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괴담, 진실은 무엇일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록영화 ‘소비에트 이야기’

2008년 9월에 열린 보스턴 영화제(Boston Film Festival)에서 ‘대중영향상(Mass Impact Award)’을 받은 영화 한 편이 있다. 2008년에 제작된 기록영화 ‘소비에트 이야기(The Soviet Story)’이다. 엣빈스 스노어(Edvins Snore)가 감독했는데, 이태 동안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찾아낸 역사자료를 가지고 손수 영화대본을 썼다고 한다.

영화제작경비를 대준 후원자는 유럽의회의 우익정파인 ‘국가유럽연합(Union for Europe of the Nations)’이다. ‘국가유럽연합’과 맺은 인연으로, 그 영화는 2008년 4월 유럽의회에서 처음 상영되었고, 9월 18일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상영되었다. 워싱턴 상영회를 주최한 것은 미국의 극우성향 민간연구단체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이며, 상영회 개막연설은 미국 우파 정치학계의 대부로 통하는,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재단(Victims of Communism Memorial Foundation)’ 이사장 리 에드워즈(Lee Edwards)가 하였다. 이쯤되면 그 기록영화를 감상하지 않아도, 그것의 반공적 색책를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에트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스탈린 집권기의 소비에트 정부가 저질렀다는 ‘반인륜적 범죄’를 영상을 통해 ‘고발’한 것이다. 이 글의 길이가 제약되어 있어, 그 기록영화에 나오는 내용을 모두 다룰 수 없으므로 ‘우크라이나 대량아사’에 관해서만 논한다.

그 기록영화의 ‘고발’에 따르면, “1932년 겨울, 소비에트 정부가 추진해오는 농업집단화 정책을 반대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소비에트 정부가 보복조치로 생필품 공급을 끊고 식량을 몰수하는 바람에 700만 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대량아사’에 대한 논란은, 소련이 해체되자 1991년 8월 24일에 분리독립한 우크라이나에서 민족주의 정치세력이 득세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2006년 9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대량아사를 ‘대학살(genocide)’로 규정한 결의안을 채택하였고, 2008년 7월 24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량아사에 관한 ‘역사자료’를 펴냈다.

그해 겨울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일

1932년 겨울, 당시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1928년 당시 소련 농촌에서 콜호즈(kolkhoz)라 부르는 집단농장(collective farm)의 비율은 2%밖에 되지 않았다. 1928년 11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와 1929년 4월 제16차 당대회에서는 1933년까지 전국의 농지면적 가운데 20%를 집단농장으로 개조하는 목표를 내걸었다. 급속하게 진행된 공업화(industrialization)는 농업의 집단화(collectivization)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급증하는 도시근로자들에게 공급할 막대한 식량이 요구되었을 뿐 아니라, 공업화에 들어갈 막대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농산물을 해외로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여야 하였기에, 농업집단화는 더욱 절실하였다. 1929년 10월부터 1930년 1월까지 농업집단화를 집중적으로 추진하자, 집단화 비율은 4%에서 21%로 부쩍 높아졌다.

그런데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농업집단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농과 지주들에 대한 설득보다는 강제가 앞섰던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에게 설득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930년 1월 30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전면적 집단화지역에서 쿨락 경영을 절멸시키는 조치에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쿨락(kulak)이란 반혁명분자, 대지주, 콜호즈 밖으로 분산이주하는 독자농가를 뜻하였다. 반혁명분자는 체포하고 생산수단을 몰수하였으며 그 가족은 수용소(Gulak)로 내쫓았고, 대지주 역시 가족과 함께 수용소로 내쫓았으며, 독자농가는 마을에서 내쫓았다. 108만 명에 이르는 부농과 지주가 추방을 당하거나 수감되었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촌락공동체(obshchina)는 해체되었다. 1932년 말 농촌인구의 60%가 집단화되었고, 1938년에는 농촌인구의 93%가 집단화되었다. 그로써 1억1천만 명에 이르는 소련의 소작농과 빈농들이 지주의 착취에서 벗어나 집단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농업집단화를 추진하자 지주와 부농은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1930년 1-3월에 쿨락이 일으킨 폭동은 2천200여 건이었으며 80만 명이 참가하였다. 농지를 몰수당한 쿨락은 폭동을 일으켜 집단농장을 습격하고 학살과 방화를 저질렀다.

혼란과 불안정에 빠진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농업생산력이 급감하였고, 심각한 식량난에 빠졌다. 특히 겨울철에는 유행성 독감이 퍼져 집단감염률이 높아졌다. 소작농과 빈농들에게는 전염병을 물리칠 의료시설도 의약품도 없었다. 페니실린이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1944년 이전에, 독감에 걸리면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1932년 식량난에 빠진 우크라이나에 몰아닥친 겨울이 바로 그러한 재난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집단농장은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었다.

비방선전 3인방 괴벨스, 허스트, 컨퀘스트

바로 그때, 신생사회주의공화국을 전복시키려는 외부세력들은 우크라이나가 겪은 시련을 ‘참혹한 대량아사’로 왜곡하는 비방선전을 개시하였다. 스웨덴 역사가 마리오 쏘사(Mario Sousa)가 밝힌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대량아사’에 관한 비방선전을 개시한 최초의 인물은, 나찌독일의 선전상 파울루스 괴벨스(Paulus Joseph Goebbels)였다.

아돌프 히틀러(Ardolf Hitler)를 우두머리로 내세운 나찌독일은 ‘독일제국건설’을 완성하려는 광란적인 야욕을 품었다. 나찌독일은 자기의 야욕추구를 거스르는 사회주의자들을 죽였고, 유태인을 학살하였으며, 침략전쟁을 도발하여 인류에게 재앙과 참화를 들씌웠다. 나찌독일이 손꼽은 정복목표들 가운데는 지리적으로 독일의 동쪽에 자리잡은 두 나라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있었다. 특히 최대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를 정복해야 전시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나치독일에게는 우크라이나 정복을 위한 침공명분이 요구되었다. 나치독일이 침공명분으로 조작해낸 것이 우크라이나 대량아사괴담이다. 우크라이나를 대량아사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것이다. 괴벨스의 악선전과 심리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괴벨스가 주도한 우크라이나 대량아사괴담에 관한 선전이 사기극이었음을 폭로한 사람은, 캐나다 언론인 더글러스 타틀(Douglas Tottle)이다. 그는 1987년에 『사기, 기근, 파시즘: 히틀러에서 하버드까지 우크라이나 대학살신화(Fraud, Famine and Fascism: The Ukrainian Genocide Myth from Hitler to Harvard)』를 펴냈다. 그 책에서 타틀은 괴벨스가 우크라이나 대량아사괴담을 선전할 때 썼던, 굶주린 아이들을 찍은 사진들이 1932년이 아니라 1922년에 찍은 것들임을 밝혀냈다. 1922년에 소련에서는 치열한 내전이 진행 중이었고,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노동자의 나라’를 뒤집어엎기 위해 무력침공을 자행한 여덟 개 나라들이 온갖 만행을 저지르던 때였다.

괴벨스의 뒤를 이은 사람은 히틀러의 동조자로 ‘언론제국’을 건설한 미국의 대자본가 윌리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이다. 신문과 라디오에만 의존하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월리엄 허스트는 일간지 25개, 주간지 24개, 라디오방송 12개, 국제방송 2개, 기록영화제작소 1개를 소유하고 사회적 정보제공을 독점하였다. 그러던 그가 자기의 극우성향에 걸맞게 나치독일을 찾아가서 히틀러를 직접 만난 것은 1934년의 일이었다. 히틀러를 만나고 나치독일을 돌아본 그가 미국에 돌아와서 추진한 것은 파시즘을 미화하고 사회주의를 악마화하는 반소, 반공 비방선전이었다.

일간지 『시카고 어메리컨(Chicago American)』은 1935년 2월 8일자 보도에서 “소련에서 600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한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대량아사괴담의 신호탄이었다.

우크라이나 대량아사괴담에 ‘역사학의 옷’을 입힌 사람은 극우성향의 미국인 역사가 로벗 컨퀘스트(Robert Conquest)이다. 그는 사회주의를 비방하는, 역사서로 위장된 선전책자를 펴냈는데, 1969년에 나온 『대공포(The Great Terror)』, 1986년에 나온 『슬픔걷이(Harvest of Sorrow)』가 그런 종류에 속한다. 컨퀘스트는 1961년에 ‘우크라이나 대량아사’에서 굶어죽은 사람이 600만 명이라고 주장하였는데, 1986년에는 1천400만 명으로 늘려놓았다. 그의 비방선전수법은, 소련에서 나온 인구조사 통계자료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는 ‘세계 평균 인구증가율’을 정해놓고, 해당기간에 소련에서 증가하지 않은 인구는 학살당했거나 굶어죽은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 1978년 1월 27일자 보도에서 컨퀘스트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영국 정보기관 엠(M)15가 1947년에 반소, 반공 비방선전을 위해 설치한 정보연구부(Imformation Research Department)에 고용된 비밀요원이었다. 그는 반소, 반공 비방선전을 위하여 영국 언론에 허위정보를 흘려주는 ‘믿을 만한 정보소식통’이었던 것이다.

컨퀘스트가 인용한 자료들은 1942년 나치독일 점령기의 우크라이나에서 히틀러의 나치즘에 동조하여 유대인학살에 가담하였다가 목숨을 건지려고 미국으로 도망친 극우파 망명자들이 전해준 것들이다.

‘우크라이나 대량아사’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제공한 사람의 정체를 밝혀낸 사람은 미국 언론 『네이션(The Nation)』의 모스크바 특파원 루이스 퓌셔(Louis Fisher)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대량아사’에 관한 정보와 현장사진을 서방세계에 제공한 토머스 월터(Thomas Walter)가 미국 콜로라도주 교도소에서 도망쳐나온 탈옥범 로벗 그린(Robert Green)이라는 것, 로벗 그린은 우크라이나에 간 적도 없고 모스크바에서 닷새 동안 머물다가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 대량아사가 일어났다는 1932년 이듬해에 우크라이나에 풍년이 들고 산업이 발전하였다는 내용의 기사를 모스크바 주재 미국 특파원들이 미국 본사에 송고하였으나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는 것 등을 밝혀냈다.

‘우크라이나 대량아사’에 관한 왜곡된 정보는 미국 중앙정보국, 광란적 반공주의 맥카시즘 추종자들, 소련에서 도망쳐 미국에 망명한 우크라이나 극우세력, 극우성향의 미국인 학자들에 의해서 가공되고 확대되고 유포되었다.

식량부족을 왜곡한 아사괴담

반소, 반공전선에 앞장섰던 우파세력들이 혐오하고 저주했던 소련이 해체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중국과 베트남은 개방과 개혁에 빠지더니 이제는 사회주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는 자본주의 나라로 변신하였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사회주의 나라는 북측이다.

이전에 소련과 중국에 퍼붓던 우파세력의 비방선전이 북측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대북 비방선전에서는 소설가의 작가적 상상력에 버금가는 온갖 괴담들이 날조되고 유포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아사괴담이다.

북측 아사괴담이 일반 괴기소설과 다른 점은, 괴담을 괴담답지 않게 보이려고 통계자료가 동원되는 것이다. 괴담을 진실로 믿게 만들려고 각종 통계자료를 작성해주는 전문가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북측의 농업경제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믿는 정치적 맹신에 사로잡혀 있는 남측의 ‘북한농업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북측에 풍년이 들었다는 올해에도 여전히 남측의 비료지원이 없었다느니, 수확기에 가뭄이 들었다느니, 땅을 깊게 갈지 못해 쭉정이가 많다느니 하는 구실을 붙여가면서 ‘식량위기설’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북측의 만성적인 식량위기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다는 ‘확실한 결론’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올해 북측의 식량생산량은 450만t이고, 식량수요량은 510만-540만t이다. 그들의 계산법에 따르면, 최소수요량에서 60만t이 모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북 첩보활동에서 버금간다고 하면 서러워할 국가정보원은 북측의 식량사정을 어떻게 판단할까? 2008년 5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국정원 1차장 전옥현은 “올해 북한의 식량수요량은 540여만t이지만 현재 확보량은 420여만t으로 120여만t 정도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금년 10월말 추수기까지 중국이나 세계식량계획 등으로부터 30여만t이 제공되고, 미국이 북한에 주기로 합의한 50만t 중 20만t 정도가 추가로 도입될 것으로 예상돼 그럭저럭 지탱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의 정보판단에 따르면, 70만t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8년 8월 6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는 ‘북한농업전문가’들과 국정원의 주장을 뒤집는 통계자료를 발표하였다. 2007년과 2008년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북측의 쌀생산량은 120만t에서 160만t으로 늘어나고, 옥수수생산량은 130만t에서 200만t으로 늘어나고, 잡곡생산량은 150만t에서 210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았다. 2008년 북측의 식량생산량은 모두 570만t이 되는 것이다.

‘북한농업전문가’들과 국정원이 추정한 북측의 식량생산량과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추정한 북측의 식량생산량은 너무 큰 차이가 난다. 어느 쪽의 추정이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괴담은 계속된다

미국에서 북측의 아사괴담을 퍼뜨리는 곳은 미국 농무부이다. 2008년 7월 3일 미국 농무부가 펴낸 ‘식량안보평가 2007년도 보고서’는, 북측의 2008년도 식량부족분이 156만7천t이나 되고, 현재 북측은 전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쉬 보다 더 심하고, 전쟁참화를 겪는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한 수준의 기아상태에 처해 있으며, 북측에서 지금까지 굶어죽은 사람이 200만 명이나 되고, 기근은 2017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비극적 전망까지 달아놓았다.

그에 질세라,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계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2008년 세계기아보고서’에서 기아지수(hunger index)가 악화된 열 나라를 손꼽았는데, 아프리카 최빈국 아홉 나라에 더하여 북측을 굶주림에 허덕이는 최빈국으로 지목하였다.

남측에서 북측의 아사괴담을 퍼뜨리는 대북인권단체들 가운데 단연 으뜸은 ‘좋은벗들’이다. ‘좋은벗들’이 자체 제작하는 정기선전물 ‘오늘의 북한소식’에서 퍼뜨리는 아사괴담이 다른 대북인권단체들이 퍼뜨리는 괴담과 다른 점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정보’를 가지고 괴담을 그럴듯하게 가공처리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2008년 5월 20일 ‘좋은벗들’ 소식지 제130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사리원 시의 간부는 “얼마전 (노동)당 자금을 풀어 도시는 잠시나마 숨통을 텄지만 농촌은 계속 죽고 있다. (식량)공급이 안 되면 무리로 죽어나갈 것이다. 한달 뒤면 무리죽음(대량아사)이 생길 것이다”고 말했고, 해주시의 의사는 “황남도 전체로 보면 죽을 먹는 세대가 열의 여덟, 아홉이 된다. 옛날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게 아니라, 한번에 팍 쓰러져 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인용발언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곧 드러났다. 황해남도 해주에 지역사무소를 둔 세계식량계획(WFP)이 2006년 6월에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실시한 현장조사가 ‘좋은벗들’이 제공한 정보가 괴담이었음을 입증하였기 때문이다.

자기의 거짓말이 탄로난 것을 알아차려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2008년 8월 21일 ‘좋은벗들’은 “북한 내부기관이 작성한 2008년 춘궁기 농민아사통계”라는 것을 내놓으면서 괴담을 진실로 위장해보려고 애썼다. 그 통계에 따르면, 북측에서 굶어죽은 농민들은 남포시 강서구역 태성리협동농장에서 35명, 황해북도 신계군 정봉리협동농장에서 32명, 황해북도 황주군 흑교리협동농장에서 28명, 강원도 판교군 지하리협동농장에서 29명이라는 것이다. 또한 평양시 강서군 잠진리협동농장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풀을 뜯어먹었다가 풀독에 걸려 죽은 사람이 6명이라는 것이다.

북측을 생지옥처럼 묘사하는 ‘좋은벗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식량난 악화로 가족해체, 꽃제비 증가, 전염병 창궐, 자살, 학생과 노동자 무단결석 및 결근, 농민의 농사포기 등 사회적 문제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만일 북측이 정말 그와 같은 생지옥이라면, 나라의 통일을 바라던 사람도 통일염원을 저버리고 대북 혐오감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과 덜컥 통일이라도 되는 날에는,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진 남측이 어마어마한 통일비용까지 떠맡게 되어 지독하게 고생할 게 뻔하다는 헛소문이 나도는 판인데, ‘좋은벗들’이 북측을 생지옥으로 묘사한 괴담을 들은 뒤에도 그래도 통일은 해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남측에서 과연 몇이나 될까?

‘좋은벗들’이 퍼뜨리는 아사괴담이 식량부족을 과장한 것임을 지적한 사람은 평양에 주재하는 어느 유럽 나라 대사관에서 일하는 익명의 외교관이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평양에 상주하는 유럽 나라의 고위외교관과 2008년 7월 16일에 대담한 바에 따르면, 그 외교관은 유럽연합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유럽위원회 인도지원사무국(ECHO)의 최신 비공개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은 기근징후는 없으며, 남측의 일부 대북지원단체가 주장하는 대규모 아사경고는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락가락하는 평양사무소

외부에서 북측의 식량사정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세계식량계획이다. 세계식량계획은 평양에 중앙사무소를 두고, 신의주, 원산, 함흥, 청진, 해주, 혜산에 지역사무소를 두었으며, 현장요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세계식량계획, 유엔식량농업기구, 유엔아동기금(UNICEF)이 합동으로 2008년 6월 9일부터 30일까지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 평안남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강원도, 평양을 비롯한 53개군에서 현장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그 현장조사결과를 분석한 뒤인 2008년 8월 22일, 세계식량계획 평양사무소장인 캐나다인 장 삐에르 드 마저리(Jean-Pierre de Margerie)는 ‘자유아시아방송’과 대담하면서 “북한이 굶주림이나 기아수준에 있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굶주림도 아니고 기아수준도 아니라면 일반적인 식량부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0월 22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동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그는 모순되는 발언을 꺼내놓았다. 그는 북측에서 “비료와 연료가 부족해서 올해 수확량이 불확실하다”고 전제하고, 북측의 식량사정이 “만성적인 식량난에서 극심한 식량 및 생계위기, 나아가 인도주의적 긴급상황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행사에 참석한 유엔아동기금 평양사무소 대표는, 북측 농업성이 “올해 곡물 수확량을 480만t정도 될 것으로 추정했지만, 집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최악의 식량난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북측의 올해 수확량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불확실하다느니 집계가 잘못됐다느니 말하고, 두 달 전에 말했던 것과 달리 북측의 식량사정을 극도로 비관한 것은 의도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북측에서 수확량이 늘어나서 식량문제를 기본적으로 풀게 되면, 세계식량계획은 결국 동북아시아에서 퇴출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식량계획은 식량문제가 없는 중국이나 식량문제를 식량수입으로 해결하는 남측 또는 일본에서 활동할 수 없고, 오로지 북측에서만 활동해왔다.

아닌 게 아니라, 북측은 2005년에 세계식량계획에게 식량문제는 급한 것이 아니니, 앞으로는 식량지원보다도 개발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북측에 대한 개발지원을 반대하는 부시 정부는 북측이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지원받은 자금을 전용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는 소동을 일으켜 결국 유엔개발계획 평양사무소를 폐쇄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 북측에 상주하는 세계식량계획 요원들은 개발지원요청을 외면하고 여전히 ‘식량난 타령’만 하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개발지원을 받게 되면, 북측에 상주하는 세계식량계획 요원들은 그곳을 떠나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북측의 식량부족이 만성화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괴담을 정보라고 우기는 스님

<중앙일보> 기자가 ‘좋은벗들’ 이사장 법륜 스님에게 “북한이 아사직전 상황이라는 데 모두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은 데요”라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정보가 잘못 돼 있는 겁니다. 지금 황해도의 상태가 아주 심각합니다. 아사자가 많아요. 그러나 탈북자들이 함북사람 중심이어서 황해도 상황은 잘 안 들어옵니다. 겨우 1%가 황해도 출신이거든요. 시장도 요새는 활성화되지 않아서 정보가 제대로 돌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1년 전까지만 해도 장마당이 활성화돼 있어 거기서 정보를 얻었는데 작년 9월 이후 완전히 통제돼서 정보를 얻기가 힘듭니다. 정보를 취급하는 기관도 대부분은 지원 반대층들입니다. 게다가 진보진영에는 정보수집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좋은벗들’은 군단위 동단위까지도 소식을 얻습니다. 북한 당국이 철저히 통제하고 시외전화를 못 쓰게 해도 우린 3일 안으로 정보를 받습니다. 그러니 상황을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자랑스럽게 말한 대로, ‘좋은벗들’의 첩보력이 정말로 북측의 정탐차단망을 사흘 안에 뚫을 수 있다면, 미국 중앙정보국이나 남측의 국가정보원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놀라운 첩보망을 북측에 깔아놓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위의 답변에서 살짝 드러난 것처럼, ‘좋은벗들’의 첩보망은 중국에 있는 탈북지하조직에 연계되어 함경북도 어느 지역에서 암약하는 고정첩자가 장마당을 돌아다니면서 주워들은 뜬소문을 아사괴담에 맞춰 적당히 가공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기자가 “그 정보를 다 믿습니까?”고 다시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이해관계 없는 사람들이 주는 정보들입니다. 모두 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친구도 나를 돕습니다. 10여년 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내가 뭘 하는지 다 압니다. 정보를 절대로 돈 주고 사지도 않고 과장 축소도 절대 안 합니다. 나는 종교인입니다.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라고 답변하였다.

아사괴담을 너무도 확신있게 말하는 그에 대해서 끈질긴 기자근성이 발동했는지, “그래도 극단적인 것 같습니다”는 기자의 주관적 견해가 나왔다. 그랬더니 스님은 아사괴담의 과거사까지 들고나왔다. “1997년에도 논쟁이 많았습니다. 과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170만 명의 북한 주민이 죽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죽는 자에게 누구도 책임을 안졌습니다.”

<로동신문> 2008년 9월 21일자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북측 전역에서 2008년 10월 1일부터 15일까지 인구일제조사(census)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지금쯤 인구일제조사는 모두 끝났을 것이다. 유엔인구기금은 북측에서 1993년에 제1차 인구일제조사를 실시하였으니 이번 조사는 두 번째이다. 유엔인구기금 방콕사무소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장조사요원 3만5천200명, 지도요원 7천500명, 통계기관 종사자 1천400명이 동원되어 북측 전역의 모든 세대를 방문조사하였다고 한다.

제1차 인구일제조사가 ‘고난의 행군’ 직전인 1993년에 있었고, 15년만에 제2차 조사를 실시하였으니, 두 조사자료를 비교하면 인구변동을 파악할 수 있다. 인구일제조사가 머지 않아 과학적인 사실을 밝혀줄 때, 170만명이 굶어죽었다고 우기는 ‘좋은벗들’의 괴담은 끝날 것이다. (2008년 10월 27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