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에 내걸린 문타폰의 ‘지옥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두 개의 세계, 두 개의 인권관

사회체제는 여러 가지 특징을 띄고 있어서 각 나라별로 다종다양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범주로 갈라진다.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는 세계관이 범주적으로 상이한, 그리하여 사람의 일하는 방식(노동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규정하는 두 종류의 사회체제이다. 사람이 사는 세계는 두 종류의 사회체제가 각기 상충적인 세계관을 지니는 것으로 하여, 지구 위에는 두 종류의 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체제가 둘로 갈라지면 당연히 인권관도 둘로 갈라진다는 점이다. 인권은 사회체제를 뛰어넘어 초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적 인권관과 자본주의적 인권관이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체제에 대한 무지이며 궤변적 인권관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두 개의 인권관은 어떻게 서로 다를까? 사회주의적 인권관은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권리(social, economic rights)를 중시하는데 비해, 자본주의적 인권관은 사람의 공민적, 정치적 권리(civil, political rights)를 중시한다.

사회적, 경제적 권리란, 실업공포에서 벗어나 일할 권리(노동권), 무지상태에서 벗어나 교육을 받을 권리(교육권),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치료를 받을 권리(의료권), 무주거 상태에서 벗어나 주거공간을 가질 권리(주거권) 등을 말한다. 그에 비해, 공민적, 정치적 권리란, 선거와 피선거의 권리(선거권), 집회를 가질 권리(집회권), 단체활동을 펼칠 권리(결사권), 언론활동의 권리(언론권), 종교활동의 권리(신교권) 등이다.

사회주의적 인권관이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중시하는 까닭은, 공민적, 정치적 권리를 보장한다고 하였으나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외면해버린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을 혁파하겠다고 하면서 등장한 것이 사회주의체제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본주의적 인권관이 공민적, 정치적 권리를 중시하는 까닭은,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았던 봉건주의체제를 대체하고 공민적, 정치적 권리를 실현한 것이 자본주의체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중시한다는 말은, 그 권리만 배타적으로 실현한다는 뜻이 아니라, 공민적, 정치적 권리도 함께 실현한다는 뜻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 그 두 종류의 인권을 실현하는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양자동반의 문제이다. 사회계급적 모순관계를 넘어선 자주적이고 평등한 사회체제에서만이 사회적, 경제적 권리와 공민적, 정치적 권리를 함께 실현할 수 있다. 물론 그 두 종류의 인권을 실현하는 높낮이 수준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회주의체제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와 다르게, 자본주의체제에서 공민적, 정치적 권리를 중시한다는 말은, 그 체제가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실현하려고 해도 사회계급적 모순관계에 가로막혀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옛날 봉건주의체제를 대체할 때 얻어냈던 공민적, 정치적 권리를 배타적으로 강조한다는 뜻이다. 사회주의체제를 독재체제라고 비난하면서, 그러한 체제에서는 공민적, 정치적 권리가 원천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것처럼 말하는 ‘사회주의독재괴담’이 퍼지고, 한 술 더 떠서 그 체제에서는 사회적, 경제적 권리도 실현될 수 없는 것처럼 말하는 ‘사회주의빈곤괴담’이 퍼진 것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상대체제에 대한 정치적 차별성과 경제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싶은 욕구가 빚어낸 기괴한 현상이다.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기괴한 현상의 그림자 뒤에서 인권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짓밟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 그림자 뒷편의 실상은 대체로 이러하다.

자본주의체제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노동권을 사회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 체제에서 노동권은 개인이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일하고 싶어도,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암담한 현실에서 이 땅의 이름없는 사람들이 겪는 만성적인 실업난이야말로 그들과 그 가정에 소리없이 가해지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인권유린이 아닌가!

이 땅의 노동현실은 또 어떠한가? 정리해고권을 남용하는 자본가의 횡포에 맞서 자신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격렬한 생존권사수투쟁을 벌이거나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집단적으로 노동권을 지킬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닌가. 그나마 자본가의 해고권 남용에 저항할 힘조차 없는 노동자는 길거리로 쫓겨나는 수밖에 없다. 노동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권이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짓밟히는 곳은 자본주의체제이다.

또한 자본주의체제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무상교육을 받을 권리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한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벌써 치열한 ‘사교육 전쟁’에 내몰리고, 그 ‘전쟁’에서 패한 청소년들은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한다. 실업난이 만성화된 사회에서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것은 그가 각종 사회적 차별을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교육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권이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짓밟히는 곳은 자본주의체제가 아닌가.

또한 자본주의체제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무상치료를 받을 권리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한다. 병에 걸리면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질병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각자 의료보험제도에 자기의 의료권을 저당잡혀야 하는데, 의료보험제도가 빨아들인 막대한 자금 가운데 상당부분은 보험회사와 병원이 사적 이윤으로 취득하여 나눠먹는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숭고한 의료활동이 천박한 돈벌이로 전락한 것이다. 의료보험을 꿈도 꾸지 못하는 수 많은 빈곤층 인구에게 닥쳐오는 것은 질병의 고통과 죽음이다. 의료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권이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짓밟히는 곳은 자본주의체제이다.

또한 자본주의체제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주거공간을 가질 권리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 체제에서 주택은 인권을 실현하는 주거공간이 아니라, ‘떳다방’이 판치는 난잡한 투기공간으로 전락하였다. 평범한 직장인이 받는 봉급으로 조그만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예로부터 ‘집 없는 설움’이라 했거늘, 판자촌, 달동네, 뚝방집, 쪽방촌, 옥탑방, 철거민, 재개발 같은 말에서는 주거권을 박탈당한 고통과 눈물의 사연이 흘러내린다. 주거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권이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짓밟히는 곳은 자본주의체제이다.

그런데 두 종류의 인권관을 나열하는 엉성한 절충방식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다. 이 엉성한 절충선언이 발표되고 나서부터 국제사회에서는 인권이라는 모호한 개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 땅에서 인권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때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인권을 혹독하게 짓밟았던 1970년대 초부터이다.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절충선언이 너무 엉성해서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유엔총회는 28년이 지난 뒤에 두 종류의 인권개념을 담은 국제협약을 내왔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vene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A규약)은 1976년 1월 3일에 발효되었고, 공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vene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B규약)은 같은 해 3월 23일에 발효되었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유엔에서 인권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3대 기구인 유엔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 구 유엔인권위원회 Commission on Human Rights ),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 B규약을 관장하는 기구로서 구 유엔인권위와 혼동 피하기 위해 이같이 통칭),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ffice of UN High Commission for Human Rights)에서는 공민적, 정치적 권리만 편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인권이 사회적, 경제적 권리와 공민적, 정치적 권리로 이루어진 것인데도, 유엔의 3대 인권기구들이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사실상 외면하고 공민적, 정치적 권리를 편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복잡한 국제정치관계가 유엔의 인권활동을 심각하게 왜곡하였음을 말해준다. 유엔의 인권활동은, 유엔의 실상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순수한 인권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패권주의 정치공세에 의해서 너무도 심하게 왜곡, 침해된 것이다.

미국의 대유엔 전술과 대북 인권공세

2008년 11월 21일은 유엔총회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패권주의 정치공세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날이다. 그날 제63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권상황에 관한 결의안(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on the Situation of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 채택되었다. 놀랍게도, 그 결의안은 북측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고 심각한 인권위반(systematic, widespread and grave violations of human right)”이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북측 정부에게 인권위반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청”하였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이, 그 결의안을 채택한 것 자체가,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북측을 상대로 벌이는 인권공세이다. 친미반북노선에 충실한 이명박 정부가 그 공세에 적극 가담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유엔총회에서 대북인권공세 결의안을 놓고 표결을 실시한 결과, 결의안을 찬성한 유엔회원국은 95개 나라였고, 반대한 유엔회원국은 24개 나라였으며, 표결을 기권함으로써 대북인권공세에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유엔회원국은 62개 나라였고, 표결에 불참한 유엔회원국은 11개 나라였다.

유엔은 192개 유엔회원국들이 각기 안고 있는 다종다양한 인권문제를 모조리 다루어야 하는데, 실제로 유엔이 그렇게 방대한 규모의 인권상황을 모조리 다루는 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거니와, 의도적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유엔은 192개 회원국들 가운데 몇몇 회원국들만 골라서, 마치 인권문제가 그 회원국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그 회원국들의 인권문제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엔회원국 가운데 어떤 나라를 인권침해국으로 지정하는 국제인권기준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해서, 그런 기준은 없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국제인권기준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192개 회원국들이 정치적 합의를 통해서 객관적인 지정기준을 세울 수 없을 때 나타나는 것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전매특허인 ‘힘의 외교(muscular diplomacy)’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자의적인 판단이 유엔의 표결과정을 통해서 ‘국제인권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해마다 ‘인권보고서’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국제인권기준’을 위반한 인권침해국을 지정하는데, 2008년 3월 11일에 내놓은 ‘2007년도 인권보고서’에서는 세계 10대 인권침해국을 지정하였다. 그 ‘인권보고서’에 나온 북측의 인권상황에 관한 내용은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채택한 북측의 인권상황에 관한 결의안에 나오는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정해놓은 이른바 ‘국제인권기준’이 ‘힘의 외교’를 통과하는 순간, 인권침해국 지정기준으로 둔갑해버린다는 사실은 그 이상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 만큼 명백하다.

그런 까닭에, 유엔에서 인권침해국으로 지정된 나라들은 예외없이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하게 반대하는 반미국가들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국제인권기준’을 적용하면, 192개 유엔회원국들은 반미국가와 친미국가로 나뉘는데, 반미국가는 곧 인권침해국으로 되고 친미국가는 곧 인권모범국으로 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펼쳐진다. 반미노선과 친미노선을 판별기준으로 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국제인권기준’이야말로 궤변 중의 궤변인데도, 유엔에서 그 궤변이 통하는 까닭은, 유엔회원국들 가운데 반미국가는 소수이고 친미국가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유엔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북측, 중국, 러시아, 이란, 시리아, 쿠바,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같은 반미국가들에서 들려온다. 이 나라들은 정치이념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미국의 패권주의를 반대한는 점에서 정치적 연대감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엔에서 미국이 단독으로 그 나라들과 맞서려고 하면 미국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그 까닭은 유엔이 다른 국제기구와 다르게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은 미국과 그 추종국들끼리 만든 국제기구가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회원국으로 가입한 국제기구이기 때문에, 미국이 제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우쭐대도 중대한 현안을 표결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곤혹감은 크다. 이를테면, 남태평양 산호해(Coral Sea)에 떠있는, 인구가 21만명이고 국토면적이 1만2천200㎢밖에 되지 않는 초소형 섬나라 바누아투(Vanuatu)도 유엔에서는 한 표를 행사하고, 바누아투보다 인구가 1천428배나 많고, 국토면적도 805배나 큰 미국도 유엔에서는 한 표밖에 행사하지 못한다. 유엔회원국에게 공평하게 한 표씩 주어지는 표결체계가 미국 유엔외교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미국이 유엔외교에서 패권주의를 추구하려면 자기 쪽에 회원국들을 많이 집결시켜야 한다. 미국이 그러한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밀고 나가는 대유엔 전술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 날로 확장되는 유럽연합(EU)을 자기 곁에 붙들어두는 득표전술이다. 미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자기를 지지하는 나라들을 끌어모으는 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으며, 자칫 잘못하다가는 되레 정치적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 미국에게 가장 편안한 전통적 맹방은 역시 유럽나라들밖에 없다. 더욱이 유럽지역은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진 뒤로 우파민족주의세력이 득세하여 강력한 분리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조그만 신생독립국들이 곳곳에 생겨나는 바람에 이전보다 유엔회원국으로서 행사하는 표가 더 많아졌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확장하는데 열을 올리는 까닭, 유럽의 친미동맹국들이 유럽연합을 확장하는데 열을 올리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의 유럽지역 득표전술은 이번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권상황에 관한 결의안’을 표결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95개 나라들 가운데 41개 나라가 유럽나라들이다.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은 27개 나라이고, 공식후보국은 3개 나라이므로, 모두 합해서 30개 나라인데, 그밖에 11개 유럽나라들이 미국 주도의 대북인권공세에 가담한 것이다.

둘째로, 유엔총회에서 미국이 동원한 또 다른 득표전술은, 국제사회에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유엔회원국으로서 표결권을 행사하는 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들을 자기 곁에 묶어두는 전술이다. 위의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95개 나라들 가운데 13개 나라가 태평양지역의 조그만 섬나라들이다.

미국은 유럽지역 득표전술과 태평양지역 득표전술에 의거하여 찬성표 95표 가운데서 56표를 확보하였다. 반면에, 유럽지역에서 위의 결의안을 반대한 나라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두 나라뿐이며, 표결을 기권한 중립국은 유럽지역에 한 나라도 없다. 또한 태평양지역에서 위의 결의안을 반대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으며, 표결을 기권한 중립국은 태평양지역에서 솔로몬제도와 모리셔스 두 나라 뿐이다. 이러한 표결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미국의 대북인권공세를 함께 추진한 공모자들인 유럽연합, 일본, 이스라엘 이외에도 유럽연합 주변국들과 태평양 섬나라들이 그 공세에 가담하였다는 점이다.

한편, 위의 결의안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유엔회원국들과 표결기권을 택한 유엔회원국들, 표결에 불참한 유엔회원국들을 모두 합하면 97표가 나온다. 미국의 대북인권공세를 반대하거나 그 공세에 불참한 나라들이, 그 공세를 공모하거나 그 공세에 가담한 나라들보다 두 나라가 더 많은 것이다.

북측과 미국이 1 대 1로 상대하는 양자회담에서는 북측이 미국을 압박하는 초강경한 공세를 취할 수 있지만, 192개 회원국들이 뒤엉켜 있는 가운데 미국이 친미동맹국들을 끌어들여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유엔에서는 북측이 미국의 인권공세에 대응할 현실적인 방도가 없는 것이다.

특히 북측과 1 대 1로 마주앉은 양자회담에서 미국은 북측의 인권문제를 감히 꺼내지도 못하기 때문에, 미국은 처음부터 유엔을 이용해서 대북 인권공세를 펼쳐오고 있다. 앞으로 미국은 유엔을 통한 대북 인권공세에 이전보다 더 집요하게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

엽기적인 ‘지옥도’는 누가 그렸을까?

이번에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권상황에 관한 결의안’에 따르면, 북측에서는 무려 여덟 가지나 되는 ‘인권위반’이 자행된다는 것이다.

첫째, 공정한 재판과 적법한 법치절차가 없는 무법천지에서 잔인한 고문과 처벌, 공개처형, 초법적이고 자의적인 구금이 횡행하고 정치범수용소와 강제노동제가 운영된다는 것이다. 특히 송환된 탈북자에 대한 구금, 고문, 처벌, 사형이 자행된다는 것이다.

둘째, 사상, 양심, 종교,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었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제한되었으며, 평등한 정보접근의 자유가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취약계층의 영양실조가 심각하고, 보건대책이 결핍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여성에게 매매춘, 인신매매, 강제유산, 성적 차별과 폭력이 자행된다는 것이다.

다섯째, 장애인 집단수용소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어린이들에게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면서 아동노동금지의무를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일곱째,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파업권을 짓밟았다는 것이다.

여덟째, ‘일본인 납치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읽노라면 잔혹하고 충격적이어서 소름이 끼치는 그 결의안은, 북측 사회를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나 칠레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의 참혹상을 수십배 능가하는 생지옥으로 묘사하였다.

그런데 2008년 9월 4일 중국 〈신화통신〉에 그 통신사의 평양주재 특파원 가오하이룽(高浩榮)이 쓴 평양발 기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1980년 이후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특파원으로 일해오면서 두 사회를 균형적으로 비교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언론인이다. 그 기사에 따르면, 조중합작회사인 평진자전거공장의 중국측 지배인 량퉁쥔이 평양의 어느 식당에 자기 가방을 두고 나왔는데,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가방을 두고 온 것을 알고 허겁지겁 식당으로 달려갔더니, 1만 유로와 3만 위안의 거액현금이 든 돈가방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중국기업의 평양주재원이 자기 승용차를 타고 평양에서 신의주로 가다가 시골길 옆에 파인 구덩이에 차가 빠지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마을사람들이 진흙탕에 뛰어들어 승용차를 끌어내주었다고 한다. 그들의 선행에 감동한 승용차 운전기사가 고맙다는 뜻으로 담배 한 개비씩 돌리자, 마을사람들은 흙묻은 손을 내저으며 달아났다는 것이다. 가오하이룽은 자신이 평양주재 특파원으로 일해온 20여 년 동안 “조선에서 근면과 인심과 의리는 변하지 않았다”고 썼다.

유엔총회가 채택한 대북인권 결의안과 가오하이룽이 쓴 기사는 하나의 사물을 완전히 다르게 그려내었다. 전자가 북측 사회를 사람이 살 수 없는 생지옥처럼 그렸다면, 후자는 순박하고 인정이 있는 현실사회의 경험담을 적은 것이다. 만일 가오하이룽이 북측 사회를 현실사회가 아니라 이상사회처럼 그렸다면, 그러한 ‘극락도’를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엔총회가 채택한 대북인권 결의안을 가이하오룽이 쓴 기사에 비춰보면, 그 결의안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것은 이성을 잃고 적개심에 불타는 반북광신자들이 그려낸 엽기적인 ‘지옥도’이지, 국제기구에서 정상적인 토론을 거쳐 채택할 수 있는 결의안이 아니다.

어떤 주장이나 견해에 대한 논박은 적어도 이성적 판단과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전제로 삼는 법인데, 대북인권 결의안은 그러한 전제를 애초에 배제하였으므로 논박할 필요조차 없다. 다만 인권을 짓밟는 정도가 아니라 극악한 만행을 저지르는 것처럼 날조한 엽기적인 ‘지옥도’를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려냈을까를 알아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무릇 결의안은 보고서에 기초하여 작성되는 법이다. 위의 결의안도 보고서에 기초하여 작성된 것이다. 북측의 인권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책임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정한 ‘국제인권기준’에 따라서 지정된 인권침해국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이다. ‘특별보고관’이 하는 일은, 자기가 감시하는 대상국의 인권상황을 조사해서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것이다. ‘특별보고관’이 작성한 인권보고서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판단과 유엔인권이사회 및 유엔인권위원회의 정치적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서 인권문제에 관한 유엔총회의 결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 나라에서 벌어진 복잡다단한 인권상황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전권을 ‘특별보고관’ 한 사람에게 맡겨놓은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다. ‘특별보고관’이 자기의 주관적 해석과 정치적 견해를 떠나서 대상국의 인권상황을 공정하게 조사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특별보고관’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서 대상국의 인권상황을 조사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2004년 7월 유엔인권이사회가 임명한, 북측의 인권상황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전권을 행사하는 ‘특별보고관’은 태국의 법학대학교수 출신인 비팃 문타폰(Vitit Muntarbhorn)이다. 그는 2005년 8월 19일 미국 대통령 부쉬가 임명한 대북인권특사(Special Envoy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 제이 레프코위츠(Jay Lefkowitz)의 뒤를 따르는 ‘지옥도 창작가’이다.

지난 3월 미국 국무부가 내놓은 엽기적인 ‘지옥도’가 레프코위츠가 작성한 ‘인권보고서’에 기초하여 그려진 것이라면, 이번에 유엔총회에 내걸린 엽기적인 ‘지옥도’는 문타폰이 작성한 ‘인권보고서’에 기초하여 그려진 것이다.

문타폰은 북측에 가서 인권상황을 조사하지 못한다. ‘특별보고관’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북측이 그를 상대할 리 없기 때문이다. 원래 친미우파성향의 태국 지식인으로 유엔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자기의 현장조사 임무를 가로막는 북측에게 반감을 품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그가 작성하는 인권보고서가 엽기적인 ‘지옥도’로 그려지는 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그가 작성한 인권보고서에 나온 자료들은 반북단체들이 펴낸 악선전 자료들이다. 이를테면, 해외에서는 ‘자유의 집(Freedom House)’,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기독교세계연대(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 등이고, 남측에서는 ‘좋은벗들’, ‘데일리 NK’, 그리고 ‘북한인권연구센터’를 둔 정부기관인 통일연구원 등이다. 그가 서울에 가서 북측 인권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만나는 대상은 탈북자들이다.

반북단체의 도움을 받아 그린 문타폰의 ‘지옥도’가 유엔총회에 1년에 한 차례씩 내걸리는 한, 잔혹하고 엽기적인 인권날조극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정신이상자들의 손에서 유엔이 벗어나는 정상화의 길은 너무 멀어 보인다.  (2008년 12월 15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