하였던 1952년 4월부터 무려 54년이 지난 2006년 10월 9일 자국 영토에서 첫 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핵보유국으로 등장하였다. 북측은 2009년 5월 25일 두 번째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

국제사회는 북측이 실시한 핵실험이 모두 실패로 끝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그러한 실패설은 북측을 상대로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의 대등한 협상을 벌이고 싶지 않은 미국이 날조, 유포한 정보조작의 산물이다. 파키스탄이 북측의 핵탄두 제조기술을 전수받아 핵무기 개발을 완성하였고, 이란과 시리아가 북측의 미사일 제조기술을 전수받아 미사일 생산국 대열에 올라선 것만 보아도, 북측의 군사과학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프랑스가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과 북측이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하여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 5대 핵강국 대열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북측은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이 아니다.

분석가들은 북측이 미국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핵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그릇된 주장이다.

만일 북측이 미국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핵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국가안보를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였다면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고, 영원히 핵보유국으로 남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북측은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비핵화 공약을 채택하였다.

미국은 북측이 비핵화 공약을 채택하였지만, 핵야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공약을 이행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의심에 지나지 않는다.

북측이 비핵화 공약을 이행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이 핵보유국으로 남아있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측이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은 자국의 남반부 영토를 점령한 미국군을 철군시키고 영토주권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핵문제 속에 철군문제가 감춰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 뿐이다.

독일군이 알사스 로렌을 점령하였다고 가정하는 경우, 프랑스는 핵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알사스 로렌의 영유권을 주장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사스 로렌의 영유권보다 핵무기 보유에서 더 큰 전략적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측은 핵무기를 포기함으로써 미국군의 남반부 점령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미국군의 남반부 점령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보다 더 큰 전략적 이익을 주기 때문에 그러하다.

4. 남아공 식 핵포기가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다

부쉬 정부 말기에 북측과 미국의 양자회담은 핵검증 방안을 합의하기 직전 단계까지 진척되었다. 핵검증이란 북측이 핵포기를 이행하였는지를 미국이 직접 현장검증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핵검증을 실시하려면, 어떤 대상을 검증할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검증할 것인지를 미리 합의하여야 한다. 검증대상을 선정하고 검증방법을 선택하는 문제를 합의하기 위한 핵협상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북측과 미국은 핵검증 협상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정면으로 대결하였다.

원래 북측은 미국이 요구한 대로, 녕변 핵시설 가동을 중지하고 폐연료봉을 제거하는 불능화작업에 착수하였고, 핵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게 제출하였으며, 녕변 핵시설 냉각탑까지 폭파함으로써 비핵화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핵검증 협상을 시작하지 못하고 정면대결이 벌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쉬 정부가 북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특별한 핵검증 방안을 일방적으로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북측에서 핵검증을 실시하는 경우, 북측은 자기의 극비군사시설을 모두 미국군 사찰단에게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처럼 굴욕적인 핵검증을 허용할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의 핵검증 방안과 북측의 핵포기 공약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충적인 문제를 푸는 길은 없을까?

핵포기와 핵검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3년 3월 24일 남아공 대통령 드 클럭(Frederik Willem de Klerk)은 남아공 의회연설에서 남아공 정부가 지금까지 약 4억 달러를 들여 핵무기 7기 만들었는데, 마지막 7번째 핵무기는 완성 직전에 해체하였다고 밝히고, 핵억제력을 자진해서 해체하고 모든 관련정보를 자진해서 공개하여 투명성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은 남아공 정부가 지정한 핵시설을 사찰하였다. 1993년 8월 16일 남아공 의회는 대량파괴무기 비확산법을 제정하였고, 1995년 8월 15일 미국은 남아공을 핵확산 우려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경제제재조치를 완화하였다.

남아공을 비핵화하는 과정에서 주목하는 것은, 남아공이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한 핵시설 이외에 다른 핵관련 시설을 사찰하지 않았고, 핵무기를 자진해서 폐기하였다는 남아공 대통령의 공식발표를 그대로 인정하였으며, 핵폐기 여부를 실제로 검증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측이 자진해서 핵무기를 폐기하는 과정도 남아공의 핵폐기 과정과 똑같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5. 한반도 핵문제,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

북측이 핵포기 공약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주한미국군 완전철군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공정하게 실현하는 원칙은 핵협상과 철군협상의 병행이다.

오바마 정부가 취임하였던 2009년 1월, 사람들은 미국의 새 정부가 핵협상과 철군협상을 동시에 병행적으로 시작하는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빗나갔다. 오바마 정부는 핵협상과 철군협상을 병행하는 현안문제를 외면하고 6자회담을 재개하여 핵협상만 벌이겠다는 부당하고 고집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이것은 부쉬 정부의 대북정책을 반복한 것이다. 미국의 대북관계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외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북측에게 주어진 2009년의 선택은 핵협상과 철군협상을 병행하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북측이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고, 중거리미사일을 발사한 일련의 조치는, 일방적인 핵협상에 집착하여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은 오바마 정부를 ‘변화’로 끌어내기 위한 강력한 압박조치였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북측은 핵전략군을 해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며, 그에 상응해서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해야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핵협상의 목표는 북측의 핵전략군 해산이고, 철군협상의 목표는 주한미국군의 완전철군이다.

프랑스 국방장관(Ministre de la Defense) 에흐베 모행(Herve Morin)이 프랑스의 핵전략군을 해산하는 문제를 결정할 수 없는 것처럼, 북측이 핵전략군을 해산하는 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결정할 수 있다. 또한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결정할 수 없고, 오직 오바마 대통령만이 철군문제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은 북측과 미국이 핵협상과 철군협상을 병행하는 최고의 정치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담판 형식으로 풀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오바마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절실히 요구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09년 8월 4일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표면상 이유는 두 미국인 여기자를 석방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를 평양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중대제안을 말해주었다. 그 중대제안은 북측이 핵포기 공약을 이행할 준비를 완료하였으니 이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단을 내릴 차례가 되었다는 것과 한반도 핵문제를 풀기 위해 올해 안에 오바마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의사를 받아들여 평양을 공식방문하는 날,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열릴 것이며, 북측과 미국은 현재의 난국(impasse)을 널어설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9월 13일 프랑스 쌩드니시 꼬흐네브공원에서 열린 뤼마니떼 축전장에서 진행된 2009 파리국제정책포럼에서 발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