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학의 평화통일론 해명방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아미티지의 유해담론

미국 뉴욕에서 1934년부터 발간되어오는 미일관계 전문월간지 '오리엔틀 이코노미스트 리포트(The Oriental Economist Report)' 2006년 3월호에 흥미로운 기사 한 편이 실렸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부쉬정부 1기에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고, '아미티지 보고서'를 두 차례나 작성한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L. Armitage)의 대담기사이다. 그 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을, 좀 길지만, 번역하여 옮겨적는다.

"북측(North Korea)과 남측(South Korea)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중국의 대북투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북측은 몇 해 전만 해도 붕괴에 임박한 상태에서 비틀거렸으나, 지금은 경제적으로 다소 강해졌다. 남측도 대북경제협력을 증대시켜왔다. 남측의 많은 사람들은 평양이 남측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사실적 근거에서 바라보면, 코리아가 차츰 통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과정에 관한 공식적인 언급은 없지만, 육안으로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아미티지는 두 가지 논거를 대면서 코리아가 통일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중국의 대북투자가 급증하고 남측의 대북경제협력이 증대한 경제적 변화가 그 논거이고, 남측에서 '남침의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된 사회심리적 변화가 또 다른 논거이다.

그러나 통일학에서는 그가 말한 경제적 변화나 사회심리적 변화가 코리아를 통일하는 요소로 된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의 대북투자는 북측과 중국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남북관계의 통일지향적 발전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북투자가 급증한다는 그의 지적은 실제보다 과장된 표현이다.

또한 남측이 대북경제협력을 증진시킴으로써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남북관계가 통일지향적으로 발전됨으로써 남측의 대북경제협력이 증진되는 것이다. 그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였다.

아미티지가 중국의 대북투자와 남측의 대북경제협력을 코리아의 통일을 실현하는 요소로 손꼽은 까닭은, 그러한 경제적 변화가 북측을 세계화(개방)하고 시장화(개혁)하는 데서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꼭집어서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대담기사에 들어있는 문맥을 살펴보면, 중국의 대북투자 급증을 북측의 세계화(개방) 촉진요인으로, 남측의 대북경제협력 증가를 북측의 시장화(개혁) 촉진요인로 바라본 듯하다.

통일학은 '남침의 공포'를 거의 느끼지 않게 된 남측의 사회심리적 변화가 남북관계의 통일지향적 발전요인으로 된다고 보지 않는다. 원래 '남침의 공포'란 지난 시기 군사독재정권이 대북적대감을 불러일으켰을 때 생겨난 사회심리현상인데, 오늘날 '남침의 공포'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전민족적 노력이 대북적대감을 해소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아미티지는 대담기사에서 코리아의 통일과 무관한 몇 가지 논거를 코리아의 통일을 실현하는 요인인 것처럼 논하면서도, 정작 코리아를 통일하는 결정적인 요인인 6.15 공동선언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것은 착오나 몰이해 때문이 아니라, 미국정부의 전현직 고위관리들이 한결같이 그러한 것처럼, 6.15 공동선언을 외면한 것이다.

통일학은 6.15 공동선언이야말로 코리아를 통일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는 데, 아미티지가 그 선언을 외면한 까닭은 그의 관점이 6.15 공동선언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북측의 세계화(개방)와 시장화(개혁)를 촉진함으로써 코리아를 통일할 수 있다고 보는 아미티지의 관점은, 그가 외면하는 6.15 공동선언에 의거한 관점이 아니라, 그가 중시하는 한미동맹에 의거한 관점이다.

주목하는 것은, 북측이 세계화와 시장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줄곧 반대해왔을 뿐 아니라, 그러한 반대의사를 한 두 번만 내외에 천명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강조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아미티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북측의 의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세계화와 시장화를 꺼낸 것은, 북측을 자극하여 남북관계의 긴장과 대립를 더욱 높히는 백해무익한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북측의 세계화와 시장화를 주장하는 것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의거한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가로막는 유해담론이다.

상식을 넘어서 강령으로

누구에게나 익숙한 평화통일이라는 말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면, 남북이 싸우지 않고 하나로 합해진다는 뜻밖에 알 수 없다. 하지만 통일학에서 해명하는 평화통일의 의미는 그러한 일반상식을 넘어선다.

통일학이 평화통일론 연구를 심화하기 이전에, 평화통일론은 무력통합론을 대체하는 대안담론 정도로 간단히 이해되었으나, 통일학이 평화통일론 연구를 심화하면서 평화통일론의 깊은 뜻을 찾아낼 수 있었다.

평화학에서 논하는 평화개념과 통일학에서 논하는 평화개념은 서로 다르다. 평화통일론에 들어있는 평화개념은, 불안정과 갈등, 대립과 투쟁 따위가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평화학의 개념이 아니라, 갈라진 나라를 정치적으로 통일한다는 뜻을 담은 통일학의 개념이다. 통일학은 평화개념과 통일개념을 한 낱말에 모아놓으면 평화통일론이 성립된다고 보는 상식을 뛰어넘어, 갈라진 나라를 정치적으로 통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주었다.

통일학에서 논하는 평화통일론은,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정치과업을 밝혀주는 담론이다. 다시 말해서, 평화통일론이란 남북이 남북관계의 정치강령(political program)을 합의함으로써 나라를 통일하는 원리와 원칙, 과정과 전망을 밝혀주는 정치담론이다.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강령이 경제강령이나 외교강령이나 문화강령으로 될 수 없고, 정치강령으로 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남북이 합의하는 남북관계의 정치강령을 통일학에서는 통일강령(reunification program)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통일강령이라는 말과 통일방안이라는 말을 구분하지 않고 뒤섞어 써왔다. 통일방안은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통일강령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통일강령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통일강령은 6.15 공동선언에 들어있다. 6.15 공동선언의 제1항과 제2항이 통일강령을 명시한 조항들이다. 나머지 제3항, 제4항, 제5항은 통일강령을 실천하는 당면과제를 담은 부속조항들이다.

돌이켜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통일강령을 담은 6.15 공동선언의 제1항과 제2항을 건성으로 대하면서, 그 강령을 실천하는 당면과제를 담은 부속조항들에 대해서만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이전의 두 정부가 통일강령을 담은 6.15 공동선언의 제1항과 제2항을 건성으로 대한 까닭은, 평화통일론에 대한 인식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6.15 공동선언을 부정할 뿐 아니라, 통일강령을 실천하기 위한 당면과제들마저 외면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한 6.15 공동선언 제1항은, 남북이 남북관계에서 정치적으로 협력하고 대외관계에서 자주적으로 대응하는 통일강령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남북관계의 정치적 협력과 대외관계의 자주적 대응, 바로 이것이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통일강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된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한 6.15 공동선언 제2항은 남북이 남북관계에서 정치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근거를 밝혀주었다. 그 조항은, 남측의 연합제 방안을 실현하는 것과 북측의 연방제 방안의 낮은 단계를 실현하는 것이 상통하므로 남북은 남북관계에서 정치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6.15 공동선언과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이 어떻게 서로 어긋나는지를 알 수 있다. 6.15 공동선언은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통일강령을 제시하였고, 햇볕정책은 남측이 대북교류를 확대하여 북측의 자발적인 대외개방을 촉진하는 과제를 제시하였다. '햇볕'을 쬐어 '겨울옷'을 스스로 벗게 만든다는 말은, 남측이 대북교류를 확대하여 북측의 자발적인 대외개방을 촉진한다는 뜻이다. 햇볕정책을 만들어낸 김대중 정부는 북측이 햇볕정책을 반대하자 화해협력정책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노무현 정부는 그 이름을 다시 평화번영정책으로 바꾸었지만,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햇볕정책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북측의 대외개방을 촉진하기 위한 남측의 대북교류가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통일강령과 어긋난다는 점이다. 햇볕정책이 평화를 수없이 말하였으나, 평화통일론에 한 걸음도 접근하지 못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평화통일은 북측이 반대하는 햇볕정책으로는 실현될 수 없고, 오직 남북이 합의한 통일강령을 실천함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누가 합의할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 공동선언에서 통일강령을 이미 합의하였으므로, 그 강령을 또다시 합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은 통일강령에 관한 선언적 합의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선언적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고 정치적 의무도 약한 약속이므로, 어느 일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사문화될 위험이 있다. 또한 선언에서는 강령이 선언적 개념에 담기기 때문에 강령의 실천적 의미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통일강령을 선언적으로 합의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통일강령의 실천과제를 합의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주체는 민족이라는 명제가 있는데, 그 명제는 7천만 민족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여 통일강령을 합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통일강령을 합의하기 위해서, 7천만 민족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일 수도 없거니와 모이는 것도 아니다. 그 명제의 의미는 전민족적 범위의 사회정치세력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통일강령을 합의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통일강령을 합의하고 실천할 주체는 명백하게도 전민족적 범위에 포괄되는 사회정치세력들이다. 전민족적 범위의 사회정치세력들이 통일강령의 합의주체, 실천주체로 되는 것이다.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주체가 민족이라는 명제와, 통일강령을 합의하고 실천는 주체가 전민족적 범위의 사회정치세력들이라는 명제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인데, 한반도에도 세 단위의 사회정치세력이 존재한다. 정부, 정당, 사회단체이다. 민주주의는 정부가 독단적으로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체제가 아니라 각종 사회단체들도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체제이므로, 남북의 정부대표들, 남북의 정당대표들, 남북의 사회단체대표들이 통일강령을 합의하게 될 것이다. 그 3자를 정치협상대표라고 말할 수 있다. 통일학에서 해명하는 평화통일론은, 남북의 정치협상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통일강령을 합의하는 것을 평화통일의 결정적 계기로 인정한다.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통일강령을 합의하려면 정부, 정당, 사회단체의 정치협상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야 하는데, 통일학은 그 모임을 남북정치회담이라 한다. 정치협상대표들이 남북정치회담에 모이는 것은,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가장 중요한 과업을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남북정치회담에서는 평화통일론을 통일강령으로 정식화하고 그 강령의 실천과제를 제시하게 될 것이다. 명백하게도, 남북정치회담은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추동력을 발휘할 것이다.

남북의 정부나 각 정당이 자기의 정치협상대표를 정하는 것은 손쉽지만, 남측과 해외측에는 수많은 사회단체들이 난립해있어서 사회단체의 정치협상대표를 정하는 것은 힘들다. 그렇지만 사회단체들이 참가하는 폭넓은 정치협의체를 구성하고 그 정치협의체에서 선출한 대표들이 정치협상대표로 나서면 문제가 풀릴 것이다. 남, 북, 해외의 사회단체들을 망라하는 6.15 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를 결성한 까닭이 여기에서 자명해진다.

남북관계에서 정부를 대표하는 최고위급 정치협상대표는 당연히 남측의 대통령과 북측의 국방위원장이다. 최고위급 정치협상대표가 만나는 남북정치회담을 남측에서는 정상회담이라 하고 북측에서는 수뇌회담이라 한다.

남측의 국회 대표들과 북측의 최고인민회의 대표들도 각기 자기 정부를 대표한다. 국회 대표들과 최고인민회의 대표들이 만나는 남북정치회담을 남북의회회담이라 한다. 남북의회회담이 남북정상(수뇌)회담에 버금가는 까닭은, 남북의회회담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장차 통일헌법을 제정하는 역사적 임무를 맡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은 1985년 4월에 처음으로 남북의회회담을 제의하였고, 그에 따라 같은 해 7월과 9월에 남북의회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남북예비접촉이 진행되었다. 또한 북측은 1988년 7월 20일에 남북의회회담을 또다시 제의하였는데, 그에 따라 같은 해 9월과 1990년 1월에 남북의회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남북준비접촉이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예비접촉과 준비접촉을 몇 차례 가졌는데도 남북의회회담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4 선언에서 마침내 길이 열렸다. 그 선언에서 남북의회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합의는 하였으나 아직 열린 적이 없는 남북의회회담을 성사시키려면 우선 의회대표들의 상호방문부터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의회는 정당정치의 본령이고, 따라서 남북의회회담에 참가하는 정치협상대표는 곧 정당대표이므로, 남북의회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먼저 정당대표들이 만나는 남북정당교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남북정당교류에는 민주노동당이 앞장서고 있다.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각급 남북정치회담이 제각기 산만하게 진행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불필요하며, 그렇게 해서는 회담성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지금까지 남북정상(수뇌)회담, 남북총리회담, 남북장관급(상급)회담은 몇 차례 열렸으나, 남북의회회담이나 남북사회단체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남북관계가 통일지향적으로 발전하면 앞으로 남북의회회담이나 남북사회단체회담도 열릴 것인데, 그렇게 되면 각급 남북정치회담을 통합하여 하나의 포괄적인 협의를 진행할 필요가 당연히 제기될 것이다.

통일학에서는 각급 남북정치회담을 통합한 포괄적인 회담을 남북정치협상회의라 한다. 조국통일운동사에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처음으로 제의한 사람은 김구와 김규식이다. 민족주의정치세력을 대표하는 두 정치원로가 1948년 2월 16일 북측에 제의한 남북요인회담은 비록 4인회담으로 축소된 형태였으나, 남북정치협상회의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남북정치협상회의 제의는 1948년 4월 19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와 4월 27일 평양시 인민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남북지도자협의회를 통하여 실행된 바 있다.

남북정치협상회의를 개최하려는 노력은 전쟁의 포성이 멎은 뒤인 1954년 10월 30일에 북측이 남북연석회의를 제의함으로써 재개되었다. 북측의 최고인민회의는 1971년 4월 21일 제4기 5차 회의에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하였고, 김일성 주석은 1973년 4월 16일 캄보디아 국왕 시아누크를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하였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1974년 11월 28일 제63차 확대회의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하였으며, 1977년 1월 25일 북측의 정부, 정당, 사회단체 연합회의에서도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1983년 신년사와 1988년 신년사에서 남북연석회의를 제의하였고, 1989년 신년사에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하였는데, 한 달 뒤인 2월 4일 문익환 목사와 백기완 선생이 기자회견을 열어 그 제의를 수락하였고, 문익환 목사는 3월 25일에 평양을 방문하였다. 북측은 같은 해 9월 28일에 다시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하였고, 김일성 주석은 1990년 신년사에서 남북당국 및 정당 수뇌협상회의를 제의하였고, 1991년 신년사에서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하였다. 북측은 1991년 7월 14일과 1993년 8월에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하였다.

그런데 남측에서는 포괄적인 남북정치회담에 관해서 아직 생각하지 못해서 그런지, 그 회담을 지칭하는 독자적인 개념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평화통일론을 공론화하는 데서 남측은 북측에 뒤져있다.

평화통일론을 공론화하는 데서 뒤진 책임은 "통일업무를 전담하는 중앙행정기관"인 통일부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남북의 각급 정치회담에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통일부 본부에 두지 않고, 통일부 산하에 통일교육원과 남북출입사무소 등과 함께 '남북회담본부'라는 이름으로 둔 것만 보아도 통일부가 남북정치회담에 대해서 얼마나 소극적인지를 알 수 있다.

통일부는 이산가족문제와 식량지원문제에 골몰하면서 허송세월할 것이 아니라, 인도적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인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문제와 식량지원문제를 맡기고, 10.4 선언에 명시된 각급 남북정치회담을 활성화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 그것을 하나의 포괄적인 남북정치회담으로 통합하는 방책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각급 남북정치회담을 통합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일정기간 동안 진행하면, 자연히 그 회의를 상설기구화할 요구가 제기될 것이다. 통일학에서는 남북정치협상회의 상설기구를 남북정치기구라 부른다. 남북정치기구는 남북의 정부, 정당, 사회단체가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통일강령을 합의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결성하는 상설협의기구이다.

남북정치기구를 강화, 발전시키면 통일정부를 세울 수 있다. 북측에서는 상설협의기구 수준을 넘어서 통일정부로 강화, 발전된 남북정치기구를 민족통일기구라 부른다.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설방안 제시 20돐 기념 평양시 보고회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 서기국장이 그렇게 불렀다. 그에 비해, 남측에서는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해서 그런지, 남북정치기구를 공론화한 적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남북정상(수뇌)회담, 남북총리회담, 남북장관급(상급)회담이 열렸지만, 남북정치기구를 결성하자는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 남북정치기구를 결성하는 정치적 합의는 아마도 남북정치협상회의가 성사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실천방향은 각급 남북정치회담을 더욱 활성화하면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준비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남북정치협상회의는 실현가능성을 가늠할 수 없는 막연한 구상이 아니라,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의해서 실현가능성이 입증된 것이다.

각급 남북정치회담을 더욱 활성화하면서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준비하는 사업을 남북의 정당이나 사회단체들이 주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남북의 정부와 의회가 주도해야 그 사업을 성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남북관계의 발전전망을 정반대 방향으로 틀어버렸다. 이명박 정권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계승하지 않자, 그 두 선언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이행할 전망마저 어두워졌으며, 남북관계에서 대결상태가 출렁이고 있다. 요즈음에는 한 술 더 떠서, 의혹투성이로 드러난 '탈북자 여간첩 검거'와 '건강이상설 유포'로 북측을 극도로 자극하였다. 평화통일론은 정권교체 이후 시련을 겪고 있다.

남측의 정권교체가 남북관계를 좌우하는 것은, 평화통일과 정권교체가 상호의존적임을 말해준다. 갈라진 나라를 통일하는 통일강령을 합의하고 실천할 진정성을 가진 진보정권이 남측에 세워져야 갈라진 나라를 통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통일뉴스 2008년 9월 16일 발표)