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기 전선구축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이론문제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정세는 전선을 요구하고, 전선은 준비를 요구한다
2. 전선은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 위에 구축된다
3. 진보정치운동의 전선개념에 대하여
4. 전선에서는 폭동이 아니라 항쟁이 일어난다
5. 현 단계에서 전선은 민주대연합이다
6.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7. 민주대연합의 공동집권전략
8. 새로운 유형의 민주연립정부
9. 공동집권 이후의 진보적 정권교체

1. 정세는 전선을 요구하고, 전선은 준비를 요구한다

대규모 촛불시위투쟁이 벌어졌던 2008년 여름의 정세는 전선구축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정세였다고 말할 수 있다. 2008년 5월 2일부터 8월 15일까지 106일 동안 이 땅의 성난 민심은 무려 2천398차례의 광장집회와 거리시위를 일으켰고, 경찰청이 축소해서 발표한 것만 보더라도 연인원 93만2천680명이 참가하였다. 촛불시위투쟁이 일어난 기간 동안 이명박 정권은 경찰병력 68만4천540명과 물대포 374대를 동원한 폭력적인 진압작전으로 대응하였다.

당시 정세는 전선구축을 요구하였으나 진보정치운동은 전선을 구축하지 못하였고, 맹렬하게 타오르던 대중저항운동은 정권의 집요한 탄압공세를 뚫고 나가지 못하고 결국 좌절하였다. '촛불바다'가 꺼져버린 빈터 위에 몰아친 것은 억압정권이 재개한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대량수입과 촛불시위투쟁 참가자들에 대한 집요한 검거선풍이었다.

문제는 2008년 여름의 촛불시위투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평가문제이다. 그 투쟁을 평가하는 기준은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진보정치운동의 평가기준은 전선전략에 의거하는 것이여야 한다. 전선전략의 주체적 관점이 아니라, 그 어떤 다른 것이 대중저항운동의 평가기준으로 될 수 없음은 진보정치운동에게 너무도 자명하다. 전선전략으로 조명할 때, 촛불시위투쟁이 남긴 성과와 의의, 한계와 결함이 드러나 보일 것이다.

2008년 여름의 촛불시위투쟁을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 새로운 대중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선구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수십만 시위군중이 운집한 뜨거운 저항열기를 보고 감격한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이 내놓은 평가이다. 물론 억압정권에 저항하는 대중에게 투쟁의지를 북돋아주고, 대중저항운동을 짓밟는 억압정권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촛불시위투쟁의 의의를 수사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전선전략의 관점에서는 엄정한 평가가 요구된다.

전선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저항이나 폭동이 아니라, 본질상 정치투쟁이다. 따라서 정치투쟁을 평가하는 일차적인 기준은, 투쟁이 얼마나 격렬하게 전개되었는가 또는 얼마나 많은 대중이 참가하였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성격이 뚜렷하였는가 또는 희미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촛불시위투쟁의 정치적 성격이 뚜렷하였는가 또는 희미하였는가를 가늠해보는 것은, 그 투쟁을 전선전략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당이 수동적으로 참가하고 산발적으로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정치적 대표체를 구성하지 못한 자연발생적인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을 저지하려는 낮은 수준에서 차츰 발전하여 막판에 정권퇴진 구호가 나오기는 하였으나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전면적인 정치투쟁으로까지 발전되지는 못하고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수준에서 멈추었다는 점에서, 촛불시위투쟁은 저항운동의 전형이었지 정치투쟁은 아니었다.

촛불시위투쟁이 저항운동에서 멈추고 정치투쟁으로 상승, 발전되지 못한 까닭은, 전선이 구축되지 못한 조건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촛불시위투쟁이 정권의 탄압공세와 반진보세력의 반격공세를 뚫고 끝까지 전진하려면 반드시 전선이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전선의 밤을 눈부시게 밝히는 '촛불바다'만이 정권의 탄압을 뚫고 최후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2008년 여름에 일어난 촛불시위투쟁의 의의는 전선구축의 필연성을 제기하였다는 데 있다. 촛불시위투쟁의 정신을 계승하여 민생과 민주주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연대기구인 '민생민주국민회의 결성준비위원회'가 2008년 10월 25일 서울에서 출범하였다.  

'촛불바다'가 썰물처럼 사라진 뒤 여러 달이 지난 오늘, 2009년의 정세는 또 다시 '촛불바다'가 밀물처럼 몰려오는 저항운동의 대고조를 예고한다. 정세의 요구는 절실하고 급박하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가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몰려온 위기는 경제위기와 정치위기가 서로 뒤엉킨 이중위기, 그런 까닭에 위기를 해소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파국적 결말을 불길하게 예고하는 근본적인 위기이다.

돌이켜보면, 이 땅에 그러한 이중위기가 몰려온 경험은 흔하지 않다. 1979년 10월에서 1980년 5월까지 기간에 경제위기와 정치위기가 서로 뒤엉킨 이중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불과 다섯 달 남짓한 그 기간에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원인은, 민생파탄으로 만연된 절대적 빈곤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중첩되고 격화된 이중위기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중위기가 아직 전면화, 심화되지 못한 조건에서 일어났던 2008년 여름의 촛불시위투쟁과 다르게, 2009년에 대중이 절망과 체념을 박차고 대규모 촛불시위투쟁에 다시 일어난다면 그 투쟁은 이중위기 속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은 2009년에 일어날 대중저항운동이 처음부터 격렬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 2009년 1월 20일 경찰특공대와 용역깡패들이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몬 '용산참사'는 대중저항운동을 일으킬 여러 '도화선'들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그렇다면 만약 2009년에 격렬한 대중투쟁이 재발하는 경우, 진보정치운동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해답은 간단명료하다. 전선구축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진보정치운동에게 전선구축 이외에 다른 전략이나 대안은 없다.

대중투쟁이 재발하기 전에 진보정치운동이 전선을 구축할 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을지 모르지만, 전선구축이 요구하는 사전준비는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이다. 진보정치운동이 억압정권과 한 판 붙어보자는 식으로 주먹구구식 싸움을 벌이면 정권의 탄압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백전백패로 끝난다. 준비하지 않으면 전선을 구축할 수 없고 승리할 수도 없다.

사전준비에는 정치적 준비, 조직적 준비, 이론적 준비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이론적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선구축의 원칙, 방도, 전망를 이론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은 전선구축을 위한 노력에 과학적 인식과 전망을 안겨준다. 전선구축의 원칙, 방도, 전망을 이론적으로 해명할 때, 전선구축이라는 정세의 절실한 요구는 희망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2008년 12월 4일 서울에서 '민생민주국민회의(준)'의 제안에 따라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 각계인사 연석회의'가 열린 것은, 현 정세가 전선구축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연석회의에는 민주노동당, 민주당, 진보신당은 물론 창조한국당과 사회당까지 참가하였고, 진보적 성향의 사회단체들과 개별인사들은 물론 중도적 성향의 사회단체들과 개별인사들도 폭넓게 참가하였다. 2009년 1월 29일 서울에서 열린 '폭력살인진압 규탄 및 엠비(MB)악법 저지를 위한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 각계인사 공동기자회견'에서는 400여 참가단체들이 2009년 2월 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2월 2일에 개원하는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반민생, 반민주 입법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바야흐로 '반이명박 전선'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 전선은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 위에 구축된다

전선이라는 말의 쓰임새는 두 가지이다. 싸움이 벌어지는 전투지대라는 뜻을 지닌 전선(戰線)이라는 말로 쓰이고, 싸움을 벌이는 최전방이라는 뜻을 지닌 전선(前線)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지난 시기 식민지민족해방운동에서 썼던 민족통일전선이라는 개념에 들어있는 의미는 전자이고, 오늘날 진보정치운동에서 쓰는 전선이라는 개념에 들어있는 의미는 후자이다. 이처럼 전선이라는 개념은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재해석되었다.

1930년대 유럽에서 반파쇼민주주의운동이 구축한 전선은, 노농동맹 중심의 사회주의운동과 중간계급 중심의 사회민주주의운동이 결합한 인민전선(人民前線)이었다. 같은 시대에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이 구축한 전선은 사회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이 결합한 민족통일전선(民族統一戰線)이었다. 8.15 해방정국에서 구축한 전선은 민주주의민족전선이었고, 나라의 분단과 민족의 분열이 심화되는 시기에 구축한 전선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르고 세기가 바뀐 오늘 우리는 매우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의 진보정치운동은 전선전략의 역사적 경험과 성과를 계승, 발전시키면서 오늘의 주객관적 조건에 맞는 새로운 전선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현 시기 우리 사회의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를 파악한 기초 위에서 진보정치운동의 전선전략을 논해야 한다.

첫째, '국가보안법'의 탄압에 짓눌려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주의운동이나 사회주의정당이 존재하지 못하며, 중도정치세력마저 약하다. 다른 나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정당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존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사회주의정당과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사실상 존재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사회주의운동과 사회민주주의운동의 정치연합(political coalition)은 실현할 수 없는 고전적 명제로 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운동이 존재하기 힘들고 민족주의운동이 정치세력화되지 못한 조건에서, 사회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의 정치연합 역시 실현할 수 없는 고전적 명제로 되었다.

둘째, 오늘 우리 사회의 사회계급관계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변화들이 일어났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노동계급 내부에서 분화가 일어났고, 농민계층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드는 대신, 도시중산층이 발달하고 자영업자 계층이 두텁게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계급관계의 변화는, 전선을 구축할 주체역량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직결되는 것이다. 현 시기 전선역량의 구성범위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포괄하여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는데, 근로대중(working mass)이라는 개념은 농민과 자영업자를 포괄하는 뜻으로 쓴다.

각종 소매상점과 각종 영세제조업체, 목욕탕, 이발소, 미장원, 세탁소, 식당, 노래방, 피씨방, 안경점, 제과점, 자동차정비소 같은 영세기업을 소유한 자영업자는 당연히 서민의 범주에 속한다. 민생경제파탄으로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600만 명에 이르는 자영업자 계층은 근로대중의 중요한 구성성분이다. 또한 실직자, 구직단념자, 무직자를 합한 실업자 계층 257만 명도 당연히 서민의 범주에 속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구성성분을 말할 때,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는 말을 쓴다.

전선역량구성을 논할 때, 중소기업을 소유한 도시중산층을 전선역량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중소기업을 소유한 도시중산층 가운데는 진보정치를 반대하는 반진보적 구성성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고, 그 계층에게 특유한 기회주의적 속성은 그 계층의 정치적 향배를 가늠하기 힘들게 한다. 특히 민생경제가 파탄되면서 도시중산층이 '신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오늘의 위기상황은, 그 계층이 지배계급에게 '총력안보'를 요구하면서 억압정권에 순응, 협조하는 계기로 될 수도 있고, 거꾸로 민생파탄과 억압정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터뜨리며 억압정권에 저항하는 계기로도 될 수 있다. 현 정세에서 도시중산층의 정치적 향배는 매우 유동적이다.

위와 같은 사실을 생각하면 도시중산층이 전선역량의 주력으로 될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시중산층을 전선역량에서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전선전략의 원칙을 훼손하는 과오이다. 사회계급구성에서 양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할 뿐 아니라 산업구도에서도 중소기업 소유자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시중산층을 배제해놓고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폭넓은 전선을 구축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전선은 도시중산층을 무차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층을 전선의 지지세력으로 돌려세워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전선에 동참시키는 대통합의 원칙에서 구성되어야 한다. 전선이 구축되지 못한 까닭에 억압정권 대 저항적 대중 사이에 분명한 대치선이 그어지지 않은 오늘, 도시중산층은 정세추이를 관망하고 있지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강고한 전선을 구축하여 정세변화를 주도하게 될 때 도시중산층은 전선을 지지하는 역량으로 변모할 것이다. 따라서 도시중산층은 전선의 잠재역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도시중산층을 전선역량의 일부로 인정하는 문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중도좌파정당(center-left party)이 도시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중도우파정당(center-right party)과 정치연합을 실현하는 문제에 직결된다. 정권을 잡은 우파정당에 맞서서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대치하는 긴장된 정치세력관계, 이것이 전선이 구축되어야 할 공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전선에는 노동계급, 농민, 자영업자, 도시중산층이 폭넓게 참가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이 총결집하는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은, 2008년 여름 남측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촛불시위투쟁에서도 입증되었다. 2008년 6월 29일 1만8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에서 열린 촛불시위투쟁의 구성성분에 대한 경찰청의 분석을 보면, 시위참가자는 노동자 5천500명, 서민 4천명, 중고생 3천명, 대학생 2천500명, 사회단체 회원 2천명, 진보정당 당원 1천명으로 나와있다.

3. 진보정치운동의 전선개념에 대하여

전선개념을 논할 때, 정당을 배제하고 사회단체들이 연합하는 방식으로 전선을 구축하려는 생각은 무익한 고정관념이므로 버려야 한다. 집권전략을 알지 못하고 저항운동에만 익숙한 사회단체들에게 그러한 고정관념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당을 배제한 사회단체연합방식으로 전선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진보정치운동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였던 까닭에 사회단체들이 앞장서서 투쟁하였던 1990년대에나 통했던 사고이다. 2000년대 이후 진보정당이 엄연히 활동하는 데도, 진보정당은 원내입법활동만 하면 되고, 전선구축은 사회단체들이 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치투쟁을 저항운동으로 격하시키거나 대체하려는 심각한 오류이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조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1990년대에 진보적 사회단체들은 자기의 운동을 민족민주운동(national democratic movement)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투쟁하고 있는 오늘의 운동을 사회단체 중심으로 추진되었던 1990년대 식 민족민주운동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의 운동은 진보정치운동(progressive political movement)으로 규정하여야 한다. 진보정치운동이란 진보정당과 민주노조가 중심에 서 있는 새로운 운동개념이다. 진보정치운동이라는 개념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뜻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운동, 다시 말해서 진보적 정권교체를 전략목표로 삼는 정치운동이라는 뜻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진보정당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의도에서 민주노동당을 가리켜 '민주노총당'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진보정당의 가장 믿음직한 존립기반은 민주노조이다. 민주노조가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요구하며 일어설 때 진보정당이 창당될 수 있으며, 진보정당이 존재해야 진보정치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조건에서 진보정당이 창당될 수 없으며, 진보정치운동이 전개될 수 없다. 우리의 경우에도, 민주노총(KNTU)이 결성되고 그 기초 위에서 민주노동당(KDLP)이 창당되었고 진보정치운동이 전개되어온 것이다. 진보정당의 계급적 중심에는 언제나 민주노조가 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전개되는 진보정치운동이 자기의 고유한 형식을 갖추기는 하였으나 내용이 아직 부실한 한계를 안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선언하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기는 하였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민주노동당의 계급적 중심으로 자리잡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은 내용적으로 아직 '민주노총당'이 되지 못하였는 데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민주노총당'이라는 비하발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땅의 진보정치운동이 내용적으로 부실한 근본원인은, 민주노동당의 핵심역량과 민주노총의 핵심역량이 각각 정파갈등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진보정당과 민주노조 안에 여러 정파들이 존재하며 경쟁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진보정당과 민주노조가 정파갈등구조에 빠지는 것은 진보정치운동의 전반적 침체와 퇴행을 불러오는 요인이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조가 밀고 나가는 진보정치운동은 여러 정파들끼리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정파운동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 들어가서 전선을 구축하고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정치운동이다. 정치활동가들이 정파갈등구조에 갇히면 정치운동이 정파운동으로 전락하는 법이다.

2009년 1월 13일, 17일, 21일에 걸쳐 민주노총의 3대 정파인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에 속한 5개 조직의 활동가들이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것은 정파갈등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간담회에서는 정파갈등을 극복하고 상호협력하여 민주노총의 무기력증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였고, 이를 위해 몇 가지 실천방안을 합의하였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은 진보정치운동이 어떻게 대안적 정치운동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진보정치운동이 대안적 정치운동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추동역량과 현실조건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진보정치운동은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운동이며, 진보적 정권교체의 시나리오는 진보정당과 민주노조를 정권교체의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집권 시나리오이다.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사회단체가 진보정당과 민주노조를 대신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진보정치운동을 논할 때, 진보정당과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말은 사회단체들을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을 배제한다는 말이 아니다.

논점은 명백해진다. 진보정치운동의 전선개념은 정당, 노조, 사회단체 3자 연합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선의 주체역량은 정당, 노조, 사회단체들이 정치적으로 연합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정당, 노조, 사회단체를 아우르는 3자 정치연합(tripartite political coalition)은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추동역량과 현실조건을 만들어내는 전략거검으로 된다.

4. 전선에서는 폭동이 아니라 항쟁이 일어난다

전선은 싸움이다. 투쟁 없는 전선은 전선이 아니다. 전선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서로 인정할 수 없는 양대 세력이 명운을 걸고 벌이는 치열한 싸움이다. 억눌리고 짓밟히고 빼앗긴 피억압세력과 억누르고 짓밟고 빼앗는 억압세력이 벌이는 싸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양대세력이 맞붙는 싸움은 일반적인 의미의 싸움이라 하지 않고 항쟁이라 한다.

개인들 사이에서도 싸움이 벌어지고 집단들 사이에서도 투쟁이 벌어질 수 있으나, 항쟁은 대중만이 벌이는 특유한 싸움이다. 그래서 대중항쟁이라 한다. 6.25 전쟁 이후 이 땅의 대중항쟁사는 1960년의 4.19 혁명, 1979년의 부마항쟁, 1980년의 광주항쟁, 1987년의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전선은 대중만이 전개할 수 있는 특유한 싸움인 항쟁을 위해서 구축하는 것이다. 만약 대중항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없다. 전선과 항쟁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전선을 구축하고 항쟁을 밀고 나가는 투쟁주체는 어디까지나 대중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다. 이 땅에서 오로지 대중만이 전선을 구축할 수 있고, 항쟁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전선은 대중 자신의 항쟁을 위해 대중의 손으로 구축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전선은 그 자체가 항쟁으로 전화되는 운명을 타고난다고 말할 수 있다.  

항쟁으로 전화되는 전선에서는 투쟁방향이 분명해야 하고, 투쟁목표가 명백해야 한다. 이것은 전선이 갖추어야 할 불변의 진리이다. 전선이 가리키는 투쟁방향은 억압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고, 전선이 추구하는 투쟁목표는 정권교체를 통하여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항쟁은 대중의 분노가 폭발하는 저항이나 폭동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시대의 개막이며 새로운 미래의 창조이다.

대중의 정치의식이 급진화되면서 대중저항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이 상호결합할 때, 다시 말해서 전선이 구축될 때, 항쟁동력이 폭발적으로 분출된다. 그러나 전선이 구축되지 못한 조건에서는 항쟁이 아니라 저항만 일어난다. 진보정치운동과 결합하지 못한 대중저항운동이 억압정권의 탄압을 받으며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고 전면화될 때 일어나는 것이 폭동이다. 따라서 폭동에는 대중의 정치의식이 급진화하는 현상도 없고 정치적 목표도 없으며, 분노의 폭발만 있다.

항쟁은 폭동이 아니다. 전선에서 일어나는 항쟁이 폭동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없다. 억압정권과 반진보세력은 항쟁을 폭동으로 몰아가면서 항쟁에 참가한 대중을 '폭도'라고 중상비방하지만 그것은 대중항쟁을 고립시키고 유혈진압으로 짓누르려는 잔인하고 비열한 탄압명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5. 현 단계에서 전선은 민주대연합이다

전선은 정치연합이며, 전선을 밀고 나가는 구심조직은 정치연합체이다. 전선구축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물론 도시중산층까지 총결집하는 강력한 구심력을 가진 정치연합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진보정치운동 내부의 여러 정파들이 연합한 것은 전선이 아니다. 진보세력들끼리 연합한 것도 역시 전선이 아니다. 진보세력이 자기와 다른 비진보세력과 연합한 것이 전선이다. 비진보세력이란 중도우파정당과 중도적 성향의 사회단체들을 말한다. 진보세력이 자기와 다른 비진보세력과 연합하여야 하는 까닭은, 억압정권을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이 대통합을 이루어야 정권교체를 실현할 추동역량과 현실조건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세력들끼리만 뭉쳐서 투쟁해도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주관주의에 빠진 착각이다. 만약 진보세력들끼리 뭉쳐 투쟁함으로써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면, 힘들게 전선을 구축할 필요조차 없을 테지만, 정치현실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며 정권교체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억압정권을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이 하나의 전선에 결집하여 대통합을 이루어 커다란 정치연합체를 내오고 그에 의거하여 총공세를 밀고 나가야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 정권교체는 진보세력과 비진보세력이 통합된 강력한 전선역량의 총공세로 실현되는 것이다.

진보정당과 진보적 성향의 사회단체들이 전선이라는 말에 익숙하다고 해서 비진보세력과 만나는 자리에서까지 비진보세력이 이해하지 못하는 전선이라는 용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비진보세력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전선이라는 용어 대신에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다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대연합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더 좋다. 그런 의미에서 전선을 구축한다는 말은 대연합을 형성한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그런데 지금 이 땅의 진보정당과 진보적 성향의 사회단체들에게는 진보대연합(grand progressive coalition)이라는 개념과 민주대연합(grand democratic coalition)이라는 개념이 제출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진보대연합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민주대연합이라 한다. 그 두 개념들 가운데서 어떤 것이 전선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일까? 이 물음은 단지 용어선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전선구축이 요구하는 대연합의 형성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진보대연합이라는 개념은, 그 개념에 익숙한 정치활동가들이 의식하건 혹은 의식하지 못하건, 대중에게는 진보세력들끼리만 연합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진보세력들끼리 연합한다는 말은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세력들끼리, '운동권 정당'이라고 불리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연합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대로, 진보세력들끼리 연합하는 것은 전선이 아니다. 따라서 진보대연합이라는 개념보다 정치적 수준을 한층 낮춘 민주대연합이라는 개념을 써야 진보세력과 비진보세력이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전선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

현 단계의 전선개념을 진보대연합이라고 규정하면, 중도우파정당이 참가하는 것이 힘들게 되고, 중도적 성향의 사회단체들도 참가하기에 머뭇거릴 것이다. 중도우파정당과 중도적 성향의 사회단체들까지 참가하는 폭넓은 정치연합을 건설하려면, 진보대연합이라는 용어를 쓸 것이 아니라 민주대연합이라는 용어를 써야 옳다.

6.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진보세력과 비진보세력이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민주대연합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풀기 힘든 과제는, 민주대연합에 참가하는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이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합의하는 일이다. 민주대연합에서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합의하는 과정은 거기에 참가하는 정당, 노조, 사회단체의 대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합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민주대연합의 정치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권퇴진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민주대연합이 정권퇴진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합의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민주대연합을 형성할만한 객관적 조건이 아직 성숙되지 못한 것이다.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합의하지 못하면 민주대연합을 형성할 수 없다.  

2008년 여름에 있었던 촛불시위투쟁에서 경험한 것처럼, 민주대연합의 정치적 목표는 처음에 민생파탄과 억압정치와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수준에서 출발하여 차츰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상승, 발전해갈 수 있다. 민주대연합의 정치적 목표가 상승, 발전하도록 추동하는 동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대중투쟁현장에서 분출되는 것이다.

민생파탄과 억압정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반감과 환멸은 평소에 침묵을 지키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억압정권에 대한 분노의 폭발로 떠밀고, 그리하여 사회 전반에 저항적 분위기가 급속히 퍼지고 대중투쟁이 급격히 고양될 때,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이 결집한 민주대연합은 정권퇴진이라는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합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대연합의 정치적 목표가 억압정권의 퇴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는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과 각 주요도시의 도심을 뒤덮은 성난 민심이 정권퇴진구호를 외치기 시작할 때 민주대연합이 직면하게 될, 풀기 힘든 과제는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는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신속하게 합의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합의는 민생파탄과 억압정치와 부정부패로 고립된 억압정권을 퇴진시키고, 국민대중의 민주주의적 요구에 따라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자고 합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투쟁열기가 최고조로 폭발하는 급박한 현장에서 새로운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신속하게 합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대연합에 참가하는 비진보세력들은 억압정권을 반대하는 것에는 쉽사리 동의하면서도, 억압정권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는 정치적 목표에 대해서는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들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는 까닭은 세 가지이다.

첫째, 억압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면서 정권을 강하게 압박하면, 정권의 '나쁜 행실'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관념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책변화를 추구하는 고정관념은 웬만한 충격을 가하지 않으면 깨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둘째, 이명박 정부가 선거를 통해서 세워진 합법정부라는 사실도, 새로운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정치적 목표에 합의하지 못하도록 작용하는 요인이다. 2008년 여름 촛불시위투쟁이 전개되었던 시기에는 23%까지 떨어졌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은 최근에 다시 30%대로 올라갔다. 이것은 합법적으로 등장한 우파정권에게 언제나 불변의 지지를 보내주는 30%에 이르는 고정지지층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민주정부 수립에 대한 진보정치운동의 미래전망이 아직 흐릿하고, 정권교체에 대한 진보정치운동의 요구가 아직 강렬하지 못하다. 이것은 억압정권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는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진보세력이 비진보세력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는 요인이다.

이처럼 민주대연합을 형성한다고 해도, 풀기 힘든 난제들을 시시때때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힘든 상황을 진보정치운동은 과연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해결책은 진보정치운동이 대중저항운동 속에 깊이 들어가서 정치적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진보정치운동이 대중저항운동과 결합되고, 그 결합상태에서 정치적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 양대 운동의 물리적 합산을 훌쩍 뛰어넘는, 그리하여 사람들이 미처 가늠하지 못한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이 폭발하며 난제들을 풀어내게 될 것이다. 진보정치운동과 대중저항운동의 결합현장에서 진보정치운동이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화학작용, 바로 이것이 지난 시기 이 땅의 민중운동사가 몸소 겪으며 용틀임치며 포효하였던, 그리고 오늘 절실히 다시 찾고 있는 대중항쟁의 촉매이다.

진보정치운동이 난제를 푸는 해결방도는 한 가지밖에 없다. 대중으로부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대중저항운동으로부터 정치적 신뢰를 받는 것이다. 집단이기주의나 정파적 이익이나 특정정당의 당리당략을 떠나서 헌신분투할 때,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중투쟁현장에 자신을 송두리째 던질 때, 그때 비로소 대중저항운동은 진보정치운동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결합하게 될 것이다.

7. 민주대연합의 공동집권전략

이 땅의 중도우파정당은 지난 시기 10년 동안 집권하였던 경험이 있지만, 과거의 집권경험이 그들의 재집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도시중산층의 지지와 정권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무능한 야당으로 밀려나버린 중도우파정당이 단독으로 재집권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이 땅의 중도우파정당은 제국주의세력이 강요한 신자유주의세계화를 추종함으로써 민생경제를 파탄시키고 민주개혁에 실패한, 그리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잃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도시중산층의 지지마저 상당부분 잃어버린 약체정당이며, 원래 진보정치를 실현할 의사와 능력을 원천적으로 갖지 못한 정당이다. 그러한 중도우파정당이 오늘 이 사회에 밀어닥친 민생파탄과 억압정치와 부정부패의 광풍을 뚫고 재집권에 성공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중도우파정당은 새로운 대안정당으로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대안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할 정당은 중도좌파정당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중도좌파정당을 새로운 대안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08년에 총선과 촛불시위투쟁을 앞두고, 중도좌파정당의 당내 정파갈등이 어이 없게도 분당사태로 악화되면서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갈라져나갔다. 원래부터 분열되어 있었던 중도좌파정당들이 합당해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으로부터 새로운 대안정당으로 인정받기가 어려운 판인데, 단일한 중도좌파정당이 둘로 갈라지고 말았으니 그러한 중도좌파정당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새로운 대안정당으로 인정할리 만무하다. 더 우울한 전망은, 두 중도좌파정당이 지금에 와서 정신을 차리고 합당한다고 해도, 중도좌파정당의 단독집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두 중도좌파정당이 합당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실망스러운 조건에서, 그 두 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을 합산해도 10%가 채 되지 못하는 불리한 조건에서, 중도좌파정당을 지지하는 유력한 대중언론매체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중도좌파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는 진보적 정권교체의 시나리오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린다.

중도좌파정당의 단독집권이나 중도우파정당의 재집권이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집권대안은 한 가지 밖에 남지 않는다. 정권교체의 대안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joint seizure of power)이다. 분당사태로 치명상을 입은 중도좌파정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으로부터 새로운 대안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이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을 절실히 요구한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은 정세의 요구이다.

주목하는 것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이 정세의 요구일 뿐 아니라 민주대연합의 요구라는 점이다. 공동집권이 민주대연합의 요구라는 점에 관해서는 설명이 요구된다.  

명백하게도, 민주대연합은 한시적인 연대가 아니다. 민주대연합은 그 전선에 참가한 사회정치세력들이 집권에 이르기까지 정치연합을 유지하는 전략적인 연대이다. 집권에 이르기까지 정치연합을 유지한다는 말은 공동으로 집권한다는 뜻이다. 민주대연합이라는 개념을 정권교체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단독집권이 아니라 공동집권이라는 뜻이 돋보인다. 현 시기 이 땅의 정치정세에서 정권교체라는 개념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이라는 뜻이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은 정권교체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이 땅의 정치사는 공동집권의 경험을 갖지 못하였고, 이 땅의 정당들에게서는 공동집권을 전망하는 전략적 사고도 찾기 힘들다. 이처럼 척박한 조건에서, 공동집권에 의한 정권교체 시나리오는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 것일까?  

전선전략의 과학성을 믿는 진보정치운동은, 공동집권을 실현할 가능성을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민주대연합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대연합은 필연적으로 공동집권을 요구할 것이다. 민주대연합은 공동집권을 위한 정치연합이다. 현재로서는 민주대연합만이 공동집권을 실현할 수 있는 근거로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대안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도좌파정당이나 도시중산층의 지지를 상당부분 잃어버린 중도우파정당이 정치연합을 실현하여 정당, 노조, 사회단체가 총결집한 민주대연합을 형성할 때, 중도좌파정당은 민주대연합의 정권교체투쟁에 적극 참가함으로써 자신을 대안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며, 중도우파정당도 역시 민주대연합의 정권교체투쟁에 적극 참가함으로써 이전에 잃어버렸던 대중적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도좌파정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으로부터 대안정당으로 인정받아 정권교체를 추진할 수 있는 길도 민주대연합에 있고, 중도우파정당이 도시중산층의 지지를 회복하여 정권교체를 추진할 수 있는 길도 민주대연합에 있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민주대연합을 형성하지 못하면, 공동집권은커녕 선거연합도 실현할 수 없다.

요컨대, 공동집권은 민주대연합의 요구에 따라서 대중항쟁에 의하여 실현되는 새로운 집권 시나리오이다. 민주대연합이 대중항쟁을 외면하고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선거연합에나 의존하려고 하면, 공동집권을 실현할 수 없다.

8. 새로운 유형의 민주연립정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정치연합은 좌파정당과 우파정당의 정치연합이 아니다. 이 땅에는 우파정당은 있으되 좌파정당은 없으므로, 좌파정당과 우파정당의 정치연합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정치연합을 좌우합작으로 부르는 것은 착오이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정치연합은 중도파정당의 정치연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중도파정당의 정치연합을 실현하여 정당, 노조, 사회단체가 총결집한 민주대연합을 구축하고 그에 의거하여 공동집권을 추진한다는 말은, 억압정권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을 공동의 정치적 목표로 제시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정치연합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운다는 뜻이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정치연합이 좌우합작이 아니므로, 그 두 당이 공동으로 집권하여 세울 새로운 민주정부도 좌우합작정부로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공동집권으로 등장할 새로운 민주정부는 좌우합작정부가 아니라 민주연립정부(democratic coalition government)이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정치연합을 통해서 세우게 될 민주연립정부는 민주대연합에 의거하는 정권적 실체이다.

민주연립정부라는 개념은 1980년대에도 등장한 적이 있으므로, 철이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놓는 듯한 진부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개념이 1980년대에 등장하였다고 해서 내버려야 할 낡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1980년대에 썼던 민주연립정부라는 개념은, 보수야당이 주도하고 재야민주세력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정치연합을 실현하여 공동집권을 실현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방식의 정치연합은 1987년 6월항쟁 기간 중에만 실현될 수 있었고, 6월항쟁의 종결과 함께 곧바로 해체되고 말았다. 1987년 12월에 실시된 대통령선거를 전후한 시기에, 민주연립정부에 관한 조심스러운 전망이 논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 쓰는 공동집권이라는 개념은 다르다. 1980년대의 재야민주세력은 노동계급이 장성한 조건 위에서 중도좌파정당으로 강화, 발전되었고, 1980년대의 보수야당은 도시중산층이 장성한 조건 위에서 중도우파정당으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변화된 정치정세에서 논하는 공동집권이라는 개념은 보수야당이 주도하고 재야민주세력이 결합한 정치연합으로 집권한다는 뜻이 아니라,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으로 집권한다는 뜻이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으로 세워질 새로운 민주정부는 민주대연합을 구성한 여러 정치세력들이 참가하는 새로운 유형의 민주연립정부로 될 것이다. 민주대연합의 공동집권전략이 민주연립정부 수립으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이다.

중도우파정당이 집권하였던 지난 10년 동안에는 중도좌파정당이 집권한 중도우파정당과 정치연합을 실현하는 것도 불가능하였고, 따라서 공동집권도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상황은 전혀 다르다. 오늘의 정치상황은 중도파정당들의 정치연합과 정당, 노조, 사회단체가 총결집하는 민주대연합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으며, 민주연립정부 수립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집권을 실현하는 경우, 민주연립정부 안에서 중도우파정당이 주도하게 되고 중도좌파정당이 맥없이 따라가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수 있다. 현재의 원내의석수 분포나 대중적 지지율을 따져보면, 그런 우려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공동집권을 실현하는 문제를 원내의석수 분포나 대중적 지지율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왜냐하면 공동집권은 민주대연합이 벌이는 정치투쟁이 최종적으로 승리하였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대연합이 밀고 나가는 항쟁에서 원내의석수는 중요한 요인이 아니며 대중적 지지율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대연합의 견지에서, 다시 말해서 대중항쟁의 관점에서,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의 공동집권전략을 바라보아야 정확한 인식을 얻을 수 있다. 도시중산층이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계층, 실업자 계층을 제껴놓고 민주대연합을 주도할 수 없는 것처럼, 도시중산층에 기반을 둔 중도우파정당이 민주대연합을 주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민주대연합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기반을 둔 중도좌파정당이 주도할 것이므로, 민주대연합에 의거한 공동집권의 주도권은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당인 중도좌파정당이 행사할 수 있다.

9. 공동집권 이후의 진보적 정권교체

공동집권은 중도좌파정당의 단독집권이 아니므로 당연히 진보적 정권교체로 될 수 없다. 공동집권의 의의는 그것이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교두보라는 데 있다.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하지 않고서 중도좌파정당이 단독집권으로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견해는, 현존하는 정치세력관계를 무시한 근거 없는 낙관론에 지나지 않는다. 현존하는 정치세력관계를 무시한 채 단독집권으로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비현실적인 생각은 중도우파정당에도 퍼져있을 것이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공동으로 집권하여 민주연립정부를 세운다고 해서, 중도좌파정당의 단독집권전략이 폐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연립정부는 그 정부가 태생적으로 지닌 계급적 한계 때문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므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완성하려면 중도좌파정당이 민주연립정부 이후까지 장기적으로 전망하면서 단독집권전략을 변함없이 계속 견지해야 할 것이다. 장기전망에서 민주연립정부는 중도좌파정당이 단독정권을 세우기 이전에 거쳐야 할 중간단계로 설정된다.

민주연립정부라는 중단단계를 거치면서 중도좌파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는가 아니면 중도우파정당이 재집권하는가 하는 문제는, 공동집권기에 어느 정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될 것이다.  

공동집권이라는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한 중도좌파정당이 공동집권기에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려는 더 높은 목표에 다가서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글의 길이가 제약되어 있어서 여기서 논하지 않는다. 다만 공동집권 이후에 등장할 새로운 전선은, 민주대연합이 아니라 진보대연합이 될 것이라는 점을 덧붙인다. 진보대연합이란 중도좌파정당과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하여 구축되는, 그리하여 공동집권기에 부쩍 강해지고 공고해진 중도좌파정당이 단독으로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하여 민주노조와 결합하여 구축하는 새로운 전선이다.

진보대연합 강령은 민주대연합 강령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제시될 것이다. 진보대연합 강령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강령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제자주화, 중요산업의 국유화 및 중소기업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 연방식 평화통일이 강령의 주요내용으로 제시될 것이다.  

물론 공동집권기의 진보대연합을 구성하는 주체역량에는 중도좌파정당과 민주노조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그것의 실현에 동의하는 각계각층의 진보적 사회정치세력들이 모두 결집하는 것이다.

이 땅에 세워질 진보대연합은 세계적 범위에서 진보정치세력들이 상호협력하는 국제연대를 추구한다. 국제진보정치조직을 건설하고 거기에 능동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진보대연합의 국제적 의무이다.

진보대연합이 구축되어야 진보정당의 단독집권에 의한 진보적 정권교체가 실현될 수 있으며, 진보대연합에 의거하는 진보적 정권만이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대안체제를 세울 수 있다. (2009년 1월 3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