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의 밤은 잠들지 않는다

한호석
파리포럼 상임공동대표

국제행사로만 보아서는 안 되는 까닭

그것을 단순히 해외에서 개최한 국제행사로 보는 것은 일면적인 이해이다. 2008년 12월 6일부터 9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8년 파리국제정책포럼'과 이어서 12월 10일부터 15일까지 유럽중부 각지를 순방한 '진보유럽기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행사에 참가했던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리라 생각하지만, 나 역시 막상 그 행사에 참가한 기간 중에는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을 따라잡느라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나 지금에 와서 찬찬히 되짚어볼수록 미처 알지 못했던 뜻이 살아남을 느낀다.

그것을 단순히 해외에서 개최한 국제행사로만 여기지 않는다면, 다른 무슨 뜻이 더 있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전선구축의 첫 걸음이었다고 해야 정확한 평가로 된다. 진보정치와 국제연대를 결합시킨 또 하나의 전선을 구축하는 초행길에 내딛은 첫 걸음, 바로 그것이었다.

진보정치도, 그리고 국제연대도 모두 전선(前線, front)에서 수행되는 것이고, 또한 전선역량이 밀고 나가는 과업이거늘, 진보정치와 국제연대를 결합시키려는 정치적 노력이 어찌 전선구축을 곧바로 지향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으랴. 명백하게도, 진보정치와 국제연대의 결합은 국제진보연대(international progressive solidarity)라는, 국내의 정치활동가들에게는 좀 낯설게 느껴지는 또 하나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결합이다. 2008년 12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린 '파리국제정책포럼'과 '진보유럽기행'에 쏟은 노력과 정성은, 국제사회에서 진보정치와 국제연대를 결합시킨 또 하나의 전선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1978년과 2008년의 운동사적 의의

사람의 뇌리에 지난날의 기억이 간직되어 있듯이, 사람이 벌이는 모든 일에도 내력이 있는 법이다. 여기 30년 전의 내력이 있다. 진보적인 해외정치활동가들이 각자의 분산활동을 접고 단일한 기치 아래 힘을 모은 최초의 역사적 사변은, 1978년 7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민주민족통일 해외한국인연합(해외한민련)을 결성한 일이다.

해외한민련은 반미반일 민족자주, 반독재 민주주의, 연방제 통일을 강령으로 제시하였다. 그것은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대사 출신으로 뉴욕주립대 정치학 교수이며 미주민주국민연합(미주민련) 의장인 임창영 선생이 수석의장을 맡았고, 재일동포운동의 지도자이며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의장인 배동호 선생이 공동의장 겸 국제사무총장을 맡았고, 세계적인 작곡가이며 유럽민주한인협의회(유럽민협) 의장인 윤이상 선생이 공동의장을 맡은 해외동포운동단체들의 연합체였다. 임창영, 배동호, 윤이상 세 지도자는 타계하신지 오래되었지만, 3인 대표를 중심으로 결성된 해외한민련이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 활동하였던 10년은 해외진보운동의 최고 전성기였다.

해외한민련의 활동과 관련해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그 연합체가 해외진보운동과 국제연대운동을 결합시킨 새로운 과업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해외한민련은 1981년 5월 16일부터 18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한국민주화지원 긴급세계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 각국 진보적인 인사들 60여 명, 미국, 유럽, 일본의 해외동포 400여 명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해외한민련은 해외진보운동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남측의 진보정치운동과 결합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해외한민련의 한계라기보다는 남측의 진보정치운동이 넘어서지 못하였던 한계라고 해야 옳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남측에서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제시한 진보운동세력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며,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에 맞서싸우는 '재야민주세력'만 존재하였던 것이다. 스스로를 "자주, 민주, 통일의 강고한 연대전선"으로 부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이 서울에서 결성된 때는 1991년 12월 1일이었다.

만일 해외한민련이 1990년대 초에 결성되었더라면, 그리고 남측에서 결성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과 손잡고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든 폭넓은 전선을 구축하였더라면, 아마도 그 이후의 우리나라 진보정치운동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한민련은 1980년대 이후 사실상 활동을 접었고, 해외한민련과 시차를 두고 결성된 전국연합은 국제연대의 전선적 의의를 알지 못하였다.

해외한민련과 전국연합이 겪었던 위와 같은 역사적 경험을 훑어보면, 해외한민련이 결성된 때로부터 꼭 30년 뒤인 2008년에 열린 '파리국제정책포럼'과 '유럽진보기행'이 지니는 운동사적 의의가 뚜렷이 드러난다. 그 의의는 남측과 해외의 진보정치운동이 손잡고 진보정치와 국제연대를 결합시키는 전선구축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데 있다. 그것은 국제진보연대의 '발판'을 마련한 성과를 낳은 것이었다.

이처럼 남측과 해외의 진보정치운동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대표체인 민주노동당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민주노동당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남측과 해외의 진보정치운동의 공동노력은 불가능하였을 것이고, 진보정치와 국제연대를 결합하는 국제진보연대도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두 갈래가 한 갈래로 합쳐질 때

우리나라 진보정치운동의 주된 동력은 민주노동당에서 분출된다. 민주노동당이 분당사태 이후 약해졌지만, 그 당이 뿜어내는 진보정치운동의 분출력이 강하냐 약하냐 하는 정도 문제를 따져보기 전에, 민주노동당이 진보정치운동의 동력을 분출하는 전략거점이라는 사실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이 한계와 결함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나라 진보정치운동이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강화, 발전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진보정치와 국제연대를 결합하는 국제진보연대를 또 하나의 새로운 전선역량으로 결집하려는 근본목적은, 진보정치운동의 동력을 분출하는 민주노동당을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파리국제정책포럼'과 '유럽진보기행'이 추구하였던 근본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할 '기본공식'이 하나 있다. 그 '기본공식'이란, 전선이 남측에서만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구축되는 것이며, 남측에서 구축된 전선과 국제사회에서 구축된 전선이 두 갈래의 역량을 한 갈래로 합칠 때, 우리나라 진보정치운동은 명실공히 폭넓은 전선의 완성된 구도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활동하였던 해외한민련과 1990년대에 활동하였던 전국연합은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였지만, 민주노동당이 진보정치운동을 밀고 나가는 2000년대는 지난 시기의 한계를 넘어서 더욱 발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시기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기이다. 그러한 새로운 시기에 국제진보연대를 형성하는 것은 해외동포사회의 진보정치운동에게만 맡겨둘 수 없고, 민주노동당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당면과업이다. 솔직히 말해서, 2000년대가 거의 기울어가는 2008년 12월에 국제진보연대를 형성하는 '발판'을 처음으로 마련한 것을 보면서 너무 늦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세계 각국의 진보정당들과 진보운동세력들이 신자유주의세계화를 저지하기 위한 전선에 결집하고 있는 오늘, 민주노동당이 국제진보연대에 무관심한 것은 착오가 아닐까.  

걸림돌을 밀어내고

'파리국제정책포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주최측에게 가장 커다란 어려움을 안겨준 일이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파리국제정책포럼'을 후원하지 않은 것이다. 당의 최고위원회에서 몇 차례 논의한 끝에 후원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당의 최고위원회가 내린 '후원불가 결정'을 전해 들은 행사 주최측은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태에 크게 실망하였다.

분당사태로 갈라선 진보신당은, 비록 나중에 가서 후원결정을 철회하기는 하였으나, 처음에는 자기 당원들이 주최하지 않은 행사인 데도 행사의 취지에 공감하여 후원하겠다고 행사주최측에 통보해왔다. 그런데 아주 대조적으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는 자기의 해외당조직인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가 공동주최자로 나선 중요한 국제행사를 후원하지 않겠다는 '불가사의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진보정치와 국제연대를 결합하는 국제진보연대를 또 하나의 새로운 전선역량으로 결집하여 민주노동당을 더욱 강화, 발전시키려는 목적에서 당원들이 주최하고 당원들이 참가한 정치행사를 후원해주는 것을 당의 최고위원회가 외면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가 국제연대의 의의와 중요성을 몰라서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고, 당내의 복잡한 사정이 반영된 뜻밖의 결과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당내의 복잡한 사정만 생각하기보다는, 먼저 폭넓은 전선의 완성된 구도를 전망하면서 합리적으로 문제를 푸는 해결방도를 찾는 자세가 요구된다.

'파리국제정책포럼'과 '유럽진보기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주친 또 다른 어려움은 재정문제였다. 애초에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행사준비과정이 진척될수록 재정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주최측을 압박하였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가 '후원불가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재정부담은 더 커졌다. 마지막에는 빚을 내서 재정문제를 푸는 수밖에 없었다.

숨은 공로자들

국제진보연대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그들의 굳은 결심 앞에서 후원불가 결정이나 재정압박 따위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어려움을 뚫고 일을 성사시키는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였다. '그들'이란 누구일까? 이번 행사의 실무작업을 도맡아 수행한 숨은 공로자들이다. 민주노동당 당원이며 21세기 코리아연구소 성원인 실무집행자들이 그들이다.

숨은 공로자들은 행사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21세기 코리아연구소 조덕원 소장의 지휘 아래 행사준비에 달라붙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기간에는 그야말로 침식을 잊은 채 뛰어다녔다. 어려움이 닥쳐와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헌신분투한 숨은 공로자들이 있어, 오늘 이 땅의 진보정치운동은 국제연대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진보정치운동은 행사 한 차례 벌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운동은 전선에서 자신의 열정을 남김없이 불태우며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가는 이름 없는 활동가들의 투쟁이요 생활이며, 마침내 그들 인생의 전부로 된다. 진보적 정권교체의 깃발이 휘날리는 정상은 아아한 산봉우리처럼 저멀리 솟아있어도, 험준한 산길을 톺아오르는 그들은 언제나 지칠 줄 모른다. 프랑스 파리 교외에 마련한, 주거공간과 실무공간이 함께 있는 큼지막한 집에서 공동생활을 해오는 숨은 공로자들은,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장작불을 지펴놓은 유럽식 벽난로의 이글거리는 불꽃 앞에서 전선의 앞날을 생각하며 오늘도 토론과 사색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2009년에 그들이 펼칠 새로운 사업과 활동이 기대된다.

초행길에 남긴 발자국

이 문집에 실려있는 글들은 '파리국제정책포럼'에 제출하였던 논문들이다. 포럼에서는 발표시간이 제한되어 있었고, 게다가 프랑스어 통역시간까지 배정하여야 하였으므로 발표자들이 별도로 작성한 요약문을 참가자들에게 전하고 간략한 요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시간제약은 포럼의 열기를 식히지 못하였다. 포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나 포럼을 진행하는 현장에서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현 정세를 분석하고 진보정치운동의 당면과제를 인식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쟁점을 꺼내놓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토론내용까지 이 문집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문집에 실린 글들은 전선의 초행길 위에 남긴 우리의 발자국이다. 그 발자국에는 우리의 생각과 열정, 인식과 전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땅의 진보정치운동이 우리의 발자국을 즈려밟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리라 믿는다.

진보정치운동이 멀리 전진하여 언젠가 국제진보연대의 기치를 힘껏 치켜드는 날, 우리는 초행길에 남긴 발자국을 말없이 돌아보며 2008년 12월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전선의 밤은 오늘도 잠들지 않는다. (2009년 1월 3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