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위기와 아시아 경제의 진보적 대안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세계경제의 붕괴위기를 지연시키는 몇 가지 요인들
2. 아시아 경제의 진보적 대안
3. 진보적 대안경제와 진보정치운동

1. 세계경제의 붕괴위기를 지연시키는 몇 가지 요인들

유럽도 전세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경제위기에 빠져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를테면, 유럽연합 주요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프랑스가 0.7%, 영국이 0.7%, 독일이 1.3%, 이탈리아가 -0.7%다. 공식실업률은 프랑스가 7.4%, 영국이 5.5%, 독일이 7.9%, 이탈리아가 6.8%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1천38억 유로, 영국의 재정적자는 1천750억 파운드다.

2009년 7월 22일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2009년 세계무역보고서(World Trade Report 2009)’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무역규모는 2008년에 비해 10%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이 망라된 이른바 선진경제 7개국(G7) 가운데서 가장 강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다. 세계경제위기는 원래 미국 금융권에서 일어나 전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의 위기지수는 국제투기자본의 야만적 포식, 신흥 금융기법과 금융파생상품의 무차별한 난동을 겪으면서 붕괴 직전까지 높아졌다.

미국 금융권에서 발생한 손실총액이 3조6천억 달러에 이르렀고, 2008년도 미국의 무역적자는 6천771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미국의 빈집 비율은 15%에 이르렀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가 2009년 7월 15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2.0%에서 -1.3%에 이를 것이라는 종전의 전망치를 -1.5%에서 -1.0%로 상향조정하였다고 한다. 소득과 지출의 비율을 따져보면, 미국인들은 1달러를 벌고 1.33달러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미국 경제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음을 말해준다.

위와 같은 경제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는 붕괴위기에 빠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2009년 7월 19일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 위원장 로렌스 서머즈(Lawrence H. Summers)는 “미국 경제가 6개월 전만해도 실제로 붕괴할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지금은 붕괴위기에서 상당히 벗어났다”고 말했다. 그가 미국 경제가 붕괴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말하자마자, 마치 세계경제위기가 끝나기 시작한 것처럼 주장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동반상승하는 ‘반짝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세계경제위기는 그렇게 끝날 수 있을 만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선진경제 7개국을 비롯한 전세계 자본주의나라들에서 금융, 외환, 재정, 생산, 무역, 고용이 총체적으로 파산위기와 붕괴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총체적인 파산위기와 붕괴위기를 그냥 경제위기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대공황은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경기변동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구조적 요인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므로, 구조적 요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대공황을 일으킨 구조적 요인을 그 어느 나라도 제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구조조정(restructuring)으로 대공황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1930년대에 일어난 대공황에서 현실로 입증된 바 있다. 1930년대에 대공황이 일어나자 미국은 서둘러 비자본주의적 방식을 도입하여 구조조정을 실시하였고, 그에 따라 시장이 무너질 위험을 완화시키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장의 붕괴위험을 완화한 것이지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 중인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세계 각국은 서둘러 비자본주의적 방식을 도입하여 구조조정을 실시함으로써 시장이 무너질 위험을 완화시키면서 위기를 넘기고 있다. 로렌스 서머즈가 미국 경제가 붕괴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말한 까닭은, 시장의 붕괴위험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인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1930년대와 달리 오늘날에는 시장의 붕괴위험을 완화시키는 방도가 더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오늘날 시장의 붕괴위험을 완화시키는 방도는 아래와 같다.

1-1) 1930년대에 시행하였던 전통적인 방도인 정부의 시장개입이 오늘에도 반복되었다. 이를테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미국 연방정부에게 천문학적인 자금을 빌려주면, 연방정부는 그 자금을 긴급구제금융, 경기부양, 사회안전망(social safty net)에 쏟아부으면서 시장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긴급구제금융과 경기부양에 쏟아부은 자금은 3조 달러나 된다. 2009년에 미국 연방정부가 사회안전망에 쏟아부은 자금총액은 2조 달러인데, 미국인 개인소득 가운데 16.2%가 사회안전망 자금에서 나왔다.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빠졌던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미국 연방정부가 ‘뉴딜(New Deal)’이라는 정책을 내걸고 기업구조와 재무구조의 개혁(reform), 시장경제의 경기회복(recovery), 실업자와 빈민의 구제(relief)에 쏟아부었던 총자금은 5천억 달러였다. 그에 비해, 오늘 미국 정부는 시장의 붕괴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려 5조 달러를 쏟아부었다.

미국 연방정부가 긴급구제금융, 경기부양, 사회안전망에 그처럼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을수록 재정적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미국 연방의회예산국(Congressional Budget Office)가 2009년 7월 8일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1조1천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1조1천억 달러라는 재정적자는 미국 연방정부가 재정파산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재정파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진경제 7개국은 각 나라별 실정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이 취한 방식과 같은 방식을 취하여 시장의 붕괴위험을 완화시켰다. 그에 따라 선진경제 7개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눈더미처럼 불어났다. 선진경제 7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재정적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 13.6%, 일본 9.9%, 영국 9.8%, 프랑스 6.2%, 이탈리아 5.4%, 독일 4.7%, 캐나다 3.4%로 예견된다. 선진경제 7개국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국가채무 비율은 2008년에 89.0%였는데, 올해 101.7%로 급증하였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일본 217.2%, 이탈리아 115.3%, 미국 87.0%, 독일 79.4% 순으로 높다.

1-2) 이처럼 선진경제 7개국이 재정파산에 몰렸는데도 망하지 않고 정부의 재정을 계속 유지하는 까닭은 재정적자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이자를 자국 국민에게서 거두어들이는 소득세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세로 충당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이다. 조세방식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조세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책은 1930년대 대공황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다. 그 새로운 방식이란 국채를 마구 찍어내어 다른 나라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국채발행에서 앞장 서 달리고 있다.

미국이 발행한 국채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나라는 중국, 일본, 영국, 러시아, 독일 순이다. 특히 중국의 대미투자가 미국 시장의 붕괴위험을 지연시켜주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해주고 있다. 중국은 2008년도에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미국에 투자하였다. 중국의 대미투자내역을 보면, 국채 매입 9천억 달러, 기관채 매입 6천억 달러, 회사채 매입 1천500억 달러, 주식 매입 400억 달러, 단기예금 400억 달러를 쏟아부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그처럼 천문학적인 자금을 미국에게 대줄 수 있는 까닭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환보유자금을 대미투자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2009년 6월 말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2조 달러를 돌파하여 2조1천300억 달러가 되었는데, 그 가운데 70%가 달러자산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대외채무 가운데 중국에 대한 부채는 25%다.

1-3) 시장붕괴위험을 겪는 선전경제 7개국이 그 위험을 완화시킬 수 있는 까닭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가리키는 신흥경제 4개국(BRICs)의 근로대중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세계경제(global economy)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진경제 7개국이 신흥경제 4개국의 근로대중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제국주의나라들이 개별적으로 자기의 식민지에서 자원을 약탈하고 노동력을 수탈하였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이윤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경제에서 신흥경제 4개국의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53.3%나 되기 때문에, 선진경제 7개국이 그 네 나라의 근로대중을 착취하고 수탈함으로써 시장붕괴위험을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선진경제 7개국이 신흥경제 4개국의 근로대중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방식은 아래와 같다.

첫째, 선진경제 7개국은 현지생산에서 신흥경제 4개국의 근로대중을 착취한다. 다시 말해서, 신흥경제 4개국에 설립한 선진경제 7개국의 해외기업들이 현지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주고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가는 것이다. 신흥경제 4개국에서 노동집약형 제조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신흥경제 4개국의 노동인구는 15억500만 명인데, 나라별로 살펴보면, 중국 8억700만 명, 인도 5억2천300만 명, 브라질 1억 명, 러시아 7천500만 명이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비교하면, 프랑스는 6.84 유로, 미국은 7.25 달러, 중국은 1.2 달러다. 선진경제 7개국의 노동자들보다 임금을 평균적으로 5-6배나 적게 받는 중국 노동자가 8억 명이나 되고, 중국 노동자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인도, 브라질, 러시아의 노동자가 7억 명이나 된다.

선진경제 7개국의 해외기업이 신흥경제 4개국에서 고용한 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밝혀주는 자료를 찾을 수 없지만, 선진경제 7개국의 해외기업들이 현지 생산방식으로 임금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이른바 노동시장이 방대하다는 점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이 대중국 투자액 가운데 비금융부문 직접투자액은 1999년에 403억 달러였는데, 2008년에는 950억 달러로 늘어났다. 1978년에 중국이 개혁개방을 개시한 이후 30년 동안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63만5천 개였고,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7천700억 달러였다.

선진경제 7개국의 해외기업들은 신흥경제 4개국에서 현지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을 착취해서 생산한 중저가 상품을 수입하여 아주 싼 값으로 자국 시장에 공급함으로써 자국의 도시중산층과 근로대중의 소비생활을 안정시키고 체제를 유지한다.

둘째, 선진경제 7개국은 국제교역을 통하여 신흥경제 4개국의 근로대중을 수탈한다. 선진경제 7개국은 자국에 있는 국내기업들이 생산한 고가상품을 신흥경제 4개국에 수출하거나 또는 신흥경제 4개국 국내기업들이 현지에서 생산한 중간재나 중저가 소비품을 수입하는 불평등 교역을 통하여 막대한 이윤을 챙겨가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1999년에 131억 달러였는데, 2008년에는 715억 달러로 늘었고, 중국의 대미국 수출액은 1999년에 818억 달러였는데, 2008년에는 3천378억 달러로 늘었다.

2007년에 미국은 중국에서 1천602억 달러에 이르는 중간재를 수입했는데, 전자부품이 803억 달러, 발전장비가 651억 달러, 철강재가 148억 달러였다. 또한 미국은 중국에서 1천14억 달러에 이르는 중저가 소비품을 수입했는데, 완구류 272억 달러, 의류 240억 달러, 가구류 194억 달러, 신발류 145억 달러, 합성수지류 89억 달러, 가죽제품 및 여행용품 74억 달러였다.

셋째, 선진경제 7개국은 국제금융거래를 통하여 신흥경제 4개국의 근로대중을 수탈한다. 중국과 인도에는 국유은행밖에 없고 금융시장을 아직 전면적으로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융적 수탈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의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국은 2007년 12월 13일 미국과 진행한 전략경제회담에서 자국의 금융시장을 개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선진경제 7개국의 금융기관들이 신흥경제 4개국의 금융시장에 투자하여 막대한 이윤을 챙겨갈 날이 가까운 것이다.

1-4)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빠졌는데도 선진경제 7개국 시장이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세계 각국이 무기를 생산하고 국제적으로 거래함으로써 촉진된 군수산업 성장과 그 성장의 연관효과가 시장의 붕괴위험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가 2009년 6월 8일에 펴낸 ‘2009년도 연감(Yearbook 2009)’에 따르면, 2008년도 세계 군비지출(military expenditure)은 1조4천640억 달러였다. 전세계 군비지출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45%가 증가했다. 또한 2008년도에 미국의 군비지출은 6천70억 달러로, 전세계 군비지출의 42%를 차지했다. 2위는 849억 달러의 군비를 지출한 중국이었고, 3위는 657억 달러의 군비를 지출한 프랑스였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군비지출 상위국의 증가율을 보면, 미국 66.5%, 중국 194%, 러시아 173%, 사우디 아라비아 81.5%, 남코리아 51.5%, 인도 44.1%, 브라질 29.9%로 나타났다. 신흥경제 4개국이 군비지출 상위권에 들어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세계 무기거래(arms trade)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40%에서 2006년 52%로 늘어났고, 2007년부터 더욱 급증하였다. 미국의 대외무기판매액은 2005년에 120억 달러였고, 2008년에 320억 달러였다. 대외무기판매시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내무기조달시장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국가미사일방어체계에 해마다 100억 달러씩 지출하고 있고, 대당 3억5천만 달러나 되는 전투기 에프(F)-22를 생산하려면 9만 명을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시장붕괴위험 완화효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단기적 응급처방에 따른 ‘반짝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자본주의경제의 모순은 계속 덧쌓여가면서 또 다른 붕괴위기를 조성하는 중이다. 또 다른 붕괴위기는 국제금융위기에 취약하게 노출된 중국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여 전세계를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가 무너지면 세계경제도 함께 무너진다.

2. 아시아 경제의 진보적 대안

유엔인구연감(United Nations Demoraphic Yearbook)에 따르면, 2006년 현재 세계 인구 65억9천290만 명 가운데 아시아 인구는 39억8천388만 명이고, 유럽 인구는 7억3천127만 명이다. 아시아 인구는 유럽 인구보다 5.4배가 많다.

아시아에는 44개 나라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22개 나라의 순위는 아래와 같다. 중국(13억3천861만), 인도(11억6천607만), 인도네시아(2억4천27만), 파키스탄(1억7천624만), 방글라데쉬(1억5천605만), 일본(1억2천707만), 필리핀(9천797만), 베트남(8천696만), 터키(7천680만), 남북 코리아(7천116만), 이란(6천642만), 태국(6천590만), 미얀마(4천813만), 아프가니스탄(3천360만), 이라크(2천894만), 사우디아라비아(2천868만), 네팔(2천856만), 우즈베키스탄(2천760만), 말레이시아(2천132만), 스리랑카(2천132만), 카자흐스탄(1천539만), 캄보디아(1천449만)

아시아 22개 나라의 공식실업률은 평균 9.7%이며, 빈곤인구비율은 평균 23.8%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인구 가운데 18억5천만 명이 하루 생계비 2달러로 연명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하루 생계비 1달러로 사는 인구가 6억2천100만 명이라고 한다. 특히 중국 인구 가운데 1억 명은 하루 생계비 1달러 미만으로 사는 극빈계층이다.

위의 통계자료가 말해주는 것처럼,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동인구와 빈곤인구가 집중되어 있고, 임금노동에 대한 착취와 사회적 빈부격차가 극에 이른 지역이다. 이러한 아시아 경제상황은 노동문제와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경제(alternative economy)를 요구한다.

현 시기 아시아에서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일차적인 방도는 경제성장을 통하여 노동자의 고용을 확대하고 실질임금을 올려주는 것이고,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일차적인 방도는 근로대중을 위한 사회안전망(social safty net)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에도 막대한 자본이 요구되고, 사회안전망 구축에도 막대한 재정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자본과 재정이 없으면 노동문제와 빈곤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 것이다.

자본과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등장하는 것이 기업구조조정(corporate restructuring)이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시행되는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정책에 의거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neo-liberal restructuring)은 자본주의 시장의 붕괴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체나 사업을 통폐합, 축소, 폐지, 매각, 확대, 신설, 매수하여 사업구조를 바꿈으로써 기업의 수익성을 크게 개선하려는 것이다. 주로 금융부문, 기업부문, 공공부문, 고용부문이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가져다주는 기업의 수익은 근로대중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사업에 전혀 쓰이지 않고, 민영화라는 구실을 내걸고 외국계 자본에게 이윤형태로 유출되거나 국내 대자본이 독식하게 된다. 또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 of labor market)을 강화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해고대란을 일으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깎아내린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근로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기업을 위한 것이다. 아시아 각국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시행할수록 아시아의 노동문제와 빈곤문제는 더 극단적으로 악화될 뿐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새로운 진보적 대안은 없을까? 아시아의 노동문제와 빈곤문제를 해결할 진보적 대안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전적으로 대비되는 진보적 구조조정(progressive restructuring)이다.

진보적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정반대가 되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조조정이 가져다주는 기업의 수익을 가지고 근로대중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노동자의 고용을 확대하고 실질임금을 올려주는 것이다. 아시아의 노동문제와 빈곤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진보적 구조조정으로 대체할 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적 구조조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2-1) 진보적 구조조정은 중요산업의 국유화에서 출발한다. 근로대중의 고용을 확대하고, 실질임금을 인상하고, 생활물가를 안정시키고, 빈곤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는 중요산업의 국유화밖에 없다. 진보적 민주정부가 중요산업을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야 노동문제와 빈곤문제를 해결할 막대한 재정을 마련할 수 있다. 따라서 진보적 구조조정에서 가장 선결적인 과제는 중요산업의 국유화다. 진보적 대안경제에서 말하는 중요산업의 국유화는 자립경제를 안착시키기 위한 진보적 구조조정이다. 이를테면, 은행, 언론, 철도, 지하철, 공항, 항만, 전기, 석유, 석탄, 도시가스, 철강 등을 국유화하는 진보적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것이다.

원래 자본주의 경제에서 국유화란 정부가 기업의 주식을 51% 이상 보유하여 시장경제를 일정한 범위에서 통제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2009년 5월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대표기업 제너럴 모터스(GM)이 파산하자 정부재정 500억 달러를 내서 그 기업의 주식 60%를 사들여 국유화하였다. 정부가 기업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대주주의 지위를 차지한 정부는 기업경영에 개입하게 되는데, 무능한 경영진을 교체하거나 기업의 재정목표를 설정해주거나 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에 비해, 진보적 대안경제에서 말하는 기업의 국유화는 정부가 재정을 내서 기업의 주식을 사들임으로써 대주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대주주로 되면,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이 기업을 통제하게 된다. 주식시장이 기업을 통제하게 되면, 기업수익은 배당금으로 전환되어 주식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진보적 대안경제에서 말하는 기업의 국유화는 주식시장의 통제를 받는 국유화가 아니라 주식시장의 통제에서 벗어난 국유화로 되어야 한다. 주식시장의 통제에서 벗어난 국유화를 실현해야 기업수익을 주식투자자들에게 넘겨주지 않고, 노동자와 근로대중에게 분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업의 어음발행도 자연히 폐지된다. 주식시장의 통제에서 벗어난 국유화를 실현하려면, 정부가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식을 폐기하고, 그 대신 기계설비, 공장부지, 상품재고, 미수채권을 사들여야 한다.

주식시장의 통제에서 벗어나 국유화를 실현한 기업에서는 진보적 민주정부에서 파견한 전문경영인과 노동조합에서 선출한 대표가 공동으로 기업을 경영하게 된다. 진보적 민주정부와 민주노조의 공동경영권은 법적으로 보장된다. 정부와 노조의 공동경영은 노동조합 대표와 자본가 대표가 공동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북유럽식 기업경영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기업경영방식이다.

2-2) 진보적 기업구조정은 아시아에 만연된 수출주도형 경제를 새로운 내수주도형 경제로 바꾸어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크게 낮추는 것이다. 아시아 경제가 대외의존도를 낮춘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되어야 경제적 자립력을 가질 수 있다.

진보적 대안경제의 맥락에서 보면,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하는 것과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내수시장을 확대하는 것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도시중산층이 발달하지 못하고, 자국의 근로대중이 궁핍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사회적 소비능력이 없는 조건에서는 내수시장을 확대하려고 해도 확대하지 못한다.

진보적 민주정부가 중요산업을 국유화하여 마련한 재정으로 근로대중의 고용을 확대하고, 실질임금을 인상하고, 생활물가를 안정시키고, 빈곤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한 뒤에, 그리하여 근로대중에게 사회적 소비능력이 생긴 뒤에,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할 수 있다. 중요산업을 국유화하지 못한 나라는, 수출주도형 경제를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하지 못한다. 아시아 경제의 진보적 대안은 내수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산업을 국유화하여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한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하는 것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대기업을 통제하고 국내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진보적 구조조정을 필수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2-3) 국내총생산(GDP)에서 민생경제의 비중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진보적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 민생에 직결된 대중의료, 대중교육, 대중교통, 대중통신을 국영화하고, 민생경제의 핵심인 고용체계, 식품공급체계, 주택공급체계를 국영화하는 것이다. 대중의료와 대중교육을 국영화하는 것은 근로대중을 위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한다는 뜻이고, 대중교통과 대중통신을 국영화하는 것은 근로대중의 교통비와 통신비를 절감시켜준다는 뜻이다. 또한 고용체계를 국영화하는 것은 자본가가 지배해온 노동시장을 철폐하고 그 대신 정부가 고용문제를 책임적으로 해결해준다는 뜻이고, 식품공급체계를 국영화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인 식생활에 요구되는 식품을 정부가 저가식품정책에 따라 공급해준다는 뜻이고, 주택공급체계를 국영화하는 것은 정부가 소유한 임대주택을 저가로 공급하여 근로대중의 주거권을 보장해준다는 뜻이다.

정부가 나서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민생문제를 해결하여야 근로대중이 실업공포, 생계불안정, 생활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3. 진보적 대안경제와 진보정치운동

진보적 대안경제는 진보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진보적 대안경제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진보정치에 의해서 실현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란 근로대중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민주주의를 뜻한다. 근로대중의 권리와 이익을 위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특권부유층의 권리와 이익을 제거대상으로 삼지만, 도시중산층의 권리와 이익까지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운동을 진보정치운동이라 한다. 아시아에서 진보정치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때, 아시아 경제의 진보적 대안도 실현될 것이다.

민주노조는 중요산업을 국유화할 능력이 없으므로, 진보적 구조조정은 진보적 민주정부가 실시해야 한다. 우파정부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면, 진보적 민주정부는 진보적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진보적 민주정부를 세워야 진보적 구조조정을 실시할 수 있고, 아시아의 노동문제와 빈곤문제를 근로대중의 이익에 맞게 해결할 수 있다.

근로대중 정당이 집권하여야 진보적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아시아 각국에서 근로대중이 자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세우고 진보정치운동을 추진해야 할 까닭이 거기에 있다.

요즈음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에꽈도르, 니까라과 같은 나라들에서 새로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적 민주정부가 세워졌지만, 아시아에서는 아직 진보적 민주정부가 등장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아직 진보적 민주정부가 등장하지 않은 까닭은, 근로대중 정당과 민주노조의 힘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인도나 필리핀 같은 나라에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계급 정당은 있지만,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근로대중 정당은 없다. 또한 아시아 각국에 노동인구는 많지만 민주노조 결성비율은 매우 낮다.

아시아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강령으로 제시한 대표적인 근로대중 정당은 남코리아의 민주노동당(Korean Democratic Labor Part/KDLP)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조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KCTU)으로부터 배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대중적 지지율이 10%밖에 되지 않고, 민주노총에는 노동계급의 5%밖에 망라되지 않아서 민주노동당은 아직 집권능력을 갖지 못하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남코리아의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해 앞장서서 투쟁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의 진보적 대안은 그들의 투쟁 속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실현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대외의존성이 매우 높은 남코리아는 아시아에 금융위기 몰아닥쳤던 1997년 말부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시장경제의 붕괴위험을 완화시켰다. 1998년부터 남코리아의 노동계급을 비롯한 전체 근로대중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가혹한 피해를 입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몰고온 노동계급의 대량해고와 비정규직화, 빈부격차의 극대화, 중소기업의 연쇄파산, 도시중산층 하층의 빈민화는 남코리아 근로대중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저지하려는 남코리아 근로대중의 투쟁 속에서 진보정치운동이 일어났고, 그 운동의 결실로 2000년 1월에 창당된 근로대중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위기는 남코리아 경제를 파탄의 늪에 더 깊이 몰아넣었다. 생존권을 짓밟힌 남코리아의 근로대중은 각지에서 민생투쟁을 벌이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근로대중과 함께 투쟁하고 있다.

그런데 특권부유층을 위한 정책에 매달리고 있는 남코리아의 이명박 정부는 초보적 민주주의마저 말살하는 강압통치로 근로대중의 정치적, 경제적 요구를 짓밟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진보적 사회단체 지도자들과 민주노조 지도자들을 감옥으로 끌어가고 있다. 남코리아의 경찰특공대는 대량해고에 저항하며 일자리를 달라고 외치는 노동자들 머리 위에 헬기를 동원하여 공중에서 독성 화학물을 뿌려대고, 강력한 전기충격을 가해 잘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테이저 총(TASER gun)을 노동자들에게 발사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오늘 남코리아의 근로대중은 그들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끝없이 고통을 겪는 민생현장에서 진보적 대안경제를 요구하고 있다. 진보적 민주정부를 세우기 위한 근로대중과 그들의 정당이 벌이는 치열한 투쟁현장에서 진보적 대안경제의 새싻이 움트고 있다.

* 이 글은 2009년 9월 11일 프랑스 쌩드니시 꼬흐네브공원에서 열린 뤼마니떼 축전장에서 진행된 2009년 파리국제정책포럼에서 발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