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민관을 기다리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격한 반작용과 치명적인 실책

2008년 10월 1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과 이정희 의원이 국가정보원을 방문하였다. 통일운동단체인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에 대해 마구잡이식 탄압을 저지른 것에 항의하려고 간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제2차장 김회선은 그 두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친북좌익세력 척결 없이는 선진국을 향해 한걸음도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북좌익세력을 척결한다는 협박조의 말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국가정보원, 경찰청 보안수사대, 검찰 공안부는 통일운동단체, 노동운동단체, 시민운동단체, 문화운동단체 각 사무실들과 그 단체에서 일하는 간부들의 집을 급습하여 압수수색을 강행하고 주요활동가들을 잡아가두는 것도 성에 차지 않은 듯, 지난 여름 어린애를 유모차에 태우고 촛불집회에 참가하였던 가정주부들까지 끌어가 조사하는 전대미문의 탄압소동을 벌였다. 이명박 정권의 폭정은 진보성향의 사회단체들을 ‘국가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이적단체’로 몰아세우고 숨통을 조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폭압을 일삼던 군사독재정권이 퇴장한 뒤로 한때 잠잠하였던 압수수색, 강제연행, 지명수배, 구속수사, 유죄판결, 형집행으로 이어지는 야만적인 탄압공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정치탄압만이 아니다. ‘수출둔화 내수부진’이라는 말로 강도를 낮춰 표현하지만, 중소기업들이 이미 전반적 파산위기에 다가서고 있는데다가, 실업난과 비정규직 확대, 실질임금 하락과 물가폭등으로 민생경제가 무너져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아우성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속칭 ‘강남부자들’이라 부르는 소수 부유층을 위한 부동산정책, 조세정책, 교육정책을 되살려놓는가 하면, 발표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10.4 선언을 전면부정하고 자극적인 대북발언을 계속함으로써 대결주의적 대북정책도 되살려놓았다. 그것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이른바 ‘친북, 반미, 반기업 좌파적 내용’이 들어갔다고 소란을 피우더니 곧 교과서 개편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명박 정권이 모든 부문에서 격한 반작용(counteraction)을 일으키면서 정책을 ‘확실한 우향우’로 틀어놓고 있음을 말해준다.

정치적 반작용을 일으키는 장본인은 이명박 정권이지만, 그 정권이 마음놓고 정치적 반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추구한 노선과 정책이 결국 실패로 끝나버렸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일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노선과 정책이 성공하였다면 오늘 이명박 정권이 이처럼 전면적으로 뒤집어버리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를 대비해서, 자기들의 정치노선이 부정되거나 또는 자기들이 추진해온 정책들이 뒤집히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역행방지장치 같은 것을 만들어놓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정권교체에 대비한 역행방지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버림받은 10년

2008년 10월 1일 서울에 있는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 특별강연에 출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한 기간에 만들어놓은 정책들이 한나라당이 집권한 뒤로 모조리 뒤집어진 사태를 논하면서 정권교체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 실수한 것인 양, 이런 가벼운 비유법을 들었다. 그는 “전임사장이 계약을 하면 후임사장은 이행하는 것이, 회사에서 CEO들은 다 그렇게 되길래, 나는 그렇게 되는 줄 알았어요. 회사에서 그렇게 안 하면 그러면 회사가 부도 나거든요. 그런데 국가CEO는 그렇게 안 해도 되는지 미처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최고경영자 비유에서는 정치적 반성과 자책을 찾아볼 수 없고, 오늘의 사태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실수담만 흘러나왔다.

대통령 퇴임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2008년 2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보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시)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문제를 논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왜 100점짜리를 못하고 60점밖에 못했느냐고 나무란다면 정책환경과 스스로 역량의 한계를 돌아볼 수 있겠으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식의 근거 없는 이념공세에 대해 반성하겠다고 자인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그러한 공세에 대해 깊이 따져보지도 않은 채 인정하지 말고, 객관적, 과학적 분석에 근거해 평가하고 대응해야 한다.”

그는 잃어버린 20년을 말하는 것이 근거 없는 이념공세이므로 반성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2007년 대선에서 531만 표 차이로 참패한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주간지 ‘한겨레 21’ 제692호(2008년 1월 4일)의 관련기사가 지적한 것처럼, “반성, 목표, 대안이 없는 쇄신”을 논하다가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대선에서 참패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그들은,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은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었다고 빈정거리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이다. 원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은 지난 1990년대에 일본경제가 10년 동안 침체위기에 빠졌던 경험에서 나온 말인데,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엉뚱하게도 그 말을 끌어다 쓰는 바람에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60점짜리’라고 자평한 것처럼,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민생정책과 개혁정책의 실패를 거듭하였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싸늘한 민심이반, 그리고 총선에서 대선으로 이어진 집권당의 연속적인 참패는, 민생정책과 개혁정책에서 실패한 정권이 겪을 수밖에 없는 ‘통증’이었다.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해야 할 10년의 기간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게 주어졌으나, 그들은 민생경제도 살리지 못하고 민주개혁도 추진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민중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은 민중으로부터 버림받은 10년(abandoned decade)이었다.

정책보다 정쟁에 더 열을 올리는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몰아세웠지만, 그것은 이명박 정권의 부질없는 이념공세로 보이기 이전에 진짜 좌파정권에 대한 모욕으로 보인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부르는 것은, 미국의 클린턴 정권이나 영국 블레어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부르는 것만큼 무지의 극치에 이른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의 ‘사팔눈’으로 정치지형을 바라보면, 자기들 ‘왼쪽’에 있는 정치세력이 모조리 좌파로 보이겠지만, 그것은 ‘사팔눈’의 만성적 착시현상일 뿐이다. ‘정상시력’으로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중도우파정권이다. 중도우파정권이라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도파보다는 우파에 더 가까운 중도우파정권이다.

자격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섣불리 일을 벌이다가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겪는 경우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야말로 10년 동안 ‘사람 잡는 선무당’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그 두 정권이 10년 동안 소리만 요란하게 내고 이뤄놓은 것이 없으니 민중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마땅하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실패의 원인, 그리고 실패의 결과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왜 실패하였을까? 중도우파노선에 따라 만들어진 민생정책과 개혁정책이 왜 실패하였는지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오늘 이명박 정권이 이전보다 더 심하게 민생경제를 짓밟고 민주개혁에 역행하는 데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실패를 제대로 반성하고 평가하면,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반면교사’로 되는 법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실패한 원인을 논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설계도’를 그릴 줄 몰랐다. 발전전망을 내오지 못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 대응전망이 아니라 역사적 발전전망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입으로는 민생경제와 민주개혁을 외웠으나, 민생경제와 민주개혁이 실현되는 ‘내일’은 그들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민생경제가 전면적으로 보장되고 민주개혁이 완전히 실현된 새로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그려내지 못하였고, 그러한 미래사회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하는 역사적 발전전망에 대해 무지하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국회에서 어설픈 민생법안과 개혁법안이나 만지작거리다가 한나라당과 적당히 절충, 타협하는 선에서 마무리짓고,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정치에 적응하는 ‘성숙한 정계활동’이라 믿었다.

그러나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그것을 반대하는 한나라당과 적당히 절충하고 타협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한나라당과 벌이는 정쟁에서 이기기 위해 내세우는 당리당략적 명분은 더욱 아니다.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을 민생파탄에서 건져내고 그들이 요구하는 민주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주어진 역사적 과업이다. 그리하여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그것을 실천하기에 앞서 역사적 발전전망부터 요구하는 것이다.

역사적 발전전망이란, 약육강식의 자유가 판치는 야만적인 자유시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민생경제를 살리는 민생보장의 전망이며, 부패하고 무능할 뿐 아니라, 반공주의와 사대주의 따위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우파적으로 기형화된 입법체계, 행정체계, 사법체계 전반을 민주주의적 원리에 따라 개편하는 민주개혁의 전망이다.

그러나 집권 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집권한 뒤에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민생강령과 개혁강령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몰랐고, 그 강령을 어떻게 실천하는지도 몰랐다. 민주주의라 하면 그저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믿는 우경적 맹신와 지적 무능의 쳇바퀴에 들어앉아 줄곧 부질없는 맴돌이를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참여정치’를 자임하고 나선 중도우파정권의 불행이자, ‘참여정치’ 실패의 후폭풍이 광란하는 이 시대의 비극이다.

둘째,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패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인 데서 시작되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좀 긴 설명이 요구된다.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하는 역사적 과업은 국회에서 벌어진 여야공방전에서 이기는 것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민생정책과 개혁정책을 밀고 나가는 힘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 힘은 민생정책과 개혁정책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온갖 장애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이며, 동시에 노동자, 농민, 서민의 생활현장에서 민생정책과 개혁정책의 실효를 내오는 실천력이다.

그 힘은 민중에게서 나온다. 민생정책과 개혁정책에 동력을 제공해줄 힘의 원천은 오직 민중에게 있다. 그러므로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하려면 마땅히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도시중산층의 지지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생각은 그 두 정권의 발목을 잡은 사회계급적 한계의 반영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정치세력화한 도시중산층에 기반을 두었으므로 그 정권이 도시중산층을 위한 중도우파적 노선과 정책을 추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도시중산층을 위한 노선과 정책을 추진하기도 전에, 도시중산층을 해체하여 사회를 양극으로 갈라놓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였다. 지구를 집어삼킬 듯 광란하며 단일시장통합을 밀어붙이는 신자유주의 금융권력의 불가항력적인 압박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할 가능성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도시중산층을 위한 노선과 정책을 추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도시중산층의 이익에 배치되는 방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곡에 묶인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도시중산층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도시중산층을 해체함으로써 자기의 지지기반을 스스로 허물어버리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해체와 양극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도시중산층이 그런 정권에게 등을 돌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실패의 원인만큼 중시해야 하는 것은 실패의 결과이다. 선거 참패로 정권을 내놓은 중도우파정당에게 재집권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그들이 저지른 실패의 결과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사회계급구성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계급구성이 바뀐다는 말은, 사회적 양극화(social bipolarization)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사회적 양극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적 빈부격차의 확장추세를 일정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맡아온 도시중산층이 차츰 해체되면서, 사회가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빈곤층으로 갈라져 사회계급적 갈등구도가 전례없이 악화되는 것을 뜻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인 사회계급구성의 변화는, 우리 사회보다 먼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풍에 휘말렸던 중남미형 사회구조로 우리 사회가 이동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세계시장을 집어삼키는 난폭한 포식자로 등장한 신자유주의 금융권력이 이 땅에 들어와 시장을 물고 뜯으며 천문학적인 이윤을 집어삼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그것을 못 본 체 방치, 허용하였다. 그 두 정권이 추진해온 구조조정정책,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 같은 일련의 굵직한 조치들은, 신자유주의 금융권력이 이 땅의 시장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포식잔치상에 올려놓은 먹이감이다.

신자유주의 금융권력이 금융시장, 상품시장, 노동시장을 집어삼키는 포식잔치를 즐기는 동안, 기업과 공장에서 비정규직의 족쇄에 묶여버린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으며, 농산물 가격하락과 농가부채에 짓눌려 절망에 빠진 농민들이 얼마나 많으며, 물가 폭등과 사교육비 폭등에 휘말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생활고의 벼랑으로 떠밀린 서민들은 얼마나 많으며, 하늘에서 별따기 만큼 어려워진 취업을 포기하고 길거리를 떠도는 청년들은 또 얼마나 많으며, 미국발 광우병 공포와 중국발 멜라민 공포 같은 식료품 위험에 질려 식탁의 안전을 걱정하며 사는 가정주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기형적 정치지형과 우경편집증

10년 동안이나 민생보장과 개혁추진의 기회가 주어졌어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민중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이제는 무기력한 야당으로 전락한 중도우파정당에게 다시 기대를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고 폭압적인 이명박 정권이 민생보장과 개혁추진으로 전향하기를 바라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보다 한층 더 가혹하게 민생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소수 부유층을 위한 반개혁정책만을 고집하는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로 나아가지 않는가!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의 어둠이 깔린 우리 사회에서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할 진보정치의 불빛은 어디에 있을까?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의 검은 그림자가 시야를 잔뜩 가려놓은 탓에 진보정치의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적하는 것은, ‘버림 받은 10년’ 이후 이 땅의 정치정세가 암울해질수록 노동자, 농민, 서민은 신자유주의 금융권력의 ‘포식잔치’를 뒤집어엎고, 우리 사회를 절망과 고통에서 건져낼 민생과 개혁의 진보정치를 열망하게 된다는 점이다.

문제는 민생과 개혁의 진보정치를 실현할 정치세력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누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것인가? 우파정권이나 중도우파정당이 민생과 개혁의 진보정치를 실현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될 수 없음은 너무도 분명하다. 우파정권과 중도우파정당이 아니라면, 중도좌파정당이 대안으로 남는다. 중도좌파정당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나서는 것이 오늘의 정치지형에서 이치에 맞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지형을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어도, 우리 사회의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중도좌파정당은 여전히 낯선 존재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농민, 서민이 좌파라는 용어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므로, 중도좌파정당이라는 용어 대신에 진보정당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중도좌파정당과 진보정당은 같은 개념이다.

2007년 12월에 실시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한 것은, 진보정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실증해주었다. 노동자, 농민, 서민이 우파정권과 중도우파정당에게 모두 등을 돌리면서 진보정당에게도 무관심한 정치부재의 혼돈상태(anomie)가 지속될 위험도 보인다.

노동자, 농민, 서민에게 진보정당이 대안인 데도, 그들이 진보정당에 거리를 두거나 무관심한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 진보정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 속에서 대중정치활동을 제대로 벌이지 못한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진보정당의 주체역량이 한계를 보인 것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과제는 오롯이 진보정당에게 맡겨진 몫이다. 글의 주제가 정해져 있어서, 이 글에서는 그 과제를 논하지 않는다.

둘째, 우파정당이 우리 사회를 너무 오랫동안 홀로 지배해온 우파독주의 정치지형에 이차적 원인이 있다. 중도우파정당이 집권한 기간은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의 선거참패 이후, 오늘의 정치지형은 우파정당의 압도적 우세 속에 중도우파정당이 끌려가는 우파독주의 정치지형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 땅의 정치지형이 공화당과 민주당의 교차집권이 고착된 미국식 양당체제를 모방하면서 한나라당 대 민주당의 안정적 균형상태를 조성할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다. 이 땅의 정치지형이 미국식 양당체제로 전환되려면, 미국사회처럼 도시중산층이 발달하여 중도우파정당의 지지기반이 크게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도시중산층이 해체되면서 민주당의 지지기반이 무너지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타나지 않는 한, 우파정당의 압도적 우세 속에 열세에 처한 중도우파정당이 끌려가는 현재의 기형적인 정치지형이 고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명백하게도, 우파독주의 정치지형은 기형적인 것이며, 중도파 중심의 정치지형이 건강한 것이다. 중도파 중심의 정치지형이란,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대세를 이루며 서로 경쟁하는 정치지형을 말한다.

우파독주의 기형적 정치지형은 우리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우파적이지 않은 것을 까닭없이 혐오하고 배척하는 우경편집증(rightist paranoia)을 만연시켰다. 좌파라는 말뜻도 모르면서 좌파라는 말만 들어도 즉각 거부반응부터 일어나는 우경편집증은 이제 웬만한 충격으로는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굳어버린 듯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우경편집증이 교육, 언론, 종교를 통하여 노동자, 농민, 서민의 의식 속에 널리 스며드는 바람에 그들이 반대하여야 할 정당을 지지하고, 그들이 정작 지지하여야 할 정당에 등을 돌리는 도착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진보정당이 성장하기 힘든 까닭이 거기에 있다.

우경편집증은 정상적 사고가 마비된 정신질환이므로 반드시 치유되어야 한다. 2008년 5월과 6월에 있었던 촛불집회는 고질적인 우경편집증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리켜주었다. 노동자, 농민, 서민이 낡은 체제의 횡포와 낡은 권력의 강압에 맞서 싸우는 대중저항은, 우경편집증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정치의식의 급변을 일으킨다.

주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촛불집회 같은 대중저항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다. 민생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기업경제마저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파열음을 내고 있는 현실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중의 반감이 계속 격화되어 대중저항을 다시 촉발시킬 요인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경험한 것처럼, 대중저항에 나선 노동자, 농민, 서민은 그들의 생활과 운명을 바꾸어놓을 진보정치를 요구할 것이고, 진보정당은 대중저항과 만남으로써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할 진보정치의 동력을 노동자, 농민, 서민으로부터 공급받을 것이다. 노동자, 농민, 서민이 저항의 촛불을 움켜쥐고 다시 일어서는 날, 민생경제를 살리고 민주개혁을 추진할 진보정치의 호민관(ombudsperson)이 나타날 것이다. (2008년 10월 6일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