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9월’은 오지 않는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카푸치노의 거품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에 재치 있는 경제분석 기사를 쓰는 언론인 대니얼 그로쓰(Daniel Gross)가 얼마 전에 흥미로운 견해를 내놓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발 세계금융시장 파산은 미국의 세계적인 커피전문점 운영회사 스타벅스(Starbucks)와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1971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첫 매장을 차린 스타벅스는, 2008년 3월 현재 미국 전역에서 1만1천434개소의 매장에 15만명을 고용한 거대기업이다. 2007년도 순이익은 6억7천264만달러이다.

미국 금융시장 파산과 스타벅스가 연관되었다는 게 그로쓰의 첫 번째 이론인데, 아닌 게 아니라, 캘리포니아, 라스베거스, 플로리다는 주택금융회사들이 쏟아부은 막대한 자금으로 세운 신형주택들이 가장 많이 들어선 대표적인 주택경기 과열지역이고, 그 과열지역에 집중적으로 파고 든 것이 스타벅스 매장이다.

또한 미국 금융시장의 중심부는 뉴욕시의 중심부인 맨해튼인데, 그로쓰가 헤아려본 바에 따르면, 맨해튼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거의 200개나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맨해튼 금융가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스타벅스 간판이다.

미국인들이 스타벅스에서 즐겨 마시는 카푸치노(cappuccino)에 떠있는 우유거품(foam)처럼, 미국의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에는 초대형 거품(super bubble)이 떠다녔는데, 결국 그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이 한꺼번에 폭삭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타벅스는 일국적 범위를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세계 최대의 커피전문점 운영회사이다. 스타벅스는 2008년 3월 현재 47개 나라에서 4천500여 개소의 해외매장을 운영한다. 스타벅스 커피전문점은 1996년에 도쿄에, 1998년에 런던에, 그리고 1999년에 서울에 각각 첫 매장을 차렸다.

그로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스타벅스 매장이 미국 이외에 가장 많은 나라는 256개의 매장이 있는 영국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나라는 253개의 매장이 있는 한국이다. 2005년에 한국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들에서 미국 본사로 보낸 특허권사용료는 연간 45억원이다.

주목하는 것은, 스타벅스 매장이 많은 나라들이 거의 모두 미국발 금융시장 파산충격을 받아 위기상황에 놓였다는 점이다. 영국이 그렇고, 한국이 그렇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해외의 스타벅스 매장수는 미국식 자본주의 수용정도를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로 될 수 있다. 그로쓰는 자기의 기사에서 “스타벅스가 많다는 것은, 카페인이 듬뿍 들어있고 돈을 흥청망청 써대면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 미국식 자본주의에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라고 썼다. 지난 시기에는 청량음료 코카콜라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스타벅스 커피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그런데 미국식 자본주의의 파산이 전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데도, 그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나라들이 있다. 이탈리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다. 그 네 나라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한 곳도 없다. 덴마크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두 곳, 네덜란드에는 세 곳이 있는데, 그 두 나라도 미국식 자본주의 파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그에 비해서, 이 땅의 정권과 자본가들은 자본주의를 해도 독자적으로 하지 못하고, 줄곧 미국식 자본주의를 맹종해왔다. 그들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숭상하고 미국 금융자본의 지배와 수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커피향에 취해 있는 이 땅의 자본주의는, 미국 금융자본에 기생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운명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실제로, 미국 경제성장률이 1% 포인트 떨어지면, 한국 경제성장률는 0.83% 포인트 떨어지고, 미국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가 1% 포인트 떨어지면 한국 증시의 코스피 지수는 0.2% 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경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미국 주택금융시장이 파산하였는데, 갑자기 한국 금융시장이 동반적으로 파산위기에 몰리는 것을 보고, 어떤 경제분석가는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현상이 관측되고 있다”고 경악하였고, 우파언론들은 “미국 증시와 한국 증시가 강한 동조현상을 나타낸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현상은 미국 금융자본에 기생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비극이며, 미국 증시와 한국 증시의 강한 동조현상은 미국 금융자본에 기생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종속인 것이다.

세계화의 공간에서 불황을 지나 공황으로

프랑스 파리의 관광명소인 에펠탑 전경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집무공간에서 마주앉은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캐나다 자유당 출신의 시장주의자 도널드 존스턴(Donald J. Johnston)이고, 다른 한 사람은 직업외교관 공로명이다. 당시 존스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제4대 사무총장이었고, 공로명은 김영삼 정부의 외무부 장관이었다. 두 사람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에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협정서에 서명하였다. 1996년 10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유시장이라는 미신에 사로잡힌 시장주의자들은,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이야말로 선진국 문턱에 이른 ‘고도성장의 눈부신 성과’를 세계자유시장(global free market)에 과시한 쾌거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였다. 그 무렵 시장주의자들은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한국 사회는 선진국 문턱을 넘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것으로 예견하였고, 그 말을 믿은 사람들의 시야에는 ‘선진국의 환상’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난 1997년 11월 10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놓인 전화기에서 착신신호음이 울렸다. 대통령의 손에 들린 수화기에서는 얼마 전에 경제부총리직에서 물러난 홍재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각하, 아무래도 아이엠에프(국제통화기금)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국가부도가 나기 직전의 위험한 상태입니다.” 10월 28일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는 기초(fundamental)가 튼튼해서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를 쳤던 강경식 경제부총리(당시)의 말만 믿고 ‘선진국의 환상’에 도취되었던 김영삼 대통령(당시)은 긴급보고를 받으며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1월 14일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에 긴급지원을 요청하는 결재서류에 서명하였다.

한국의 외환위기와 청와대의 국제통화기금 긴급지원 요청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날로부터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난 미증유의 파국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이 좌우하는 경제식민지에 몰려온 것은 파산, 실업, 빈궁의 불행과 고통이었다. 1998년에 발표된 한국의 경제지표는 경제파탄의 와중에서 사실상 통계적 의미를 상실한 것이었는데, 정부당국이 내놓은 통계수치는 공식실업률이 7.0%, 경제성장률이 -6.7%, 실업자가 200만명으로 나타났다. 노숙자라는 말도 몰랐던 이 땅에 수많은 노숙자들이 생겨난 것도 바로 그때이다. 

한국의 외무부 장관이 파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협정서에 서명한 바로 그 날, 존스턴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에 기고한 자신의 글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이 세계경제에 동참하려는 자신감과 열망을 갖게 되면서, 불안정한 시기에 세워놓은 금융시장, 투자, 교역, 서비스업의 보호장벽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줄임) 몇몇 한국인들은 견고한 보호막을 친 내수시장이 계속적인 번영을 가져오는 길이라고 믿을지 모르나, 나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한국인들이 활기차고 경쟁적인 세계교역을 통하여 더욱 번영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촉구한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생각해보면, 시장주의자 존스턴은 그때 이미 한국 경제에 ‘세계화’라는 족쇄를 채울 결심을 내비쳤던 것이고, 그 이후 10여 년이 지나면서 한국 경제는 그가 결심한 대로 세계화되고 말았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 신입회원국에게 세계화를 촉구한 시장주의자 존스턴의 글이 나오기 이태 전에, ‘세계화의 선구자’가 홀연히 나타났었으니 그가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1994년 11월 1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한 길에, 배를 빌려 타고 시드니 항만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가 2007년에 회고한 바에 따르면, 시드니의 아름다운 바다경관이 안겨오는 뱃전에서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으니 이제 세계로 눈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하였고, 그 자리에서 참으로 용감하게 ‘한국의 세계화’를 선언하였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은 바로 이 경우에 들어맞는 말이다. 세계화라는 개념을 세계진출 정도로 착각하던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이 그 개념을 globalization이라는 전문용어로 번역할 줄도 몰라서 한동안 segyehwa라고 불렀던 것은 무지의 극치였다.

시드니 항만의 경관에 취하여 세계화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한국의 세계화’를 선언한 대통령의 무식하고 용감한 결정과, 한국 경제의 ‘속살’까지 도려낸 국제통화기금의 가혹한 구조조정은 무엇을 이 땅에 남겼을까?

시장주의자들은 경제회생이라는 판에 박힌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세계화가 죽어가던 한국 경제를 되살렸다는 그들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만일 그들의 말이 궤변이 아니라면, 그 이후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했어야 하거늘, 현실은 정반대이다. 외환위기 발생 이후 10년 동안 한국 경제를 괴롭혀온 지속적인 쇠락, 그리고 결국 숨막히는 공포를 몰고온 오늘의 전면적 파산위기가 이 땅의 경제가 경험해왔고 현재 직면하고 있는 뼈아픈 현실이 아닌가!

현대경제연구원이 2008년 9월 11일에 내놓은 보고서 ‘외환위기 이후 10년 간 서민경제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경기침체, 물가상승, 이자부담 증가, 임금상승률 둔화 등으로 서민계층의 경제가 크게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 보고서의 무미건조한 서술 너머에는 이 땅의 이름 없는 노동자, 농민, 서민은 물론, 한때 잘 나갔던 도시중산층까지 포함해서 절대다수 인구의 목을 조르는 파산, 실업, 빈궁이 있다. 이 땅의 민중을 할퀴고 쥐어짜는 장기불황의 불행과 고통은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이어져왔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기나긴 고통의 시작이었다.

1996년 한국의 도시중산층은 전체 가구의 55.5%이었는데 10년 뒤에는 43.7%로 줄었다. 2007년 11월 24일 엠비씨(MBC) 텔레비전 방송이 방영한 순서에 ‘98년 은행퇴직자의 삶의 질 조사연구’라는 자료가 반영되었는데, 그 자료에 따르면 1998년 외환위기로 직장에서 쫓겨난 뒤에 자살충동을 느낀 사람은 60.4%, 보복충동을 느낀 사람은 81.3%, 절망감에 빠진 사람은 92.5%였다고 한다. 어디 그들 뿐이었겠는가. 한국 사회의 자살인구는 2006년 1만2천736명, 2007년 1만3천36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하루 평균 36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절망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절망보다 더 두려운 것은, 10년 장기불황에서 겪은 것 이상의 불행과 고통을 몰고 올 대파국으로 한국 사회가 차츰 다가서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통제불능의 경제위기는, 지난 10년 동안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이미 지쳐버린 한국 경제를 혼수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2008년 11월 23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연설할 때 이명박 대통령이 썼던 표현을 빌리면, ‘전대미문의 위기’인 것이다. 10년 장기불황 중에 전대미문의 위기를 직면하였다는 것, 바로 이것이 한국 경제의 파산이 다른 나라 경제의 파산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참혹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논거이다.

절망적인 느낌을 주는 최근의 경제관련 통계자료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세계화를 주문처럼 외우던 한국 경제는 바로 그 세계화 때문에 파산, 실업, 빈궁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10년 장기불황 중에 줄곧 금융시장의 자유화와 개방화를 노래하다가 이제는 불황(recession)을 지나 공황(depression)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검은 9월’이 오지 않는 까닭

물리학의 고급정보를 접하지 못한 문외한도 알고 있는 물리상식이 하나 있다. 고도성장의 엔진은 고도로 과열될 수밖에 없고, 고도로 과열된 성장엔진은 꺼질 수밖에 없다는 상식이다.

그러나 우파경제관료들과 우파경제학자들과 우파언론들에게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한국 사회에서는 그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도성장과 파산위험이 정비례하는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몰랐고, 세계화 10년이면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되느냐 4만달러가 되느냐 하는 식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선동에 기분이 들떠있었다.

그런데 촛불시위가 잠잠해지던 지난 여름 어느 날부터인가 언론에서는 경제위기설을 솔솔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경제위기설에 관한 각종 보도들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은 신문기사 한 편이 있었으니, 그것은 영국 언론 〈더 타임스〉가 2008년 9월 1일 서울발로 내보낸 기사이다. “원화 문제가 있는 남한은 검은 9월로 향하고 있다(South Korea heads for black September with won problems)”는 제목이 달려있다. 경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장경제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대파국을 뜻하는 ‘검은 9월’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기사에서 언급한 ‘검은 9월’은 외환위기 재발을 뜻하는 것이다. 그 기사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이 신흥국가들에게 권고하는 외환보유액은 3천200억 달러인데,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천470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1년 만기로 돌아오는 빚이 2천156억 달러나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환보유액 고갈과 원화가치 폭락이라는 파국적 부도위험을 지적한 것이다. 그 보도내용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앞으로 1년 뒤에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서 1997년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부도위험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것은 1990년대 식의 외환위기 재발이 아니다. 만일 한국 경제의 위기가 1990년대 식의 외환위기 재발이라면, 11년 전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빌려오거나, 미국과의 ‘통화스왑(currency swop)’으로 위기를 비켜갈 수도 있겠지만, 오늘의 위기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총체적인 파산위험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이 아시아지역 300여 개 기업을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30%가 파산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경제에 임박한 총체적인 파산위험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네 갈래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수출-내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한국 경제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수출에 달려있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중은 외환위기 발생 직후인 1998년에 84.1%이었는데, 2007년에는 94.2%로 치솟았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추진한 이후,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몸을 내맡겨버린 국내 대기업이 세계시장에 편입되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진 반면, 편입되지 못한 국내 중소기업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중소기업의 몰락은 내수의 몰락이다.

내수의 몰락보다 더 두려운 것은, 최근 세계금융시장이 파산위기에 빠지자 한국의 수출이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 내수가 몰락의 길을 걷는 판에, 수출마저 주저앉는다면 한국 경제는 그것으로 끝이다.

둘째로, ‘헛장사’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3년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수출의 부가가치유발 계수는 1995년에 0.698이었는데, 2003년에는 0.647로 나타났다. 수출의 부가가치유발 계수 0.647이란, 1천원어치 상품을 수출했을 때 국내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647원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수출액 10억원당 취업자 유발효과는 1995년에 26.2명이었는데, 2003년에는 12.7명이었다.

이러한 경제지표들은,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해도, 국내에서 부가가치와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으며 되레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하루 평균 10억 달러씩 수출한다고 자랑한 적도 있지만, ‘헛장사’만 하고 있으니 그런 식의 자랑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짓이다. ‘헛장사’는 일시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라 구조적인 자멸요인이다.

셋째로, 외국자본의 증시이탈이다. 한국, 대만, 인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증시들에서 외국자본의 증시이탈규모가 가장 큰 곳은 한국 증시이다. 이를테면, 외국자본은 2008년 6월부터 9월까지 넉 달 동안 146억8천만 달러의 주식을 팔아치우고 한국 증시를 떠나버렸다. 세계금융시장의 파산위기→외국자본의 한국증시 이탈→원화가치 폭락→한국 금융시장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넷째로, 실물경제파탄이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9월말 현재, 개인이 금융기관에서 빌린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잔액은 186조1천억원이었는데, 2008년 6월말 현재는 그보다 3.5배나 많은 660조3천억원으로 늘었다. 가구당 평균부채는 2001년 6월말에 2천만원이었는데, 올해는 4천만원으로 늘었다. 2008년 3월말 현재 개인부채총액은 758조원으로, 1인당 부채는 1천563만원으로 치솟았다.

‘3부 합창’이 끝날 때

미국식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 몰아닥친 파산, 실업, 빈궁은, 소득분포비율로 보면, 중위층과 하위층에 집중되고 있다. 2007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소득분포비율은 상위층 20%, 중위층 60%, 하위층 20%이다. 하위층 20%의 월평균 소득은 83만원인데, 상위층 20%의 월평균 소득은 하위층보다 7.64배나 많은 634만원이다. 상위층 10%가 한국 순자산(총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자산)의 54.3%를 차지하였는데, 그들의 최저 순자산액은 5억3천800만원이며, 전체 부동산의 53.4%를 소유하였다. 한국 자본주의는, 명백하게도, 상위층 10%만 ‘잘 먹고 잘 사는’, 사회계급적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된 미국식 자본주의이다.

한국의 빈곤인구비율은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에 12.05%이었는데 2006년말에는 16.22%로 늘어났다. 2006년 현재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빈곤층 인구는 전체 인구의 11.1%에 이르는 536만명인데, 그 가운데 쥐꼬리만한 기초생활보장을 지원받는 인구는 3.2%밖에 되지 않는 154만명이다.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382만명은 굶어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자살로 생을 마감한 농민은 3천28명이다. 행복밖에 몰라야 할 어린이들 가운데,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절대빈곤층 어린이 인구는 2007년말 현재 100만명이다. 2008년 7월 현재 노인층 인구는 501만6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섰는데,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사는 노인은 88만명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2009년에 적용할 1인 월간최저생계비는 49만845원인데, 최근 뛰어오른 환율로 계산하면 약 330달러이다. 한국 주요도시의 생활물가는 미국 뉴욕보다 20%가 더 비싸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물가상승률은 올해 7.8%인데도, 보건복지가족부는 최저생계비를 6.0%만 올려놓았다.

이 절망적인 사회에서는 외환위기 발생 이후 일자리 창출규모가 해마다 평균 18만5천개씩 계속 줄어들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오늘 구직단념자를 비롯한 비경제활동인구가 너무 많아져서 공식실업률 통계수치는 이미 통계기능을 상실하였다. 부양가족이 있는데 실직상태에 있거나 경제활동을 포기한 이른바 ‘그냥 쉬는 남자’가 200만명을 넘는다.

이 절망적인 사회에서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영세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한국은 이른바 ‘생계형 서비스산업’이 전세계에서 가장 비대해진 사회이다. 영세자영업이라 부르는 ‘생계형 서비스산업’의 6대 업종은 수리업, 소매업, 숙박업, 부동산중개업, 식당업, 이.미용업이다. 그 가운데서 수리업은 미국보다 2.4배, 소매업은 미국보다 3.9배, 숙박업은 미국보다 4.4배, 부동산중개업은 미국보다 5.6배, 식당업은 미국보다 7배, 이.미용업은 미국보다 8.3배나 많다. 2007년도 자영업자 1인당 월평균 소득은 114만1천600원으로, 임금노동자 월평균 소득 191만3천원의 59.6%밖에 되지 않는다.

영세자영업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식당은 2008년 1월부터 9월 사이에 18만1천43개가 문을 닫았으니, 한 달에 평균 2만개씩 폐업한 것이다. 혹독한 감원바람에 휘말려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은 퇴직금을 투자해서 식당을 차리고, 식당업이 실패하면 택시운전사로 나서고, 그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은 길거리로 내몰려 공사판을 배회하는 단순노무직이나 노점상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2008년 3월 12일 강제노점단속에 저항하다가 분신하여 전신화상을 입은 올해 마흔 여섯 살 되는 노점상도 그 연령층의 가장들이 그러하듯 3년전까지만 해도 식당주인이었다. 4천만원의 빚더미를 안고 식당문을 닫은 그는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며, 대학생 딸과 고동학생 아들의 학비를 대주는 팍팍한 삶을 이어왔다. 전신화상의 통증과 싸우는 병실에 들어선 ‘민중의 소리’ 기자에게 그는 말했다.

“내가 그 장사를 할 수 없다면 한 가장의 가장이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살아야 할 의미가 없습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한 방법은 목숨을 거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더 열심히 살지 않아서 가난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저희도 죽을 힘을 다해 살려고 애썼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그리고 살아야 한다는 의지 만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서민들의 세상은 너무 불합리합니다.”

파산과 실업과 빈궁은 전신화상을 입은 그에게만 닥친 개인적인 불행과 고통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인구 80%가 겪는 사회적인 불행과 고통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자유무역과 열린시장에 집착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2008년을 기준으로 100만달러(약 10억원) 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한 11만8천명 부유층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집착하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고장난 비행기’에 올라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과 전국경제인총연합회는 미국식 자본주의만이 살 길이라는 ‘3부 합창’을 공연하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그 비행기에는 날개 두 쪽지가 달려있어서 엔진이 꺼진 채로 활공하고 있는 중이다.

‘고장난 비행기’의 활공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활공시간이 길어지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활공의 끝은 지상추락이다. ‘3부 합창’ 기내공연에 열중한 그들은 엔진이 꺼진 줄도 모르고 있다. 활공이 끝날 때, ‘3부 합창’도 끝날 것이다. ‘검은 9월’은 오지 않는다. ‘고장난 비행기’에게 다가오는 것은 지상추락이다. (2008년 11월 24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